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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943호
2013.1.16 (음12.5)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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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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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란 기꺼이, 자랑스럽게, 열심히 자기의 무지를 실토하는 행위. - S.레오나드 루빈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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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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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용문
“‘집채만 한 파도’와 ‘집채를 덮을 만한 파도’의 차이점, 구분되세요?” 국립국어원이 새해 들어 펴낸 <쉼표, 마침표.>에 실은 글의 제목이다. 조사와 보조사는 앞말에 붙여 쓰고 의존명사는 띄어 쓴다는 걸 설명한 글이다. 앞 문장의 ‘만’은 보조사, 뒤 문장의 ‘만’은 의존명사이니 띄어쓰기를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말 띄어쓰기 구별은 이래저래 쉽지 않은 일이다. 작은아버지의 집은 ‘작은집’으로 붙여 쓰지만, 규모가 작은 집은 ‘작은 집’으로 띄어 써야 하니 말이다.
글쓰기에 띄어쓰기가 있다면 말하기에는 끊어 읽기가 있다. 끊어 읽기는 현행 어문규정에 정리되어 있는 게 없으니 띄어쓰기보다 더 까다롭다. 같은 기사나 원고로 뉴스를 내보내고 낭독을 해도 사람에 따라 끊어 읽기가 달라지는 현상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끊어 읽으려면 어절보다 뜻에 따른 ‘의미절’을 따져야 한다. 지구 온난화 방지 협약의 하나인 ‘교토의정서’를 ‘교토의 정서[교토에 정서]’로 잘못 말한 방송 진행자가 톡톡히 망신을 당한 것도 문장의 뜻을 몰랐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방송을 비롯한 입말의 세상에서는 띄어쓰기보다 중요한 게 끊어 읽기이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인 <레미제라블>의 원제목은 ‘Les Miserables’로 ‘불쌍한(비천한) 사람들’이니 뜻에 따라 끊어 읽으면 ‘레-미제라블’이다. ‘레미-제라블’이 아닌 것이다.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은 여주인공 ‘프리마돈나’(prima donna)는 ‘제1의 여인’이란 뜻이니(브리태니커) ‘프리마-돈나’가 된다. 신라 화랑인 ‘기파랑’(耆婆郞)을 기린 향가는 ‘찬-기파랑-가’(讚---歌), 죽은 누이(亡妹)를 위한 향가는 ‘제-망매-가’(祭--歌)로 읽는 게 맞다. ‘잉어가 황허강 상류의 용문(龍門)을 오르면(登) 용이 된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등용문’은 그래서 ‘등-용문’으로 끊어야 제 뜻에 어울리는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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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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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래 정드리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도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물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을 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가락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 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높여 부르는 나이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여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이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나던 ,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ㅡ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ㅡ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워서, 철이야, 너는 늴늴늴 가락 맞취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 두둥실 두둥실 붕새춤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딩굴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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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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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2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1. 꿈을 이루기 위한 스프
시도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다
나는 아내 린다와 함께 미국 플로리다 주의 마이애미에 살고 있다.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작은 도토리'프로그램을 막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이 새로운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에게 마약이나 성적 희롱 등 여러 파괴적인 유혹들에 대해 '노!'라고 말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 이었다. 이 무렵 우리는 캘리포니아 주의 샌디에고에서 열릴 계획인 어떤 교육 세미나의 안내 팜플렛을 다 읽고 나서 우리 부부는 이 분야의 중요한 인물들이 모두 세미나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 역시 반드시 그곳에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그때 막 상담 프로그램을 시작한 단계였고, 따로 사무실도 없이 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업 초기에 각자 갖고 있던 돈도 이미 다 써 버린 뒤였다. 따라서 우리에겐 샌디에고까지 갈 비행기표 살 돈과 그밖의 다는 비용에 필요한 돈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세미나에 꼭 참석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우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우선 샌디에고의 세미나 주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에게 우리가 왜 그곳에 참가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한 다음, 세미나 참가증 두 장을 우리에게 무료로 제공해 줄 수 없는가 물었다. 우리의 경제적인 사정과 우리가 하고 있는 작업, 또 우리가 그 세미나에 꼭 참가해야 만 하는 이유등을 듣고 난 세미나 주최자는 그 자리에서 내 부탁을 들어 주었다. 그래서 우린 두 장의 참가증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나는 린다에게 우리가 참가증을 얻었으니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린다가 말했다. "정말 잘 됐네요! 하지만 우린 마이애미에 있는데 세미나는 샌디에고에서 열리잖아요. 이젠 어떻게 하면 되죠?" 내가 말했다. "그곳까지 갈 교통수단을 찾아야지." 난 언제나 괜찮은 항공사라고 생각해 온 노스웨스트 항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우연히도 항공사 회장의 여비서였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설명 했다. 여비서는 내 전화를 곧바로 스티브 퀸토 회장에게 연결시켜 주었다. 나는 퀸토 회장에게 방금 샌디에고의 세미나 주최자와 통화를 해서 무료 참가증 두 장을 얻었는데 그곳까지 갈일이 막막하다는 사정을 설명하고, 우리 부부에게 마이애미에서 샌디에고까지 왕복 비행기표 두 장을 기부해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퀸토 회장은 즉석에서 대답했다. "물론 그렇게 해 드려야죠." 너무나 대답이 쉽게 나와서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퀸토 회장의 다음 말이 나를 더욱 당황시켰다. "내게 이런 부탁을 해 줘서 고맙소." 내가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죠?"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내게 부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난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할 기회가 많지 않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내 자신을 헌신적으로 바치는 일인데, 당신이 바로 그런 부탁을 내게 해 줬소. 나로선 아주 멋진 기회이고, 그 기회를 내게 준 당신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소." 나는 완전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아무튼 나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아내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보, 방금 비행기표 두 장을 구했어." 아내가 기뻐서 소리쳤다. "와우! 정말 대단해요! 그런데 세미나에 참가하는 며칠 동안 어디서 잠을 자죠?" 다음으로 나는 마이애미 시에 있는 홀리데이 인 호텔에 전화를 걸어 호텔 본점의 연락처를 물 었다. 그들은 본점이 테네시 주의 멤피스에 있다고 알려 주었다. 난 곧바로 멤피스로 전화를 걸었다. 몇 차례의 연결 끝에 마침내 담당자와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었으며, 그가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모든 홀리데이인 호텔을 관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세미나 참가를 설명하고 방금 비행기표 두 장을 구했는데 사흘 동 안 우리가 묵을 숙소를 무료로 제공할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그는 샌디에고 시내에 새로 지은 홀리데이 인 호텔이 있는데 그곳이라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물론입니다. 괜찮고말고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잠깐만요. 우리 호텔에서 세미나가 열리는 대학 캠퍼스까지는 6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 입니다. 따라서 세미나 장소까지 오갈 교통수단을 따로 마련하셔야 할 겁니다." 내가 말했다. "정 필요하다면 말이라도 한 마리 구하겠습니다." 난 그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다음 린다에게 말했다. "여보, 우린 참가증과 비행기표와 숙소까지 구했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호텔에서 캠퍼스까지 하루에 두 번 왕복할 교통수단이야." 나는 곧이어 내쇼날 렌트카 회사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한 다음에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없겠는가를 물었다. 렌트가 회사의 담당자가 말했다. "신형 올즈 88도 괜찮으시겠소?" 난 물론 괜찮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하루 만에 우리 부부는 모든 필요한 것을 구하게 되었다.
먹는 문제는 그럭저럭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세미나가 끝나 갈 무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참석자들에게 이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여러분들 중에서 오늘 우리 부부에게 점심 식사를 사 주실분이 계시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쉰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앞다퉈 손을 들었다. 그날 우리가 멋진 식사 대접을 받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세미나에 참석한 우리는 멋진 시간을 보냈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우리 작 업의 고문 역할을 해 주고 있는 잭 캔필드 같은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다. 세미나에서 돌아온 우리는 곧 우리의 프로그램에 착수했으며, 해마다 2,250번째의 가족이 우리의 '작은 도토리'교육 과정을 졸업했다. 우리는 또한 '어린이들을 위해 안전한 세상 만들기'라고 이름 붙인 교육 세미나를 두 차례에 걸쳐 주최했다. 그 세미나에 우리는 전세계 사람들을 초대했다. 수천 명이 넘는 교육담당자들이 모여 인간성 회복에 대한 생각들을 주고받았다. 최근에 우리가 주최한 세미나에는 81개 나라의 교육자들이 참석했다. 17개 나라에선 교육부 장관을 포함한 정부 대표자들까지 파견했다. 그 결과 우리 부부가 만든 교육 프로그램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비엘로러시아, 겔라루트, 카자흐스탄, 몽골리아, 대만, 쿠크아일랜드, 뉴질랜드 등에서까지 관심을 갖고 도입하게 되었다. 당신이 올바른 사람에게 부탁하기만 하면 당신은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부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릭 겔리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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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과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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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제6장 - 유전자의 친족 관계 (1/2)
이기적 유전자 이기적인 유전자란 무엇일까? 그것은 다만 DNA의 물리적인 작은 조각만은 아니다. 원시 수프에서 그랬듯이 그것은 세계에 분포하고 있는 개개의 특별한 DNA 조각의 모든 복제이다. 원할 때 언제든지 알맞은 용어로 고칠 수 있는 자신이 없다면 부정확함을 안 후에라도 유전자가 의식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양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개개의 이기적인 유전자의 목적은 무엇인가?" 유전자 풀 속에 다시금 수를 늘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답할 수 있다. 그것은, 즉 개개의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그것이 생존하고 번식하는 장소인 몸을 프로그램하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이것을 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다수의 다른 개체 내에 동시에 존재한다. 분산된 존재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장에서 중요한 것은 유전자가 남의 몸에 있는 자기 자신의 복제까지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개체의 이타주의로 나타날 것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전자의 이기주의의 산물인 것이다.
알비노 유전자 인간의 알비노(albino : 선천성 색소 결핍증)에 관한 유전자를 생각해 보자. 실제로 알비노를 일으키는 유전자는 여러 개가 있으나 여기에서는 그 중 하나에 대해서만 말하기로 하자. 이 유전자는 열성이다. 즉, 그 사람이 알비노가 되려면 이 유전자가 배수로 존재해야만 한다. 이것은 약 2만 명 중 한 사람의 비율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약 70명 중 한 명은 이 유전자를 단 하나 가지고 있는데, 이들 개체는 알비노가 아니다. 알비노 유전자와 같은 유전자는 많은 개체에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론상 자기가 머물고 있는 몸이 다른 알비노 개체에 대해(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프로그램함으로써 유전자 풀 속에서 자기의 생존을 도울 수가 있다. 알비노 유전자가 들어 있는 옆 사람이 죽음으로써 같은 유전자를 가진 다른 몸의 생존을 도와주는 것이라면, 알비노 유전자는 만약 그렇게 될지라도 매우 다행 한 일일 것이다. 만약 알비노 유전자가 그것을 가진 한 몸이 다른 몸의 10개의 알비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그 이타주의가 죽더라도 유전자가 풀 속의 알비노 유전자의 수의 증가로 충분히 보상되는 것이다.
그러면 알비노 사람끼리는 특히 친절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까? 아마도 실제로는 '아니다'라는 답일 거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유전자를 의식적 존재로 생각했던 비유를 그만두어야만 하겠다. 이 문맥에서 그것은 분명히 오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다소 긴 이야기가 될지는 몰라도 진지한 말로 바꿔 옮겨야겠다. 알비노 유전자가 실제로 살고 싶다든가 다른 알비노 유전자를 돕고 싶다든가 하는 생각을 할 리는 없다. 그러나 알비노 유전자가 종종 그것을 지닌 몸이 다른 알비노에 대해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시켰다면 결과로서 싫더라도 자동적으로 유전자 풀 내에서 수가 불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유전자가 몸에 대해 두 개의 독립된 효과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심한 백색 피부라는 보통의 효과를 주는 것만은 아니다. 심한 백색 피부를 한 사람에 대해 선택적으로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경향까지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은 이중 효과를 가진 유전자가 만일 존재한다면 그것은 개체군 내에서 대단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 3장에서 강조한 대로 유전자에 다형질 발현 효과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백색 피부이든 초록색 수염이든 그 밖의 유별한 특징이든 간에 겉으로 보이는 '표시'와 그 눈에 잘 띄는 표시의 주인에게 특히 친절하게 하는 경향을 동시에 발현시키는 유전자가 생기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단, 가능하다고는 하나, 가능성이 특별히 높을 리는 없다. 같은 식으로 초록색 수염은 살을 파고들며 자라는 타입의 발톱이나 그 밖의 어떤 특징을 발달시키는 경향과 결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고, 초록색 수염에 대한 호기심은 프리지어의 냄새를 맡는 능력이 없다는 것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유전자가 있는 표시와 그 표시에 대한 정확한 이타주의와의 양쪽을 생기게 하는 가망성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록색 수염 이타주의 효과'는 이론상 가능하다.
이타적 유전자는 번영한다 초록색 수염과 같은 임의의 표시는 유전자가 다른 개체 내에서 자기 복제를 '인지'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다른 것에도 어떤 수단이 있을까? 직접 가능한 수단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타적 유전자의 소유주는 단순히 이타적 행위를 한다는 사실에 의해 알 수가 있다. 어떤 유전자가 "몸아, A가 물에 빠진 자를 건지려다 도로 빠지면 뛰어들어 도와라."라고 하는 말을 '했다'고 하면 이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서 번영할 것이 틀림없다. 이와 같은 유전자가 성공하는 이유는 A가 같은 생명 구조 이타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확률이 평균보다 높다는 것이다. A가 다른 누군가를 도우려고 했다는 것은 초록색 수염과 같은 일종의 표시이다. 그것은 초록색 수염만큼 자의적인 것은 아니나 그러하도 해서 너무 최상의 것으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유전자가 다른 개체 내에서 자기의 사본을 '인지하는' 어떤 최상의 방법이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근친자-혈연자(kin)-가 유전자를 나누는 확률이 평균보다 높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이 어미가 새끼에 대한 이타주의가 많은 이유일 것이라는 것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피셔(R.A. Fisher), 헐데인(J.B.S. haldane), 특히 해밀턴(W.D. Hamilton)이 분명히 한 것은 다른 근친자-형제 자매, 조카, 조카딸 그리고 사촌-이게도 같은 것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열 사람의 근친자를 구원하기 위해 한 사람이 죽었을 경우 혈연 이타주의 유전자의 한 사본이 없어졌으나 같은 유전자보다 많은 사본이 구조되는 셈이 된다.
그러나 '보다 많은 수'라는 것은 다소 애매하다. '근친자'라는 것도 그러하다. 해밀턴이 지적한 대로 이것은 조금 더 분명히 할 수 있다. 1964년의 그의 두 논문은 지금까지 쓰여진 사회 동물 행동학의 문헌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정된다. 나는 이들 논문이 동물 행동 학자들에게 왜 이렇게 무시되어 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그의 이름은 1970년에 출간된(행동학) 2권의 중요한 교과서의 색인에조차 없다). 다행히 최근 그의 생각이 추대되기 시작한다. 해밀턴의 논문은 다소 수학적인데 어느 정도 지나친 단순화라는 대가를 치르면 엄밀한 수학을 쓰지 않고도 직접적으로 기본 원리를 터득할 수 있다. 우선 계산하고 싶은 것은, 예컨대 자매와 같은 두 개체가 특정한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확률이다. 이제 유전자 풀 전체 중에서 수가 작은 즁전자에 대해 말하기로 하자. 배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관련이 있든 없든 '알비노가 되지 않기 위한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이 유전자가 그와 같이 많은 것은, 자연계에서는 알비노가 알비노가 아닌 것에 비해 생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태양이 그들의 눈을 부시게 하여 접근하는 포식자를 발견하기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알비노가 되지 않기 위한 유전자와 같이 분명히 '좋은'유전자 알비노 내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할 생각은 없다. 이타주의라는 특수한 작용의 결과로서 유전자가 유전자 풀에 퍼지는 경우를 설명하고 싶다. 따라서 이 진화 과정의 최초 단계에서는 적어도 이들의 유전자 수가 적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체군 전체에서도 수가 적은 유전자조차 가족 내에 서는 흔히 있는 유전자라고 하는 점이다. 나도 개체군 전체에서 수가 적은 유전자를 많이 가지고 있고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이 색다른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은 실제로 극히 드물다. 그러나 나의 누이가 나와 같은 색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확률은 다소 있으며, 당신의 누이가 당신과 공통의 색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확률은 다소 있으며, 당신의 누이가 당신과 공통의 색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확률도 같은 정도이다. 이 경우 확률은 정확히 50%다. 그 이유는 쉽게 설명된다.
유전 당신이 유전자 G의 사본 1개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것은 당신의 부친이나 모친 중 어느편에서 받았음에 틀림없다(편의상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여러 가지의 가능성, 즉 G가 새로운 돌연변이일 경우와 양친이 모두 그것을 가지고 있을 경우, 또는 양친 중 누군가가 그 사본을 2개 가지고 있는 경우 등은 무시하기로 한다). 이 유전자를 당신에게 준 사람이 부친이었다고 하자. 이 경우 부친의 체세포는 모두 G의 사본을 1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여기서 인간이 정자를 만들 때에 자기의 유전자를 절반씩 나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당신의 누이를 만든 정자가 유전자 G를 받았을 확률은 50%이다. 한편 당신이 모친으로부터 G를 받았다고 하면, 같은 이유로 난자의 반수가 G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누이가 G를 가지고 있을 확률 또한 50%이다. 이것은 당신에게 100명의 형제 자매가 있다면, 그 중 약 50명이 당신과 같은 색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또 당신이 100개의 색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그 중 약 50개는 어느 형제의 몸에도 있다는 말이 된다.
근친도 어느 정도의 친족 관계인 개체에 대해서도 같은 계산이 된다. 중요한 것은 양친과 자식과의 관계이다. 당신이 유전자 H의 사본을 1개 가지고 있다면 당신 아이들은 어느 아이라도 그것을 가지는 확률이 50%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생식 세포의 반수가 H를 가지고 있고 어느 아이도 그 생식 세포의 하나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당신이 유전자 J를 1개 가지고 있다면 당신이 부친의 J를 가지고 있었을 확률은 50%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의 유전자의 절반을 부친으로주터, 나머지 절반은 모친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편의상 '근친도(relatedness)'라는 지표를 쓰기로 하자. 이것은 2인의 친족이 1개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확률을 나타내고 있다. 2인의 형제간의 경우,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절반이 다른 사람에게서도 보이므로 그 근친도는 1/2이다. 이것은 평균적 수치이다. 즉 특정 2인의 형제에 대해서는 감수 분열의 운 여하에 따라 공유하는 유전자가 이보다 많았다 적었다 할 때가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근친도는 반드시 1/2이다. 매번 하나하나를 최초의 원칙에 따라 세세하게 계산하는 것은 다소 지겨운 일이다. 그래서 A와 B가 두 개체일지라도 그 근친도를 산출할 수 있는 매우 빠른 규칙을 제시하자. 그것은 유언장을 만들 때나 자기 가족의 외견상의 닮은 점을 밝히는 데 필요한 것이다. 이 규칙은 단순한 예라면 무엇에든지 적용되지만 근친 교배가 일어날 때나 후술할 어떤 종의 곤충에게는 해당될 수 없다. 우선 A와 B의 공통 조상을 모두 밝혀 보자. 가령 두 사촌끼리의 공통 조상은 그들 공통의 조부와 조모이다. 공통 조상 중에서 한 사람이 밝혀지면 논리적으로 그의 조상의 조상은 물론 A와 B 모두에게 공통 조상이다. 그러나 가장 최근의 공통 조상 외에는 모두 무시하기로 한다. 그러면 사촌끼리의 공통 조상은 그 사람뿐이다. 만일 B가 A의 직계 자손으로 가령 A의 증손이라면 A자신이 우리가 구하고 있는 '공통 조상'이다.
세대 간격 A와 B의 공통 조상이 발견되면 다음과 같은 세대 간격을 세어보자. 우선 A로부터 공통 조상에 이르기까지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 거기서 다시 B까지 내려간다. 가령 A가 B의 숙부라면 세대 간격은 3이다. 그래서 공통 조상은 A의 아버지이자 B의 조부가 된다. A를 출발하면 공통 조상에 부딪치기 때문에 1세대 거슬러 오른다. 거기서 B에 달하기 위해 다른 쪽에 2세대를 내려가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세대 간격은 1+2=3이다. 공통 조상을 경유한 AB간의 세대 간격을 알았으면 다음에 그 조상에 관계하는 AB간의 근친도를 계산하자. 거기에는 세대 간격의 각 단계마다 1/2을 곱하여 간다. 세대 간격이 3이라면 1/2*1/2*1/2, 즉 (1/2)3이 된다. 특정 조상을 경유한 세대 간격이 g라면 근친도 부분은 (1/2)이다. 그러나 이것은 AB간의 근친도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공통 조상이 2인 이상 있을 때는 각각의 조상에 관한 같은 식의 수치를 더해야 한다. 보통 두 개체의 공통 조상은 모두 세대 간격이 같다. 그러므로 조상의 어떤 한 사람에 대해 AB간의 근친도를 계산할 경우 다음에 해야 할 것은 조상의 수를 곱하는 것이다. 가령 사촌에게는 공통 조상이 2인 있고, 그 각각을 경유하는 세대 간격은 4이다. 따라서 그들의 근친도는 2*(1/2)4=1/8이다. A가 B의 증손이라면 세대 간격은 3이고 공통의 '조상'수는 1(B자신)이므로 근친도는 1*(1/2)3=1/8이다. 유전적으로 말하면 사촌은 증손과 같다. 이와 같이 당신은 조부(근친도 2*(1/2)3=1/4)와 같은 정도로 숙부(2*(1/2)3=1/4)와 '닮았다.' 조부 또는 숙모가 사촌끼리인 먼 친족 관계(2*(1/2)8=1/128)에 서는 A가 가지고 있는 특정한 유전자를 개체군 속에서 임의로 선택한 개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확률에 다가간다. 이와 같이 근친자는 이타적 유전자에 관한 한 지나가는 행인과 같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육촌끼리(근친도1/32)는 어느 정도 가까운 친족일 뿐이다. 사촌끼리는 이것보다는 조금 가깝다(1/8). 친형제와 친자식은 아주 가깝다(1/2). 그리고 일란성 쌍생아는 자기 자신같이 가깝다(근친도 1). 숙부와 숙모, 조카와 조카딸, 조부모와 손자, 배다른 형제 자매는 근친도가 1/4이기 때문에 중간 정도로 가깝다.
혈연 이타주의 유전자 그러면 혈연 이타주의의 유전자에 대해 좀더 정확하게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5인의 사촌을 구조하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버리는 유전자가 개체군 속에 증가하는 일은 없으나 5인의 형제나 10인의 사촌 때문에 생명을 버리는 유전자의 수는 불어날 것이다. 이타적 자살 유전자가 성공하는 최소의 필요 조건은 그 유전자가 2인 이상의 형제(또는 자식이나 부모)나 4인 이상의 배다른 형제(또는 숙부와 숙모, 조카와 조카딸, 조부모, 손자)또는 8인 이상의 사촌 등을 구하고 죽는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은 유전자는 이타주의자에 의해 구조된 충분한 수의 개체의 체내에서 살아가며, 이타주의자 자신의 죽음에 의한 손실을 보상받는 셈이 된다. 어떤 사람이 상대가 자기와 같은 일란성 쌍생아라는 것을 알면 누구든지 그 사람의 행복을 자기의 행복과 마찬가지로 중요시할 것이다. 쌍생아 이타주의 같은 것이 있다면 그 유전자는 어떤 것이나 쌍생아의 쌍방이 필히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 쪽이 다른 쪽을 살리고 영웅적으로 죽어도 그 유전자는 살아 남는다. 9마리의 무리를 이루는 아르마딜로는 일란성의 4마리 새끼로 출생한다. 내가 아는 한에서 아르마딜로 새끼에 대한 어미의 영웅적인 자기 희생의 업적은 보고 되지 않고 있으나 어떤 종류에 강력한 이타주의가 있음이 틀림없다고 한다. 이것은 누구나 남아메리카에 가서 한 번 보고 올 가치가 있음직하다.
그러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수고는 혈연 이타주의의 특수한 예임을 알게 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만약 갓난아기인 동생이 고아가 됐을 경우 형제들은 자기의 친자식처럼 어린 동생을 열심히 돌보아 줄 것이다. 근친도가 똑같이 1/2이기 때문이다. 유전자 선택의 이론으로 말하면 큰누나의 이타적 행동의 유전자는 부모의 이타주의 유전자와 같은 정도로 개체군 속에 퍼질 확률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후술하는 여러 이유에서 지나치게 단순화한 형태이다. 실제로 자연계에서 누나에 의한 수고는 부모의 수고만큼 많지는 않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부모 자식 관계가 형제 자매 관계에 비해 '유전적'으로 특별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부모는 실제로 자식에게 유전자를 건네주는 데 반해 자매간에는 유전자의 주고 받음이 없다고 하는 지적은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자매는 어느 쪽이나 같은 양친으로부터 같은 유전자의 복제물을 받기 때문이다.
혈연 선택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형태의 자연 선택을 그룹 선택(그룹의 생존 차이)이나 개체 선택(개체의 생존 차이)과 구별하여 혈연 선책(kin selection)이라고 한다. 혈연 선택이 가족 내 이타주의의 원인이라고 한다. 혈연이 진하면 진할수록 선택이 강하게 작용한다. 이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나, 안됐지만 최근 그것의 오용이 현저하기 때문에 사용을 금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수년간 생물학자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윌슨(E.O. Wilson)은 그 밖의 다른 점에서는 훌륭하다고 해도 좋은 그의 저서(사회 생물학)에서 혈연 선택을 통상의 의미로, 즉 내가 제 1장에서 쓴 의미로 '개체 선택'과 '그룹 선택'과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분명히 가리키는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룹 선택은 윌슨 자신의 정의에서도 개체의 집단 생존에 차이가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확실히 어떤 의미에서 가족은 특수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밀턴 설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과 비가족 간에는 수학적 확률의 문제 이외에는 뚜렷한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해밀턴 설은 동물이 '가족 구성원' 전원에 대해 이타적으로 행하고 다른 것에게는 이기적으로 행한다는 말이 아니다. 가족과 비가족 간에 결정적인 하나의 선을 그을 수는 없다. 육촌을 가족에 넣을 것인지 아닌지를 따질 필요는 없다. 육촌 아들이나 형제에 비해 이타주의를 받을 가능성이 1/16이 된다는 예상이 있을 뿐이다. 혈연 선택은 절대로 그룹 선택의 특수한 예는 아니다. 그것은 유전자 선택의 특수한 결과인 것이다.
윌슨의 혈연 선택의 정의에는 더 중대한 결점이 있다. 그는 고의로 자식을 제외하고 있다. 자식은 혈연으로 포함시키지 않았다. 물론 그는 자식이 부모의 혈연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이타적 수고를 설명하기 위해 혈연 선택설에 의뢰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말이야 어쨌든 자기 마음대로 정의할 자격이 그에게 있음은 물론이나 이것은 극히 혼란을 초래하기 쉬운 정의이므로 나는 윌슨이 장래 영향력이 큰 책을 낼 때에 그것을 변경해 주기를 바란다. 유전적으로 말하면 부모의 수고와 형제 자매의 이타주의는 완전히 같은 이치로 진화한다. 즉, 어느 경우든 수익자의 체내에 이타적 유전자가 존재 할 확률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자질구래한 혹평에 관해서는 일반 독자의 용서를 빌며 서둘러 주제로 돌아오자. 지금까지 나는 어느 정도 단순화했다고 느끼며, 여기서 다소 수정을 해야만 하겠다. 지금까지는 유전자가 근친도를 확실히 알고 있는 특정 수의 근친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살한다는 초보적인 수법으로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동물들이 자기가 구조하는 근친자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고, 가령 그들이 누가 형제이고 누가 사촌인가를 알 수 있다고 해도 암산으로 해밀턴의 계산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확실한 자살과 완전한 생명 '구조'가 실생활에서는 자기 자신과 타인들의 '통계적 사망 위험률'로 치환되어 있다. 자기의 위험이 매우 적다면 육촌의 자식까지도 구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한편 자기가 구해 주려고 하는 근친자는 모두 언젠가는 죽을 운명에 있다. 모든 개체에는 보험 계리사가 일정 오차율로 산출하는 '평균 수명'이 있다. 수명이 짧은 늙은 근친자를 구하는 것은 이 노인과 근친도가 같으면서 전도가 긴 근친자를 구하는 것에 비해 장래의 유전자 풀에게 주는영향은 적다.
우리가 행한 완전히 대칭적인 근친도의 계산은 골치 아픈 보험 통계의 조작에 의해 수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유전적으로 말하면 조부모와 손자가 서로에 대해 이타적으로 행하는 근거는 같다. 그들은 서로 유전자의 1/4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자의 평균 수명이 더 크다면 손자에 대한 조부모의 이타주의의 유전자 편이 조부모에 대한 손자의 이타주의 유전자보다 선택상 유리하다. 연고가 먼 젊은이를 원조할 때의 순이익이 연고가 가까운 노인을 원조할 때의 순이익보다 많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덧붙여 말하면 물론 조부모의 평균 여명이 손자보다 항상 적다고는 할 수 없다. 유아 사망률이 높은 종에서는 역이 맞을 수도 있다).
개체는 생명 보험업자이다 보험 통계적으로 가정해 볼 때 개체는 보험업자라고 생각된다. 어떤 개체는 다른 개체의 생명에 자기의 자산 일부를 투자한다. 또는 '돈내기 걸기'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는 다른 개체와 자기와의 근친도를 고려하고, 또 보험업자 자신의 '평균 여명(life espectancy)'과 비교해 보아 그 개체가 '좋은 피보험자'인가 어떤가를 고려한다. 엄밀히 말하면 평균 여명이라기보다는 '번식 기대치'라고 하는 것이 낫고 더 엄밀히는 '장래 자기의 유전자에 필요한 일반적인 능력'이 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타적 행동이 진화기 위해서는 이타주의자로서의 위험도가 근친도와 수익자로서의 순이익을 서로 합친 것보다 더 작지 않으면 안 된다. 위험도와 이익은 앞에서 개요를 말 한 복잡한 보험 통계 방법에 의해 계산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설픈 생존 기계가 급히 행하기에는 얼마나 복잡한 계산일까! 위대한 수리 생리학자인 헐데인까지도(해밀턴보다 먼저 물에 빠진 근친자를 건지는 유전자가 퍼질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한 1955년의 논문 중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두 번이나 빠지려는 사람을 물에서 건져 낸 적이 있다(내 자신의 위험은 적었으나). 그러나 그때 그런 계산을 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헐데인으로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다행히 생존 기계가 암산하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복잡한 문제에 계산기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물은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는 양 행동하도록 미리 프로그램되어 있을지 모른다. 이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공을 공중에 던져 올렸다가 다시 잡을 때 사람은 공의 궤도를 예견하고 일련의 미분 방정식을 푸는 것같이 보인다. 모든 찬반과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결과를 고려하여 어려운 결정을 행할 때, 사람은 컴퓨터가 하고 있는 것과 기능적으로 같은 '가중 합계'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존 기계가 이타적으로 행하는지 어떤지를 결정하는 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하여 컴퓨터를 프로그램한다면 대개 다음과 같이 일을 추진하면 좋다. 우선 동물이 행하는 이타적 행동 전부의 일람표를 만든 다음에 이들의 이타적 행동 패턴의 각각에 대해 가중 합계 계산을 프로그램한다. 모든 이익에는 +기호를, 위험할 때는 -기호를 붙인다. 합계하기 전에 이익과 위험의 양면에 적당한 근친도를 고려하여 '가중치'를 정한다. 이야기를 간단히 하기 위해 우선 연령과 건강과 같은 그 밖의 조건은 무시하기로 하자. 어떤 개체이든지 자신에 대한 '근친도'는 1이기 때문에(즉, 그 개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당연히 100퍼센트 가지고 있다) 자신에 대한 위험과 이익은 전혀 변동이 없다. 어쨌든 하나의 이타적 행동 패턴에 관한 총계는 아래와 같다. 행동 패턴의 순이익=(자기 이익)-(자기 위험)+(형제의 이익1/2)-(형제의 위험1/2)+(또 다른 형제의 이익1/2)-(또 다른 형제의 위험1/2)+(사촌의 이익1/8)-(사촌의 위험1/8)+(자식의 이익 1/2)-(자식의 위험1/2)+등등...
유전자는 순이익을 지향한다 합계 결과는 행동 패턴의 '순이익 득점(net benefit score)'이라고 하는 수치이다. 다음에 그 모델 동물은 자기의 이타적 행동 패턴의 레퍼토리의 각각에 대해 같은 식으로 합계한다. 최후에 그것은 순이익이 최대로 되는 행동 패턴을 선택하여 실행한다. 가령 전체 득점이 마이너스라고 해도 최고 득점의 행동을, 즉 가장 작은 불운을 택할 것이다. 어떠한 플러스 행동에도 시간과 에너지의 소비가 있고, 그것들은 어떤 것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순이익의 득점을 최고로 하는 '행동'이라면 모델 동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매우 단순화된 예를 들어보자. 이번에는 컴퓨터에 의한 시뮬레이션이 아닌 주관적인 독백식으로 이야기하자. 내가 8개의 무더기 버섯을 발견한 동물이라고 하자. 나는 그 영양가를 고려하여 그것들이 독이 있을지도 모를 근소한 위험에 대해 어느 정도를 감하고 그것들이 각각 +6단위(이 단위는 앞 장과 같이 임의의 득점이다)라고 추측한다. 버섯이 크기 때문에 그 중 3개밖에 먹을 수 없다. 나는 "먹을 것이 있다."라고 소리쳐 나의 발견물을 그 밖의 누구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인가? 들리는 범위에는 누가 있을까? 동생 B(나에 대한 근친도 1/2)와 사촌 C(근친도 1/8), 그리고 D(특별한 관계는 없고 나에 대한 근친도는 매우 작아 실제로 0으로 취급)가 있다. 나의 순이익 득점은 내가 발견물에 관해 가만히 있으면 내가 먹을 수 있는 3개의 버섯에 관해 각각 +6을 더해 합계는 +18이다. 먹이가 있다고 알렸을 때의 나의 순이익 득점은 계산을 요한다. 8개의 버섯은 우리 4인에게 균등히 분배된다. 내 자신이 먹은 2개에서 얻은 득점은 각각 +6단위, 즉 합계 +12이다. 그러나 동생과 사촌이 2개씩 먹었을 때 우리 3인은 공통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므로 내게도 얼마의 득점이 가해진다. 실제의 득점은 (1*12)+(1/2*12)+(1/8*12)+(0*12)=+19 1/2이 된다. 이기적 행위를 취했을 경우에 이에 상당하는 순이익은 +18이었다. 비슷하나 답은 분명하다. 나는 동료를 부를 것이다. 나의 이타주의는 이 경우 나의 이기적인 유전자에 이익을 주는 것이 된다.
나는 설명을 간단히 하기 위해 개개의 동물이 자기의 유전자로서 무엇이 최선인가를 산출한다고 가정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몸에 영향을 준다. 즉, 이와 같은 계산을 하고 있는 양 행동하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 속에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여하튼 이 계산은 이상적 상태로의 매우 예비적인 근사값에 불과하다. 그것은 관계 있는 개체의 연령 등 많은 것을 무시하고 있다. 또 내가 꼭 배불리 먹고 버섯 한 개가 들어갈 여유밖에 없다면 동료를 부를 순이익은 굶고 있을 때보다 더 크다.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해 계산하면 계산의 정밀도는 한없이 오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동물이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동물이 최적의 결단을 내릴 때에 극단적으로 자세한 것을 전부 고려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금후, 야외 관찰과 실험을 통하여 동물이 실제로 얼마나 엄밀히 이상적인 손득 분석을 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조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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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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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分五裂(사분오열) 四(넉 사) 分(나눌 분) 五(다섯 오) 裂(찢을 열)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의 이야기. 전국시대, 제(齊) 초(楚) 연(燕) 한(韓) 조(趙) 위(衛) 진(秦) 등 7국이 패권을 다투던 시절. 진나라는 상앙(商 )의 변법(變法)을 시행하여 국력이 증강되자 천하를 통일하고자 빈번히 주변 나라들을 침공하였다. 이에 6국은 소진(蘇秦)의 합종책(合縱策)으로 진나라의 계획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진나라는 장의(張儀)의 연횡책(連橫策)을 채용하고 그를 재상(宰相)으로 임명하여 6국을 돌며 유세하도록 하였다. 장의는 먼저 위(魏)나라 왕을 설득하였다.
위나라는 남으로 초나라에, 동으로는 제나라, 서쪽으로는 한(韓)나라, 북으로는 조나라와 접해 있습니다. 만약 주위의 나라들과 관계가 나빠져서 그들이 공격해 온다면 사방을 방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며, 위나라는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사분오열될 것이니, 차리리 진나라에 의지하여 보장받는게 나을 것입니다.
장의는 6국에서 이해와 유혹, 협박 등으로 그들의 합종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하였다. 四分五裂이란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짐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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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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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자서전. 시민의 불복종 - 간디 / 함석헌 역
제2편
9. 고난은 아직도 더
기차가 찰스타운에 닿은 것은 아침이었다. 그당시 찰스타운과 요하네스버그 사이에는 기차가 없었고 역마차만이 다녔는데, 그 역마차는 도중에 스탠더턴에 쉬며 밤을 지냈다. 나는 역마차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마리츠버그에서 하루를 쉰다 해도 무효가 되는 건 아니었고, 그뿐 아니라 압둘라 셰드가 찰스타운 역마차 정류소 소장한테 전보까지 쳐 좋았었다. 그러나 정류소 소장은 구실만 있으면 나를 떼버리자는 것이었으므로, 내가 낯선 사람인 것을 알고, 당신의 표는 무효가 되었소 라고 했다. 나는 적당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의 속셈은 자리가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유는 전혀 다른 데 있었다. 승객들은 마차안에 태워야 하지만, 나를 쿨리로 생각했고 또 낯선 사람이었으므로, 그 리더(leader ; 마차를 부리는 백인) 는 나를 백인 승객과 함께 앉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부 자리 양옆에 자리가 하나씩 있었는데, 리더는 그중 어느 한 자리에 앉는 것이 통례였다. 오늘은 그는 안에 앉고 나에게는 자기 자리를 주었다. 나는 그것이 전혀 부당하고 모욕적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꾹 참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억지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고, 내가 만일 항의를 한다면 마차는 나를 태우지 않고 그냥 떠나 버릴 것이었다. 그러면 또 하루를 놓쳐 버릴 것이고, 그러면 다음날 무슨 일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속에서는 화가 끓어 올랐지만, 나는 조심조심 마부 옆자리에 앉았다. 세시쯤 해서 마차가 파르데코프에 도착했는데 리더는 이제는 내가 앉았던 자리에 제가 앉고 싶은 생각이 났다. 담배를 피우고 싶었는지, 아마 바람이라도 쐬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마부에게서 더러운 부대 조각을 하나 얻어 바닥에 깔아 놓고는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새미, 여기 앉아, 내가 마부 옆에 앉아야겠어." 그 모욕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두렵고 떨리는 생각에 나는, "내가 의당 안 좌석에 앉아야 할 것이었지만, 당신이 나에게 여기 앉으라 했다. 나는 그 모욕을 참았소. 그런데 이제 당신은 밖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나더러 당신 발밑에 앉으라니,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소. 나는 안에 들어가 앉을 거요." 했다. 내가 죽자하고 이 말을 마치자 그 사람은 내게로 내려오더니 내 뺨을 세차게 후려갈겼다. 그는 내 팔을 잡아 나를 끌어내리려 했다. 나는 마부석의 쇠로된 손잡이를 힘껏 붙잡고 손목뼈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놓지 않고 버티기로 결심했다. 승객들은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 자는 나에게 욕설을 퍼붓고, 나를 끌어당기고 때렸으나 나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 그는 억세고 나는 약했다. 승객 중 더러는 나를 불쌍히 여겨 외쳤다. "이 사람아, 가만 둬. 그사람 때리지 말아. 그 사람은 잘못 없어. 그가 옳아. 그가 거기 있을 수 없다면 여기 들어와 위와 같이 앉으라고 해." "일 없습니다." 그는 소리쳤다. 그러나 기가 좀 죽은 듯하여 때리기를 그쳤다. 내 팔을 놓고, 욕을 좀더 한 다음 마부석 저쪽자리에 앉아 있는 호텐톳 사람 사환을 보고 바닥에 앉으라 하고는 그 자리에자기가 앉았다. 승객들은 제자리에 앉고, 호각은 울리고, 마차는 덜커덩거리며 떠났다.
가슴속에서는 방망이질을 하고, 나는 살아서 목적지에 갈수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그 사람은 이따금씩 노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나를 손가락질하며 으르렁 거렸다. 알아두어, 스탠더턴에 가기만 해보자. 내가 본때를 뵈줄 거다 라고. 나는 말없이 앉아서 나를 도와 줍시사 하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캄캄해진 후 스탠더턴에 닿아서 인도 사람들 얼굴이 더러 보였을 때 나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가 내리자마자 그 친구들은 말했다. "우리들은 당신을 이사 셰드의 상점으로 모시려고 나왔습니다. 다다 압둘라에게서 전보가 왔습니다." 참 반가왔다. 우리는 셰드 이사 하지 수마르의 상점으로 갔다. 셰드와 그의 사무원들은 나를 둘러쌌다. 나는 지난 모든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듣고 몹시 미안해 하며 자기네의 쓴 경험을 이야기하여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는 역마차 회사 사장에게 사건의 전말을 알려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편지를 써서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을 낱낱이 이야기하고, 그가 고용하는 사람이 내게 대하여 했던 위협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그리고 또 이튿날 아침 떠날 때는 나도 다른 승객들과 함께 안 좌석에 앉아 갈 것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거기에 대해 사장은 이런 의미의 회답을 보내 주었다. "스탠더턴에서부터는 다른 사람이 맡아보는 다른 큰 차가 갑니다. 당신이 불평을 말씀하신 그 사람은 내일 그 차에는 타지 않을 것이고 당신은 다른 승객들과 같은 좌석에 앉으실 것입니다." 그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풀렸다. 나는 물론 내게 폭행을 했던 그 사람을 고소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구타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완결이 되었다.
아침이 되어 이사 셰드의 사람이 나를 마차에 데려다 주어, 좋은 자리에 앉아, 밤에 아주 편안히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스탠더턴은 조그만 촌락이고 요하네스버그는 큰 도시다. 압둘라 셰드는 요하네스버그에 미리 전보를 쳐두었고, 또한 내게 거기 있는 무하마드 카삼 카므루딘의 상사 이름과 주소를 알려 주었다. 상사의 사람이 마차역에 마중을 나와 있었는데, 나는 그 사람을 보지도 못했고 그가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는 호텔로 가기로 했다. 나는 호텔 이름들을 더러 알고 있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그랜드 내셔널 호텔로 가자고 했다. 지배인을 보고 방이 있느냐 물었더니, 그는 한참 나를 바라보더니 공손한 말로, "대단히 미안합니다. 지금 만원입니다." 하고는 내게 안녕히 가라고 인사를 했다. 그래서 나는 운전사보고 무하마드 카삼 카므루딘의 상사로 가자고 했다. 거기에 가 보니 압둘 가니 셰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보고 친절히 인사를 했다. 내가 호텔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닌 그는 하하 하고 웃으면서 "그래 호텔에서 받아줄 줄 알았습니까?" 라고 했다. "안될 것이 뭐 있어요?" 나는 물었다. "여기 며칠만 계시면 다 아실 것입니다. 우리니깐 이런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돈을 벌려니, 모욕을 참는 것쯤 문제로 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있습니다." 하면서 남아프리카에 있는 인도인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셰드 압둘 가니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차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는 당신 같은신 분들에게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보셔요, 내일은 프리토리아에 가셔야지요. 3등차로 가셔야만 합니다. 트란스발의 상황은 나탈보다도 더 나쁩니다. 1,2등 차표는 인도인에게는 팔지도 않습니다." "그 방면으로 끈질긴 노력을 하지 않았단 말씀이군요." "대표도 보내 봤지요.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우리 사람들도 일반적으로 1,2등으로 여행하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철도규정을 가져오라고 해서 읽어 보았다. 거기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하나 있었다. 옛날의 트란스발의 법령은 그 말이 정확하고 분명하지 않았는데, 철도규정은 그만도 못했다. 나는 셰드에게, "나는 1등차로 가겠습니다. 만일 안된다면 나는 차라리 택시로 가겠습니다. 다해야 37마일인 걸요." 라고 했다. 셰드 압둘 가니는 그렇게 되면 시간과 돈이 더 든다고 말해 주었지만, 그래도 1등으로 간다는 나의 제의에 동의를 했고, 따라서 우리는 역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그 편지 속에서 나는 변호사요, 언제나 1등차로 여행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또 나는 될수록 일찍 프리토리아에 도착하여야 한다는 말과, 기다릴 시간이 없기 때문에 차표는 직접 역에 가서 받겠다는 것과, 나는 1등표를 받을 것을 꼭꼭 믿는다는 말을 했다. 내가 직접 가서 대답을 듣겠다는 데는 물론 목적이 있었다. 역장이 만일 서면으로 회답한다면 틀리없이 안된다 고 할 것이다. 더구나 그는 나를 쿨리 변호사라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말쑥한 영국 복장으로 나가서 말을 하면 그를 납득시켜 1등표를 내주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프록코트에 넥타이를 매고 가서 차삯으로 금화 한 닢을 상 위에다 내놓으며 1등표 하나를 달라고 했다. "아까 편지 보내신 분이십니까?" 그는 물었다. "그렇습니다. 표를 주신다면 참 고맙겠습니다. 나는 오늘 안으로 프리토리아에 가야 합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동정하는 태도로 말했다. "나는 트란스발인은 아닙니다. 네덜란드인입니다. 당신의 심경을 잘 알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동정합니다. 차표를 드리겠습니다마는 하나 조건이 있습니다. 만일 차장이 3등칸으로 가라고 할 경우에는 나를 거기에 끌어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말은 철도회사를 고소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무사히 가시기 바랍니다. 신사도를 지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차표를 끊어 주었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알아들을 만큼 약속의 말을 해주었다. 셰드 압둘 가니가 나를 전송해 주러 나왔다가 이 일을 보고 매우 놀랐다. 그래도 그는 내게 주의를 주며 말했다. 프리토리아에 무사히 가신다면 참 고맙겠습니다. 아무래도 차장이 당신을 1등칸에 그냥 둘 것 같지 않습니다. 또 설혹 그가 그냥 있는다 해도 승객들이 아마 가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1등칸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차는 떠났다. 저미스턴에서 차장이 표를 검사하려고 들어왔다. 나를 보자 그는 화가 나서 손가락으로 3등칸으로 가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에게 내 1등차표를 내보였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3등칸으로 가." 하고 그는 말했다. 그 칸 안에는 다만 영국인 승객 한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그 사람이 참견을 하고 나섰다. "당신 그분을 왜 귀찮게 구는 거요? 그분이 1등표를 가지고 있는 것 못 보시오? 나는 그이와 함께 타는 것에 대해 조금도 상관하지 않소." 하고는 나를 보고 "조금도 염려말고 앉아 계십시오." 라고 했다. 차장은 투덜거렸다. "당신이 쿨리와 같이 가는 것이 좋다면야 내가 무슨 상관이 있어요?" 하고 가버렸다. 저녁 여덟시쯤 차가 프리토리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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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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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9장 도래종교
2. 큐벨레
큐벨레(Cybele)는 동방의 여신이며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딸이라고 한다. 디오도로스에 의하면 메노스라는 리디아의 왕자와 딘듀메네의 딸이라고도 한다. 그리스 신화의 레아와도 동일시된다. 태어나자마자 산에 버려졌는데 산짐승의 젖으로 살아났고 그 산 이름을 따서 큐벨레로 불리게 되었다. 커서 아버지 궁전으로 돌아와 미모의 청년 아티스와 밀통하게 되자 아버지는 청년을 불구자로 만들어 버렸다. 여신의 아티스에 대한 사랑은 프리지아에서의 큐벨레 숭배에 잘 나타난다. 즉 큐벨레는 아티스에게 종신토록 자신을 섬기며 독신을 지킬 것과 이를 어길 경우 속죄를 요구하였다.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한 아티스는 거세되고 소나무 십자가에 처형되어 지상의 죄를 속죄하게 된다. 프리지아에서 큐벨레 축제는 극도로 장엄하게 치러지는데, 그 사제들은 코류반테스 혹은 칼리스로 불리며 미리 신체의 일부를 제거한 선택된 자가 아니면 참여하지 못하였다. 의식은 아티스를 잃은 큐벨레의 슬픔을 표현하는 행사로, 마치 실성한 자의 모임처럼 무시무시하고 예리한 음과 절규, 드럼과 작은 장고소리, 방패와 창 부딪치는 소리가 모두 같이 섞여서 온천지를 진동하였다. 또한 새로 참가하는 자에게 수소를 잡아 그 피로 세례를 주었다(타우로볼리즘). 큐벨레는 건강한 여성을 상징하고 그녀의 임신은 땅의 생식을, 여러 개의 유방은 지상에서 모든 산짐승에 식량을 주는 것을 상징한다. 탑 장식관이나 면사포를 쓰고, 곁에는 두 마리의 사자를 대동한 채 옥좌에 앉아 있거나 사자가 끄는 일륜마차를 타고 있을 때도 있다. 아티스는 잔을 들고 그 옆에 배석하였다. 두 마리 암수 사자는 아탈란테와 히포메네스 두 남녀가 신전을 혼인의 신방으로 삼았기 때문에 모독죄로 변신시킨 것이다. 큐벨레 숭배는 그리스에 들어가 엘레우시스의 비의로 절충되어 데메테르 엘레우시스 비의로 자리잡았다. 로마인들도 이들 정중히 받아들여 로마의 최고 모신으로 모시고 바티칸에 신전을 세웠는데 그리스도교가 점거하는 서기 4세기까지 엄존하였다. 로마에서는 시뷸레의 신탁에 따라 프리지아의 페시노스에서 여신상을 모셔와 축제를 벌였는데 그 배가 티베르 강가로 다가오면 클라우디아의 미덕과 순결을 입증하기 위해 허리띠를 끄르는 행사를 거행하였다. 여신 숭배의 핵심이 되는 성석을 실은 배가 티베르 강에서 좌초하였을 때 귀부인 클라우디아가 자신의 허리띠를 풀어 그 배를 끌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이 무속신앙은 매우 강하여 매년 4월 6일에는 여신의 성체를 알몬 강물에 목욕을 시켰다. 축제 때는 음란한 외설이 만발하고 사제들은 외설발언에 열을 올렸는데 이는 음탕하고 부도덕한 행위에서 벗어남을 나타내었다.
[스페인 마드리드 큐벨레 플라자의 큐벨레 분수 : 사자가 끄는 수례에 타고 있는 큐벨레 여신.]
아티스
아티스(Attis, Atys)는 프리지아 신화에서 큐벨레 숭배와 동방하여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로, 기원전 204년에는 로마로 들어왔다. 원래 양치기이지만 뛰어난 미모로 큐벨레의 사랑을 받았다. 이 젊은이에 매료당한 큐벨레는 자신의 사원을 맡기며, 평생 동정을 지켜 독신으로 살 것을 약속케 하였다. 그러나 아티스는 한 요정에게 연정을 품어 약속을 저버렸기 때문에 여신의 극심한 역정을 사서 실성하게 되고, 마침내 예리한 돌로 스스로 거세하여 성불구가 되었다. 그 후 큐벨레 숭배를 맡은 승려들은 종신토록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자진해서 거세하였다. 큐벨레와 아티스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디오도로스에 의하면 큐벨레와 아티스가 사랑에 빠지자 큐벨레의 아비가 젊은이를 성불구로 만들었다고도 한다. 또한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아티스는 강의 신 상가리오스의 달 나나의 아들로, 나나가 편도 가지를 품었다가 잉태하여 태어났다고 한다. 예기인즉 아그디스티스라는 신은 양성을 지닌 괴물이었는데 신들이 그의 남성성기를 제거하여 땅에 던지자 거기에서 편도나무가 솟아났다. 상가리오스의 딸 하나가 그 가지를 모아 가슴에 품었더니 잉태가 되었고 거기에서 아티스가 태어났다. 아티스는 태어나자마자 산에 버려져 산양의 젖을 먹고 자랐는데, 산간에서 남성성기를 제거당하여 여성이 된 아그디스티스 (큐벨레)가 아티스의 미모에 넋이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아티스가 페시노스 왕의 딸과 축복된 혼례를 올리게 되자 질투에 휩싸인 아그디스티스는 마법의 능력을 발휘하여 왕과 사위 간에 싸움을 붙이니 격분한 나머지 둘다 성불구가 되었다. 큐벨레는 자해하려는 아티스를 소나무로 바꾸었고 그 후 소나무는 모든 신의 모신에게 바치는 나무가 되었다. 또한 아티스는 큐벨레의 화신인 처녀신 나나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아티스는 성인이 되자 어느 해 속죄 제삿날에 희생되어 인류 구제를 위하여 거세하고 소나무 십자가에서 처형되는데 아티스의 성혈이 흘러 지상의 죄를 모두 속죄하였다고도 한다. 이 날이 바로 춘분으로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한다. 아티스의 육신은 빵에 넣어져 숭배자들에게 먹은 바 되고, 아티스는 죽은 지 3일만에 다시 부활하였다. 이 부활의 날을 카니발 또는 힐라리스라 부르는데 사람들은 부활의 환희에 들떠 거리에서 변장을 한 채 춤추고 돌아다니며 한때의 정사에 빠졌다. 이 날이 일요일이다. 그리스도교도들도 아티스의 부활에서 유래한 부활제를 경축하고 카니발 행사를 겸하였는데 이는 후세에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 축제주일의 최종일은 행사의 절정에 달하며 그 날 즉 4월 1일을 만우절이라 하였다. 아티스 숭배는 초기 그리스도교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 아티스 수난에 대해서는 3월 25일에 추모를 하였는데 그것은 아티스가 탄생한 동짓날인 12월 25일에서 꼭 9개월째 되는 날이다. 수난의 시각은 또한 그가 잉태된 시각도 된다. 그리스도교도들은 자신들의 구세주의 잉태와 탄생일이 아티스의 그 날과 같은 날이라 하고, 이것이 논쟁거리로 떠오르자 즐겨하는 지론으로 그리스도교가 생기기전에 악마가 그리스도교 정신을 본 떠 이교의 비의를 만든 것이라고 하였다. 아티스 신봉자는 결국 아티스의 희생의 날을 그리스도교도에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483~565)는 3월 25일을 예수 잉태의 날로 고지하고 축일로 공포하였다. 따라서 예수도 아티스와 마찬가지로 9개월 후인 동짓날에 태어난 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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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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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2 - 류시화
오늘은 뭘 배웠지?
북인도 바라나시의 한 여인숙에서 묵고 있을 때였다. 낮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돌아오면 늙은 여인숙 주인이 내게 묻곤 했다. "오늘은 뭘 배웠소?" 그는 여행을 하러 온 내게 '오늘은 뭘 구경했소?'라고 묻지 않고 항상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못 들은 척할 수도 없어서 나는 아무 거나 둘러대곤 했다. "오늘은 인도가 무척 지저분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는 내 대답에 무척 신기해 하며, 심부름하는 아이까지 불러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손님이 오늘, 인도가 무척 지저분하다는 걸 배웠다는구나." 그러면 아이도 덩달아 "그래요? 그런 걸 배웠대요?" 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것이었다. 다음날 주인은 또 물었다. "오늘은 뭘 배웠소?" 나는 또 아무 거나 둘러댔다. "오늘은 인도에 거지가 무척 많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는 "그래요? 그런 걸 배웠어요?" 하면서 또 심부름하는 아이를 불러 자랑하듯이 설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아이와 짜고서 나를 놀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복수를 하기로 작정하고 다음날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은 인도에 쓸데없는 걸 묻는 사람이 참 많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러자 여인숙 주인은 정색을 하며 물었다. "누가 어떤 쓸데없는 걸 묻던가요?" 나는 그가 내 말뜻을 못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알아듣고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몰라서 이렇게 말했다. "그냥 그런 희한한 사람이 있습니다. 안녕히 주무시오." 그런데 그 다음날도 어김없이 여인숙 주인은 똑같은 걸 묻는 것이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내 방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주인은 심부름 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저 손님이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는구나."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괴상한 여인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당장 다른 곳으로 옮길까도 했지만, 곧 떠나야 했기 때문에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바라나시에 있는 동안, 나는 매일 저녁 그 이상한 여인숙 주인에게서 그 질문을 들어야만 했다. "그래, 오늘은 뭘 배웠소?" 그러다 보니 차츰 나도 세뇌가 되었다. 그래서 일주일쯤 지났을 때는 여인숙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스스로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뭘 배웠지?" 그것은 바라나시를 떠나 인도의 다른 도시들로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딜 가든지 저녁에 숙소로 돌아올 때면 그것을 내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알고 보니 그 여인숙 주인은 좋은 스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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