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22호
2022.8.3 (음 7.6)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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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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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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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적어도 매일 한 곡의 노래를 듣고 한 편의 시를 읽고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해야 하며 가능하면 몇 마디 도리에 맞는 말을 해야만 한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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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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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 소리 없는
말은 소리에 높낮이를 주거나, 늘이거나, 짧게 끊거나, 뜸을 들이는 방식으로 말하는 이의 의도를 다양하게 담는다. 이에 비해 글은 평평하여 목소리를 담지 못한다. 이를 흉내 내려고 기호를 쓰는데, ‘?’를 붙이면 말끝을 올리고 ‘!’가 나오면 감탄하는 마음이 생기며 ‘…’ 앞에서는 말끝을 흐린다. 그중에 괄호가 있다.
소인배인 나는 나이가 들수록 말이 많아졌다. 말을 하면서도 머릿속에 따로 떠오른 생각마저 주절대니 난삽하다. 학생들한테 한 학기 공부한 보람을 묻는 질문지를 만들면서도 이런 식이다. ‘강의 내용 중에서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이 있었나요?(있기나 하겠습니까마는….)’ 나에게 괄호는 마음속에 떠오른 딴소리를 묻어두지 않고 드러내는 장치다. 관객한테 들리도록 하는 혼잣말이다. 방금 한 말이 온전하지 않아 비슷한 말이나, 덧붙이는 말이나, 대꾸하는 말을 한다.
괄호는 제 목소리를 갖지 못한 말이고, 철저히 ‘을’이다.(수학에서 괄호는 ‘갑’이다. ‘3* (2-1)’은 괄호부터 계산해서 ‘3’이다.) 괄호 다음에 오는 조사는 괄호 안의 말을 무시하고 원래의 말에 맞추어 붙인다. ‘모레(수요일)는’이라고 하지, ‘모레(수요일)은’이라고 안 쓴다. 그래서 짐짓 읽고도 읽지 않은 듯, 말하고도 말하지 않은 듯 해야 한다. 하지만 목소리 없는 이 군더더기는 지금 매끄럽게 내뱉는 말의 뒤편에 실은 다른 표현이 철철 넘친다고 소리친다. 괄호 속 존재는 소거되어야 할 잉여가 아니라 복권되어야 할 아우성이다. 그래서인지 괄호를 보면 혁명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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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격의 꿔바로우
아침 일찍 빈병을 챙겨 슈퍼에 갖다 팔려고 나서는데, 아내는 오후에 가라고 말린다. 아침부터 빈병을 갖고 가면 장사하는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하루 매상이 마수걸이에 달려 있다는 생각은 이 무심한 사회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습관은 잘 안 바뀐다. 말에 대한 잔소리꾼들은 말소리의 변화를 ‘말세적 징후’로 보는 습관이 있다. 말은 타락을 반영하기도 하고 부추기기도 한단다. 그야말로 슈퍼맨이다. 그들이 거론하는 징후 중 하나는 사람들 말이 점점 ‘쎄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범은 된소리다. ‘잘렸어’ ‘세게’ ‘소주’라 해야 하는데 ‘짤렸어, 쎄게, 쏘주’라고 하니 사회는 더 거칠고 강퍅해진다는 거다.
된소리를 경멸하는 태도는 외래어 표기법에도 녹아 있다. 베트남어 등 몇몇 언어를 빼면 원칙적으로 외래어 파열음(k, t, p)은 ‘ㅋ, ㅌ, ㅍ’으로 쓰지 ‘ㄲ, ㄸ, ㅃ’으로 쓰면 안 된다. ‘마오쩌둥’처럼 ‘ㅆ, ㅉ’이 허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꼬냑, 싸이코, 모짜르트’가 아닌 ‘코냑, 사이코, 모차르트’처럼 써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길에서 만난 중국음식 하나가 흥미롭다. ‘꿔바로우[鍋包肉]’. 지금의 외래어 표기법으로 중국어를 표기할 때 ‘ㄲ’은 절대로 쓸 수 없다. 원칙을 따르자면 이 음식은 ‘궈바러우’ 정도로 써야 할 텐데 이를 얼마나 따를까. 그렇다고 ‘탕수육’처럼 우리 한자음에 따라 ‘과포육’이라 하면 장사를 포기하는 일일 테고. 기자들이 흔히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 말의 미래를 ‘좀 더 지켜봐야겠다.’ 된소리의 반격이 이미 시작된 걸까?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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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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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그림자가 없다 - 김수영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자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
전차를 타고 자동타를 타고
요리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하고
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고
애교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전선은 당게르크도 놀만디도 연희고지도 아니다
우리들의 전선은 지도책 속에는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사움의 모습은 초토작전이나
[건 힐의 혈투]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거리를 걸을 때도 환담을 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토목공사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시장에 가서 비린 생선냄새를 맡을 때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수업을 할 때도 퇴근시에도
싸일렌 소리에 시계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있다.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그림자가 없다
하.....그렇다......
하......그렇지......
아암 그렇구 말구......그렇지 그래......
응응...... 응......뭐?
아 그래...... 그래 그래.
<1969.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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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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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양득(一擧兩得)
- 한 가지 일을 하여 두 가지 이익을 거둠.
《出典》'春秋後語' 戰國策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때의 일이다. 중신 사마조(史馬金昔)는 어전에서 '중원으로의 진출이야말로 조명시리(朝名市利)에 부합하는 패업(覇業)'이라며 중원으로의 출병을 주장하는 재상 장의(張儀)와는 달리 혜문왕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신이 듣기로는 부국을 원하는 군주는 먼저 국토를 넓히는 데 힘써야 하고, 강병(强兵)을 원하는 군주는 먼저 백성의 부(富)에 힘써야 하며, 패자(覇者)가 되기를 원하는 군주는 먼저 덕을 쌓는 데 힘써야 한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 요건이 갖춰지면 패업은 자연히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하오나, 지금 진나라는 국토도 협소하고 백성들은 빈곤합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면 먼저 막강한 진나라의 군사로 촉(蜀) 땅의 오랑캐를 정벌하는 길밖에 달리 좋은 방법이 없는 줄로 압니다. 그러면 국토는 넓어지고 백성들의 재물은 쌓일 것입니다. 이야말로 '일거양득(一擧兩得)'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천하를 호령하기 위해 천하의 종실(宗室)인 주(周)나라와 동맹을 맺고 있는 한(韓)나라를 침범하면, 한나라는 제(齊)나라에 구원을 청할 게 분명하며, 더우기 주나라의 구정(九鼎)은 초나라로 옮겨질 것입니다. 그땐 진나라가 공연히 천자를 위협한다는 악명(惡名)만 얻을 뿐입니다."
이에 혜문왕은 사마조의 진언에 따라 촉 땅의 오랑캐를 정벌하고 먼저 국토를 넓혔다.
【동의어】일거양획(一擧兩獲), 일전쌍조(一箭雙鳥), 일석이조(一石二鳥)
【반의어】일거양실(一擧兩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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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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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3장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자리:인
공자는 단지 참된 것만을 보았고 말했을 뿐이다. 인이란 예를 따르고자 하는 (일단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노련함을 객관적으로 쌓았다면) 사람의 결정 사항이기 때문에, 어떻게 인하게 되는지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단계적인 분석이 없다. 사람이 정말로 인하고자 한다면 인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오직 결정하는 하나의 길밖에 없으며 그 길이란 결심을 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그 밖의 다른 개념들, 예를 들면 <생각함>, <느낌>, <마음 자세를 가짐> 또는 <욕구함>과 같은 (서양에서는 우리들이 심리적인 문제로 보는) 개념들에 대해서도 적절하다고 본다. 그러한 각각의 개념의 경우, 어떤 공개되어 분석될 만한 과정이 없다. 사람은 다만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거나, 생각하거나, 요구하거나 그러지 않거나 할 뿐인 것이다. 이들 모두는 그런 관점에서 인 개념과 논리적으로 비슷한 점이 있다. 자전거는 타는 <방법>이 있다. 즉 어떤 연속적인 시간 속에서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다리를 움직이고 기대고 한다. 그리고 자전거가 구르는 동안 그러한 동작을 게속하는 것이 자전거를 타는 방법이다. 그러나 요구하거나 생각하는 데는 (특정한) <방법>이 없다. 특정 조치의 타당성을 논리에서 찾을 수 있거나 고귀한 동기에서 무엇인가 행위하게 하는 (특정) 방도는 없다. 최종적으로 분석을 한 다음에, 사람은 그렇게 하기도 하고 (또는 하지 않기도 하는) 마음의 결정을 내린다. 따라서 (예를 따라 인답게) 행위하는 그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자기를 계발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들여야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어떤 의미로는 결국 인하는 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길 즉 방법은 필요한 것이지만 충분한 수단은 아니다. 인은 <어려운 일을 한 뒤에> 온다. 즉 예에 의해 요구되는 행위의 솜씨를 몸에 익힌 뒤에 오는 것이다. 인간들이 상호 교제하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개명된 솜씨들을 모두 다 익숙하게 배우기는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그것은 비상한 능력보다는 인내를 요구한다. 그렇다고 인내하는 방법도, 인하는 방법도 (특정적 규정적으로) 있을 수 없다. 사람이 배움을 계속 하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은 인내하는냐 인내하지 않느냐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예 안에서 자기 존엄성을 찾는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똑같은 관심과 배려를 가지고 행동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이 인한가 그렇지 못한가의 문제일 뿐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인되기는 쉽다. 단적으로 인하게 행동하라! 적절히 예식을 올리는 제반 솜씨를 터득하고 난 사람은, <마치 중요한 손님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중요한 제사를 모시는 것처럼>, 요컨대 타인들도 자신과 근본적으로 같은 존엄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그들을 대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는 (특정한) 다른 방법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이지만, 인은 원하기만 하면 즉시 가까이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행위의 패턴은 공개되어 있다는 행위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는 때때로 피할 수 없는 장애가 있어서, 그것이 그 행위 패턴을 훼방함으로써 그 행위를 무산시켜 버릴 수 있음을 잘 안다. 그러나 행위자의 타인에 대한 지향, 즉 그가 자기 행위에 부여하는 방향의 맥락에서 우리가 행위를 생각하면 우리는 여기에서 일종의 무오류성, 즉 밖으로 드러난 행위의 최종 결과가 어떠하냐 하는 것과 뚜렷이 구분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피아니스트는 연주를 통해 어떤 화음을 표현하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외적인 장애란 (표현하려는) 의도함이 아니라, 그런 (표현) 행위의 성공만을 막는다. 따라서 이렇게 보면, 위도함에는 아무런 장애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의도하는 것뿐이다. 같은 논리로, 어떤 행위가 (객관적인) 장애 때문에 실패한다 할지라도, 그 어떤 행위에서도 타인에 대한 일종의 관심이나 배려를 볼 수 있다. 인은 관심이나 배려의 한 형태이다. 그러므로 인이라는 관심, 배려에는, <사람이 인하고자 하면>, 거기에는 어떤 장애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원하면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하는 것은 예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인에 대해서는 꼭 들어맞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의 행위란 다른 것들과 비교할 때, 다시금 신묘하고 경이로우며 역설적인 차원을 갖고 있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안 가질 수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 개인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가 자기 행위를 참되게 관심을 기울인 (또는 배려를 한) 행동으로 만들어 내는 (고정적으로 확정된) 방도는 없다.
이상의 언명들은 주로 인의 시각, 즉 개인적인 시각이 지닌 직접성과 무 오류성의 측면을 끌어 내고, 또한 이런 측면을 탈 신비화함으로써, 이런 개인적인 시각이 얼마나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친근한 것인가를 상기시키려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몇 개의 언급을 통해 바로 개인적인 인의 측면이-개인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지만-<외적>인 또는 공적인 행위로서 갖는 자연스러움과 고유한 성질을 적절하게 부각시켜 보고자 한다. 공자가 다양한 공적인 시각에서 바로 공적인 이 속세의 문제를 검토했다는 사실을 재강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마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공자는 행위의 모범 사례인 예식의 사회적인 역사, 즉 전통적으로서의 예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는 역할, 즉 예에 의해 규정된 역할들을 수행하는 행위-<임금은 임금다워야 한다> 등등-에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끝으로 그는 사람들이 주위의 타인들을 향한 또는 그들과 함께 하는 개인적인 행위-인, 상호 존중, 충성, 믿음-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다.그러면 공자는 개인적인 행위가 어떻게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는가? 예를 따르는 행동은 단순한 기계적 작동, 즉 공식에 매인 행동 수행이 아니다. 예에 따르는 행위는 많건 적건 상황에 민감하게 대처하고 행위 수행에 융합성이 있는 미묘하고 이지적인 행위이다.
여기서 공자가 애호하던 음악을 모델로 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민감하고 지적인 음악의 연주를, 지루하고 바보같은 음악 연주에서 우리는 신뢰와 융합성 또는 아마도 주저, 갈등, <거짓>, <감상적 작풍>을 감지할 수 있다. 우리는 연주라는 그 현장 안에서 이 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우리는 따로 연주자의 심리 상태나 인물됨을 조사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느끼는) 그것은 <거기에> 공개적으로 놓여 있는 것이다. 느낄 수 있는 그것이 연주라는 장 안에 있기 때문에, 비록 우리가 그 연주를 베토벤 3번으로도 (즉 작곡자의 관점으로), <공개 음악회>로도 (예의 관점으로), 또는 <후기 모차르트 작품>으로도 (스타일의 관점에서) 보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 연주를 일차적으로 이 특정한 사람의 연주로 (그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비로소 우리는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이 사람이 어떻게 행위를 하는가를 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사람이 주위에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을 그와 함께 예에 참여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타인들을 자신과 같은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대해 주었는지가 밝혀진다면, 그 행위는 인으로도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행위 패턴이 어쩔 수 없이 엉망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마이 피아니스트가 연주에서 나타내려고 했지만 결국은 나타내지 못한 화음을 들을 스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 행위가 시도했던 방향, 목표, 즉 그 행위 중에 나타낸 관심이나 배려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행한 그의 행위를 봄으로써 이러한 모든 것을 아는 것인지, 결코 그 사람의 두뇌나 내심의 정신 영역을 탐구해서 아는 것이 아니다. 음악 연주에서 거짓을 감지할 수 있듯이, 우리는 겉으로 예처럼 보이는 행동이지만 사실은 보다 복잡하면서도 위선적인 행위의 요소가 있는 경우에 그런 거짓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런 거짓은 예에 의해 규제받지 않는 방식으로 타인을 희생시킴으로써 행위자 자신의 중요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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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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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6장 포숙아, 관중을 추천하다
1. 관중, 드디어 재상의 자리에
흉사와 길사
포숙아는 관중을 우선 당부(堂阜)에 있는 행관에 머물면서 쉬도록 하고 임치로 돌아갔다.
"이 곳에서 당분간 심신(心身)의 피로를 풀게나. 나는 도성에 가서 주공을 뵙고 돌아오겠네."
포숙아는 도성에 당도하자 곧바로 궁으로 가서 제환공에게 자초지종을 고했다.
"이번 흉사(兇事)를 조상(弔喪)하는 동시에 길사(吉事)를 축하드립니다."
제환공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무엇을 조상한단 말인가?"
포숙아가 대답했다.
"공자 규가 경쟁자였지만 사사롭게는 주공의 형님이십니다. 주공께서 나라를 위해 사사로운 정(情)을 물리친 것은 부득이한 일이지만, 신하로서 어찌 그 죽음을 조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렇다 치고 과인에게 길사가 있어 축하한다는 건 또 무엇인가?"
포숙아가 다시 대답했다.
"차차 자세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이번에 우리 제나라는 천하의 인재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주공께 천하 제일의 정승감을 추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환공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었다. 이제 나라는 안정되었고, 제환공은 모든 신하의 공로를 표창하기 위해서 벼슬과 토지를 제수했다. 포숙아를 가까이 부른 후 분부했다.
"포숙아는 상경(上卿)이 되어 앞으로 과인을 도와 이 나라 정사를 도맡아 보시오."
포숙아가 사양했다.
"주공께서 신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심은 더할 수 없는 광영입니다. 하지만 신은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결코 상경 벼슬 자리를 맡을 수 없습니다. 신은 헐벗고 배고프지만 않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제환공은 머리를 흔들며 분부했다.
"과인은 누구보다도 경을 잘 아노라. 사양하지 말고 과인 곁에 있어 보좌하라."
포숙아가 대답했다.
"주공께서 신을 잘 아신다 하지만, 신은 매사에 서둘지 아니하고 조심하여 큰 실수를 안하는 정도의 인물에 불과합니다. 그저 주공의 행차에 말고삐를 쥐고 앞장서서 나아갈 만할 뿐입니다. 결코 주공을 보좌하고 국가를 다스릴 만한 인재가 아닙니다. 대저 국가를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안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를 무마하고, 공훈을 주왕실에 세우고, 모든 나라의 제후에게 덕을 펴고, 나아가서는 주공께서 한량없는 복을 누리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정도 수준의 인재는 되어야 이 나라 정사를 도맡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환공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자신도 모르게 포숙아에게 몸을 숙여 물었다.
"경이 말하는 그런 인재가 오늘날 이 세상에 있겠소?"
포숙아가 아뢰었다.
"주공께서 그런 인재를 구하시지 않는다면 몰라도 반드시 그런 인물을 구하실 의향이시라면 우리 제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관중 그 사람입니다."
제환공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관중은 과인에게 독화살을 쏘았소. 과인이 그대와의 옛 정분을 생각하여 그의 목을 치지 않았을 뿐이오. 어찌 원수를 정승으로 등용하란 말이오?"
어떤 인재를 찾느냐?
포숙아가 대답했다.
"신하된 자로서 그 누가 자기 주공을 위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주공을 쏜 것은 공자 규만 알았지 주공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공께서 그를 등용하시면 아마 주공을 겨누었던 그 활로써 이번에는 주공을 위해 천하를 겨냥하여 쏠 것입니다."
제환공은 대답이 없었다. 속으로는 아직도 관중에 대한 짐짐한 기분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날 독화살로 죽이려 한 인물인데.......'포숙아가 계속 아뢰었다.
"감히 비교한다면 우리 제나라의 시조이신 태공망에 필적할 만한 비상한 인물이 바로 관중입니다. 신은 불세출의 정승감을 천거하고 있는 것이지 과거에 누가 주공에게 무례했는지 또는 주공에게 독화살을 쏘았는지 그런 인물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환공은 그제서야 약간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경은 그를 불러오시오. 과인이 직접 그의 식견을 시험해 보겠소."
포숙아가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아뢰었다.
"신이 일찍이 듣건대, 천한 몸으로는 능히 귀(貴)에 나아갈 수 없으며, 가난한 자는 부자(富者)를 부릴 수 없고, 가깝게 대하지 않으면 설령 낳고 기른 부모라고 할지라도 옳은 말로 간할 수 없다 하더이다. 그러니 주공께서 관중을 등용하실 생각이시면 곧 정승의 직인을 내리시고, 부형(父兄)에 대한 예로써 영접하십시오. 정승이란 임금의 다음 가는 자리라 이를 가볍게 여기면 임금 또한 스스로 가벼워집니다."
제환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포숙아가 자세를 바르게 한 후 계속했다.
"대저 비상한 인물에게는 반드시 비상한 예로써 대우해야 합니다. 그러니 주공은 우선 택일부터 하시고 교외에다 영접할 준비를 한 후에 만나십시오. 주공께 비록 독화살을 쏜 원수일지라도 상대가 어진 사람이면 존경하고, 식견이 높은 선비면 예의로써 대한다는 소문이 사방에 널리 퍼지면 천하에 뜻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주공을 우러러보고 우리 제나라에 등용되기를 진심으로 원하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제환공이 대답했다.
"과인은 그대가 시키는 대로 하겠소."
제환공은 곧 태복(太卜)에게 명하여 길일을 잡게 하고 교외 공관에서 관중을 만나겠다고 말했다. 드디어 제환공이 관중을 정승으로 영접하는 그날이 됐다. 관중은 세 번 목욕하고 세 번 향유를 몸에다 발랐다. 그날 격식을 위해 관중에게 내려진 의복과 허리띠는 상대부(上大夫)의 복식보다 더 나았다. 제환공은 친히 교외까지 나가서 관중을 영접했다. 그리고 함께 나란히 수레를 타고 궁으로 향했다. 길 양편에 가득히 모여 구경하던 임치성의 백성들은 이 성대한 임금의 행차와 새 정승의 영접을 보고 놀라지 않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남문 밖 광장 활쏘기 대회에서 명궁으로 꼽혔던 소년이 바로 정승 관중이다."
"저잣거리에서 생선을 팔고 주점을 경영하던 그 청년이 바로 정승 관중이다."
"소백 공자를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노나라에서 잡혀온 죄수가 바로 정승 관중이다."
사람들은 생선 장수라는 천한 신분에서 일약 정승의 지위까지 오른 관중을 선망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독화살을 쏘았던 상대에게 복수의 감정을 버리고 인재로 기용하여 마치 부형(父兄)처럼 모시는 제환공의 아량과 정성을 더욱 우러러보았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이 관중과 제환공은 나란히 궁으로 수레를 타고 들어왔다. 궁 안에 이르자 관중이 수레에서 내려 제환공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앞서 있었던 일을 사과했다. 제환공은 친히 관중을 일으키고 자리를 내어 앉게 했다.관중은 극구 사양했다.
"신은 사로잡힌 죄수의 몸으로 죽음을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렇듯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과도한 대접을 받는다면 이는 분수에 벗어납니다. 주공께서는 이를 살펴 주시옵소서."
제환공이 정성으로 말했다.
"과인이 그대에게 묻고자 하는 것이 있소. 그대가 자리에 앉지 않으면 내 어찌 물어보겠소. 자리에 앉으시오. 그리고 내 물음에 말씀해 주시오."
관중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숙배하고 자리에 앉았다. 제환공이 물었다.
"우리 제나라는 천승(千乘)의 나라요, 과거부터 산동의 큰 나라였소. 또한 지난날 희공께서 여러 나라 제후들에게 위엄을 떨치셨기 때문에 작은 패업의 성취가 있었소. 그런 것이 요전 양공 때부터 정사(政事)에 질서를 잃더니 결국 큰 변고가 일어나고 말았소. 이번에 과인이 종묘 사직을 맡았으나 인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고 국위 또한 말이 아니오. 앞으로 나라 정사를 다스리고 기강을 세우려면 장차 무엇부터 먼저 해야겠소?"
관중이 아뢰었다.
"나라의 4가지 근본은 예(禮)·의(義)·염(廉)·치(恥)입니다. 이 4가지 근본부터 뚜렷이 펴고 백성을 다루면 나라의 기강이 저절로 펼쳐지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능히 백성을 다룰 수 있소?"
"백성을 다루고자 하면 먼저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백성의 나아갈 길을 열어 줘야 합니다."
"백성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항시 백성과 함께 손을 잡고 일하며, 그 이익을 나눠주면 백성과 서로 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나간 죄를 용서해 주고 옛 법을 닦게 하고 자손이 없거나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부부의 짝을 짓도록 주선해 주면 백성은 늘고, 형벌은 줄고, 세금 부담은 감소되어 백성은 부자가 됩니다. 그리고 어진 선비를 등용하여 대신을 삼고 그들로 하여금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게 하면 자연 백성들은 예의를 배우게 됩니다. 또 일단 선포한 법령은 함부로 고치지 않아야만 백성은 모리(謀利) 협잡질을 않고 정직한 사람들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백성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제환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또 물었다.
"그러면 백성의 나아갈 길을 열어 줘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오?"
"사(士)·농(農)·공(工)·상(商)을 사민(四民)이라고 합니다. 선비의 아들은 선비가 되고, 농군의 아들은 농사짓고, 공인(工)과 장사(商)하는 사람의 아들은 공상(工商)을 하되, 늘 익히고(習) 안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백성은 자기 직업을 자꾸 바꾸지 않고 만족할 수 있도록 해 줘야만 편안할 수 있습니다."
"백성이 안정되었을지라도 전쟁에 쓸 무기와 병사가 부족하면 어찌하오?"
"무기와 군사를 충족하려면 속형(贖刑)하는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중죄를 범한 자로서 형벌을 면하려면 서피(犀皮) 갑옷과 창 한 벌을 바치게 하고, 죄가 가벼운 자에겐 질긴 가죽 방패와 창 한 벌을 바치게 하고, 사소한 죄인에겐 벌금을 물게 하고, 그 죄가 분명치 못한 자는 용서하고, 소송을 거는 자에겐 쌍방(雙方)마다 화살 일 속(一束: 十二矢)을 바치게 합니다. 그리고 채광(採鑛)을 허가합니다. 철물(鐵物)을 모으되 좋은 것은 칼(劍)과 창을 만들고, 좋지 못한 것은 연장이나 농기구를 만들어 농사를 짓는 데 쓸모 있게 하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잘 됩니다."
제환공이 또 물었다.
"무기는 이미 정해졌을지라도 재화가 부족하면 그 때는 어찌하오?"
"산을 녹여 돈(錢)을 만들고 바다를 이용해서 소금을 구으면 그 이익이 천하에 유통합니다. 그리고 천하의 모든 물품을 거두어 두고, 때 맞추어 무역(貿易)하게 하는 동시에 창기(唱妓) 3백 명을 두어 행상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면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며, 모든 재화도 따라서 모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로부터 적당한 세금을 징수해서 군용(軍用)을 돕는다면 어찌 재용이 걱정되겠습니까?"
제환공이 또 물었다.
"군사가 많지 못하고 무장이 빈약하여 위세를 떨칠 수 없을 땐 어찌하오?"
"원래 군사란 것은 그 정예(精銳)한 것을 중시할 뿐 수효 많은 것을 목적으로 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군사는 힘보다 정신이 강해야 합니다. 만일 주공께서 관사를 기르고 무기를 준비하시면 다른 제후들도 모두 다 군사를 기르고 무기를 준비하리니, 그렇게 해서 승리하는 예를 보지 못했습니다. 주공께서 만일에 군사를 강하게 하고자 하실진대 그 내용을 튼튼히 하십시오. 신은 청컨대 내정(內政)을 지어 이에 기여하되 군령으로써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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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한용운편"
한용운(1879~1944) 시인. 승려. 법호는 만해. 충남 홍성 출생. 한학 수학.
33인 중의 하나인 그는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 등 예술적. 사상적 깊이가 있는 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어려서 신동으로 불리었고 18세 때는 동학에 참여하였고 그 후 승려로 한국 불교계의 혁신을 도모하였고 만주에 건너가 독립 운동에 공헌하였다.
최후의 오분간
벌써 근 30년의 회상이다. "음빙실문집"에서 얻은 기억의 한 토막이다. 지나의 양계초가 무술 정변에 실패하고 미국에 망명하였을 때에 미국 조야 인사를 방문하였는데 모건은 미국에서 유명한 부호요, 기업가요, 돈도 많고 일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을 면회하든지 5분 이상을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모건은 부호요 거상이니만큼 면회하는 사람도 많을 것인즉, 그 만큼 바쁜 사람으로 그만한 사람을 면회하자면 오랜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보다도 그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있었던 것이니, 능력이라는 것은 그의 두뇌를 말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심상한 방문객도 없지는 않겠지마는 대부분은 일이 있어서 찾는 사람일 것이요, 그 중에 복잡한 사단과 장황한 이론을 필요로 하는 방문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하면 어찌하여 다만 5분간의 면회로 그러한 일들을 해결할 수가 있는지가 의문이네, 모건은 어떠한 복잡한 일을 당하든지 지엽의 토의를 필요로 하지 아니하고 편언척어로 요령을 포착하여 단도 직입, 언하에 신속히 판단하고, 한 번 판단하면 여하한 경우라도 그것을 변개 하는 일이 없다 한즉 그는 그러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로 그러한 판단력과 의지력이 있어서 5분간의 면회로도 미해결의 일은 없다 한다.
모건은 대부호이니만큼 미국 정부에서도 그에게 돈을 꾸어 쓰는 일이 있는데, 그러한 때에는 대통령이 직접 모건을 방문하게 된다. 모건은 대통령의 방문에도 물론 5분 이상을 허비하지 않는다 한다. 모건은 일개의 우연한 부상이 아니라 실로 일종의 걸물인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양계초가 그를 찾은 것은 소관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종의 호기심이었던 것이니만큼 그들의 면회는 3분간에 끝났는데, 양이 떠날 때에 자기에게 기념될 만한 말을 청한즉 모건은 '성공은 최후의 5분간에 있다'는 간단한 말로 고별사를 지었다 한다.
세계적 부호요 서반구적 걸물인 모건으로 당시 지나 일폭의 풍운아로서 정변에 실패하고 천애윤락 이역에 망명하여 미래의 부침이 적어도 4억만 생령에 관심되는 양계초에게 기념적으로 준 말이라면 반드시 심상할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대적 추상보다 그 말 자체를 음미하면 실로 우리들의 좌우명이 될 만한 말이다. 이 말은 중도의 실패에 낙망하지 말고 최후까지 노력하라는 뜻이다. 사람이 경영하는 일은 성공을 목표로 하지 않는 일이 없고 성공까지에는 반드시 다소의 시일이 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시일을 두고 참담 경영하던 일이 최후의 종국은 5분간으로서 족한 것이다. 구인의 산은 최후의 일궤를 가하는 5분간으로 부족이 없는 것이다.
일을 영위함에는 시간의 조만도 문제이지만 성공의 5분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공기의 지속이 그 일을 영작하는 노력의 질적 양적의 다과로 정비례될 뿐이다. 물론 여기에서 영위하는 일이라는 것은 산판상으로 타산하여서 전도를 예측할 수 있는 대금업이나 토목 공사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전도의 성패를 알 수 없으면서도 사람으로서 당연히 당할 일을 말하는 것인데,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은 매양 순경보다 역경을 당하는 일이 많게 되는 것은 조화용의 장난인지도 모른다 하려니와, 그보다도 순경에 처한 사람보다도 역경에 있는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이 많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궁할수록 달하고 싶고 퇴할수록 진하고 싶은 사람의 욕망이라고 하느니보다 차라리 생물의 본능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고로 위대한 사업은 흔히 역경을 만난다고 하지마는 위대한 사업일수록 역경에서 출발하기가 쉽게 되느니 그 출발점이 역경인지라 그 진로가 순경일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그들에게 순경이 있다면 그것은 이른바 성공하는 최후의 5분간으로부터일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모든 역경에 선 사람들도 순경을 개척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면 마땅히 그것을 먼저 간파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아니하여 일을 영위하다가 곤란이 있다고 중도에 퇴보한다든지 진로를 변경한다면 그것은 최초의 본의가 아닐 뿐 아니라 그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성공은 없을 것이니, 그러면 그 사람의 일생은 실패와 비애로 시종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소위에 대하여 일시적 성취가 사람으로 그것을 영위하고 거기에 용진하여 백절불굴, 쉬지 않고 행하다가 광란을 기도에서 돌이키고 대하를 장경에서 붙들어서 성공의 최후 5분간을 본다면 사람의 희열이 거기에 있고 진정한 행복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세도의 일빈일소에 영수향응하여 조동모서로 종작이 없어 부침하는 경박아, 천장부에게는 각각으로 실패의 5분간을 계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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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사랑할 땐 별이 되고
11
새벽부터 나의 단잠을 깨우는 새소리. 문득 잠을 깨면 나뭇가지의 새들도, 키 큰 나무들도 내 방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것 같아 정다운 느낌이다.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정향나무 한 그루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지. `나무야, 네 눈빛만 보아도 나는 행복해. 쓰러질 듯 가느다란 몸으로 그토록 많은 잎과 열매를 묵묵히 키워내는 너를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더욱 살고 싶어져. 모든 슬픔을 잊게 돼. 바람에 흔들리는 네 소리만 들어도 나는 네 마음을 알 것 같아. 모든 이를 골고루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애쓰는 너. 우리 엄마처럼 웬만한 괴로움은 내색도 않고 하늘만 쳐다보는 네 깊은 속마음을 알 것 같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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