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잠 속에 비내리는데 - 이외수
영혼의 변주곡
춘천을 아는가. 춘천의 겨울은 그대로 쓰라림, 나는 언제나 혼자였었다. 마지막 사랑도버리고 마지막 비틀거림도 버리고, 공지천 물가로 나가 보면 스산한바람뿐, 사는 것은 언제나 부질없었다. 밤이면 우두벌판을 내달아 와 벽을 때리는 바람 소리. 가슴도 허전하게 비어 나가고, 커튼을 걷어 내고 하늘을 쳐다보면 거기 내 유년의 시린 눈물로 반짝이는 별들이 빙판같이 카랑카랑한 하늘에 박혀 있었다. 겨우내 나는 불면이었다.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참혹했었다. 그 무엇이든 내게는 참혹했었다. 내 의식은 앙상하게 말라 죽고 유리창의 하얀 성에만 백엽 식물처럼 무성하게 가지를 뻗고 있었다. 영영 겨울은 끝나지 않을것 같았다. 더러는 슈베르트의 슬픈 목소리로 눈이 내리고 또 더러는 지붕에서 풀썩풀썩 떨어지는 눈더미 소리. 나는 누구에게든 편지를 쓰고 싶었다. 여기는 춘천. 겨울 속에 갇혀 있음. 엽서라도 한 장 보내 주기 바람. 그러나 나는 아무에게도 편지를 쓸 수 없었다. 당연히 내게도 엽서 한장오지 않았다. 그러나 봄을 기다려 볼 것. 더 이상 절망하지는 말 것. 봄이 올 때까지는 버림받고 살기로. 그리고 나 또한 하나씩 버리면서 살기로. 사랑도 버리고 절망도 버리고 모든 부질없음까지 버리고, 나도 저 시리고 맑은 겨울 허공이 될 것. 잠결에도 나는 내 가슴밭에 꽃씨를 뿌리며 봄을 생각했었다.
그대, 춘천의 봄을 아는가. 문득 잠결에 들리는 황사 바람, 싸르락싸르락 모래알 쓸려 가는 소리.그리고 몇 번의 시린 비가 다시 내리고 이어 몇 번의 식은 금색 햇빛, 그다음 마른 개나리 가지 끝에서도 움이 튼다. 공지천으로 나가 보라. 아직은 겨울의 싸한 기운이 스며 있는 바람 한가닥에 눈을 씻으며 제방 비탈 돌 틈에서 파릇한 풀잎이 돋고 어느새 얼음은 모두 녹아 몇 척의 보트가 물 위에 떠 있다. 겨우내 문을 닫았던 목로 찻집도 문을 열었다. 헤어진 사람들이여, 다시 만나라. 봄은 겨우내 밤을 새우며 몇 번이고 다시 쓰고 몇 번이고 찢어 버렸던 편지 속 낱말들이 금색 햇빛 속에 다시 반짝거리기 시작하는 계절. 고통의 낱말들은 꽃으로 남고 어둠의 낱말들은 빛으로 남아 또 다른 편지를 쓰게 만드는 계절이다. 까닭도 없이 가슴이 설레이고 밖으로 나가면 누구든 한 사람쯤 정다운 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햇빛은 햇빛대로 화창하기짝이 없다. 강 하나 건너 적당히 깨끗하고 아담한 주택가엔 하얀 옥양목 빨래들이 널려있고 그 뒤로는 나지막한 산비탈. 과수원엔 희디 흰 배꽃이 눈부시게 피어 하늘 가는 밝은 길을 열고 있다. 밤이면 가끔 속삭이는 비도 내린다. 내려서 병든 도시를 적시고 병든 가슴을 적신다. 비로소 우리는 더 이상 외로와하지 않기로 한다. 우리도 각자 비가 되어 공지천 물 위로, 또는 꽃잎 지는 배꽃나무 밑으로 속삭이며 스며들기도 한다. 그러면 세상은 오래도록 편안하고 우리는 영원히 신선하다. 싸우지 말라. 돈과 명예와 권력 때문에 싸우지 말라. 봄에 내리는 비, 봄에 피는 꽃, 그리고 봄에 새로이 눈뜨는 모든 것들에게 죄를 짓지 말라. 자연 앞에서는 우리도 한낱 보잘것없는 뼈와 살, 너무도 많은 것을 더럽혀 오지 않았는가. 우리는 다만 서로 사랑하면 그만이다. 마음까지를 더럽히려고 애쓰지 말라. 단 한 줄의 시도 외어 보지 못한 채 봄을 훌쩍 보내어 버린 사람이 돈과 명예와 권력을 얻는다고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수가 있겠는가. 봄비 내리는 밤 한 시. 잠 못 이루고 한 줄의 시를 쓰는 사람과 잠 못 이루고 몇 다발의 돈을 세는 사람들과를 한번 비교해 보라. 누구의 손끝이 더 아름다운가. 어디선가 꿀벌들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구름은 벚꽃처럼 화창하게 퍼져 있는데, 정원의 식탁 위에는 아름다운 햇빛 한 장이 순은처럼 빛나고 있다. 거기 새로 페인트를 칠한 아담하고 깨끗한 의자에 앉아 점백 내기 육백을 치면서, 치사하게 왜 이래요, 끗발에 지장 있다니까, 따위의 대화를 주고받는 부부와 통기타를 치면서 화음 맞추어, 그대는 이 나라 어느 언덕에 그리운 풀꽃으로 흔들리느냐, 오늘은 내 곁으로 바람이 불고 ...등의 노래를 낮은 목소리로 부르고 있는 부부를 비교해 보라. 어느 쪽이 더 아름다와 보이는가. 낭만이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낭만이 밥먹여 주냐,라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더 이상 그에게 할말이 없다. 밥을 먹기 위해 태어나서 밥을 먹고 살다가 결국은 밥을 그만 먹는 것으로 인생을 끝내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같은 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다만 비참할 뿐이다. 밥 정도는 돼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낭만을 아는 돼지를 당신은 본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라. 그러나 낭만도 사랑하라. 애당초 사랑이라는 것은 낭만이라는 강변에 피어난 꽃이다. 낭만이 없는 사람은 사랑도 할 수 없다. 마른 모래 사막에서는 한 포기의 풀잎도 자랄 수 없듯이. 돈이나 명예 권력으로는 결코 사랑의 싹을 틔울 수 없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으로는 고작 사랑을 가장한 플라스틱 가화들이나 사들일 수 있을 뿐이다.
10원짜리 동전 하나를 전화통에다 집어 넣고 검지손가락 하나로 애인을 불러 내는 조잡한 시대. 문화가 죽고 문명의 이빨만 번뜩거리는 이 살벌한 시대. 먼 새벽 강물 소리로 가슴을 자욱하게 설레이며 밤을 새워 자신의 순수하고 진실한 가슴을 편지에다 심어 넣는 낭만을 이 봄에는 단 한번만이라도 가져 보자. 우리 모두가 한 줄의 시가 되자. 우리 모두가 더 이상 때묻지 말기로 하자. 저 청량한 햇빛과 강물과 공기, 저 따스하고 화사한 벚꽃나무와 누님의 구름 곁에서 우리는 오래도록 음악이 되자. 녹슨 서울. 해 하나 불그죽죽하게 떠서 시름시름 병을 앓고 있는 서울. 한강이 죽어 가고 있는 서울. 그 서울에도 봄은 오는 것일까. 녹슨 가슴에도. 물론 온다. 봄은 어디에든 온다. 그러나 더러 사람들의 가슴에만은 봄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너무 외로왔기 때문에 지난 겨울 한 통의 편지도 써 보낼 수 없었던 이들이여. 이제 편지를 쓰자. 봄은 편지를 쓰는 계절. 다시금 묵은 비듬을 털고 수양버들도 먼 바다를 향해 머리를 빗고 있다. 지난 겨울 쥐불을 놓았던 자리, 검은 논두렁에도 민들레가 핀다. 이제 봄이다. 겨울을 쓰라리게 보낸 사람일수록 봄은 더욱 새롭다. 마치 고통을 심하게 받은 조개일수록 그 진주가 더욱 아름답듯이. 진달래의 뿌리를 본 적이 있는가. 그 고통으로 뒤틀린 형상을 본 적이 있는가 진달래의 뿌리는 무엇인가를 몹시 고통스럽게 땅 속에서 찾아 헤매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형상이 징그러울 정도로 꾸불텅 휘어지고 뒤틀려 있다. 그 무엇인가를 고통스럽게 찾아 헤매던 끝에 봄이 되면 비로소 피어나는 꽃. 햇빛에 그 고운 연분홍 꽃잎을 투명하게 반사 시키며 야산 여기저기에 피어 있는 진달래에 홀려서 하루종일을 헤매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문득 배가 고파 한 줌씩 꽃잎을 따먹으면 입 안에 고이던 그 꽃물의 향기로움을. 그 애틋한 그리움의 즙 한 모금이 적신 세포의 빛깔을. 그렇다. 이제 완전히 겨울은 갔다. 그러나 그 겨울의 모든 쓰라림만은 잊지 말기로 하자.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쓰라림을 배우기 위해 잠시 한 순간의 봄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큰 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춘천은 안개의 도시. 그러나 봄에는 개나리의 도시. 집집마다 개나리가 없는 집이 거의 없다. 개나리는 춘천의 시화로 제정된 꽃이다. 봄이면 집집마다 샛노란 개나리가 축제처럼 눈부시다. 나는 다시 편지를 쓸 것이다. 여기는 춘천. 지금은 봄입니다. 나는 이제 양지 바른 벽에 기대어 앉아 그냥 하늘이나 바라보며 그대에게 뭉게구름 한아름을 만들어 보냅니다. 지금 당장 하늘을 보십시오.
숙이야. 가을이온다. 시인이 아닌 사람도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를 읽으면 한 잔의 술을 사랑하게 되는 계절. 사무실에서 날마다 신경질 부리고 핀잔 주고 독촉하고 결재 받는 일로 하루를 몽땅 보낼 수 있는, 건조한 충성심의 대가로 말단 사원보다 약간 월급을 더 받게 되는, 재미 한 개도 없는 계장님도 한번쯤은 하늘을 쳐다보며 허무를 배우를 계절. 무서리 내린 아침의 공기, 바람 부는 날의 코스모스, 콩밭 역 주변에 늘어선 사시나무 울타리와 탱자알, 나프탈린 냄새 나는 새 내의, 아내의 찬 손, 그리고 가난한 집 대문에 칠해진 식은 금색 햇빛, 이 모든 것이 명료한 감각으로 우리들 뼈에 스미게 되리라. 그대여. 편지를 쓰라. 가을은 마당을 잘 쓸어 놓고 누군가를 기다려 보는 계절. 그대 심장에 쓰라린 흔적을 남기고 돌아섰어도 끝끝내 그리운 사람이 있거든 기다려 보라. 그동안의 모든 진실한 말 잘 기억하여 돌아오면 들려주리라. 준비해두라. 지난 여름의 바다에서 실패한 사랑, 뜻도 없이 시간에 쫓기며 땀흘린 나날, 아내의 바가지와 바캉스, 장마철 비 새는 단칸 셋방에서의 선잠, 그 여러 가지 빌어먹을 것들은 떠나고 있다. 아아 지겹던 모기들, 마지막 더위, 숨통이 컥컥 막히는 더위, 제발 내년에는 오지 말아 다오. 그리고 가을이여. 아직 한번도 남자와 동침한 적이 없는 순결한 여인 같은 가을이여. 씻어 다오. 우리들 마음의 때를, 매연을, 우울을, 빚진 자의 근심을. 그러나 더욱 모질게 기억토록 해다오. 가난에 찌들리며 시를 쓰다가 거룩한 행적도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외롭게 죽어 간 어느 젊은 시인의 시 한 줄을. 부질없는 한 장 일력처럼 펄럭이며 떨어져간 그 허망한 생애를. 가을같이 순결한 여자여. 이마를 짚어 다오. 괴로움 하나로 세상을 살며 마음까지 병든 자의 어두운 이마를. 가을에 한 줄의 시를 사랑할 줄 모르는 자여. 그대는 부디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그대는 부끄러워하는 법도 모르리라. 그대의 가슴속엔 한심하게도 곧 김장 준비를 할 걱정뿐이고 그대의 무식한 머리 속에는 그저 숫자만 가득 들어 있을테니까. 그러나 시를 사랑하는 자여, 용서하라.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돈, 돈, 돈이라고 시를 읊는다. 그러하다. 이제 여름은 갔다. 비계 많은 사람들이 산이며 바다로 자가용을 몰아 대면서 시인을 열등케하던 여름은 갔다. 죄없고 마음 청명한 사람들의 가을이 온다. 가을에 우리는 눈물을 참는 법을 배우자. 혹독한 추위 속에서 만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굳게 껴안을 준비를 하자. 봄과 여름은 마음 녹슨 자들의 것, 가을과 겨울은 외로운 시인들과 착한 사람들의 것이다. 진실한 자는 아직도 눈물이 남아 있고, 눈물이 남아 있는 자에게는 고통을 굳게 껴안을 순수가 남아 있다. 가을. 우리가 그러하다면 작은 사과의 속살을 열고 사는 한 마리 하얀벌레인들 어떤가. 숙이야, 이 가을엔 보아라. 저 하늘 냉각된 유리처럼 차고 투명한 곳, 외로운 시인들의 모습을.
개에게도 정이 있느냐. 있고 말고다. 나는 소년 시절 내가 친구삼았던 몇 마리의 개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집 잘 지키고 주인에게 유순했던, 그러다가 결국은 보신탕 집으로 끌려가 버린 그 비통의 충복들을. 어머니는 섭섭해하시면서도 그것들을 팔아 치운 뒤 양은그릇들을 사곤 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엔 보신탕이 되어 버린 한 식구에 관한 것보다 새로 찬장 속에 정돈된 그릇들을 더욱 소중히 하셨다.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어머니에 대해 나는 원망을 품곤 하였다. 나는 잊을 수 없었다. 끌려가지 않으려던 내 친구의 애처로운 버팀, 그리고 울음이며, 원망이며, 불안으로 가득하던 그 얼굴을. 그러하다. 팔려 간 날 밤에 20리 길을 헐떡이며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온 개의 홀쭉한 뱃가죽과 반가움으로 미친 듯 꼬리를 흔들며 내 몸에 얼굴을 비비던 그 말못하는 짐승의 질기고 눈물 겨운 정을 나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은 잊을 수가 없는 시간까지의 병이다. 우리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병이다. 그 병은 작별로부터 발생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작별이 얼마나 흔해빠진 유행인지를. 그러나 우리는 모른다. 작별하지 않고도 견디며 사는 방법을.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던 우리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무디어졌다. 작별하면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정도로 덤덤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마리의 개를 팔아 치우고 필요하면 또 다른 개를 사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배우는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흥정된 한 마리의 개가 아니다. 아니 흥정된 한 마리의 개여도 좋다. 그대들의 목을 맨 사슬을 끊어 버릴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혹한의 겨울 밤 칼날 같은 바람을 헤치고 다시금 그리운 이에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렇다. 흥정된 한 마리의 개인들 어떤가. 그러나 참 이상도 하지. 나는 최근의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쉽게 차버리고 갈아 치우고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작별 뒤에 독배처럼 괴로운 시간을 마시며 머리카락을 집어 뜯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재빨리 체념해 버리는 방법을 배운 탓일까. 아니면 너무 쉽게 인생을 살고 싶어하는 탓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우리집 식구들 먹다 남은 밥으로 기르던 개만큼의 정조차 없는 탓일까. 서로 사랑을 배우는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작별하지 말라. 아니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더러는 작별도 해볼 것. 그러나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말 것. 그리고 우리는 사랑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경멸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에 나는 보았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젊은이들의 사랑 없음을. 아, 그리하여 또 다시 나는 장가 들기 불안하다. 왜냐하면 나는 여편네 또는 마누라 라고 부르지 않고 우리 아내 라고 부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 까이 라는 말보다 우리 흰 새 라고 부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러나 읽는 사람들이여. 이것은 낯 간지러운 감상벽이나 치기는 아니다. 영자라는 흔한 이름의 애인을 가진 남자가 그녀에게 아주 아름다운 이름을 새로 지어 주려고 밤을 새우는 것만큼 진지한 일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올랐다. 공중 변소 입장료도 오르고, 어물전의 꼴뚜기 값도 오르고, 아내들의 바가지 긁는 목청도 한 옥타브 올랐다. 올라야 하기 때문에 올랐겠지. 그러나 모든 것이 자꾸만 오를수록 사람 값은 떨어지고 있다는 기분을 절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마침내 사람들은 빌어먹을, 그저 돈을 벌어야지 라는 말을 니나노 집 작부 울려고 내가 왔던가 부르듯 자주 한숨 섞어 입에 올리게 되었다. 돈독이 오를수록 인정은 메마르게 마련이다. 보라, 이제 누가 진실로 사랑하여 결혼하는 자가 있는가. 풀뿌리를 캐먹더라도 그대만 곁에 있으면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여자가 있다면 분명히 그녀는 좀 얼빠져 있거나 딱지가 덜 떨어져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질 것이다. 하지만 진실하고 자애스럽기는 하나 대단히 가난한 애인을 걷어차 버리고 용감무쌍하게도 양심이니 뭐니 따질 거 없이 호화로운 대 저택을 가진 실업가에게 평생을 팽개치듯 맡겨 버리는 여자를 경멸할 사람은 최근에 와서 무척 드물어졌을 것이다. 또한 사랑이니 진실을 돈으로 제조하거나 매매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을 개새끼라고 노골적으로 욕해 줄 사람도 드물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자체보다 그 인간의 생활에 붙어 다니는 것이 더 소중하게 평가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말이 되겠는데, 이건 인간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어 놓고 마침내 당신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머리맡에 앉아 통곡 대신 히히히 웃으며, 아버지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국민 학교 교과서에는 이순신 장군의 위엄 대신 오나시스 의 돈방석 위에서 보내었던 생애가 수록되고, 교사들은 모두 장사꾼이나 돈놀이하는 사람들로 대치될는지도 모른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던 최영 장군에 대하여 일찌기 우리는 존경심을 가져 왔다. 그러나 이제 최영 장군을 기억하는 자 누군가. 그 분의 이야기는 최근에 이르러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는 교훈이 이 시대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라. 다시 한번 곰곰 생각해 보라. 지금 당신의 소유물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들인가. 혹은 당신의 아내인가. 혹은 당신의 애인, 아니면 친구인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저금 통장이다,라고 말하는 돼지 같은 사람이 없기를 나는 빈다. 잘사는 나라, 잘 사는 국민은 확실히 좋은 것이다. 그러나 돈 많은 나라 황금으로 장식된 바보들은 확실히 나쁜 것이다. 그러나 잘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곧 돈 벌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보가 너무 많다. 외국으로 돈을 빼돌리거나 위장 이민 가려던 사람들, 도대체 정당한 방법으로 그런 돈을 벌었을까가 의심스럽다. 소매치기 작당해서 자가용 굴리는 놈, 그런 놈에게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를 오용해서 뇌물 받고 잘 봐 준 경찰관, 참 영악스럽게 돈독이 올랐지만 말도 안 된다. 사람 값만 왕창 떨구어 놓았다. 돈 벌려고 노력 말고 잘살려고 노력 하자 이 표어를 말도 안 된다고 말하면 정말 말도 안 된다. 누군가는 고독을 질겅질겅 씹으며 산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고독을 외출복처럼 갈아입으며 산다고 했다. 무슨 상관이랴. 고독이 달밝은 밤에 보초 서는 흑인 병사의 어금니에 질겅질겅 씹히는 추잉검이건 여름 방학에 여행을 떠나는 재벌의 바람기 있는 외동딸 미니 스커트이건 무슨 상관이랴.
지금 비 내리는 바다에 나는 와 있다. 내가 무슨 마도로스라고 날마다 그토록 바다를 그리워하였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에 이슬 맺힌 백일홍조차도 없는 바다를. 당신은 들리는가. 비는 당신이 고등학교 시절 한번도 말 붙이지 못하고 애태우던 여자애의 음성, 아니면 당신이 밤을 새워 쓰던 편지의 활자들이 이제야 다시 그대 주변으로 돌아와 떨어지는 소리다. 소리는 곧 아픔이다. 양철 지붕 가득히 흩어지는 불면의 낱말,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이다. 당신은 비오는 날의 저문 거리에서 한 사람의 낙오된 유목민처럼 아주 외로운 사람이 되어 오래도록 우산도 없이 홀로 걸어 본 적이 있는가. 호주머니 속에서 당신의 남루한 방으로 돌아갈 시내 버스 요금밖에는 없고, 그리하여 다실의 흐린 조명등 밑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베토벤의 침울한 육성을 들으며 쉴 수조차도 없었던 날, 정답던 친구 몇 명은 저희들끼리 바다로 떠나고 더구나 잠시 사귀던 애인마다 출타하고 없을 때 당신이 그 무엇을 만나게 되는 것은 오직 명료한 고독뿐임을. 그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 보아야 당신 홀로 기거하는 방 안 가득 더욱 감당할 수 없는 고독이 자욱한 빗소리로 누적되어 있을 터이고, 그래서 당신은 차라리 거리에 머물러 좀더 비를 맞을 작정을 하게 되리라. 점차로 당신의 어깨는 젖어 들고 통속한 유행가조차도 눈물겹게 들리면 문득 당신은 회상하게 되리라. 당신이 모르는 사이, 당신의 머리속에서 지워져 버린 이름들을. 그렇다. 진실로 우리가 망각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살아 오는 동안 잠시 우리는 많은 것들을 가슴속 저 알 수 없는 깊이에 방치해 두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이렇게 홀로 쓰라림을 맛보는 시간에 새삼스럽게 찾아내어 보게 될 뿐이다. 여기는 바다. 오늘은 종일토록 비가 내렸다. 당신은 이해할 수 있는가. 저 문명의 거리에서 시달리며 내가 보낸 나날, 소설이고 나발이고 집어치우고 막걸리 국물로 얼룩진 작업복을 걸친 채 비틀거리며 살아온 나날, 내가 경영한 자학이며 방황이며 빌어먹을 울분들을. 정말이지 나는 어금니가 부러질 지경으로 고독을 모질게 씹다가, 그 저주스러운 고독에서 헤어나기 위해 바다로 왔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나는 비 내리는 이 유월의 텅 빈 백사장에서 더 큰 고독 속에 갇히고 말았다. 지금까지 내가 저 문명의 거리에서 생각했던 고독은 한갓 사치일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만나는 이 엄청난 고독을 어떻게 표현하랴. 그러나 차라리 다행한 것은 바다에 찾아와 내가 맛본 것이 고작 몇모금의 소금물이 아니라 바로 나를 자살시켜 버릴 듯한 고독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못 느끼면 나는 플라스틱 제품의 인간으로 끝장이 나고 마니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가 팍 죽어 버리곤 한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 하나가 힘차게 아주 힘차게 악수를 하면서 나, 이번에 한 오백 까뭉개고 집 한 채 지었다. 놀러 와 하고 말하며 기세 좋게 웃을 때, 그리고 그가 내민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와 그의 빛나는 직함을 읽을 때 나는 영락없이 기가 팍 죽어 버린다. 체중 사십 오 킬로그램밖에 안 되는 내 곁으로 단단한 근육과 아랑 드롱을 닮은 얼굴의 운동 선수가 주먹을 다부지게 거머쥐고 떡 벌어진 어깨로 지나갈 때, 또는 배가 상당히 불룩하고 얼굴에 기름기가 땀처럼 번질번질한 중년의 남자가 아주 젊고 싱싱한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 호텔 쪽으로 가는 택시를 잡는 것을 볼 때, 마찬가지로 나는 기가 팍 죽어 버린다. 나보다 훨씬 학벌이 좋고 박학다식한 술집 작부, 담배값이 올라도 여전히 은하수를 끼고 있는 사람들의 손가락, 그 손가락에 장식된 금반지의 무게, 대포 한찬 척걸치고 욕을 내뱉는 어떤 여대생의 혓바닥, 그런 것들은 나를 기죽게 한다.때마다 고기를 먹는 부자집의 견 선생 나으리, 마음 괴로와 찾아간 천주교의 높은 첨탑과 그 밑에 초라하게 서 있는 내게 이빨을 번득이며 달려드는 세퍼드, 그리고 천주교의 문에 매달린 권투 선수의 주먹만한 자물쇠, 재벌 2세가 거느리는 여자들의 이름과 거기에 첨가되는 돈의 휴지 같음. 또한 나를 기죽게 한다. 소설 나부랑이가 밥먹여 주냐, 너도 취직해서 돈 모아 갖고 장가나 가라는 선배들의 애정, 차비가 없는 날의 예비 사이렌, 시집 간 내 애인이 아이를 낳았다고 누군가 말해 올 때, 그날 내가 마신 술의 분량과 술집 주인의 사나운 눈초리. 아, 산다는 건 얼마나 곤혹스러운가. 서른 해를 살면서 효도 한번 못하고 게다가 이 비썩 가물어 빠진 내몸 하나 누일 땅도 나는 장만 못했다. 언젠가 춘천 시내의 어느 낯익은 거지님에게 하루 수입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뭐 2천 5백원 정도밖에 안 돼요 라고 대답했었다. 기찬 벌이다. 시내 한 바퀴 돌면 2천 5백원, 기죽을 수밖에 없다. 나는 춘천시 명동 전원 다실 구석진 의자에 쑤셔 박혀 계속 써갈기지만 항시 창자는 암탉 알 품는 소리를 낸다. 그러나 팔 하나 썩둑 잘라 버리고, 한 푼 줍쇼에 가담할 만큼 내가 어디 죽일 놈이냐. 지난 겨울을 연탄 없는 냉방에서 일초간 5회 정도 따다닥 이빨을 부딪치며 떨었어도 복권 따위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단지 원고지만 있으면 나는 행복하였고 그것은 실로 참담한 행복이었다. 내가 아주 자신만만한 것은 하루에 라면 반 개와 냉수에 스프 가루 한 개씩을 타마시며 한 달 정도는 넉근히 살아갈 수 있는 독이다. 그리고 원고를 쓰는 동안만은 닷새 정도 밤을 계속 하얗게 죽일 수 있는 문학에의 사랑이다. 설마 이말 듣고 기죽을 사람 없겠지. 그러니까 뭐 나도 기죽을 거 없이 소설, 참으로 좋게 써서 기 한번 죽여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기를 펴라, 기를. 기죽은 자여! 그대는 알 것이다. 쥐구멍에도 볕들날 있다는 그 기막히게 희망적인 속담을. 그리고 젊은이들이여 방황을 하자. 임무처럼 방황을 하자. 사치가 아니어야 한다. 방황은 고통을 가진 자만의 참다운 자유이어야 한다. 더욱 고통스러워지기 위하여 우리가 껴안아야 할 정신의 칼. 창백한 지성이 우리에게 부여되는 최대의 형벌. 껴안으면 껴안을수록 더욱 쓰라린 우리들 시간의 중심부. 헤어나기 위해서 더 깊이 빠져들어가는 어둡고 적막한 희생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낱말들을 암장하며 살았던가. 돈을 벌어라. 아버지를 닮아라. 너는 아직도 어린애다. 좀더 비정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려고 노력하라. 네가 대학에서 배운 바람직한 인간은 조금도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토록 노력해라. 출세를 위해서는 더러 양심도 팔아 넘겨야 할 때가 많은 법이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도 혼자 결백한 체했다가는 오히려 너만 손해다. 그러나 우리는 끝끝내 결백하고 싶었다. 배불리 먹고 편안히 잠들지는 못해도 사흘을 굶고 웅크려 새우잠을 자더라도 오직 인간답게 살면 우리는 만족하리라 작정했다. 우리는 젊은이답고 싶었다. 그 여자와 헤어지도록 해라. 반드시 사법 고시에 합격하도록 해라. 아직 술 담배엔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해라. 머리가 너무 길다. 바지통이 너무 좁다.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마라. 네 친구놈들은 모두가 왜 그 모양이냐. 예술하는 놈들치고 처자식 제대로 먹여 살리는 놈 없더라. 너는 아예 그 따위 되지 못한 일에는 눈길조차 건네지 마라. 나는 너를 믿고 있다. 너는 효자다. 자 약속할 수 있겠지. 내일부터는 모든 일에 손을 떼고 내 명령에만 복종할 수 있겠지...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죄스러웠다. 그리고 날마다 자신 없었다. 거리로 나오면 만나는 것은 바람뿐. 우리는까닭도 없이 서글퍼서 한 잔의 낮술을 마시며 깊이 생각해 보곤 하였다.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정말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그러나 아직까지는 비굴할 수 없었다. 저 문화가 녹슬고 문명이 번쩍거리는 생활의 거리. 지폐가 일어서고 인간이 쓰러지는 풍경의 거리. 플라스틱 인간처럼 표정도 감정도 상실당해 버린사람들을 몇 번이고 마주치면서우리는 온몸이 형편없이 줄어 들고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대체로 우리는 돈이 없었다.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벌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이 사회 어디에서고 편안한 마음으로 머리를 식힐 생각을 하지 않는 게 현명할 것 같았다. 대개의 사람들이 우습게도 썩 돈을 좋아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아니다. 좀더 솔직해지자. 대개의 사람들이 우습게도 자기 목숨의 반 이상을 돈에 맡겨 놓은 것 같아 보였다. 존경하는 돈이시여, 제발 그대가 한갓 종이라는 사실을 인간들이 믿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 우리는 고독하다. 그대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욱 고독해진다. 이제 사람들은 점차로 저마다 개성을 잃어가고 있음이 틀림없다. 절대로 손해볼 수 없다는, 좀더 쉽고 편하게 인생을살고 싶어하는, 남의 일엔 절대로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골치 아픈 일은 적당히 남에게 맡겨 가면서 자신의 위치는 언제나 적당하다고 은근히 주장 하며 사는 얼굴들. 낭만이고 나발이고 집어치워라. 그저 먹고 사는 일만으로도 바쁘다. 바뻐 가 온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람들. 그러나 어딘가에서 인생이 조금씩 헐리는 소리를 그들도 더러는 들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젊은이들이여. 우리는 그렇게 살지는 말도록 하자. 우리는 돈의 노예도 기계의 하수인도 아니다. 젊은이들이여, 이제는 방황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하자. 겨우 30년도 못 살고 인생을 꺽어 먹은 처지에 마치 인생을 달관해 버리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위장하며 앉아 있는 일이 없기로 하자. 이기와 타산에 물들어 있으면서도 그 사실이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자기 합리화에 열을 올리는 속물도 되지 말기로 하자. 사랑을 상실한 이 시대. 전화기 앞에서 손가락 하나로 애인을 쉽게 불러 낼 수 있는 편리한 시대. 그러나 새벽 그리움의 물살로 가득 찬 낱말들이 우리의 저 속 가슴 깊숙이를 설레이게 하던 연애 편지는 사라져 버린 시대. 진실은 모두 흘려 버리고 껍질만 남은 시대 젊은이들이여. 우리는 이 시대를 방황하자. 흘려 버린 우리를 찾아 방황하자. 방황 끝에 비로소 젊음은 확인된다.
춘천시 석사동. 그 원한에 사무치던 우리들의 유배 시절. 나와함께사흘을 굶고 도둑질 대신 물배를 채우며 눈물로 시를 쓰던 나의 친구여. 지금은 또 무슨 죄의 명목으로 이 나라의 끝부분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어딘가에까지 유배당해 갔느냐. 거기서도 학처럼 깨끗한 날개를 접고 앉아 시를 쓰며 사느냐. 방세가 석 달치나 밀려서 주인 아주머니가 자기네 자물쇠로 방 문을 걸어 잠그고 막무가내로 열어 주지 않던 우리들의 자취방. 그 혹한의 감옥. 그때 그대가 신춘 문예에 응모해서 상금 타면 갚겠다고 사정 끝에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던 비정의 냉동실. 밤새워 시를 쓰다 흘린 그대 코피의 흔적은 이제 지워지고 없어도 아직 우리들 가슴에 정신의 시퍼런 칼날은 살아 있다. 그리워할 여자조차도 하나 없었던 그 시절. 우리에겐 겨울이 바로 공포였다. 추위를 가릴 수 있는 것이라곤 담요 한 장과 우리들의 체온뿐이었다. 연탄도 곤로도 없었다. 어쩌다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먹을 수 있게 되면 우리들은 마치 큰 죄라도 짓는 것처럼 수저를 들기가 거북했었다. 정말 빌어먹을...이었지. 날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고심했던가.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우리들 자신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비굴함을 느껴야 했던가. 팔아치울 수 있는 것은 모조리 팔아치웠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마지막 남은 담요 한 장마저 팔아치우고 나서야 우리는 각자 헤어질 것을 결심했었다. 더 이상 어떻게 버틸 수가 있었단 말인가. 돈도 생기지 않는 시만 붙잡고 그 낯선 사람들만의 거리에서 우리가 더 이상 어떻게 맑은 창자로만 버틸 수가 있었단 말인가. 우리는 헤어졌다. 그 후로 그대는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면서기가 되었다는 소문이었다. 결국 춘천에 혼자 남아서 나는 집도 절도 없는 방황의 개가 되었다. 어느 날은 간첩으로 오해받아 파출소로 끌려가서 매를 맞았다. 또 어느 날은 절도죄로 누명을 쓰고 수갑까지 찼었다. 파출소를 나오면서는 하늘을 보며 끼득끼득 웃었었다.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아서였다. 언젠가는 면서기를 한다는 그대가 하도 보고 싶어서 그대의 사무실까지 한번 찾아갔었다. 가는 동안 어느 작은 읍 터미널에서 또 다시 순경에게 붙잡혀 머리를 깎였었다. 하늘이 흐려 있었다. 쥐 파먹은 머리로 그대의 사무실까지 찾아가 보니 그대는 출장중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비를 맞으며 출장지까지 찾아갔었다. 그대의 출장지는 파종기의 논두렁. 그대는 검은 우산을 쓰고 혼자 멍청하게 빈 논 가운데를 배회하고 있었다. 비둘기들이 논두렁콩을 다 파먹었군. 실적이 나쁘면 모가지라는데. 나와의 악수를 끝내고 그대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우울한 목소리였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대 가슴에서 빛나는 시의 칼빛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 우리는 말없이 술만 마셨었다. 돌아올 때 그대가 내 손에 쥐어주던 가슴 아픈 돈 일금 2천원. 그대도 사무실에서 꾸어 가지고 나왔었다. 7년 전 일이었다. 춘천으로 돌아와 나는 변두리인 석사동에서 번화가인 명동으로 진출해서 좀더 구체적인 거지가 되었다. 춘천시 명동 거리 한복판에 서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딱 20원만 꾸는 거지가 되었었다. 그 20원으로 무엇을 했는가는 묻지 말아라. 치사하다. 그냥 번데기를 사먹었을 뿐이니까. 단돈 20원으로 섭취할 수 있는 고단위 영양 식품으로서는 그게 그래도 최고였었다. 더러는 도무지 살아 있다는 게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자살하고 싶었다. 하지만 억울해서 자살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가 술에 취하면 안개에 홀려 명동에서 다시 석사동으로 떠내려가곤 했었다. 겨울이면 안개가 막막했었다. 잠은 주로 다리 밑이나 벽돌 공장 신세를 지곤 했었다. 불량배들하고 만나서 다구리도 맞고 이빨도 깨지고 그랬었다. 그 즈음은 머리에 이가 생겨 산에 올라가 양지 바른 비탈에다 자리를 잡고 앉아 이를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뽑아 내어 데리고 놀다가 손톱으로 눌러 죽이곤 했었다. 외로왔었다. 햇빛이 좋으면 왠지 눈물이 났었다. 이러다간 안 되겠다 싶어 남춘천에다 골방 하나를 얻었었다. 후배에게 일금 1천원을 간신히 꾸어 가까스로 방세를 낼 수가 있었다. 천원으로 얻을 수 있는 방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러나 나는 거기서 겨울을 보내며 마치 고행을 하는 기분으로 고통스럽게 글을 썼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처럼 만나면, 아직도 살아 있니? 기차구나,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중편 소설을 하나 써서 (세대)라는 월간지에 내었었다. 그러나 보기 좋게 낙선을 했다. 당선작 없음. 나는 발표문을 보고 막막했었다. 앞으로 또 1년을 글만 믿고 어떻게 살란 말인가. 그러나 글만 믿고 1년을 기적처럼 살았다.
그리고 다음해 중편 소설 하나를 써서 기어이 문단에 부끄러운 얼굴을 내밀었다. 소설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어둠과 고통을 감추어 둔 것인지도 모르고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배고픔과 눈물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한 여자가 나와의 결혼을 허락했다. 지금의 내 아내 전영자다. 고생을 너무 많이 시켜 안스럽다. 첫애를 가난한 단간 셋방에서 내 손으로 받던 날, 햇빛이 좋아서 나는 또 울었더랬다. 작가라는 칭호에는 미안했지만, 나는 내 아내의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월부 책장사의 길로 나섰었다. 결혼 반지도 목걸이도 팔아 치운 지 오래였었다. 아, 죄많은 남편 같으니라고. 하지만 지금은 두 아들의 볼기짝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리면서 돈 못 버는 남편에게 눈을 흘길 수 있는 영광을 가진 나의 아내여. 비록 가난은 하지만 너무 그러지 말아 다오. 내게는 돈이 없지만 빛나는 칼날, 몸살나는 바다, 맑은 눈물, 그리고 아직은 악물고 참아낼 수 있는 어금니 몇개쯤은 남아 있다. 속아 다오. 그것은 돈보다 좋은 것이다. 그렇게 믿으면 사실이 된다. 나는 결코 통속해지고 싶지는 않다. 물론 돈을 번다고 반드시 통속해 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 나의 아내여, 친구여, 독자여, 믿어 다오. 우리들의 결혼식 날을 이야기할까. 결혼식장엘 가야 하겠는데, 시간은 임박해 오는데, 내 호주머니 속에는 단돈 10원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재촉하러 온 내 아내의 친구에게 3백원을 꾸었었다. 친구놈들은 어떻게 된 셈인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렇겠지. 개새끼들. 먹고 사느라고 바쁘겠지. 나는 처음으로 친구놈들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식장에 당도해 보니 자식들은 모두 다 대기중에 있었다. 마치 즈이들이 내 결혼을 대신하기라도 하는 놈들처럼 엄숙하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장 두 시간 동안 결혼식은 진행되어졌다. 성악을 전공하는 후배가 축가를 부르고, 그대, 눈물로 시를 쓰던 그대가 축시를 읽었다. 죽어도 축시 따윈 안 쓴다고 하던 그대의 고마운 말씀 몇 줄을 나는 아직 고이 가슴에 넣어 두고 잊어버릴 수가 없다. 식장에서 나와, 나의 아내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김유정 문인비까지 동행했다. 거기 외롭게 죽어 간 강원도의 한 소설가를 기리는 자리. 우리는 11월 26일의 싸늘한 소주를 나누어 마셨다. 구두닦이들도 있었고,장래의 시인, 소설가들도 많이 있었다. 모두가 가난했었다. 그러나 직행 버스도 잠시 멈추고 우리들의 가난한 결혼식을 축복해 주었었다. 함박눈이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신혼 여행은 어린이 대공원으로 갔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열대 식물원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었다. 행복했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부끄러움 하나뿐이다. 아직도 집 한 채 없는 가장이여, 반성하라, 반성하라, 반성하라.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계속 배고플 것이다. 아내여, 몸서리를 치지 말라. 적어도 그대들만은, 나의 아내와 나의자식들만은, 하얀 쌀밥에 고기 반찬을 먹여 주마. 하지만 나는 살아 있는 그날까지 그 쓰라림을 배고픔을 복습하리라. 비록 내 몸은 썩어 가도 내 언어는 영원히 남아서 빛나기를 빌면서. 모든 가난한 자들 곁에 있으려고 노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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