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2 - 최명희
15. 가슴애피(1/7)
"올다래가 피었는가."
하면서 오류골댁이 면화밭으로 나간다. 그네의 삼베 적삼 잔등이가 후줄근히 들러붙는 것이, 보는 사람도 덥게 한다. 하늘은 아직도 쨍쨍하여 도무지 비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강실이는 턱밑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훑어 낸다. 그래도 금시 또 땀이 배어난다. 동여 묶은 가슴의 말기는 아예 젖어 있다. 그런데도 덥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네의 정신이 딴 데 가 있기 때문인가. 소쿠리에 수북히 담겨 잇는 애호박과 가지를 한 덩이씩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납작납작하게 썰던 그네는, 감시 칼손을 놓고 허리를 젖힌다. 젖힌 그네의 허리 쪽으로 뒤안에서 건듯 부는 실바람 한 가닥이 스치듯 지나간다. 채반 위에 널어 놓은 호박이 벌써 땡볕에 익어 허옇게 빛을 뒤집고 있다. 그 옆의 채반에서도 가지 썰어 말리는 것이 오그라든다. 아무래도 습기 없는 뙤약볕이라 저런 고지나물이 손쉽게 마르는 것 같다. 강실이의 입술도 볕을 받아 말라 있다. 오늘, 날 새고는 아직 한번도 입을 떼지 않은 탓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절이 좋았더라면 청풍에 취포할 낙이라도 있겄다마는."
아까 참에 오류골양반 기응은 낫을 들고 집터의 울밑에우북한 잡초를 베어내며 한숨을 섞어 말했다. 그의 얼굴도 이 여름 들어 많이 축나 있었다. 거멓게 죽은 낯빛에다가 초로의 흰 머리털까지 얼핏 비치는 모습은 그의 나이를 몇 살은 더 들어 보이게 하였다.
"저것을 어서 시집보내야 할텐데."
기응의 흰 머리털을 재촉하는 것은 바로 이 근심이었다. 평소에도 별로 말이 없는 오류골댁 내외는 요즘 들어 농사일말고는 오직 강실이의 혼사에 대한 이야기만을 나누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강실이조차 저 지난 해 여름부터는 부쩍 말수가 줄어 부녀 모녀지간에도 기껏 한다는 말이 "진지 잡수시지요." 라든지 "너 안 덥냐?"같은 것이 고작이었다.
"저것이 제깐에도 속으로 걱정이 되어 저러는 것일까요?"
오류골댁은 날이 갈수록 무거워지는 강실이의 입이, 웬만한 일에는 좀처럼 열리지 않는 것을 보고는 기응에게 그렇게 말했다.
"저라고 왜 걱정이 안될 것인가. 농사도 때가 있고 사람 일도 때가 있는 법인데. 그나저나 큰어머님이라도 예전만 같으시면 지금같이 속수무책은 아니겠구마는, 집안에 우환이 있고 날씨도 가물어서, 어디 혼사 걱정을 내놓고 허겠는가."
"이러다가 때 놓치면 어쩔 것이요?"
"나이 아직 이십 안팎이니 뭐 그리 늦어 처진 것은 아니라도."
"이 양반 태평허신 것 좀 봐. 그 나이가 적어서 그러시요?"
"누가 적대? 형편이 이렇고 때가 이러니 난들 어쩌는고. 모두들 여기 저기서 부황으로 죽어 나가는데, 제 목숨 가리기들 바뻐서 어디 남 일에 발벗고 나서 주는 사람이나 있어야지."
"수천 서방님이나 좀 알어봐 주시면 안 좋겄소...?"
그 말에 기응은 대답이 없다. 기표라고 강실이 나이를 모를 리 없겠건만, 이상하게도 이 일에 그는 별반 신경을 써 주는 것 같지 않았다. 기표는 기표대로 무엇엔가 골똘히 몰입되어 있는 성싶었다. 사사로운 집안일이나, 주변 없는 기응을 나무라는 일 외에는 가깝게 속을 털어놓지도 않는 기표였고, 기응 또한 기표가 하는 일을 일일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형님이 그렇게 한가로워야지."
"아무리 바쁘다고 큰집 작은집 새에 달랑 질녀 하나 있는 것을."
기응은 담뱃대에 담배가루를 재면서 하늘을 보았다. 푸른 빛이 부옇게 보이는 것이 답답한 가슴을 더욱 막히게 했다.
"짚신도 다 짝이 있다는데, 아무러면 어디 딸자식 여울 데 없을까봐 수선은..."
"옛말에도 있습디다. 자식 가진 사람은, 부모가 반 중매쟁이 노릇 한다고 말이요."
"그러면 어디 임자가 나서 봐. 부모는 무어 나만 부몬가?"
이번에는 오류골댁이 입을 다물고 만다. 공연히 우욱 눈물이 솟구친다. (가진 것이 변변한가, 학식이 남다른가. 됫박만한 초가집 한 채에 싸리 울타리나 겨우 두르고 사는 처지에, 어디서 맞춤맞은 맞자리 낭재를 구해 오노. 강실이가 어떤 자식이라고. 세상에 내가 저것을 어떻게 키웠다고... 이제는 창씬가 무언가를 다 해 버려서 예전같이 양반 가문 내세우는 세상도 못되는 것을.) 기응은 담뱃대를 마루끝에 딱 따악, 두들겨 털고는 오류골댁을 등지고 헛간 쪽으로 가 버린다. (한 뱃속의 형제로 나서, 누구는 대종가의 종손이 되어 남노여비를 마음대로 부리고, 누구는 기량이 뛰어나 신식 사람이 되고, 그런데 저 양반은 ... 딸자식 하나 있는 것, 제 때 제 나이에 마음 맞는 신랑감 하나를 못 대서...) 오류골댁은 생전에 안 품던 생각을 울컥 삼킨다."분복대로 살지요."
사심없이 안존한 낯빛으로 말해 오던 그네였다. 그 말은 곧 기응의 말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강실이의 혼인이 스물이 꽉 차서 늦어지는 요즘에는 그렇지 않았다. 까닭없이 초조하고 마음 한 자락이 밟혀 있는데다가 누군가가 원망스러워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 '누군가'에는 동복 형제 이기채와 기표, 그리고 남편인 기응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고르지 못한 분복을 나누어 주신 하늘님까지도 들어 있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있었던고.) 오류골댁은, 말없이 콩을 까고 있는 강실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숨 지었다. (지난번에 탑동댁이 말한 자리라도 그냥 괜찮은 걸 그랬는가.) 그렇지만 그 집은, 고생이 눈앞에 손금 보듯 보이는 집이었다. 성씨는 반듯하다 하나 기동을 못하는 편모 슬하에 칠남매인가 하는 형제자매의 맏이였다. 논밭 뙈기도 유명무실, 없다는 편이 더 옳은 곳이었다. 낭자는 그런대도 야무지다 했었는데.
"아니, 키울 적에 고생만으로는 모자라서 그런 자리로 여워 놓고 누구 애를 태울라고."
혼담 말을 들은 기표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간단하게 퇴짜를 놓았다. 기응은 그때도 담배만을 피우고 있었다.
"자식 농사도, 추수까지만이 일이 아닙니다. 잘 여물었으면 제 값을 받고 팔아야지 그렇게 입도선매 모냥으로 넘길 것이며, 무얼 바라고 공을 들입니까? 강실이만 하면, 딸 덕에 원님 사위도 볼 만한데 짱짱하게 골라야지. 어디 두고 봅시다."
"참 서방님도. 답답한 심정에 그렇게라도 생각을 해 본 것이지요."
오류골댁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한 마디 대답했다. 그네의 속에서 아니꼬움과 원망스러움이 치받쳐 오르는 것을 겨우 참으며 한 말이었다. (말만 그렇게 하지 어디 서둘러 주지도 않으면서. 그리고 지금 조선천지에 배불리 먹고 호강하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너나없이 풀뿌리 캐먹고 소나무 껍데기 벳겨 먹는 판국에.) 그러나 그네라고 생각이 없을까. 탑동댁이 말한 정도의 자리에는 강실이를 줄 생각이 없었다.
"구슬이 서 말이면 뭐 하는가. 실에다 꿰어야 보배 아니야? 누가 강실이 용모 범절을 몰라서 이런 말 건네는 거 아니네. 조선에는 낭재가 안 남었다네. 쓸 만한 사람은 다 징용 가고, 학도병 가고, 다 남의 땅에서 죽어 나가는데 어디 가서 신랑감을 잡어 올라는가? 내 딸자식 귀한 것만 생각허다가는 앉은 채로 할망구 만들고 말 테니 두고 보아."
탑동댁은 오류골댁의 시원치 않은 태도가 서운했는지 눈까지 흘겨보였다. 그래서 그런가. 도무지 마땅한 자리가 나서지 않는 것이다. 몇군데 말이 없지는 않았는데 모두가 내키지 않는 곳들뿐이었다. (하나같이 이쪽보다 나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니, 이 노릇을 어찌할꼬. 풍문에라도 좀 괜찮다 싶은 자리에서는 또 우리가 마뜩찮을 것이고. 저쪽에서 하자는 곳은 우리가 아깝고...) 오류골댁은 점점 더 말이 없어지는 강실이가 안쓰럽고 서글펐다. 되든 안되든 처자가 당혼하면 매파가 문간이 닳도록 드나드는 법인데, 그것도 시절과 세상 탓인지 발길이 끄막하여 심사만 울울하였다.
"본디 시집갈 큰애기 있는 집에는 총각 있는 집 사람이 모이기 마련 아니요? 그런 말도 있습디다. 대감마님댁 따님이 당혼하면 부리던 종놈도 넘본다고. 그러니 좀 처진 자리라고 해서 매파 박대허지는 마시오."하면서 내놓은 신랑감이라는 것은 들어보나마나 서운한 자리였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가릴 것은 다 가리느라고.) 하는 빈정거림이 금방이라도 상대의 입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아 몹시도 조심하면서 응대하는 오류골댁은 어쩌면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한번은 숲말댁이 그런 말을 했었다.
"형님, 청암아짐 좀 보시요. 혈혈단신 한 몸으로 빈 집에 와서도 몇천 석을 안 이루십디까? 시집을 갈 때야 이쪽이 좀 밑진다 싶게 가더라도, 가서 이루고 살면 될 일, 너무 까스럽게 고르다가 아예 더 늦어서 그도 저도 다 놓치면, 그때 가서는 어쩔라고요?"
"이 사람아, 아무나 첨암아짐인가? 다 타고난 능력 따라 사는 것이네. 그 백모님이 어디 예사 어른이신가 말일세. 그러고 그 양반 살아오신 세월이 아무나 살 수 있는 세월이 아니네."
"다 당허면 살지요. 아, 그야 물론 처음부텀 갖춘 데라면 오죽이나 좋겠소? 그게 어려우니 할 수 있는 껏 해 보자는 것이지요."
(왜 우리 강실이가 어디가 어때서 접어 두고 숙이고 혼인을 해야 한단 말인가. 흠도 티도 없이 키워낸 자식을 왜 그렇게 보내야 되느냐고. 무슨 죄라도 지었다든가?) 오류골댁은 답답하여 가슴을 치고 싶었다. 그때마다 어수룩하고 사람만 좋은 기응이 원망스러웠다.
그 무렵 거멍굴에는 은밀한 소문이 번지고 있었다. 그것은 소리 죽인 말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한번 들으면 귀에 묻은 말이 지워지지 않는 소문이었다.
"이노무 여펜네야. 니 눈꾸녁으로 봤어?"
"본 거이나 진배 없당게 그러네."
"본 것허고 본 거이나 진배 없는 것허고는 천앵지판인디 어쩔라고 그렇게 겁도 없이 주뎅이를 나불거린당가?"
평순네는, 개떡이 된 묵은 솜을 손끝으로 피워낸다. 옹구네의 말을 뭉개 버리며 딴청을 부리지만 귀는 어느 결에 옹구네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내가 무신 말 허면 꼭 그렇게 심직를 박는디 말이여. 머 누구만 얌전허고, 누구는 죄로 갈라고 작정을 했간디? 내가, 없는 말 잣어내든 안했응게. 하이고오, 이노무 몸지. 목구녕이 다 쌔애허네 기양. 저만치 궁뎅이를 돌리 고 앉어서 좀 허그라아."
풀풀 날리는 솜먼지를 허옇게 뒤집어쓴 옹구네가 한 손으로는 거것을 허트리며 한 손으로는 코를 막는다.
"그렁게, 씨잘데기 없는 소리 해쌓지 말고 저리 가. 무단히 주둥팽이 까딱 잘못 놀리먼 맞어 죽을 텡게."
"그렁게 누가 내놓고 말허간디? 속으다 담어 놓고 있을랑게 나도 못 전디겄길래 자개한테만 말허능고만."
"후여어. 아이구 저 호랭이 물어갈 노무 달구새끼야. 놉으로 댕김서 얻은 보리, 누가 너 줄라고 뻬 빠지게 일헌 중 아냐아."
평순네가 솜을 피우다 말고 옆에 놓인 간짓대를 들어 마당을 친다. 그 바람에 꼬꼬댁 꼬꼬꼬 멍석의 보리를 찍어 먹던 주둥이를 털며 암탉이 종종걸음으로 달아난다.
"날 궂을라먼 바람이 먼저 불고, 비 온 담에는 나뭇가지 풀 잎사구가 젖는 것을, 머 누가 갈쳐 줘서 안당가? 땅이 젖었으먼, 낮잠 자다 나와서 보드라도 아하 비 왔능갑다 허제잉."
"하앗따아, 여시가 따로 없네. 옹구네는 백여시가 아니라 천여시는 되겄네, 천여시. 암만 그리도 말은 함부로 허능 거 아니여. 거그다가, 소문나먼 사람 죽는 일이고만 그려..."
아무래도 큰일은 큰일이었다. 설령 옹구네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미 그렇게 말이 벌어지고 있으니 어차피 헛소문이라도 한 바퀴 돌 모양 아닌가. 공연히 평순네의 가슴이 무겁게 두근거렸다.
"얌전헌 강아지 부뚜막에 올라앉드라고, 옛말 그른 디 하나도 없당게. 하이고매 원 시상으나. 법도 찾고, 도리 찾고, 효자.열녀 다발로 엮어 나는 집안에 무신 망신살이여. 이런 년은 아조 내놓고 사는 노무 인생잉게 추접시럴 것도 없고 머 넘부끄럴 것도 없다마느은."
패앵. 코를 풀어 마당에 던지고 치마귀에 손가락을 문지른 옹구네는, 물 건너 열녀비 쪽으로 길게 눈을 흘긴다. 그러더니 침을 한번 꿀꺽 삼키면서 입맛을 다시고는, 평순네의 귀바퀴 가까이에 말을 불어 넣는다.
"내가 오짐 누러 다무락 밑으로 안 갔능가아. 칙간에는 누가 들었는 것 같고 급허기는 허고. 거그다가 굿도 한참 신이 나서 아깝드란 말이여. 동녘굴덕 울어쌓고, 죽은 총각 혼신은 또 자개 어머이를 부름서 애간장이 녹게 울어쌓고. 아 참, 굿도 굿도 그런 굿이 없제잉. 그리서, 옳지, 저그 다무락 허물어진 디 있드라, 살째기 넘어가서 누고 오자, 그러먼 굿도 안 놓치고 오짐도 누고..."
그러면서 웅구네는 담을 넘었다. 담이라야 어른의 허리 조금 넘는 낮은 토담이었는데 그나마 무너진 자리는 흙더미가 패어나가, 안팎이 한마당이나 다름없었다. 그네는 캄캄한 텃밭 쪽으로 엉덩이를 두르고, 곱게 꾸민 신랑 신부 녹의홍상 사모관대 허수아비가 소리 없이 맞절을 하는 마당 풍경을 놓칠세라, 모가지를 길게 뽑아 물고는 쪼그리고 앉았다. 괭굉 괘괭 굉굉 괘괭 괭 괭굉굉 (하앗따아, 굿판 한번 서럽다. 무신 노무 인생살이 살어서도 눈물바람, 죽어서 귀신이 되야도 눈물바람. 오나 가나 울고 우는 굿이구나. 기양 울어 부러라 울어 부러. 애껴 뒀다 가뭄에 쓸라고 참겄냐? 오짐도 누고 나먼 씨언허고, 눈물도 쏟고 나면 개법지. 울고 자픈 거 못 울먼 울음에도 체헝게. 헤기사 먼, 울라고 굿허제 웃을라고 굿헌디냐? 에이고오, 시언하다. 한참을 참었네 기양.) 옹구네는 몸을 일으키며 치맛자락을 여미었다. 잘 입을래야 입을 것도 없는 동강산이 두루치 자락을 겅어 올리던 그네는 무심코 뒤를 돌아 보았다. 누가 보았으면 어쩌나 싶은 무망간의 몸짓이었다. (아이고매.) 순간 옹구네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명아주 여뀌가 우거진 담 밑 저만큼에 무슨 희끄무레한 형국을 본 것이었다. 사람인 줄 알았으면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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