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3 - 최명희
3 젖은 옷소매(2/3)
소문도 없이 하루아침에 강모가 매안을 버리고 강태를 따라 국경을 넘어서 만주 삭방 어디론가 가 버린 뒤, 집안이 발칵 뒤집히어 온통 수라장이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청암부인은 정신을 회복하는가싶은 기미로 아슬아슬한 숨을 놓지 않고 혼란을 견디었다.
“내, 어쩌든지...강모를...보고 죽어야지.”
주문처럼, 헛소리처럼, 이 말만을 숨소리로 내며 버티었다. 율촌댁과 효원의 수발이 번갈아 잠시도 소홀하지 않은 중에, 삼시 세때 옹백이에 손바닥으로 문지르는 쌀이 부스러져도 안되고 또골또골 하여도 안되게 정성을 들여 청암부인의 죽을 쑤느라고, 효원의 손바닥에는 공이가 박혔다. 그것은 남을 시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공이가 박힐수록, 효원은 마음이 굳어지고 (할머님은 꼭 일어나시리라.)싶어졌다. 쉽게 돌아가실 어른이면 이리하시랴. 그러다가 동짓달에 들어 청암부인 병세는 눈에 뜨이게 시름없어지고, 잠깐씩이라도 정신이 들던 때와는 달리, 몇 날 며칠씩 그저 혼곤히 눈을 감고 있기 예사였다. 그런데 오늘은 인월댁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대로 맑은 정신을 되찾아, 자리를 걷고 일어날 것만 같은 청암부인의 모습이, 오히려 사위스러운 생각을 갖게 한다. 인월댁은 조심스럽게 마음을 모두고, 한 마디 한 마디를 가슴에 담듯이 새겨듣는다.
“정경이 기막힌 중에도...어쩌든지 심신을 수습해야 허겄길래...함 속에 든 예단을 팔아...돈으로 바꾸었네. 형형색색 곱기도 한 비단들이, 내 한평생에 소용도 없었거니와...입던 옷이라도 팔어서 한 뙈기 논이라도 사야 할 형편 아니던가. 허나, 그것이 한이 될 줄이야...다른 것은 다 몰라도...그 양반이 나한테 준 단 한 가지 정표였던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지마는, 이미 논으로 바뀐 다음에, 깨달으면 무얼허겠나...저 논이 그 비단이려니, 저 논에 그 양반 넋이 어려 있거니,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부질없는 일. 그 허전함을 메우려고, 논을 사고 도 사도, 아무것으로도 그 빈 자리는 메꿀 수가 없었네. 대신할 수가 없었어. 한평생.”
“그런데도 어째 이날까지 그런 말씀은 단 한 번도 비치지 않으시고요.”
“내...언제는, 무슨 말을 하던가...어디 누구한테 말할 데가 있어야지. 내가 명색이 어른 아닌가...누가 내 설움을 들어 주어야지...나 혼자서...그저, 나 혼자서..."
인월댁은 솟구치는 눈물을 누르며 청암부인의 손을 잡는다. 문득 부인이 아직 정정하던 지날날, 몇 년 전, 정초에 세배갔다가 모처럼 오류골댁 모녀와 함께 마주앉아 담소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옛말 그런 데 없거든. 좌청룡 우백호만 보더라도 그렇지. 본시 왼쪽은 양이요, 동쪽 해 뜨는 곳을 가리키는데 빛깔로는 푸른색이라. 산세에 좌청룡이 승하면 친손이 공명을 떨친단 말이지. 친손이라면 남자를 이름이니, 남자의 기상이 늠름하여 남자가 그 집안에 대들보가 된다고 봐야지.”
그때 장지문 바깥으로 싸르륵, 매운 바람 스치는 소리가 났었다.
“그러니 자연 우백호라 하면 오른쪽이요, 음이라, 음은 서쪽으로, 해가 지는 방향을 가리키네. 빛깔은 흰색이란 말일세. 그런데 산세의 오른쪽이 승하면 백호가 포효를 하는 형상인지라, 외손이 승하게 된단 말이야. 외손이라면 여자 쪽을 말하는 셈이 돼서 자연 여자가 잘나고 득세를 한다는 게야.”
그러니 매안의 이씨 문중 선산은 우백호가 승한 셈이란 말인가. 허나 그 승하다 함은 또 무엇이랴. 기대어 의지할 바람벽 한 귀퉁이도 없이 홀로 벌판에 서서, 밭 갈고 씨 뿌리고 거친 손으로 고단하게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말함인가. 아니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조차 아슴한 사람의 서늘한 그림자를 가슴에 드리우고, 한평생 외로이 사는 것을 말함이었던가. 그도 아니라면 백호의 흰빛은, 평생토록 벗지 못할 서러운 소복을 가리키는 것이란 말인가.
“강실이 저것은 이가 쪽 며느리들허고는 달라서, 심성이 곱고 순탄하니 그저 무던허게 살 것이네. 두고 보아 사람이 태깔대로 산다고 안허든가?”
그 말을 들은 오류골댁이 송구스러워 얼굴을 붉히며
“별 말씀을 다 허십니다.”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때 청암부인이 이가 쪽 며느리들이라고 말한 사람 중에는, 부인 자신과 그네의 손부 효원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또 거기서 더 거슬러 위로 올라가면, 보쌈으로 온 김씨부인도 이 집안 며느리라면 며느리이고, 그 위로 홍씨부인, 한씨부인, 박씨부인들이 모두 이이씨 집안 며느리들고, 그들은 하나같이 박복하지 않았던가.
“그도 다 선대에 이야기고, 이제는 큰어머님께서 탄탄하게 터 닦으시고 기둥을 세우셨는데 무에 걱정이십니까...대실 질부만 해도, 여자로서 그만한 기골이 어디 흔한가요?
그때 청암부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인월댁은 그런 청암부인이 태산의 골짜기와도 같이 여겨졌었다.
“기골...이라. 그것이 바로 서럽고 고달픈 멍엘세. 저 혼자서 하늘을 이고, 땅을 받치고, 제 기골로 제 기둥을 삼아야 하니, 허리가 휘일 노릇이 아닌가. 자칫하면 부러질까 두려운 일이고.”
청암부인은 내내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그때 그네의 눈에 어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안개 같은 강모였을까. 아니면 허리를 솟구친 효원이었을까. 아니면 태어날 아기의 얼굴이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리, 그때 청암부인이, 겉으로는 의연하게 미소 지으며 웃음을 머금고 앉아 있었지만, 그 마음속에는 어린 서방님의 손길이 닿은 예물 비단을 팔아 버린 허적한 바람이, 무엇으로도 막아 볼 길없이 서럽게 불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을, 감히 짐작도 못하였다.
“허나...목숨만큼 화려한 것은 없네...천산이 헐어서 하해를 메꾼대도...목숨이 비어 있는 자리는 메꿀 도리가 없어.”
인월댁과 청암부인의 눈이 서로 고요히 마주친다. 기진한 청암부인은 한숨 쉬듯 간신히 말하며, 어디랄 것 없는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목숨이란 것은 처음부터 속절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있다 없다 하는 것부터가 한갓 망상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허고요. 그저 허공이나 바람에 불과한 목숨인데, 그 허울에 속아서 헛된업을 짓다 가는 것이, 인간의 한세상인가도 싶어집니다. 참으로 산다는 것을 덧없는 일이지요.”
청암부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네는 이제 눈을 감고 있었다. 언뜻 보면 잠이 든 것도 같았다. 그 얼굴에는 아무런 애증도, 설움도, 회환도 어려 있지 않았다. 다만 조용할 뿐이었다. 그런 모습에 인월댁은 공연히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손등을 청암부인의 코끝에 가져다 대 본다. 순간 눈썹을 모으던 그네는 이윽고 손을 거두며,
“아짐, 주무시는가요?”하고 다급하게 묻는다. 청암부인은 힘들게 고개를 외로 저었다.
“누구 불러 드릴까요?”
이번에도 부인은 고개를 젓는다. 젓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시늉에 불과하였다. 그런데도 인월댁은 그 모양을 알아본다.
“...없어...아무도...”
입시울만을 가까스로 움직이는 그네는, 얼핏 그저 입을 반쯤 벌리고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네의 낯빛은 백지처럼 희고 투명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기미를 눈치챈 인월댁이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청암부인이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는 것 같았다.
“누구 말씀이신가요?”
인월댁은 청암부인의 입시울 가까이 귀를 모으고 안타깝게 묻는다.
“아짐, 누구를 불러 드릴까요?”
아마도 이것이 부인의 마지막 말이 되리라는 것을 인월댁은 짐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순간을 놓쳐서는 안되다는 것도. 인월댁이 다급하게 그네의 귀 가까이 입을 대고 묻는다. 그러나 청암 부인은 무겁게 두 눈을 감고만 있었다. 인월댁은 재촉하듯 다시 한번 물었다. 그만 이 자리에서 정신을 놓아버리면 다시는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말 것이 분명하여 마음이 급한 탓이었다. 그렇지만 청암부인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다. 안타까움이 방안을 짓누른다. 침묵이 어둡게 무너진다.
“...강모...”
이윽고 청암부인은 그 한 마디를 밀어냈다. 아아. 인월댁은 청암부인 가까이 기울이고 있던 상체를 힘없이 뒤로 주저 앉히고 만다. 그네는 대답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가옴는 이미 만주로 가 버리었다. 그래서 오로지 송구스러운 듯 두 손을 가슴께에 모아 붙인 채, 청암부인의 감고 있는 두 눈을 다만 바라볼 뿐이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무겁게 감은 청암부인의 왼쪽 눈귀에 찐득한 눈물이 배어났다. 그것은 댓진 같은 진액이었다. 차마 흘러내리지도 못한 채 눈 언저리에 엉기어 있기만 하는 그 눈물은, 무슨 응어리 같기도 하였다. 그날 밤, 인월댁은 종가의 지붕 위로 훌렁 떠오르는 푸른 불덩어리를 보았다. 안채 쪽에서 솟아오른 그 불덩어리는 보름달만큼 크고 투명하였다. 그러나 달보다 더 투명하고 시리어 섬뜩하도록 푸른 빛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청암부인의 혼불이었다. 어두운 반공중에 우뚝한 용마루 근처에서 그 혼불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윽고 혀를 차듯 한 번 출렁하고는, 검푸른 대밭을 넘어 너훌너훌 들픈 쪽으로 날아갔다. 서늘하게 눈부신 불덩어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항하여 인월댁은 하늘을 우러르며 두 소늘 모은다. 삭막한 겨울의 밤하늘이 에이게 푸르다. 사람의 육신에서 그렇게 혼불이 나가면 바로 사흘 안에, 아니면 오래가야 석 달 안에 초상이 난다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그러니 불이 나가고도 석 달까지는 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석 달을 더 넘길 수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은 그말이 영락없이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운명하기 전에, 저와 더불어 살던 집이라고 할 육신을 가볍게 내버리고 홀연히 떠오르는 혼불은 크기가 종발만 하며, 살 없는 빛으로 별 색깔이 맑고 포르스름한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선히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도 남자와 여자는 그 모양이 다른데, 여자의 것은 둥글고 남자의 것은 꼬리가 있다. 그것은 장닭의 꼬리처럼 생겼다 한다. 어쩌면 남자의 불이 좀더 크다고 하던가. 비명에 횡사를 한 원통한 사람의 넋은, 미처 몸 속에서 빠져 나가지 못한 채 거리 중천에서 방황하게 된다. 그래서 혼불도 흩어져 버린다. 하지만 제 목숨을 다 채우고 고종명하여,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가는 사람의 혼불은, 그처럼 미리 나가 들판 너머로 강 건너로 어디 더 먼 산 너머로 날아간다. 그렇게 날아서 다음에 태어날 자리를 찾아가고 이쓴ㄴ 것이라고도 하였다. 아니면 저승으로 너훌너훌 날아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인월댁은 마당에 서서 지붕을 항하여 침음하였다. (...아짐...인제...가시는가요...부디 부디 모든 일은 다아 잊어 버리시고...평안히 가십시다...뒤돌아보지 말고 가십시다. 한 많은 한세상...바늘 같은 몸에다가 황소 같은 짐을 지고...일어나다 쓰러지고...일어나다 쓰러지고...이 서러운 세상, 못 잊힐 게 무엇이라고 가던 발걸음을 돌리시겄소. 훨훨 벗어 버리고...입은 옷도, 무거운 육신도 다아 벗어 버리고...부디 좋은 데로 가십시다...아짐, 인제 후제...저승에서 다시 마나거든...눈물 많이 흘리노라도 걸음 마다 발이 젖던 이승 이야기도, 옛이야기마냥 나누십시다...이렇게 먼저 가시니...후제, 제가 저승에 가거든...마중이라도 어디만큼 나와 주실라는가요...그러면 저승이라도 그렇게 낯설고 적막하지는 않을란지요.) 그네는 홀로 혼불을 울러르며, 마음속으로 하직의 소매를 들어올린다. 그네의 들어올린소매자락 너머로는 허공이 아득한데, 인월댁의 젖은 넋도 두웅 따라서 떠오른다. 어디선가, 무녀 당골네가 금방이라도 낭랑하게 길닦음을 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그것은 바람 소리인가도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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