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16호
2022.7.26 (음 6.28) / 발송인:
|
|
|
nowmaster@nate.com
|
※ 한자 등 텍스트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
|
글나눔 → 오늘의 어록
|
|
|
나는 현명한 외면보다는 열정적인 실책을 더 좋아한다. ― 아나톨 프랑스
|
|
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
|
날아다니는 돼지
잠시 눈을 감고 ‘날아다니는 돼지’를 떠올려보라. 뭐가 떠오르는가? 영화 <붉은 돼지>의 광팬이 아니라면 비행기를 조종하는 돼지가 떠오르지는 않을 거다. 날개가 달려 있던가? 어디에 달려 있던가? 배 밑인가 등 뒤인가? 몇 쌍이던가? 육중한 몸으로 날려면 힘이 꽤 들 텐데도 두 쌍이 아니고 왜 한 쌍만 달려 있을까? 입은 어떻게 생겼던가? 나와 비슷하다면 당신은 새 부리가 아니고 돼지 주둥이를 떠올렸을 것이다. 발도 새 발이 아니라 돼지 발일 테고. 깃털이 있으면 좋으련만, 피부는 어찌나 매끈한지.
세상 어디에도 ‘날아다니는 돼지’는 없다. 그게 중요하다. 없는데도 의미를 아니까 신통한 일이다. 흔히 말의 의미를 사물과 연결시킨다. ‘손톱’이 뭐냐고 물으면 ‘이거’ 하면서 손톱을 가리킨다. 하지만 ‘날아다니는 돼지’에서 보듯이, 말의 의미는 사물로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창조적으로 결합한다. 돼지의 생김새와 새의 날갯짓을 합해 새로운 조합을 만든다.
그런데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를 파악하기 때문에 떠올리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침 밥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뜨끈한 국에 밥일 수도 있고, 식빵에 딸기잼일 수도 있고, 우유에 시리얼일 수도 있다. 말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은 사람마다 의미를 다르게 구성한다는 뜻이다. 경험의 차이가 의미의 차이를 만든다. 같은 말을 써도 다른 의미를 떠올린다. 우리는 다 다르다. 그러니 내 말뜻을 못 알아듣는 상대를 너무 윽박지르지 말라.
……………………………………………………………………………………………………………
한글날 몽상
한글날이 답답하다. 물론 한글이라는 문자의 과학성은 탁월하다. 간결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은 예술 분야에서도 입증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한국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해방 전후의 언어민족주의에서 달라진 게 없다. 언제 병들지 모르는 연약한 존재로 언어를 보는 태도. 외부의 공격을 막고 내부 혼란을 응징하기 위해 법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는 순결주의.
모든 사람에겐 말을 비틀거나 줄이거나 늘리거나 새로 만들어 쓸 권리가 있다. 말을 변경하는 권리야말로 구태의연한 말에 생기를 불어넣는 힘이다. 그래서 이런 한글날을 몽상한다. 한국어를 단수가 아닌 무한수로 대함으로써 단일성의 고삐를 풀어주는 날. 규범과 명령의 족쇄에서 일탈과 해방의 카니발. 계급, 나이, 성정체성, 지역, 국가 따위의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난만히 피어나는 날. 아이의 말놀이처럼 말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날.
굶주린 사람처럼 말에 대한 감각을 키우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음식맛을 백 가지 다르게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밤새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뼈를 깎는 개혁안을 내놓으라고 했더니 손톱을 깎았다’는 신박한 문장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한 달에 한 권 정도 책을 읽고 지인들 앞에서 한두 문장을 써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여기저기 붙어 있는 ‘금지’와 ‘배제’의 안내판을 포용과 환대의 언어로 바꾸어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마치 외국어를 대하듯, 귀를 쫑긋하며 듣게 되는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신의 문체와 말투를 열망하는 한글날이 되시길.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
|
시나눔 → 우리나라 詩
|
|
|
싸리꽃 핀 벌판 - 김수영
疲勞는 都會뿐만 아니라 시골에도 있다
푸른 연못을 넘쳐흐르는 장마통의
싸리꽃 핀 벌판에서
나는 왜 이다지도 疲勞에 집착하고 있는가
汽笛소리는 文明의 밑바닥을 가고
形而上學은 돈지갑처럼
나의 머리 위에서 떨어진다
<1959. 9. 1>
|
|
글나눔 → 고사성어
|
|
|
와신상담(臥薪嘗膽)
- 섶에 눕고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으려고 괴롭고 어려움을 참고 견딤의 비유.
《出典》'史記' 越世家
춘추시대, 월왕(越王) 구천(勾踐)과 취리에서 싸워 크게 패한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적의 화살에 부상한 손가락의 상처가 악화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BC 496)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夫差)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유명(遺命)했다. 오왕이 된 부차는 부왕(父王)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臥薪],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때마다 부차는 임종 때 부왕에게 한 그대로 대답했다.
"예, 결코 잊지 않고 3년 안에 꼭 원수를 갚겠나이다."
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 구천은 참모인 범려(范?)가 간(諫)하는 것도 듣지 않고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월나라 군사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가 포위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헌책(獻策)에 따라 우선 오나라의 재상 백비(伯?)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구천은 오나라의 속령(屬領)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 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嘗膽],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상기(想起)했다. 그리고 구천 부부는 함께 밭 갈고 길쌈하는 농군이 되어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회계의 치욕으로부터 12년이 지난 후 구천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로부터 역전(曆戰) 7년만에 오나라의 도읍 고소(姑蘇 : 蘇州)에 육박한 구천은 오왕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치욕을 씻었다. 부차는 용동(甬東 : 折江省 定河)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결했다.
【유사어】회계지치(會稽之恥), 절치액완(切齒扼腕)
|
|
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
|
|
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3장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자리:인
공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인>은 예와 같은 단일 개념과 적어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점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예와는 달리 인은 <논어> 안에서 역설과 신비로 둘러싸여 있다. 인은 개별적인 것, 주관적인 것, 개성이나 감정, 태도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인은 심리적인 개념인 것처럼 보인다. 나와 같이 <논어> 안에 피력되어 있는 사상이 (개별적 인간들의) 심리적인 개념들에 정초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논어>의 본질적인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인을 이와 같이 (개인적, 심리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특히 예민한 문제가 된다. 서양학자들이 자연스럽게 심리학적인 맥락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그런 기본적인 주제들을 공자가 어떻게 비심리적인 방법으로 다룰 수 있었는가를 밝혀 내는 것은, 실로 인에 대한 최근 분석이 내놓은 주요한 성과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중국 문헌에서 심리적, 주관적인 의미로 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은 후대에 와서 비로소 생겨난 것이다. 그런 의미로의 인이라는 개념 사용의 중요성은 첫째 불교적 입장에 서 있는 주석가들의 심각한 심리적 편견과 둘째 그리스적, 기독교적 입장에 선 서양 번역가들에 의해 확대 포장되었다. 인에 대한 공자 학설의 정말로 새로운 면모들은 바로 우리가 살펴볼 필요가 있지만, 우리는 그 점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아주 새로운 것이요, 우리 (서양인)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서양식의) 심리 구조에 치우친-언어로는 파악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은 선, 인간애, 사랑, 자비, 덕, 인간다움, 최상의 인간성 등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다양한 주석가들에게 인은 미덕, 포괄적인 덕, 정신 상태, 마음 자세와 감정의 복합체, 신묘한 존재로 여겨졌다. 예 및 그 밖의 중요한 개념들과 인의 관계는 애매모호한 채로 남아있다. 이제 우리는 <논어>의 중요한 개념들을 사용하여 명백하고 확실하게 나타낼 수 있는 의미의 제시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 이런 의미에 대한 우리들의 설명이 바로 <내가 너희에게 감추는 것은 없다> 하신 공자의 말씀을 실체화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검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인의 해석을 참신하게 발전시키는 일을 해야만 한다. 웨일리는 인을 <신묘한 존재>라고 했다. 이렇게 <논어> 원문은 적어도 외양상으로는 역설적 모순이 있음에 틀림없다. 인은 그 자체 무거운 짐이라고 한다.
진정한 선비는 뜻이 크고 굳세야만 한다. 그의 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 인을 자기 짐으로 삼으니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야 그의 갈 길은 끝나니 멀지 아니한가.
그런데 또 인은 <어려운 일을 제대로 하고 난 후에> 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한 이런 어려운 일을 완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인이 그렇게 먼가? 내가 그것을 바라면 그것은 여기에 있다>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인이란 이상적인 삶에 핵심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말로 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보다 먼저 고려할 아무 것도 없다. (다르지만 비슷하게 강조된 번역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정말로 인을 좋아하는 사람을 누구도 능가할 수 없다)
인한 사람의 눈에 띄는 독특한 특징은 무엇인가? 이 점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단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공자는 <이익과 운명과 인에 대해 드물게 얘기했다>고 할 뿐 아니라 인한 사람은 말하기를 신중히 한다고 여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언명들이 우리가 따를 수 있는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구절들에서는) 누구도 공자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인하거나 인했던 실제 사람을 규정하는 공식은 발견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정말로 우리가 최초의 <저술>, 가장 권위있는 공자의 어록이라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논어>의 각 편들을 보면 인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이들 언명들은 몇 개의 주요 그룹으로 나뉜다.
2장에서 9장까지, 좀더 넓게는 2장에서 15장까지 나온 (인에 관한) 많은 언명들은 부정문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언명들은 여러 가지 칭찬할 만한 행동들을 반드시 인의 표지로 보아야 하지 않느냐는 제의들을 다 부정하고 있다. 인을 추구하려는 노력에 관한 일반적인 언명들로 이루어진 또 다른 일련의 구절들이 있다. 우리가 앞서 인용했듯이, 인은 다른 어떤 것보다 앞서 고려해야 할 것이며, 군자는 잠시라도 인을 떠나서는 안 되며, 인은 사람이 어려운 일을 한 뒤에 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힘이 약한 것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온 힘을 다 쓰려는 의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인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 인에 관한 또 다른 많은 언급들은 또한 상당히 일반적이긴 하지만 인을 실천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효과나 위대한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인하지 않은 사람은 곤경도 영달도 오래 버틸 수 없다. 인자는 인을 편안히 여긴다.
인의 힘은-약간은 모호하지만-다음과 같은 문장 속에 표현되어 있다. 누가 자신을 극복하여 예를 따르면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의 인에 호응하리라. 진정한 임금이 일어나면 한 세대 뒤에 인은 널리 퍼질 것이다. 이 두 문장의 경우 인의 힘은 다른 조건, 즉 임금다움 또는 예를 향한 순종과 명백하게 연관되어 있다. 오직 인한 사람만이 사람을 사랑할 줄도, 미워할 줄도 안다고 말하는 구절이 있는가 하면, 또 그 반대로 진실로 인에 뜻을 둔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구절도 있다. 후자의 경우(즉 인한 사람은 미워함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가의 여부)에 대하여 원문이 모호해서 웨일리는 그 문장을 본질적으로 반대되는 뜻으로 번역했다. 그렇게 핵심적인 문제에 관련된 구절에 반대되는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 개념이 모호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인에 대한 이들 모든 주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자의 <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검토했던 언명들은 인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로 거의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숨긴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다. <얘들아, 너희들은 내가 너희들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너희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너희들이 모르는 것을 나는 하지 않는다>. (공자의) 이런 말씀들을 우리는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공자는 여기에서 다만 자기의 실제 행위둘에 대해서만 얘기할 뿐 비의적인 교의를 말하는 것은 반드시 아니라고 웨일리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곳(제3장)과 이 책의 다른 장들에서 제가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듯이, 공자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것은 비의적인 교리나 주관적 (심리적) 상태가 아니라, 바로 공적인 제반 상황에서의 실제 행위이기 때문에, 그는 실제 행위의 맥락에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
|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
|
|
관자요록
제5장
4. 새 임금이 누구냐
노나라를 향해 떠나다
이렇게 해서 공자 규와 관중, 소홀, 부양 등은 곧바로 간단한 행장을 갖추고 몰래 임치성을 빠져나가서 서쪽 노나라로 달렸다. 원래 노나라는 공자 규의 외가이고, 부양도 그 곳 사람이 아닌가. 또 제양공과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는 나라다. 그래서 관중은 지난번에도 슬쩍 가서 여러모로 살피고 돌아온 것이었다. 노장공은 공자 규를 정중히 맞이했다. 그리고 생두 땅에다 거처를 마련해 주고 의식과 재물을 풍성히 주었다. 한편, 군위에 오른 무지는 그 동안 천대받아 온 화풀이라도 하듯이 이곳저곳에서 부딪치고, 마구 제도를 고친다고 호령해대니 별로 좋아하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다가 연칭은 모든 대부를 마치 자신의 종복 거느리 듯 거만스럽게 대했다. 대부들은 연칭을 아니꼽게 생각했다. 관지부는 그런대로 성실했다. 그러나 부장(副將) 출신으로 하루 아침에 아경 벼슬에 오르니 그의 벼락 출세를 뒷받침해 줄 만한 심복 부하가 변변히 없었다. 인재를 구한다는 방을 내걸어 보았지만 별로 성과가 없었다. 우선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관중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몇몇 소문 난 인물들에게 초청하는 사람을 보냈지만 응하는 이조차 몇 명 안 되었다. 이렇듯 무지와 그 일당이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자 어제까지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던 자들까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정치적 설득력과 장악력이 뛰어난 대부 옹름은 벌써부터 반심(反心)을 품고 있었다. 조회 시간이었다. 그는 슬며시 다른 대부들의 마음을 흔들어 보았다.
"요즘 노나라에서 온 사람들 말을 듣건대 노장공이 우리 공자 규를 도와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올 것이라 합디다. 혹 그런 소문을 듣지 못하셨는지요?"
대부들이 대답했다.
"그런 소문이 있습니까?"
그 이상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옹름은 대부들의 속마음을 눈치챘다. 그러니까 무지를 지지하거나 그에게 충성하는 대부였다면, 곧바로 무지에게 소문을 아뢰고 빨리 군사를 보내 철통같은 경비를 하자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소문의 진위를 따지고 들 텐데 그런 대부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속으로는 모든 대부들이 무지를 좋아하지 않는구나.'옹름은 확신했다. 그날 저녁이었다. 몇 사람의 대부들이 옹름의 부중으로 찾아왔다. 그 중의 한 대부가 옹름에게 물었다.
"공자 규가 노나라의 지원을 받아 쳐들어올 것이라는데 그 소문이 참말인가요?"
옹름이 그들의 묻는 의도를 눈치채고 은근히 되물었다.
"만일 그런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소?"
동곽아가 대답했다.
"선군은 비록 음탕 무도하였지만 그 동생되시는 분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소? 우리는 공자 규나 공자 소백께서 어서 귀국하시기를 고대하오."
습붕이 또한 말했다.
"지금의 임금은 적통(適統)이 결코 아니오. 나는 지금 외국으로 나가 있는 공자 규나 공자 소백 두 분 가운데서 어느 공자이더라도 한시라도 빨리 돌아와 지금의 임금 무지를 내 친다면 그 사람을 받들어 주공으로 모시겠소."
습붕은 예전부터 공자 소백을 좋아했다. 야무진 성품으로 매사에 맺고 끊음이 확실하여 습붕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소백이 세자라면 좋겠다.' 더구나 이렇게 어수선한 세상을 다스리는 데는 그의 당찬 성품으로 보아 적격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공자 소백을 들먹였던 것이다.
옹름의 계책
옹름은 자신이 생겼다. 비분 강개한 목소리로 대부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무지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절대로 진심에서 나온 게 아니오. 나는 장차 임금을 죽인 도적을 징계하고 우리 제나라 궁중의 법통을 바로잡으려 꾹 참고 있는 것이오. 모든 대부들께서 저를 도와 주시겠소?"
습붕이 물었다.
"옹대부께서 좋은 계책을 이미 세우고 계신 듯한데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옹름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지금 고혜로 말할 것 같으면 연칭과 관지부 등도 존경하는, 명실공히 이 나라의 어른이오. 그 고혜께서 부른다면 연칭이나 관지부는 버선발로 달려갈 것이오. 나는 고혜에게 부탁하여 연칭과 관지부를 부르게 하겠소. 그리하여 무지와 그 들을 떼어 놓은 후, 무지를 찔러 죽이고 불을 놓아 신호해서 연칭과 관지부도마저 해치운다면 바로 일에 성공하는 게 아 니겠소."
습붕이 다시 물었다.
"우리들 모두 무지와 그 일당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 같소이다. 나 역시 그렇소. 반드시 무지 일당을 해치우는 데 힘을 아끼지 않을 결심이오. 요는 무지를 해치우고 나면 우리가 모두 합심하여 누구를 새 임금으로 모시고 받들 것이냐 하는 것이오. 이 문제를 옹대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옹름이 대답했다.
"공자가 두 분이 계시는데....... 연장자로 한다면 노나라에 가 있는 공자 규가 되어야 할 것이고, 한편으로 거나라에 가 있는 공자 소백을 모시자는 의견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니 우선 도적부터 해치우고 논의하면 어떻겠소이까."
이렇게 하여 모인 대부들은 일단 힘을 모아 무지와 그 일당을 해치우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옹름은 각자의 역할을 정한 뒤 고혜의 집으로 떠났고, 동곽아는 연칭과 관지부의 부중으로 갔다. 습붕은 가신 중에서 날랜 자들을 뽑아 무장을 갖추고 고혜의 집으로 가서 매복하도록 일을 진행했다. 연칭과 관지부는 비슷한 시각에 고혜가 자신들을 집으로 초대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들은 존경하는 나라의 어른께서 자신들을 인정했다는 사실에 더할 수 없이 기뻤다. 그래서 각자 고혜에게 바칠 선물을 한아름씩 싸가지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고혜의 집으로 달려갔다. 고혜는 옹름에게서 이미 대부들이 상의한 자초지종을 듣고 계책에 따라 충실히 준비해 두었던 터라 곧 두 사람을 실내로 안내하고 주안상을 차려 접대했다.
"음탕 무도한 임금을 없애고 새로 임금을 세운 두 분께 참말로 감사를 드리오. 이 늙은이는 바로 두 분 덕택에 가묘(家廟)를 온전히 지킬 수 있게 되었구려. 이에 두 분 영웅께 변변치 못하나 약주 한잔 올리는 바요."
연칭과 관지부는 그야말로 당장 죽는 한이 있더라도 기뻤다.
둘이서 준비한 듯 대꾸했다.
"어르신네의 분부를 받잡고 이렇듯 달려와 대접을 받다니 참으로 광영입니다."
이렇게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환담하고 있을 때 고혜의 집 대문이 소리없이 닫혀졌다. 고혜가 미리 문 지키는 자에게 단속하라고 단단히 일러 두었던 것이다.
|
|
독서실 → 수필
|
|
|
여백 가득히 사랑을 - 노은
자주색 꼬마 넥타이
우리 집 장롱 손잡이에는 자주색 무늬의 꼬마 넥타이가 하나 묶여 있다. 집에 꼬맹이도 없는데 웬 꼬맹이 넥타이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그건 우리 재문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묶었던 넥타이다. 외삼촌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양복을 준비하면서 나비 넥타이와 함께 샀던 것이다. 새삼스럽게 그 넥타이를 왜 장롱 손잡이에 묶어 놓았느냐, 다 이유가 있다.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이유, 인터넷이 애인보다 좋은 이유, 자동차가 애인보다 좋은 이유, 내가 사는 이유 등 요즘 이유가 유행이듯이. 그럼 지금부터 장롱 손잡이에 꼬마 넥타이를 묶어 둔 이유를 밝히기로 한다. 사실 나는 넥타이를 맬 줄 모른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영화나 TV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아내가 남편의 넥타이를 매 주는 장면들이 간혹 나오는데, 그걸 볼 때마다 생각했다. 넥타이를 매 주는 사람이나 매 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나 서로 얼마나 불편하고 귀찮을까. 그리고 얼마나 시간 낭비인가. 두 사람 몫의 불편에 두 사람 몫의 시간 낭비라고 종종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결혼하고 한 번도 남편의 넥타이를 매 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래도 불편한 적은 없었다. 남편이 그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적도 물론 없었다. 남편은 스스로 넥타이를 매며 살았고, 간혹 재문이가 넥타이를 매어야 할 경우에는 남편이 매 주면 되었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자유복이라 넥타이 맬 일이 드물었던 재문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드디어 교복을 입게 되었다.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묶고 재킷을 걸치는 교복을 마침내 입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문제랄 것도 없었다. 남편이 미리 넥타이를 둥그렇게 매어 놓으면, 아침에는 재문이가 쓰윽 목에 걸치고 당기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닥쳤다. "엄마, 넥타이." 교복을 입던 재문이가 SOS를 외친 것이다. "넥타이가 왜?" "풀려 있어." 재문이가 한 줄로 길게 풀어져 있는 넥타이를 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이를 어쩌나? 남편은 이미 출근했으니 누구에게 SOS를 보내나?' 우선 시계를 올려도 보았다. 오분 안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찌어찌하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까짓 넥타이 하나 못 맬까봐?' 하면서 터억 넥타이를 손에 잡았다. 그런데 생각처럼 쉽고 간단하지가 않았다. 재문이는 곁에서 시계를 보면서 계속 재촉하는데, 넥타이는 생각처럼 매지지 않으니 손에 땀이 다 났다. "지각하겠어, 엄마." "넥타이 매는 법 좀 미리미리 배우지 그랬니?" "엄마는 왜 안 배웠어?" "내가 넥타이 매고 다니니?" 그러면서 생각했다. '넥타이 때문에 학교에 지각했다고 하면 다 웃을 거야. 모전자전이라고 웃을 거야. 세상에, 이 나이가 되도록 넥타이 하나 못 맨다고 하면 누가 믿겠어? 다들 시원시원하게 잘 매는 걸.' 그러면서 또 생각했다. 넥타이를 일곱 개쯤 더 사서 남편에게 둥그렇게 매어 달라고 해서 줄줄이 걸어 놓든지 해야겠다고 말이다.
어쨌든 넥타이 때문에 재문이를 지각시킬 수 없는 일이었다. 낑낑대며 비슷하게 넥타이를 매어서 재문이 목에 걸쳐 주었다. 모양이 이상하고 투덜거리며 거울을 보다가 재문이가 씨익 웃고 만다. 재문이도 엄마가 쩔쩔매는 모습이 안돼 보였던 모양이다. "어서 가라. 늦겠다." "넥타이 매는 법 좀 배워, 엄마." "알았다. 어서 가." 재문이를 학교로 쫓아 보내고 나는 혼자 히히 웃었다. 넥타이 때문에 쩔쩔 맨 것을 생각하면서, 또 재문이 목에 엉성하게 매여 있을 넥타이를 생각하면서 웃다가 마침내 넥타이를 매는 법을 배우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우선 장롱 속에서 재문이가 매던 꼬마 넥타이를 찾아 들었다. 어찌나 작고 귀여운지··.이 꼬맹이 넥타이를 맬 때만 해도 우리 재문이는 어리고 작고 귀여웠는데, 이제는 아니다. 줄줄이 걸려 있는 아빠 넥타이처럼 크고 징그러운 고등학생이 돼 버렸으니 시간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그 날 아침 나는 재문이의 귀여운 넥타이를 들고 출근했다. 그리고는 옆자리 정수 씨에게 넥타이 매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생님들은 모두 남편 넥타이 매 주려고 배우느냐며 한마디씩 했다.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이제 와 새삼스럽게 남편 넥타이 매 주려고 이 복잡한 걸 배워?' 그랬다. 남들은 쉽고 간단하다는데 내게는 아니다. 넥타이 매는 법이 왜 그리도 복잡하고 어려워야 하는지 하루 종일 작은 넥타이를 묶었다 풀었다 하면서 고생 좀 했다. 진작 배워 둘 걸. 후회하고 또 후회하면서.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넥타이 매는 법도 역시 그랬다. 머리나 눈, 손이나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수도 없이 매고 풀면서, 또 풀었다가 다시 매면서 연습하다 보니까 손 끝에 어렴풋하니 감이 잡혔다. 내가 하루 종일 연습에 연습을 거쳐 넥타이 매는 법을 배웠다고 하니까 재문이 아빠가 빙긋 웃고 만다. 속으로 분명 그럴 것이다. '나 때문이라면 그렇게 배웠겠어?' 재문이에게 달려가 자랑하면서 "너도 좀 배워라"했더니 재문이는 시큰둥하게 한마디한다. "엄마가 맬 줄 아는데, 내가 뭐하러 또 배워?" "그래도 배워라. 나중에는 네가 매야 해. 엄마처럼 넥타이 못 매는 여자 만나면 어떡할래?" 내 말에 재문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다. 아마 속으로 그럴 것이다. '엄마도 참, 별 걱정을 다해.' 어쨌든 이제 나는 넥타이를 맬 줄 안다. 그런데 왜 장롱 손잡이에 꼬맹이 넥타이를 묶어 두었느냐? 그냥. 작고 귀여워 꼭 꼬맹이 재문이를 보는 것 같아서 아주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 나중에 넥타이를 매는 법이 혹 생각나지 않을 때 그걸 보면 반짝 생각이 날 것 같으니까.
|
|
글나눔 → 삶 속의 글
|
|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사랑할 땐 별이 되고
5
`아주 작은 것, 하찮은 것에서도 이기심을 품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그러나 결국 나보다는 남을 좀더 위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때만 진정한 평화가 있음을 체험했지? 좋은 일에도 이기심과 욕심은 금물이야. 이것만 터득해도 살기가 좀더 쉬워질텐데...그렇지?`
- 방으로 가는 층계를 오르다가 문득 멈추어 서서 내가 나 자신을 향해 했던 말.
|
|
사진 → 그림/사진
|
|
|
☞ 그림을 클릭하시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