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49호 》 2022.9.8 (음 8.13)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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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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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영웅이 될 수는 없다. 영웅이 지나갈 때 박수쳐 줄 사람도 있어야 하니까.
―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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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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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계획적 방출
말은 현실을 왜곡하고 행동을 미화한다. 이른바 전문가들은 예측 못 한 일도 짐짓 예측한 듯이 태연하게 자신의 개념 안으로 그 사태를 욱여넣는다.
‘비계획적 방출’은 ‘계획적 방출’이란 말에서 엉겁결에 나온 말이다. ‘계획적 방출’은 방사성 물질을 법적 범위 내에서 외부로 내보내는 것이다. 정해진 배출 경로로 해야 하며, 주기적인 감시를 받아야 한다. ‘비계획적’이란 말은 ‘정해진 배출 경로가 아닌 곳에서 얼마나 샜는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방출’에는 행위자의 의지가 담긴다. ‘누출’에는 의도성이 없다. 실수의 의미도 덧붙는다. ‘무단 방류’나 ‘무단 방출’은 있어도 ‘무단 누출’은 없다. 꽁꽁 동여맸는데도 바닥에 국물이 흥건하면 김칫국물의 ‘비계획적 방출’이 아니라 ‘누출’이다. 그런데도 이 말을 고집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계획적 방출’과 ‘비계획적 방출’을 알았을까? 처음부터 알았다면, 예기치 못한 누출도 예측해서 대비해야 했다. ‘계획 없음에 대한 계획’이라고 해야 할까? 모순이다.
그래도 효과는 크다. 사람들의 걱정 근심을 덜어준다. 낮과 밤이 ‘하루’가 되고, 홀수와 짝수가 ‘정수’가 되고, 남자와 여자가 ‘인간’이 되듯, 대립적인 걸 하나로 합하면 마치 안정감 있는 완결체 하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계획적 방출’과 ‘비계획적 방출’을 대등하게 병치함으로써 이런 사태에 모종의 ‘인과적 필연성’이 있는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게다가 자신들이 여전히 통제권을 상실하지 않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속지 말자. 제대로 된 이름은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다.
주접 댓글
영상이나 사진, 글을 보고 댓글창에 다는 과장되고 재치 넘치는 말. 빤히 보이는 허풍으로 상대를 찬양·고무한다. 말장난의 즐거움을 미학(아름다움)의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가장 해롭지 않은 말하기.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을 보여주는 말의 최고 경지.
아재개그가 썰렁하다고 타박하면서도 비슷한(!) 방식의 댓글에 이리 열광하는 걸 보면, 역시 담는 그릇이 중요한 듯. ‘목소리 진짜 좋으시네요. 제 귀지가 설탕이 된 느낌’, ‘언니, 경마장 출입금지라면서요? 언니를 보면 말이 안 나와서’, ‘계란 한 판을 사면 계란이 29개밖에 없다면서요? 당신한텐 한계란 없어서’, ‘언니 노래 영상 공짜로 보는 게 송구스러워서 데이터 켜고 보고 있어요’, ‘짐 놔두고 가셨어요. 멋짐’, ‘오빠는 사슴이에요. 내 마음을 녹용’. 이런 게 넘치는 ‘댓글맛집’을 찾아다닌다.
맥락의 탈피. 재미있는 말은 이마에 ‘재미있음’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지 않는다. 웃음은 늘 예정된 철로를 달리던 기차를 탈선시키는 데에서 오는 쾌감이자 감탄사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걸 싫어한다. 과장이나 축소로 말과 대상 사이의 빈틈을 만들고, 그 간격을 더 벌리기를 좋아한다. 아재 가수 강산에가 친구 딸이 구구단으로 말장난하는 걸 듣고 노래를 지었다. “이 순간 당신이 웃을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에 준비해 봤습니다. 이일이 이이사 이삼육 이사팔 이오십 이육십이 이칠십사 이팔십육 이구아나”(곡 ‘이구아나’) 지금은 웃지 않겠지만 나중에 혼자 웃을 거다. 우리는 더 웃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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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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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이 무엇이지? - 김수영
旅行을
안한다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도 없다
密謨는
전혀 없다
담배마저 안 피우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性急해지면 아무데나 재를 떠는
이 宇宙의 暴力마저
없어질지도 모른다
靜寂이
필요없다
그 이유를
말할 필요도 없다
낚시질도
안 간다
假裝파아티에
가본 일도 없다
하물며
中立思想硏究所에는
그림자도 비친 일이 없다
뇌물은
물론 안 받았다
가지고 있는
時計도 없다
집에도
몸에도
그러니까
the reason why
you don't get
a clock
or
a watch마저
말할 필요가 없다
집에도
몸에도
이놈이 무엇이지?
<1961.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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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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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換骨奪胎)
① 얼굴이 전보다 변해 아름답게 됨.
② 남의 문장의 취의를 본뜨되 그 형식을 바꿔 자작(自作)처럼 꾸밈.
《出典》惠洪 冷濟夜話
황정견(黃庭堅)은 소식(蘇軾)과 함께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박학다식(博學多識)하여 독자적(獨自的)인 세계를 만들어 냈는데, 그의 독자적인 수법을 도가(道家)의 용어를 빌려 표현한 것이 '換骨奪胎'라는 말이다.
"황정견은 '두보(杜甫)의 시를 일컬어 영단(靈丹)한 말로 쇠를 이어서 금을 이룸과 같다.(黃庭堅稱杜甫詩 如靈丹一粒 點鐵成金)'라고 말했다."
두보의 붓에 걸리면 흔해 빠진 경치도 곧 아름다운 자연으로 변하는데, 그것은 연금술사가 쇠에 한 알의 영단을 넣어서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 때의 '영단(靈丹)'은 '시상(詩想)'을 의미한다. 도가(道家)에서는『영단 혹은 금단(金丹)을 먹어서 보통 사람의 뼈를 선골(仙骨)로 만드는 것을 '환골(換骨)'』이라 하고, 탈태(奪胎)의 '태(胎)'도 선인(先人)의 시에 보이는 착상(着想)을 말하며, 시인의 시상(詩想)은 마치 어머니의 태내(胎內)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그 태(胎 : 着想)를 나의 것으로 삼아 자기의 시경(詩境)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탈태(奪胎)』라고 말하는 것이다.
남송(南宋)의 중[僧] 혜홍(惠洪)이 쓴《冷濟夜話》에 황산곡(黃山谷 : 庭堅)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시의 뜻은 궁진(窮盡)함이 없고 사람의 재주는 한(限)이 있다. 한이 있는 재주로써 궁진함이 없고, 뜻을 쫓는 것은 도연명이나 두보일지라도 교묘함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그 뜻을 바꾸지 않고 그 말을 만드는 것, 이것을 환골법(換骨法)이라고 말하며, 그 뜻을 규모로 하여 이를 형용하는 것, 이것을 졻태법(奪胎法)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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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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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2.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라
꿈의 공책을 만들어라 - 패티 한센
마크와 내가 결혼했을 때, 우리는 즉시 자식을 갖고 싶었다. 당시 나는 35살이었고, 내 생체학적인 시계는 째깍거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1년간의 신혼생활은 꿈처럼 행복했지만 자식이 생기지 않았다. 우리는 임신 가능 테스트, 호르몬 요법, 체온 검진법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6년 동안 별다른 결실을 보지 못하자, 우리는 두 가지 방법을 취했다. 그것은 내가 완벽한 가정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던 방법이었다. 첫째, 우리는 다른 이로부터 자식을 얻는 대안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기로 했다. 그리고 입양이 그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데 뜻을 모았다. 둘째, 우리는 '꿈의 공책'을 만들었다. 마크와 나는 여러 시간에 걸쳐 함께, 그리고 각자 잡지에서 이상적인 자식의 사진을 골랐다. 우리는 요구 사항을 꼼꼼하게 세분했다. 아이의 머리와 눈 색깔, 신체적인 특성, 아이 방의 가구 종류, 가족 스포츠, 우리 가족이 함께 방문할 곳, 휴양지, 애완 동물을 포함했다. 또한 우리가 두명의 딸을 원했기 때문에 나는 두명의 작은 소녀가 손을 맞잡고 있는 사진을 꿈의 공책에 오려 붙였다. 그렇게 우리의 꿈의 공책이 완성되고 3개월 후에 나는 어떤 젊은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이렇게 입을 땠다.
"저는 당신과 마크가 입양할 아기를 찾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는 두 분이 내 아이의 부모가 되어 주시기를 원해요."
나는 하마터면 수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나는 사랑스러운 엘리자베스가 우리의 꿈의 공책이 완성되었던 그날 태어났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우리의 축복은 한 명의 완벽하고 아름다운 딸을 얻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1987년 한 통의 전화로 첫 아이와 똑같이 완벽한 두 번째 딸을 얻음으로써 완성되었다. 마크와 나의 꿈의 공책은 98%가 현실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우리의 두 딸은 친딸처럼 우리를 쏙 빼닮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는 네 살된 멜라니를 데리고 도너츠 가게를 갔는데, 그 가게 점원이 그애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 너는 네 아빠를 많이 닮았구나!"
"아네요! 안 닮았어요!"
멜라니가 크게 소리쳤다.
"나는 정수리가 벗겨지지 않았어요!"
'꿈의 공책'은 성인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경이의 대상이다. 우선 자신의 꿈과 소망을 가린 다음에 '꿈의 공책'을 지속적으로 목표를 상기시키는 데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강력하게 이용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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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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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2. 밤은 길어 언제 아침이 될까
여희의 치밀한 계교
진헌공이 다시 물었다.
"세자가 먼 지방에 나가 있어도 괜찮겠는가?"
이번에는 동관오가 대신 대답했다.
"원래 세자는 군후의 다음 가는 지위입니다. 곡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도성 다음으로 우리 진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그런 곳을 세자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다스리겠습니까?"
"곡옥은 그렇다 해도 포와 굴은 황야 지대라 두 공자가 가서 지킬 수 있을 것 같은가?"
진헌공의 말에 동관오가 그럴 듯하게 말했다.
"버려 두면 언제까지나 황야로되 성을 쌓으면 고을이 되고 개간하면 옥토가 되옵니다."
동관오의 말에 양오가 맞장구친다.
"버려진 땅을 고을로 만들고, 변경을 개척하면 일조에 두 고을이 생기게 되니 어찌 기쁘지 않습니까? 진나라는 이제부터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두 사람의 말을 들은 진헌공은 영을 내려 세자 신생에게 곡옥을 다스리게 했다. 또 중이는 포 땅을, 이오는 굴 땅으로 향해 떠나갔다. 태부 두원관이 신생을 따랐고, 호모(弧毛)는 중이를, 여이생(呂飴甥)은 이오를 따라 임지로 떠났다. 또 진헌공은 조숙을 곡옥으로 보내어 세자를 위해 성을 쌓게 했다. 마침내 곡옥은 지난날보다 높고 넓은 곳이 되었다. 그리고 그 성을 신성(新城)이라 했다.
3. 남방에 이는 바람
웅운, 형을 죽이다
한편 남쪽의 초나라에서도 군위를 둘러싼 하나의 음모가 궁중에서 싹트고 있었다. 초문왕이 죽고 장자인 웅간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는 건 앞서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원래부터 형인 웅간보다 동생 웅운이 재주도 많고 능력도 매우 뛰어났다. 형 웅간은 왕위에 올랐지만 자기보다 모든 점에서 뛰어난 동생 웅운을 항상 미워했다. 그는 동생을 적당한 핑계를 대고 죽일 생각이었다. 그래서 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모친인 문 부인(文夫人: 식부인 규씨)이 애지중지하고 백성들도 웅운을 칭찬하고 있었기에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웅간은 놀기를 즐겨했다. 그는 사냥을 일삼았다. 그래서 백성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없었다. 그런데다가 미망인이 된 모친에게 문안 인사도 잘 드리지 않았다. 웅운은 마침내 웅간을 임금 자리에서 몰아내기로 결심하고 남몰래 무사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 때가 웅간이 임금이 된 지 3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마침내 음모가 빛볼 날이 왔다. 웅간이 사냥을 떠났다. 웅운은 재빨리 무사들을 길목에다 매복시키고 기다렸다. 드디어 웅운의 지휘 아래 무사들은 웅간이 탄 수레를 급습하여 웅간을 죽였다. 웅운은 시치미를 떼고 모친인 문 부인에게 가서 거짓으로 고했다.
"형님이 사냥을 떠나셨다가 갑자기 급환에 걸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문 부인은 이 말을 듣자 의심이 났지만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문부인은 속마음으로 사랑하던 둘째아들이 군위에 오르게 되었으니 사실은 크게 기뻤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문 부인은 모든 대부에게 분부했다.
"웅운을 군위에 모셔라."
웅운은 그리하여 군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초성왕(楚成王)이다. 초성왕은 자기가 죽인 형을 선왕(先天)으로 대우하지 않고, 도호라는 호만 내려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숙부뻘인 자원(子元)에게 영윤(令尹, 초나라의 정승) 벼슬을 주었다. 그런데 이 자원이란 사람이 실로 맹랑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이었다. 자원은 그의 형수뻘 되는 문 부인을 엉큼하게 뒤로 사모하고 있었다. 원래 문 부인은 누구나 다 아는 천하 절색으로, 과거에 식 부인(息夫人) 규씨이다. 그런 만큼 호색한 자원은 문 부인과 잠자리를 함께 하길 원했다. 그 때만 해도 웅간과 웅운이 어렸으므로 자원은 오만하고 방자했다. 그러나 그도 투백비(鬪伯比)만은 두려워했다. 투백비는 정직 무사하고 재주와 지혜를 겸비한 사람이므로 그 앞에선 감히 방종스레 날뛰지 못했다. 투백비가 주혜왕 11년에 병으로 죽으니 자원은 두려울 게 없어져 마침내 왕궁 곁에 큰 관사를 지었다. 그러고는 날마다 문 부인을 유혹하기 위해 노래와 춤과 음악을 질탕하게 벌였다. 문 부인은 매일 들려오는 노래와 음악 소리를 듣고 시자에게 궁 밖에서 연일 들리는 까닭을 물으니, 자원이 신관을 짓고 즐기는 풍악이라고 했다. 문 부인은 이 말을 듣고 탄식했다.
"선군은 창을 들고 춤을 추사 무예를 습득한 뒤 제후(諸侯)를 정복해서 우리 왕궁엔 제후들의 조공이 그치질 않았다. 그러한데도 우리 초군이 중원에 이르지 못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거늘 영윤은 이를 설치하려 않고 미망인 곁에서 관사를 짓고 음악과 춤과 노래로 세월만 즐기느냐?"
문 부인의 말을 시자가 그대로 자원에게 전하니 자원은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부인이 중원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데 나는 그것을 잊고 있었으니, 정(鄭)나라를 쳐서 항복을 받아 오지 않으면 어찌 대장부라 할 수 있으리오."
자원은 스스로 중군이 되어 병차 6백 승을 거느리고 투어강(鬪御彊), 투오(鬪梧)에게 대패를 세우게 하여 그들을 전대(前隊)로 삼고, 왕손유(王孫遊) . 왕손가(王孫嘉)를 후대(後隊)로 삼아 마침내 정나라로 쳐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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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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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광섭편"
김광섭(1905~1977)
시인. 호는 이산. 함북 경성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대통령 공보 비서관, 세계 일보 사장, 경희대 교수 역임. 초기에는 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성으로 민족 의식을 노래한 것이 많았으나 그 후로는 여유 있는 인생의 정취를 담았다. 말기의 시에는 사회 비평적 의식과 근원에서 향수가 짓들어 있다.
수필 문학 소고
수필이란 글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써지는 글이다. 그러므로, 다른 문학보다 더 개성적이며 심경적이며 경험적이다. 우리는 오늘날까지의 위대한 수필 문학이 그 어느 것이나 비록 객관적 사실을 다룬 것이라 하더라도, 심경에 부딪치지 않은 것을 보지 못했다. 강렬하게 짜내는, 심경적이라기보다 자연히 위로되는 심경적인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이 점에서 수필은 시에 가깝다. 그러나, 시 그것은 아니다. 우리는 시를 쓰려 한다. 소설을 지어 보려 한다. 혹은 희곡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 그 어느 것이나 함부로 달려들려는 무모함은 아니다. 동일한 작자면서도 그 태도가 서로 다르다. 시는 심령이나 감각의 전율된 상태에서, 희곡과 소설은 재료의 정돈과 구성에 있어서 과학에 가까우리만큼 엄밀한 준비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수필은 달관과 통찰과 깊은 이해가 인격화된 평정한 심경이 무심히 생활 주위의 대상에 혹은 회고와 추억에 부딪쳐 스스로 붓을 잡음에서 제작되는 형식이다. 제작이라고 하나, 수필에 있어서는 의식적 동기에서가 아니요, 결과적 현상에서이다. 다시 말하면, 수필은 논리적 의도에서 제작된 일은 없다. 수필은 써 보려는 데서 시작되어 써진 것이다. 어느 작가가 소설이나 희곡이나 시를 써 보려는 한가로운 마음에서 쓸 것인가, 그것들은 작가에게서 의식적으로 제작되었다. 진실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수필은 한가로운 심경에서의 시필쯤에 그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필은 수필되었다고 하고 싶다. 그러므로 희곡이 조직적, 활동적이요, 시가 운율적. 정서적이라면, 수필은 진실한 태도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격이라고 비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걷잡을 수 없으면서, 그래도 어딘가 한 줄기의 맥이 있다. 그것이 위대한 정도에 따라서 더욱 그렇다. 우리는 사람의 기분이란 어딘가 무책임하게 기복하는 듯함을 느끼면서, 그 이면에 인격이라는 그림자가 숨어 있음을 본다. 한 개의 영혼 위에 얼마나 많은 기분이 노는가? 이 기분을 무시하여 버리면 수필은 또한 같은 운명에서 무시될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기분의 배면에 있는 영혼의 존재를 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기분에서 살 필요를 느낀다. 또한 살고자 희구도 한다. 그것은 영혼의 환경인 까닭이다. 이와 같이, 수필에는 기분 가운데서 고백되고, 어둠 속에서 흐르는 광선 같은 맥이 있다. 여에 소설이나 희곡같이 짜이지 못하면서도 빛나는 경지가 있는 것이다.
문학의 형식에서 보면, 수필에는 소설이나 희곡에서 보는 바와 같은 어떤 완성된 폼이 없다. 단편 소설을 제작하려면 우리는 적어도 에드거 앨런포나 안톤 체호프나 혹은 모파상에게 잠시라도 사숙하여야 하겠고, 시나 희곡을 지으려면 괴테나 셰익스피어나 혹은 입센 등에게서 그 완성된 폼을, 비록 모델로 삼지 않는다 할지라도 한번 살펴볼 아량쯤은 있어야 하겠지만, 수필에 있어서는 그 형식을 구하거나 참고하려고 찰스 램이나 해즐리트를 찾을 필요성까지는 없을 것 같다. 가장 아름다운 수필을 찾아 우리의 문학적 항심을 만족시키며 영양 시키려는 점은 찬하여 마지아니할 바이나, 그 형식의 섭취에 구속될 바는 없는 것이다. 오직 우리는 사로잡히지 않는 평정한 마음에서, 마치 먼 곳 그리운 동무에게 심정을 말하려는 듯한 그러한 한가로운 듯한 붓을 움직여서, 무의식한 가운데서의 단성으로 한 편의 문장을 써 내면, 그것은 수필이 될 것이다. 잘 되었으면 훌륭한 창작으로서의 문학에까지, 못 되면 잡문에까지, 상하의 단계가 지어질 것이니, 그것은 문학으로서의 소설. 시가 있음에 비하여, 흔히 문학 아닌 소설이 있고 시가 있음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형식으로서의 수필 문학은 무형식이 그 형식적 특징이다. 이것은 수필의 운명이요, 또한 성격이다.
한 시대나 한 세기의 소설, 시, 희곡은 내용이나 형식으로 보아 객관적으로 몇 가지의 주류에 분류하여 논할 수 있다. 그것은 시대 사조나 사회 의식에 연결되어 발전 쇠퇴하는 특징을 가진 문학 형식인 까닭이지만, 수필에 있어서는 그 성쇠 기복이 시대적 제약에 의거한다고 간주하기 보다 오히려 생활 단면에 부딪치는 까닭에 그렇게 커다란 조류와는 비교적 관련이 적게 자라 간다고 할 수 있다. 일시에 준비된 의식이나 사상의 눈을 떠나서, 가을밤 무심히 잡은 펜이 그 유래와 아름다운 가지가지의 서정을 느끼는 대로 쓸 수도 있겠고, 어색한 악수의 풍경에 나타난 세정을, 혹은 사소하나마 매력 있는 제목을 붙잡고 시종이 없을 듯한 기분으로 표현 향락할 수도 있겠고, 혹시 야시의 풍경에서도 흥미진진한 글 한 구절 쓸 수 있을 것이니, 참고서를 구하거나 지식의 정돈을 요할 바는 아니나, 어딘가 탁마된 세련과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함은 문학의 그 어느 분야에서나 공통될 것이다.
이렇게 잡다한-모든 것이 그냥 그대로 내용이 될 수 있는 수필은, 단순한 기록에 그쳐서는 우리의 흥미를 긴장시키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는 유머가 있어야 하겠고, 위트가 있어야 한다. 전자는 무의식적 소성에서 피는 꽃같은 미소요, 후자는 지혜와 총명의 샘과 같다. 이 천연스런 유머와 보석 같은 위트는 수필의 본성같이 인식되어, 일대의 수필가 램이나 해즐리트에게 있어서 빛나고 있다. 그렇지 않았던들, 건조로운 생활적 심경적 기록에 우리는 매혹되지 않고, 소설이나 희곡에만 경도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유머나 위트가 수필의 속성이라고 판정될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소설이나 희곡에도 솜씨 좋게 짜여서 섬광하는 까닭이다. 그 이외에 어떠한 만화적 특징이나, 역사적, 전기적 혹은 기상적 성벽으로도 수필은 또한 찬란하게 시험되어진다. 그러나 오늘까지 위대한 문학으로의 수필에는 유머와 위트가 혼연히 숨어 있어, 우리를 매혹하는 마치 수필의 본질같이 되어 있다.
모든 문학과 예술은 결국 사람에게서 생겨서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소설이나 희곡이라는 이름에 사로잡혀서, 그것이 수필보다 우월하며 향상성이 많다거나, 혹은 수필이라는 산만하여 보이는 어의에서 오는 선입견 때문에 그것이 발전성이 적다 하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어떤 사회이건 그것이 인간의 사회요, 인간으로 구성되는 이상 수필은 전인격적 문학 표현으로 어느 사회에나 존재할 것이다. 사람은 이데올로기적 상태에서만 사람이 아니요, 훌륭한 사람이면 그 어느 정신적 심적 상태에서도 인간일 것이며, 그것은 또한 수필을 통하여서는 허식 없이 표현된다. 그러므로, 수필이란 개성적 심경과 기분에 싸여서 어떠한 대상이나, 또는 문제를 간단하게 단편적으로 그리면서도, 진지하게 붓 가는 대로 써 내려는 심정에서의 제작일 것이다. 그 심정이 정치, 경제로 향하든지, 사회 문제나 생활 개선으로 향하든지 그것은 평론에 미치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평론이 가질 수 없는 영역을 가지는, 따라서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완성을 기다리지 않으면서 완성되는 점에 문학적 특수한 위상이 있다.
모든 문학의 출발점이 인간에 있다면, 수필같이 자연스럽게 인간성을 띤 문학 형식은 서정시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수필의 맛은 결국 어떠한 시간에 어떠한 문제나 어떠한 대상에 작가의 기분이 부딪쳐서 표현되는 인간미에 있다. 그 인간미를 보여 줄 흥미나 부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평론이나 소설은 만들 수 있을지언정 수필은 쓸 수 없다. 인간의 생활이란 요컨대 수필의 심경에서 성숙된다. 그러므로, 수필을 써 보지 못하고 문필을 끝마친 문인이 있다면, 나는 그를 인간성으로 보아 불행하다 하고 싶고, 또한 문학 성격의 전면으로 보아 불행하다 하고 싶다. 생활을 시와 산문의 조화에서 성숙된다. 그것이 문학으로 볼 때 곧 필수이다. 그러므로 수필의 성격은 인간의 성격이라 하면 가장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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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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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수필
수녀언니
언니라는 말에선 하얀 찔레꽃과 치자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는 것 같은 상큼한 향기가 난다. 언니라는 말은 엄마 다음으로 가장 아름답고 포근하고 다정한 호칭이 아닐까? 큰언니, 작은언니, 올케언니, 새언니, 선배 언니. 그 대상이 누구든지간에 `언니!` 하고 부르면 왠지 마음에 따뜻한 그리움이 밀려오며 모차르트의 시냇물 같은 음악이 듣고 싶어진다. 내가 여학교 시절, 어느 길모퉁이에서 만나 불쑥 "얘, 너 내 동생하지 않을래?" 하고 말을 건네던 상급생 언니. 문예반시절의 그 꿈과 낭만이 가득했던 예비 시인 언니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나와 내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서로 헤어져 살던 시절 어느 해 방학날, 난 동생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 그가 집에 올 때쯤 일부러 방에 숨어 있었는데, 집에 들어온 동생은 가방을 놓자마자 "엄마, 언니 왔지?"하다가 "응, 온다더니 아직 안 왔어"라고 대답하니 와락 울음을 터뜨리며 그리움과 서러움에 목메어 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때 난 동생으로부터 사랑받는 작은언니로서의 몫에 감격하여 눈물을 닦다가 참으로 반가운 해후를 했던 일을 고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멀리 해외에 나가 있는 동생이 어쩌다 내가 있는 수녀원에 전화를 걸어 "언니야, 별일 없지? 꿈에 언니를 보았거든" 한다든지 `보고 싶은 작은언니`로 시작하는 긴 글을 보내오면, 그 옛날 싸움도 더러 했지만 서로를 깊이 이해하며 정을 나누었던 아우가 더욱 그리워진다. 나보다 네 살 아래지만 두 아이의 엄마로 늘 부지런하게 살림을 꾸려 가며 마음도 넓고 아름다워 로사라는 세례명이 잘 어울리는 동생은 "적어도 세상일에 있어서만은 내가 더 언니인 것 같다"며 웃곤 했다.
나에겐 늘 현명한 스승 같기도 하고, 어진 친구 같기도 한 13년 연상의 수녀 언니가 계시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한 번 만나고 나서 그 모습이 꼭 성모 마리아님과 보살님을 합해 놓은 것 같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고 표현하셨던 언니. 나에겐 하나밖에 없는 인숙 언니는 내 동생이 일곱 살, 내가 열한 살 때 가장 엄격한 봉쇄 수도원인 가르멜수녀원에 들어가 40년을 살았으니 나이가 예순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도 순진무구한 소녀 같은 모습이다. 워낙 조용하고 차분하며 수줍은 성격의 언니는 오랜 세월의 수도생활을 통해서 좀더 활발하고 명랑해지신것 같다. "수녀님의 오늘이 있게 된 것은 어머니의 희생과 가르멜수녀원에 계신 언니의 깊은 기도 때문인 거야" 라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듣듯이 언니가 내게 주는 끊임없는 사랑의 관심과 격려와 기도는 참으로 각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주변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도 외에도 언니를 생각나게 하는 소박한 선물들이 많이 있다.
내가 수도생활을 시작할 무렵, 늘 좋은 생각만 하며 살라고 여러 좋은 말들을 골라 친필로 적어 준 수첩, 세심한 배려와 충고가 담긴 편지들, 민들레의 노란빛과 잎사귀빛을 배합하여 `민들레 이불`이란 이름을 붙여 손수 뜨개질해 주신 침대보 등등. 해마다 가을이면 향기를 맡으며 시심을 떠올리라고 탱자와 모과를 상자에 가득 담아 보내 주는 언니. 가끔은 `취급주의`라고 쓴 조그만 플라스틱통에 고운 꽃씨나 민들레솜털을 담아 보내기도 하는 언니의 그 정성이 어느 땐 성가신 생각마저 들어 그만두라 해도 소용이 없다. "얘, 좋게 말하면 곰살같고, 무엇이나 주기 좋아하는 성격, 너 역시 예외는 아니지 않니? 이제 고치려고 해도 잘 안되는구나" 하는 언니의 말을 듣고 보니 얼마 전 첫월급을 탄 기념으로 아기자기한 선물 보따리를 보내 조카 진이가 `고모님들께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저희가 드린 선물들을 훗날 다시 저희에게 선물하시는 실수를 하지 마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라고 메모한 것이 생각났다.
"난 참 이상하지? 내일 아침에 외출한다고 하면 오늘밤부터 신발도 돌려 놓고, 가방도 열어 놓고 해. 걱정이 돼서..."하기도 하고, "육십 넘은 나더러 글쎄 우리 젊은 원장수녀가 귀엽다고 하는구나"하며 활짝 웃는 언니를 만나고 오는 날은 내 마음도 밝고 맑아진다. 나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어쩌다 언니에게 좋은 평가를 들려주면 너무 기뻐서 가뜩이나 빠른 말씨가 더 빨라지며 흥분해서 전화를 걸오 오는 언니. 여러 차례의 큰 수술을 받을 만큼 병치례도 잦고 몸이 약하지만, 깊은 마음과 사랑 안에 누구보다 기쁘게 수도생활을 하고 계시니 나도 기쁘고 행복하다.
오랫동안 세상과 격리되어 있어서인가, 가르멜수녀원의 수녀님들이 빚어내는 에피소드 또한 다양하다. `기차표`신발 가게에 들어가서 "저, 서울 가는 기차표 한 장만 주세요"했다든가, 샴푸를 선물받고 얼굴에 바르는 것인 줄 알았다든가 하는 것 등등. 언니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날 병원에 진찰받으러 갔을 때 간호 수녀님이 건네준 브라보콘 아이스크림 먹는 방향을 몰라 뾰족한 끝부터 먹기 시작했더니 그게 아니더라고 해서 웃은 일도 있다. "내가 사용법을 몰라 보내니 네가 쓰렴"하고 가끔 내게 보내는 볼펜도 실은 간단히 누르면 되거나 돌리면 되는 단순한 것들인데도 새것을 보면 지레 겁부터 나시는가 보다.
남들이 두 개 갖고 있는 콩팥도 한 개 밖에 없고. 이런저런 합병증에 요즘은 갈수록 귀도 어두워진다는 언니의 얘길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언니의 지나친 자상함에 나는 종종 짜증까지 내며 거부하는 얄미운 동생이지만, 누구에게나 푸른산처럼 어질고 덕스러운 언니가 계시기에 늘 든든하다. 수도자로서 부족한 내 모습을 보고 실망할 법한 이들에게 난 미리 언니 자랑부터 하고, 마침 같은 부산에 살고 계신 언니를 만나게 해준다. 나의 든든하고 소중한 `빽`인 언니가 오래오래 사시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언니의 어진 모습을 그려 본다.
"고모, 큰고모는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 사람과 같질 않아요"라고 우리 조카들이 어린 마음에도 그 고움과 맑음을 일컬어 표현하는 나의 수녀 언니, 언니처럼 나도 먹이를 먹으면서 좀더 푸근하고 온유해지길 원하지만 모든 이의 어진 언니가 되기엔 늘 폭이 좁고 인상도 마음도 차가운 편이어서 아쉼움을 느낀다.
그 옛날, 어린 동생을 둘이나 떼어놓고 수도원으로 들어간 것은 결코 현명하고 인간미 있는 선택은 아니었다고 어느 날 내가 불쑥 시비를 걸어도 그 큰 눈을 껌벅이며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느냐며 오히려 통쾌하게 웃던 인숙 언니. 언니는 지금쯤 어떤 기도를 바치실까? 깊은 봉쇄의 담 안에 숨어 살면서도 마음은 동생들을 향한 애틋한 사랑과 기도로 활짝 열려 있을 언니의 초록빛 창을 향해 나는 "언니!"하고 가만히 불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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