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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39호
단기 4343. 4. 25 (음력 3. 12)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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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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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영산강.섬진강 사랑 환경문예작품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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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강원문학 신인상 작품 공모
개성 있고 야심찬 신인발굴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신인상 작품을 공모합니다.
◀ 다 음 ▶
○ 응모마감 : 2010년 7월 20일까지 도착분에 한함 ○ 접수 : 우편 또는 직접 제출 ○ 대상(자격) : 대한민국 대학생 및 일반인(단, 등단작가는 제외함) ○ 장르 : 시, 시조, 단편소설, 수필, 아동문학(동시, 동화) ○ 작품주제 : 자유롭게 선택 ○ 길이 및 편수 : 운문은 5편 이상(편당분량 A4 1매)
산문은 1편 이상(편당분량 A4 20매 이내) ○ 보낼 곳 : 200-721 강원도 춘천시 석사동 퇴계주공5차 513-901호
강원문인협회 사무국장 김양수 ○ 문의 : unsan53@paran.com, 010-8797-7802 사무국장 김양수 ○ 시상내용 - 인원 : 각 장르별로 1명(시, 시조, 수필, 소설, 아동문학) 상금 각 70만원 ○ 당선작 발표 및 시상 : 8월중 강원일보와 강원도민일보, 강원문인협회 카페(http://cafe.daum.net/kwmunin) 및 개인별 유선으로 통보함 당선작에 대한 작품저작권은 본 회가 가진다. ○ 주의사항 - 원고표지에는 성명, 작품명, 장르, 핸드폰 번호, 이메일, 현 주소를 표기할 것 (대학생일 경우 학교명을 표기) - A4 용지에 한글(hwp) 워드로 작성하여 보낼 것. - 봉투 및 작품표지에 ‘강원문학 신인상 응모작품’이라고 명기할 것 - 표절되었거나 타 기관에 2중으로 작품을 응모하였거나 이미 다른 단체에서 수상한 적이 있는 작품일 경우 당선이후라도 상을 취소함.
한국문인협회 강원도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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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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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교육을 통하지 않고는 인간이 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이다.(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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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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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능, 효과
올해 설날을 전후해 국내 유명 제약회사의 약품 광고가 여러 신문의 1면에 크게 실렸다. 광고에는 해당 약품의 ‘효능·효과’로 다음의 네 가지를 들었다. “괴혈병의 예방과 치료”, “임신·수유기 및 병중 병후의 체력저하”, “육체피로, 잇몸출혈, 비출혈, 혈뇨 등의 모세혈관 출혈”, “햇빛·피부병 등에 의한 색소침착(기미·주근깨)”
약품의 ‘효능·효과’ 가운데 첫째로 든 “괴혈병의 예방과 치료”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나머지는 이상하다. 거꾸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수유기 및 병중 병후의 체력저하”가 약의 효능 또한 효과라니 말이 안 된다. 보는 사람이 알아서 이해하기는 하겠지만, 표현 그대로 해석하면 “이 약을 먹으면 임신·수유기나 병중 병후의 사람의 체력이 저하된다”는 뜻이 된다. 나머지도 마찬가지로 “모세혈관의 출혈이 일어난다”, “색소가 침착된다”로 해석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효능·효과’라고 해놓고 ‘적응증’을 나열해 놓았기 때문이다. ‘효능’은 효험을 내는 성능을, ‘효과’는 보람 있는 결과를 말한다. 약을 먹고 얻을 수 있는 효험 또는 좋은 결과가 ‘효능·효과’인데, 이 약이 적용되는 질환이나 증세, 즉 적응증을 들고 있기 때문에 거꾸로 되었다. 세 가지 ‘효능·효과’ 뒤에는 ‘예방과 치료’를 붙여야 한다. 아니면 ‘효능·효과’를 ‘적응증’으로 바꾸고 첫째로 든 “괴혈병의 예방과 치료”에서 ‘예방과 치료’를 빼고 ‘괴혈병’으로만 하면 반듯하다.
우재욱/시인
디기 해깝지라!
‘디기 해깝지라’는 ‘굉장히 가볍지요’라는 뜻인데, 여기에서 ‘해깝다’는 ‘하깝다/허껍다’와 함께 표준어 ‘가볍다’에 대응하는 고장말이다. ‘해깝다’는 ‘경기, 충청, 제주’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과 중국 동포 사회에서, ‘하깝다/허껍다’는 경상과 함경 지역에서 쓰인다. ‘해깝다’는 북녘의 대부분 지역에서 쓰이기 때문에 <조선말대사전>에는 ‘(사람의 행실이나 언행이) 아주 가볍다’는 뜻으로 풀이되어 실려 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 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들돌이 해깝게 땅에서 뿌리가 떨어졌다.”(<녹두장군> 송기숙) ‘해깝다’의 말뿌리는 분명치 않다. ‘속이 비어 있음’을 의미하는 ‘허’와 형용사를 만드는 접사 ‘-갑다’가 결합한 ‘헛갑다’에서 그 말뿌리를 찾아볼 수도 있고, ‘가깝다>하깝다’와 같은 단순한 소리의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ㄱ’과 ‘ㅎ’의 교체는 고장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리의 변화이다.(고숩다>호숩다(고소하다))
‘해깝다’의 또다른 형태로 ‘해깝하다/해깝허다’와 ‘사깝다’를 들 수 있다. 앞엣것은 경상과 전라, 뒤엣것은 제주 고장말인데, ‘사깝다’는 ‘하깝다>사깝다’와 같은 소리의 변화를 겪은 것이다. “소금짐 우에다 질삼 필이고 머고 얹어 나아도 원청 돈을 잘 벌어노이 해깝해.”(<한국구비문학대계> 경북편)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허발
몹시 굶주려 있거나 궁하여 체면 없이 함부로 먹거나 덤빈다는 뜻이다.‘허발하다’,‘허발나다’ 형태로 쓰인다.“황도 누구 못잖게 술이며 참외를 허발하고 걸터듬었다.”(이문구 ‘으악새 우는 사연’) ‘허발나다’는 주로 ‘허발나게’의 꼴로 ‘먹다’와 함께 쓰인다. 체면 차리지 않고 먹는 것이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주로 ‘허벌나게’로 사용한다.
어미 ‘ㄹ걸’
‘좋은 걸 어떡해’에서 ‘걸’은 ‘것을’의 준말이다.‘일찍 집에 갈걸.’‘차에서 미리 잘걸.’의 ‘ㄹ걸’과 다르다.‘ㄹ걸’은 지나간 일을 후회하는 뜻으로 혼자 말할 때 쓰이는 종결 어미다.‘ㄹ걸’은 말하는 이의 추측이 상대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나 기대와 다른 것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가벼운 반박 등의 뜻이 있다.‘네가 더 예쁠걸.’
조사됐다
"여론조사 결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11곳에서 강세이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각각 2곳에서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 신입생들의 최대 고민은 역시 취업 및 진로인 것으로 조사됐다" 등과 같이 언론에서 '조사됐다'는 표현을 쓰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조사 결과를 나타낼 때 '조사됐다'는 표현은 성립하지 않는다. 조사받는 것, 즉 조사되는 것은 사람이지 '조사 결과'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사 결과 ~로 조사됐다"는 식의 표현은 성립하지 않는다.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로 연구됐다'고 표현하면 몹시 어색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사됐다'는 표현은 '신중한 선택이 요구된다(→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물의가 빚어졌다(→물의를 빚었다)','기틀이 마련돼야 한다(→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등처럼 불필요하게 영어식 피동을 남용하는 현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로 조사됐다'는 상황에 따라 '~로 나타났다' 또는 '~로 밝혀졌다' 등으로 하면 된다. '2곳에서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2곳에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진로 및 취업인 것으로 조사됐다'는 '진로 및 취업인 것으로 나타났다(밝혀졌다)'고 하면 된다.
재다, 메우다, 메기다
"오디세우스는 활을 잡고 가수가 하프의 새로운 줄을 맞추듯이 쉽게 줄을 걸었다. 그러고는 능숙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활시위는 충분히 팽팽한 듯 마치 달콤한 노랫소리처럼 그의 손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디세우스는 화살들을 탁자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러고 나서 청동 촉이 달린 화살을 하나 집어 들어 시위에 '메우고는' 가볍게 잡아당겨 처음 도끼머리의 구멍을 통과해 마지막 도끼구멍으로 나오도록 똑바로 화살을 날려 보냈다."
위 예문처럼 화살을 활시위(활의 몸체에 걸어서 켕기는 줄)에 물리는 것을 '화살을 메우다'라고 표현하는 걸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는 잘못 사용한 것이다. '메우다'는 '활에 시위를 얹다' 즉, 평소에 풀어놓았던 활의 줄을 활의 몸체(활대)에 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럼 활시위에 화살을 물리는 것은 어떻게 표현할까? 이때는 '메기다'를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하늘에는 기러기 떼가 대형을 지어 날고 있었다. 그는 각궁에 화살을 메겨 셋째 기러기를 겨냥했다"처럼 쓰면 된다. 한편 총이나 포에 탄환을 장전하는 것은 '재다'라는 단어를 써서 표현할 수 있다. "그는 바로 사격할 수 있도록 나머지 총에도 탄환을 재어놓았다"처럼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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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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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뜨거운 씨앗 - 정미정
내 말에 심지가 느껴지십니까 그럼 불을 붙이세요 백열등을 켠 당신의 눈동자에 활활 타오르는 나, 바짝바짝 혀부터 마르네요 언제 가슴 밑바닥을 헤집었나요 벼린 이빨 사이 야무지게 장전한 16연발탄 서로의 급소에 맞춤인 걸요 햇살이 머릴 박으며 뛰어드는 당신의 단도 잽싸게 내 머릿속을 갈가리 찢어놓자 꼬리에 불붙은 양 날뛰는 짐승 한 마리 벌겋게 달군 긴 혀로 당신의 목을 휘감아 절벽 아래로 내던졌어요 악착같은 당신도 질세라 날 선 혀 안에서 서슬 퍼런 기관총을 마구 쏘아 올렸죠 웃을까 말까 하던 당신과 나의 관계, 확실하게 찢어져 버린 거죠 악! 떨어진 살점들이 사이렌처럼 울고 꺾인 팔다리가 구급차를 부르네요 - 뻣뻣하게 굳은 혀를 절단해야 합니다 - 피가 엉긴 시간들도 잘라내야 합니다 날콩 같은 비린 물내가 두 볼을 타고 흘러요 낭자한 말의 탄피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당신 손바닥 위 미안해, 그 작고도 여린 씨앗 한 알 이제 떨어뜨릴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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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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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서 (3) - 이혜옥
간 밤에 울던 새가 도량을 휘 돌더니
노닐던 옥천(玉泉)에 산을 하나 옮겨 놓고
금강의 뜨락이라며 가부좌를 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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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평론 /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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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 최재봉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 양귀자의 '숨은 꽃'
박경리(70)씨의 대하소설 <토지>는 농민전쟁과 갑오개혁, 을미의병 등이 차례로 근대사의 연표를 채우고 지나간 1897년 한가위로부터 문을 연다. 이후 일제의 본격적인 식민지배와 민중의 검질긴 독립투쟁, 그리고 2차대전에 이은 해방까지의 긴박한 역사를 큰 호흡으로 훑어내려갈 소설의 첫 장면은 뜻밖에도 평화롭고 풍요롭다.
“귀신사는 우선 이름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영원을 돌아다니다 지친 신이 쉬러 돌아오는 자리. 이름에 비하면 너무 보잘것없는 절이지만 조용하고 아늑해서 친구는 아들을 데리고 종종 그 절을 찾는다고 했다.”(양귀자 `숨은 꽃')
소설가 양귀자(41)씨의 중단편 `숨은 꽃'은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의 귀신사를 무대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귀신사에 귀신사는 없다. 전주에서 모악산의 서북쪽 허리를 딛고 지나는 712번 지방도로를 30분 가량 타고 달리면 이르게 되는 청도원 마을 앞에는 국신사(國信寺) 입구임을 가리키는 팻말이 서 있다. 절 뒤편 팻말에 적힌 바에 따르면 절의 이름은 국신사 구신(狗信)사 구순(狗脣)사 귀신(歸信)사 등으로 다양했지만, 귀신(歸神)사로 불린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작가는 `돌아가 믿는다'는 뜻의 귀신(歸信)을 `신이 돌아온다'는 뜻의 귀신(歸神)으로 잘못 받아들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1992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숨은 꽃'은 작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은 일종의 소설가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뜻대로 글이 써지질 않자 머리를 식힐 겸 여행에 오른 길이었다. 작가가 여행길에 오른 것은 전교조 원년의 투쟁을 그린 단편 `슬픔도 힘이 된다' 이후 3년만에 쓰는 단편이 시작부터 미로에 봉착했기 때문이었다. 3년이라는 공백기간이 작가의 손을 굳게 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슬픔도 힘이 된다'는 진술이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는 세상의 변화에 있었다. 세상이 갑자기 텅 비어 버린 듯했다. 써야 할 것이 우글대던 머릿속도 세상을 따라 멍한 혼돈에 빠져 버렸다.(…)소련과 동구권의 대변혁이 몰고온 파장은 그나마 모색되어 오던 이 사회의 새로운 물결, 상식적인 삶의 예감까지 붕괴시키는 데 단단한 몫을 하려는 듯이 보여졌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합(소련)이 사망신고를 낸 것은 91년 말이었다. 옛 소련의 붕괴는 폴란드에서 시작해 루마니아에 와서 일단락된 동유럽 국가들의 탈사회주의 도미노(89년), 그리고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 통일(90년)이라는 국제정치적 변화의 완성과도 같았다. 이로써 1917년 레닌 주도의 볼셰비키 혁명으로 출범한 공산체제는 70여년간의 실험을 끝내고 일단 역사의 무대 뒤로 물러났다. 옛 소련과 동유럽의 정세가 한국의 소설가로 하여금 글쓰기의 미로에 빠지게 했다? 중국 베이징 하늘에서 펄럭이는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뉴욕 증시를 들썩이게 한다는 식인가? `숨은 꽃'에 작용하는 혼돈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80년대 한국의 사회 및 문학운동을 복류하던 마르크스주의적 함의 내지는 지향에 눈을 주어야 한다.
한국전쟁이 친미 반공 정권의 온존·강화로 귀결된 이후 휴전선 이남에서 마르크스와 공산주의 이념은 제일의 금기사항이었다. 반공이라는 부정적·소극적인 가치가 국시(國是)로 떠받들리는 형편에서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이 설 자리는 없었다. 조봉암의 진보당과 정체도 불분명한 인혁당 사건 등이 관련자의 사형으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은 이 땅의 이념적 경직성을 말해 주고도 남는 것이었다.그같은 불구적 현실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 것은 80년대에 들어와서의 일이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필두로 한 운동 진영은 자신들의 실천과 목표를 마르크스주의의 틀에 맞추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조직이 속출했고, 마르크스주의와 관련 서적에 치중하는 출판사와 서점이 성업을 이루었다. 급기야는 문학에도 마르크스주의 바람이 닥쳐왔다.마르크스주의의 직간접 영향권 아래 들어 있던 이들이 옛 소련·동유럽 공산주의의 몰락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들의 목표가 비록 현실 사회주의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그것의 존재가 중요한 참조사항이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90년대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의 운동권이 급속히 쇠락한 데에는 이같은 사정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 내 앞에 주어진 미로는 너무 교활하다. 지식과 열정을 지탱해 주던 하나의 대안이 무너지는 것을 신호로 나의 출구도 봉쇄되었다. 나는 길 찾기를 멈추었다. 길 찾기를 멈추었으므로, 나는 내 소설의 새로운 주인공을 찾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세계사적 변화에서 촉발된 글쓰기의 미로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여행길에서 작가는 김종구와 황녀라는 야성적인 인물들을 만난다. 세상의 어떤 제도나 권위에도 얽매이지 않고 생명의 본성에 충실한 김종구는 작가의 세계관을 근저에서부터 뒤흔든다. “사는 일이 가장 먼저란 말이오. 사는 일에 비하면 나머지는 다 하찮고 하찮은 것이라 이 말입니다”라거나 “
머릿속에 생각이 많으면 행동이 굼뜨고, 그러기 시작하면 인생은 망하는 겁니다”라는 김종구의 말에 작가는 크게 깨닫는다.
“나는 이제까지 나와 연루된 모든 것들, 한마디로 뭉뚱그려 높은 도덕과 긴 역사의 문화라고 하는 것들이 이들 앞에서 얼마나 하찮게 무너지는가를 절감했다. 내가 영향받고 그에 의해 단련되던 것들이 사실은 아주 작은 세계에 불과하다는 것, 나는 평생 이 작은 세계 밖으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은 절망이었다.”
문화니 이념이니에 앞서 구체적인 삶이 중요하다는 단순한 진실이야말로 작가를 글쓰기의 미로에서 건져내고 숨어 버린 꽃들의 꽃말을 찾게 하는 열쇠가 된다. `숨은 꽃' 이후 작가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과 <천년의 사랑>이라는 대중적 소설들로 방향을 튼 것과는 별도로, 그의 이런 깨달음은 이념 부재의 90년대를 감당해 나가야 할 작가들에게 핵심적인 준거가 되어 마땅하다.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귀신사는 대웅전 격인 대적광전과 명부전 두 채의 불당과 살림집뿐으로 단출했다. 이즈음 웬만한 절에는 구색 삼아 놓여 있는 커피 자판기와 공중전화기가 없는 데서 보듯, 찾는 이 드문 고적함이 절집다운 맛을 더해 주는 곳이다. 일주문에 해당할 절 입구의 첫번째 돌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양옆으로 두 기의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세월의 풍마우세에 기꺼이 몸을 맡긴 이 환경친화적 돌비석들은 더이상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모돼 천연의 돌덩이인 양 시치미를 떼고 있다. 그나마 왼쪽 것은 계단에 바싹 붙여 지은 민가의 벽돌담에 파묻혀 그 일부로 귀속돼 버렸다. 슬레이트 지붕의 그 집은 다시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로 변해 한쪽 벽은 무너지고, 굳게 닫힌 대문 앞에는 마른 잡초가 우거졌다. 무릇 사람이 지은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뜻일까.
작가와 함께 귀신사를 찾은 날은 마침 예순을 갓 넘기고 돌아간 어느 필부(匹婦)의 사십구재가 올려지고 있었다. 대적광전에서는 요령을 흔들고 경을 읊으며 망자를 천도하는 스님의 독송이 흘러 나오고, 그 자신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중늙은이는 빗살무늬 창호 사이로 그 소리를 가만히 엿듣고 섰다. 법당에서 재를 마친 일행은 절 마당으로 걸어 나와 망자를 향해 마지막 예를 갖춘 뒤 흰 종이와 천 등속을 태우며 그 재를 날린다. 망자는 드디어 명부에 이르렀다.
망자의 가족들도 떠나간 뒤 절은 다시 적막으로 돌아간다. 마당의 연화 대석에서 떨어지는 감로수, 이따금씩 들리는 까치 울음과 동네 개 짖는 소리, 멀고 가까운 길을 내닫는 차량의 질주음이야 그 적막을 부추기는 추임새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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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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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창녀와 성인
한 성인과 창녀가 집을 마주하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 둘은 같은 날죽었다. 창녀의 영혼은 천국으로 인도되었고, 성인의 영혼은 어찌된 일인지 지옥으로 끌려갔다. 두 사람을 데리러 온 사자들은 몹시 당황했다.
<어찌된 일이지? 무슨 착오가 아닐까? 왜 성인을 지옥으로 데려가야 하지? 그는 성스러운 사람이었지 않은가?>
그 중에서 가장 현명한 사자가 말했다.
<확실히 그는 성스러운 사람이었지. 그러나 그는 창녀를 부러워 하고 있었어. 매일 밤 창녀의 집에서 벌어지는 파티나 환락에 관해서 항상 깊이 생각에 빠져 있었어. 창녀의 집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음과 창녀가 발목에 달고 있는 방울 소리까지 그의 마음을 동요시켜 놓았던 거야. 그 창녀 앞에 앉아서 칭찬하고 있는 어떤 손님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는 성인만큼 마음이 동요되고 있지는 않았을 거야. 그의 모든 의식은 항상 창녀한테로 향해 있었어.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조차도 귀는 창녀의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향해져 있었단 밀일세. 그런데 창녀는 어떠했었느냐? 비참한 생활 속에서 헐떡거리면서도, 성자는 자기와는 전혀 다른 어떤 행복 속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성인이 아침 예배를 위해 꽃을 들고 가는 것을 볼 때마다 창녀는 생각했지. 나도 언젠가는 절에 기도의 꽃을 바치러 가기에 어울리는 인간이 될 수 있을는지? 나는 이렇게 더럽혀졌고, 그래서 절에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아. 성인은 결코 이 창녀만큼 향연 속에, 램프의 불빛 속에, 예배 목소리 속에 융합되어 있지는 못했어. 창녀는 항상 성인의 생활을 동경하고, 성인은 항상 창녀의 쾌락에 굶주려 있었단 말일세>
그 서로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이질적인 두 사람은 그 관심과 행동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이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러한 일의 이면에는, 일정한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그 법칙이란 다름아닌 입장을 바꿔 놓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머니를 바꿔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내 마음에는 당신의 것을, 내 마음 속의 것을 차고 담으려 한다는 말이다. 이는 이율배반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법칙이다. 그러니까 그 성인의 에고가, 그리고 그 창녀의 에고가 결국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놓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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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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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제1장 문학 안팎의 내 삶
오디오 스파게티
간혹 신문이나 잡지를 읽다 보면 이런 저런 것이 발견되거나 발명됐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개중에는 '와아' 하고 감탄하게 되는 것도 있고, 대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도쿄 대학 이 학부의 XX 박사는 일본 원숭이의 뇌하수체를 전기적 처리에 의해 계층화하는 데 성공했다"라는 소리를 들어도-이것은 물론 엉터리로 지어 낸 얘기지만-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설령 '와아' 하고 감탄하게 되는 유의 일이라도 그게 어떤 원리에 입각하여 어떠한 단계를 거쳐 성립되었는가에 이르면, 나로선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옛날부터 화학이나 물리에는 굉장히 약했던 것이다. 이런 발명 및 발견은,
(1) 어떠한 필요에 의해서 (2)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필연적인 이론적 고찰 및 시행 착오가 있은 후에 (3) 발명 및 발견에 이른다.
라는 과정을 거치지만, (1)과 (3)은 대충 이해할 수 있어도 (2)의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어려워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1)이러저러한 필요가 있어서 (2)얼렁뚱땅 (3) 이러한 것이 생겨났다. 라는 정도의 인식으로 모든 게 끝나 버린다. 요컨대 비디오를 예로 들면, (1) 영상을 테이프에 간단히 녹화할 수 있으면 편리하다
(2) 얼렁뚱땅 (3) 비디오가 생겨났다.
라는 식이다. 비디오가 어떤 원리로 성립되어 있는지 나로선 전혀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나는 비디오를 별다른 지장 없이 사용하고 있고, 제법 귀중하게 여기고 있다. 와트의 증기 기관이나 마르코니의 전신 장치라든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정도라면 나도 어떻게든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데, 얘기가 그 이후의 테크놀러지에 이르면 내게 있어서는 거의가 어둠 속 저편에 묻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 놓여 있는 건-결코 안이하게 동료 의식을 구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나 한사람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가령 모두들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2,000~3,000엔만 내면 손쉽게 살 수 있는 포켓형 계산기만 해도, 어떻게 그렇게 작은 물건이 루트13 곱하기 루트272를 계산할 수 있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분명히 나처럼 "이건 원래 이런 거니까" 하고, 계산기를 사용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테크놀러지에 관한 한 이른바 절대 군주제 같은 체제하에 놓여져 있는 셈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칙명' 같은 새로운 발명 내지는 새로운 발견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모두들 "이게 무슨 일일까?"라든가 "잘 모르겠는데" 하며 와글와글 떠들다가, 그래도 어쨌거나 "임금님 어명이시니까 틀림없을 거야"라는 말에 길들여져 버리는 것이다. 적어도 기술에 관해서는 민주주의라는 것도 완전히 무너지고 마는 것 같다. 나는 현재 집에 두 대의 레코드 플레이어와 세 대의 카세트 테이프 리코더, 한 대의 FM 튜너와 두 대의 VTR, 한 대의 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를 두고 사용하고 있는데, 마치 지옥과 같은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우선 세 대의 카세트 테이프 리코더를 테이프 셀렉터에 연결하고, VTR과 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를 비디오 셀렉터에 연결한다. 그리고 비디오 셀렉터에 FM 튜너의 출력 선을 꼽아 하이파이 녹음을 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을 오디오 테이프에 더빙할 수 있도록 비디오 셀렉터의 출력 선을 테이프 셀렉터에 꼽는다. 그러고 나서 FM 튜너의 전원을 오디오 타이머에 꼽아서... 하고 생각하다 보면 도중에 뭐가 뭔지 모르게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예를 들어 "레코드를 들으면서 FM 방송을 비디오 데크에 녹음하고, 그것을 동시에 카세트에 더빙하는 게 가능한가?" 따위의 질문을 받으면 잠시 생각하지 않고는 결론을 내릴 수 없을 뿐더러, 내려진 결론도 대개는 틀리기 일쑤다. 배선을 메모한 종이를 뚫어져라 들여다봤자 머리만 혼란스러워질 뿐이다. 집사람은 처음부터 그런 노력은 아예 포기한 터라 오디오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가장 곤란한 건 이사를 할 때다. 기계를 늘어놓고 배선을 다시 하는 데만 하루가 꼬박 걸린다. "어어, 그러니까 이 출력 선이 이쪽 입력 선으로 가고..."라며 낑낑거리다 보면, 점점 '어째서 내가 이런 짓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하는 절망적인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고교 시절에 처음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었을 무렵에는 세계가 훨씬 단순했다. 플레이어와 스피커를 통합 앰프(그런 게 있었다)에 연결하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나고, 그 다음은 느긋하게 음악을 듣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스파게티 5인분을 바닥에 퍼질러 놓은 것 같은 코드 더미에 쭈그리고 앉아 악전고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민주주의의 죽음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대체 뭐라 할 수 있단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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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다발의 시린 사랑얘기 2/2 : 이외수 수필집 '내잠속에 비내리는데' 중에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옷을 벗으라니, 옷을 벗으라니, 도대체 이여자의 정체가 무엇이냐. 순간적으로 나는 몇가지의 해괴한 생각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 무슨 부끄러운 추측이냐.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하셔야 해요. 이거 내 동생 옷인데 지금 즉시 갈아입으세요."
그녀는 뒤로 감추었던 남자 옷 한 뭉치를 내게 건넸다. 그리고 방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나는 도무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다가 아무래도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그녀에게 점수를 1점이라도 더 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옷을 갈아입기로 마음먹었다.
"다 갈아입으셨죠?" 잠시 후 다시 그녀가 방문을 열었다. "이리 나오세요. 그리고 여기 비누와 수건이 있어요. 저기 보이는 길로 곧장 나가면 강이 있어요. 시원하게 목욕하고 오세요."
그녀는 억지로 내 등을 떠다밀었다. 나는 죽어도 목욕하기가 싫었지만 이번에도 1점이나마 더 추가하려는 욕심에서 마지못해 어슬렁어슬렁 강을 향해 걸음을 옮겨 놓았다. 이상하게도 어떤 행복감이 강물 위를 지나가는 바람의 잘디잔 비늘처럼 내 가슴 밑바닥에 반짝이며 쓸려오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지만 나는 그때 꼭 3년만에 목욕이라는 걸 해보았었다. 나는 그 맑고 잔잔한 교외의 강물 속에 몸을 담그고 그 동안 개떡 같은 내 청춘의 때를 벗겼다. 벗어지는 때의 밑바닥에는 지금까지 내가 방치해 온 내 자학의 살과 뼈가 드러나고 있었다. 그것들은 비로소 신선하게 다시 눈뜨고 있었다. 그때 내 나이 서른 한 살. 열한 해를 객지에서 보낸 설움의 끝. 다시 살아나는 내 살과 뼈 속으로 강 건너 포플러 숲에서 들리는 매미 소리가 금빛으로 금빛으로 박혀오고 있었다. 아, 그리고 잠시 나는 비로소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눈시울을 적시는 탕자의 새로됨을 절감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해 보였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여. 사랑이라는 낱말이 아직도 국어사전에 남아 있음을 찬양하라. 아직도 미처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이여. 절망하지 말라. 사랑은 모르는 사이 느닷없는 목욕과 함께 오는 것이리니. 시방 나는 설레이는 한 다발의 음악이 되어 한 여자의 곁으로 가고 있다. 나는 단숨에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좋은 것일수록 더욱 아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태연히 한눈을 팔며 짐짓 더욱 느린 걸음으로 가고있었다. 맑은 햇빛, 그리고 조금의 바람. 하늘을 보면 희고 깨끗한 목화구름이 피어오르고, 여린 비행기의 엔진 소리도 들리고 있었다. 멀리 논바닥에서 모를 심는 사람들의 구성진 노래 소리도 들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결혼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인생에서 켤코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된다 할지라도, 가능하면 그 실수를 향해 차근차근 어떤 작전들을 짜보는 방향으로 나가 볼 결심도 세웠다. 만약 한 여자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나는 정말로 기똥찬 작품을 하나 쓸 수있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나는 문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 동정받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장의 비누와 한 장의 수건과 한 그릇의 밥이 단순히 그녀의 장난기 섞인 각본에 의한 것일는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 무슨 꼴 같지 않은 목욕인가. 그녀의 가슴 속에 그 어떤 자비로움이 있어 돈도 없고 빽도 없고 가문도 별볼일 없는, 그리고 인물도 만고강산인 나를 애인으로 삼을 것인가. 나는 문득 이대로 어디론가 도망쳐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몸에 맞지도 않는 이 헐렁한 옷을 입고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에라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이제는 바삐 걸음을 옮겨 놓았다. 내가 막 그녀의 집 대문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만 숨이 콱 막혀 드는 것 같은 감동에 사로잡히면서 다시 한 번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의식했다. 바로 내 눈 높이의 허공에 가로놓여있는 빨래 중에는 그토록 거지 발싸개같이 때묻고 남루하던 내 티셔츠며 바지들이 아주 깨끗하게 세탁되어져 햇빛 속에 눈부시게 널려 있었다. 만약 당신이라면 이러한 여자와 결혼하지 않고 도대체 어떤 여자와 결혼했을 것인가. 나는 그 순간 영원히 빨래가 되어 평생을 그 여자에게 세탁되어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지금 그녀는 내 곁에 있다. 아내에서 여편네로 전락했지만 우리도 꽃피는 시절은 있었다. 몇 년 동안 소설이 많은 돈과 맞바꾸어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항상 시큰둥한 얼굴이더니, 자기 이야기를 쓴다고 하니까 지금까지 내 곁에 붙어앉아 잘 좀 봐달라고 갖은 아부를 다 떨다가 두 꼬마와 함께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니까 문득 다시 한 번 강에 나가 목욕이나 하고 싶어지는 심정이다. 지금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글쓰는 이들의 아내들에게 나는 저 눈이 축복의 눈이 되어주기를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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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궁지에 물린 공자 - 도척
공자는 급히 나갔다가 자리를 피하고 도로 물러나 도척에게 두 번 절했다. 도척은 크게 화가 나 발을 양쪽으로 벌리고 앉아 칼을 어루만지고 눈을 부릅뜨며, 젖 먹이는 호랑이 같은 소리로 말했다.
"구는 앞으로 나와라. 네가 말하는 것이 내 뜻에 맞으면 살고, 내 마음에 거슬리면 죽을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저는 천하에는 세 가지 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장대하고 아름답기 짝이 없어 소장 귀천이 보고 다 기뻐하는 것이 상덕입니다. 지혜는 하늘과 땅을 이으며 능력은 만물을 분별하는 것이 중덕이고, 용감하고 과감하여 뭇 사람을 모아 군사를 거느리는 것이 하덕입니다. 이 중 하나라도 가진 사람이면 족히 남면 칭고*할 수 있습니다. 장군은 지금 이 셋을 겸하고 있습니다. 신장은 여덟 자 두 치에 얼굴과 눈에는 광택이 있고, 입술은 붉은 색을 칠한 듯합니다. 이는 조개를 가지런히 한 것 같고, 목소리는 황종*에 어울립니다. 그런데도 이름은 도척이라 불리니 저는 장군을 위하여 속으로 부끄러워하는 바입니다. 장군이 신의 말을 들으실 뜻이 있다면, 청컨대 남으로는 오와 월에, 북으로는 제와 노에, 동으로는 송과 위에, 그리고 서로는 진과 초에 심부름을 가겠습니다. 장군을 위하여 수백 리의 큰 성을 만들고 수십만 호의 고을을 세워, 장군을 높여 제후를 삼도록 하겠습니다. 천하와 더불어 다시 시작하여 군사를 파하고 병졸을 쉬게 하며, 형제를 거두어 기르고 함께 선조를 제사하는 것이 성인과 재사의 행실로서 천하가 바라는 바입니다."
도척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구는 앞으로 오너라. 무릇 이로써 달래고 말로써 간할 수 있는 것은 어리석은 백성일 뿐이다. 내가 장대 미호하여 사람들이 보고 기뻐하는 것은 우리 부모가 끼친 덕이니, 네가 비록 칭찬하지 않는다고 내 스스로 알지 못하겠느냐? 또 나는 면전에서 남을 칭찬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돌아서서 헐뜯기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지금 네가 내게 큰 성과 많은 백성을 들어 말한 것은 나를 달래려고 함이며,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한 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느냐? 성이 아무리 커도 천하보다 더 크지는 않다. 요순이 천하를 가졌으나 자손은 송곳을 세울 땅도 없었고, 탕무는 천자가 되었으나 후손이 끊겨 없어졌다. 이로움이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 남면 칭고 : 남면은 임금의 지위, 고는 왕후의 겸칭으로, '군주가 된다'는 뜻이다. * 황종 : 중국 12음률 중 기본이 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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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재빠른 걸음걸이로 도척 앞으로 나아갔다가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나 정중히 인사를 했다. 도척은 노여움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두 발을 힘차게 딛고, 칼자루에 손을 걸쳤다. 그리고 새끼를 감싸는 호랑이처럼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네가 공구냐? 앞으로 나서라. 말하는 바가 내 마음에 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목숨이 남아 있지 못하리라."
공자는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무릇 사람에게는 세 가지 덕이 있다고 합니다. 당당한 체구와 아름다운 얼굴을 지녀서 젊은이나 늙은이나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모두 보고 좋아하는 것이 상덕이고, 천지를 덮는 영지와 온갖 것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 중덕, 용맹 과감하여 많은 무리를 동원하고,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것이 하덕입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가진 사람은 임금이 될 자격이 있다. 했는데, 장군께서는 이 세 가지 덕을 모두 지니고 계십니다. 당당한 체구와 빛나는 얼굴, 붉은 칠을 한 듯한 입술에 조개를 세운 듯한 치아, 황종 가락에 맞는 목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이름은 도척으로 불리고 있으니, 이것은 장군을 위하여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장군께서 만일 제 의견에 따르시겠다면, 저는 남쪽으로는 오와 월, 북쪽으로는 제와 노, 동쪽으로는 송과 위, 서쪽으로는 진과 초에 사자로 가서 이들을 움직여, 장군을 위해 사반 수백 리에 이르는 성을 쌓고, 수십만 호에 이르는 나라를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장군은 제후로서 존경받게 될 것입니다. 이리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그치고 형제들과 함께 살면서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것이야말로 성인이 할 일이며, 또 만백성의 염원인 것입니다."
도척은 격노했다.
"에잇, 듣기 싫다! 어리석은 백성이라면 혹 모르지만 내가 이익에 동요되고 달콤한 소리에 넘어갈 것으로 생각하느냐? 내가 당당한 미장부로서 모든 사람의 흠모를 받는 것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으로, 네가 말하지 않더라도 벌써부터 알고 있다. 남이 보는 앞에서 아첨하는 자 치고 숨어서 험담하지 않는 자가 없다. 성을 주고 큰 나라를 주겠다는 소리는 더욱 귀에 거슬린다. 이익으로써 내 마음을 움직여보려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바로 나를 어리석은 백성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냐? 요순은 천하를 지배했지만 자손은 송곳 하나 세울 땅이 없었다. 탕왕과 무왕은 천자가 되었지만 그들은 자손이 끊겨 멸족하고 말았다. 큰 이익일수록 잃기 쉬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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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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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사랑
한 대의 리무진이 정신병원 앞에 멈춰서고 귀족풍의 한 신사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 신사는 수위에게 물었다.
"이곳이 정신 이상자들을 위한 요양소인가요?" "그렇습니다." "스스로 청해서 이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습니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마는 도대체 왜 그러시죠?" "음, 난 얼마 전 내가 쓴 연애 편지들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러자 나는 지금 내 자신이 미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대가 소위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광기, 열병, 일종의 화학적 노이로제일 뿐, 결코 사랑이 아니다. 그대는 다른 사람에게 집착하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조정하려 한다. 그것은 정치일 뿐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지배욕이지 사랑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연히 그대를 지옥으로 인도하고 그대를 더욱더 불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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