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3 - 최명희
5. 아름드리 흰 뿌리
구름인 양 쪽찐 머리
몇 해 되면 흙 되련가
아직 젊은 나이 숱이 많아 무성한 검은 머리에 자주 댕기 붉은 입술을 물릴 적에는, 그것이 곧 흙인 줄을 누구라서 알 리 있으리. 아침마다 참빗으로 찰찰이 빗어 내릴 때, 그 기름 돌아 흐르는 맑은 윤기는, 흡사 물오른 꽃 대궁같이 신신하여, 단을 자르면 그 자리에 금방이라도 투명한 진액이 어리어 묻어날 듯하지만. 그런 모양은 한낱 거짓에 불과한 것이었던가. 그날 보던 경대의 거울빛은 여전히 맑은데, 어느 하루 무심한 햇발이 비친 머릿결은, 사위는 가을 풀처럼 기운이 없다. 그러다가 다시 보면 스산한 귀밑 머리 서리보다 희어, 말 그대로 상빈을 이루니.
허망하다.
문득 명부의 습기가 시리게 끼쳐들어, 성근 머리 속이 더욱 수늘한데. 경대 서랍의 백동 장식에는 손때 그친 푸른 녹이 적막하게 슬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만 해도 이승의 호사이리라. 빈 산에 홀로 누워 뼛속에 흙이 차면, 빗던 머리 대신으로 쑥대가 우거질 때, 바람이 빗어 줄까, 달빛이 쓸어 줄까. 베개에 묻어 있는 청암부인의 낙발 몇 오라기를 줍는 홈실댁의 나이 든 손이 허전하게 떨린다. 타 버린 검불의 재와도 같이 힘이없는 머리카락은, 집어들어 백지에 올려 놓기도 전에 스러져 버릴 것만 같다. 그러나 그것은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자단향을 깎아 넣고 오래 끓인 물을 두 개의 놋대야에 각기 담아 온 부인들이, 시신의 왼쪽과 아래쪽으로 조용히 앉는다. 떠 온 물에서는 그윽하여 아득한 향기가 피어 오른다.참으로 먼 곳의 향기이다. 그 향기는, 시방에 모여 앉은 부인들의 머릿결과 저고리와 치마의 갈피로 스며들어, 살아 있는 사람들을 저승의 그림자로 에워싸며 자욱하게 하였다. 한 할아버지의 자손인 동고조 팔촌 이내의 복입는 부인이 아닌 무복친이면서, 문중에서도 각별히 범절이 남다르고, 생전의 청암부인과도 같은 항렬로 도탑게 지냈던 홈실댁은 망인의 습을 하려고 둘러앉은 동종 부인들에게 낮은 소리로 절차를 이른다. “그저 공손히 하는 것이 제일이요, 슬퍼하는 것은 그 다음인즉.”
시신을 대할 때 반드시 정성을 다하라고 하였다. 자단향 물을 적시어 머리를 감기고 깨끗한 무명 목건으로 닦은 다음 가지런히 빗질을 하느데, 힘 없는 낙발 몇 올이 빗에 묻어났다. 그것을 아까처럼 백지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 놓고, 검은 흑단으로 댕기를 감아 흰 머리를 묶는다. 이제 다시는 이처럼 머리를 빗는 일이 없으려니, 살에서 물러난 머리털 흙 속에 흩어지고, 반듯한 가리마 길 어느결에 무너져, 그 위에 더북한 청초만 덧없는 바람결에 나부낄 것인데. 홈실댁은 한숨을 쉰다.
눈을 감은 망인의 얼굴을 씻기고, 약간 오그린 듯도 하고 방심한 듯도 한 둣 손을 씻기고, 욕건에 물을 축여 상하체를 고루 씻긴 뒤에,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거두어 내며. 사람의 몸이 이렇게 작은 것인가. 다시 한숨 지었다. 그네는 이미 수기없는 마른 몸을 하염없이 내려다본다. 본디 청암부인의 체양은 결코 작은 사람이 아니었다. 천문, 인문, 지문이라 일컫는 주름, 삼문이 잘 갖추어진 넓은 이마와 두드러진 양 광대뼈, 그리고 두툼하고 긴코에 풍요로운 턱은, 깊고 높은 오악이 분명하고, 어여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색이라기보다는 제세의 호걸 같은 기상을 느끼게 하였다. 웬만한 남자라도 올려다볼 만큼 키가 크고 어깨가 우뚝한 부인은, 삼동의 골격이 두루 당당하여, 그 기혈은 추상 같은 위엄을 뿜어 내고 있었다. 거기다가 눈매에 맺힌 서릿발이라니. 집안의 남노여비나 머슴이나 호재는 물론이고, 대소가와 문중의 사람들, 그리고 집안에출입하는 손님들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라도 부인에게는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였다. 부인의 서릿기운에 질린 이쪽이 자기도 모르게 얼어붙는 때문이었다. 그리고 음성은, 보통 평온하게 말을 할 때에도 우렁우렁 울리는 편이었는데, 만일 무슨노여운 일이나 잘못된 일이 있어 호령을 하고 꾸짖을 때는 벽력 뇌성을 치는 것 같아 기둥머리가 흔들리고, 듣는 사람 혼이 있는 대로 빠져 버리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부인의 체용은 그 엄숙한 위의가 둘레를 제압하는 큰 산악같고, 기상은 상기횡추, 뻗친 서릿기가 가을 하늘에 비낀 것같았다. 그러나, 덕이 있는 산악은 우뚝 솟은 봉우리를 구름 위에 두면서도 치맛자락 기슭에는옹기종기 마을을 기르듯이, 청암부인 또한 문중의 집집마다 크고 작은 일 있는 것과, 저 윗대에서 갈리어 나간 작은집이 창성하여 다시 큰 동네를 이룬 구선동의 일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웃 반촌 둔덕이며 그 너머 서로 혼인할 만한 가문인 동제간의 삼동네 대소사를 잊지 않고 염려하였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매안의 아랫몰 한쪽에 비스듬히 살고 있는 타성바지 아낙이, 그날, 날이 저물도록 밭에서 콩을 따고 있는데, 마침 도선산의 잔등이 하나 너머에 있는 작은집 동네 구선동에 안서방네를 데리고 다녀오던 부인이 밭에 엎드린 타성을 불렀다.
“내 오다 보니 그 집에 연기가 안 나던데, 오늘이 너희 조부 제삿날인 것을 알고 있느냐?”
그 말에 깜짝 놀란 아낙은 목덜미가 홍시같이 붉어지며 당황하여
“아이고 마님, 오늘이 메칠잉기요?”
소리조차 차마 하지 못하고, 연신 송구스러운 몸짓으로 두 손만 비비고 있었다. 아낙은타성들 중에서도 귀가 빠지는 상민이었다. 청암부인은 쯔쯧, 혀를 찼다.
“사람이, 없으면 없는 대로, 못나면 못난 대로, 찬 물 한 그릇이라도 정성을 다해서 올리고 도리를 챙겨야지. 그래 어찌 제 조상의 기일을 잊어 버린단 말이냐.”
아낙은 점점 더 고개가 수그러져 옹송그린 등허리가 둥그렇게 되었다. 그런 아낙을 뒤로 하고 원뜸으로 올라온 그네는, 안서방을 시켜 조기와 과일 몇 가지를 아낙의 집으로 내려 보냈다. 그 이야기는 곧 마을에 번져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머리 속에 만권 장서를 쌓아 놓은 것처럼 지견이 풍연한 부인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다가 마치, 따로 한 권의 책을 특별히 꾸며 두기나 한 듯, 온 문중의 기제사며 생일, 회갑 등을 안팎으로 다 기억하고 있는 청암부인에게, 사람들은 항상 공경과 어려움을 함께 느꼈다. 그것은 매안의 문중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씨 집안의 사가들과, 동제간의 반가에 있는 애사와 경사를 반드시 기억하고 있다가, 거동을 하거나, 인사 물품을 보내거나, 아니면 편지, 혹은 말로라도 예식을 갖추었다.
거미줄같이 복잡한 그 날짜들을, 단 한 번도 뒤섞이게 한 일이 없는 그네는, 꼭, 눈만 감으면 필요한 부분의 기록이 소상하게 펼쳐지는 사람같이 정확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다 외우시느냐고, 신기하다는 듯 문중의 질녀뻘 되는 누가 찬탄하는 말을 했다가, 오히려
“별 것이 다 신기하구나. 너는, 끼니마다 밥을 먹는 것도 신기하냐? 밤이 오면 잠을 자고, 아침이면 일어나 세수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이런 일을 안 잊어 버리고 챙기는 것이 사람이라면 마땅히 행해야 할 기본 도리일 뿐이지, 무엇이 그렇게 신기하단 말이냐? 천하에 불상 것들이나 허는 소리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디서.”하는 벼락 같은 꾸중만 호되게 들은 일이 있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 대상이 타성바지에게까지 이를 줄이야. 그것은 미처 짐작하지 못한 일이었다. 나라에서 임금이 몸소 이름을 지어 현판을 하사하시고, 그에 따른 책, 노비, 토지를 함께 받은 ‘사액서원’이 있는 마을이어서, 매안에는 타성들이 여러 가호 사고 있었다. 현유의 위패를 모시고 유림들의 학문을 장려했던 서원들이 거의 모두 강제로 철거될 무렵, 고종 8년 삼월 열여드렛날, 이 ‘매안서원’도 무참히 헐리었는데, 그 훼철령 이후에도 서원에 딸린 사람들은 그냥 매안에 눌러 남아 근근이 살았다. 자작 일촌을, 동성의 문중이 벌족하게 이루고 사는 사부향에 뉘처럼 섞인 타성바지란, 연유 곡절 여하를 막론하고 천한 대접을 받았다. 물론 타성바지 안에도 구분은 있었다. ‘상놈’이라고 하대하는 상민과, ‘하게’를 붙여 주던 중인.중로, 그리고 ‘겨우 양반’이라는 소리를 얻어듣던 무세한 반족이 서로, 몇 집 안되는 타성끼리도 삼엄하게 나뉘는 것이다. ‘상놈’도 또 구분이 있어, 한 칸 띠집이나마 제가 살 집을 지니고 누구한테 매이지 않은 몸으로 제 먹고 살 궁리를 제가 하는 사람과, 종이나, 호제로 남의 집에 매어 살고 있는 사람이 서로 다르다. 창달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많은 전답이나 마찬가지로 문서에 적힌 종을 여러 명, 혹은 몇 명을 받은 자손은, 남노여비 할 것 없이 그것을 모두 재산의 한 목록으로정리하였으니, 종이란, 생사 존망이 제 손에 달려 있지 않은 존재였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출가하는 딸에게 재산 상속으로 전답 문서를 나누어 주면서, 말미에 “종 아무개가 비부를 얻어 새끼를 낳으면 그 첫배는 너에게 준다.”는 말을 적기도 했으니, 그‘새끼’는 송아지와 다를 바 하나도 없었다.
머슴은, 일정한 시한을 서로 약조하고 고용살이를 하며 그 일한 대가로 곡식이나 돈을 받는 사람들인데, 새경은 보통 연말에 계산을 한다. 그리고는, 그대로 더 눌러앉아 머슴을 살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든지는 제 생각대로 할 수가 있었다. 머슴을 많이 부리는 집은, 큰 머슴, 작은 머슴, 새끼 머슴, 담살이, 이름도 다양하고, 머슴 쪽에서도 굳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으면서 한집에서 오래 있다가 늙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호제는, 종도 머슴도 아니지만, 양반의 집에 들어가 한쪽에 살면서 안팎으로 종이나 머슴과 똑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다. 같은 성씨 한집안간이라 할지라도 다 각각 앞앞의 살림은 규모가 다르므로, 어떤 집은 대대로 여러 명의 종을 부리지만, 어떤 집은 머슴 하나 두지 못한 채 자기 손으로 논밭을 매야 한다. 그러나, 종은 없으면서도 농사를 많이 짓는 양반은 보통 머슴들을 부리는데, 그것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하고 농사 일은 많고 할 때, 갑자기 어디서 누구를 종으로 데려올 수도 없는 일이니, 형편대로 호제를 두는 것이다. 물론 종이 있어도 호제를 또 두는 집도 있다. 집안에 남는 방이나 아래채, 혹은 대문 양쪽에 붙어 있는 행랑을 내주어, 내외면 내외, 아이들이 있으면 아이들까지 함께 들어 살게 하고, 그 대신 일을 하도록 부리는 호제는, 중로(중인) 이하의 사람들이다. 대개 신분이 미천하고 가진 재주 없는데다가 집도 절도 없이 궁박한 처지인 호제들은, 웬만하면 어디로 가지 않았고, 한 집에서 대를 물리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가운데 청암부인이 온 마을의 어른으로서, 비노리 풀같이 하찮은 타성바지 아낙에게 그 할아비의 제삿날을 일깨워 준 일은, 반상을 가리지 않고, 듣는 사람에게 송연한 충격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부인의 눈과 흉중에 든 세상의 넓이가 얼마만한 것이며, 그 세상의 위로 높은 곳은 어디까지 이르고, 아래로 낮은 곳은 어디까지 손금 보듯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인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데서 오는 경악과, 그네의 눈매에서 누구라도 단 한치라도 벗어날수 없다는 두려움, 그리고 결코 그 눈 밖에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조심스러움이 뒤섞인 심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문중으로 갓 신행을 온 새댁을 경우에는 어떠했겠는가. 온 남원 군내를 우렁우렁 울리고도 남는 청암부인의 기상과, 그 행하는 범절과, 열아홉 소년 청상의 몸으로서 오늘의 가세를 일으킨 엄청난 힘에 대해서 미리부터 다 듣고 온 새각시는, 원뜸의 대종가로 올락기 전부터도 벌써 속이 후들후들 떨린다. 집안에 새 식구가 들어오는 것은 언제라도 즐겁고 새로운 일이어서, 새각시 시댁의 가까운 대소가를 물론이고, 온 마을의 이 집 저 집에서 갖은 음식을 다 장만해 놓고 새각시를 오라 청하는데, 이때는 저녁마다 흥겨운 잔치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어디도 가기 전에 맨 먼저 찾아 뵈옵고, 극진한 예를 올려야 한는 곳이 바로 원뜸의 대종가였다. 그곳에는 이미 문중의 부인들이 일찌감치 먼저 올라가서 온 방안 가득히 모여 앉아 웃고 이야기하며 청암부인과 함께, 새각시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날이면 으레, 집안 부인들이 매안으로 신행 오던 날이 이야기되는데, 그 중에서도 원뜸에 올라와 청암부인께 절하던 정경이 제일 큰 이야깃거리였다. 선연하게 고운 초록 저고리와 다홍 치마를 입고, 대종가의 대문을 들어서던 그 순간이야말로, 이씨 문중으로 시집은 부인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길 만큼 화려하고, 준엄하고, 긴장되면서도, 한편 자랑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로소 이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다.”는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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