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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925호
2012.11.22 (음10.9)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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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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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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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풍경을 감상하면서 걷는 일에 견줄 만한 것은 없다. 멋진 경치는 한 곡의 음악과 같다. 그것은 적절한 박자로 감상되어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도 속도가 너무 빠르다. - 폴 스코트 모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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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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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바루기] 충돌과 추돌
지난 연말엔 눈이 많이 내려 교통에 불편을 주기도 했지만 스키어들은 신이 났다. 스키나 보드로 빠르게 산을 내려오는 일은 짜릿한 기쁨을 선사한다. 그러나 속도 때문에 잘못하면 서로 부딪치거나 넘어져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스키 사고의 경우처럼 무엇과 무엇이 부딪치는 것을 표현할 때 ‘충돌’ ‘추돌’이란 단어가 자주 사용되는데 가끔 이들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쓰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스키장 이용객끼리 추돌할 경우 책임은 뒷사람이 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에서 추돌은 적절하게 쓰인 것일까. 충돌은 ‘서로 맞부딪치거나 맞섬’을 뜻한다. 반면 추돌(追突)은 ‘쫓을 추’라는 한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자동차나 기차 따위가 뒤에서 따라가 들이받음을 의미한다. ‘충돌’은 행위자가 양쪽 모두이거나 누구의 행위인지 따지지 않지만 ‘추돌’은 행위자가 뒤쪽이다. “스키장 이용객끼리 추돌할 경우”란 표현에서는 ‘끼리’와 ‘추돌’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방향성이 상충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스키장에서 앞사람을 추돌할 경우” “스키장 이용객끼리 충돌할 경우” “스키장에서 앞사람을 들이받을 경우” 등으로 쓰는 게 적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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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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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의 시간 - 안승우
붉은 호박화석 속 딱정벌레의 눈을 보며 딱정벌레의 눈에서 반짝이는 초록빛을 보며 문득 나는 그것이 별빛이라고 생각했다 이 천 만 년 전 딱정벌레의 하늘, 초록빛으로 두근거리는 별빛 속에서 나는 딱정벌레처럼 웅크리고 누워 있는 너를 보았다
딱정벌레의 눈에 담긴 초록 별빛을 보며 따스한 별빛 받으며 가볍게 내려앉던 날갯짓처럼 둥근 몸을 사뿐히 쓸어 넘기며 달콤한 잠에 빠져드는 너를 보았다 네가 살고 있는 하늘, 초록 별빛을 보며 나는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순간, 너의 잠이 깃든 너의 초록 별빛이 내 안에 들어왔다
너의 하늘, 너의 별빛 담긴 너와 나의 화석의 시간이 영원의 타임캡슐 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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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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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1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4. 가정과 가족을 위한 수프
넌 내 사랑하는 아들이지
아들 녀석을 학교까지 태워다 주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들아, 좋은 아침이구나. 보이 스카우트 복장을 하고 있으니 오늘따라 네가 아주 날렵해보이는구나. 네 아버지가 보이 스카우트 단원이었을 때는 훨씬 뚱뚱했었지. 난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머리를 기를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 하지만 어쨌든 난 너의 지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귀를 덮은 머리, 엄지발톱에 든 멍, 무릎의 상처... 우린 그런 것들에 차츰 익숙해지게 되었지. 이제 넌 열 살이 되었고, 어느 새 너에 대한 많은 것들을 내가 모르고 지내게 되었다. 콜럼부스 데이(아메리카 대륙 발견 기념일)에 넌 아침 아홉시에 집을 나갔지. 그리고 점심시간에 42초 동안만 널 볼 수 있었으며, 넌 다섯시나 돼서야 저녁을 먹으로 나타났지. 난 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너에게도 나름대로의 심각한 사업이 있는 것이겠지. 거리에 있는 컴퓨터 게임만큼 심각한 사업이. 넌 당연히 성장해야만 하고, 그것은 할인 쿠폰을 모으고 주식 시세를 파악했다가 적절한 시기에 파는 일보다 훨씬 더 중효한 일이지. 넌 네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할 수 없는가를 배워야만 한다. 그리고 어떻게 그 일들을 해낼 것이지를 배워야 하지. 넌 또 사람들에 대해서도 배워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에 대해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도. 그들은 자전거를 걷어차거나 어린애들을 못 살게 굴지. 넌 또 남에게 욕설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짓는 법도 배워야 하겠지. 누가 욕을 하면 언제나 기분이 나쁘지. 하지만 넌 당당히 고개를 쳐들고 다녀야 한다. 안 그러면 다음 번엔 그들이 더 심한 욕을 퍼부을 테니까. 난 다만 네가 그때의 기분이 어땠는가를 기억하길 바란다. 너보다 나이가 어린애를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내가 널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였지? 난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난 할 일이 많으니까 말야. 하지만 난 내가 너한테 마지막으로 소릴 지른 게 언제였는가는 기억이 난다. 네가 꾸물거리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늦는다고 소릴 질렀었지. 닉슨 대통령이 말한 대로 난 네게 소릴 지르는 만큼 널 다정하게 격려해 주지 못했다. 네가 이 글을 읽을 경우를 대비해 여기에 확실히 밝혀 두지만, 난 진심으로 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난 너의 독립심을 좋아하고, 내 자신이 약간 겁이 날 때조차도 넌 너 자신을 잘 돌보고 있어. 넌 어떤 경우에도 심하게 떼를 쓰거나 징징거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겐 네가 최고의 아이이지. 왜 세상의 아버지들은 열 살짜리 아들도 네 살짜리 아들과 똑같이 많이 껴안아 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도 깨닫지 못하는 걸까. 나조차도 널 껴안고 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는 대신 걸핏하면 "무슨 소릴 하는거니?"하면서 널 쥐어박기 일쑤지. 애정을 감추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왜 열살짜리 아들은 서른여덟 살 먹은 아버지도 네 살짜리 아이처럼 똑같이 많이 껴안아 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 널 태워다 주는 학교까지의 거리가 너무 짧은 것이 아쉽구나. 난 어젯밤에 너와 함께 대화를 하고 싶었다. 네 동생이 먼저 잠든 다음에도 넌 자지 않고 나와 함께 뉴욕 양키스 팀의 야구 경기를 시청했지. 그런 시간들은 너무도 소중한 것이다. 그건 계획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지. 우리가 어떤 걸 함께 계획하려고 할 때마다 그것들은 맘먹은 만큼 따뜻하거나 보람 있기가 어렵지. 너무도 짧은 시간 만에 넌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듯했고, 우린 별말 없이 앉아서 텔레비젼을 보았다. "학교에선 잘 지내니?"하고도 난 묻지 않았어. 난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너의 수학 숙제를 점검해주었지. 계산기를 갖고서 말야. 넌 나보다 숫자에 밝아. 난 아무리 해도 그렇게 될 수가 없지. 그러다가 우린 경기에 대해 얘기했고, 넌 선수들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었어. 난 너한테서 많은 걸 배웠다. 양키스 팀이 승리했을 때 우린 둘 다 좋아서 환성을 질렀지. 저기 교통 안전 지도원이 보이는구나. 저분은 아마도 우리 보다 더 오래 살 거야. 네가 학교를 쉬는 날이라면 좋으련만.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구나. 넌 재빨리 내 차에서 내리지. 난 한순간이라도 더 너와 함께 있고 싶지만, 넌 이미 친구들에게로 달려가고 있다. 난 다만 너한테 말가고 싶었다. "넌 내 사랑하는 아들이지".
빅터 B.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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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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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계 교수의 철학 이야기 - 탈레스에서 라캉까지
제6부 현대 철학 이야기
사태 자체로 탐구의 눈을 돌린 후설
후설에게 있어서 의식의 본질과 구조는 바로 '사태 자체'이다. 그러므로 후설의 현상학은 사태 자체를 탐구함으로써 엄밀하고 보편적인 기초학으로서의 철학을 확립하고자 한다.
오늘날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이 방법론으로 널리 채택하고 있는 현상학의 창시자는 후설이다. 후설이 현상학을 창시하게 된 동기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후설은 철학을 세계관적 전제 또는 개인의 특별한 성향을 떠나서 엄밀학이나 보편학으로서의 철학을 구축하려고 한다. 다음으로 그는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 논리학 등 모든 철학 분과의 기초학으로서 선천적 학문을 정립하고자 한다. 세번째로 그는 이 선천적 학문을 직접 우리의 직관에 주어지는 본질에서 찾으려고 하고 칸트처럼 우리의 인식 형식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후설은 철학과 실질적 문화 내용의 거리를 극복하고 철학에 실질적인 것을 부여하려고 한다.
후설이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의식 현상이다. 후설은 종래의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극복하고자 하며 나아가서 경험론과 합리론의 대립도 극복하고자 한다. 후설의 현상은 칸트 식의 인식된 대상으로서의 현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헤겔 식의 절대정신의 전개로서의 현상도 아니다. 후설의 현상은 의식하는 의식과 의식된 것을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의식의 본질과 구조는 바로 '사태 자체'이다. 그러므로 후설의 현상학은 사태 자체를 탐구함으로써 엄밀하고 보편적인 기초학으로서의 철학을 확립하고자 한다.
후설은 의식의 본질과 구조를 밝히기 위해서 매우 정교하게 인식론적 논리적으로 의식 현상을 탐구하기 때문에, 그의 탐구의 전개는 중세의 스콜라 철학적인 번거로움에 빠져 있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의식의 본질과 구조를 밝히면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엄밀하고 보편적인 철학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 후설의 생각이다. 후설의 현상학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 것은 형상적 환원이고 두 번째 것은 선험적 환원이다. 후설은 이들 두 가지 환원을 합해서 현상학적 환원이라고 부른다.
후설의 '현상학적 환원' 우선 우리가 자연을 관찰하는 방법을 볼 것 같으면 그것은 소박한 사고방식을 동반하는 경험이다. 이 경험 안에는 시간적, 공간적인 사실들이 있지만 이것들은 편견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이 사실들을 괄호 안에 넣고 판단 중지(epoche)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형상적 환원에 의해서 종래의 형이상학적 세계와 경험적 객관 대상에 대해서 판단을 중지하고 의식과 의식 대상을 기술할 수 있다. 즉 형상적 환원은 특정한 개별자가 아니라 의식의 본질을 기술한다.
판단 중지에 의해서 우리는 종래의 형이상학이 자명한 것으로 주장하던 신, 자아, 논리 법칙 등의 존재에 대한 판단을 중지할 뿐 아니라 경험적인 객관 대상들에 대해서도 판단을 중지한다. 판단 중지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유사한 것 같지만 전적으로 서로 다르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들을 의심한 결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철학의 제1원리를 이끌어 내지만, 후설을 의심하지도 않고 증명하지도 않으면서 전통적 사고의 대상에 대한 판단을 중지한다. 우리는 흔히 신, 자아, 세계 등을 믿는데 후설은 판단 중지에 의해 그러한 존재에 대한 믿음을 중지하고 그러한 것들을 믿는 의식을 통찰할 것을 요구한다.
형상적 환원의 다음 단계는 선험적 환원이다. 선험적 환원에서는 내재적 세계로서의 순수 의식의 영역이 발견된다. 의식은 언제나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이기 때문에 의식의 본질은 지향성이다. 순수 의식의 지향성은 의식하는 의식과 의식되는 의식의 구조를 소유한다. 후설의 현상학은 종래의 인식론과 달리 의식 자체를 엄밀히 분석함으로써 의식의 본질과 구조를 탐구하는 후설의 고유한 연구 태도를 반영한다. 후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 데카르트의 합리론, 브렌타노의 기술심리학 등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고유한 현상학을 체계화한다. 물론 플라톤, 토마스 아퀴나스 및 칸트가 후설에게 미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후설 이후 현상학파에 속하는 많은 학자들은 현상학적 방법에 의해서 철학의 엄밀한 형식과 함께 풍부한 내용까지도 획득하고자 했다. 후설 이전까지는 신칸트학파의 철학자들에 의해서 학문의 인식 가능성 그리고 선험적 조건으로서의 인식 형식이 중요한 철학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말하자면 내용이 결여되어 있었다. 현상학자들은 학문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파악해 분석하고 기술하고자 했다. 셸러와 하이데거가 가장 대표적인 현상학자들이다.
셸러는 철학적 인간학의 입장을 대변하지만 삶의 철학의 영향을 받았고, 방법론적으로는 현상학적 직관주의의 태도를 취한다. 셸러는 <윤리학에 있어서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 윤리학>에서 칸트의 형식주의적 윤리학을 반대하고 직관적으로 파악되는 가치 질서의 객관성과 선천성을 논증함으로써 실질적인 가치 윤리학을 성립시키려고 한다. 또한 셸러는 모든 형태의 지식을 현상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지식의 사회적 조건을 논함으로써 지식 사회학을 정초하려고 한다. 특히 그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해명하고 인간과 인간 이외의 다른 존재와의 관계 및 인간의 지위 등을 탐구하는 철학적 인간학을 구축하고자 한다.
'하이데거의 기초 존재론'은 후설의 현상학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삶은 삶 자체로부터만 해석 가능하다는 딜타이의 해석학적 방법을 택한다. 그리고 하이데거의 기초 존재론은 나아가서 참다운 존재는 유한하고 개별적인 단독자일 뿐이라고 하는 실존주의를 기초 체험으로 택한다.
하이데거는 일상성 속에 타락해 자신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인간 현존재를 분석함으로써 결단에 의해서 자신의 본래성을 회복하고 현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데, 여기에서 그의 실존의 개념이 드러난다. 후설의 현상학은 셸러, 하이데거뿐만 아니라 메를로 퐁티, 하버마스 등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까지도 논리학, 윤리학, 미학, 사회학, 법학, 교육학 등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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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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織錦回文(직금회문) 織(짤 직) 錦(비단 금) 回(돌 회) 文(무늬 문)
진서(晋書) 열녀전(烈女傳)의 이야기다. 동진(東晋)시기, 전진(前秦)에 진주자사(秦州刺史)를 지내는 두도(竇滔)라는 사람이 있었다. 두도에게는 소혜(蘇蕙)라는 재주 많은 아내 말고도 조양대(趙陽臺)라는 총희(寵姬)가 또 있었는데, 이들의 사이가 좋지 않아 두도는 무척 고민스러웠다. 훗날 두도가 양양으로 부임하게 되자, 아내인 소혜는 남편이 총희와 함께 가려는 것을 보고 자신은 따라 가지 않기로 하였다. 양양으로 떠난 남편이 자신을 잊어버린 것으로 생각한 소혜는 몹시 상심하였다. 그녀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오색 비단에 글자를 짜넣어 회문시(回文詩)를 지어(織錦爲回文璇圖詩), 남편에게 보냈다. 이에 크게 감동한 두도는 곧 총희를 돌려 보내고 융숭한 예의를 갖춰 아내를 다시 맞아 들였다.
소혜가 지은 선기도(璇璣圖) 에는 모두 840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들을 종횡, 상하, 좌우 등등 어떻게 읽어도 모두 훌륭한 시가 되었다. 훗날 여러 사람들의 연구 결과 선기도 의 시는 7,958 수에 달하게 되었다. 織錦回文이란 구성이 절묘한 훌륭한 문학작품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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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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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자서전. 시민의 불복종 - 간디 / 함석헌 역
제1편
16. 변경
댄스니 뭐니 하는 것을 해보려 했다 해서 그것을 내 생애의 한 방종의 시기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독자는 내가 그때에도 빈틈없이 생활했던 것을 알것이다. 그 들떴던 동안에도 내편에서는 어느 정도의 자기 반성으로 구원되는 일이 없지 않았다. 나는 피천 한 푼 쓴 것도 꼭꼭 기록을 했고, 비용을 자세히 계산해 두었다. 버스값, 우표값, 신문값으로 쓴 한두 푼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작은 비용들도 빠짐 없이 적었으며, 밤마다 자기 전에 장부의 대차를 꼭 맞추었다. 그 습관은 그 후 늘 계속됐고 그 결과, 거액의 공금을 만져도 늘 틀림없는 지불을 할 수 있었고, 내가 이끄는 운동에 있어서는 언제나 큰 빚을 지는 일이 없이 늘 돈이 남아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 모두 이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젊은이들도 나를 모범으로 삼아 자기네 주머니에 들어오고 나가는 돈의 회계를 꼭꼭 맞추어 두면, 틀림없이 나처럼 마침내는 돈을 모으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내 살림살이를 엄격히 살펴가는 가운데 나는 절약의 필요를 깨달았다. 그래서 모든 비용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작정했다. 장부를 보니 차비로 나간 조목이 많았다. 또한 가정에 같이 살게 됨으로 매주 정기적으로 내는 지출이 있었다. 남의 가족과 같이 사니 대접삼아 경우에 따라 가족을 데리고 나가서 식사를 하는 때도 있고, 또는 그들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는 때도 있었다. 그런 때는 대단히 많은 차비가 들었고, 특히 친구가 여자일 경우 관습에 따라 모든 비용을 남자가 물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밖에서 식사를 할 때는 돈이 이중으로 든다. 안 먹은 밥값을 하숙비에서 뺄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가외돈을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됐다. 돈을 헤프게 쓰는 것은 인사를 차린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나오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는 남의 가족과 함께 살지말고, 나 혼자 쓸 방을 얻어 가지고 내가 해야 할 일거리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옮기기로 작정했다. 이렇게 하면 여러가지 경험도 동시에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일하는 장소에서 걸어서 반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방을 얻어서 차비를 절약했다. 이전에는 어디든지 갈 데만 있으면 차를 탔다. 그래서 산책 시간은 따로 내야 했다. 새로운 조처의 결과 차비를 들이지 않고 하루 8내지 10마일을 걸었다. 그래서 산보와 돈이 한꺼번에 절약되었다. 내가 영국에 있는 동안 병에 걸리지 않고 상당히 강한 몸을 가지게 된 것은 주로 이렇게 먼 길을 걷는 습관 때문이었다. 나는 방 둘을 빌렸다. 하나는 살림방으로, 또 하나는 침실로 썼다. 이것이 둘째 단계이고, 세째 단계는 이제 와야 한다. 이 변경으로 나는 비용을 반감했다. 그러나 시간을 어떻게 이용할까? 변호사 시험은 많은 공부가 필요치 않은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시간의 촉박을 느끼지 않았다. 내 영어 실력이 약한 것은 항상 문제였다. (후에 프레더릭 경이된) 렐리 씨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했다. 먼저 졸업부터 하고 그리고 내게로 오너라. 나는 변호사가 될 뿐만 아니라 무슨 학위를 따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대학과정을 알아보고 몇 친구에게 의논해 보았더니, 그것은 비용도 많이 들고 당초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영국에 머물러야 했다. 친구 하나가 이런 의견을 냈다. 내가 만일 어려운 시험에 한번 합격해 보려거든 런던 자격시험을 치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상당히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고, 이렇다 할 만큼 특별한 비용이 더 드는 것도 아니며, 겸해서 내 일반 지식을 만이 더해 줄 것이었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시험과목을 보고 놀랐다. 라틴어와 현대어가 필수과목이었다. 라틴어를 어떻게 하나? 그러나 친구는 그것을 강권했다. 라틴어는 변호사에게 매우 필요하다. 라틴어 지식은 법률 서적을 이해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되지. 그리고 로마법의 책 하나는 온전히 라틴어로 되어 있어. 그뿐 아니라 라틴어 지식이 있으면 영어에 훨씬 능통해 질 수 있고. 그 말이 뼈저리게 느껴져 나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라틴어를 하기로 작정했다. 프랑스어는 이미 시작한 것이니 그것으로 현대어를 삼으면 된다. 나는 사설 강습소의 대학시험 준비반에 들어갔다. 시험은 여섯 달마다 있는데, 그때 나는 다섯 달의 여유가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영국신사 지망자는 착실한 학생으로 개심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자세한 시간표를 짰다. 그러나 내 지능이나 기억력을 가지고는 제한된 시일내에 다른 과목을 하는 한편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해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나는 라틴어에 낙제를 하고 말았다. 섭섭했지만 낙심하지는 않았다. 나는 라틴어에 취미를 얻었고, 프랑스어는 다음 시험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과학 부분에서 새 과목을 선택하였다. 화학을 선택했는데, 그것은 깊은 흥미를 가지고 공부할 만한 과목이었는데도 실험을 하지 않았던 관계로 취미가 없었다. 그것은 인도에서는 필수과목의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런던 자격시험에서도 그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화학 대신 이번에는 열과 빛 과목을 선택했는데, 들리는 말에 쉽다 하더니 해보니 사실이었다. 나는 다음 시험 준비로 인해서 내 생활을 더욱 더 간소화하기로 힘썼다. 내 생활방식은 아직 빈약한 우리 가정 형편을 생각하면, 적당한 것이 못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매달 꼭꼭 돈을 청하는데 대해 의연히 보내주시는 형님이 수고하는 것을 생각할 때 나는 마음이 아팠다. 매달 8내지 15파운드를 쓰는 학생의 대다수가 장학금을 타고 있는 것을 나는 알았다. 더 간소한 살림들의 표본이 눈앞에 있었다. 나는 상당한 수의 학생들이 나보다 못한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중 한 사람은 빈민굴에서 매주일 2실링씩 내는 방에 살며, 끼니는 록하르트의 싸구려 코코아 집에 가서 2펜스짜리 코코아와 빵으로 한 끼니를 넘기고 있었다. 그를 따라가는 건 엄두도 못내지만 나는 적어도 방 둘 대신 하나만 쓰고, 내 손으로 더러 요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매달 4내지 5파운드가 절약된다. 나는 또 간소한 생활에 대한 책을 읽게 됐다. 방 둘 쓰기를 그만두고 하나만을 빌리고, 스토브 하나를 들여다 놓고, 아침식사를 내 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오트밀죽을 쑤고, 코코아를 위해 물을 끓이는 것 뿐이므로, 시간은 20분도 들지 않았다. 낮에는 밖에 나가 먹고 저녁은 집에서 빵과 코코아를 먹었다. 그렇게 해서 매일 1실링 3펜스로 살아가기로 했다. 그때는 또 열심히 공부를 하던 때였다. 간소한 살림으로 인해 시간절약 또한 많이 되었다. 나는 시험에 합격이 됐다. 독자는 이것으로 내 생활이 비참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그런 변경 때문에 나의 내적 생활과 외적 생활이 잘 조화되었다. 또 그것은 우리집 형편에 맞추어 가는 것도 됐다. 내 생활은 확실히 보다 진실했고, 내 혼은 무한히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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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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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5장 포르큐스-괴물의 출생
2. 세이렌
세이렌(Sirens)은 미녀의 얼굴과 새의 몸체를 가진 괴물 요정이다. 호메로스 이후 여러 작가가 기술한 세이렌은 뮤즈 멜포메네와 강의 신 아켈루스, 혹은 아켈루스와 스테로페(플레이아데스의 한 명) 사이에서 낳은 딸들이라 한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아켈루스와 뮤즈 테르프시코레, 혹은 포르큐스와 케토가 낳았다고도 한다. 리바니우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에게 부상을 당한 아켈루스의 핏방울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호메로스의 '오듀세이아'에는 두 세이렌이 처음 등장하나, 그 후 전승에서는 3자매 세이렌(리게이아.레우코시아.파르테노페 혹은 아글라오페메.몰페. 텔크시에페이아)이나 4자매 세이렌이 등장하였다. 신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그들은 뛰어난 음악가로서 삼중주 또는 사중주를 연주하였다. 아폴로도로스에 의하면 한 명은 수금, 한 명은 노래, 또 한 명은 플루트를 불었다. 옛적 전승에는 세이렌은 지중해의 한 섬에 살았는데, 아름다운 노래로 근처를 지나는 배의 선원들의 혼을 빼앗아 조난시킨 후 물에 빠져 정신이 나간 선원들을 먹어치웠다고 한다. 아르고 호 선원들이 이 세이렌의 유혹을 물리치고 무사히 항해할 수 있었던 것은 오르페우스의 노래가 월등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오듀세우스의 경우는 키르케의 말을 받아들여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아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하고 자신은 돛대에 묶어 놓도록 한 후 혼자서만 세이렌의 노래를 들었다. 참으로 효과적인 예방책이 아닐 수 없었다. 오듀세우스가 그 감미로운 노래에 참을 수 없어 선원들에게 배를 정지시킬 것을 명령하였으나 아무도 듣지 못하므로 응하지 않아 무사히 죽음의 해안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오듀세우스의 책략에 세이렌은 극도로 낙담한 나머지 몸을 바다에 던져 자멸하고 말았다 한다. 시칠리아에는 세이렌이 투신했다고 하는 시레니스 해안이 있다. 베르길리우스는 카프레아이 섬 근처의 시레눔 스코풀리가 그 곳이라고 주장하였다. 어떤 사람은 세이렌은 시칠리아의 음탕한 여인들인데 매음을 일삼고 외래인들을 주색에 빠뜨린 한 무리의 여자들의 이야기라고도 보았다. 현재 경보를 울리는 호적을 사이렌(siren)이라 한다.
하르피아이 약탈.납치라는 뜻을 가진 하르피아이(Harpyiae)는 신화상 날개 달린 낭자로 하반신은 독수리 모습이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타우마스(폰토스의 아들)와 엘렉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이며 아엘로(폭풍, 질풍), 오큐페테(날랜 비상), 포두르게(발 빠름) 및 켈라이노(암흑)가 그 자매들이다. 하르피아이는 여자 얼굴을 하고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새로 표현되는데, 이리스도 그들의 자매라고 하며 항상 헤라 여신 뒤에 대령하고 폭풍우가 지나갔음을 알리기 위해 아름다운 무지개로 표출되기도 한다. 아르고 호 선원이 스트로파데스에서 만남 노인 피네우스의 이야기 속에서 하르피아이는 매번 음식을 약탈하며 행패를 부리는 맹금으로 묘사되고 있다.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는 일행이 스트로파데스 섬에 정착하려다 괴물여인 하르피아이와 맞닥뜨리자 정착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호메로스의 '오듀세이아'에도 하르피아이는 폭풍을 일으키는 괴물로 등장한다. 이 괴물은 크레타에서 제우스의 개를 훔친 죄로 아내와 함께 죽임을 당한 판다레오스의 두 딸 클레오테라와 메로페를 납치하여 복수의 여신인 에리뉴에스의 하녀로 삼게 하였다고 한다. 당시 고아가 되었던 두 딸은 헤라와 아테나, 아르테미스 및 아프로디테 등이 잘 돌봐주고 있었는데 아프로디테가 두 아이의 결혼문제로 제우스를 찾아간 사이 납치 당한 것이다. 하르피아이의 원천은 바람에서 연유한 것 같고 유령의 성격을 지니는데 바람과 망령은 어원적으로 같거나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판다레오스 전승에서는 서풍신 제퓨로스와 하르피아이가 교합하여 질풍처럼 달리는 아킬레스의 신마 크산토스와 발리오스를 생산하고, 디오스쿠리의 말 플로게오스와 하르파고스도 낳았다고 한다.
고르곤 고르곤(Gorgons)은 포르큐스와 케토 사이에서 태어난 소문난 3자매로, 각각 스테노, 에우류알레, 메두사라 하는데 메두사만 빼고 모두 불사신이다. 자매들은 뱀이 엉킨 머리, 청동으로 된 손, 황금색의 날개, 튀어나온 혀를 지니고 몸을 뚫리지 않는 용의 비늘로 덮여 있었으며 이빨은 멧돼지 어금니 같고, 눈빛이 닿은 동물이나 인간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비디우스(기원전 43~ 서기 17)에 의하면 메두사만이 괴력을 발휘하는 안광과 뱀으로 엉킨 머리를 가졌는데 머리칼은 아테나 여신의 분개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 한다. 즉 메두사를 사랑하게 된 포세이돈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테나 신전에서 정사를 하는 모독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원래 메두사는 미모가 출중하였고 특히 그녀의 빛나는 타래머리에 포세이돈이 반하였으므로 여신은 그녀의 머리칼을 뱀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물론 불사신인 신들까지도, 포세이돈만 제외하고 모두 메두사를 두려워하였다. 단수형으로 고르곤을 말할 때는 메두사만을 지칭한다. 그리스의 극작가 아이스큘로스에 의하면, 두 자매는 단 하나의 치아와 한 개의 눈을 서로 돌려가며 이용하였기 때문에 페르세우스는 메두사가 다른 자매에 눈을 돌려주고 있을 때 메두사의 목을 잘랐다고 한다. 또 다른 작가는 페르세우스가 고르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헤르메스가 제공한 작은 낫을 들고 아테나가 빌려준 거울로 메두사의 안광을 피하며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또한 페르세우스는 날개 달린 샌들과 상대방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하데스의 마술모자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메두사로부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페르세우스는 힘든 탐험 끝에 메두사의 머리를 아테나 여신에게 상납하였고 여신은 그 메두사의 안광을 자신의 방패 아이기스에 고정시켜 무기로 사용하였다. 아폴로도로스에 의하면 메두사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 중 좌측 정맥에서 받은 것은 맹독성으로 생명을 잃게 하는데 이것을 아테나가 갖고, 우측 정맥에서 받은 피는 생명을 소생케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의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사용하였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로는 페르세우스가 고르곤을 정복한 다음 에티오피아로 날아 가는데 메두사의 머리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뱀으로 화신하여 그 후에는 리비아 사막에도 뱀이 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메두사는 최후를 맞을 당시 이미 포세이돈의 아이를 회임하고 있었는데, 상처의 피에서 날개 달린 천마 페가소스가 태어났고, 황금검을 든 크류사오르가 나타나 이 페가소스를 타고 천상을 달렸다 한다. 페르세우스의 메두사 정벌에 수식하여 고르곤 자매와는 별도로 그라이아이(회색 노파) 3자매가 등장하는 이야기도 있다 여기서는 페르세우스가 처음으로 만난 것은 그라이아이 3자매로 에뉴오, 페프레도 및 디노라고 하였다. 이 세 자매는 눈 하나와 이빨 한 개를 서로 돌려가며 이용하였는데 한 명이 이것들을 사용하고 있을 때는 나머지 두명은 잠을 잤다. 이들 그라이아이는 고르곤을 지키고 있있기 때문에 고르곤을 만나려면 먼저 그라이아이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이에 페르세우스는 그라이아이의 눈을 빼앗아 고르곤의 거처를 알아내고 마침내 고르곤을 처치하였다. 다른 설에는 고르곤을 처치하기 위해서는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샌들과 하데스의 모자 및 그 외 장비들이 든 자루가 필요하였는데, 그라이아이의 눈을 빼앗은 후 이 자루를 보관하고 있는 요정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알아냈다고 한다. 헤시오도스는 고르곤이 사는 고장을 바다 너머 서쪽이라 하였으며 아이스큘로스는 스키타이의 동쪽편 산악지대라 하였다. 가장 인정을 받는 의견은 오비디우스의 설인데, 이에 의하면 리비아 대륙의 트리톤 호수 근처, 혹은 헤스페리데스 낙원 근처에 있는 산이라고 한다. 디오도로스와 또 다른 사람들은 고르곤을 아마존족 나라 근처에 사는 호전적인 여인족이라고 보고, 페르세우스는 많은 병사들의 지원을 받아 이 여인족을 전멸시켰다고 추측하였다.
라미아 라미아(Lamia)는 아프리카 리비아의 여성괴물로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뱀이며 낮선 사람을 꾀어서 먹어치우는 공포의 대상이다 언변 능력은 없었으나 목청에서 내는 '쉿' 소리는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해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마녀 또는 악령이라 하였고, 미녀로 둔갑하여 어린이를 꾀어서 잡아먹는 괴물이라고도 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엄마와 유모들은 말 안 듣는 어린이를 겁주는 데 이용하였다. 다른 전설에서는 그녀는 벨로스와 리비아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되어 있다. 벨로스는 바빌로니아의 가장 오래 된 이름난 옛 왕으로 사후에 신으로 존숭되었고, 리비아는 이오의 아들 에파포스와 나일 강신의 딸 멤피스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로 아프로카 북부해안 일대의 리비아라는 지역 이름은 그녀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아름다운 미모를 타고난 라미아는 곧 제우스의 사랑을 받게 되고 이를 질투한 헤라는 그녀의 하반신을 뱀꼬리로 변형시켜 버렸다. 이로 인해 자포자기한 그녀는 실성하여 자신의 아이를 죽이고 또한 길에 있는 어린아이를 모두 잡아먹었다 한다. 어린이 피를 빨아먹는 요괴 뱀파이어도 라미아이라고 한다. 겔로도 유사한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레스보스 섬에서 학대를 받고 죽은 묘령의 여성 귀신 오그레스로 지상에 나와 어린아이들을 훔쳐 간다고 전해진다.
레무리아 옛날 사람들은 죽은 남성 혼령이 지상에 나타나 헤매고 다니면서 주민의 평화를 어지럽힌다고 믿었다. 이들을 도깨비, 귀신 혹은 유령이라고 하였는데 호의적인 도깨비는 라레스 파밀리아레스라 하였다. 반면 불길한 도깨비는 라르바이 혹은 레무레스라 하였는데 선민들에게 겁을 주고 빈번하게 출몰하여 사악하고 짓궂게 굴었다. 로마 사람들은 이 귀신들을 달래기 위해 매년 영예의 제를 지냈는데 바로 5월 홀수날인 9, 11 및 13일에 지내는 레무리아(Lemuria) 혹은 레무랄리아제가 그것이다. 오비디우스에 의하면 레무리아제의 시초는 로마의 태조인 로물루스가 형제 레무스의 혼을 달래기 위해 베푼 살풀이 제전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 레무리아제를 지내며 죽음의 유령을 쫓아버렸는데, 3일 밤은 엄숙히 지내며 이 기간에는 모든 신전을 닫고 결혼도 금하였다. 일반 시민들도 가부장이 밤에 맨발로 집을 나와 샘터에서 손을 씻고 조상의 묘에 가서 큰 팥콩을 던지거나 태워 공양하였다. 이 때 가부장은 무덤을 향해 머리를 돌려 "이 팥콩을 보상으로 바치고 이제 본인이 내 자신과 나의 가족을 되찾아 구제하나이다"라고 말하고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같은 말을 아홉 번 더 외쳤다. 그리고는 주전자와 들통을 두들겨 죽음의 유령을 쫓아내는데 "조상의 혼령이여, 떠나소서!"라고 선언하여 다시는 귀신이 나타나 지상의 가족들을 겁주지 못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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