풍경(風磬)과 나
누리터에서의 이름이 바람의 종입니다. 어떤 사람은 바람도 하인이 있냐고 묻지만 누리터에서 바람의 종이라 쓰는 것은 風磬 이라는 한자를 한글로 바꾸다 보니 바람의 종이라 쓰게 되었습니다. 바람과 풍경(風磬)은 떼어 놓을 수 없죠. 바람이 불어야 풍경이 우니 말입니다. 하지만 바람에겐 풍경은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쇠로 만든 종 따위는 소리 내는 것 외에는 별 의미도 없을뿐더러 풍경을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바람은 불교적인 해석을 할 능력이 없어 풍경의 의미를 모르지요. 바람을 의인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풍부한 상상력은 뭐든 생각하는 존재로 만들기도 합니다.
바람이 없다면 풍경은 의미가 있을까요? 조각품 정도로 밖에 인식되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 바람이 불어줘야 풍경은 자신의 몫을 합니다. 맑은 소리 내는 아름다운 새처럼 스스로 소리 내지 못하는 한을 품고 사는 지도 모릅니다. 쇠로 만든 풍경에겐 생명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숨 쉬는 존재고 뭐 든 상상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나는 살아있다고 말합니다. 산다는 것은 살아 없애는 의미입니다. 흔히 종이 따위를 불살라 버린다고 하지요? 태워 없애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우리는 태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난날들은 늘 머릿속에 있고, 추억하며 떠올릴 수 있는 우린 멋진 생명체입니다. 풍경도 하루하루를 태울 까요? 생명은 없어도 수 백 수 천 년을 처마 끝에 매달려 울 것입니다. 아마도 죽지 못하는 것이 힘겨울 수도 있겠지만 풍경에 대한 나의 이러한 생각은 생명이 없는 존재에겐 의미 없는 말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제대로라는 말을 자주 덧붙입니다. '제대로 살고 있는가'하면서 말이죠. 제대로 사냐는 물음은 잘살고 있는가,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후회 없는 삶을 사는가, 목표를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나는 이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공원에 핀 꽃에게 제대로 살고 있냐고 물을 수 있을 까요? 생명은 숨 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잔다리밟고 사는 우리의 자본주의 현실 속에서 가정과 나를 위한 발버둥만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일까요?
요즘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존재성에 대해 골몰하고 있습니다.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는 회의감을 갖습니다. 답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를 추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종교를 믿는 순간 '나' 라는 존재는 없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기력한 생명을 가진 존재가 돼 버린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말합니다. 나는 스치듯 그 말을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문장이 사라지지 않고 더욱 또렷하게 들리고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나의 존재감을 타인에게서 찾는다면 풍경(風磬)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이 있어야 우는 풍경처럼 다른 사람이 있어야만 나를 아는가?' 라는 문장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서양인의 사회적인 존재라는 문장에 나는 심한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공동체라는 말도 싫어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묻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독이나 수도(修道) 같은 단어로 표현될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 추위에 오그리고 누워 주무시는 어머니를 봤습니다.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가난하고 무능력한 아들 때문에 이 추운 방안에서 웅크리며 자야만 하는 어머니. 그런 아들을, 못난 아들을 낳으신 어머니를 보며 나는 나의 존재감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만족할 만한 해답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잠든 모습에서 나는 스스로 울어야 하는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바람이 풍경을 스치고 지나듯 내 가슴속을 무언가 스치며 뭉클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나 스스로를 찾기엔 너무나 힘겹습니다. 현실을 외면한 채 나를 찾아 떠나기엔 인연이라는 확률이 나의 수족을 잡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바람의 종(風磬)처럼 평생을 한 곳에 묶여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채비를 끝내고 떠날, 그 날을 기다리는 순간순간을 나는 태우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날은 언제일까요? 오늘처럼 어깨위를 넘으며 감싸는 바람이 몸을 감는 날엔 그 날이 더욱 더 기다려집니다. 저 바람을 따라가고 싶거든요.
2007.01.11 02:57 風磬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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