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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116 호
단기 4340. 1. 24 (음력 12.06) / 발행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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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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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新春문예 당선자는 '辛春고아'] 年수입, 소설가 100만원線…시인 30만원도 안돼 당선직후 반짝 원고청탁 몇개로 끝 작가생명 이으려 '재등단' 모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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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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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른 중반에 일간지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B씨. 그는 직장생활을 하며 글을 쓸 요량으로 취업문을 두드렸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결국 6개월을 세차장에서 일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재취업센터에서 그래픽 기술도 배웠지만 취업이 안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선 직후 반짝 들어온 원고청탁은 3곳이 전부였고, 원고료는 다해 봐야 10만원 남짓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시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묻더니 "차라리 라디오에 경품이나 신청하라"고 했다. B씨는 현재 문학과 관련이 없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2. 지난해 문예지 비평 부문에 등단한 김모씨는 2003년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된 작가다. 그는 작가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재등단'이라는 험로를 택했다. 문학계의 관심은 등단 이후 잠시 뿐이었고, 작품을 소개 할 지면을 얻는 것도 문예지 출신보다 힘겨웠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존재감은 희미해져 갔다. 김씨는 "신춘문예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데다 문학이 전반적으로 침체돼 전업작가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며 "문학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재등단 하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신춘문예의 계절이다. 이 시대 '문청'들이 겨우내 건져올린 삶의 편린들이 빛을 발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당선의 영광도 잠시 뿐. 그들 앞에 놓인 현실은 신춘(新春)이 아닌 신춘(申春)이다.
이들은 당선 이후 자신들의 처지를 '신춘고아'로 표현하며 탄식한다. 가난은 천형처럼 거치적대고, 길잡이가 돼 줄 선배들은 찾을 길이 없다. 해서 어떤 이는 등단의 영광을 뒤로 한 채 펜을 꺾기도 한다.
소설가 백가흠씨는 현대문학 2006년 12월호에 실린 <내 연봉은 포도나무 한 그루>라는 글에서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내 꿈이 연봉 600만원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소설가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신춘문예 등단작가 100명을 조사한 결과, 소설가는 연평균 수입이 100만원 가량이지만 시인은 30만원을 넘지 못했다. 문예지가 시 한편에 주는 원고료는 4만~10만원선. 하지만 현대문학 문학동네 등 5대 문예지를 제외하곤 원고료 대신 정기구독으로 대체하기 일쑤다.
이렇다 보니 등단 작가들은 집필활동을 위해 논술과외 학원강사 대필 등 부업을 뛸 수 밖에 없다. 가정주부와 학생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집필에만 전념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소설가 정모씨는 "출판물 교열로 버는 돈이 월 100만원도 안돼 가계 생활비는 맞벌이를 하는 아내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작가들의 숨통을 터주는 게 문화관광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이다. 이 위원회는 매분기 문예지 발표작품 중 우수작(4만~100만원)을 뽑는 한편, 매년 100여명의 작가(1인당 1,200만원)를 선정해 창작기금을 지원한다. 하지만 본보가 조사한 100명의 작가 중 한번이라도 창작기금을 받은 경우는 25%에 불과했다.
신춘문예 작가들이 '신춘고아'라고 자조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문예지 등단 작가와는 달리 작품을 발표할 지면을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문예지의 경우 등단 작가의 작품을 집중 조명하는 기회를 정기적으로 주지만, 신춘 작가들은 당선 이후 한두 차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전부다. 더욱이 지방지 신춘문예 출신은 중앙일간지 재등단이 작가로 살아 남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지방지와 중앙지 신춘문예에 연달아 당선된 한 작가는 "신춘 작가들은 매니저 없이 혼자 뛰는 연예인, 문예지 등단 작가들은 기획사에 소속된 연예인으로 보면 된다"며 "지방지 출신들은 중앙지로 재등단 하지 않으면 명함도 못 내미는 게 문학계 풍토"라고 지적했다.
2002년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등단한 한 작가는 "한해에 배출되는 신춘문예 당선자 10여명 중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경우는 1명 정도"라며 "8~9명은 근근히 작가생명만 이어가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고재학(팀장)·유병률·안형영 기자, 사진부 = 최흥수·배우한 기자 news@h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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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내 일이 바로 나의 왕국이다. / 토마스 칼라일 (스코틀랜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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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 - 道德經 : 第五章 (노자 - 도덕경 : 제5장) |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天地之間, 其猶倬葯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허이불굴, 동이유출, 다언삭궁 불여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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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 유재용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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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장
직역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아서 온갖 것을 풀 강아지처럼 할뿐이다. 성스러운 사람은 어질지 않아서 백가지 성의 사람들을 풀 강아지처럼 할뿐이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 같고 대피리 같도다. 비어 있는 데 구부러지지 아니하고, 움직일 수록 더욱 나온다. 말이 많으면 자주 곤궁해진다. 그 속을 지키느니만 같지 못하다.
해석
사람은 하늘에 인격적인 신이 산다고 믿는다. 그래서 예로부터 하늘에는 상제가 산다고 믿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은 이 신에 의해서 다스려 진다고 믿었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는 사상이다. 그리고 그 신은 선하고 어질다고 규정을 해 놓았다. 노자는 그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노자는 그것을 하늘과 땅이라고 표현을 한다. 이것은 다른 말로 自然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자연은 어질지 않은 것이다. 즉 누구의 사정을 봐주고, 그 이해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어질다는 것은 인간에게 축복을 내려 주는 신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즉 인간 본위의 사상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신이 있지만 그 신이 돼지를 위한 신이라면 그것은 인간에게 어진 신이 될 수가 없다. 그 신은 돼지를 위해서 인간을 사육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간뿐만 아니라 천지 만물을 공평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어질지 않은 것이다. 성인은 어질지 않은 사람이다. 즉 뭇 사람들을 똑같이 여길 뿐이다. 똑같이 대하고 그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이다. 친구라고 해서 편의를 봐주고,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불이익을 가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모든 사람이 동포가 되는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를 보라.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비어 있음이 있다. 하늘과 땅 사이가 가득 차 있다면 그곳에서 무엇이 나오겠는가. 컵에 물을 가득 채우면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것이다. 컵이 비어 있기 때문에 물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만물은 비어 있음에 의지해서 만들어진다.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진다는 것은, 착간이라고 보여진다. 즉 옛날에는 글자를 대나무에 썼었다. 따라서 그 중 한 대나무가 앞에 끼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침묵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필요한 말 이외에 떠벌리는 말은 자신과 남을 피곤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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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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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늘과 땅이 어질지 않아서 이 세상 만물을 추구로 보는구나. 성인이 어질지 않아서 이 세상 백성을 하찮은 존재로 보는구나.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은 것인가? 그 속은 텅비어 있지만 힘이 다하는 일없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 힘은 더욱 더 나온다. 말은 많이 할수록 통하지 않게 되니 마음속에 간직해 두는 것만 못하다.]
주
추구: 추는 마른 풀잎. 그리고 하상공 주와 왕필주에서는 추는 가축 사료. 구는 식용 동물로 해석하였다. 어느 쪽도 다 천지는 만물에 대하여 비정하여 무관심함을 강조한 말임. 탁약: 풀무, 대장간에서 사용하는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임. 중: 마음속을 의미함.
해
이 장도 난해하므로 옛날부터 주해에 여러 설이 있다. 그럼으로 번역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대체로 노자가 당시에 백성들이 위정자의 학정에 시달림을 받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쓴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지 사이는 풀무 속의 바람과 같다. 비었으나 그 힘은 무궁무진한 것이다. 이와 같은 천지의 법칙은 임금이 백성들을 건져내는 방책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딴판인 것이다. 노자는 자신의 도가 세상에 용납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잇다. 그러므로 자신의 교설을 말해 보아야 통하지 않으므로 말이 많으면 이수가 막힌다고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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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경제/경영/성공 |
세계를 움직이는 127대 파워 - 박태견 지음
POWER 021 제1세계 통상정책의 산실: 다보스 포럼
스위스 동북부 오스트리아와 접경한 산악 기슭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 다보스, 사시사철 은빛 눈으로 뒤덮여 있는 스키 유향촌인 이곳에는 평소 전세계에서 모여드는 관광객들로 크게 붐빈다. 그러나 단 한 번 매년 1월말, 이곳에는 스위스군경의 삼엄한 경계가 펼쳐진다. 지구촌을 움직이는 거물 정치인과 경제 석학, 금융인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평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들이 일제히 이곳에 모여드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이곳에서 매년 한 차례씩 열리는 세계경제포럼, 일면 '다보스포럼 The Davos Forum'에서 그해 세계 통상정책의 흐름을 앞서 읽는 동시에 세계경영의 노하우를 얻어가기 위해서이다. 이 포럼은 그만큼 해마다 전세계 곳곳에서 수천여 차례 열리는 각종 정규포럼 중에서도 최고의 권위와 비중을 자랑하고 참석자들의 면면도 대단하다. 여기에는 각국의 정치지도자와 경제책임자를 비롯해 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같은 국제금융기관 관계자, 다국적기업 총수, 경제학, 정치학, 철학, 예술 등 각분야의 세계 석학, 언론인등이 대거 참가해 세계경제 전망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업전략 방향, 새 과학기술의 가능성, 지역분쟁 타결방안 등 지구촌의 모든 현안을 놓고 열띤 토론과 설전을 벌인다. 글로벌시대에서는 더이상 경제가 정치, 군사, 외교, 문화와 별개 문제가 아님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역사현장이 바로 다보스 포럼인 것이다. 이밖에 다보스 포럼은 서로가 필요로 하는 최고급정보를 교환하는 동시에 막후 정치협상을 벌이고 고급 국제로비인맥을 서로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제공해주고 있다. 특히 냉전종식 후 기존의 세계질서가 전례없이 크게 요동치면서 다보스포럼의 진가는 더없이 큰 빛을 발하고 있다. 한 예로 1994년 1월 다보스 포럼에는 헬무트 콜 독일 총리를 위시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 라오 인도 총리, 부토 파키스탄 총리, 체르노미르첸 러시아 총리, 하산 요르단 왕세자 등 60여개국의 정부 지도자와 정부 대표단, 경제학자, 다국적기업 대표 등 800여 명이 대거 참석했다. 외형적으로는 세계 권력지도를 뒤바꾸는 정치협상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포럼에 참석한 아라파트 PLO의장과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별도로 단독회담을 갖고 2월 안에 역사적 평화자치협정에 서명키로 하는 역사적 합의를 도출해 전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받았다. 또 체르노미르진 러시아총리와 독립국가연합(CIS) 총리들은 (경제동맹) 재구축에 합의했으며, 인도와 파키스탄 및 여타 아시아 지도자들은 인도 대륙 일대를 중국을 능가하는 지상최대의 제조업기지, 곧 (제 2의 중국)으로 만들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다보스 포럼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주최측의 기조발표 및 토론 과정을 통해 드러난 제1세계의 새로운 글로벌 통상정책의 방향이었다. 이번 포럼의 대주제는 '세계경제의 기본적 가정에 대한 재정의'였다. 클라우스 슈바브 다보스 포럼 의장은 닷새간의 마라톤 토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전세계 경제전문가들에게 위촉해 작성한 '국제경제력에 대한 연례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국가간 경쟁력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1위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이 보고서는 이어 "세계경제가 전후 최악의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서서히 장기 회복기에 들어서고 있으나, 저임금을 무기로 내세운 개발도상국의 대대적 무역공세로 선진국은 산업공동화와 대량실업의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개발도상국의 저가품 물량 공세를 비판하였다. 일본의 무역흑자가 세계불황의 주범이라고 질타했던 1993년 포럼과는 180도 달라진 분위기였다. 1993년 포럼에는 "세계경제전쟁 Head to Head"의 저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레스터 서로 미국 MIT 대학 교수, 빌 클린턴 미국정권의 엔고 공세를 배후에서 주도한 프레드 버그스텐 국제경제연구소장 등 미국측 논객들이 나서서 구미의 입장에 서서 일본의 보호주의를 맹렬히 규탄했었다. 그로부터 1년 뒤 공격타깃이 최근 지구촌의 최대생산기지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동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으로 바뀐 것이다. 지난 1년간의 집요한 엔고 공세를 통해 일본의 상승세를 결정적으로 꺾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에 다보스 포럼은 일본의 뒤를 있는 새로운 위협으로서 동아시아를 선정, 완전 시장개방과 공정무역 공세를 시작했고 실제로 그해 세계 통상정책은 남북간 통상분쟁이 그 어느 때보다 심했다. 다보스 포럼의 개발도상국 공세는 그러나 새삼스러운 게 아니었다. 1992년 포럼 때에도 브리튼 당시 EC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우루과이라운드(UR)나 환경라운드(GR) 공세에 이어 경쟁정책라운드(CR)의 필요성을 강조해, 개발도상국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CR은 한마디로 개발도상국의 자국산업 보호주의정책을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브리튼은 담합에 따른 가격, 물량 조절과 입찰조작, 모기업과 하청기업간 연계에 의한 선진국기업의 시장진입 방해, 독점적 공기업의 지위 남용, 반덤핑 남발에 의한 경쟁제한 등을 구체적인 불공정 사례로 들며, 선진국들이 일치단결해 이같은 불공정을 시정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런 주장은 실제 요즈음 들어 하나씩 현실적 압력으로 출현해, 개발도상국들을 비명지르게 하고 있다. 다보스 포럼, 이곳이야말로 개발도상국들을 견제하는 구미 제1세계의 가공할 싱크 탱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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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빨래
내가 어릴 적에는 지금 같이 세탁기가 없었다. 작은 빨래는 대충 우물을 길어서 했지만 이불이나 한복 빨래는 멀리 시냇가에 가서 방망이로 두드려야 했다. 빨래 비누도 귀한 때여서 잿물에 빨래를 담그었다가 몽근 겨로 만든 새까만 빨래 비누를 발라 가면서 손으로 문지르고 발로 밟아야만 때가 빠졌다. 이렇게 힘든 빨래를 구정 가까운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해야 했다. 한 번은 나도 닭표 성냥 한갑과 짚 한 다발을 묶어 들고 어머니를 따라 빨래터에 간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솥에 뜨겁게 삶은 빨래를 이고 간 빨래터에는 아무도 없었고 빨래판 주변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다. 어머니는 빨래 방망이로 얼음을 깨뜨려 구멍을 내고 그 차가운 물속에 빨래를 헹구었다. 맨손으로 빨래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나는 약간 언덕진 곳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바라보았다. 한참 일을 하시던 어머니가 나를 올려다 보았다.
"추우면 짚불을 피워라."
짚불을 피우자 어머니가 빨래를 멈추고 다가왔다.
"너무 춥구나. 내 손이 내 손 같지가 않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 추우면 빨래 끝날 때쯤 다시 오너라. 들고 갈 것 도 있으니..."
어머니는 바가지로 물를 끼얹어 짚불을 끄더니 다시 빨래를 시작했다. 나는 좋아라 하고 집에 왔으나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있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상기야, 상기야, 이것 좀 받아라."
나는 깜짝 놀라 방문을 차고 나왔는데 어머니는 어느새 토방까지 올라와 서 있었다. 머리에는 빨래가 담긴 큰 널판지를 이고 한 손에는 수대를 들고 있었다. 나는 송구해 어쩔 줄을 몰랐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마당을 가로 질러 긴 철사줄에 이불빨래를 걸쳤다. 하얀 무명 빨래가 바람에 펄럭펄럭 성화난 듯 나부꼈다.
빗속에는 햇빛이 숨어 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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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이르는 길 - 강영계
제3장 논리적인 생각은 왜 필요한가
3.오류란 무엇인가
우리들은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흔히 많은 오류를 발견한다. 그러한 오류들은 논리적 추론이 부당할 경우에 발생한다. 다음과 같은 예들을 살펴보자.
예 1) 우리 아버지는 천재이다. 그러므로 나도 천재이다. 2) 나의 할머니는 나에게 객지에서 하숙하면 먹는 것을 가리지 말고 먹으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들보다 두 배를 더 먹어도 괜찮다. 3) 예수께서는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왼뺨을 맞았으니 오른뺨도 맞아야 한다.
추론이 타당성을 상실할 때 그 추론의 추리는 오류를 범한다. 오류에는 비형식적 오류와 형식적 오류가 있다. 논리적 규칙을 어길 경우 발생하는 오류를 형식적 오류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규칙과는 상관없이 언어의 애매함이나 논리적 관련에서 생기는 오류가 있는데 그러한 오류를 비형식적 오류라고 한다. 비형식적 오류의 예를 두 가지만 들어보기로 하자.
예 1) 저 남자는 키가 작다. 저 여자는 키가 크다. 그러므로 저 여자는 저 남자보다 키가 크다. 2) 이 여자 대학은 미인이 제일 많은 대학이다. 그러므로 이 여자 대학에 다니는 김양은 미인이다.
위의 두 경우 첫번째 예에서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의 크다와 작다가 정확하게 사용되지 못하였다. 크다와 작다는 상대적인 용어로서 문맥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이 여기에서는 무시되고 있다. 두번째 예에서는 전체가 가지는 성질을 부분에도 적용시키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예컨대 "한국 사람은 머리가 좋다. 그러므로 나도 머리가 좋다"고 한다면 이것 역시 전체의 성질을 부분에도 적용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두 가지 예를 들어서 오류를 범하는 추론을 살펴보았다. 이외에도 오류를 범하는 추론은 상당히 많다. 여러 개의 명제로 구성된 추론에서 특히 하나의 명제나 또는 그 명제 속에 있는 용어를 강조할 경우 흔히 강조의 오류를 범하기쉽다. "너희들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문장에서 너희들을 강조하면 다른 사람은 상관이 없다고 이해할 수 있고 이웃을 강조하면 이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우리들이 텔레비젼, 라디오 또는 신문에서 자주 대하는 선전 광고를 볼 때 우리들 자신의 추리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만일 "이 약은 당신의 간장에 좋다"고 할 때 이 약을 강조하면 다른 약이 제외되고 당신을 강조하면 당신 아닌 다른 사람들이 제외된다. "이 약은 당신의 간장에 좋습니다"라는 광고를 보거나들을 때 우리들은 아 바로 저 약이 나에게 좋은 것이구나라고 믿어버리는 경향을 가지기 쉬운데 이것은 우리들 자신이 강조의 오류에 빠지는 좋은 예이다. 만일 우리들이 "이 여자는 코와 눈과 입이 아름다우므로 미인이다"라고 추리한다면 이 추론 역시 오류를 범한다. 부분들의 성질이 아름답다고 해서 전체가 반드시 아름다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류는 결합의 오류이다. 결합의 오류는 부분의 성질을 가지고 전체의 성질을 추리하거나 또는 개별적인 요소의 성질을 가지고 집합의 성질을 추리할 때 발생한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언어의 애매함에서 나타나는 오류를 살펴보았다. 이제 논리적 관련에서 생기는 몇가지 오류를 살펴보기로 하자. 합리적인(또는 논리적인) 추론보다는 어떤 위력을 근거로 하여 추리할 때 그러한 추론은 오류를 범한다. "사랑은 최고의 힘이다", "신앙은 삶의 유일한 원천이다", "돈은 모든 것의 기본이다" 등의 문장을 보면 사랑, 신앙, 돈 등이 추리의 근거로 무조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위력에 근거를 둔 추론과 유사한 추론으로서 특정한 사람을 바탕으로 한 추론도 오류를 범한다. "나는 한낱 여자이므로 약하다", "어린아이의 그러한 말은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목사로서 말하는 것이니 당신은 내 말을 들어야 한다", "이 말은 석가모니의 말이니 너는 그것을 믿지 않으면 안된다.", "그 친구는 찢어지게 가난하게 자랐으니까 성격도 자연히 비뚤어져 있다"등과 같은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들 추론이 특정한 사람이나 환경 및 위치를 바탕으로 삼고 성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바탕이 타당하지 못할 때 역시 오류를 범한다.
어떤 명제를 거짓이라고 증명할 수 없는 한에서 그 명제를 참이라고 주장하여 성립하는 추론이 있다. "너는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천재이다"라고 할 때 이러한 추론은 사실 억설이다. "하느님이 안 계신 것을 증명할 길이 없는 한 하느님을 믿어라"와 같은 추론도 역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법정에서 비록 죄를 범하지 않았을지라도 자신이 무죄임을 증명할 수 없어서 결국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면 이 역시 무지에의 추론이 효력을 나타낸 것이 된다. 우리들 주변에서도 일제 치하 이후 오늘날까지 정통적인 종교 이외의 여러 가지 사이비 종교들이 난무하여 왔다. 이들 사이비 종교가 들고 나오는 것의 상당 부분은 무지에의 추론이다. "내가 여러분과 세계를 구원하러 온 참다운 구원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으니 나는 참다운 구원자이다"와 같은 주장이 이들 사이비 종교를 대변하는 자들이 말하는 내용으로 이것 또한 무지에의 추론이며, 일상인들이 이러한 무지에의 추론을 맹목적으로 따를 때 논리적 내지는 합리적인 생각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순수하게 형식적, 논리적인 추론의 차원에서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만 전체 삶에서는 활력소가 되는 추론의 종류도 있다. 아버지는 일찌기 암으로 세상을 떠나가 앓아누운 어머니와 나이 어린 두 동생을 보살피는 어린 소녀가 있다고 하자. 오랜 기간 집안을 돌보다가 먹을 것이 없어 어느 백화점 앞에서 몇십 만원이 든 백을 날치기하다가 붙잡혔다. 법정에서 변호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변호할 것이다. "이 소녀는 몇 년간의 소년원 생활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딱한 정상을 참작하여 관대한 처분이 내려져야 한다." 이러한 추론은 논리적으로 부당하다. 추론이란 어디까지나 논리적인 문제이다. 그러므로 삶의 문제는 논리적인 문제를 초월한다고 볼 수 있다. 위의 예를 우리는 연민에의 추론이라고 한다. 연민을 근거로 삼아서 추리함으로 논리적인 정확성을 잃게 되는 추론을 연민에의 추론이라고 한다.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머리가 좋지 않아서 성적이 나쁘게 나왔으니 이번만 보아주세요"라든가 "나름대로 진지하게 일해 왔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려서 동료들의 시기와 방해 때문에 진급이 늦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선처를 바랍니다" 등과 같은 예 역시 연민에의 추론이다. 연민에의 추론은 동정심을 바탕으로 삼으며 그것은 논리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연민에의 추론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동정심을 발동하여 그의 뜻에 따름으로써 기만을 당할 경우도 있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비록 그의 추론이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그 추론을 시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추론은 어디까지나 형식적, 논리적인 세계의 문제이지 삶 전체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산수가 수학이라는 학문의 한계 안에서만 효과가 잇는 것이고 사랑이나 미움이나 정열 등과는 상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음과 같은 예를 살펴보자.
"나는 아름다워." "어째서 그렇니?" "다른 사람들이 날보고 아름답다고 그러니까."
이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추론이 많은 사람들을 근거로 삼고 정당성을 주장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추론은 상대방을 찬성이나 반대로 짐짓 유도하기 위하여 충분한 자료와 증거를 생략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추론을 따르게 하려는 의도를 지닌다. "이 치약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훌륭한 치약이다", "이 오디오 시스템은 대재벌 기업의 제품이므로 성능이 탁월하다", "체육 정책은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므로 현명한 정책이다" 등과 같은 예들 역시 많은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은 항상 타당성이 있다는 무조건적인 전제를 내세우고 있으므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원칙은 논리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에의 추론으로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위력에의 추론과 비슷하게 오류를 범하는 추론이 있으니 그것은 권위에의 추론이다. 전문가나 성인이나 외국을 들먹이면서 상대방을 비합리적으로 설득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 권위에의 추론이다. "이 손톱깎이는 삐에르 가르댕에서 만든 것이니까 최고품이다", "이 말은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니까 너 같은 사람은 믿지 않으면 안된다", "이 노래는 분명히 좋은 노래이다. 왜냐하면 마이클 잭슨이 부른 노래이니까", 부룩 쉴즈의 미소는 여성의 이상적인 미소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부룩 쉴즈처럼 미소지어야 한다",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공자께서 말씀하셨으니 여러분도 그렇게 따라야 한다" 등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들 추론이 모두 무조건 어떤 권위를 바탕으로 성립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추론은 비합리적이요 타당성이 없으므로 오류를 범한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여보자. "당신은 미모사 꽃을 압니까?" "압니다." "그러면 당신은 이 봉지에 든 꽃을 압니까?" "모릅니다." "이 봉지에 든 꽃은 미모사 꽃입니다. 당신은 미모사 꽃을 안다고 했으면서도 이 미모사 꽃을 모른다고 했으니 그것은 모순된 말입니다." 이 대화의 경우 봉지라는 우연한 요인을 삽입하여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며 추리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추론은 오류를 범한다. 예컨대 수소가 기체라고 하는 명제 역시 타당하게 생각되지만 절대적으로 타당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수소가 기체라고 하는 것은 일정한 온도라는 우연적인 조건을 전제로 해서만 성립하고 수소는 낮은 온도의 조건에서 액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아직도 조상의 묘자리를 잘 썼더니 가문이 흥하더라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또는 눈에 핏발이 섰을 때 실에 바늘을 꿰어 바늘을 코 앞에 대고 바늘만을 노려보면 핏발이 가신다는 말을 믿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경우 눈의 핏발은 더 심할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자연히 나아질 수도 있다. 이것은 어떤 결과의 참다운 원인이 아닌 것을 참다운 원인으로 생각하는 경우에 성립한다. 또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구렁이가 뱃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꾼 다음에 이 애를 배었읍니다.", "용꿈을 꾸었는데 다음 날 복권이 맞아떨어졌다" 등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원인을 근거로 결과를 추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또다른 오류를 살펴보자. "너는 25세이니 결혼할 나이이다. 서둘러서 약혼을 하여라." 이 경우 25세가 반드시 결혼할 나이인지 아닌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25세이니 당장 약혼하여야 한다는 것은 선결 문제 요구의 오류를 범한다. 25세가 과연 여러 가지 상황과 합쳐서 결혼에 적당한 시기인지 아닌지가 먼저 밝혀진 다음에 약혼이나 결혼이 이야기되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전제에서 나온 명제가 결론에 똑같이 나오는 경우 그러한 추론이 범하는 오류 역시 선결 문제요구의 오류이며 특히 이러한 오류를 순환논법의 오류라고 부른다. 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내 아버지는 제가 나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베토벤은 악성이다." 순환논법의 오류를 범하는 추론에서는 사실상 형태만 추론 형식이고 아무런 추리 과정도 삽입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똑같은 말을 전제와 결론에서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또다른 종류의 오류가 있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 구입 문제로 회의를열었을 때 어떤 사람이 다음처럼 이야기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번 구입 시기에는 김홍신의 '인간시장' 전집을 20질 구입할까요?" 이 경우에는 어떤 저자의 어떤 책을 구입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몇 권 구입할 것인지 두 가지 문제가 논의되어야 할것이다. 만일 내가 처음 만난 젊은 여자에게 "당신은 그 사람을 사랑하기를 그만두었습니까?"라고 말하며 묻는다면 그 여인은 물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라고 말하며 당황하게 될 것이다. 이 물음은 여인이 지난 날 "그 사람"을 사랑했는지 그리고 지금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지의 두 가지로 분리되어져야만 할 것이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그러한 종류의 질문은 대체로 두 가지 질문을 하나로 은연중에 혼합시키는 오류를 범한다. 이제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예)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요, 당신도 사랑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오?" "물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아름다운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오."
사랑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말한 사람이 아름다운 사랑을 해보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경우의 오류를 일컬어 논점 부적절의 오류라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추론이 범하는 오류를 살피면서 그 중에서도 비형식적 오류를 중심으로 간단한 예들을 음미하여 보았다. 비형식적 오류는 #1언어의 애매함으로 인하여 #2논리적 관련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우리들이 논리적인 생각을 필요로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확한 사고를 하고 또한 명확한 언어 표현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생각의 바탕이 이루어져야만 우리들은 비로소 논리적인 생각을 초월하고 극복할 수도 있다. 만일 논리적인 생각을 우리들이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에는 아무런 질서와 체계도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학문이라고 하는 정신적 산물이 존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여러 가지 종류의오류를 살펴봄으로써 어떤 추론이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아닌지를 가릴 수 있으며 따라서 정확한 추리적 사고를 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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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우리말어원 |
'마땅하다'는 고유어에 한자어가 붙어서 생긴 말
'마땅하다'는 "잘 어울리다, 알맞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따위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고 있고, 또 그 어감이 꼭 우리 고유어인 것처럼 생각 되어서, 이 단어에 한자가 있다고 한다면,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마'가 한자일까? '땅'이 한자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말과 그 표기법이 큰 변화를 겪어 왔기 때문에 수긍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의 예들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보시면 수긍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땅하다'는 원래 '맛당하다'로 또는 '맛당하다'로 표기되었습니다. 이것은 '맞다'의 어간 '맞-'에다가 이 '맞다'와 같은 뜻을 가진 한자 '당(마땅 당)'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말입니다. 우리 고유어에다가 같은 뜻을 가진 한자를 붙여서 만든 단어이지요. 이처럼 우리 고유어에 한자가 붙어서 된 단어는 꽤나 있습니다. '굳건하다, 튼실하다, 익숙하다'등이 그러한 예들입니다. '굳건하다'는 고유어인 '굳다'의 어간 '굳-'에 한자 '건'(굳셀 건)이 합쳐진 단어이고요, '튼실하다'는 '튼튼하다'의 '튼'에 한자 '실'(열매 실)이 합쳐 져서 된 말이지요. 그리고 '익숙하다'도 '익다'의 '익-'에 한자 '숙'(익을 숙)이 합쳐진 말입니다.
이렇게 고유어에 고유어가 뜻을 같이 하는 한자가 붙어서 된 단어를 우리는 동의 중복으로 된 복합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늘 사용하는 단어를 보면 한자어와 고유어를 합쳐서 쓰는 말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우리가 보통 드는 예는 '처가집, 역전앞, 무궁화꽃'등 정도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만, 실상은 그 이상입니다. 그 예가 무척 많음에 놀라실 것입니다. 다음에 그 일례들만 들어 보이도록 할 테니까, 하나하나 잘 분석해 보세요. 같은 뜻을 가진 한자와 고유어가 어떻게 섞여 있는지를요.
담장 바람벽 어떤 일미인 두견접동 장림숲 학두루미 옷칠 모래사장 손수건 속내의 새신랑 긴 장대 큰 대문 어린 소녀 젊은 청년 늙은 노인 빈 공간 넓은 광장 같은 동갑 허연 백발 누런 황금 배우는 학도 둘로 양분하다 미리 예습하다 다시 재혼하다 서로 상의하다 스스로 자각하다 배에 승선하다 자리에 착석하다 분가루 일전 한푼 자식새끼 외가집 면도칼 고목나무 진화되다 소급해 올라가다 유언을 남기다 상용하여 써 온다 피해를 입는다.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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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
역사 속의 말, 말 속의 역사 - 김덕수, 송충기 지음
2. 너 자신을 알라
피로스의 승리
피로스(Phrrhos, BC 318-272)는 그리스 북서쪽에 위치한 애피로스의 왕이었다. 알렉산더 대왕과 인척관계에 있던 피로스는 알렉산더를 닮아서 야심에 찬 왕이었다. 그러나 뛰어난 전사이기는 했지만 그는 변덕이 심해서 어떤 일이든지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던 일을 마무리하지 않은 채 항상 새로운 모험을 찾았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의 왕위를 얻을 수 있었던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도 두 번 다 막판에 가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제2의 알렉산더'가 되려는 피로스의 야심을 자극이라도 하듯이 아드리아해 건너 이탈리아에서 피로스왕에게 원군을 청했다. 당시는 로마가 이탈리아반도 남부로 서서히 세력권을 확대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남부 이탈리아에서 자치를 누리던 그리스 식민시들은 로마의 지배를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 가장 끝까지 저항한 것이 반도 남동부에 위치했던 타렌툼이었다. 타렌툼은 에피로스 왕 피로스를 끌여들여 일단 로마의 패권에 맞서려 한 것이었다.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던 피로스는 이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려 했다. 피로스는 우세한 기병대와 그의 코끼리부대를 이끌고 단숨에 남부 이탈리아로 출정했다. 그는 기원전 280년에 헤라클레아에서 있었던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승리의 기선을 잡았다. 다음에 아풀리아의 아스쿨룸에서 있었던 2차전에서도 승리했다. 피로스는 이제 카르타고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는 시칠리아의 그리스인들을 돕기 위해 군대를 그곳으로 상륙시켰다. 거기서도 싸움에 승리했다. 그러나 카르타고인의 도시들을 계속해서 장악하고 다스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피로스를 화나게 했던 것은 그의 도움을 받은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시들도, 그리고 시칠리아의 그리스인들도 그가 그렇게도 듣고 싶어하던 '대왕'이라는 칭호로 부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각 전투들에서 승리를 했지만 피로스의 군대 역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승승장구하던 로마가 그렇게 쉽게 전쟁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로스의 병사 중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빼앗긴 무기도 많았다. 여기서 "피로스의 승리"라는 말이 나왔다. 패전과 다름없는 대가를 치르고 얻은 승리를 풍자적으로 말할 때 바로 피로스왕은 좋은 사례를 제공한 것이다. 그 이후의 역사를 보아도 피로스왕은 불운한 사람이었다. 로마인들은 다시 남부 이탈리아로 밀려오기 시작했고, 타렌툼인들은 다시 한번 피로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기원전 275년의 베네벤툼 전투에서 피로스는 대패했다. 그리스로 되돌아간 그는 이번에는 마케도니아와 펠로폰네소스반도로 나아가 패자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군대가 아르고스의 그리스시를 공격하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그는 한 노파가 던진 기왓장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는데, 다른 병사에 의해 목이 잘려 죽었다. 알렉산더 대왕과 같이 되고자 했던 그의 야망은 결국 그렇게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피로스 전에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그는 고요히 자리를 지키면서 살지를 못하고 전쟁을 갈구하며 전쟁만을 생각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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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지식/생활/건강 |
전통주
귤주
재료 - 귤 500g, 소주 900g, 설탕 200g
만들기
1. 잘 익은 귤을 골라 따뜻한 물에 씻어 껍질에 남아 있는 농약을 깨끗이 닦아낸 후 마른 천으로 물기를 말끔히 닦는다. 2. 씻은 귤을 반으로 잘라 용기에 담고 설탕과 소주를 넣는다. 3. 공기가 통하지 않게 밀봉해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 숙성시킨다. 4. 1개월쯤 지나면 뚜껑을 열어 보아 향기가 너무 강하거나 쓴맛이 지나치면 귤을 꺼내 즙만 짜넣고 껍질은 버린다. 5. 술을 담근지 3개월 쯤 지나 연한 황색이 돌면 건지는 건져내고 주둥이가 좁은 병에 옮겨 서늘한 곳에 둔다. 오래 두고 마실 것이라면 거즈에 밭쳐 찌꺼기를 말끔히 없애고 보관한다.
껍질도 함께 이용해서 담그지만, 껍질의 분량이 지나치게 많으면 쓴맛이 강해져 달콤하고 향긋한 귤주를 즐길 수 없다. 과육과 껍질의 비율은 6:1로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비타민 C, 쿠엔산, 과당 등을 함유하고 있어 원기회복이나 감기치료, 식용증진 등의 역할을 한다. 껍질에 함유되어 있는 쓴맛은 리모닌, 향은 리모넨이라는 성분으로 생긴 것. 그밖에도 하밀감주는 고혈압 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귤겁질의 쓴맛에도 여러가지 약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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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사회/문화 |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5 캄캄한 서양 반짝이는 동양
4. 미국을 괴롭히는 사람은 바로 미국인이다
근래 몇 년 동안 중.미 무역관계는 끊임없이 불꽃을 일으키며 마찰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지적소유권보호에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지적소유권이 도난당했다고 우리를 비난한다. 미국은 중국이 불법레이저디스크나 불법 소프트웨어에 대해 엄벌을 가하고 있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여러 차례 보복을 하겠다고 협박하며, 심지어 지적소유권 협박에서 '좀도둑과 담판한다'라는 중상모략을 서슴치 않았다. 대외경제무역부 부장 우이는 '우리는 강도하고 담판하고 있다'라고 즉각 반격했다. 정말 그렇다. 만일 미국 협상대표로 하여금 먼저 자기네 박물관에 가서 중국에서 훔쳐간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세어보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담판을 연기하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수가 너무 많아 세는 시간이 적지 않게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 물건을 세는 데는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 베이징에서는 다음과 같은 정치유머가 떠돈 적이 있다. 백악관의 리셉션에서 어떤 미국기자가 클린턴 대통령에게, 중국에서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다고 하였다. 즉 중국 정부가 사학자, 통계학자, 골동품전문가로 구성된 조사팀을 파견해 중국의 4대 발명품이 미국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 조사하려고 한다는 내용이라고 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기겁을 하면서 즉각 모든 무역보복리스트를 취소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 우스갯소리를 듣고 웃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만일 중국의 고대 발명품의 하나인 나침판과 그에 상응하는 조선 및 항해기술의 전파가 없었다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이나 첫 번째 이주민의 도착 역시 선박과 나침판을 사용했었기 때문이다. 만일 고대 중국의 인쇄술과 제지술이 없었다면 오늘의 지적소유권문제는 나올 수가 없었다. 또 화약의 발명이 없었다면 현대적인 의미의 로켓과 대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바로 이런 물건들을 믿고 그렇게 날뛰고 있다. 근대 서구의 강대국(强大國) 혹은 강도국(强盜國)은 중국의 기술과 발명을 이용해 도리어 우리를 백 년 동안이나 쪼개고 억누르고 능멸했다. 우리도 물어볼 수 있다. 지난 백 년 동안 누가 중국의 지적소유권을 보호했는가? 중국의 땅덩이조차 갈기갈기 찢어놓았는데 이 빚은 또 어떻게 셈해야 하는가. 배상에 대해 따진다면 중국이야말로 배상받을 것이 너무 많다. 서양은 중국을 침략하고 착취하여 중국의 근대사를 가장 비참한 역사로 만들었다. 100여 년에 달하는 긴 세월을 가난과 무지 속에서 혜매게 만들었다. 오늘날에도 중국은 여전히 선진국보다 수십 년의 세월을 뒤지고 있다. 중국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서구 열강들이 뻬앗아갔기 때문이다. 세계자본주의가 축적한 부는 중국의 은괴가 없었더라면 이 정도의 규모가 될 수 없었다. 보호라는 것도 그렇다. 약자가 보호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역사적 사건을 뒤져 보면 중국은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무차별적인 도살만 당했고, 중국인의 피와 땀은 도살자를 살찌웠던 것이다.
1세기를 바라보며 패권주의자가 진정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들이 가진 패자의 지위인 것이다.패자의 그 강권정치는 개발도상국을 억압하려는 것일 뿐이고 그런 나라들을 영원히 선진국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가두어두려는 것이다. '개발도상'에 있다는 말은 '개발되지 않는다'와 동의어로 변해 버렸다. 미국이 미국판 사전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도 대사전을 가지고 있다. 이 대사전은 중국의 찬란한 문화처럼 아주 두껍다. 중국 대변인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이 대사전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무게가 실려 있으며, 설사 중국이 발언을 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여전히 그 무게는 대단한 것이다. 국제적 사안에 대해 미국은 시종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우방에 대한 기준과 적국에 대한 기준이다. 또 우방을 대하는 것에도 차별이 있다. 예를 들면 영국과 일본에 대한 대우는 같지 않다, 또한 똑같은 서국의 우방국이지만 하나는 가까이 하고 하나는 멀리 한다. 고인이 된 프랑스 전대통령 미테랑은 약간 풍자적으로 '철의 여인'이라는 좀 심한 호칭을 갖고 있는 영국의 대처 수상이 미국 대통령과 이야기할 때 마치 8살의 소녀 같았다'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두 강대국의 사이가 보통이 아님을 보여준다. 일본은 2차대전 후에 미국의 보살핌으로 성장한 나라이다. 그래서 미국은 늘 가장의 위세로 일본이 굽신거리게 하고 특히 쌍방무역문제에 있어서는 더하다. 페르시아전쟁중에 일본은 큰 돈을 써서 미국이 승리하도록 하였고 또 미국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페르시아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미국의 음모는 더욱 낱낱이 드러난다. 겉으로 드러난 명분은 정의구현이지만, 실제로는 쿠웨이트를 해방한다는 구실로 미국에 대항하는 이라크를 박살내 버렸고 더 나아가 아랍 이슬람 국가들을 분할 통치하겠다는 것이다. 아랍인들을 이간 붙여야 미국으로서는 영구히 자신의 이익을 보호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페르시아만의 석유를 잃는다는 것은 세계패권을 잃는 것과 같다. 미국의 항공기. 기차, 잠수함의 연료탱크는 거의 모두 페르시아만 지역에 있다. 페르시아만의 세력균형을 유지시키려는 것은 미국의 연료탱크를 가득 채우기 위함이고 또 이 지역에 불이 붙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미국의 뒷뜰에 쿠바가 있고 미국의 석유비축기지 옆에는 이라크. 이란, 리비아 등이 있다. 죽어라고 말 안 듣는 상대에 대해 미국이 각종 수단을 다 동원하는 목적은 이런 약소국을 철저하게 굴복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미국의 영광과 몽상은 도전받고 있다. 만일 미국이 패권주의의 야심을 버리기만 한다면 단잠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내정을 간섭한다는 것은 초강대국일지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만일 미국이 계속 세계경찰을 자처하려 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분노와 적대를 받을 것이다. 이렇게 계속되면 미국에게 돌아가는 것은 치욕과 악몽뿐이다.
냉전 후의 세계 국면은 여전히 병합상태에 처해 있다. 미국은 가장 큰 덩어리를 독차지하려 할 뿐 아니라 크고 작은 덩어리의 이동과 분할을 조종하려 하고, 끝에 가서는 미국의 구도대로 판을 짜려 한다. 그러나 세계는 각국의 국민이 만들어간다. 각기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 다른 역사적 배경 속에 자신들의 가치관을 형성한다. 초강대국을 포함한 그 어떤 나라도 남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첫 번째 이주민 무리들이 총 승객 102명의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66일 간의 항해 끝에 1620년 11월 11일 프라운스톤 항구에 도착했다. 바로 같은 날 승객 중의 남자 41명이 훗날 '메이플라워 호 공약'으로 불리게 된 문건에 서명했다.미국은 그때부터 시작하여 376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미국 역사를 살펴 보면 미국은 전형적인 벼락부자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함부로 날뒤며 힘으로 남을 무시하는 것이다. 미국이란 벼락부자는 중국의 반만 년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미국.은 Tv나 영화 화면을 통해서 세계를 이해하길 좋아한다. 화면이란 사람을 속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로만 본다면 미국 도처에 영웅과 정의의 기사 그리고 양심적인 법관 등이 깔려 있는 것 같다-중국의 일부 영화감독이 보기 좋게 영화를 찍는다. 카메라 렌즈의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비록 어둡고 추악한 구석이라 해도 서구인의 구미에 맞추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중국문화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는 데 일익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중국의 영화가 서구 관중들의 무지까지도 책임질 수는 없다. 영화라는 채널이 서구 문화패권과 정치패권을 위한 자료로 이용 되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자기의 형상을 잘도 꾸민다. 미국 상품을 겹겹이 벗겨 내면 아시아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야심이 드러난다. 페르시아만에서, 한반도에서, 대만해협에서 미국이 꿈꾸는 경제이익은 대화와 협력으로만 얻을 수 있다, 크게 소리를 질러대도, 설사항공모함 위에서 소리소리 질러대도 겁낼 사람은 갈수록 적어질 것이다. 미국의 강권정치가 다른 굿에서는 먹혀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다르다. 강권정치는 아무리 감동적이고 보기 좋게 포장한다 해도 한눈에 간파 할 수 있다. 미국이 판촉할 수 있는 물건은 많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컴퓨터기술, 인공위성기술, 보잉기 등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기술의 판촉활동도 호혜의 원칙 위에서 이루어질 때만이 비로소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겁탈과 압박을 받을 만큼 받은 중화민족은 '패권 "강권'과 같은 종류의 크고 작은 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고 또 받아들일 수도 없다.
미국은 자신만만한 곳에서는 맨손으로 승부를 겨루지만.자신이 없는 곳에서나 혹은 규칙상 출전하지 못하는 시합에서는 아군을 위해 훈수를 둔다. 미국은 늘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적수는 시합에서 밀어내려고만 한다. 그 다음에는 모든 적수를 밀어내고 쓰러트리려고만 한다. 미국은 미국이 가장 유리한 쪽으로만 시합을 하려고 한다. 미국이 가장 잘 하는 수법은 규칙을 고치고 중재를 해서 이 새로운 규칙에 적응하지는 적수를 배제시키는 것이다. 소위 부전승이 이것이다. 미국의 규칙도 시간이 지나면 그 의의를 잃게 될 것이다. 시합 전부터 그 결과가 뻔한 시합에 참가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방콕에서 개최된 아시아유럽수뇌회담에서 유럽과 아시아 간에 정치 대화창구를 개설했다. 이것은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세계의 일이나 아시아 유럽의 일들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은 이 기회에 다시 새로이 세계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질서를 새롭게 건립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역량은 세계 여러 나라의 역량을 넘을 수 없다. 미국이란 한 나라의 발언이 마치 미 . 일 자동차무역 담판에서와 같은 그런 무게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에 써먹었던 방법을 다른 나라에도 써먹을 수는 없다. 미국은 걸핏하면 경제제재를 들먹이는데. 이것은 미국이 제재를 통해 원했던 바를 얻은 적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은 너무 귀여워해서 버릇이 나빠진 어린이다. 특히 냉전시기에 그러했다. 페르시아전쟁은 미국이 일본인의 돈으로 승리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아랍 국가를 이간시켜 내부의 불화와 전쟁을 야기시켰으며, 군사와 경제 두 방면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석유장사도 보장되고 또 무기의 판촉활동도 했으니 말이다. 이 뿐이 아니다. 미국이 장기간 페르시아만 지역 국가에 군사를 주둔시킬 황당한 구실을 만들었다. 페르시아전쟁이 아시아에 준 영향은 21세기가 되어야 좀더 분명해질 것이다. 세계의 새질서는 서구의 부호클럽에 의지해서는 지탱될 수 없다. 하물며 이런 부호클럽 주변이 전쟁으로 시끄러운 겄이다. 제3세계 식민지와 반식민지의 역사는 능멸당하고 노예화된 역사이다. 미국은 그곳의 국민들에게 모든 외세의 간섭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항하는 의식을 갖게 하였다. 확실히 미국은 이러한 의식에 대한 연구와 분석에서 실패했다. 미국이 세계 새질서 안에서 더 많은 역할을 발휘하려고 한다면. 훈시의 방법으로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직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진지한 척하지 말고 정말로 진지하게 다른 의견을 들어야 한다. 특히 진지하게 중국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이로써 미국은 무엇을 발언해야 할 지를 께우치게 될 것이다. 몇 년 전에 미국의 어떤 곳에서 거짓말대회를 연 적이 있었다. 규정 중에 정치가는 참가할 수 없다는 항목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정치가는 거짓말 전문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블랙유머소설이 왜 그렇게 발달되었는지 알 만하다. 만일 전문가들의 시합을 연다면, 미국의 중국위협론 같은 대목이 틀림없이 최고상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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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본승의 조선사 나들이
정도전의 줄 서기와 문민 독재
* 맑은 거울을 보는 것은 모양을 살피기 위해서요, 지나간 일을 돌이켜보는 것은 지금을 알기 위해서이다. (공자)
경복궁과 정도전
새 나라가 창업되던가, 새 정권이 수립되자면 그 창업의 기틀이 되는 이념과 강령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석학이 있어야 한다.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성계의 곁에는 정도전이라는 걸출한 석학이 있었기에 고려 말에는 전제의 개혁안을 만들어서 백성들을 열광케 하였고, 새 왕조가 창업된 다음에는 재빨리 "조선경국전"을 완성할 수가 있었다. "조선경국전"은 조선 개국의 이념이자 강령이지만 석학 정도전의 정치 철학의 집대성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정보위, 국호, 안국본, 세계, 교서 등으로 나누고 국가 형성의 기본을 논하여 조선왕조의 합당성을 설명하고 왕업의 지침을 거기에 적었으며, 동양의 전통적 관제에 따라서 육전의 관할 사무를 규정하였으니 비로소 이, 호, 예, 병, 형, 공, 등의 육조를 확정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삼봉 정도전은 이성계의 명을 받아 새로 준공된 대궐의 이름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전각과 문루의 이름을 지어 올렸는데, 그 문장의 도도함과 박식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신이 살펴보건대, 궁궐이란 것은 임금이 정사를 하는 곳이요, 사방에서 우러러보는 곳입니다. 신민들이 다 조성한 바이므로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여 존엄성을 보이게 하고, 그 명칭을 아름답게 하여 보고 감동하게 하여야 합니다. 한나라와 당나라 이래로 궁전의 이름은 그대로 하기로 하고 혹은 개혁되기도 하였으나, 그 존엄성을 보이고 감상을 일으키게 한 뜻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지 3년만에 도읍을 한양에 정하여 먼저 종묘를 세우고 다음에 궁궐을 경영하시더니, 한 해 건너 올해에는 곤룡포와 면류관을 쓰시고 선대의 왕과 신묘에 재향을 올리며, 여러 신하들에게 새 궁궐에서 잔치를 베푸셨으니 대개 신의 혜택을 넓히시고 뒷사람에게 복록을 주심이옵니다. 신 정도전에게 분부하시기를 '궁전의 이름을 지어서 나라와 더불어 한없이 아름답게 하라'하셨으므로 신이 분부를 받자와 삼가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시경" "주아"의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가 물러서 군자의 만년을, 빛나는 복을 빈다'라는 시를 외우며 새 궁궐의 이름을 경복궁이라고 짓기를 청하오니 전하와 자손께서 만년 태평의 업을 누리시옵고 사방의 신민으로 하여금 길이 보고 느끼게 하옵니다.
여기까지는 궁궐의 존엄성과 이름을 짓게 된 연유와 궁궐이 '경복궁'이 되어야 하는 의미와 출전을 밝히고 있다. "시경" 주아편에 있는 원시는 이렇다. (49p 한문 원시 생략) 오늘 우리가 경복궁을 입에 담을 수 는 근거는 여기에서 연유하고 있다. 정도전의 도도한 문장은 다시 이어진다.
근정전과 근정문에 대하여 말하오면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폐하게 됨을 필연적 이치입니다. 작은 일도 그러하온데 하물며 정사와 같은 큰일이겠습니까? "서경"에 이르기를 '경계하면 걱정이 없고 법도를 잃지 않는다.'라 하였고 또 '편안한 것만 가르쳐서 나라를 유지하려고 하지 말라. 조심하고 두려워하면 하루 이틀 사이에 1만가지 기틀이 마련된다. 여러 관원들이 직책을 버리지 말게 하라. 하늘의 일을 사람들이 대신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순 임금과 우임금의 부지런한 바이며, 또 말하기를 '아침부터 날이 기울어질 때까지 밥 먹을 시간을 갖지 못해 만백성을 다 즐겁게 한다' 하였으니 문왕의 부지런한 바입니다. 임금이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음이 이러하나 편안하게 봉양하기를 오래 하면 교만하고 안일한 마음이 쉽게 생기게 됩니다. 또 아첨하고 아양떠는 사람이 있어 이에 따라서 말하기를 천하에 나라일로 자신이 정력을 소모하고 수명을 손상시킬 까닭이 없다'하고 또 말하기를 '이미 높은 자리에 있어서 어찌 혼자 비굴하게 노고를 하겠는가'했으니 이에 혹 여악으로 혹은 무릇 황음무도한 일을 하지 않음이 없으니 임금은 '이것이 나를 사랑함이 두렵다'하여 자연으로 태만해지고 거칠어지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되니 한 나라와 당나라의 임금들이 예전 삼대 때만 못하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임금으로서 하루라도 부지런하지 않고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임금이 부지런한 것만 알고 그 부지런한 바를 알지 못한다면, 그 부지런한 것이 너무 복잡하고 너무 세밀한 데에만 홀려서 볼 만한 것이 없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선유들이 말하기를 '아침에는 정사를 보고, 낮에는 어진 이를 찾아보고, 저녁에는 법령을 닦고, 밤에는 몸을 편안케 한다'는 것이 임금의 부지런한 바입니다. 또 말하기를 '어진 이를 구하는 데에 부지런하고 어진 이를 쓰는 데 빨리 한다.' 했으니 신은 이로써 근정문이라 이름하기를 청하옵니다.
삼봉 정도전은 수많은 문루와 여러 전각의 이름을 지을 때마다 위와 같은 글로 세세만년 왕도를 깨우치려 했으니, 그의 학문이 어느 경지에 있었는지를 짐작하고 남는다. 그러니 이성계의 감동은 또 얼마나 컸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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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17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 (1596-1650)는 중세기 이후의 전통적인 철학인 스콜라 철학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 눈뜬 주아적의식 즉 근대적 자아에 입각한 철학의 체계를 세우려 했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명저 '방법론서설' 제4부에 나오는 위의 명언으로 집약된다. 그는 온갖 기존의 관념과 자기자신의 감각까지도 의심하고 '방법적 회의'를 추진시켜 나간 결과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확고하고 확실한' 것으로서 최종적으로 발견한 것이 바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진리였다. 일체를 부정하더라도 그 부정의 작용을 하는 자아만은 여전히 남는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자아가 모든 철학의 모든 철학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 진리에서 출발하여 물질에 대해 정신의 우월을 주장하는 이원론을 확립함으로써 근대적 관념론의 선구자가 되는 동시에 그의 수학적 유물적 방법론은 근대 과학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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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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