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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지세(伯仲之勢) / 서로 어금버금한 형세.
《出典》魏 文帝의 典論
같은 부모의 형과 누님을 백부와 백모라 하고, 동생과 누이동생을 숙부와 숙모라고 부 르는 것은, 옛날부터의 중국의 관습에 따른 것이다. 중국에서는 형제의 순서를 다시 세분하여, '伯 仲 叔 季'로 부르고 있다.
《禮記》'壇弓' 上篇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어려서 이름을 짓고, 관례(冠禮)를 하고서 자(字)를 붙이고, 50에 백중(伯仲)으로써 하고, 죽으면 시호(諡號)를 내리는 것은 주(周)나라의 도리이다.』즉, 어린이가 태어나면 3개월만에 이름을 짓고, 20세가 되면 손님들을 초대하여 관(冠)을 씌우고, 자(字)를 짓는다. 50세가 되면 자(字) 위에 伯 仲 등 형제의 순서를 나타내고, 죽으면 諡號를 내린다. 이것이 周나라의 관습이었던 것이다.
<伯仲>이란 형제의 순서를 나타내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형제는 비슷하게 닮았기 때문에, 비교 평가하여도 서로 우열(優劣)을 가릴 수 없을 때, <그들은 伯仲之間이다>라고 한다.그러나 <伯仲之間>이란 말을 처음에 쓴 것은, 魏나라의 文帝 조비(曹丕)였다. 文人들이 서로 가볍게 여기는 것은 옛날부터 그러했다. 부의(傅儀)와 반고 (班固)에 있어서는 백중지간일 뿐이다.
文人相輕 自古而然 傅儀之於班固 伯仲之間耳. 《魏 文帝의 典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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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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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여백
수치심
돌은 보기 흉해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자연적 사물이기 때문이다. 똥차, 똥통도 부끄러움이 없다. 인간이 만든 물건이기 때문이다. 생명체이지만 꽃은 못생겨도 수치심을 모른다.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개나 돼지는 벌거벗고도 창피함을 느끼지 못한다.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것들, 그 많은 동물 가운데서 유독 인간만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존재다. 그렇다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이 인간성의 척도이고, 이러한 사실은 수치심에 무감각한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짐승임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짐승은 벌거벗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대낮에 다른 눈들 앞에서 짝짓기를 하면서도 수치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남들 앞에서 벌거벗은 자신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는 수치심 때문에 남들 앞에서 짝짓기를 못 한다. 동물로서의 인간도 짝짓기는 어쩔 수 없는 행위이지만 인간의 짝짓기의 행위는 항상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실은 수치심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보여준다. 수치심은 동물/짐승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인간의 거부감이며 저항의 표시이다. 그것은 자신이 그냥 단순한 동물/짐승이 아닌 인간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다른 동물의 구별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인간 외의 다른 동물의 행동은 본능적이다. 본능적 동작은 인과 관계의 자연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물질 현상과 구별할 수 없다. 그러나 막 태어났을 때 동물과 다를 바 없지만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인간은 자연 법칙과 혼동할 수 없는 인위적 규범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자율적'존재이다. 어떤 철학자의 말대로 인간은 싫어도 '자유'를 피할 수 없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오직 인간만이 주체적 동물이다. 인간의 자율성/주체성은 오직 인간 세계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정신적 드라마/고통의 원인인 동시에 그의 위신/긍지의 원천이 된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자율/주체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이며, 자율/주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자연 법칙과 다른 인위적 규범을 따라 행동할 수 있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오직 인간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수치심과 개나 돼지 등 동물에게 있어서의 수치심의 부재는 다 같이 위와 같은 자유/주체성으로 정의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에 비추어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성행위자로서 또는 육체적 존재로서만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교수로서, 여자로서, 대통령으로서, 직공으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꼭 했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데 대해서,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를 보이지 못한 데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도덕적 규범을 어기고 거짓말을 한 데 대해서, 축재를 한 데 대해서, 남을 괴롭힌 데 대해서 우리는 또한 수치심을 느낀다. 수치심이 일종의 의식/경험이라면 그것은 어떤 의식/경험이며 그 경험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수치심은 자율/주체성의 상실에 대한 의식, 즉 동물로 전락한 인간 자신에 대한 의식이며, 이러한 의식은 자신의 정체성 즉 자율/주체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근원적 의지를 전제한다.
따라서 수치심은 동물로서의 자신의 거부, 자율/주체로서의 자신의 확인이다. 성행위, 알몸에 수치심을 느끼는 이유는 그러한 행위, 그러한 상태가 인간의 동물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령 아버지로서, 교수로서, 한국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은 자연적 법칙과 구별되는 아버지로서, 교수로서, 한국인으로서 규범에 따라 자율적으로 행동, 처신하지 않고 동물과 다름없이 자연적 법칙에 따라 물질과 같이 작동했다는 의식에 기인한다.
생리학적으로는 동물인 인간에게 어쩔 수 없는 성행위가 최소한 의식적인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 의식은 규범의 한 양식이며, 규범은 인간이 주체적으로 만든 자연의 물리적 법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제도적 법칙으로서 인간의 자율성의 구체적 표현이다. 동물적 성행위를 규범화함으로써 인간은 동물적 행위를 하면서도 자신이 동물성을 초월하는 자율적 존재임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짐승 같은 놈, 개/돼지 같은 놈'이라는 말보다 더 심한 욕이 있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연적 법칙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자율적 법칙인 규범 속에서만 비로소 존재한다. 규범을 무시한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도덕적 규범은 바로 그러한 규범 가운데서도 가장 근본적이다. 비도덕적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수치심이 도덕적 의식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면 수치심을 의식하지 못하는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늘날 '수치심'이란 낱말은 그 용도는 물론 그 의미마저도 잃어가고 있다. 수치심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외형적으로 인간의 자연 지배와 물질적 풍요는 날로 확실해지면서도 내면적으로 우리는 날로 인간성을 상실하고 행복한 개나 돼지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이다. 되풀이해 말하지만 짐승은 수치심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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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지혜가 담긴 109가지 이야기 - 김방이
다이어트
뚱뚱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살찐 몸매가 싫었다. 어느날 의사를 찾아간 그녀는 몸매가 날씬해 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의사는 그녀에게 아름다운 누드 모델의 사진을 주며 말했다.
“냉장고 안에 이 사진을 붙이세요. 무엇이 먹고 싶어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사진을 볼 것 아닙니까? 그때마다 정신이 바짝 들어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것입니다.”
의사의 처방은 정말 효험이 있었다. 그녀는 냉장고를 열 적마다 아름답고 멋진 몸매의 사진을 보고 식욕을 억제하였고, 마침내 아무개 대통령 후보의 아들처럼 한 달만에 몸무게를 10kg이나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일어났다. 거꾸로 그녀 남편의 몸무게가 10kg이나 불어난 것이다. 우연히 냉장고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나체 사진을 본 남편은 그 사진을 보기 위해서 자주 냉장고 문을 열었고 그때마다 음식을 먹었던 것이다. 이익보는 사람이 있으면 손해 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한 사람의 손해는 다른 사람의 이익이다.
생일잔치 기다리다 굶어 죽는다
‘풀이 자라는 동안에 말들은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꿈이나 기대가 이루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그 사이를 이겨내기 힘이 든다는 뜻이다. 솔 심어 정자 만든다는 말도 그러하다. 어린 소나무를 심어 뒷날에 정자를 만들 제목으로 쓴다 함이니 그 결과를 보기가 아득하다는 말이다. 조니 버나드 쇼(1856~1950)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런던에서 활동한 극작가이며 비평가였다. 그는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전에 상당히 어려운 생활을 하였는데, 후에 당시의 고통을 이런 말로 나타내었다.
“원맨쇼 후에 내년의 공연표도 빠른 시간 내에 팔 수 있는 자신이 생겼다. 그러나 생일날 잘 먹으려다 굶어 죽게 생겼다."
철부지급
어느날 굶주림을 참다 참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장자가 마침내 자존심을 버리고 벼슬하는 친구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다. 장자의 초췌한 몰골을 본 친구는 딱 잡아 거절하고 싶었으나 차마 냉정하게 뿌리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빌려주지, 그런데 지금은 없고 한달 후에 세금을 걷으니 그때 가서 빌려 주겠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장자가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어제 내가 여기로 오는 길에 나를 부르는 소리가 있어 돌아보니 수레바퀴로 파인 곳에 고인 물 속에 붕어 한 마리가 있었네. 내가 그 붕어에게 ‘그 곳에서 무엇을 하느냐?’고 묻자 붕어가 말하길, ‘나는 동해 용궁의 왕이다. 그런데 지금 곤경에 처해 있다. 나를 도와 주시오‘하고 애원하질 않겠나. 그래서 나는또 말했네. ‘좋다. 나는 지금 남쪽의 물나라에 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그 곳에 가서 큰 강물을 그대에게 돌려 대주겠다. 그때까지 기다려라’고 말일세. 그러자 붕어가 나에게 또 말하는 것이었네. ‘나는 있어야 할 곳을 잃어 위급한 지경에 있다. 그러나 지금 한 되나 한 말쯤의 물만 있으면 산다. 그대가 갖고 있는 것 조금만 나누어주면 될 터인데 왜 그렇게 삶은 호박에 이도 들어가지 않을 헛소리를 하는가‘라고 말하면서‘그대가 나를 다시 찾으려면 시장 건어물전에 가서 찾으시오’라고 말하더란 말씀이네.“
철부란 수레바퀴로 패인 곳에 고인 물속의 붕어를 뜻한다. 사람이 다급하고 곤궁한 처지에 이른 경우를 두고 이런 말을 쓴다. 생일날 잘 먹으려고 굶다가 장자양반 제삿날 젯밥 공양 받을라!
솔로몬은 <지혜의글>에서 “선을 베풀 능력이 있거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주저 하지 말고, 너에게 가진 것이 있으면, ‘네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면 내일 주겠다’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고통에 쌓인 사람에게 위로하는 말이라도 하여 주자.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마저 깨려 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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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10교시 - 왜 볼펜 방아잘만 하고 있는가?
- 글을 쓰기 전에 제목과, 소재, 주제에 관한 생각을 다듬어라.
1. 누구든지 볼펜 방아질을 한다.
여기저기에서 봄이 왔다고들 야단이다. 그러나 한 아이는 그 봄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 아이는 봄을 절실하게 느껴 보고 싶어서 들로 나가 보았다. 남쪽에서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고, 사람들이 농사를 준비하고...... 정말로 봄인 것 같은데, 그 아이의 가슴속 깊은 곳엔 봄이 와 닿지 않았다. 산으로 올라가 보았다. 앞산과 지평선 저쪽에서 아지랑이가 수런거리고, 보리밭에서 종달새가 표롱표롱 날아다니고, 새까만 염소가 풀을 뜯고, 마을 쪽에서는 꼬끼오 하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그래도 '아 이것이 봄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내 감성이 둔해서 그런가 보다.' 그 아이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쓸쓸하게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아이는 자기 집의 돌담 앞에서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그 아이가 찾아 헤매던 봄의 실체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돌담 사이에서 바야흐로 돋아 나오고 있는 명아주 풀의 새순 하나.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봄은 약동하는 계절이다. 그 약동을 느끼게 하는 실체는 어디에 있을까?' 그 아이는 어렴풋이나마 이러한 생각을 한 채 산과 들을 헤메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 아이는 봄바람이나 아지랑이나 종달새나 수탉이나 염소에게서는 그 생명의 약동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다 매우 뜻밖에도 돌담 사이에서 돋아 나오고 있는 어린 새싹 하나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느꼈다.
이 이야기를 글쓰기에 견주어 보자. 그 아이가 느끼려고 한 '봄'은 좋은 글감(대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글감이라 할지라도 그 큰 것을 통째로 글 속에 담아 내려고 하면 글쓰기가 힘들어 진다. 그것의 부피와 높이와 길이가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것을 다 담아 내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면, 끝내는 그것의 반의 반쪽도 담아 낼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작은 보자기 속에 산이나 바다를 담으려는 바보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처음부터 큰 것을 잡으려고 하다 보면 글쓰기에 실패하기가 쉽다.
옛날에 김황원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시짓기에 통달했다고 은근히 뽐내면서 스스로 오만함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친구인 평양 감가를 찾아 유람을 떠났다. 평양감사는 그를 반가이 맞아들인 위 을밀대로 안내하였다. 그 곳에는 대동강의 아름다운 정경을 읊은 시를 새긴 현판들이 여기 저기에 걸려 있었다. 그 시들을 찬찬히 읽어 보던 김황원은 그 시에 담겨 있는 저급한 내용들을 참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 현판들을 모조리 뜯어 내어 불살라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당황하여 어쩔줄 몰라 하는 평양 감사에게. 자기가 그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덮어 버릴 수 있는 명작을 지어 보이겠다고 큰소리 쳤다. 이윽고 그는 을밀대의 난간에 기대어 서서, 푸른 비단을 펼쳐 놓은듯한 강물을 굽어보며 시를 읊기 시작했다.
긴 성 한쪽으로 강물은 출렁거리며 흐르고, 드넓은 들판 동쪽 머리에는 산들이 점점이 늘어서 있구나.
한데 그 두줄을 읊고 나니 글줄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머리를 이리 짜고 저리 짜 보아도 다음 구절이 이어지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글재주가 겨우 이정도 밖엔 되지 않는가 하고 깊은 절망에 빠져 들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마음속 깊이 한탄한 나머지, 울면서 을밀대를 내려와 버렸다.
자신의 글재주에 대해 그토록 자부심이 강했던 그가 왜 시를 두줄밖에 읊지 못했을까? 그 까닭은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너무 큰 글감(대동강의 기막힌 장관)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에 대한 감동이 너무 큰 나머지 그만 시인이 눌려 버린(압도당한) 경우이다. 둘째는, 첫머리에서 너무 큰 내용(장관)을 읊어 버린 까닭이다. 이렇게 되면, 뒤에 이어 쓸 수 있는 더 큰 말을 찾기가 몹시 어려워 진다. 셋째는, 처음 두 줄에서 눈앞에 나타난 경치를 읊었으나, 다음에는 인간사를 끌어내어 읊어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을 거라는 짐작이다.
글을 제법 쓴다는 선비들도 이러한 걸 보면, 이제 글쓰기 공부를 막 시작하는 여러분들이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고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글의 제목을 받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 쓸 거리가 얼른 잡히지 않기 때문에 볼펜 끝으로 애꿎은 종이 한복판을 꾹꾹 쑤셔댄다. 종이 가장자리에다가 자기도 알 수 없는 지렁이들을 새까맣게 그려댄다. 그러다가 쓸거리가. 언뜻 떠올라서 '아, 이것이다.!' 하고는 몇 글자르 ㄹ써 나가다가, '아니야 이게 아니댜!'하고 절망하면서 썼던 것들을 북북 그어 버린다. 마치 실이 나오지 않아 자기가 들어갈 집을 짓지 못하는 누에처럼 고개를 홰홰 내젓곤 한다. 그리고 또 얼마쯤 뒤에 '그렇지, 바로 이거야!' 하고는 서너 줄쯤 써 나가다가 이번에는 종이를 아예 구겨 던져 버린다. 자기 머리를 쿵쿵 때려 보기도 하고, 쩝쩝 쓴 입맛을 다셔 보기도 하고...... 우리는 이렇듯 글의 제목을 앞에두고 고통스러워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렇게 되면 글을 쓰는 일이 재미있는 게 아니라 고문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버리고 만다.
2. 너무 큰 제목과 글감에 깔려 질식하지 말라.
자, '가을' 이란 제목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물론 이렇게 미련스런 제목을 주는 사람들은 애초에 글 쓸 사람들을 고문하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이거나, 좋은 글을 받아 낼 의사가 없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가을'이라는 제목은 아직 인생을 배워가는 입장에 있는 여러분 들이 쓸 수 있는 글의 제목치고는 엄청나게 큰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쓸 여러분들이 보듬어야 할 대상(제목)이 너무 크면, 그것이 여러분들의 품속으로 들어오지 않을 뿐 아니라 여러분들의 힘으로서는 감당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제목)을 보듬기는커녕 그 밑에 깔려 죽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대게 이런 경우, 여러분들은 그 제목만큼 커다란 글감과 주제를 처음부터 들고 나선다.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나도 여러분들만할 때는 그랬으니까.
가을 그렇다. 가을은 퇴락하는 계절이고 이별의 계절이다....... 중학생 시절, 작문 시간에 나는 글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다. 이 얼마나 거창한 말인가? 한껏 고심한 후에 써 낸 첫 문장이 이렇듯 큰 말이면 다음 말을 이어 쓸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 때 연필방아만 내내 찧어대다가, 결국 글다운 글을 쓰지 못하고 말았다.
3. 작은 이야기부터 시작하라
큰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그마한 샘물에서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샘물에 다른 샘물이 보태지고 또 다른 샘물이 보태지면서, 물줄기는 점차 커지다가 마침내 강물이 되는 것이다. 글쓰기도 그와 같다. 앞에서 우리는 봄을 찾기 위해 온 산과 들을 헤매어 다니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돌담 사이에 돋아난 어린 새싹에게서 그것을 느끼게 되는 한 아이를 보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씨름도 나(글쓴이)보다 힘이 약하고 체구가 작은 사람과 하게 되면 상대가 만만하게 여겨져서 마음대로 꾀를 부려 힘을 쓸 수가 있다. 하지만 나보다 힘이 세거나 체구가 큰 상대(너무 큰 제목이나 글감)를 만나면, 여느때 자기가 잘 쓰곤 하던 꾀나 힘을 제대로 한 번 써 보지도 못한 채 상대(제목이나 글감)에게 지고 만다. 가령'가을'이라는 커다란 글감이 주어졌다면 대개 당황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범위를 좁혀서 '귀뚜라미'나 '낙엽', '기러기' 따위로 글감을 삼는다면 한결 덜 부담스러워 진다. 그러면 '낙엽'에 관한 작은 이야기를 써 보낸 독자의 글을 한편 읽어보자.
올 가을도 어김없이 갈색 옷을 입은 낙엽이란 손님이 우리를 방문한다. 자신에게는 죽음이랄 수 있는 그 순간까지 아름다움을 뽐내며 우리에게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들...... 나는 그들을 보며 한 해도 이제 거의 저물어 가고 있다는 생각과 올해 나는 만족할 만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수업시간에 아무 생각없이 그저 하늘을 쳐다 볼 때, 하늘에 닿을 듯 우뚝 솟아 있는 나무는 나약한 나를 나무라는 듯이 미동도 없다. 그러나 전혀 변하지 않을 듯이 보이는 그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치장하며 나를 마주본다. 이제 그는 벌거벗은 몸으로 내년의 또 다른 영광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흘러가는 나날처럼 한 장 한 장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는 나는 과연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변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내실 있는 꾸준한 변화로 미래를 준비하는 나무와는 달리 나는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아무것도 없는 실속 없는 행동을 너무 많이 행했던 것 같다. 낙엽이 또 한 장 떨어진다. 손을 뻗어 떨어지는 낙엽 한 장을 잡아 책갈피에 곱게 끼워 넣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나뭇잎이 바삭바삭 마르고, 이 나뭇잎이 있던 자리에 새순이 돋아날 때쯤이면 나는 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워 내 자신을 좀더 향기 있게 가꿀 수 있을 것이라고...... 이 나뭇잎 한 장을 항상 떠올리며.
이글의 지은이는 감수성이 아주 예민하여 대상을 자기의 정서 속에서 잘 소화하고 있고, 문장 또한 차근차근 밀도 있게 쓰고 있다. 생각을 잘 정리하여 진술하는 힘도 믿음직스럽다.
4. 작은 이야기(글감)속에 큰 이야기(주제)를 담으라 논술을 쓸 떄 유의할 점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마음속으로 큰 이야기(강=주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머릿속으로 먼저 큰 강을 그려 놓은 뒤, 그것의 연원(작은 샘물 =소재)에서 강으로 더듬어 내려가야 한다. 이번에는 '은행나무는 은행이라는 열매를 성취한 존재이다. 나도 그것처럼 목표를 달성하자'는 큰 생각(주제)을 한 다음, 작은 강줄기를 따라 글을 써 내려간 독자의 글을 한 편 읽어 보도록 하자
요즘들어 우리 학교 운동장 보도 쪽에는 은행잎들이 상당히 많이 떨어져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 학교의 은행나무들은 얼마 되지 않은 은행잎으로 가지를 가리고 있었지만, 지금 운동장에 나가 보면 앙상하게 가지만 내어 놓고 있다. 전에는 가끔씩 창 밖을 보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잠시나마 옛 생각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이제는 창 밖을 보아도 앙상하게 나와있는 가지밖에 볼 수 없어서 무척 안타깝다. 그렇지만 이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봄이 오면 앙상했던 은행 나뭇가지엔 새파란 은행잎이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여름이 오면 열매를 맺고 가을이 오면 잎이 노랗게 물이 들어 겨울이 다가오면 다시 잎이 떨어지는 것을 반복할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이 바랐던 것을 이루고 다시 다른 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는 것이나 은행나무가 그러는 것이나 비슷하다. 나는 이 때까지 무엇을 겨냥하여 열심히 노력하여 그것을 이룬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어떤 것을 목표로 정하여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여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이 글은 문장이 좀 서투르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흠이 있기는 하지만, 자기의 주장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먼저 큰 생각(주제)를 분명하게 머릿속에 담고 이 글을 써 나갔고, 또한 은행나무의 삶을 세심하게 관찰한 뒤 그것을 우리의 삶에 비유하여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앞에서 공부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도록 하자. 글의 제목을 받고 나서 볼펜방아만 짷고 있지 안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1) 무턱대고 큰 이야기부터 하려고 하면 글줄기가 막혀 버려서 실패하게 된다.
(2) 먼저 큰 강(주제)을 머릿속에 그려 놓은 뒤,
(3)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 조그마한 샘물(소재)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한다.
(4) 제목은 절대로 크게 정하지 말고,
(5)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작은 것으로 정해야 한다.
봄을 느끼기 위하여 산과 들을 헤매어 다녔지만 결국 느끼지 못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오다가, 돌담 사이에서 돋아 나오고 있는 새싹 에게서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멀리 떨어져 있는 덩치 큰 것을 이야기하려 애쓰지 말고, 가까운 곳에 있는 자기의 작은 이야기부터 시작하라는 뜻이다.
생각해 봅시다.
1. 우리는 글쓰기 과제를 받고 난 뒤, 얼른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고 연필만 원고지 위에 콩콩 찍어 댈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제목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글의 제목을 어떻게 정해야 글을 무리없이 잘 써 내려갈 수 있는지 설명해 보자.
2. 좋은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은 소재와 주제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소재와 주제를 어떻게 형상화 해야 하는지 각자의 생각을 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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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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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2장
관포지교
1. 포숙아와의 만남
理財를 익히다
관중은 목표를 세웠다. 일백 금(一百金), 일백 금을 모으자. 일백 금이라면 당시 상당한 액수였다. 관중은 무엇이든 돈이 될 수 있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했다. 특히 활쏘기 대회에서 받은 상품을 금전으로 바꾸어서 모았다. 대나무 쟁반을 받으면 그릇 가게로 가져가서 금전으로 바꾸고, 비단 천을 상(賞)으로 받으면 포목점으로 가서 금전으로 바꾸어 꼬박꼬박 모았다. 한번은 포목점에 갔을 때였다. 상으로 받은 필묵을 내놓자 주인은 25전을 관중에게 주었다. 돈을 헤아려 본 관중은 평소보다 2전이 더 많이 온 것을 알고 2전을 주인에게 되돌려 주려 했다.
"셈이 잘못되었습니다."
"아니다. 필묵 값이 올랐다. 그래서 25전을 준 것이다."
주인이 웃으며 관중에게 설명했다.
"물건 값은 항상 바뀌기 마련이다. 만일에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많고 물건의 수요가 적으면 값이 오른다. 반대로 사려는 사람은 적은데 물건이 많게 되면 값이 내리게 된다. 요즘 비단 천의 생산이 크게 줄었다. 시기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값이 올랐다. 또 얼마 있으면 비단 천이 많이 생산된다. 그때가 되면 다시 값이 내리게 될 것이다."
관중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유익한 말씀이십니다. 그러니까 물건이 많을 때 사두었다가 적어질 때 팔면 이윤이 많겠군요."
포목점 주인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참으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인재로다."
이런 일이 여러 번 거듭되자 저잣거리에서 관중은 영특한 소년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꽤 많은 상인들이 관중의 뛰어난 산술 능력을 칭찬했다.
한편 관중을 좋아하고 따르는 같은 또래의 친구들도 많아졌다. 대부분 활쏘기 대회에서 만나 친해진 사이었다. 그들은 대개 사족(士族)이나 부상(富商)들의 자제가 많았기에 상당히 자유스런 생각들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신분이니 재물이니 하는 것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았다. 더구나 관중에게는 활쏘기라는 발군의 재주가 있었다. 또한 관중은 그들에게 조금도 위축되지 않을 만큼의 용돈도 쓸 수 있는 입장이었다. 오히려 그들처럼 어른들을 졸라 타낸 용돈이 아니라 당당히 제 힘으로 번 돈이다. 이런 관중에 대해 몇몇 친구는 오히려 존경스럽게 바라보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굉장한 녀석이다. 우리가 어린애처럼 용돈을 타낼 때 저 녀석은 자기 손으로 용돈을 번다. 놀랍다."
그들은 활쏘기 대회가 있는 날이면 우르르 몰려와서 관중을 응원했다. 그리고 성적이 좋은 날이면 함께 어울려 저잣거리의 호빵집으로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관중은 활쏘기 대회에서 일등을 했고, 호빵집에서 한턱을 쓰고 있을 때였다. 한 소년이 시비를 걸어왔다.
"이봐, 관중이란 친구!"
소년은 거칠게 말하면서 다가왔다. 관중은 그 소년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너, 지나치게 우쭐댄다고 생각하지 않아?"
"......."
관중은 상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활쏘기 잘하는 건 나도 알지만 그 정도로는 잘난 척하지 않는 게 신상에 좋아."
상대 소년은 관중이 아무 말없이 가만히 있자 도발하듯이 으르렁거렸다. 주위의 소년들은 곧 주먹질이 오고 가는 싸움판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관중이 의외의 반응을 나타냈다.
"잘난 척한 건 미안하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누구든 기분 상하게 해 주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어. 난 단지 먼 시골에서 왔기 때문에 이 곳 임치성의 친구를 많이, 그리고 빨리 사귀고 싶었을 뿐이야."
'어, 이 친구 보게.'
상대 소년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곧 손을 내밀면서 화해를 청했다.
"난 포숙아라고 한다. 사실, 너의 활솜씨에는 좀 질투심이 나더라구. 하하하......."
팽팽했던 긴장이 일순간 풀어졌다. 포숙아가 웃음을 터트리자 주변의 모든 소년들도 한바탕 웃어댔다.
"으하하하하......"
'녀석 꽤 재미있는걸.'
'멋지다. 마음에 든다.'
두 소년은 서로 손을 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두 소년은 마치 십년지기나 되는 듯이 좋아했다.
생선 장사로 싹튼 우정
"우리 장사하자."
포숙아가 불쑥 말을 꺼냈다.
"장사?"
관중이 의아해 하자, 포숙아가 말했다.
"돈 버는 장사를 하자구. 넌 일백 금(-百金)을 꼭 모아야 한다고 했잖아."
"물론 꼭 모아야 해."
관중은 정색을 하고 포숙아를 바라보았다. 포숙아는 안다. 관중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돈을 모아서 어머니에게 집을 한채 마련해 드리려 한다는 것을. 그래서 장사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물론 장사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포숙아는 이미 먼 친척 아저씨를 통해서 생선의 유통 경로와 이익분에 대해 소상히 알아 두는 것도 있지 않았다.
"돈을 모으려면 장사하는 방법 외엔 없어."
"......."
관중은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왜? 내키지 않아?"
포숙아가 재차 물어오자 관중은 난처한 기색이 되었다.
"장사하려면 밑천이 있어야 하잖아......."
"그건 염려 마. 밑천이 안 드는 장사가 있으니까!"
포숙아는 생선을 사고 파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당시 정(鄭)나라, 위(衛)나라, 노(魯)나라, 송(宋)나라, 진(晋)나라, 진(秦)나라 등은 바다와 인접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제(齊)나라는 산동(山東)에 위치하여 황해(黃海)와 만나는 유일한 대국(大國)이었다. 제나라의 바닷가에서는 어패(魚貝)류가 많이 잡혔다. 제나라의 어획량은 처음에는 식량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것이 근자에는 그 수량이 늘어나면서 점차 내륙 지방으로 소비가 확대되었다. 포숙아가 들은 바로는, 이렇게 하여 어패류를 잡는 어부들과 이를 유통시키는 장사꾼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들 어부들과 생선 장수들이 모여서 회(會)를 조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게를 얻을 필요도 없어. 저잣거리 한쪽에 조그마한 좌판을 벌이고, 친구들 도움을 받으면 생선을 가져오거나 배달하는 데 어려움도 없을 것이고......."
관중은 포숙아의 기발한 발상에 매력을 느꼈다. 즉, 수많은 소년들의 도움을 받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이익금을 셈하여 일정 부분은 그들을 도와 주는 소년들에게 수고비로 내주면 되었다. 생선 장사는 나날이 번창해 나갔다. 그리고 상당한 이익이 남았다. 모두들 신바람이 나서 열심히 했다. 그런데 관중은 언제나 이익금의 절반을 자기 몫으로 했다.점점 장사를 돕던 소년들 사이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관중은 지나치게 욕심이 많다."
어떤 소년은 포숙아에게 달려갔다. 그들은 관중이 이익금을 나누는 방식을 포숙아에게 고해 바쳤다. 그런데 소년들의 고자질을 들은 포숙아는 의외로 관중을 싸고 돌았다.
"그건 정당한 셈이야. 장사를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포숙아의 말을 듣고 난 소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관중이 많이 가져가기로 정했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관중이 이를 알게 되었다. 관중은 그날 저녁, 슬며시 포숙아를 불러냈다.
"포숙아, 미안하다. 사실......."
관중이 말하려하자 포숙아가 가로막으며 오히려 관중을 위로해 주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자. 이 장사를 시작한 이유가 너의 일백 금을 마련하는 데 있잖아. 또 우리 둘이 동업(同業)했다는 데 대해서 많은 친구들이 기대하는 바도 크고 난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으니까 신경쓰지 말고 목적한 바나 이루자."
말을 마친 포숙아는 오히려 두툼한 전대를 관중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건 그 동안의 이익금을 모은 거야. 새로 가게를 하나 마련해 보자구."
젊은이들의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포숙아의 생각이었다. 얼마 후, 임치성 남문 부근에 '젊은이를 위한 공간'이라는 작은 주점이 하나 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난 고지식하니까 주점 운영에는 부적당해. 네가 적당하다구."
포숙아는 이 주점의 운영마저도 극구 관중에게 부탁했지만, 관중도 이번에는 양보를 하려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모두 네 말을 들었으니까 이번만은 내 말을 들어 줘."
관중은 기어코 주점의 운영을 포숙아에게 떠맡겼다. 사실 포숙아는 일단 마음을 터놓는 상대에게는 끝없이 관대하고 편안하게 행동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대에게는 매우 깐깐하고 대쪽같이 엄한 성품이었다. '마치 판관(判官) 같다'는 평(評)을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관중은 얼핏 보기에 까다로운 듯했지만 속이 깊고, 어지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았다. 상대가 놀리는 듯해도, '좋은 생각이다. 좋은 일이다' 하면서 얼버무리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관중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정확한 통찰력과 독창성을 갖고 있었다.
남문(南門) 거리 주점은 임치성의 명물이 되어 갔다. 그러자 점차 귀족층의 자제들이나 부유한 상인들의 자제들이 출입하기 시작하더니 제희공의 막내아들 소백(小白) 공자도 단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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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림/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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