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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06호
단기 4343. 2. 28 (음력 1. 15)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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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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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차범석 희곡상 공모
조선일보사와 차범석연극재단(이사장 차혜영)이 '차범석희곡상'을 공모합니다. 올해 4회째인 차범석희곡상은 희곡 《산불》, TV 드라마 《전원일기》 등으로 유명한 극작가 차범석(1924~2006) 선생을 기리는 상입니다.
장막 희곡과 뮤지컬 극본 등 두 부문으로 진행되는 차범석희곡상은 부문별 당선작 1편에 국내 최고 상금인 3000만원을 각각 주고 공연까지 지원하는 '공모+공연' 패키지입니다.
응모작은 미발표 순수창작이어야 하며, 소재·주제에는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공모 부문: 장막 희곡, 뮤지컬 극본
▲참가자격: 신인·기성작가 제한 없음
▲분량: 두 부문 모두 200자 원고지 250장 안팎(뮤지컬 극본은 노랫말 포함). 작품 외에 작의(作意·A4 용지 1장)와 줄거리(A4 용지 2장) 첨부
▲마감: 2010년 8월 31일(마감일 소인 유효)
▲접수처: 100-756 서울시 중구 태평로1가 61번지 조선일보사 문화부 차범석희곡상 담당자 앞. (02)724-5373
▲발표: 2010년 11월 초 조선일보 지면
▲기타: 응모작 겉봉투와 원고에 응모 부문과 성명·주소·연락처를 명기해야 합니다. 접수된 원고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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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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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의 무식을 아는 것은 지식에로의 첫걸음이다.(바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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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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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
우리 외래어로서 ‘블루스’(blues)는 크게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하나는 서양 대중음악의 갈래 가운데 하나를 일컫고, 다른 하나는 역시 서양에서 들어온 춤 가운데 하나를 가리킨다.
대중음악 블루스는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재즈(jazz)의 기반이 된, 두 박자 또는 네 박자의 애조를 띤 악곡 형식을 말한다. 이는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 미국 남부에서 흑인들이 부르던 노동요나 필드홀러(field holler)라는 선창과 후창으로 구성된 합창요가 그 기원으로 여겨진다. 원래는 고단한 노예생활의 비참함을 달래려 슬픈 곡조만을 사용하였고, ‘우울하다’ 또는 ‘슬프다’는 뜻의 영어 형용사 ‘블루’를 토대로 그 이름이 만들어졌는데, 나중에 시대가 바뀌면서 밝은 느낌이 나는 곡조나 포크, 컨트리, 록 음악의 요소 등이 더해져서 지금은 아주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흑인의 블루스처럼 애절하게 들리는 트로트(trot)풍 대중가요 제목에 블루스라는 표현이 많이 쓰이는 탓에 트로트가 곧 블루스로 인식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이는 서로 다른 음악 형식이다.
일본말 ‘부루스’(ブル─ス)의 영향을 받은 듯 ‘브루스’나 ‘부루스’로 표기하기도 하면서 예전에는 양춤이라고도 했던, 남녀가 껴안고 천천히 추는 춤을 블루스라고 하지만, 이것은 원래 이런 춤을 일컫는 표현은 아니므로 일종의 ‘콩글리시’이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관
마음에서 마음으로(이심전심)
‘이심전심’은 본디 불교의 선가(참선하는 중들의 사회)에서 말하는 것이다. 송나라 중 도언이 쓴 <전등록>에 “부처가 법(물질과 정신의 온갖 것)을 가섭에게 주었다. 진리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옮는다”고 되어 있다. 깨달음이나 도의 오묘한 이치는 말로써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석가모니가 영산회(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제자들과 주로 법화경을 설하던 모임)에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고 나서, 연꽃을 비틀어 보였다. 아무도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다만 가섭 존자만이 혼자 빵끗 웃음으로써 알았다는 뜻을 비쳤다. 그래서 석가모니가 가섭에게 불교의 진리를 전수했다는 옛이야기가 <오등회원>이라는 책에 올라 있다. ‘염화시중’이라고도 하는 이 ‘꽃 비틀이 웃음’(염화미소)이 결국 스승에게서 제자에게 진리를 전하는 ‘마음에서 마음으로’(이심전심)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각하는 것이 말로써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옮는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해서, 뒷날 그런 깊은 뜻을 말로 안 해도 마음과 마음으로 알게 된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상식백과>)
우리 속담에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 것이 있다. 같은 말이라도 말하기 따라서는 달라진다는 것이니 새겨둘 만한 것이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호나우두(Ronaldo)와 호날두(Ronaldo)
이탈리아 프로축구팀 AC밀란의 호나우두(Ronaldo)는 브라질,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는 포르투갈 출신이다. 둘 다 포르투갈어 이름이다. 브라질도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브라질 포르투갈어가 조금 달라 자음 앞의 ‘l’을 한글로 옮길 때 ‘우’로 적는다. 그래서 브라질 사람은 호나우두다.
장수와 장사
‘장사가 잘 된다.’ ‘장사 밑천이다.’ 장사는 이익을 얻기 위해 물건을 파는 일이다. 직접 만들어 팔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사다 팔기도 한다. 장수는 장사하는 사람이다.‘김 장수, 호떡 장수, 채소 장수, 생선 장수.’ 장사한다고는 해도 장수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북녘에서는 장수를 장사라고 한다. 물감 장사는 물감을 파는 사람이 된다.
~데 반해 / ~데 비해
말은 글에 비해 표현이나 문법에서 훨씬 자유롭다. 다른 낱말을 쓰거나 어구의 자리를 어느 정도 바꾸어도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은 그래선 안 된다. 입에 익은 대로 글을 쓰면 틀리는 경우가 많다. '…에 반해'도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매출 규모 기준으로 ○○홈쇼핑이 1조6649억원을 기록한 데 반해 △△홈쇼핑은 1조3134억원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재정 규모는 작다. 스웨덴과 프랑스는 각각 59.2%, 45.3%, 미국과 일본은 각각 32.1%, 33%였던 데 반해 우리나라는 23.8%에 불과했다.'
예문은 두 가지 이상의 대상을 비교하는 것을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어 문제가 된다. '반(反)하다'는 주로 '반해'의 꼴로 쓰여 '반대가 되다'라는 뜻이고, '비(比)하다'는 '…에 비해(서)/…에 비하면'의 꼴로 쓰여 '비교'의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예문의 '…데 반해'는 '…데 비해'로 바로잡아야 한다.
'미국.일본 등에서는 뇌졸중 사망률이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인 데 반해 한국에서는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률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가 아주 냉정한 데 반해 그의 아내는 매우 정이 많다' 등은 바르게 쓰인 예다.
각각 / 씩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월드컵 본선에 나가기 위한 한국팀 공격수들의 득점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현재까지 공식 평가전에서 박주영.이천수.이동국 선수가 '각각 2골씩'을 기록했다. 일반인은 물론 이처럼 언론에서도 '각각'과 '씩'이라는 단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각각'과 '씩' 중 하나는 군더더기일 때가 대부분이다.
'각각'은 '사람이나 물건의 하나하나'를 나타내는 명사이고, '씩'은 숫자를 나타내는 단어 뒤에서 '그 수량이나 크기로 나뉘거나 되풀이됨'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둘은 문장에서 비슷한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각각 2골씩'은 '2골씩' 또는'각각 2골'로 써야 한다. '소주 각 1병씩'도 '소주 각 1병'이나 '소주 1병씩'으로 쓰면 된다.
물론 '각각'과 '씩'을 모두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김 선생과 박 선생이 각각 짬뽕과 자장면을 한 그릇씩 먹었다'와 '김 선생과 박 선생이 각각 짬뽕과 자장면 한 그릇을 먹었다'는 다른 뜻이다. 전자는 김 선생과 박 선생이 짬뽕과 자장면을 모두 한 그릇씩, 즉 두 그릇을 먹었다는 의미다. 후자는 김 선생이 짬뽕을, 박 선생이 자장면을 먹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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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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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눈을 뜨면 - 박목월
사는 것이 온통 어려움인데 세상에 괴로움이 좀 많으랴 사는 것이 온통 괴로움인데.
그럴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면 착한 일을 해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서로 서로가 돕고 산다면 보살피고 위로하고 의지하고 산다면 오늘 하루가 왜 괴로우랴
웃는 얼굴이 웃는 얼굴과 정다운 눈이 정다운 눈과 건너보고 마주보고 바로보고 산다면 아침마다 동트는 새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랴
아침마다 눈을 뜨면 환한 얼굴로 어려운 일 돕고 살자 마음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님은 날마다 금빛수실로 찬란한 새벽을 수 놓으시고 어둠에서 밝아오는 빛의 대문을 열어젖혀 우리의 하루를 마련해 주시는데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불쌍한 사람을 돕고 괴로운 이가 있으면 괴로움을 함께 나누고 앓는 이가 있으면 찾아가 간호해 주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밝은 하루를 하나님께 감사하고 착한 일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빛 같이 신선하고 빛과 같이 밝은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다정한, 누구에게나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고 내가 있으므로 주위가 좀 더 환해지는 살며시 친구 손을 꼭 쥐어주는 세상에 어려움이 한두가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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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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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 송지은
그 날 월출산엔 달도 뜨지 않았다.
별빛만 비수처럼 짓푸르게 들이 박혀
장편의 서사시 하나가 밤새 끙끙 앓는데.
핑계는 언제나 진실보다 화려했다
누구와 눈싸움 한 번 질펀히 할 줄 모르는 채
층층이 안개에 덮인 듯 뿌연 시야로 살아오면서.
잊혀짐은 단순히 건망증 탓이라고만 했다.
어둠은 어두울수록 더 환하게 드러나고
그 날 밤 현명한 월출산에 달이 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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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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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3
1. 사랑을 위하여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 버질)
친절의 행위
당신은 당신의 동료들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하라. 그것을 하는 특권 외에는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 뭔가를. - 알버트 슈바이처
미국 남북 전쟁이 한창일 때 에이브라함 링컨은 종종 부상당한 병사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방문했다. 한 번은 의사들이 심한 부상을 입고 거의 죽음 직전에 있는 한 젊은 병사들에게 링컨을 안내했다. 링컨은 병사의 침상 곁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내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겠소?"
병사는 링컨을 알아보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그는 간신히 이렇게 속삭였다.
"저의 어머니에게 편지 한 통만 써 주시겠어요?"
펜과 종이가 준비되었다. 대통령은 정성스럽게 젊은이가 말하는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보고 싶은 어머니, 저는 저의 의무를 다하던 중에 심한 부상을 당했습니다. 아무래도 회복되지 못할 것 같군요. 제가 먼저 떠나더라도 저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존과 메리에게도 저 대신 입 맞춰 주시구요. 신께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축복해 주시기를 빌겠어요."
병사는 기력이 없어서 더 이상 얘기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링컨은 젊은이 대신 편지 말미에 서명을 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의 아들을 위해 에이브라함 링컨이 이 편지를 대필했습니다."
젊은 병사는 그 편지를 자기에게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마침내 편지를 대신 써 준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고는 깜짝 놀랐다. 병사가 물었다.
"당신이 정말로 대통령이신가요?" 링컨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소. 내가 대통령이오."
그런 다음 링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는가를 그에게 물었다. 병사가 말했다.
"제 손을 잡아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편안히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용한 실내에서, 키가 크고 수척한 링컨 대통령은 청년의 손을 잡고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 그에게 따뜻한 용기의 말들을 나지막이 들려주었다. - <더 베스트 오브 비츠 앤 피이시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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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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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4장 지혜의 메아리
물건주기
내가 먹기에 아까울 만큼 좋은 음식이 아니면 주지 마라. 상하기 직전에 있는 음식이나 남아돌아서 처치 곤란한 음식을 주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고 만다. 타인에게 음식을 줄 때는 가장 좋은 것으로 주어야 한다. 나에게 꼭 필요하고 내가 먹기 아까울 만큼 맛있는 음식이 아니면 주지 말아야 한다. 잘못 주면 주고도 욕을 먹는 것이 음식이다. 더욱이 상하기 직전에 있는 음식이나 남아 돌아서 처치 곤란한 음식을 주게 되면 그것을 먹기는커녕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고 만다. 사용하던 물건이나 쓸모 없게 된 물건을 타인에게 함부로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 물건을 반기는 사람도 있지만 절대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먼저 달라고 사정하지 않는 한 절대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 물건을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떠맡기는 것은 처치 곤란한 쓰레기감을 안겨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불쾌한 일이 된다. 타인에게 물건이나 음식을 줄 때는 나에게 필요없고 남아돌기 때문에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앞서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니까 타인에게도 꼭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주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주어야 준 보람이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반갑게 받아들인다. 평소에는 인색하게 굴다가 쓸모 없는 물건이 생기거나 음식이 남아돌 때 주게 되면 속보이는 행동으로 오해받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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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사회 / 문화 / 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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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성과 권력 - 권택영
1. 에로스의 슬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프로이트는 그들의 심리 속에 억압된 상흔을 밝혀야만 했다. 최면보다 대화를 선호했던 그는 환자의 의식이 억압한 어떤 것을 밝혀내기 위해 꿈을 분석했다. 꿈이란 의식의 빗장이 느슨해진 순간에 억압된 소망이 에둘러서 충족되는 길이다. 그 소망은 물론 사회에서 금기된 것으로 빗장이 느슨해도 안심이 안 되어 위장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꿈의 내용을 짧게 압축하고 그 옆의 것과 자리를 바꾸고 몇몇 장면으로 나타난다. 분석자는 이 짧은 도해에서 자리바꿈과 압축을 거쳐 긴 이야기를 풀어낸다. 프로이트에게 꿈은 환자의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의식이 억압한 거대한 무의식이 있다는 가설을 세운다. 이것이 그가 환자를 치료하고 세상과 삶을 설명해낸 많은 글들의 원리였다. 무의식이란 무엇일까. 사회가 금기한 어떤 것이라면 가장 원초적인 욕망일 것이다. 그렇다면 성본능이다. 에로스야말로 현실이 아무리 금지해도 단념치 못하고 평생토록 충족되기를 꿈꾸는 삶의 에너지다. 그렇다면 현실에 눈뜨기 전,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의식하기 이전 어떤 시기까지 인간은 이 에로스를 충만히 누렸을 것이다. 억압된 것이 있다는 가설은 그것이 억압되기 이전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하니까. 아이에게 억압이 일어나는 최초의 상흔은 무엇이고 언제일까. 아마도 어머니의 몸에서 떨어져나와 한동안 어머니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세상에서 오직 나와 어머니만이 있다고 믿는 시기. 젖을 먹여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그녀의 얼굴이 그가 볼 수 있는 전부였던 시절. 아이는 그녀에게 전부요, 그녀는 아이에게 전부인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시기가 있었으리라. 어머니의 사랑에 가득 찬 입맞춤과 온몸을 닦아주는 씻김에서 아이가 느끼는 아늑한 지복만큼 더 충만한 에로스가 어디 있을까. 프로이트는 이 시기를 유아기 성이라 하여 약 3,4세 정도까지로 잡고, 라캉은 조금 좁혀 생후 18개월까지로 잡는다.
물론 이 시기는 무의식이 언제부터 시작되는가를 거슬러 추정한 가설이다. 그런 충만과 지복은 그리 오래 누릴 수 없다. 어머니와 아이만의 겹쳐진 얼굴 사이로 아버지가 들어오고 새로 태어나는 동생이 들어온다. 자신과 어머니 단 둘뿐이라고 믿었던 세상 속으로 타인이 들어오면서 아이에게 억압이 시작된다. 현실을 의식하면서 아이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것임을 알게 되고 사랑은 삼각관계로 발전한다. 아이는 어머니를 단념할 수 없다. 그래서 아버지가 없어져주기를 바란다. 이것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그러던 아이는 어느 날 어머니와 여자아이에게 남근이 없음 을보고 거세의 공포를 느낀다. 어머니를 단념하지 않으면 자신도 그리된다는 두려움으로 그는 아버지같이 되어 어머니 같은 연인을 얻으리라 마음먹는다. 성장한 아이는 사춘기에 이르고 대상을 향해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이때부터 방황과 좌절과 동경과 기대와 복잡한 청춘이 시작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문학작품들은 우리가 지상에서 낙원을 되찾는 것만큼 진정한 사랑을 되찾는 게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다. 눈이 먼 에로스는 금촉 화살과 납촉 화살을 동시에 가지고 다닌다. 눈이 멀었으니 제대로 맞출 리가 없고 사랑의 금빛 환상 속에는 잿빛 증오와 슬픔이 들어 있다. 왜 낙원을 되찾지 못하고 사랑에는 증오가 깃드는가. 왜 결혼 전에는 연인에게 금빛 왕관을 씌우다가도 결혼 후에는 구릿빛 왕관도 아까워하고, 고귀한 아내를 둔 지체 높은 양반은 천박한 첩에게서 지복을 찾고 고귀한 백작은 천한 정부에게서 성적인 만족을 누리는가. 프로이트는 이 모든 사회 현상을 설명해낸다. 그는 정상인과 신경증 환자의 차이란 게 억압을 요구하는 현실에 얼마만큼 잘 적응하는가의 차이일 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있어온 대량학살이나 폭정은 정상보다 더 정상에서 시작한 신경증보다 더 위험한 신경증이었던 것이다.
2. 나르시시즘에의 향수
어머니의 품안을 떠나야 하는 아이는 아버지의 법인 사회 속으로 들어서지만 달콤한 품안에서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내가 그녀요 그녀가 나였던 너와 나만의 세상에는 타자가 없었다. 아이는 어머니를 바라보기 만할 뿐 누군가에 의해 보여지는 것을 모른다. 그녀의 얼굴이 곧 내 얼굴이라고 믿는 이 오인의 단계를 프로이트는 "원초적 나르시시즘"이라고 불렀고 라캉은 '거울단계' 라고 말했다. 나르시스가 물위에 비친 청년을 사랑할 때 그는 바로 자신을 사랑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는 어머니가 자신만을 보살펴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유아기 성은 억압되지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현실 속에 다른 모습으로 위장하여 돌아온다. 억압된 소망이 꿈으로 나타나듯이 원초적 나르시시즘은 주체형성에서 뿌리이다. 아이는 거세의 위협을 느끼며 사회화되지만 결코 어린 시절에 누린 지복의 순간을 잊지 못하며 그것이라고 믿는 대상을 향해 다 가서고 그것이라고 믿는 대상을 위해 일한다.
모든 사랑이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완벽한 경험을 되돌리려 하는 것이 기에 사랑에는 근본적으로 이기심이 깔려 있다. 연인을 사랑하지만 사실은 그녀의 얼굴 속에서도 나만을 보고 있다. 사춘기에 이른 청년은 연인 을 갈망하는데 이때 그녀는 잃어버린 어머니요,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형이기에 자아 이상(ego-ideal)이다. 그러기에 그녀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자존심이 서서 살맛이 나고 그녀로부터 거절당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그녀를 미워하게 된다. 사랑이 쉽게 증오로 바뀌는 이유다. 또 상처를 받은 만큼 대상에게 상처를 주러 하는데 이것이 심해지면 가학증과 피학증이라는 병적인 증세를 나타낸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하지 못한다는 말은 이런 병적인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쓰이는 말이다. 사랑이 근본적으로 이기심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사랑한다는 사실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실했으나 결코 단념하지 못하는 어머니는 늘 그리워하는 잃어버린 고향과 같다. 인간은 어릴 적에 누린 어머니의 아늑한 품속을 성인이 되면 연인에게서 찾는다. 그리고 노인이 되면 안아줄 연인이 없기에 대지의 품을 그리워한다. 프로이트에게 '성' 이란 흔히 생각하는 남녀간의 섹스만이 아니다. 그것은 그보다 훨씬 넓고 포근한 평화요, 대지의 품과 같은 아늑한 기쁨이다. 원래의 성은 남녀의 차이도 없었고 부위도 제한을 받지 않아 유아에게는 온몸이 성감대였다. 그런데 문명은 노동력을 생산해야 하는 필요성에 의해 성을 남녀 사이의 것으로 또 생식기로 제한하고 그 외의 성을 도착이라고 금기했다. 동성애나 성인들의 전회는 유아기 성이 남아 있는 흔적이다. 문명은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려고 애써왔는데 왜 성도착이 늘어나고 신경증 환자가 늘어나는가를 곰곰이 생각한 프로이트는 사회가 억압한 무의식이 있다는 가설을 만들었다. 모든 철학자들처럼 그도 인간이 왜 불행한가 그 원인을 더듬는 데서 사유를 시작했던 것이다.
문명화된 성이란 이처럼 축소되었고 인간이 사회를 받아들이면서 어쩔 수 없이 감내하는 것이어서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를 나타내지만 아무도 잃어버린 평화를 온전히 복원할 수는 없다. 다만 타협의 과정이 있을 뿐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연인을 금으로 보다가 결혼 후에는 구리로 보는 것도 억압된 나르시시즘 때문이다. 대상을 향해갈 때는 그것이 잃어버린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상을 일단 손에 넣고 보면 그런 어머니는, 그런 안락함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에 대한 향수는 끈질기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또 대상을 향해간다. 어머니가 억압되었기에 그는 고귀한 연인을 아내로 맞으려 애쓴다. 그러나 그녀에게보다 천한 여자에게서 더 성적 만족을 얻는다. 거세에 대한 공포, 어머니를 금지하는 사회의 법이 어찌나 깊이 뇌리에 박혔는지 그는 아내에게는 자유로운 유아기 성을 열지 못한다. 아내는 자식을 낳고 가정을 꾸미기 위한 문명화된 성만을 실천하는 대상이라고 교육 받아왔기 때문이다.
원초적 나르시시즘이 억압되었다는 가설로 프로이트는 본능과 현실 사이에서 양가적인 삶을 살아야 되는 삶의 궁경과 근원적 허무를 설명해낸다. 죽음만이 우리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대상이라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삶의 목적을 추구해야 하는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연인도, 그 어떤 대상도 잃어버린 어머니를 대신할 수 없다면 삶이란 목적을 향해 가는 과정일 뿐이고 그 과정이 정당해야 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것이 우 리가 누릴 수 있는 생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과학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고 믿었던 19세기 말, 문학에서는 자연주의 사상이 퍼지던 때 유대인이기에 의대 교수가 되지 못한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의로 개업하며 인간의 심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삶과 문명 속에 내재한 불만의 원인을 억압된 무의식이 있다는 가설로 설명해낸 그는 문명이 아무리 금지해도 본능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변형된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말한다. 변형될지라도 에너지의 총합은 같다는 에너지 불변의 법칙에서 리비도 불변의 법칙을 끌어낸 것이다. 그는 보이지 않지만 무의식이 분명히 있다는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초기에는 혁신적인 글을 썼다. 성의 문제에서도 억압된 동성애를 암시하고 문명에 대해서도 불만스런 시선을 던진다. 그러나 후기의 글들에서는 초자아를 설정하여 자아가 어떻게 본능의 요구를 사치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게 조절해 나가느냐에 초점을 둔다. 후기의 글에서 제시하는 강박적인 '반복충동'도 자아가 어머니 없는 현실을 어떻게 견디어 내는가에 관심을 둔 발견이었다.
성에 관한 이론도 초기의 '도라 분석'과 같은 혁명적인 글에서, 후기에는 성차가 존재하던 당시 상황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다보니 남근선망이니 거세 콤플렉스를 조금도 의심치 않고 사용하게 된다. 생물학적인 현상으로 여성성을 설명하여 성차를 고착시켰다고 여성들이 비난한 것은 이런 연유였다. 그의 이론이 무(nothing)라는 실존적인 삶의 본질을 설명할 때는 그리도 타당해 보이지만 성이 사회화될 때 남녀가 갈라서야 되는 부분은 시대에 따라 많은 논란을 야기하게 된다. 삶에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부분과 변치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에로스는 변치 않지만 권력의 문제는 이동한다. 또한 나르시시즘에의 향수는 우리의 삶을 양가적이 되게 하여 실재에 관한 논의를 끊임없이 야기하는 철학의 문제와 연결된다. 정신분석이 성, 문화, 예술, 그리고 사회이론으로 계속 논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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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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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노나라의 유생 - 전자방
장자가 노애공을 만나자 애공이 말했다. "노나라에는 유생이 많아 선생의 도를 배울 사람이 적소." 장자가 말했다. "노나라에는 유생이 적습니다." 애공이 물었다. "노나라 어디에서나 유복을 입는데, 어째서 적다고 하시오?" 장자가 말했다. "저는 '유생이 둥근 관을 쓰는 것은 천시를 아는 것이요, 모난 신을 신는 것은 땅의 모양을 아는 것이요, 느슨히 결* 을 차는 것은 일이 닥치면 결단을 내리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도가 있는 군자라고 해서 반드시 그 옷을 입는 것은 아니며, 그 옷은 입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 도를 아는 것도 아닙니다. 임금께서 정말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어째서 나라 안에, '그 도가 없으면서도 유복을 입은 자는 그 죄로 죽는다.'는 호령을 하지 않으십니까?" 이에 애공이 포고령을 내리자 닷새 만에 노나라에는 감히 유복을 입는 사람이 없었으나 오직 한 사나이가 유복 차림으로 공문*에 서 있었다. 애공이 곧 불러들여 나라의 일을 물으니 천전 만변*하여 궁함이 없었다. 장자가 말했다. "노나라를 통틀어 유생은 오직 한 사람뿐인데, 어떻게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결 : 유생들이 오색 실로 꿰어 허리에 차는 구슬. * 공문 : 궁궐의 문. * 천전 만변 : 천 가지로 바뀌고 만 가지로 변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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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노애공을 만났다. 애공이 말했다.
"노나라에는 유생이 많소. 모처럼 오셨지만 선생의 도를 들을 사람이 아마 거의 없을 게요."
그러자 장자는 말했다.
"아닙니다. 노나라에 유생이 많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노나라의 모든 백성이 유복을 입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유생이 쓰는 둥근 관은 하늘의 이치를 나타내고, 네모난 신은 땅의 법칙을, 허리에 차고 있는 결은 결단력을 나타낸 것이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하나의 상징에 지나지 않을 뿐, 그것이 곧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를 닦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유복을 입는 것을 아니며, 유복을 입고 있다해서 또 반드시 군자의 도를 닦는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제 말이 믿기지 않으시면 전국에, '군자의 도를 닦지 않았으면서 유복을 입은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포고령을 내려보십시오."
애공은 그의 말대로 포고령을 내렸다. 닷새가 지나자 노나라에는 유복을 입은 자가 거의 없어졌는데, 단 한 사람이 유복을 입고 공문 앞에 서 있었다. 애공이 그를 불러들여 국정에 대해 물어보자 그는 막힘없이 묻는 말에 척척 대답을 했다. 장자는 애공에게 말했다.
"전국에 유생은 한 사람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유생이 많다고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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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말글/국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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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금란굴과 지모신(地母神)
금란굴 돌아 들어 총석정에 오르니 백옥루의 남은 기둥 다만 넷이 서 있구나. 공수의 솜씨인가 귀신이 만들었을까. 알 수 없는 육면상은 무엇을 형상했나.
사람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빼어난 통천(通川)의 금란굴이며 총석정을 그리고 있다. 이쯤의 경치이고 보면 말로 표현하기 이전의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글은 송강 정철이 관동의 뛰어난 경치를 읊은 '관동별곡'의 한 마디이다. 금란(金欄)이라, 말 그대로 금으로 만든 치마 저고리를 걸친 하늘 나라의 선녀들이 사는 데라고나 할까.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통천 부분을 보면 금란굴에 관한 안축(安軸)의 글이 소개되어 있다. "통주(통천)의 남쪽에 민둥산 봉우리가 하늘의 모습처럼 둥글게 드리웠구나. 동쪽으로는 바다에 닿아 있으며 봉우리의 절벽엔 한 굴이 있다. 넓이는 가히 칠팔척이 되며 그 깊이는 헤아릴 수가 없구나(深不可測). 안개가 어린 듯하여 늘 어둡도다. 바람이 불면 놀란 듯 파도는 일어 진실로 가까이 갈 길이 없어라." 이야말로 관음보살이 사시는 곳이 아닌가. 지성으로 빌면 관음의 진면목이 나타나 벽면에 삼삼하고 푸른 새는 날아 신령하기 그지 없어라.(작은 배로 다행히도 굴속에 이르러 보니) 바위에 그려진 모습들이 황금색이어서 마치 가사장삼을 금으로 만들어 입은 관음보살이 웃는 듯 앉아 있나니 연화대가 예가 아닌가. 그렇다. 이는 진실로 부처님의 나타나심이니 존귀하게 받들어 마땅하도다(尊敬則可矣). 마침 내가 굴에 갔을 적 푸른 새가 굴속으로 나명들명 하였다. 뱃사람이 이르기를 이는 바다새라 하였으나 이는 필시 관세음이 응하신 드러냄이라. 굴도 굴이려니와 푸른 새가 내 마음을 흔드는구나. 세상 사람들이 벼랑의 무늬를 아름답다 하여 이를 관음의 모습이라 함은 잘못된 의혹에 빠졌음이라. 어떤 이는 글로 하였으되 바닷가 절벽에는 굴이 깊어 사람들은 이 굴이 관세음의 나타남이라. 나르는 푸른 새의 깃은 비단(錦)과 같다. 게다가 보일 듯 안 보일 듯한 바위 색은 금빛이어라. 이를 보는 이들은 다 관음이 나타남이라고 말 한다. 지금도 어리석은 이들은 헛되이 관음을 찾는구나. 물색에 어리는 모습을 보고자 하나 오히려 밝은 달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비추나니." 흔히 땅의 모습이나 보람을 들어 거기에 음양에 따라 성(性)을 부여한다. 이르러 음양구조라 한다. 생김새로나 분위기로 보아 금란굴은 여성이요 태음의 신이 다스리는 어둡고 신비한 공간이다. 한데 머리글에서 '총석정'은 바다 가운데 솟아버렸으니 이는 분명 남성이요 밝고 억센 양(陽)의 얼안이라고나 해둘까.
다시 같은 책(동국여지승람)을 보면서 줄거리가 되는 몇 부분을 떠올려 본다. 총석정은 통천군의 북쪽 18리쯤에 자리하고 있다. 수십개의 돌기둥이 떨기처럼 바다 가운데 솟아 모두가 6면인데 그 모양이 마치 옥을 다듬어 놓음과 같다. 4개의 정자가 바닷가에 있으며 총석(叢石)에 가까우므로 총석정이라 하였다. 세간에 전해 오기로는 신라 때 화랑도였던 술랑·남랑·영랑·안상 등이 이 곳에 와 풍류를 즐겼으매 4선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짐작하건대 금란굴의 굴상징으로 말미암아 통할 통자 통천(通川)이 된 게 아닌가 한다. 별도로 부르는 이름에 금양(金壤) 금란 금뇌(金惱) 통주 휴양(休壤)이라 함도 어떤 걸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신증동국여지승람). 흔히 땅이름에서 굴 곧 구멍은 여성신으로, 물신으로 표상되기에 이른다. 이를테면 농수산의 생산을 맡고 있는 지모신이란 말이 된다.이와 관련한 보기로는 어떤 곳이 있을까.
금성(金城)과 어머니
금성에 가을이 드니 수 놓은 비단보다 좋다네 돌자갈밭에도 곡식은 끝 없어
행정구역이 바뀌어 지금은 김화에 합해졌지만 고구려 때만 하여도 어엿한 군(郡)이었다. 물론 뒤로 오면 현(縣)이 되고 다시 금성면이 되었지만. 금성은 본디 고구려 적에는 모성군(母城郡) 혹은 야차홀(也次忽)이었다. 같은 땅이면서 그 이름이 달라졌을 때 한자 또는 한글의 맞걸림- 대응을 찾아 땅이름의 내력을 찾는 일이 흔히 있다. 여기서 금(金)-모(母)의 걸림은 야차(也次)에서도 찾아진다. 그것은 야차-어시(母)의 풀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당시만 해도 터짐갈이 소리인 치읓이 마찰음(ㅅ)으로 파악되는바 야-여(어)의 '어'를 합하면 '어시(母)'가 됨을 알 수 있다. 쓰이는 글자가 다를 뿐 소리값으로 보아 '금-어머니'의 보기들은 다른 곳에서도 엿볼 수 있다. 가령 금호(琴湖)와 금물(김천)이 그러한 경우이다. 대동지지를 따르면 금호강의 뿌리는 영천의 모자산(母子山) 일명 보현산에서 비롯한다. 자료에 따라서는 금호강의 '금호'는 바람이 불 때 갈대에서 비파소리가 난다고 하여 금호라고 풀이한다(경북지명유래총람). 하지만 금호가 어디 대구뿐인가. 진주의 금산면에도 창원의 동면에도 그 밖의 고장에서도 금호가 있음은 땅이름 풀이에 의심을 품게 한다. 한자의 옛 소리를 칼그렌의 <중국고음사전>에서 보면 '금 검 감(錦 金 今 琴 儉 甘)'은 거의 같은 소리로 난다. 한자로 우리말을 적음에 있어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어 적었으니 앞의 것은 뜻빌림(訓借)이요, 뒤의 것은 소리빌림(音借)이라 했다. 하면 금호의 '금'은 금성의 '금(金)'과 마찬가지로 땅 구멍(굴) 어머니신-지모신 믿음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한다.
다음으로 금산(김천)의 경우를 살펴보자. 금산의 옛 고을은 어모(禦侮)현이라 부른다. 또 달리 금물(今勿) 감물(甘勿) 혹은 음달(陰達)이라 했다(대동지지). 이를 간추리면 '금-어머니(禦侮)'의 서로 같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사투리로 보면 어머니(전지역) 어무이(예천 의성 선산 칠곡 고령) 어머이(횡성 원주 홍천) 엄마(강원 전남북 예천 포항) 어메(군위 김천 금릉) 옴마(칠곡 대구 달성 경산 함안) 옴매(통영 충무) 오매(진안 무안 김천 정읍) 오메(군위 김천 고령)와 같은 말이 쓰인다. 지모신 곧 어머니와 같은 생산신 숭배는 고조선으로 거슬러 오르면 곰토템 즉 곰신앙에서 그 밑바탕이 있음을 알게 된다. 중세어 자료를 보더라도 그러하다. <용비어천가>에서는 '곰'이 고마로 드러난다(熊津고마나루). 고마는 그 속성으로 보아 아주 경건하게 흠모해야 할 대상으로 떠오른다(고마敬고마虔고마欽<신증유합>).곰신앙은 우리나라뿐이 아니고 몽고와 시베리아를 에워싼 북쪽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던 원시 신앙이었다. 일부 알타이 말에서는 지금도 '곰신-조상신-영혼'의 뜻으로 쓰이고 있음은 물론 곰신앙의 문화적 실증을 보여 주는 셈이라고 하겠다. 곰과 우리의 역사는 어떤 걸림이 있는가. 아다시피 삼국유사 에 따르면 고조선 시대에 곰과 호랑이가 다투어 사람되기를 힘쓰다가 마침내 곰은 사람의 몸을 입어 환웅을 만나 단군을 낳게 된다. 단군왕검의 '검(儉)'은 고대 한자음으로는 '금'이라 하거니와 결국 '금-'계통의 땅이름은 새롭게 개척한 청동기 문화를 드러낼 뿐 아니라 원시신앙이었던 곰신앙을 표상한 것으로 보인다. '곰(금)'의 어머니신 상징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아니하다. 경상도의 웅천(熊川)은 웅기(熊只)에서 비롯하였으며 경덕왕 16년(757)에 이르러 웅신(熊神)으로 이어지며 이는 본디 금주(金州)에 속하는 고장이었다. 마주걸림을 간추리면 '금(金)-웅(熊)[神]'으로 뭉뚱그릴 수 있다. 이는 충남의 공주도 그러하다(금강(錦江)-웅천(熊川)(고마나루)-공주(公州)<대동지지>).
이제 남은 건 '금-엄(어머니)'의 관계다. 알타이말에서 기역(ㄱ)이 말의 첫소리 혹은 끝소리에서 약해져 떨어지는 현상을 참고로 하면 '금(곰)→흠(홈)→음(옴)/검(굼)→험(훔)→엄(움)'으로 그 소리가 바뀌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머니의 시골말 '옴마 오마니 엄마 움마'는 바로 같은 말들이다. 어머니는 생산의 바탕으로 굴이요, 물이다. 땅과 물을 잘 가꾸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연의 축복을 누린다. 금성을 달리 통구(通溝 通口)라 하며 물들이 고장이라 하였다. 물과 땅을 경건하게 믿고 이용하며 살아 갈 때 역사의 능선을 타고 시련을 겪는 우리들에게 지모신은 늘 함께 하시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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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낙타
등에 혹이 하나 있는 단봉 낙타는 사막 지대의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기에 매우 훌륭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간혹 '사막의 배'라고도 불린다. 어떠한 동물일지라도 사막의 열기와 갈증에는 몇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지만, 이 성숙한 낙타는 한 방울의 물도 마시지 않고 320km나 되는 사막길을 거뜬히 횡단할 수 있다. 낙타는 토끼의 입, 쥐의 위장, 코끼리의 발, 새의 피, 파충류의 체온, 그리고 백조의 목을 가지고 있으며 담낭이 전혀 없고 눈을 감고도 볼 수 있으며, 닫을 수 있는 콧구멍을 가지고 있다. 사막 기후를 견딜 수 있는 낙타의 이러한 신체 능력은 주로 특수한 구조를 갖고 있는 위에서 비롯된다. 즉 이 단봉 낙타의 위장은 소 종류의 동물과 같이 위장이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위장의 벽은 수백만 개의 미세한 저장 세포로 되어 있어 몇 주일 동안 견딜 수 있는 물을 이곳에 저장해두고 있는 것이다.
맹물은 낙타에게 소위 혼도병을 유발시키며 낙타가 맹물을 마시게 되면 술을 마신 것처럼 취하게 된다. 낙타는 소금기가 있는 물을 좋아한다. 낙타의 속눈썹은 태양의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낙타는 물뿐만이 아니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랫동안 견딜 수 있는데, 이것은 낙타의 등에 있는 혹 내부의 지방층 때문이다. 혹에 저장되어 있는 지방질이 비상시에 영양 공급원으로 변하는 것이다. 잘먹은 낙타의 혹이 잘먹지 못한 낙타의 혹보다 크게 자라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낙타에서 유래된 영어의 알파벳이 2개 있다. 그것은 'C'와 'G'로서 이 글자들은 낙타의 등에 있는 혹을 묘사한 것이다. 낙타는 낙타의 시체를 보면 죽는다.
그리고 낙타의 걸음걸이가 버터를 탄생시켰다. 어떤 유목민이 소젖 한 자루를 낙타에 싣고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유난히 느린 낙타의 걸음걸이 때문에 낙타 등에 있던 소젖은 장시간 뜨거운 햇볕을 받아 버터로 변했던 것이다. 이 걸어다니는 식량 창고는 사막에서 살기에 적당한 재주를 또 하나 갖고 있다. 아주 뛰어난 후각 기능이 바로 그것인데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물 냄새도 맡아낼 수 있는 낙타의 후각 기능 덕택에 수많은 낙타상들이 목숨을 건지고 있다. 일생 동안 낙타의 생태를 연구한 동물학자들은 이 동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말할 정도로 낙타는 신비한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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