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상류의 팔당은 ‘바다나루’로 불렸던 곳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한강을 이루고, 그 강변에 나루가 형성되었으니 ‘가람’(강)이 ‘바다’처럼 생각되어 붙은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문헌에서는 이 지역을 ‘도미진’이라 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광주목 동쪽 10리 양근내 대탄 용진’의 하류에 있는 나루를 ‘도미진’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대탄’은 ‘한여흘’로, <용비어천가>의 한강 지류를 설명한 곳에 나오는데, 남한강의 이포(배애)를 지나 양근군에 이른 나루다. 북한강 줄기는 가평의 안반여흘을 지나 양근의 선돌나루(입석진)를 거쳐 도미진에 이른다. 두 문헌에서 ‘도미진’은 남·북 한강이 만나는 지점의 나루로 설명했으므로, ‘도미진’은 팔당 근처가 된다.
<용비어천가>에서는 ‘도미진’의 다른 이름으로 ‘두미진’이 있었음도 기록했는데, 일반적으로 고구려말에서 ‘물’을 뜻하는 차자 표기가 ‘매’(買)였음을 고려한다면, ‘두미진’은 ‘두매’가 변한 말일 가능성이 높다. 곧 ‘두물’의 다른 표기인 ‘두매’나 ‘두미’가 ‘두미진’으로 바뀌어 굳어진 형태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구체적인 근거는 없으나 백제의 ‘도미 설화’도 도미진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개루왕의 핍박을 피해 도미 부부가 강물 따라 고구려로 갔다는 이야기를 상고하면, 그곳도 한강과 관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양수리’가 있고, ‘두물머리’도 작은 마을 이름으로 쓰이는데, 이는 나루 기능이 약화되고 물길이 변한 데서 까닭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허재영/단국대 인재개발원 교수
고개인사
북녘말
남북에서 흔히 쓰는 ‘목례’는 남북 두루 ‘눈짓으로 하는 인사’로 풀이하고 있다. 눈짓으로 하는 인사는 어떤 행동을 가리키는 것일까? 고개를 숙이는 정도에 따라 인사를 구분해 보면, ①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살짝 움직이는 것 ②시선을 아래로 하고 머리만 숙이는 것 ③허리까지 숙이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국어사전 풀이에서 ①번이 목례라 하겠는데, 이 인사는 동급의 사람이나 아랫사람에게 할 수는 있지만 윗사람에게 하기는 곤란하다. 설령 허리를 숙여서 인사했다고 하더라도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은 예의 바른 인사가 아니기 때문에 윗사람에게 할 수 있는 공손한 인사 방법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목례는 ②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많아서 혼잡하거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윗사람이라 하더라도 ②번의 방법으로 인사를 하고, 이를 목례라 하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서 목례와 ‘눈인사’의 뜻이 같다고 보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①번 인사를 목례로 본다고 하더라도 ②번 인사를 눈인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②번 인사를 목례라고 할 수 있지만, 눈인사라고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동의어로 보기 어렵다. 고개인사는 ②번을 가리키는 북녘말이다.
한편, 북녘말 벙어리인사는 ‘인사말 없이 몸동작만으로 표시하는 인사를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남북이 쓰는 ‘묵례’와 뜻이 비슷하지만 ‘놀림조로 이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북녘말 ‘겉인사’는 ‘겉치레로 하는 인사’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너무
근래 들어 '너무 예쁘다' '너무 맛있다' '너무 착하다' '너무 기쁘다' '너무 괜찮았어' '너무 좋아' '너무 감사합니다' 등 '너무'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원래 '너무'는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의 뜻으로 '너무 크다' '너무 어렵다' '너무 위험하다' '너무 늦다' '너무 멀다' '너무 많다' 등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너무 예쁘다'는 지나치게 예뻐서 문제가 된다는 부정적 의미가 아닌 이상 사용해선 안 되는 표현이다.
'너무' 하나로도 부족해 '너무 너무 예쁘다' '너무 너무 감사해요'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말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우수하다는 이유 중 하나는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정말 예쁘다' '진짜 맛있다' '매우 착하다' '무척 기쁘다' '아주 괜찮았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등 적절한 표현을 제쳐 놓고 어법에 맞지 않는 '너무'를 남용할 경우 다양한 우리말 어휘를 스스로 사장시키는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 특히 방송 프로그램의 일부 출연자가 '너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어린이들은 무심코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너무'는 부정적 의미에만 쓰고 그 외에는 '정말' '무척' '매우' '굉장히' '아주' '대단히' 등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우리말의 풍부한 표현력을 살리는 길이다.
배상복 기자
글터 → 이글저글
태종우
음력으로 5월 10일에는 꼭 비가 오게 마련이요 그것을 태종우라고 부른다.
이씨조선 초의 일을 모조리 나쁘게만 얘기하고 있지만 권도로 뺏은 정권일지라도 잘한 것은 잘했다고 추어 줄만한 아량도 있어야 할 것이다. 실질상 이조를 창업하다시피 한 태종이 병석에 있으면서도 날이 가무는 것을 끔찍이도 걱정하더니, 결국 임종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자 유언처럼 말하였다.
"내 죽거든 상제에게 가 이 백성을 위하여 비를 내려 주십사 하겠노라"
운명하자 구름이 모여 들며 표연히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며칠을 계속하니 백성들은 모두 그의 은덕이라 하였다 한다. 그 뒤로 매년 틀림없이 왔는데 몇 해를 계속해 안 오더니 임진왜란이 일어났더라고 선왕의 영험을 말하는 이도 있다. 그래 농삿군들은 가무는 중에 헌릉 국기 날만 기다리는 풍습이 최근까지 있었다. 한시의 마지막 대가인 최영년은 이렇게 읊었다.
왕언거작인간우 - 왕의 말씀 인간의 비를 주마시더니 백일천봉인송뇌 - 밝은 메뿌리 우뢰소리 울려온다 만민함희선왕사 - 백성들은 모두다 선왕의 주심을 기뻐하고 오백년중년년래 - 5백년 뒤 지금까지 해마다 오네
시터 → 우리나라
의자 - 이정록(1964∼ )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스무살 초입 다리를 다친 적이 있다. 절룩거리며 걷다 보니,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만 눈에 들어와 깜짝 놀랐다. 안경을 처음 썼을 때도 그랬다. 사람을 볼 때 눈부터 보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르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 세상 떠난 남편뿐 아니라 꽃과 열매의 아픈 허리를 염려한다. 누구에게, 무엇에게 어떤 의자가 필요한지 훤히 꿰뚫고 있다. 당신 자신의 의자는 잘 챙기지 않으면서. 아, 나는 누구에게 푹신한 의자였던 적이 있었던가. 남을 앉히기는커녕 내가 앉은(을) 자리만 탓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