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12. 울림과 진실 (2/3)
12-8 옷과 위
몸에 걸치는 옷은 새것이 좋아 보이고 사람은 오래 사귀어 정이 두터울수록 좋다 하여 '옷은 새옷이 좋고, 임은 옛임이 좋다' 고 한다. 흉하지만 않다면 때묻은 옷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피륙과 같은 천 따위를 몸에 걸침으로써 추위와 더위를 다스리거나 몸뚱이를 가리기 위하여, 사람이 입는 물건을 '옷'이라 일컫는다. 옷을 입는 까닭이 몸을 보호하려는 실용적인 측면에 있든, 아니면 보다 멋있게 꾸며 보려는 인간의 심미적인 자기표현 욕구에 있든 '옷'은 그 위치로 보아 본래의 몸 위에 덧붙여 입는 물건이라고 하겠다. 옷은 그 옷을 입는 사람의 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중요한 꼼의 종속물이라 할 것이다. 누가 감히 옷을 걸치지 않고서 거리를 다니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장소와 시간에 따라서 입는 옷이 다르듯이, 예의를 생각하는 사림들의 의식은 그 의식만큼이나 여러 가지의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옷을 만들어 낸다 요컨대, 옷은 우리의 몸 위에 걸쳐 따라붙이는 종속물로서의 속성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옷은 어떤 말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떻게 갈라져 나아갔는가. 우선 중국 자료 몇 가지를 살펴 보기로 하자.
1) 공회의 의복은 비단에 금. 은으로 장식을 했다. (其公會衣服붐銃憲金銀以 自飾 ; ((三國志,,) 2) 백제의 언어는 고구려와 거의 같았다. 모자를 관이라 하였고 소매를 복삼이라 했다. (今言語略與高麗同呼帽日冠嬌日複떴, ((梁書),) 3) 신라어는 백제어와 비슷했다.-증략-모자를 고깔, 소매를 우개라 부른다. (新羅言語待둠濟而後通-中略-冠日遣子禮儒日射解 ;(梁書))
1)에서는 고구려가 복식에서 상당히 앞서 있었음을, 2)에서는 복삼, 관 등의 복식 용어가 쓰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3)의 신라조에서 '遣子禮'는 '고깔' 을, '射解'는 '옷(방언형으로는 우티/우치/오티)'을 나타내고 있다. 이로 보아 오늘날의 '옷'은 신라말 계통이 아닌가 추정된다(김동윽, <한국 복식사연구>, l973). '옷'이 신라어 '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생자을 뒷받침해 주는 증빙자료로서는 오늘날 각 지방에서 쓰고 있는'옷'의 방언형들을 들 수 있다.
'옷'과 관련한 방언 분포 1) [ㅇ/옷]-우리나라 전역 2) [우티]-경기 연천, 김포, 강화, 가평/강원 강릉,명주 삼척, 원주, 횡성, 원성/횡남 순천. 3) [우테]-황해 장연 은율, 안악,재령,서홍/평남 중화. 4) [오트이]-황해 연안,해주 5) [우트이]-경기 개성, 장단/강원 양양/황해 김천, 옹진, 태탄, 황주, 신계, 수안, 곡산/함남 신고산,안변, 덕원 문천, 고원, 영흥, 정평, 함흥 오로, 신홍, 흥원, 북청, 이원, 단천, 풍산 갑산 혜산/함북 성진, 길주, 명천, 경성, 나남, 청진, 부거, 부령, 무산, 회령, 경성, 경원, 경흥, 웅기/평북 박천, 영변, 회천, 구성, 강계, 자성, 후창, (김형규, ((한국 방언 연구), 서울대출판부, 1986.)
위 자료들을 미루어 볼 때 오늘날의 '옷'은 '射理[우(ㅎ)>옷]'과 '우티 (오티)'의 형태들에서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다, '우티(오티)' 의 변이형들은 어말모음의 탈락과 함께 '옷'으로 굳어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맙에서도 지적한 바 '몸 위에 걸치는 물건'이라는 옷의 속성을 잘 나타내 주는 보기라 하겠다. 방위로서의 위 를 드러내는 방언 가운데서도 신라어의 '射解[우(ㅎ)/위개]'와 서로 통하는 말들이 쓰이고 있다.
'위' 와 관련한 방언 분포 1) [위]-우리나라 전역. 2) [우]-경기 연천, 파주, 강화, 용인/강원 속초, 양양, 강릉, 명주 삼척/충북 층주 층원, 괴산, 옥천 영동/층남 서천/경북 울진, 영주, 청송, 영덕, 예천, 상주, 의성, 포항, 군위, 영천, 금릉, 경산, 경주, 청도/경남 양산, 울주, 함안, 진주, 합천, 하동, 사천, 고성, 통영, 층무, 동래 김해, 부산, 창원 3) [우 :]-경북 봉화, 안동. 4) [우이]-경기 김 포. 5) [우그]-전북 익산, 부안, 고창, 정읍. 6) [우구]-전북 전주. 7) [우게]-전북 익산, 고창, 순창/전남 영광 장성, 담양, 곡성, 구례, 광주, 함평, 목포, 나주, 화순, 순천, 광양 여수, 장흥, 강진.
'위'의 _방언 형태를 통하여, 신 라어에서 '옷' 을 가리키는 '射解 '가 방위로서의 '위' 의 변이형 '우게/우구/우그'와 그 형태가 서로 비슷함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서 다시 한번 '옷' 이라는 말이 '몸 위에 걸치는 것'이라는 특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일본어 자료 가운데 상고어인 '오스히'도 우리 옛말 '오티 (우티)' 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학계의 지적도 있다. 몸 위에 걸치는 것이면 모두가 '옷' 이 었지만, 차츰 분절되어 바지 ((역해보), 저고리, 치마 등의 기능화된 하위 범주로 갈라져 나아가게 되었다. 김동욱에 따르자면 '저 고리'는 몽고어 '져거덕치'에서 나온 말로 고려 이후의 형식으로 보이며, '두루마기'도 몽고어 '쿠루막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치마[裳]' 는 중국어 계통의 말일 것으로 보고 있다. '옷[衣]' 과 '옻[漆]'을 중세어에서는 다 같이 '옷'으로 표기하고 있다. 성조적 (聲調的)인 차이는 있었지만 두 말은 동음이의어였던 것이다. 가구에 칠하는 도료로서의 '옻'은 어떤 일정한 물체 위에 색을 더함으로써 시각적인 효과를 얻어내기 위하여 사용한다. 우리 몸 위에 걸쳐 입는 '옷'이나 가구에 칠하는 '옻'은 모두 원래의 물체에 덧붙인다는 속성을 갖고 있으니, 그 형태의 비슷함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즉 '옷'에서 '옻[漆]'으로 갈라져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옷'이 '옻'으로 된 것과 '옷'이 '옻'의 한자음인 칠(漆)'로 된 것 둥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옷'과 '옻'과 '칠'의 중세어와 현대어 자료들을 통해서 그러한 가정들을 확인해 보도록 한다.
'옷[衣]' 의 낱말겨레 1) 중세어 옷爲衣((훈례) 종성해), 옷ㄱㅇ(衣料 ; ((역해보), 40), 옷ㄱ외 (衣裳 ; (초두해), 7-5), 옷가숨((초두해) 20-45), 옷거리 (衣架 ; ((동문), 하 15), 옷거족(衣面 ; ((동문), 상 56), 옷것섭((역해보), 40), 옷고흠(옷고름 ; ((사성), 상 39), 옷긋((유합), 하 16), 옷길(옷길이 ;(역 해) 하 6), 옷단(衣料擇 ; ((한청)330 a), 옷자락((한청), 330 C), 옷홰 ((소해), 2-50), 옷ㅅ매 ((유합) 하 14) 등. 2) 현대어- 옷, 옷가슴(가슴에 닿는 옷의 부분), 옷가지(몇 가지옷), 옷감, 옷갓(윗옷과 갓 ; 衣冠), 옷걸이, 옷고름, 옷기장(옷길이), 옷깃차례 (시작한 사람의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차례), 옷단(옷의 자락, 소매, 가랑이의 가장자리를 안으로 붙이거나 감친부분), 옷매무시, 옷보(옷을 싸는 보), 옷섶 (저고리나 윗옷의섶), 옷솔, 옷엣니 (옷에 있는 이), 옷자락(경상도 말로는 오지랍 또는 옷질앞). 옷치레 (종은 웃을 입고 옷을 가꾸는 것) 둥.
'옷[衣]'에 관한 말들 중, 중, 근세 어의 자료에서는 보이나 현대어 자료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몇몇 있다. '옷거족(옷것), 옷것섶, 옷홰'등이 그것이다 '옷홰'의 경우는 '옷걸이'와 같은 뜻으로 쓰인 말이었으나, 동의충돌의 결과, 죽은말이 되어 버린 경우이다. 한편 형태는 음운변천에 따라서 조금 바뀌었으나, 같은 뜻으로 쓰이는 보기도 확인되는바, '옷가ㅅ>옷가슴, 옷가ㅇ>옷감, 옷거리>옷걸이, 옷골흠>옷고름, 옷긋>옷깃, 옷쟈락>옷자락'과 같은 형태들이 그것이다. 이중에서 '옷가둠'은 원래는 옷소매의 뜻으로 쓰이었으나, '옷가ㅅ'에서 발달한 형태로 보이는 '옷가슴'이 현재는 가슴에 닿는 옷의 부분'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으니, 뜻이 바뀌어 오늘에 이른 형태라고 하겠다.
새로이 만들어져서 상이는 것들로는, '옷가지, 옷갓, 옷매무시, 옷보, 옷섶, 옷치레, 옷장, 옷좀, 옷좀나방' 등이 있다. 여기 '옷갓'의 경우는 '의관(衣冠)'을 뜻하지만 그 싱임은 아주 제한적이어서 찾아 보기 어렵다. '옷치레' 는 겉만 꾸미는 '겉 치레`와 같은 뜻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겉 치레'가 더 많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옷과 관련하여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으로는 경상도 방언에 '오지랖 넓다' 라는 것이 있다. 실속도 없이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보이며 선심을 쓰는 경우를 이르는데, 바로 '옷자락'에서 비롯한것이라고 하겠다. 이제 '옻[漆]' 과 관련하여 중근세어 자료와 현대어 자료를 살펴보기로 한다.
옻[漆]'의 낱말겨레 1) 중,근세어-옷(漆 ; (법화), 1-219, (초두해), 8-31), 옷것 (옻칠한 물건 ; (소해), 6-10), 옷곳ㅎ다(향기롭다 ; ((남명), 하 7), 옷나모((훈몽)상 1O), 옷칠((번소), 10-32), 옻((태산집요), 53) 등. 2) 현대어-옻(옻나무 진이 피부에 닿아 가렵고 부풀어 오르는 피부중독의 한 가지), 옻기장(검은 기장), 옻나무(약용 및 염료로 쓰임), 옻칠, 옻타다(살갗이 옻의 독기를 타다) 등.
형태 변동으로 볼 때 '옻'은 옷>옻'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말이다. 중근세어의 옷은 '漆' 곧 검은 칠을 하는 염색의 뜻으로 쓰이었으나, 현대어의 '옻' 은 옻나무의 진으로 말미암는 '皮膚中壽'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결국 '옷>옻[皮膚中毒]` 이 된 셈이다. 지금은 쓰이지 않으나 중세어 자료에 보이는 것으로는 '옷것, 옷곳ㅎ다' 가 있으며, 현대어에서만 쓰이는 말로는 '옻기장, 옻나꾸, 옻타다' 등이 있다. 결론적으로 볼 때 '옷'파 '옻' 모두 '겉에다 더 입힘'이라는 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 하겠다.
'옷, 옻'과 함께 중세어.현대어에 나타난 '칠 (漆)'의 낱말겨레를 살펴보도록 한다.
'칠 (漆)'의 낱말겨레 1) 중세어-칠ㅎ다(옷칠 한것, (번소), 1O-32), 漆은 오시라((법화), 1-219), 옷칠((유합), 상 26) 등. 2) 현대어- 칠 (도료로 쓰는 물질), 칠공(칠장이), 칠그릇(칠기) 칠독(옻의 독기), 칠립 (옻칠올 한갓), 칠목(옻나무), 칠물(옻칠을 한 기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칠박(칠올 한 함지박), 칠붓(옻칠을 한 부채), 칠실 (어두운 방), 칠야(캄캄한 밤), 칠일 (칠하는 일), 칠장(칠을 한 옷장), 칠전 (옻나무 밭), 칠창(급성 피부병), 칠판(혹판), 칠포(칠을 한 헝겊), 칠피 (에나멜을 칠한 가죽), 칠함(칠을 한함), 칠화(옻칠로 그린 그림), 칠흑같다 등.
현대어의 경우를 볼 때, '옻' 보다 '칠'의 낱말겨레가 횔씬 많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색깔에 관계없이 '칠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검은색'을 뜻하는 '칠'이 색칠의 원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칠서벽경(漆晝壁經)'이라고 하여 오래된 경전을 옻진으로 써서 보존한 까닭에 생긴 말이다. 지금도 고급스러운 옷장에는 옻칠을 한다. 색깔도 뭏거니와 향기 또한 좋아서 가구에 많이 사용하게 된다. 겉만 보기 좋게 꾸민 것올 겉치레'라고 한다. 이 표현 역시 컬만 보기 뚱게 색칠을 하다 에서 '겉을 칠하다' 로. 다시 '겉치레'로 바젼 것으로 보이나, 속단하기는 어렵다.
이제까지의 줄거리를 추려 본다면, 중세어의 '옷'은 '衣. 漆'의 의미를 다 드러내는 말이었다. 이 형태는 문헌 또는 방언의 분포로 보아 방위를 드러내는 위의 의미를 바탕으로 하여 쓰였음을 알 수 있었다. 뒤로 오면서 의복은 '옷'으로, 칠울 하는 재료, 혹은 피부질환은 '옻' 으로 갈라져 쓰이게 되 었다. 이와 함께 주목할 형태는 '칠 (漆)'로서, 이는 '옻'을 훈(뜻)으로 하는 한자어이다. 오늘날 '검은색'이나, 검은색과 관계 있는 사물을 드러내는 말의 대표적인 꼴로 쓰이게 되 었다. 이러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면 결국 '옷을 입다'나 '옻칠을 입히다'나 '칠을 하다'나 모두 '어떤 사물(사실) 위에다 무엇인가 다른 것을 입힘'을 속성으로 하여 발달해 나아간 말들이라 하겠다. 형식과 내용의 관계가 매우 가까운 것이라고 볼 때,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의식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들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겠다. 자칫하면 속과 겉이 다른 가치를 드러내기 쉬운 일이니까. 그래서 칼라일은 그의 '의상철학'에서 사람은 가면을 벗는 데에서 삶의 진정한 실마리를 찾게 된다고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옷을 중심으로 하여 꾸미는 정도에도 적절성을 부여할 수만 있다면, 그 또한 우리 인간들의 삶을 너그러이 빚어 낼 수 았을 것이다. 담 대신에 풀이나 나무 등을 얽어서 집을 둘러막거나 경계를 가르는 것을 '울(울타리)'이라고 하는데, 이 말도 옷과 같은 낱말겨레에 드는 분화어로, '위' 의 뜻을 의미소로 하는 형태이다.
짐승을 가두기 위하여 둘러막은 공간을 '우리' 라고도 한다. '소 우리, 돼지 우리, 염소 우리'가 바로 그러한 이 름들이다. '울/우리'는 한정된 공간을 나타낸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었다고 하겠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운명지워진 공간과 시간에서 살고 있다. 너와 나를 함께 뭉뚱그린 복수의 개념으로서의 '우리' 또한 소 우리의 '우리'와 같은 말에서 발달하여 다른 뜻으로 갈라져 나간 형태라고 하겠다. 물론 우리말의 인칭대명사에 나와 너를 합한 호평이 없어 이른바 보충법에 따른 공간을 가리키는 '우리'가 인칭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니까 특정한 공간을 바탕으로 하여 특정한 공간에 사는 사람들을 합쳐서 그냥 '우리' 라고 했으니, 마치 당호(棠號)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나 같다고 하겠다. '우리' 와 관계를 보이는 말에는 '우리구멍 (논물이 빠지도록 뚫은 구멍), 우리네, 우리다(특정한 공간에서 짐승을 기르듯이 물건을 물에 담가 맛. 빛이 물에 플리게 하는 것), 우리들, 우리말, 우릿간(우리로 사용하는 간)' 둥의 형태들이 있다. 한편 '울/우리'와 관계된 증세어 자료를 들어 보면, '울(ㅎ) ((훈례) 용자례), 울밋((청구), p. 63), 울섭 ((역해보), 14), 울히다((송강) 2-12)' 등이 있다. 이때 '울'은 형태론적으로보아 히웅(ㅎ)특수곡용을 하는 명사로 확인된다. 한편, 현재 쓰이고 있는 방언형을 보면 '울-'계가 장형화하여 쓰임을 알 수 있다.
'울-' 계의 방언 분포
1) [우리]-경북 선산, 문경, 상주, 김천 2) [우타리]-경남 하동/전남 장성,나주 3) [우따리]-경남 거창, 양산 4) [우딸]-경북 영주,청송,청도 5) [울다리]-경남 함안, 창녕 6) [을타키]-경남 대부분 지역/충북 영동,옥천, 층주,제천/전남 여수, 순천, 광양, 진상, 구례, 장성, 나주, 광주, 완도 장흥 영암, 영광, 함평, 목포, 해남, 진도, 강진, 화순, 보성, 고흥/강원 영월, 정선 7) [을따리]-경북 포항, 대 구/경남 합천, 밀양, 창왼, 창녕, 김해/층북 음성/제주 전역 8) [울딸]-경북 안동,영천 9) [웃다리]-경남 거창
'울타리'가 폭넓게 쓰이고 있으며, 경상도 지역에서는 '울'의 '리을(ㄹ)'받침이 탈락하여 쓰이는 경우도 눈에 뜨인다. 우리는 한 조상의 피를 이어받은 배 달 겨레이니, '우리'는 배달겨레의 정신을 지키는 공동체 의식의 공감과 공명의 현주소이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겨레의 울타리(우리) 안에서 아주 탐스럽고 그윽한 향기가 있는 영흔의 누리를 빚어 나아 갈 수 있으리라.
12-9. 집과 풀
거처하는 집이나 재산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님을 일러 '집도 절도 없다'고 한다.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집은 동물이나 사람에게 삶올 이어 가는 중요한 장소가 된다. 사람이 거처하는 장소나 동물의 보금자리, 흑은 겨레붙이의 한 떼나 물건을 담아 두거나 끼워 두는 도구를 통틀어 '집'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에서 '보금자리'는 새가 깃들이는 둥우리를 뜻하는 말로서 비유적으로 지내기가 매우 포근하고 평화로워 아늑한 곳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 가면 집의 형태는 대체로 굴이나 나무숲과 같은 곳에 자리잡은 보금자리의 꼴이었음을 알수 있다. ((진서 (辰書))의 기록에 따르면 동이(東夷)는 여름에는 둥우리(보금자리)같은 나무 위에서, 겨울에는 굴에서 살았다(夏則眞居冬則穴處)고 한다. (삼국지)에는 그 굴의 깊이가 사다리 아홉 개가 들어갈 정도의 큰 무덤과 같은 집이 있엇다고 전해 오기도 하며, (후한서)에는 흙으로 방을 만들었는데 마치 무덤과 같았으며, 그 위에다 문을 만들었다(作土室形如뭄閑戶在上)고도 한다.
이상의 기록에서 집 '과 연계지을 수 있는 것은, 숲 속 나무 위의 둥우리 모양의 집 (보금자리)이 아닌가 한다. 한마디로 '집'은'김'에서 비롯한 것으로 본다. '김'은 홍조류의 바다플로서 종이처럼 얇게 떠서 말려 가지고, 불에 구워서 먹는 반찬의 한 가지이다. 동음이의어로서의 '김 '은 '기음'의 준말로, 논밭에 나 있는 잡풀을 말한다. 보통 농가에서 '김을 맨다' 고 할 때의 김이나 먹는 김이나 본질이 풀임에는 모두 같다. '김'에서 '집' 에 이르는 국어학적인 풀이는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김'이 입천 장소리되기를 따라서 '짐 '이 되었다가 음절의 끝소리가 같은 입술소리 계열에 따른 자음교체를 함으로써 '집 '이 되었던 것이다. 다시 '집'은 음절의 끝소리가 바뀌어 '짚'이 되기도 한다 지금도 지역에 따라서는 '김'을'짐'(쓰인 예 ; 짐 먹는다)'이라고 하는 것을 그 근거로 들 수 있으며, '집/짚'의 관계는 '짚'이 중세어에서 '집 ((유씨명)' 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결국 '김'에서 비롯한 '짐/집/짚'은 모두가 하나의 낱말겨레인데, '풀'로서 그 기본적인 의미소를 가정할 수 있겠다.
그러면 '김'은 풀로서, 거처하는 집과 관련이 있다고 하였는데 어떤 형태에서 발달한 말일까? 우선 방언분포를 살펴 보도록 한다. '김'의 방언을 알아 보면, 기음(층청, 전북 강원), 기임(강원호산), 거울(경남 거창), 기심 (경북 안동, 봉화, 영양, 청송, 영천), 김 (경북 청송 영천, 군위, 왜관/전남 영광, 함평, 목포, 나주 광주), 지슴(경상, 전라, 제주), 지섬 (경남 진주), 지심 (경상, 전라, 제주), 풀(경북 문경/경남 밀양, 울산 양산, 마산, 층무), 풀(경남 부산 김해), 짐 (충남 예산, 논산/전북 진안, 장계, 이리/전남 헤남, 장흥) 등과 같은 꼴이 있다. 방언의 보기에서 '김' 은 '기 음, 기임, 기심, 김, 지슴, 지섬, 지심, 짐 풀, 품'의 변이형으로 실현되고 있다. 여기서 '기심(>지심,지슴,지섬)-기 임(기음)-김 (>짐)'으로 발달해 왔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기심'이 '깃'에서 발달한 말이 아닌가 한다. '새가 깃들인다' 는 말이 있거니와 이때 '깃' 은둥우리 보금자리가 있는 풀숲(둥우리)으로 풀이할 수 있다 '깃'은 '굿' 의 부분에서 보인 바와 같이 '굿(>궂)/굳/굴/곳(>곶)/곧/골, 깃/긷/길'의 대립 체계를 이루는 낱말의 떼로 이어져 나아간 것이다. 중세어에서 기둥을 '긷((내훈) 서 4)' 이라고 하거니와, '깃/긷/길' 은 하나의 말 겨레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지금도 짐승을 가르쳐 사람의 말을 잘 듣고 부리기 편하게 함을 '길들이다'라고 하는데 이때의 '길'도 그 바탕은 거처하는 곳의 개념에서 멀지 않음을 드러내 주고 있다. 거처하자니까 오고 감이 있기 마련이고, 특히 씨족사회와 같은 혈연성이 강조되는 집단생 활에서는 서로 단합해야 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서의 길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재료를 들여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건물 따위를 세우는 것을 씻다'라고 하는데, 이때 '짓-'도 깃>짓'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러 상이고 있을 가능성이 보인다. 증세어 자료의 '깃깃다(둥지를 틀고 살다 ; ((초두해), 15-7), 깃다(풀이 무성하다, ((남명) 하 35), 깃다(깃하다, (남명), 하 16), 깃(羽 ; (삼역) 9-15)' 등을 보면 결코 '깃_>짓-'의 '짓-' 이 집의 개념과 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집을 세울 때 물론 여러 가지 재료가 드는데 그 중의 하나가 '깁'이라고 본다. '깁'은 비단의 뜻으로 쓰이었으나, 원래는 풀을 의미하는 '김/깁/깊'의 낱말겨레에서 발달한 말이니 결국 '김'은 '깁/ 집_' 계로 나뉘어 발달해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형용사 '깊다'도 수풀과 연관을 지어 풀이할 수 있을 듯하다. 숲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의 서식처(보금자리)였으며, 삶을 이어 가는 바탕이었으니 집이란 말이 풀숲을 뜻하는 말에서 말미암았음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삼국유사)의 단군에 대한 기록을 보면 '소도(蘇塗)' 가 나오는데 이는 제사를 모시는 제단이 있는 숲(나무)을 뜻한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창세기에도 에덴 동산은 생명을 만든 거룩한 숲속이었고, 석가모니가 해탈득도한 곳도 숲속의 보리수 아래였다. 또한 우리의 '소도'도 박달나무로 전해 오는 신단수(神壇樹)가 있는 숲속이었음을 돌이켜 볼 때, 집과 수풀(나무)과의 관련성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소박한 의미에서 모든 식량은 풀의 열매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때, 풀과 나무로 뒤덮인 수풀은 목숨살이의 상징이라 하여 지나침이 없다. 초식성 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육식성 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초식을 하는 동물을 먹이로 해야 하니까. 동물이 먹고 사는 의미는 풀(수플)이 있음으로 해서 살아난다. 이를테 면, 먹고, 입고, 사는 그 모든 팥동과 과정이 수풀에서 말미암았다면 어떨지. 정말 숲은 거룩한 곳인 반면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이 더 탐스러운 열매를 얻기 위하여는, 숲이 있는 자연과 함께하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생활화해야 한다. 숲은 생명의 고향이니까.
'집 '과 관련이 있는 낱말에는 '집, 집가시다(사람이 죽은 집을, 무당으로 하여금 악기를 물리치게 하다), 집가축(집을 매만져서 잘 거두는 일), 집다(물건을 집 속에 넣게 하니까), 집게, 집게손가락, 집팽 이, 집구석, 집나다, 집내다(살던 집을 비우다), 집다, 집더미, 집세, 집사람(자기 아내를 겸손하게 일컫는 말), 집들이, 집알이 (집구경 겸 인사로 찾아 보는 일)' 와 같은 꼴들이 있다.
'집'과 같은 낱말겨레에 드는 '짚/짐'을 증심으로 하는 말들에는, '짚 (이삭을 떨어낸 줄기), 짚가리 (짚의 더미), 짚나라미 (새끼 등에서 떨어지는 너더분한 부스러기), 짚다('깊다' 의 경상, 전라,충청, 함경 강원도 방언), 짚단, 짚등우리, 짚등우리 타다(못된 판원을 백성들이 짚둥우리에 태워 몰아 내는 것), 짚믓(짚단), 짚북더기, 짚신 (함경, 강원도에서는 짖세기), 짚볼/짐장('김장'의 경산, 강원 함경도 방언), 짐짝, 짐치 ('김치'의 경상, 강원, 제주, 전라, 층청, 함경도 방언)' 등이 있다.
우리는 영원한 삶의 집을 바란다. 그러기 위하여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견고한 숲을 이루도록 마음을 모아 자연과 함께하는 더불어 살기를 힘써야 한다. 풀로 만든 숲 속의 집이 이제 완전히 바위굴의 변형된 짐으로 바뀌어 사는 세상이니 우리의 정서가 점차 메말라 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생명이 살아 숨쉬는 그런 집을 가꾸어 나아가야 한다.
12-10. 웃음과 드러냄
농담으로 한 말이 잘못되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있다 하여 '웃느라 한 말에 초상 난다'고 한다. 함부로 말을 하지 말고 말은 지극히 삼가야 됨을 강조하고 있다 반대로 용기를 주고 기쁨을 주는 말은 적절한 때와 장소를 가려서 다른 사람에게 해 주는 것이 훨씬 생산적일 때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음이 기쁘거나 즐거울 때, 또는 기가 막힐 때, 그러한 감정의 변화나 상태에 어울리게 밖으로 드러내는 생리적인 동작을 '웃는다/웃다'라고 한다. 외형상으로는 입을 벌리고 소리를 내며 기뻐하기도 하며, 사람을 조롱하거나 같잖이 여겨 코웃음을 치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행동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은 언제나 사람의 행동을 통하여 심리적인 모습을 알아낸다. 해학과 같은 웃음은 사람의 마음에 일어난 긴장이 해소될 때에 정신적인 반옹으로 일어나게 된다(시라사, <문학에 있어서의 웃음의 개념>, 국어국문학 51, 1971). 우리는 어떤 불안이나 불만족, 불쾌감을 주변 어더에서나 경험하며 살아 간다. 이러한 불안이나 불쾌감이 풀어질 때 즐거움이나 안락한 느낌을 갖게 되는데, 바로 이때 웃음이 따라붙어 겉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배해 수, <현대국어의 웃음 동사에 대하여>, 1982). 결국 웃음은 내적인 감정의'드러남'을 의미적인 바탕으로 한다고 할 것이다.
말의 짜임을 보면 '웃다'는 '웃十-다>웃다'로 볼 수 있는데, 이때 '웃' 은 위아래의 '때' 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여러 가지 감정이나 생각을 위로 드러내는 셈 이다. 마침내 얼굴의 모양이나 입으로 소리를 내서 시각 또는 청각적인 표현으로 드러나는 게 아닐까 한다. 친절하고 상냥한 미소가 있는 인간상이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주듯이, 진정한 뜻에서의 미소를 머금은 자신의 모습을 추구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모나리자나 성모마리아 혹은 고마성모의 미소와 같지는 않을 지라도. 그럼 그 소리나 얼굴의 표정과 모습 또는 신체의 다른 부분에 따른 양태의 변화가 어떻게 웃음의 낱말겨레와 관련되는지를 알아보도록 한다. 먼저 소리에 따른 웃음의 표현에 대해서 살펴 보자. 웃음 소리가 기냐 짧으냐, 작냐 크냐페 따라서 몇 가지로 표현된다. '길게 웃다'는 뜻으로 '장소하다'가 있다. 그러나 그 반대되는 '단소(短笑)하다'는 말은 잘 쓰이지 않는다. 웃음소리의 크기에 따라서 대소(大笑)하다, 굉소(柰笑)하다, 폭소(爆笑)하다'는 말들이 있는데 대소<굉소<폭소'에서 보는 것처럼 폭소는 폭발적인 웃음소리를 연상케 함으로써 가장 큰 웃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 말들은 웃음의 크기에 따라서 단계적인 대립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 소리의 상징의 크기가 곧 감정의 단계를 변별적으로 드러낸다고 하겠다. 대소(大笑)하다' 에 다른 말을 더하여 그 모양을 드러내는 일이 있으니, 입을 크게 벌려 웃음을 '흥연대소(峽然大笑)하다', 즐거운 표정을 '간간대소(澤澤大笑)하다', 하늘을 바라보는 웃음을 '앙천대소(仰天大笑)하다'고 한다 아울러서 손뻑치며 웃는 웃음은 '박장대소(拍掌大笑)하다'고 하며 깔칼대며 웃는 것을 보고 '가가대소(阿阿大笑)하다'고 한다. 이 밖에 웃음에 대한 소리 증심의 표현으로는 '방소(放笑)하다(방자하게 웃다), 소쇄(笑殺)하다(웃어넘기다)'와 같은 말들이 있다. 주로 한자어 계통의 말이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눈에 띄는 점은 소리의 크기가 작은 경우에 대한 표현은 찾아 보기 어렵다는 점 이다. 물론 양태적인 것이긴 하지만 소리 없이 입을 약간 벌리고 웃는 모양을 '빙그레'라고 함은 고유어계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
이상에서는 소리에 따른 웃음의 낱말겨레를 알아 보았거니와 양태(모습)의 변화에 따른 갈래를 알아 보도록 한다. 먼저 얼굴의 모양을 중심으로 한 표현을 살펴 보면, '환소(歡笑)하다(즐겁게 웃다), 담소(談笑)하다(이야기하며 즐겁게 웃다), 언소(탐笑)하다(이야기하며 웃다)'와 같은 말들이 있다. 이 밖에도 얼굴 모습의 변화와 연관한 표정을 드러내는 말로는 '교소(嬌笑)하다(요염하게 웃다), 교소(巧笑)하다(사랑스럽게 웃다)' 와 같은 꼴들이 있다. 얼굴 표정의 변화와 함께 입 모양의 변화를 중심으로 하는 낱말겨레에는 어떤 표현들이 있는가 알아본다. '부드럽고 가벼운 입모양의 변화'와 '소리가 없는 의미특성' 을 드러내는 말에는 '신소(笑)하다(약간 입을 벌려 웃다), 미소(徵笑)하다(소리 없이 웃다)'와 같은 한자어 계통의 말이 있고, 고유어 계롱의 말로는 '방긋하다, 방글거리다'의 쿄현이 있다. '방긋하다' 는 일회성의 동작을 드러내고, '방글거리다'는 반복성의 의미 특성을 갖고 있다. 입 모양의 변화와 함께 눈 모양이 달라지면시 짓시능을 하는 말이 있는바, '상긋하다(일회성)/상글거리다(반복성)'가 그것이다. 한편 입과 눈 모양의 달라짐을 따라 드러내는 웃음의 낱말겨레에는 '상긋방긋하다(일회성)了상글방글하다(반복성)' 와 같은 형태들이 있다.
웃음의 정도가 좀더 심해지면, 신체의 특정한 부분의 달라짐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넬소(絶笑)하다(아주 지지러지게 웃다), 배꼽잡다{배에 통중을 느껀 양으로 웃다), 요절복통(腰絶腹痛)하다(허리가 굽어진 양으로 옷다)'와 같은 것이 그러한 예다. 앞에서 풀이한 웃음은, 겉과 속을 의도적으로 두들겨 맞추는 식의 것이 아닌 자연발생적 인 경우이다. 하지만 혼히 복선이 깔려 있거나 정상이 아닌 웃음을 일컫는 말들이 있다. 배해수는 이를 내면과 외면의 어긋남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나(1982), 이를 뭉뚱그려 소개하기로 한다. 이런 경우 의도성이 있고 없음에 대한 풀이는 주관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에 객관성이 결여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정상적인 웃음이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면서 낱말겨레란 관점에서 간추려 가기로 한다.
웃는 사람의 마음 속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전제 아래 비정상적인 웃음으로 보이는 경우에는 '실소(失笑)하다(웃지 않아야 할 적에 자신도 모르게 웃는 것), 가소(假笑)하다(거짓으로 웃다), 습소(濕笑)하다(어쩔 수 었이 웃다), 헛웃음치다(겉으로만의 표정으로 웃다). 등의 표현이 헤 당된다고 본다. 그러나 정확하게 그 개념을 가려 내기란 쉽지 않다 이 밖에도 웃는 소리나 모습을 강조하여 드러내는 웃음에 대한 말이 있으니, 히소(怪笑)하다(괴상하게 웃다),광소(狂笑)하다(미친듯이 웃다), 치소(燒笑)하다(바보처럼 웃다),빈소(傾笑)하다(찡그려 웃다)' 와 같은 표현들이 있다 서시빈목(西施微目)이라고 하거니와 서시란 월 (越)나라의 미인이 여러 사람 앞에서 얼굴 한번 찡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이런 고사가 생겼다. 미인의 껑그린 듯한 웃음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웃음이라니 (속이 좋지 않아 찡그릴 수도 있을텐데)
웃는 사람 자신이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젖어 그것을 웃음으로 드러낼 수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본래 웃음이란 개념이 갖고 있는 마음 속의 기쁨이나 즐거움은 배제된다. 먼저 열등감에시 말미암은 웃음의 말겨레를 찾아 보면, '검소(劒笑)하다(원한 어리게 웃다),첨소(請笑)하다(아첨하는 웃음을 짓다),간소(好이)하다(간사하게 웃다), 미소(媚笑)하다(아양을 떨며 웃다), '선웃음치다(미숙하게 웃다),매소(賣笑)하다(술자리 등에서 웃음을 팔다), 눈웃음치다(눈으로 웃다)'와 같은 표현들이 있다. 반면에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웃음에 드는 형태로는, '치소(?笑)하다(악의 있게 웃다), 회소(誠笑)하다(실없이 놀리는 양으로웃다), 비웃다(업신여기는 양으로 웃다), 조소(빼笑)하다(비웃다의 한자어)' 등이 있으며, 업신여김의 의미를 드러내는 표현에는 앞에 든 것 밖에도 비소(鄧笑)하다, 암소(暗笑)하다, 고소(苦笑)하다(쓴웃음짓다), 비소(鼻笑)하다(코웃음을 치다), 기소(欺笑)하다(남을 업신여기고 웃다), 냉소(冷笑)하다(찬 웃음짓다)' 등이 있다. 이와 더불어 자기만 못한 사람을 가볍게 여기는 것으로 '경소(理笑)하다(가볍게 여기다), 일소(一笑)하다(일회성), 민소(憫笑)하다(민망히 여겨 웃다), 비소녕F笑)하다(비난하는 듯 웃다], 저소(認笑)하다(잔소리격으로 웃다), 비소(排笑)하다(비방하듯 웃다), 기소(謙笑)하다(헐뜯듯이 웃다)'와 같은 표현이 있다.
웃는 동작은 그 내용의 감정이 어떠하냐에 상관없이 안에서 느끼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인가 감정에 옷을 입히는 동작이 웃음일진대 그 옷의 본체 (몸)는 웃는 사람의 기분이나 즐거움, 노여움, 의향과 같은 감정과 사고라 할 것이다. 옷의 필요성이 실용과 심미적인 측면 모두에 있듯이 웃음도 여러가지 복합적인 말미암음에서 비롯된다. 오손도손 서로가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하는 데서 오는 화합의 웃음이 드러내는 소리나 그 모양은 분명 우리들의 삶에 큰 위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12-11. 비와 돌림
보통 비가 오는 날에 어린 모종을 내면 잘 살아 난다고 하여 '비 오거든 산소 모종을 내라'는 속담이 생겼을까. 한마디로 산소를 좋은 곳에 모셔서 자손을 번영할 수 있도륵 하라는 교훈적인 말이다. 공기중에서의 수증기가 대기권의 높은 곳에서 찬 기운을 만나 방울이 되어 내리면서 다른 물방울과 합쳐서 떨어지는 물방을을 우리는 '비' 라고 한다. 비의 본질은 물방을(물)이요, 그 속성은 바다에서 하늘로 다시 하늘에서 바다로 돌아가는 순환성 곧 돌림에 있다고 하겠다. 순풍우조(順風雨調)란 말이 있듯이 비가 적절하게 내리지 않으면 큰일이요, 너무 내려도 큰일이다. 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고리에 고리가 걸리어 하나의 줄올 잇듯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치로 플이할 수 있다. 바다와 강에서 그 많은 수증기(김)가 피어올라, 기압의 골짜기를 따라서 구름의 바다를 이루게 된다. 실상 우리들이 눈앞에 바라다 보이는 바다와 강의 믈이 땅 위에 흐르는 물의 모습이라면 비는 땅 위의 물이 구름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 있다가 다시 이 대지에 내리는 물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살아 가는 삶의 현상 자체가 먹고 먹히며 살고 죽으며, 죽고 다시 살아가는 삶과 죽음의 연쇄적인 현상이라고나 할까? 일종의 돌림현상이라 해도 될 것 같다.
피는 우리 몸속을 흐르는 동맥과 정맥의 통로를 따라 돌아가면서 골고루 필요한 영양을 대어 주며, 필요없는 찌꺼기를 거두어 간다. 이러한 돌림현상 곧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계속됨으로써 우리의 목숨은 늘 힘을 얻으며 할기차게 움직일 수 었게 된다. 앞에서 '똥'이 '뒤'에서 비롯되었음을 얘기하였거니와, 원천적으로 순환파정을 마무리하는 끝내기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 결과 즉 '뒤`에서 비롯한 말인 '똥' 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리라. 비나 피, 모두 물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피'는물이 존재하는 하나의 변이형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비'가 무생물로서 우주 공간을 떠돌아 다니는 것이라면, '피'는 생물의 몸 속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돌아다니는 물인 것이다. 옛말에 '물'은 땅 이름이나 사물의 이름으로써 '니(꾀)'와 같은형태로 쓰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삼국사기) 권 37 에 나오는 '미추흘(柰鄕忽). 내미 (內米)' 둥이 그러하다. 히(海柰 ; ((제중), 미더덕 (바다의 더덕), 미나리 (((초두해) l5-7), 미 역 (미 +역괴>미역 ;(박해), 미여기 (>메기, (시해)' 와 같은 어휘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물은 '믈/끼/미/되'와 같은 여러 가지 변이형으로 실현된다. 이 가운데에서 '미 (뫼)'는 소리의 느낌으로 말미암아 서로 다른 뜻을 가진 형태로 실현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비'와 '피'가 아닌가 한다. 한마디로 'ㅁ/ㅂ/ㅍ'이 다를 뿐 나머지는 같은 모음 이(ㅣ)에 그 터를 대고 있다.
소리의 느낌으로 보면 미음(ㅁ)은 예사스런 소리이니 보통 땅 위에서 예사롭게 존재하는 물이요, 비읍(ㅂ)은 무성파열음으로서 두 입술이 닫혔다가 '먹'하는 소리가 나니,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져 부서지는 비 '인 것이다. 한펀 피읖(ㅍ)은 미음(ㅁ), 비읍(ㅂ)과 같은 두입술소리로서 파열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더 거센 느낌을 준다. 예컨대 '피가 괄찰 솟는다'는 표현이나, 심장으로부터 혈관을 흐르는 피의 박동 소리 등은 확실히 거센 느낌을 준다. 땅 위에 내린 비는 마치 피가 혈관을 따라 흐르듯이 냇물에서 다시 강으로 흘러 바다에 이른다. 이떻게 흘러야 할 비가, 그리고 피가 흐르지 않고 괴면 그곳에는 정지와 부패와 죽음이 있을 따름이다. 지구가 밤과 낮의 가림 없이 돌아가듯 비도 땅 아래에서 땅 위로 돌며, 피도 온 몸을 똘아가는 것이다.
강물이 흐르는 곳에 마을이 셍겨나고 다시 한 부족과 국가가 이루어지며 사람들의 삶의 본거지가 만들어진다. 피 또한 온몸이 살아가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강물이요 뿌리깊은 샘뜰인 것이다. 이러한 곳에 삶의 가능성은 실현되고, 사람은 인식과 사랑에 눈올 뜨게 된다. 비는 지구에서 살아 가는 생물 모두에게 피요, 피는 우리 개개의 동물에 있어 비가 된다. 지역에 따른 '비'의 방언형을 보면 '바이(평북 연풍), 비 (우리나라 전역), 빙이(경남 밀양, 김해, 합천. 거창), 줄삥이(강원 춘성). 흐림(합남 풍산. 갑산/평북 후창)'의 형태들이 있다. 비와 상관을 보이는 낱말겨레로는 빗믈, 빗밑 (오던 비가 그치어 날이 완전히 개기까지의 파정), 빗방울, 빗소리' 등의 형태들이 있다.
비가 식물성의 색깔이라면 피는 동물성이다. 동물은 식물을 바탕으로 하여 살아 간다. 비와 피의 원형 은 '미' 라고 하였거니와, 온 누리를 뒤덮는 모든 생명의 샘은 하나로되, 그것은 이 지구를 감싸고 도는 물이다. 그래서 배달겨레의 뿌리인 단군은 물과 땅의 신인 '고마(곰)'에게 정성어린 제사를 올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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