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23호
2022.8.4 (음 7.7)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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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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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기는 쉽다. 그러나 단 한번만 거짓말을 하기는 어렵다. ― 「텍사스 뉴스」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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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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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엔 저지른다
뻔한 얘기지만 양반과 상민을 구별하는 사회는 능력과 상관없이 날 때부터 한 사람이 가게 될 삶의 방향이 얼추 정해져 있다. 인류사는 삶의 향배가 미리 정해진 사람의 수를 줄여온 역사다.
그런데 태생부터 꼬리표를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말에 여러 ‘가치’를 부여하는데, 보통은 부정 또는 긍정의 꼬리표를 달아 놓는다. 사전의 뜻보다 이렇게 은근히 달아 놓은 가치의 꼬리표가 영향력이 더 크다. 인간의 소통은 정보 공유보다는 감정과 평가의 교류가 목적인지도 모른다. 낙인은 은밀하되 노골적이다. 나도 ‘똑똑하다’는 말보다 ‘잘난 척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그러거나 말거나). 비슷한 모습이어도 ‘검소한’ 사람과 ‘인색한’ 사람은 전혀 다르다. ‘당당하다, 늠름하다, 굳세다’와 ‘도도하다, 되바라지다, 건방지다, 드세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차별의 강이 놓여 있다.
‘저지르다’는 ‘죄를 짓거나 잘못을 범한다’는 뜻이다. 아예 단어 자체에 ‘죄나 잘못’이 적혀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저지르다’ 앞에는 ‘범죄, 범행, 죄, 잘못’ 따위의 낱말이 드글거린다. 부정적인 힘이 하도 강해 ‘일’처럼 중립적인 말도 전염시켜 ‘일을 저지르다’라고 하면 뭔가 잘못을 범한 것 같다.
말의 교란과 삶의 확장은 이렇게 달린 꼬리표를 ‘분연히’ 떼어낼 때 일어난다. 아이들은 ‘저지레’를 하며 자란다. ‘저지르다’가 새로운 시도나 도전의 의미로, 궁극에 가서는 ‘감행’과 ‘전복’의 의미를 얻을 때까지 올해는 전에 없던 의지로 일을 저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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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감정을 싣지 않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감정을 싣지 않고 해석하는 건 더 어렵다. 무술을 배우기 시작하고 얼마 안 지나 독일계 캐나다인인 샤론은 내 눈을 쳐다보며 당장 손톱을 깎으라고 말했다. 손톱이 길면 수련 중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타투 예술가인 보리아는 나를 던지다가 내 안경이 바닥에 떨어지자 사과는커녕 다음 시간부터는 안경을 고정시킬 줄을 구해 오라고 했다. 그들은 관계의 깊이보다는 내용 자체(메시지)를 얼마나 적확하게 표현하느냐에 집중했다. 잘 모른다고 우회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한국처럼 배려하기와 눈치보기가 뒤엉킨 사회에서 사람들은 할 말을 제대로 못 한다. 위력을 앞세운 막말은 난무하지만 힘의 차이를 뛰어넘는 ‘평등한 말하기’란 어렵다.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부터 한다. 말을 꺼낼지 말지부터 고민이니, 애써 말을 꺼내도 말을 휘휘 돌리게 된다. 엉겁결에 튀어나오는 말이 ‘죄송하지만’이다. 관계에 기름칠하는 말이다. 공공장소에서 심하게 떠드는 사람에게 “죄송하지만,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한다. 건질 게 하나도 없는 말을 듣고도 “말씀 잘 들었습니다”라는 빈말을 한다.
‘죄송하지만’으로 말을 시작한다는 건,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세운 사회질서와 사회적 삶이 태생적으로 취약하다는 걸 보여준다. 나의 말걸기가 ‘정상적인’ 기존 질서를 방해하는 게 아닐까 걱정할 때마다, 한국어라는 언어생태의 보수성을 거듭 확인하고 우리 사회의 불안전성을 절감하게 된다. 사회적 안전함이 단도직입적 말하기를 가능하게 한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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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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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 김수영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
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
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기념탑을 세우자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이제야말로 아무 두려움 없이
그놈의 사진을 태워도 좋다
협잡과 아부와 무수한 악독의 상징이니
지긋지긋한 그놈의 미소하는 사진을 -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 안 붙은 곳이 없는
그놈의 점잖은 얼굴의 사진을
동회란 동회에서 시청이란 시청에서
사회란 사회에서
XX단체에서 OO협회에서
하물며는 술집에서 음식점에서 양화점에서
무역상에서 개솔린 스탠드에서
책방에서 학교에서 전국의 국민학교란 국민학교에서 유아원에서
선량한 백성들이 하늘같이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우러러보던 그 사진은
사실은 억압과 폭정의 방패이었느니
썩은놈의 사진이었느니
아아 살인자의 사진이었느니
너도 나도 누나도 언니도 어머니도
철수도 용식이도 미스터 강도 유중사도
강중령도 그놈의 속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무서워서 편리해서 살기 위해서
빨갱이라고 할까보아 무서워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편리해서
가련한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서
신주처럼 모셔놓던 의젓한 얼굴의
그놈의 속을 창자밑까지도 다 알고는 있었으나
타성같이 습관같이
그저그저 쉬쉬하면서
할말도 다 못하고
기진맥진해서
그저그저 걸어만 두었던
흉악한 그놈의 사진을
오늘은 서슴지않고 떼어놓아야 할 날이다
밑씻개로 하자
이번에는우리가 의젓하게 그놈의 사진을 밑씻개로 하자
허허 웃으면서 밑씻개로 하자
껄걸 웃으면서 구공탕을 피우는 불쏘시개라도 하자
강아지장에 깐 짚이 젖었거든
그놈의 사진을 깔아주기로 하자......
민주주의의는 인제는 상식으로 되었다
자유는 이제는 상식으로 되었다
아무도 나무랄 사람은 없다
아무도 붙들어갈 사람은 없다
군대란 군대에서 장학사의 집에서
관공사의 집에서 경찰의 집에서
민주주의를 찾은 나라의 군대의 위병실에서 사단장실에서 정춘감실에서
민주주의를 찾은 나라의 교육가들의 사무실에서
4.19후의 경찰서에서 파출소에서
민중의 벗인 파출소에서
협잡을 하지않고 뇌물을 받지 않는
관공사의 집에서
역이란 역에서
아아 그놈의 사진을 떼어 없애야 한다
우선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차례로
다소곳이
조용하게
미소를 띄우면서
영숙아 기환아 천석아 준이야 만용아
프레지덴트 김 미스 리
정순이 박군 정식이
그놈의 사진일랑 소리없이 떼어 치우고
우선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차례로
다소곳이
조용하게
미소를 띄우면서
극악무도한 소름이 더덕더덕 끼치는
그놈의 사진일랑 소리없이
뎨어 치우고-
<1960. 4. 26 早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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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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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망타진(一網打盡)
- 한꺼번에 모조리 잡음.
出典》'宋史' 仁宗紀 東軒筆錄
북송(北宋) 4대 황제인 인종(仁宗) 때의 일이다. 당시 북방에는 거란[契丹:遼]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남쪽에는 중국의 일부였던 안남(安南 : 베트남)이 독립을 선언하는 등 정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는데도 인종은 연약한 외교로 일관했다. 그러나 내치(內治)에는 괄목할 만한 치적(治績)이 적지 않았다. 전한(前漢) 5대 황제인 문제(文帝)와 더불어 어진 임금으로 이름난 인종은 백성을 사랑하고 학문을 장려했다. 그리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여 문치(文治)를 폄으로써 이른바 '경력(慶曆)의 치(治)'로 불리는 군주 정치의 모범적 성세(聖世)를 이룩했다. 이 무렵, 청렴 강직하기로 이름난 두연(杜衍)이 재상이 되었다. 당시의 관행으로는 황제가 상신(相臣)들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으로 조서를 내리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내강(內降)이라 했다. 그러나 두연은 이 같은 관행은 올바른 정도(正道)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하여 내강이 있어도 이를 묵살, 보류했다가 10여 통쯤 쌓이면 그대로 황제에게 되돌려보내곤 했다. 이러한 두연의 소행은 성지(聖旨)를 함부로 굽히는 짓이라 하여 조야(조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때 공교롭게도 관직에 있는 두연의 사위 소순흠(蘇舜欽)이 공금을 유용하는 부정을 저질렀다. 그러자 평소 두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어사(御史) 왕공진(王拱辰)은 쾌재를 부르고 소순흠을 엄히 문초했다. 그리고 그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을 모두 공범으로 몰아 잡아 가둔 뒤 재상 두연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범인들은 '일망타진(一網打盡)'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 유명한 두연도 재임 70일만에 재상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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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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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3장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자리:인
이제 우리는 심적인 의도와 태도라는 주관성을 띤 언어와, (그것에 대한) 논리적, 언어적 분석을 모두 배제하고, 인을 이해하는 공자 자신의 방법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인을 보는 공자의 방식을 분명하고 진실되게 반영하는 이미지는 행위자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이미지는 그 사람의 <내심>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하는 행위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인한 힘을 외부에 드러낸 행위와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그 대신 인이 지향하는, 즉 인한 힘이 지닌 목표의 성격은 (인하려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실제 도달한 과정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런 구분점이 (인이라는) 말과 이미지에 의해 강조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일 뿐, 실제로 이 두 분명한 사건들 (인하려는 의도와 실제로 하는 인한 행위)을 분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행위 또한 어떤 의도의 맥락에서 해석되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힘은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힘이어야 한다. 즉 (진정한 인간일 때 갖게 되는) 인간 존재의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인간 존재들을 향해 있으며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공자가 쓴 한문에는 고유성, 성질, 정의, 본질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은 한 개인과 자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이요, 그 개인이 소유해야 할 것으로 제시되엇다고 하겠다. 가장 도움이 되는 서양적 이미지는 물리학에서 빌려 온 벡터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인의 경우 우리는 공개된 시간과 공간에서-시초의 원인점에 또 다른 사람이 서 있고, 그 힘이 가해지는 끝지점에 한 사람이 잇다고 가정하고-실제 행위를 일으키고 있는 방향성 있는 힘(즉 벡터 역량)의 작용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 힘들은 물론 인간의 힘이며 기계적인 힘이 아니다. 공자가 강조한 덕목들은 모두 정말로 <역동적이고> 사회적인 것들이다. 예를 들면서 (인간 관계에서의 상호 존중), 충(충성), 신(타인에 대한 믿음)과 같은 것들은 원래부터 타인들과의 역동적인 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다른 한편 순수성이나 결백과 같은 <정직이고>, <내적인> 덕목들은 <논어>에서 별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우리는 예를 밖으로 드러난 도라는 이미지의 맥락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인도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인의 이미지는 행위자의 자세, 즉 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나 일정 공간에서 취하고 있는 태도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즉 우리가 예식에 참여하거나 그것을 관찰할 때, 그 힘이 우리를 향해 <발산된다>고 음미할 수 있다. <임금이 남쪽을 향해 예식에 맞게끔 앉아 있으면 모든 일이 (적절히)되어 갔다> 예식에 정해진 바로 그 역할을 정말로 참되게 해낸다고 느껴지는 그 사람이 예식을 올릴 때, 예식의 몸짓(혹은 마치 최면술사와 같은 그 몸짓)으로부터 발산되어 나오는 것이라고 우리 모두가 느끼는 마술적 힘을 음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인에 대하여 느껴야 하는 길인 것이다. 그리고 인은 갈라져 있는 백터들-완전한 충성심과 신의, 인간 존엄에 대한 완전한 존중 등등-의 완전하게 집중된 힘이다. 이들 각각은 그 나체로 볼 때, 내심의 상태가 아니라 본래적 의미의 덕-(각각의 덕을 발산하는) 그 사람으로부터 발산되는 힘, 즉 인간다은 힘을 들여서 마침지 그 일을 해냈을 때, 일찍이 안연이 이야기했듯이, <그것은 홀연히 내 앞에 우뚝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는 마침내 인이 발산하는 힘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이끌어 낼 일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
사람이란 예 안에 자기 자리를 잡음으로써 인하게 되든지, 그렇지 않든지 할 수 있다. 인하게 될 수 있는 것, 그것은 오직 그렇게 하고자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종종 결정의 순간에 인간의 힘에 대한 믿음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사람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물리적인 힘과 동물적 힘에 의지하여 살아 왔다. 그러나 인은 바로 인간적인 방식에 대한 완전한 자기 헌신이다. 그리고 그 벼랑 끝까지 걸음을 계속해 가는 것이다.
두려움과 전율 속에서
신중과 걱정 속에서
마치 깊은 연못가에 있듯이
마치 얇은 살얼음을 밟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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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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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6장 포숙아, 관중을 추천하다
1. 관중, 드디어 재상의 자리에
방백의 도리
"내정이란 무엇이오?"
"내정의 법(法)이란 나라를 스물 하나의 향(鄕)으로 나누되, 공상(工商)의 향 여섯을 두며, 선비(士)의 향 열다섯을 두어 공상은 재물을 충족하게 하고, 선비로 병력을 충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병사가 충족될 수 있소?"
"다섯 집(五家)을 궤(軌)라 하여 궤에 장(長)을 두고, 열 개의 궤를 이(里)라 하여 이에 유사(有司)를 두고, 네 개의 이(里)를 연(連)이라 하니 연에다 장(長)을 두고, 열 개의 연을 향(鄕)이라 하니 향에는 양인(良人)을 두시옵소서. 즉 다섯 집을 궤라 하니 고로 오 인(人)이면 오(伍)가 되어 궤장(軌長)이 그들을 거느리고, 십 궤는 이(里)니, 오십 명이면 소융(小戎)이 되어 유사(有司)가 그들을 거느리고, 사 리(里)는 연(連)이니 이백 인이면 졸(卒)이 되어 연장(連長)이 그들을 거느리고, 십 연(連)을 향(鄕)이라 하니 이천 명이면 여(旅)가 되어 양인(良人)이 그들을 거느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 향(鄕)이면 일 사단(師團)이 되기 때문에 만 명을 일 군(軍)이라 하고 오 향(五鄕)의 사(師)가 그들을 거느리며, 십오 향이면 삼만 인이 징집되기 때문에 이들을 세 군으로 나누어 군주(君主)는 중군(中軍)을 거느리고, 공자(公子) 두 분이 각기 한 군씩 거느리고 사시사철의 여가를 이용해 사냥을 하십시오. 봄에 사냥하는 것을 수라 하나니 새끼 배지 아니한 짐승을 잡으며, 여름에 사냥하는 것을 묘(苗)라 하나니 곡식에 해가 되는 짐승을 잡으며, 가을에 사냥하는 것을 선이라 하니 가을 살기(殺氣)에 응(應)하며, 겨울에 사냥하는 것을 수(狩)라 하나니 둘러싸고 지킴으로써 성공을 고함과 동시, 평소부터 백성으로 하여금 무사(武事)를 익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오(單位)를 리(里)에서 정제(整齊)하며, 군려 (軍旅)를 교(郊)에서 정제하고, 안으로 가르쳐서 이미 성취시키면 다시 변경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리하여 오(伍)의 사람들은 서로 함께 제사(祭祀)하고 복을 빌며, 죽은 이를 함께 장사하고, 불행한 일이 있으면 서로 전하고, 집집마다 서로 합하여 대대로 함께 살고, 어릴 때부터 서로 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유사시에 싸움이 벌어지면 밤중이라도 어긋나지 않으며, 백주의 전장에서도 서로 흩어지지 않으며, 함께 기뻐하며 함께 죽을 수 있으며, 죽은 사람을 위해선 서로 슬퍼하며, 지킬 때엔 서로 견고하며, 싸울 때엔 함께 강하니, 삼만 명만 있으면 족히 천하를 눈앞에 두고 경영할 수 있습니다."
제환공이 또 물었다.
"병세(兵勢)가 강하면 가히 천하 모든 열국의 제후를 정벌할 수 있겠소?"
"아니 되옵니다. 우리가 주왕실(周王室)에 항거하면 이웃 나라들이 우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주공께서 열국 제후의 위에다 뜻을 두신다면 우선 주(周)왕실을 존중하시고 그 바탕 위에서 이웃 나라와 친교를 맺으시옵소서."
"어찌하면 그렇게 될 수 있소?"
"우선 제나라 지역을 튼튼히 하고, 이미 침범한 남의 나라 땅을 돌려주고, 다시 가죽과 폐백으로 우호를 맺으면 모든 나라가 우리와 가깝고자 할 것입니다. 또 선비 팔십 명에게 수레와 말과 의복과 많은 폐백을 주어 사방에 두루 노닐게 해 천하의 선비들을 불러오게 함과 동시에 사람을 시켜 가죽과 비단과 진기한 물품을 가지고 사방에 팔러 다니게 하여 모든 곳의 좋아하는 바를 살피게 하여, 잘못 있는 나라만 골라서 공격하여 국토를 넓히고, 임금을 죽이고서 자리를 뺏은 자만 골라 죽여도 가히 위엄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천하의 모든 제후가 서로 다투어 우리 제나라에 와서 조례(朝禮)를 드릴 터인즉 그러한 연후에 모든 제후를 거느리고 주(周)를 섬기되 열국 제후들이 천자(天子)에 대한 공물(貢物)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채근하고 감독하면 이것이 바로 주왕실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비록 주공께서 방백(方伯: 열국(列國) 제후들의 長이란 뜻)의 칭호를 거절하실지라도 세상 천하 모두가 다 권할 것입니다."
관중, '중부'로 호칭
제환공과 관중은 의기가 서로 통해 삼 일 낮밤을 두고 담론(談論)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피곤한 줄 몰랐다. 삼 일 밤을 지샌 후 제환공은 관중에게 크게 감복했다. 그래서 관중에게 정승의 직인을 주고자 했다. 관중이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큰 집을 지으려면 한 나무의 재목으로는 안 된다고 하더이다. 그것은 마치 큰 바다도 한 줄기의 흐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주공께서는 꼭 그 큰뜻을 성취하고자 하실진대 동시에 다섯 명의 걸출한 인재들을 등용하십시오."
제환공이 물었다.
"다섯 인걸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것이오"
"진퇴주선(進退周旋)하는 예의와 언변(言辯)의 판단은 신이 습붕만 못합니다. 하오니 습붕을 대사행(大司行)으로 삼으십시오. 땅의 이익을 거두는 것은 신이 영월(寧越)만 못합니다. 청컨대 영월을 대사전(大司田)으로 삼으십시오. 또 넓은 평원을 나아가되 병졸들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도록 하는 데엔 신이 왕자 성부(成父)만 못합니다. 왕자 성부를 대사마(大司馬)로 삼으십시오. 또 옥사를 판결하되 중용을 잃지 않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며 죄 없는 자를 모함하지 않는 것은 신이 빈수무(賓須無)만 못합니다. 청컨대 빈수무를 대사리(文理理)로 삼으십시오. 충성으로써 간하며, 부귀(富貴)로도 그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은 신이 동곽아(東廓牙)만 못합니다. 동곽아를 대간(大諫)으로 삼으십시오. 주공께서 국가를 다스리고 병력을 굳게 하시려면 이 다섯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고도 주공께서 다시 패업(覇業)을 원하신다면 신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미미한 힘을 다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제환공은 드디어 관중을 정승으로 삼고, 국중의 시조(市租) 1년분을 그에게 녹(祿)으로 주고, 관중이 천거한 그대로 습붕 이하 다섯 사람에게 벼슬을 내리고 각기 맡은 바를 다스리게 하였다.
한편 방(榜)을 내걸어 어진 인재를 구하는 한편 제환공 스스로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벼슬아치들의 실천 강령을 선포 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제나라는 나날이 내정의 면모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환공이 하루는 관중에게 물었다.
"과인은 오래 전부터 사냥을 즐기고 싶었소이다. 이것이 장차 천하를 제패하는 데 해롭지 않겠소?"
관중이 대답했다.
"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해롭겠소?"
제환공이 물었다.
"어진 사람을 쓰지 않으면 천하를 제패하는 데 해롭습니다. 그리고 어진 사람을 쓰되 신임하지 않으면 천하를 제패하는 데 해로우며, 어진 사람을 신임하면서도 맡겨 놓지 않으면 그 또한 천하를 제패하는 데 해롭습니다."
제환공이 크게 감탄하여 일을 맡긴 사람을 신뢰하여 대하며, 그 상징으로 정승인 관중을 중부(仲父)라 부르면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예로써 대우했다.
이 치국지도(治國之道) 문답은 관중의 여론 정치와 경제 우선 정책은 물론, 군사 활용에 대한 그의 식견을 유감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직접적인 전투보다는 군세(軍勢)를 통한 시위나 때로는 간접적인 압력 수단으로 군사를 이용하여 외교력을 강화시킨다. 이것은 장차 그의 수완과 더불어 제환공이 춘추 오패의 첫 번째 패자가 되는 데 있어 가장 빛나는 치세(治世)를 형성하게 된다.
2. 나물 먹는 이와 고기 먹는 이
제나라의 先攻
한편 노장공은 제나라에서 관중을 죽이기는 커녕 오히려 정승으로 모셨다는 소문을 듣자 크게 분노했다.
"과인이 시백의 말대로 하지 않은 게 천추의 한이로다. 내 이렇듯 우롱당한 수모를 어찌 갚으리오."
노장공은 마침내 병사를 일으켜 지난날 건시(乾時) 땅에서 패전한 원수를 갚고자 했다.
"병차를 징발하여라. 잃어버린 문양(汶陽) 땅을 되찾고 속임수 쓰는 제나라 놈들을 혼내 주고 말리라."
한편 세작에 의해서 노나라의 움직임은 곧 제환공에게 보고되었다. 제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과인이 새로 군위에 오른 만큼 자주 국내의 땅에서 싸움을 당하기는 싫소. 차라리 우리가 먼저 노나라로 쳐들어가 노장공을 혼내 주는 게 어떻겠소?"
관중이 말렸다.
"아직은 이릅니다. 지금 우리의 병차와 정사(政事)가 모두 안정되어 있지 못할 때 원정군을 일으킨다는 것은 길(吉)보다 흉(兇)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환공은 노나라를 크게 깔보고 있었다.
"지난번 싸움에서 혼났을 터인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우리를 업신여기니 과인이 징벌하지 않을 수 없다."
제환공은 관중의 진언을 무시하고 포숙아에게 노나라 징벌을 명했다. 포숙아는 장군이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노나라 장작(長勺) 땅으로 쳐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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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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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한용운편"
한용운(1879~1944) 시인. 승려. 법호는 만해. 충남 홍성 출생. 한학 수학.
33인 중의 하나인 그는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 등 예술적. 사상적 깊이가 있는 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어려서 신동으로 불리었고 18세 때는 동학에 참여하였고 그 후 승려로 한국 불교계의 혁신을 도모하였고 만주에 건너가 독립 운동에 공헌하였다.
번민과 고통
번민과 고통은 밖에서 오는 것, 정신 활동으로 번민을 제하자
먼저 고통과 번민에 대한 관념부터 말씀하겠습니다. 우리가 보통 받는 고통으로 말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첫째 정신상으로 받는 고통과,
둘째 물질상으로 받는 고통입니다.
모든 고통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이니, 이것을 받은 때에 받아서 느낀 때에 비로소 고통이 생기는 것이외다. 다시 말하면, 고통을 고통으로 알고,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는 그 느낌이 고통이외다. 들어오는 고통을 받지 말고, 스스로 나아가 기쁘게 즐겁게 영적 활동으로 나아가면 고통이란 없을 것이외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현실 세계를 부인한 모순의 말이라 할 것이외다. 우리가 아무리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하더라도, 밖으로 들어오는 고통 그것은 다름없이 있을 것이 아니냐고 할 것이외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좀 넓어집니다. 허나 이것이 결코 현실 세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외다. 다만, 그 고통이 생기는 까닭이 고통을 느끼는 데 있으므로, 만일 이 고통을 느끼면서 밖으로 그 고통 주는 바를 쳐 버린다든지, 또는 그 고통을 없이할 만족을 요구한다든지 할진대,
아마 그 고통은 용이하게 없어지지 아니하리다. 더욱 고통은 고통을 더할 것이외다. 옷이 없어서 고통이외다. 밥이 없어서 고통이외다. 자유를 잃어서 고통이라 합니다. 그래서, 밥을 구하며 옷을 주기를 기다립니다. 자유를 빼앗은 자를 원망합니다. 고통이 주는 모든 것에 대하여 반항도 하고, 애원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주는 고통 그것이 또한 피(저)라는 자리에 있어서 아(나)에게 요구합니다. 나와 같이 겨룹니다. 이렇게 되고도 고통이 없어질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고도 번민치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현재 우리 조선 사람이 정신상으로나 물질상으로나 무한한 고통을 받음은 사실이외다. 남다른 설음과 남다른 고통으로 울고불고하는 터외다. 밥이 넉넉지 못하고, 옷을 헐벗어 목숨을 부지하기에 갖은 고통이 일어납니다. 자유가 없으니까, 눈이 있으나, 입이 있으나 없으나 다름이 없습니다. 손이 날래고 발이 튼튼하다 하더라도 아무 보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느끼어 갑니다. 그러나, 이 고통을 물리치려고 없이하려는 태도로 수단을 부리고 길을 취한다 하면, 고통은 점점 더할 것이외다. 근본적으로 이 고통의 탈 가운데서 뛰어나와 쾌락하게 평화로운 영적 활동을 계속하여 가면, 고통은 자연히 없어질 것이외다. 고통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 못할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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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 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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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사랑할 땐 별이 되고
12
`별을 보면 겸손해집니다` 라는 기사를 미국에 사는 진주씨가 보내 주었다. `천문학의 매력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것, 가장 멀리 있는 것, 가장 오래된 것, 가장 궁극적인 것을 찾아가는 데 있습니다. 복잡한 일상, 슬픔까지도 무한한 우주에 대비해 보면 극히 짧은 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라는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어느 날 별을 바라보다 쓴 나의 글 `어떤 별에게` 한 편을 다시 읽어 본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모르지만
산에서 하늘을 보면
금방이라도 가까이
제 곁에 내려앉을 것 같습니다
다른 별에 비하면
지구는 아주 작은 별이라는 걸
얼른 이해할 수 없듯이
때로는 그 안에
먼지처럼 작은 내가 있음을
자주 잊어버리며 삽니다
요즘은 혜성, 목성의 거대한 충돌로
온 세계가 하늘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큰 별과 별, 천체의 부딪침이 신기하고 놀랍듯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어느 순간 섬광처럼 부딪쳐 일어나는
사랑의 사건 또한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것인가요?
누가 눈여겨보지 않아도
그 황홀한 내면의 빛은
소리 없이 활활 타올라
우주를 밝히고 세상을 구원합니다
그래서 사랑할 땐 우리도 별이 되고
이미 별나라에 들어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심하게 부딪치고도 깨어지지 않는
지상에서의 사랑을 별나라에까지 들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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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림/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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