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8. 힘과 해 (2/2)
8-4. 머리와 마립간(麻立干)
'머리카락 뒤에서 숨바꼭질한다'는 속담이 있다. 머리카락 뒤에 숨어서 어찌 안 보이기를 바랄까. 얕은 꾀로 사람을 속이려고 하나 곧 들통이 나는 것을 이른다. 머리는 사람의 신체 부위로 보아서 가장 높은 데 있기도 하거니와 사람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생물학적으로도 모태 속에서 태아가 머리부분부터 성장한다는 보고가 있다. 피부의 감각에 따른 촉각만 제외한다면 시각, 청각, 미각, 후각이 모두 머리 부위에달려 있다. 감각기관은 물론 언어기능이 뇌의 우쪽 반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유의해야 할 일이다. 요컨대 머리는 사람의 몸을 움직이는 의사결정의 총지휘부이다. 지휘부가 바로 서면 나머지 지체들은 탈없이 환경에 적웅하게 되고 부분들이 맡은 바 구실을 해 내는 것이다. 옛말을 더듬어 보면 '머리 ((용가) 95)' 는 '마리 ((석보) 6-44)' 로도 쓰인다. 일종의 모음교체에 다른 형태의 바뀜이라고 하겠다. '마리'는 '머리털'의 뜻으로 쓰이다가 '머리'에 와서 머리[頭]를 가리키게 되 었다. 오늘에 와서는 '마리' 가 수량의 단위를 나타내는 의존명사로 쓰이게 되었는바, 기본적인 속성은 한가지로 보인다. 즉 윗부분이면서 가장 높은 것,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치환할 수 있으니까.
'마리'가 '말'로 줄어들어서 '크다. 좋다'의 뜻을 드러내는 접두사로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때 임금의 칭호로 불리던 '말한'이 그러하며 현대어에 와서 '말개미, 말거머리, 말곰, 말나리, 말냉이, 말다래, 말매미, 말박(큰 바가지), 말벌, 말선두리(물방개)' 등이 바로 그러한 보기들이다. '머리'와 '마리'를 하나의 뜻에서 분화되어 나온 것으로 가정할 수 있을 때 '멀리'와 '멀다'도 하나의 장으로 묶일 가능성이 있다. '마리/머리'는 높이 있는 공간상의 특징을 드러낸다고 하였다. 새가 높이 날아오르면 넓게 바라다 볼 수 았는 것처럼 낮은 장소에서 보다는 높은 장소에서 더 많이 더욱 널리 살필 수 있게 된다. 결국 '멀리'와 '멀다'도 높은 데서 보는 그러한 공간지각을 바탕으로 해서 분화되어 나간 형태가 아닌가 한다.
'마루'를 생각해 보자. 산마루, 고갯마루 흑은 대청마루와 같은 형태들이 그러한 테두리에 드는 것들로, 좀더 높은 곳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중세어 '마리 (머리)-' 를 중십으로 한 낱말의 겨레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마리-/머리-'의 낱말겨레 1) '마리_'계-마리 ((석보), 6-44), 마리ㅅ골((한청), 150 b), 마리다((한청), 145 d), 말 더휘가((유씨명) 말마얌이 (유씨명))등. 2) '머리-'계-머리 (頭, 遠 ; (석보), 6-32, (석보) 6-3), 머리맡((월석), 10-10), 머리ㅁ놈((훈몽) 상 29), 머리보다(멀리보다, ((유합),하 32), 머리지어 ((한중록) p. 450), 머리크락((가례해), 5-34), 머리털 ((소해), 3-lO), 머리터럭 ((능엄) 10-82), 머리톄 ((번소), 1O-27), 머리ㄷ골 ((구황간), 6-44), 머리뎡바기 ((월석), 2-41), 머릿조조리 ((월석), 2-41) 등.
보기에서와 같이 '머리-' 계의 말이 더 넓은 분포를 보이고, 특히 '마리-'계는 접두사로서의 발달이 눈에 뛴다. 이는 다시 현대어에 와서 '크다, 으뜸'의 의미를 더하는 접사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오늘날 방언에서는 '대갈-'계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방언분포를 살펴 보면, 머리 (한반도 전역), 대가리 (경기, 강원, 충청, 전북 대부분 지역/전남 영광 장성 담양, 곡성, 구례, 광주, 광산, 함펑, 목포, 무안, 영암, 나주, 고흥, 장흥 해남, 완도/경북 울진, 봉화, 영주, 영양, 청송, 영덕, 안동, 상주, 선산금릉, 연천, 경주, 월성, 대구 경산 청도 성주 고령/경남 함천, 밀양, 울주, 울산, 하동, 진주, 진양, 마산, 동래, 부산), 대갈(함남 신고산, 안변, 덕원, 문천, 영흥, 정평, 함흥, 오로 신흥, 홍원), 데구리 (제주 전역), 대갈통(전남 지 역/경북 김천, 금릉/경남 함안, 산청, 진주, 진양, 사천), 대 갈뺑이 (전북 김제 정읍/경남 합천, 밀양, 진주, 진양), 대가빼기 (전북 김제, 정읍了경남 함천, 밀양, 진주, 진양, 통영 마산 거제 남해), 대그삥이(경남 함안, 고성, 마산), 대가빠리 (경북 김천, 금릉, 영일, 칠곡),대갱이 (전남 광주, 광양, 함평, 나주, 영암, 해남, 강진, 진도, 완도/제주 전역), 대 망생 이 (제주 전역), 골(함남 신고산, 안변, 덕원, 문천, 영홍, 정평, 함흥, 오로, 신흥, 홍원) 등과 같다. 중세어에서는 '대가리 ((월석), 23-94)' 가 본시 '껍질'의 뜻으로 쓰이었다.그러니까 머리는 얼굴을 포함한 상체부위지만, 대가리는 머리의 겉부분 곧 껍질인 셈이다. 오늘날에는 흔동하여 쓰는 말이 되었다. 흔히 '머리'에 대한 비속어 정도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8-5. 팔과 발
'팔이 들이굽지 내굽나 ?' 생김새로 보아 팔은 안쪽으로 들이굽게 되어 있다. 자신과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이익이 되게 하고 정이 쏠리는 것은 모두에게 공통된 마음, 인지상정이라 할 것이다. 머리에서 결정된 판단의 대부분은 팔의 움직임을 따라서 그 목적이 이루어진다. 원시적인 농경과 목축에서 시작하여 고도한 문화형태에 이르는 인간의 활동 중 팔이 관여하지 많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우리의 마음을 파고드는 감명 깊은 음악과 그림이 그러하고 문학작품이 그렇다. 팔은 사람이 곧게 뒤로 기어다닐 때의 부담에서 벗어나 공간적인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옛말을 보면 지금의 팔은 'ㅂ ((능엄), 8-1O4)' 이었고 오늘의 발[足]은 그대로 '발-((능엄경), 1-68)' 이었다. 모음의 음상만 다를뿐 거의 같은 형태로 보인다. 그러니까 몸의 윗부분에 있는 'ㅂ'은 팔이 되었고 아랫부분의 '발'은 그대로 발이 된 셈이다. 오늘의 '팔'이 된 'ㅂ'은 히읗곡용(ㅎ)의 특징을 보이는 말이었는데 합쳐져서 'ㅂ~ㅍ>팔'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ㅂ'은'발'과 표기가 다른데 무슨 근거로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느냐고 반문할 여지가 있다. 옛말에서 오늘의 '밟다'에 해당하는 말이 'ㅂ다(踏 ; ((월석), 21-1O2)' 였으니, 자연 그 둘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발과 팔은 몸에 달려 있는 지체로서 다 함께 땅을 기어다니고 나무를 기어 오르는가 하면 물 속에서도 앞과 뒤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보아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팔에 관련하여 '수완이 있다, 솜씨가 좋다'는 말을 한다. 수완이나 솜씨는 사람의 재능을 손이나 팔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상황에 알맞게 큰 무리 없이 적응해 가거나, 같은 일을 했는데 다른 사람보다 횔씬 보기 뭏고 효과 있게 하는 경우에 수완이 있고 솜씨가 좋다고 한다. '솜씨'는 손의 쓰임 곧 손놀림을 의미하는데 어떤 일을 해 놓은 결과를 일컫기도 한다. 그럼 'ㅂ/발'을 중심으로 하는 중세어의 낱말겨레를 알아 보도록 한다.
'ㅂ'과 '발' 의 낱말겨레(중세어) 1) 'ㅂ-'계 -ㅂ (ㅎ)((능엄) 8-1O4), ㅂ덩(팔짱 ; (금삼), 3-4), ㅂ독(팔꿈치 ; (중두해) 16-24), ㅂ쇠(팔쇠 ; (초두해) 20-9), ㅂ다(踏; (월석) 13-58) 등. 2) '발-'계-발(능엄), 1-68), 발 휘 (발더퀴 ; (역해보) 51), 발돕(발톱 (박해), 중 상 47), 발뒤측((동문) 상 16), 발등거리 (倒掛 ; (물보), 발목(역해) 상 36), 발바당((역해보) 32), 발ㅂ다(발을 베다 ;(중두해), 1-52), 발ㅆ개 (한청), 332 b), 발자곡(발자국 ; ((역해보) 22), 발자최 ((월 인) 4), 발ㅊ((가례해), 5-16), 발헤엄 ((유씨명) 5), ㅂ귀머리 (복사뼈 ; (구급간) 1 -44), ㅂ둥(발등; (월석) 2-4O) 등. 3) 'ㅍ-'계 ㅍ((훈몽) 상 26), ㅍ거리 ((한청) 17 d), ㅍ구미 ((왜해) 상 17), ㅍㄷ ((어록), 39), ㅍ독((사성), 상 61), ㅍㅁㅎ다 ((한청) 208 d), ㅍ목((역해), 상 29), ㅍ버히옷((물보), ㅍ쇠 ((초박해), 상 20), ㅍ지((훈몽) 중 28) 등.
'ㅂ~ㅍ'이 공존하다가 'ㅂ~발'이 음운론적으로 층돌하는 까닭에 아예 'ㅂ>ㅍ>팔'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본시 언어의 공시태란 순수히 공시적인 모양으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통시태란 전단계의 시대에 쓰이던 언어들이 쌓인 것임을 생각해 볼 때, 공시태는 통시태의 복합형태라고 할 수 있다 헌재 쓰이고 있는 '팔`의 방언들을 보면 잘에 접사들이 붙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파리 (함북 경원, 경흥), 팔때기 (한반도 대부분 지역), 팔띠기 (경북 경주, 칠곡. 월성), 팔팅이 (경북 안동. 의성) 등. 이에 비하여 '발[足]'은 접사의 달라붙음이 활발하지 않다. 발보다 팔이 더 많이 쓰인다는 점이 반영된 것일까.
8-6. 힘과 해
어떤 물체에 작용하는 두 힘이 맞서 결국은 아무런 힘도 작용하지 않은 것과 같게 되는 수가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물체가 '힘의 균형상태'에 놓여 있다고 한다. 가만히 있는 물체에 어떤 운동을 일으키거나 움직이고 있는 믈체의 속도를 변화시키거나 정지시키는 데 작용하는 기운을 '힘'으로 정의한다. 힘은 사람이나 동물이 스스로 움직이거나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하는 데도 작용한다. 우리가 살아 가는 과정이나 위대한 대자연의 움직임은 결국 나름대로의 에너지 곧 힘에 따라서 좌우된다. 에르곤이라 하여 정지상태에 있는 힘을, 에네르기아라고 하여 운동상태에 있는 힘을 표현하거니와, 만믈은 어떤 상태에 있건 힘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이런 힘을 알아차림에 있어 그 근원은 어디에서부터 비롯하는 것으로 보았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해의 속성에서 힘의 원천이 촐발한 것으로 본다. 우리 조상들은 우리가 밥을 먹고 사는 일, 아궁이에 불이 타오르는 것, 꽃이 계절을 피어서는 지는 것, 밤과 낮이 서로 바뀌어 하루 또는 한 달, 그리고 한 해를 이루게 하는 모든 힘이 해를 중심으로 하는 데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지금도 지역에 따라서는 '힘'의 방언형이 '힘 -/심-' 계로 나뉘어 쓰이고 있다. '힘' 은 경기 포천/충남 논산/전북 익산, 이리, 진안/경북 봉화, 영주, 영덕, 안동, 영천, 경산, 경주/황해 장연/함북 성진, 청진, 회령, 종성, 경흥/평남 전역에서, '심 '은 경기,강원, 층청 전지역/황해 해주, 옹진, 은율, 장연/함경 대부분 지역에서 쓰인다. '심 '의 형태를 분석해 보면 '시-+ㅁ>심'으로 풀 수 있다. 여기서 '시다' 는 힘이 강하거나 마음이 굳고 세력이 큼을 나타내는 '세다[强]가 단모음화하여 쓰이는 방언형(핑안, 강원 등)이다. 세다'는 중세국어에서는 '셰다'로 나타난다. 이남덕이 지적한(1985)바와 같이, '셰-' 의 '셰 '는 '닷쇄, 엿쇄 '의 '-쇄'와 같은 계통의 말이며, '한 살, 두 살'의 '살'이 중세어의 '설'과 같은 형태이며 동일한 의미 해 [年]'를 뜻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그는 특히 '새~쇄'가 넘나듦을 지적한다. 음운의 변천으로 볼 때 시옷(ㅅ)은 히읗(ㅎ)으로 넘나들거나 음가가 소멸되거나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를 보인다. 간추려 말하자면 '해 (ㅎ)'는 한편으로 '새 ~쇄 (셰>세 ~셔'의 꼴로 살아남기도 하고 해 -' 계열로 바뀌거나 아예 '-웨 ~애'계열로 변해 버렸다는 말이다.
태양의 속성은, 고도의 열과 빛을 수반함으로써 태 양계에 존재하는 모든 항성을 움직여 간다는 데에 있다. 거기다가 그 엄청난 무게 곧 중력에 따르는 힘은 우리 조상들에게 크나큰 경이로움과 숭배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켰을 법하다. 이같이 태양을 숭배하는 사상은 인류의 어떤 사회에서도 그 혼적이 엿보인다. 중국의 '왕(王)'이 그러하며 이집트의 '파라오', 신라의 '박혁거세 (朴赫居世)'가 그러한 경우이다. 고대 글자의 변천과정을 보면 '왕(王)'은 불이 타오름을 상징하였다. '파라오'는 '큰 집'이라는 뜻으로 왕은 태양의 신인 '라' 의 아들이며 제사장이 된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박혁거세는 '태양의 밝음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자'라고 규정되어 있다.
모든 자연현상의 기본원리 가운데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은 힘의 원리라고 샘각한다. 힘에는 여러 가지의 갈래가 있다. 소유의 힘, 지식의 힘, 인격의 힘, 신앙의 힘, 무게의 힘 등 실로 많은 힘이 있다. 힘이 있는 쭉은 없는 쪽을 지배하며, 힘이 없는 쪽은 그 다스림을 받게 된다. 개인적으로든지 민족적으로든지 간에 우리들은 힘을 길러야 한다. '힘 '과 관련된 말로는 '심-/힘-'계의 형태가 있다. '심-'계에 드는 것으로는 '심들다, 심다(풀, 나무 등을 땅에 파묻어 나름대로 힘껏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동작), 심기다'와 같은 형태가 있고, '힘-'계에는 '힘껏, 힘내다, 힘닿다, 힘들이다, 힘부치다, 힘쓰다. 힘없다'와 같은 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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