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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6호 2022.12.28 수요일 (음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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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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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인 소수가 이끌어 주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는 존속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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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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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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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三) - 김수영
순자야 너는 꽃과 더러워져가는 花園의
초록빛과 초록빛의 너무나 빠른 변화에
놀라 잠시 찾아오기를 그친 벌과 나비의
소식을 완성하고
宇宙의 완성을 건 한 字의 생명의
歸趨를 지연시키고
소녀가 무엇인지를
소녀는 나이를 초월한 것임을
너는 어린애가 없음을
너는 어른도 아님을
꽃도 장미도 어제 떨어진 꽃잎도
아니고
떨어져 물 위에서 썩은 꽃잎이라도 좋고
썩는 빛이 황금빛에 닮은 것이 순자야
너때문이고
너는 내 웃음을 받지 않고
어린 너는 나의 全貌를 알고 있는 듯
야아 순자야 깜찍하고나
너 혼자서 깜찍하고나
네가 물리친 썩은 문명의 두께
멀고도 가까운 그 어마어마한 낭비
그 낭비에 대항한다고 소모한
그 몇갑절의 공허한 投資
大韓民國의 全財産인 나의 온 정신을
너는 비웃는다
너는 열네살 우리 집에 고용을 살러 온 지
三일이 되는지 五일이 되는지 그러나 너와 내가
접한 시간은 단 몇분이 안되지 그런데
어떻게 알았느냐 나의 방대한 낭비와 넌센스와
허위를
나의 못 보는 눈을 나의 둔갑한 영혼을
나의 애인 없는 더러운 고독을
나의 대대로 물려받은 음탕한 전통을
꽃과 더워져가는 화원의
꽃과 더러워져가는 花園의
초록빛과 초록빛의 너무 빠른 변화에
놀라 오늘도 찾아오지 않는 벌과 나비의
소식을 더 완성하기까지
캄캄한 소식의 실날같은 완성
실날같은 여름날이여
너무 간단해서 어처구니없이 웃는
너무 어처구니없이 간단한 진리에 웃는
너무 진리가 어처구니없이 간단해서 웃는
실잘같은 여름바람의 아우성이여
실날같은 여름풀의 아우성이여
너무 쉬운 여름풀의 아우성이여
<1967.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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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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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모삼천(孟母三遷)
孟:맏 맹. 母:어미 모. 三:석 삼. 遷:옮길 천.
[원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동의어] 삼천지교(三遷之敎).
[유사어] 현모지교(賢母之敎).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
[출전]《列女傳》〈母儀傳(모의전)〉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교사.
전국 시대, 유학자(儒學者)의 중심 인물로서 성인(聖人) 공자에 버금가는 아성(亞聖) 맹자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손에 자랐다. 맹자의 어머니는 처음 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어린 맹자는 묘지 파는 흉내만 내며 놀았다. 그래서 교육상 좋지 않다고 생각한 맹자의 어머니는 시장 근처로 이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건을 팔고 사는 장사꾼 흉내만 내는 것이었다. 이곳 역시 안 되겠다고 생각한 맹자의 어머니는 서당 근처로 이사했다. 그러자 맹자는 제구(祭具)를 늘어놓고 제사 지내는 흉내를 냈다. 서당에서는 유교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예절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런 곳이야말로 자식을 기르는데 더할 나위 없이 놓은 곳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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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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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4. 민심은 떠나건만...
이오의 탈출
한편, 굴성에 있는 공자 이오는 어떻게 되었는가. 원래 대부 극예와 여이생은 서로 의리를 맺은 바 있었고, 또 괵사란 사람은 공자 이오와 외척간이기 때문에, 그들 세 사람만은 굴 땅으로 달려가서 이오를 도왔다. 공자 이오는 그 세 사람이 와서 전하는 급한 소식을 듣고 서로 상의했다. 이 때 성 밖엔 진헌공이 보낸 가화의 군사가 당도했다. 이오는 급한 대로 우선 병사들로 하여금 성문을 굳게 지키게 하고 대책을 궁리했다. 가화도 꼭 공자 이오를 잡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가화는 군사를 거느리고 굴성을 포위하고만 있을 뿐 전혀 공격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화는 화살에다 이오 공자에게 보내는 한 통의 서신을 꽃아 성 안으로 쏘아 보냈다. 그 화살에 꽃힌 서신의 내용은 이러했다.
- 공자는 속히 몸을 피하소서. 부군께서 보낸 군사가 계속해서 이 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어서 타국으로 몸을 피하소서.
화살에서 서신을 뽑아 읽고, 한숨을 돌린 공자 이오가 극예에게 상의하여 말했다.
"중이가 지금 책나라에 가 있으니 우리도 그 곳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소?"
극예가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 상감은 두 공자가 공모했다는 이유로 군사를 보내어 잡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공자가 각각 달아나 결국 한 곳에 가서 모이면 여희는 또 갖은 수단을 다 부릴 것이며 그렇게 되면 주공이 보낸 군대가 책나라를 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양나라로 가십시다. 양나라는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강성한 진(秦)나라와 통혼한 사이입니다. 공자께선 앞으로 양나라와 진나라 힘을 빌어 장차 본국에 돌아가서 대사를 성취하도록 하십시오."
이에 이오는 밤을 도와 굴성을 빠져나와 세 사람을 거느리고 양나라로 달아났다. 가화는 공자 이오를 추격하는 체하다가 돌아갔다. 가화는 돌아가서 진헌공에게 이오를 놓쳤다고 보고했다. 진헌공이 대로했다.
"두 놈을 잡으러 가서 한 놈도 못 잡아오다니 그따위 군사를 어디다 쓰겠느냐! 듣거라! 가화를 결박하고 군율대로 참하여라."
곁에서 비정부가 아뢰었다.
"주공께서 포, 굴에다 성을 쌓고 강한 군사를 보내어 수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공자 이오를 못 잡아온 것은 가화의 죄만도 아닙니다."
양오가 또한 아뢰었다.
"이오는 보잘것 없는 인물이니 족히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러나 중이는 명성이 높고, 많은 인물들이 그를 따라갔기 때문에 지금 궁중이 비다시피 되었습니다. 더구나 책나라는 우리 나라와 대대로 원수지간입니다. 책나라를 쳐서라도 중이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진헌공은 가화를 용서하고 발제를 불러들였다. 발제는 가화가 죽게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겁을 먹고 궁중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병사를 거느리고 이번엔 책나라를 치겠다고 청했다. 진헌공은 즉시 허락했다. 이에 발제는 군사를 거느리고 책나라로 쳐들어갔다. 책나라에서도 군사를 채상 땅으로 보내어 쳐들어오는 발제의 진군과 대진시켰다. 두 나라는 국경에서 서로 대진한 지 두 달이 지났으나 승부가 나질 않았다. 한편 진나라에선 비정부가 진헌공에게 아뢰었다.
"부자간의 인연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습니다. 두 공자의 죄상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고, 또 이미 나라 밖으로 달아 났는데 뒤쫓아가서까지 그들을 죽인다는 것은 너무나 심한 처사입니다. 더구나 책나라를 완전히 무찌르지도 못하면서 우리 군사의 힘만 허비한다면 반드시 이웃 나라들이 우리를 비웃을 것입니다."
이 때는 진헌공도 제법 마음이 진정된 뒤였다. 이에 진헌공은 발제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진헌공은 공자 중이와 이오를 따르는 무리가 이렇듯 많으니 반드시 안팎으로 해제의 앞날에 이롭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마침내 명령을 내려 자기 일가 친척들을 모조리 국외로 추방했다. 공족들은 오히려 잘되었다는 듯이 속시원해 하며 진나라를 떠났다. 드디어 진헌공은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여희의 소생인 해제를 세자로 세웠다. 그렇지만 동관오와 양오와 순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세상을 탄식했다.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신하들은 늙고 병들었다 핑계하며 벼슬을 내놓고 두문 불출했다. 얼마 후 진헌공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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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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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원수를 사랑하라
김인순(여.동대문구 휘경2동)
제가 여고 1학년 때의 일입니다. 우리한테 '왜 사냐?'고 물으면 우린 항상 손가락으로 '존재의 이유' 바로 그분을 가르키곤 했습니다. 삼신할매의 최고의 걸작품이었던 우리의 생물선생님. 지금도 그 휘황찬란한 모습을 생각할 때면 목이 메이는 건 기본.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까지 걷어차 버리고 싶을 정도지요. 키는 버스 환기통을 모자로 쓰고 달릴 만큼 크셨고, 얼굴은 삼신할매한테 도대체 얼마나 썼길래 저런 대리석 조각이 나왔을까 할 정도였습니다. 이분이 만약 연예계로 방향을 틀었다면 요즘 잘나간다는 배용준의 밥줄도 무사하진 못했을 겁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끊어진 밥줄 올려다보며 '백수의 골짜기'에서 땅을 치며 '한오백년'을 부르는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유머감각은 또 어떤가요? 서세원이 발바닥에 로켓 엔진을 달고 뛰어도 택도 없을 겁니다. 하품도 그분이 하면 머리를 풀어헤치고 그분의 입속으로 뛰어들어가 밥이 되고 싶었고, 하부에서 가끔씩 독가스가 뿜어져 나올 때도 '내 남자의 향기'라고 부르짖고 싶을 정도 랍니다. 여하튼 목소리, 걸음걸이, 세련되고 정확한 서울 말씨 등등 모든 면에서 A+만점을 받은 정도로 정말 매력적인 분이셨지요. 오죽하면 별명이 '태양'이었겠습니까? 이와는 반대로 외모부터 숙명적인 라이벌일 수밖에 없었던 분이 바로 국사 선생님. 키는 등소평, 얼굴은 안방에 누워 있는 메주를 닮아 웃돈까지 줘가며 도로 물리고 싶을 만큼 '리바이벌'을 허용치 않는 기념비적인 얼굴이었지요. 유머감각만 해도 사흘이 멀다 하고 시베리아 경찰이 와서 '선생스키, 고향에서 잡아오라스키, 이번에는 가면 언제올지 모른다스키'하며 끌고갈 정도로 간담이 '썰렁" 그 자체였습니다. 거기다 억수로 심한 경상도 사투리 하며, 궁둥이 양쪽에서 오리 두 마리가 부활할 것 같은 걸음걸이 등 많은 부분이 우리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괴로움을 선사했습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 '백팔번뇌!' 그 당시 우리에게 최고의 찬사는 '태양한테 열받았어?', 가장 심한 욕은 '백팔번뇌와 눈이 맞았어?'였습니다. 사태가 이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태양열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기를 써야 했습니다. 주머니가 가득한 애들은 아침마다 꽃이나 책으로 선물공세를 했는데, 우리는 얘들을 '매수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얼굴과 몸매가 따라줘서 요란하게 치장하고 오는 애들은 선생님의 마음을 흐려 놓는다고 해서 '미꾸라지파', 이와는 달리 저처럼 청렴결백하고, 몸매를 초월한 애들, 그래서 아침마다 물동이 이고 한손엔 물걸레나 빗자루를 들고 와서 가식없이 몸으로 때우는 애들은 '육체파'라고 불렀습니다. 삼파전이었지요. 나중에 밑천이 떨어진 매수파가 미꾸라지 휘하로 들어가서 '부자파'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나는 바람에 저희가 상당히 고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저희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쓰라린 이름을 줬던 최초의 혈투, 일명 '혈액형 전투'에서의 패배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혈액형 실험이 예고된 날로, 우리는 쉬는 시간부터 손가락을 떡주무르듯 주무르며 저마다 신성한 제단의 제물이 되길 학수고대했지요. 각 혈액형당 1명씩 해서 모두 4명의 피가 필요했는데, 먼저 A형은 우리의 국보 고청자(고려청자)의 승리가 거의 확실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여우 국가대표 강미형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하는 겁니다.
"선생님요, 선생님이 드라큘라면 지는 맛있는 밥이 될랍니더. 자, 드이소."
'아니 이럴 수가! 다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분수지, 요망한 것 같으니라구.' 다음은 AB형. 애석하게도 이 형은 딱 한사람밖에 없었는데, 그 애는 꿋꿋하게 자기만의 독자노선을 걷는 애로 수업시간엔 주로 책상에 엎드려 코로 트럼펫을 불고, 이빨로 무전을 치며, 침으로 세수를 하는데, 가끔씩 악몽을 꿀 때면 허공으로 손을 높이 올리기도 했지요. 그날도 악몽을 꾼 탓인지 상황판단도 못하고 겁없이 손을 드는 바람에 게슈타포에게 끌려가는 유태인처럼 허옇게 질린 얼굴로 울부짖었습니다.
"난 아니에요, 난 피가 모자라요, 아아-, 싫어요."
끝내 끌려가서 피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다음은 B형. 지원자가 많아서 '가위, 바위, 보'를 했는데, 그 가시나들 참 억수로 잘하는기라요. 마지막 남은 O형. 우리 육체파의 희망, 바로 제가 나섰습니다. 제 손이 명색이 기적을 부르는 손인데, 그깟것 하나 못했겠습니까? 하지만 전체점수 2-1로 저희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지요. 방과후 전후 처리와 앞으로 다가올 대전을 위해 논두렁회의를 가졌습니다. 주제는 선생님 생신 선물에 관한 것이었는데, 달력을 보니 마침 복날이더군요. 그래 팔 걷어붙이고 나가 한 마리 잡아 드리기로 했지요. 아무래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할 것 같아 비록 국가에서는 포기한 인간문화재지만 그래도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이신 저희 할아버지께 여쭸습니다.
"할배요, 개는 우찌 잡습니꺼?"
"가시나가 건 와 묻노?"
"우리 선생님 몸이 시원찮아서..."
"뭐라꼬? 그라믄 느거 선생이 니보고 개 잡아오라 그러드나? 내 이놈의 선생 다리 몽둥이를 확 뿐질러 뿔끼다."
"아입니더, 그게 아니고예 지가 묵을라꼬..."
"뭐라꼬? 그라믄 니가 지금 꼭두새벽부터 개 잡아묵겠다고 설쳐대는기가? 이 가시나가 맞아 죽고 싶나. 퍼뜩 안 들어가나!"
이리하여 개 한 마리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시 열린 제2차 논두렁회의를 통해 내려진 결정은 자장면이었는데, 문제는 4교시인 생물 시간에 맞춰 그걸 어떻게 가져오느냐였지요. 궁리 끝에 우리는 백팔번뇌를 따돌리고 수위 아저씨를 매수하여 교문을 넘자는 기가 막힌 계획을 세웠습니다. 드디어 3교시 국사시간, 약속대로 청자가 먼저 손을 들더군요.
"선생님요, 화장실이 지를 부릅니데이."
"쪼끔만 참아라이."
"안됩니더, 억수로 큰 건데 우찌 참습니꺼?"
"그 가시나 참, 지저분하게 노네. 퍼뜩 가그라."
"쪼끔 오래 걸릴 낀데, 괜찮십니꺼?"
"그 가시나 참, 니 맘대로 가서 내다 팔고 오든, 집어 묵고 오든 맘대로 해 뿌리라 안카나."
다음엔 제 차례였습니다.
"닌 또 뭐꼬?"
"지도 배가 아픕니데이."
"꾀병 아이가?"
"아입니더."
"니도 오래 걸릴 끼가?"
"그럴 낌더."
영문을 모르신 선생님은 얼굴을 찌푸리셨지만, 어쨌든 우리의 계획은 성공!
"이반 가시네들은 다 와 이카노?"
이렇게 우린 밸팔번뇌를 따돌리고 운동장에서 만나 담배 한갑으로 수위 아저씨를 매수한 뒤 여유 만만하게 자장면을 사왔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생물시간, 예상대로 부자파는 케이크를 내놓더군요. '미련한 것들, 저희들 제삿밥이 될 줄도 모르고... 하하하.' 다음엔 우리 차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자장면을 내놓자 선생님께서는 감탄 또 감탄하셨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그날 자장면은 환희의 송가를 부르며 선생님의 입속으로 넘어갔고, 케이크는 최후의 한 조각까지 반 친구들의 이빨에 사정없이 뭉게져서 처절한 장송곡을 부르며 우리들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승리감에 도취될 사이도 없이 또 끔찍한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국사시간에 말입니다.
"봐라, 느거들은 모르제? 느거들 태양이 각시델꼬 비행기 타고 날른다카드라. 걱정 말그레이, 내는 절대로 느거들을 배신하지 않는데이. 느거들을 두고 우찌 가겠나?"
세상에 몽룡이가 떠난다는 마당에 학도가 온다꼬 춘향이가 춤을 추겠습니꺼? 사태가 급박한지라 우리는 부자파까지 불러 제1차 방앗간 회담을 열었습니다. 선생님을 낚아챈 그 여우가 누군지 찾아서 응징을 하자는 의견, 막강한 테러리스트를 사서 둘 중 하나를 납치하자는 의견 등 분분했지요. 하지만 일단은 진상을 아는 게 급선무라 태양께 그 여우가 누구고 뭣땜시 결을 하는지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선 그 동안 백팔번뇌한테 사사받은 사투리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 여우는 내 동창이고, 그 여우랑 결혼하는 이유는 원수를 사랑하는 우리집 전통이라 그렇데이. 누가 또 아나? 가정의 평화는 세계 평화라꼬, 노벨상 남는 거 있으니 하나 가져가라 할지. 그래되면 느거들 머리에 꽃달고 꼭 와야 된데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방과후 열린 제2차 방앗간회담에서 우리는 그 여우한테 선생님을 보내드리고 나중에 선생님이 상을 받게 되면 머리에 누룽지라도 달고 이곳을 뜨자고 합의를 봤습니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매년 가을이면 떨리는 가슴을 안고 신문을 주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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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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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조지훈편"
조지훈(1920~1968)
시인, 본명은 동탁. 경북 영양 출생. 혜화 전문 졸업. 고려대 교수, 민족 문화 연구소장 역임.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불림. 지사풍의 시인으로 알려졌던 조지훈의 시는 회고적 취미, 자연적 친화성, 불교적 선의 감각 등을 그 주요한 바탕으로 삼았다. 엄한 유교적 가정에서 자라난 장자의 기풍이 있었으며 후기에는 시보다 민족 문화의 개발에 주력하였다.
지조론
- 변절자를 위하여 -
지조란 것은 순일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명리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 있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 곤고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안심하고 그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자이기 때문에 지조 없는 지도자, 배신하는 변절자들을 개탄하고 연민하며 그와 같은 변절의 위기의 직전에 있는 인사들에게 경성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지사와 정치가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독립 운동할 때의 혁명가와 정치인은 모두 다 지사였고 또 지사라야 했지만, 정당 운동의 단계에 들어간 오늘의 정치가들에게 선비의 삼엄한 지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인 줄은 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정당 운동을 통한 정치도 국리 민복을 위한 정책을 통해서의 정상인 이상 백성을 버리고 백성이 지지하는 공동 전선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구복과 명리를 위한 부동은 무지조로 규탄되어 마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이 난국을 수습할 지도자의 자격으로 대망하는 정치가는 권모술수에 능한 직업 정치인보다 지사적 품격의 정치 지도자를 더 대망하는 것이 국민 전체의 충정인 것이 속일 수 없는 사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염결 공정 청백 강의한 지사 정치만이 이 국운을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 모든 정치 지도자에 대하여 지조의 깊이를 요청하고 변절의 악풍을 타매하는 것은 백성의 눈물겨운 호소이기도 하다. 지조와 정조는 다 같이 절개에 속한다. 지조는 정신적인 것이고, 정조는 육체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지조의 변절도 육체 생활의 이욕에 매수된 것이요, 정조의 부정도 정신의 쾌락에 대한 방종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정치인의 무절제와 장사꾼적인 이욕의 계교와 음부적 환락의 탐혹이 합쳐서 놀아난 것이라면 과연 극언이 될 것인가.
하기는, 지조와 정조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오늘에 와선 이미 시대 착오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른다. 하긴 그렇다. 왜 그러냐 하면, 지조와 정조를 지킨다는 것은 부자연한 일이요, 시세를 거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부나 홀아비가 개가하고 재취하는 것은 생리적으로나 가정 생활로나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고, 또 그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개가와 재취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승인하면서도 어떤 과부나 환부가 사랑하는 옛짝을 위하여 개가나 속현의 길을 버리고 일생을 마치는 그 절제에 대하여 찬탄하는 것을 또한 잊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 능히 하기 어려운 일을 했대서만이 아니라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본능고를 이성과 의지로써 초극한 그 정신의 높이를 보기 때문이다. 정조의 고귀성이 여기에 있다. 지조도 마찬가지다. 자기의 사상과 신념과 양심과 주체는 일찌감치 집어 던지고 시세에 따라 아무 권력에나 바꾸어 붙어서 구복의 걱정이나 덜고 명리의 세도에 참여하여 꺼덕대는 것이 자연한 일이지, 못나게 쪼를 부린다고 굶주리고 얻어맞고 짓밟히는 것처럼 부자연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면 얼핏 들어 우선 말은 되는 것 같다.
여름에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하다가 가을 바람만 불면 단팥죽 장사로 간판을 남 먼저 바꾸는 것을 누가 욕하겠는가. 장사꾼, 기술자, 사무원의 생활 태도는 이 길이 오히려 정도이기도 하다. 오늘의 변절자도 자기를 이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또 그렇게 자처한다면 별문제다. 그러나, 더러운 변절의 정당화를 위한 엄청난 공언을 늘어놓는 것은 분반할 일이다. 백성들이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먼 줄 알아서는 안 된다. 백주 대로에 돌아앉아 볼기짝을 까고 대변을 보는 격이라면 점잖지 못한 표현이라 할 것인가.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정신의 자존 자시를 위해서는 자학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조의 매운 향기를 지닌 분들은 심한 고집과 기벽까지도 지녔던 것이다. 신단재 선생은 망명 생활 중 추운 겨울에 세수를 하는데 꼿꼿이 앉아서 두 손으로 물을 움켜 얼굴을 씻기 때문에 탄 물이 모두 소매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한다. 어떤 제자가 그 까닭을 물으매, 내 동서남북 어느 곳에도 머리 숙일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무서운 지조를 지킨 분의 한 분인 한용운 선생의 지조 때문에 낳은 많은 기벽의 일화도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가 지도자와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지조는 이토록 삼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 뒤에는 당신들을 주시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위의와 정치적 생명을 위하여 좀더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라는 충고 정도다. 한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만고에 처량한 이름이 되지 말라는 채근담의 한 구절을 보내고 싶은 심정이란 것이다. 끝까지 참고 견딜 힘도 없으면서 뜻있는 백성을 속여 야당의 무사를 가장함으로써 권력의 미끼를 기다리다가 후딱 넘어가는 교지를 버리라는 말이다. 욕인으로 출세의 바탕을 삼고 항거로써 최대의 아첨을 일삼는 본색을 탄로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충언의 근원을 캐면 그 바닥에는 변절하지 말라, 지조의 힘을 기르란 뜻이 깃들여 있다.
변절이란 무엇인가. 절개를 바꾸는 것, 곧 자기가 심신으로 이미 신념하고 표방했던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철이 들어서 세워 놓은 주체의 자세를 뒤집는 것은 모두 다 넓은 의미의 변절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욕하는 변절은 개과 천선의 변절이 아니고 좋고 바른 데서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변절을 변절이라 한다. 일제 때의 경찰에 관계하다 독립 운동으로 바꾼 이가 있거니와 그런 분을 변절이라고 욕하진 않았다. 그러나 독립 운동을 하다가 친일파로 전향한 이는 변절자로 욕하였다. 권력에 붙어 벼슬하다가 야당이 된 이도 있다. 지조에 있어 완전히 깨끗하다고는 못 하겠지만 이들에게도 변절자의 비난은 돌아가지 않는다. 나머지 하나 협의의 변절자, 비난 불신의 대상이 되는 변절자는 야당 전선에서 이탈하여 권력에 몸을 파는 변절자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이름을 역력히 기억할 수 있다.
자기 신념으로 일관한 사람은 변절자가 아니다. 병자호란 때 남한 산성의 치욕에 김상헌이 찢은 항서를 도로 주워 모은 주화파 최명길은 당시 민족 정기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으나 심양의 감옥에 김상헌과 같이 갇히어 오해를 풀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얘기다. 최명길은 변절의 사가 아니요 남다른 신념이 한층 강했던 이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누가 박중양, 문명기 등 허다한 친일파를 변절자라고 욕했는가. 그 사람들은 변절의 비난을 받기 이하의 더러운 친일파로 타기 되기는 하였지만 변절자는 아니다. 민족 전체의 일을 위하여 몸소 치욕을 무릅쓴 업적이 있을 때는 변절자로 욕하지 않는다. 앞에 든 최명길도 그런 범주에 들거니와, 일제 말기 말살되는 국어의 명맥을 붙들고 살렸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민족 해방의 날을 위한 유일의 준비가 되었던 "맞춤법 통일안" "표준말모음" "큰사전"을 편찬한 '조선어 학회'가 국민 총력 연맹 조선어 학회 지부의 간판을 붙인 것을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런 하는 일도 없었다면 그 간판은 족히 변절의 비난을 받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럴 의미에서 좌옹, 고우, 육당, 춘원 등 잊을 수 없는 업적을 지닌 이들의 일제 말의 대일 협력의 이름은 그 변신을 통한 아무런 성과도 없었기 때문에 애석하나마 변절의 누명을 씻을 수 없었다. 그분들의 이름이 무나 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실망이 컸던 것은 우리의 기억이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이분들은 반민 특위에 불리었고, 거기서 그들의 허물을 벗겨 주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못 하고 누명만 쓸 바에야 무위한 채로 민족 정기의 사표가 됨만 같지 못한 것이다.
변절자에게는 저마다 그럴듯한 구실이 있다. 첫째, 좀 크다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백이, 숙제는 나도 될 수 있다. 나만 깨끗이 굶어 죽으면 민족은 어쩌느냐가 그것이다. 범의 굴에 들어가야 범을 잡는다는 투의 이론이요, 그 다음에 바깥에선 아무 일도 안 되니 들어가 싸운다는 것이요, 가장 하치가, 에라 권력에 붙어 이권이나 얻고 가족이나 고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굶어 죽기가 쉽다거나 들어가 싸운다거나 바람이 났거나간에 그 구실을 뒷받침할 만한 일을 획책도 한번 못 해 봤다면 그건 변절의 낙인밖에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어떤 선비도 변절하여 권력에 영합해서 들어갔다가 더러운 물을 뒤집어 쓰지 않고 깨끗이 물러나온 예를 역사상에서 보지 못했다. 연산주의 황음에 어떤 고관의 부인이 궁중에 불리어 갈 때 온몸을 명주로 동여매고 들어가면서, 만일 욕을 보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해 놓고 밀실에 들어가서는 그 황홀한 장치와 향기에 취하여 제 손으로 명주를 풀고 눕더라는 야담이 있다. 어떤 강간도 나중에는 화간이 된다는 이치와 같지 않은가.
만근 30년래에 우리 나라는 변절자가 많은 나라였다. 일제 말의 친일 전향, 해방 후의 남로당 탈당, 또 최근의 민주당의 탈당, 이것은 20이 넘은, 사상적으로 철이 난 사람들의 주책없는 변절임에 있어서는 완전히 동궤다. 감당도 못 할 일을, 제 자신도 율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민족이니 사회니 하고 나섰더라는 말인가. 지성인의 변절은 그것이 개과 천선이든 무엇이든 인간적으로는 일단 모욕을 자취하는 것임을 알 것이다. 우리가 지조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말은 다음의 한 구절이다. '기녀라도 늘그막에 남편을 좇으면 한평생 분냄새가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정부라도 머리털 센 다음에 정조를 잃고 보면 반생의 깨끗한 고절이 아랑곳없으리라.'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을 보라' 하였으니 참으로 명언이다.
차돌에 바람이 들면 백 리를 날아간다는 우리 속담이 있거니와, 늦바람이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아직 지조를 깨뜨린 적이 없는 이는 만년을 더욱 힘쓸 것이니 사람이란 늙으면 더러워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직 철이 안 든 탓으로 바람이 났던 이들은 스스로의 후반을 위하여 번연히 깨우치라. 한일 합방 때 자결한 지사 시인 황매천은 정탈이 매운 분으로 '매천필하 무완인'이란 평을 듣거니와 그 "매천 야록"에 보면, 민 충정공, 이용익 두 분의 초년 행적을 헐뜯은 곳이 있다. 오늘에 누가 민 충정공, 이용익 선생을 욕하는 이 있겠는가. 우리는 그분들의 초년을 모른다. 역사에 남은 것은 그분의 후반이요, 따라서 그분들의 생명은 마지막에 길이 남게 된 것이다.
도도히 밀려오는 망국의 탁류-이 금력과 권력, 사악 앞에 목숨으로써 방파제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지조의 함성을 높이 외치라. 그 지성 앞에는 사나운 물결도 물러서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천하의 대세가 바른 것을 향하여 다가오는 때에 변절이란 무슨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 먹어도 자기를 위한 36년의 선견지명은 가졌었다. 무너질 날이 얼마 남지 은 권력에 뒤늦게 팔리는 행색은 딱하기 짝없다. 배고프고 욕된 것을 조금 더 참으라, 그보다 더한 욕이 변절 뒤에 기다리고 있다. '소인기하라.' 이 말에는 뼈아픈 고사가 있다. 광해군의 난정 때 깨끗한 선비들은 나가서 벼슬하지 않았다. 어떤 선비들이 모여 바둑과 청담으로 소일하는데, 그 집 주인은 적빈이 여세라, 그 부인이 남편의 친구를 위하여 점심에는 수제비국이라도 끓여 드리려 하니 땔나무가 없었다. 궤짝을 뜯어 도마 위에 놓고 식칼로 쪼개다가 잘못되어 젖을 찍고 말았다. 바둑 두던 선비들은 갑자기 안에서 나는 비명을 들었다. 주인이 들어갔다가 나와 사실 얘기를 하고 초연히 하는 말이 가난이 죄라고 탄식하였다. 그 탄식을 듣고 선비 하나가 일어서며, 가난이 원순 줄 이제 처음 알았느냐고 야유하고 간 뒤로 그 선비는 다시 그 집에 오지 않았다. 몇 해 뒤 그 주인은 첫 뜻을 바꾸어 나아가 벼슬하다가 반정 때 몰려 죽게 되었다. 수레에 실려서 형장으로 가는데 길가 숲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 수레를 잠시 멈추게 한 다음 가지고 온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내놓고 같이 나누며 영결하였다. 그 때 그 친구의 말이, 자네가 새삼스레 가난을 탄식할 때 나는 자네가 마음이 변한 줄 이미 알고 발을 끊었다고 했다. 고기밥맛에 끌리어 절개를 팔고 이 꼴이 되었으니 죽으면 고기맛을 못 잊어서 어쩌겠느냐는 야유가 숨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찾는 것도 우정이었다. 죄인은 수레에 다시 타고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탄식하였다. '소인기 소인기 소인기하라'고...
변절자에게도 양심은 있다. 야당에서 권력에로 팔린 뒤 거드럭거리다 이내 실세한 사람도 있고 갓 들어가서 애교를 떠는 축도 있다. 그들은 대개 성명서를 낸 바 있다. 표면으로 성병은 버젓하나 뜻있는 사람을 대하는 그 얼굴에는 수치의 감정이 역연하다. 그것이 바로 양심이란 것이다. 구복과 명리를 위한 변절은 말없이 사라지는 것이 좋다. 자기 변명은 도리어 자기를 깎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녀가 아기를 낳아도 핑계는 있다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왜 아기를 배게 됐느냐 하는 그 이야기 자체가 창피하지 않은가. 양가의 부녀가 놀아나고, 학자 문인까지 지조를 헌신짝같이 아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으니 변절하는 정치가들도 우리쯤이야 괜찮다고 자위할지 모른다. 그러나 역시 지조는 어느 때나 선비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지조를 잃고 변절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자임하는 바를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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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 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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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논술시험,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을 써야 하나? (2/2)
이번에는, 앞에서 미뤄 놓았던 좀 길게 설명해 놓은 주제들을 보기로 하자.
문제 : 한은 잔잔한 원한.. 그것이다. 나를 향한 원망인지 임을 향한 원망인지조차 분간할 길이 없는 감정이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다. 너에 대한 것도 아니며 나에 대한 것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비극 한편 가져보지 못한 한국인의 불행인 것이다. 한을 영어로 번역할 수 없다는 것은 곧 한이 우리 특유의 감정임을 뜻한다. (이어령-이것이 오늘의 세대다 ) 한에 대한 이와 같은 정의를 면밀히 검토해 보고, 그것이 자신의 독서체험이나관찰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 또 그것은 어떻게 설명되어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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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주장에 대하여 찬성 혹은 반대의 입장이 분명한 글을 1천자 내외로 작성하라.
문장에서 표준어, 맞춤법, 문법적 결함이 없는 문장, 구두점 표시 등과 같은 형식적 규범적 요소들이 잘 지켜졌느냐 하는 문제는 글의 전체적인 평가에서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점에서 오늘의 우리는 전통사상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 중에서 하나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개인의 삶 속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의미와 그 사회적 성격에 대해 논하라.
정보화 시대를 맞아 컴퓨터 통신망을 이용한 첨단교육이 속속 실현되고 있다. 이 같은 교육은 기본적으로 교수와 학생이 대면하지 않은 채 이뤄진다. 이러한 방법은 재가학습을 가능하게 하여 교육의 기회를 확대할 수 있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교육은 인간과 인간의 만남의 장 이어야 하므로 아무리 전자매체를 이용한 통신기술이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인 만남이 없는 교육은 진정한 교육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컴퓨터 통신을 이용한 교육에 대한 이러한 상반된 견해를 발상의 단계로 삼아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교육은 성공할 수 있는가 라는 제목으로 1천자 내외의 글을 작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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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벨은 대학의 사명 에 대하여 다음 네가지를 지적한 바 있다.
1.문화와 학문의 계승 발전
2.지식의 철학적 근거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는 일.
3.전문 직업인의 양성.
4.지식인의 사회활동과 봉사를 지원하는 교육.
만약 이것이 우리 나라 대학의 현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후 글쓴이 나름의 결론을 도출해 보라. 만약 우리 나라 대학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점이 그러한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후 글쓴이 나름의 결론을 도출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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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대형 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 근본 원인에 대한 설명은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것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부실공사 때문이라는 진단이고, 다른 하나는 사후 관리의 소홀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모다 근본적인 원인인지를 설명하고, 그러한 원인분석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해결 방안을 1천자 내외로 제시해 보시오. (원인을 분석할 때 상대편의 논리를 반박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세워 나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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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이미 우리의 생활 깊숙히 파고 들어서 이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기본생활조차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울 정도의 상황이 되어 있다. 그 반면에 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컴퓨터의 역기능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가 상상하는 컴퓨터의 역기능 이라는 주제로 1000자 이내의 논술문을 작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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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무환의 교육적 의미를 논술하라. 다음 출전 내용을 심사숙고하면서 구체적 사례를 들어 1000자 이내로 논술하라.
출전
서경에 이르기를 편안이 있으면서 위태로움을 생각하라 하였나이다. 잘 생각하면 대비가 있게 되고 대비가 있으면 걱정이 없사옵니다.
문학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드러낸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 문학은 어떤 형태로든 당대 사회를 반영하며 사회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이 두 입장 가운데 어느 한쪽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하나의 입장에 서서 다른 입장을 비판하되 작품의 구체적 사례를 들어 논술해 보라. 또 이 둘의 통합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매개될 수 있는지 역시 작품의 구체적 사례를 들어 논술해 보라.
표에 나타난 사실을 설명하는 글을 작성하라.
표 생략 - 이해 어휘량의 발달
뭉쳐야 하나, 흩어져야 하나
해방후 이승만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고 호소하면서 강력한 대통령 중심의 중앙집권적 정치제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드디어 권력이 분산되는 지방자치제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이제 우리는 뭉쳐야 할 이유와 흩어져야 할 이유를 제시해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피는 심장으로 모였다 모세혈관으로 흩어진다. 그렇지 못하면 생명체는 죽고 만다.
개요
1. 뭉쳐야 할 이유와 장,단점을 실례를 들어 제시할 것.
2. 흩어져야 할 이유와 장,단점을 실례를 들어 제시할 것.
3. 자신의 뚜렷한 입장을 제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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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들을 보면 더러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글도 있고, 요란한 일본한자말과 일본말법으로 써 놓은 글도 있고, 공연히 덧붙여 놓은 말도 있고, 쓸 것을 너무 지나치게 한정해 놓은 것도 있지만, 대체로 보아서 역시 이렇게 길게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들도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우선 든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고등학생으로서는 쓰기가 어렵고, 더구나 2백자 원고지 다섯 장 정도로 쓰는 논설문으로서는 맞지 않고 아무래도 대학생들이 길게 쓰는 논문 주제로나 되어야겠다는 것이 적지 않아, 이런 논제들을 신문에서 보고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겠나 싶다. 또 한편, 좀 딴 이야기 같지만 이렇게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자세하고 친절하게 이해 놓은 논제를 보니 학생들이 쓰는 공책(노트) 생각이 저절로 난다. 학용품을 파는 가게에 가면 온갖 공책들을 벌여 놓았는데, 그 공책 겉장(표지)들은 한결같이 울긋불긋한 그림과 글자들로 꽉 차 있어 도무지 글자를 적어 놓을 자리가 없다. 그것을 사서 쓰는 학생이 무엇에 쓰는 공책이란 것을 겉장에 적어 둘 자리가 없는 것이다. 몇 해 전 세계 각국의 공책을 모아 전시해 놓은 곳에 가 보았는데, 외국의 공책은 어느나라고 이렇지는 않았는데, 우리 나라 공책만 요란한 겉장으로 꾸며져 있었다. 공책 겉장에 빈 자리를 두면 성의없이 만들어 놓았다고 할까봐 그것을 사서 쓰는 아이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장삿속으로 이렇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이 바로 이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 아닌가? 무엇이든지 지시하고 어디로 끌고 가려고만 하고, 아이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다. 모두지 제 생각대로 갈 길을 찾아갈 수 있게 해 주지 않는다. 글쓰기만 해도 하필 논술문만을 쓰게 하고, 쓰는 주제도 정해 주고 쓸 내용까지 가르쳐 주어서 그것을 쓰게 한다. 이래서 어떻게 글쓰기로 사람의 마음을 키워살 수 있겠는가?
뭉쳐야 하나, 흩어져야 하나 하는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는 데 따라 이런 문제를 낸 모양인데, 그토록 기다렸던 이 제도가 이제 겨우 실시되는 마당에 어째서 이 제도를 뭉쳐야 하나, 흩어져야 하나 하는 눈으로 보도록 학생들에게 강요하는지 좀 이해가 안된다. 대관절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쓸 수 있도록 하지 못하는 논술고사라면 얻는 것은 거의 없고, 다만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잃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학생들도 이런 실상을 알아서, 제도라는 줄에 걸려 스스로 목을 매지는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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