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망혼제(3/4)
"사람의 마음이란 다스리면 성현 군자도 되고 제세 영웅도 되지만, 자칫 고삐를 놓친다면 사나운 말 한가지라. 내 속에서 우러나온 마음이 결국은 나를 발길질하고 짓밟게 되지. 미처 피하지 못하면 그대로 밟혀 죽는 게야. 허나, 잘 다스리고 길들이고 정성껏 보살피면 천리라도 달리는 준마가 되고, 일세를 풍미하는 명마도 되네. 강수가 그 고삐를 잘못 쥔 것이 애석한 일이야. 사람들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은 허수로이 알기 쉽지만, 사실은 눈에 뵈는 것의 주인은 눈에 안 보이는 데 있거든... 심정이야 어디 손에 잡히는가? 허나, 이 심정이 상하면 밥을 먹어도 체하고, 심정이 슬프면 마른 눈에도 눈물이 고여 흐르는 이치를 생각해 보게. 형체 없는 마음이 능히 목숨조차도 삼키는 것이 놀랍고 두려울 뿐이네."
좌중은 청암부인의 말에 잠시 조용해졌으나, 앉은 부인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의구심의 낯빛은 미처 감추어지지 못하였다. (이상도 허시다. 제일 큰어른으로 가장 노여운 말씀을 하실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마음을 논하시다니.)
"사람들의 마음이란 헤아리기 어렵네. 여기 모여서들 분분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겉으로 보면 묘한 구석이 숨겨져 있거든. 강수는 이미 저승의 객이 되어 버렸는데, 오죽이나 사무쳤으면 태산이라도 들어 옮길 청춘의 나이에 제 목숨 하나도 다 부지 못하고 죽어갔을꼬. 무주고혼 거리 중천에 떠도는 그 어린 것이 가련하기 짝이 없건만, 이승에 남은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이리저리 헤집고 되엎으며 남모르게 재미도 있어 한단 말일세. 내 말이 너무나 야속한가? 이미 세상이 싫어서 떠나 버린 혼백의 일을, 세상에 남은 사람들이 이러니 저러니 공론하면서 뒷자리를 시끄럽게 어지럽히는 것도 망자한테 미안하고, 덕있는 일은 못 되는 것, 그만들 이야기하세."
그러면서 청암부인은 눈을 내리감아 버렸다. 그 바람에 자리는 피하여지고 부인은 혼자 남게 되었다. 목숨. 세상에서 이보다 값진 것이 어디 있으랴. 목숨이 있으므로 만물이 비롯되고, 목숨이 지면서 만물 또한 따라서 지고 만다. 이미 목숨을 거두어 버린 사람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한다 해도 공허한 일이 아니겠는가.(죽은 사람은 허공이나 한가지라.) 며칠이 지나고 나서 동녘골댁으로 내려간 그네는 같은 말을 하였다.
"하늘이 부끄러워... 억장이 무너... 지고 ... 뵐 낯이 없어서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런..."
청암부인이 두 손으로 동녘골댁의 손을 잡아 쥐자 그네는 울음에 체하여 말을 잇지 못하였다. 부인은 아무 말 없이 그네의 등을 어루만지며 쓸어 주었다.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말 안해도 내 알겠네. 허나 사람이 한평생을 살자면 좋은 일 궂은 일이 어찌 뜻대로만 된다든가. 십 리 길만 가자해도, 황소도 만나고, 지렁이도 밟고,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기도 하네. 인생은 그보다 더 멀고 긴 것이니 잊어 버리게나."
"어쩌다가 그놈이, 어쩌다가 ... 남 않는 일을 제가 왜 ... 남 다르게, 유별나게 ... 어허그흐으."
"강수 탓만도 아니야. 이 좁은 노적봉 아래 손바닥만한 터에서, 삼백 년 사백 년씩 타성 들이지 않고 한 집안끼리 자작일촌으로 살아왔으니, 서로 마음에, 한아버지 자손이라 다정하여 경계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아닌가."
(그뿐이리, 같은 나이에 태어나지 않아도, 삼백 년 전에 울던 뻐꾹새 소리 삼백 년 뒤에 그 후손이 또 듣는 것을. 하물며 앞서거나 뒤서거니 난 것들은 같은 새 소리에 잠을 깨고, 같은 꽃을 보고 뛰놀며, 같은 바람 소리에 잠이 드네. 문중의 오라비 따라 언덕에서 쑥도 캐고, 그러다 넘어지면 일으켜도 주고, 네 것 내 것 가리지 않고 나누어 먹다 보면, 어찌 정인들 들지 않겠는가. 거기다가 바깥에서 사람들이 들어오는 일도 없고,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일도 없이, 우물속같이 고여 사는 젊은 것들이 제 속에서 넘치는 심정을 어디에 쏟을 것인가. 칡뿌리든지 소나무 뿌리든지 하찮은 풀뿌리든지 간에 한 그릇 속, 한 자리에 붙박혀 있으면, 제 뿌리까지 엉키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네. 그것을 미리 알고 선인들이, 재앙을 막자고 그렇게도 가혹하게 징벌하고 경계해 온 것이 아니겠나. 다 그만한 까닭이 있어서 말일세.)천상부정 지하부정 원가부정 근가부정 대문부정 중문부정 개견부정 우마부정 금석부정 수화부정 토목부정 오방부정 사해부정 점개부정 칙거부정 조정부정 방청부정 연월일시 사부저엉 천상지하 부정소멸 원근가내 대중소문 부정소멸 개견우마 금석수화 토목인물 부정소멸 오방사해 점개칙거 조정방청 내외부정소멸 연월일시 사부정소멸 정칠월 인신이 팔월 황천 삼구월 천라 사시월지망 오지월 수중 육납월 십왕부정 개실소명 동서남북 상해팔방 이십사방 부정개실소멸 태세새살세파방 부정개실소멸 산수 생살부정 개실소멸 종종부정 속거 타방만리지외에 오옴 급급여율려엉사바하아 괭괭괭괭 굉 괴괭괭괴앵부정경을 외는 당골내의 낭랑한 목소리가 여름밤의 메마른한 고비를 휘어감고 있을 때, 오류골댁은 토방에 내려서며 신발을 챙겨 신는다. 좀 늦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동녘골댁으로 가려는 참이다. 오류골양반 기응은 아까 해거름 판에 기표와 더불어 임실로 나갔는데, 거기서 오늘 밤을 유하고 내일 새벽 임실 일을 본다고 했다. 그리고는 저녁 무렵에나 올 것이라고. (집이 비어서 어쩔꼬. 이 양반이 계신다면야 단손에 혼자 애쓰는 동녘골댁 일인데 어련히 알아서 초저녁부터 가 볼까... 그렇지만 강실이 혼자 뎅그러니 빈 집에 앉혀 놓고, 내가 없으면, 밤새도록 마음이 안 놓이고.) 아까부터 망설이던 오류골댁은 마등에 서서 동녘골댁 쪽을 한번 보고, 안방 쪽을 한번 복, 저물어가는 하늘을 한번 보고, 하면서 쉽게 마음을 결정짓지 못하였다. 아무래도 강실이가 마음에 걸리는 탓이었다. (애꿎은 청춘에 죽어간 강수가 오늘 밤에는 그 혼신이나마 혼인식을 올리는 날이니, 잔치라면 이것도 잔칫날이라 안 가 보는 것도 도리가 아니고, 그렇다고 시집도 안 간 저것을 어디 굿허는 데 데리고 갈 수도 없고, 누구 마참허게 집에 와서 좀 같이 있으라고 했으면 좋겠그마는, 웬만치 가차운 사람들은 모두 동녘골댁에 갔을 것이고...) 그러는 사이에 하늘은 검푸른 빛을 머금더니 이내 검은 빛이 짙어지면서 별이 돋아났다.
"동서, 아직 안 갔는가?"
사립문을 비그시 열며 수천댁이 묻는다. 오류골댁은 얼른 문간으로와 안쪽에서 문짝을 잡아당겨 열어 준다. 그저 비워 두기 허전해서 대문자리 시늉만 한, 소박한 사립문이다.
"지금 가시는가요?"
"응. 자네 안 갔으면 같이 갈라고."
"저도 가야지요. 그런데 저것이 혼자 집 지키게 생겨서 어쩔까아 이러고 있네요."
"강실이?"
"예. 다 큰 것을 두고 집을 비울라니 걸려서요."
"뭐 별 일이야 있을라고? 다 한집안인데."
"그래도 그 집에 가면, 암만해도 밤을 새워야 굿이 끝날 텐데요?"
"그렇기는 허겄네. 그럼 어쩌는 것이 좋겄는가?"
오류골댁은 물어 보는 수천댁에게 오히려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낯빛으로 눈썹을 모은다. 수천댁도 턱을 목 안으로 끌어당기며 잠시 생각을 한다.
"하필 오늘사말고 서방님도 안 계시고잉..."
"글쎄 말씀이요."
수천댁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안에서 등잔불빛이 막 밝혀지는 안방문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큰집에 올라가 있으라고 하지 뭐."
"그래도 되까요?"
오류골댁이 근심스럽게 물었다.
"큰집인데 무어 허물이 있어?"
"아니, 허물이라서가 아니라, 큰어머님 실섭해 계신데 오고 가고 공연히 번거로울까 싶어서요."
"강실이가 어디 걸어가는 소리라도 나는 사람인가? 옆에 있어도 안 돌아보면 있는가 없는가 알지도 못허게 조용한 아이가, 무얼 번거롭게 허겄어? 동녘골댁 일 되어가는 거 봐서 좀 일찍 일어나게 생겼으면 먼저 오든지. 다 끝나도록 있지 말고. 올 때 큰집에 들러서 자네가 데리고 오면 안되겄는가? 별 어려운 일도 아니구만 그래."
수천댁은 머뭇거리고 있는 오류골댁에게 손짓을 하며, 어서 그렇게 하고 가자고 했다.
"그럼 먼저 올라거서요. 내, 강실이한테 말 좀 이르고 같이 나서지요. 데려다 주고 가게."
"그리여. 서둘러서 금방 와."
오류골댁은 어둠 속으로 멀어지는 수천댁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사립문을 지그려 닫고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호지에 번지는 불빛이 그새 좀더 붉어진 것이 시간이 기운 모양이었다. 방안은 더운 열이 후끈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한여름이라 해도 과년한 처자가 있는 방의 덧문은 밤에 활짝 열어 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모기떼의 극성 때문에 그렇기도 했지만, 울도 담도 없는 집의 방문을 함부로 단속하는 것은 길거리에 나앉아 있음이나 같은 때문이었다. 강실이는, 등불 아래 앉아 오류골댁과 기응의 삼베 잠방이, 적삼, 치마 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수그린 그네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등잔불빛에 빛났다. 그것들은 작은 이슬처럼 맺히다가 물방울만큼 커지면서 도르르 굴러내리는 것이 얼른 보면 우는가도 싶었다.
"가문 날이 무덥기는. 강실아, 너 그거 멀었냐?"
"아니요."
"거진 다 했어?"
"예."
"그러면 개켜서 밟어 놓고 나랑 같이 나서자."
강실이는 풀 먹인 빨랫감이 엉성하게 일어서는 것을 다듬고만 있을 뿐, 어디를 함께 가느냐고 묻지 않았다. 아까 밖에서 어머니와 수천 숙모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무슨 일에나 먼저 나서서 말하지 않는 성품 탓이기도 했다. 푸우우. 대답 대신 사기대접의 물을 한 모금 머금은 그네는 옷가지 위에 안개처럼 그 물을 뿜어냈다. 오류골댁도, 숨이 죽은 빨랫감을 차곡차곡 접으며 옆에서 거들었다.
"지푸라기를 엮어서 사모관대 시키고 녹의홍상 입힌다고 그게 참말로 무슨 혼인이 될까마는, 그리도 죽은 혼신 골수에 맺힌 한도 풀어 주고, 산 사람 가슴에 박힌 못도 뽑아 주고 한다면 오죽이나 좋겄냐. 이런 일이 아주 헛짓은 아니거든. 강수 신부 될 규수도 원통허게 죽은 혼신이라드라. 당골네 말로는 살아 생전에도 아주 깨깟허게 살다가 비명에 갔다드구만... 어쩌다가들 그렇게 제 명을 다 못 살고 횡사를 했는지. 그나저나 이제라도 서로 연분이 맞어서 짝을 짓게 되었으니 혼신이라도 잘된 일이기는 잘된 일이지. 이런 일도 다 인력으로는 못하는 일. 무슨 인연이라도 있으니 되는 것이지."
푸우우. 강실이가 다시 물을 뿜어냈다. 그것은 마치 응어리진 한숨을 토해 내는 소리처럼도 들렸다.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나무대세지보살마하살 나무여의륜보살마하살 나무대륜보살마하살 나무관자재보살마하살 나무정취보살마하살 나무수월보살마하살 나무군다리보살마하살 나무십일면보살마하살 나무제대보살마하살 나무본사아미타아부울시어미가 하던 일을 물려받은 세습무 당골네 백단이는 다른 것은 몰라도 목소리 하나는 타고났다. 신들린 무당이 아니라 배운 점이라고, 그 영험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통하제 여기지 않았으나, 낭랑하고 서러운 그네의 독경이며 사설만큼은 과연 구천의 혼백이라도 눈물짓게 할 만했다. 당골네의 천수경이 물 소리처럼 넘쳐난다. 마흔 개의 팔이 있다는 천수관음, 그 팔 하나마다 스물다섯 가지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 손이 천 개나 된다는 천수관음, 자비롭기도 하시다. 천 가지 손으로 이 가련한 중생의 천만 근심을 어루만져 없애주신다는 보살, 그 공덕의 광대함을 말로 다할 수 있으랴.
"관세음보살."
오류골댁은 토방에서 내려서며 속으로 뇌인다. 그렇다고 그네에게 무슨 남다른 불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그네는 무엇을 보나 마음에 정성스러운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일.월.성.신, 어느 하나도 경외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들의 존재는 곧 천지신명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조화로 인하여 내리는 비를 일컬을 때도 "비 온다." 고 하지 못하고 "비 오신다." 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것은 농사꾼의 아낙인 자신을 새삼스럽게 일깨워 주는 말이기도 했다. 때 맞추어 내려 주는 비야말로 땅의 양식이요 거름이며 보약이었다. 그러나 자칫 때가 엇갈린 채 사나움을 부린다면 한 해의 농사는 망치게 된다. 거기다 바람이나 거세게 일어 보라.
"내가 무슨 남 못할 짓을 했을까. 하늘이 알고 혹시 노여우신 것은 아닌가."
오류골댁은 먼저 그런 마음이 덜컥 들곤 하였다. 보리쌀 한 톨도 함부로 하지 않은 그네는 곡식에 대해서도 경외심을 품고 있었다.
"죄 받는다. 수채에 밥티 빠지지 않게 해라."
자연 그네의 밥그릇은 따로 씻을 것도 없을 만큼 말갛게 비워졌다. 그것은 그네를 본받는 강실이도 마찬가지였고 기응 또한 그랬다. 심지어는 강실이가 막 부엌일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나이에, "염라대왕이 수챗구멍에 웅크리고 있다." 고 오류골댁이 이야기를 해 준 일이 있었다. 누구든지 밥티를 버리는 사람을 잡아가려고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는 강실이는 무서워서 그릇 씻은 옹배기의 기명물도 제대로 버리지 못하고 했었다. 오류골댁은, 절사와 기제사에 메(밥)와 갱(국)을 올릴 때도, 무.숙주 나물을 올릴 때도, 마치 거기 어려운 조상이 앉아 계시기나 한 것처럼 깨끗하고 정갈하게 진설하였다. 그러면서 언제나 이른 새벽 눈을 뜨자마자 새암의 첫물을 길어 정화수를 부뚜막 한가운데 조앙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그리고 사립문간에서 탁발의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에게는 종지 쌀이나마 꼭 보시를 하였다. "관세음보살." 그네는 삼라만상의 정령을 진심으로 믿었다. 강실이가 방안의 불을 끄고 토방으로 내려선다. 불이 꺼지자 집안은 별안간에 먹물 같은 어둠에 먹히듯 쏠리었다. 어디선가 생쑥 연기가 매캐하게 건너왔다. 모깃불 연기에 밀려 날아온 반디가 꽁무니에 싸라기만한 불을 밝힌 채 지붕 너머 쪽으로 사라진다. 반딧불이 사라지는 여름 밤하늘은 북청이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쪽빛조차도 느껴지는 하늘의 복판에 은하수가 흐르고 있다.
"굿허기에는 좋은 날이다마는, 이제 그만 비가 좀 오셔야 할텐데잉. 그렇지야?"
오류골댁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마침 유성 하나가 긴 꼬리를 그으며 오류골댁 초가지붕 귀퉁이로 진다. 별이 스러져 숨은 자리에 박꽃이 하얗게 피어나 있어 소담하게 보인다. 그 함초롬한 모양이 어쩌면 청승스럽기조차 하다. 흰 박꽃 때문에 그런지 살구나무 둥치와 무너질 듯한 잎사귀의 무성함이 더욱 검은 것 같다. 가뭄이라 제대로 물도 못 먹었을 나무가 그래도 뿌리 덕으로 저렇게 우거진 것이 신통하였다. "가자." 오류골댁은 강실이를 앞세우고 사립문을 나선다. 고샅에도 생쑥 모깃불 연기가 자욱하다. 이런 가문 날에도 어디 개구리 먹을 물은 있었던지, 온 논바닥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볼멘 것처럼 왁왁거린다.
"큰집에 가서 눈 좀 붙이고 있거라. 내 동녘골댁 일 좀 봐 주고는 먼저 일어나서 중간에 나오께."
강실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여 보인다. 그러나 어둠 속에 선 오류댁골에게는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할머님 혹시 주무시거든 큰방에는 들르지 말고. 수선스러운데."
"예."
"그럼 나 갔다 오마."
오류골댁은 큰대문 앞에서 강실이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왼쪽으로 꺾어 담을 끼고 간다. (딸자식은 애물이라, 키우는 공도 몇 배나 더 들고, 다 큰 다음에 지키는 공은 그보다 더 드니. 내가 전생에 죄 많아서 여자로 나고 그것도 모자라 무엇을 더 갚을라고 또 저렇게 달랑 딸 하나만을 낳고 말았을꼬. 그저 자나께나 물만 먹을래도 가슴에 저것이 걸려서.) 오류골댁은 반공중에 솟아 있는 큰집 대문과 용마루 쪽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걸음을 재촉한다. 동녘골댁에서 들려오는 당골네의 해원경이 귀 가깝다 강수는 지금 열아홉에 세상을 버리고 떠난 뒤 일곱 해가 넘어서, 그 혼신이 사모관대를 입으려고 하는 것이다. 옥 같은 얼굴을 어디 두고, 헌헌장부 기둥 같은 두 다리를 어디에 두고, 한 발짜리 지푸라기로 엮은 허수아비의 몸을 빌어, 이 칠흑 같은 밤, 남 다 자는 삼경에 서러운 걸음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런 일이 있기까지도 결코 쉽지는 않았었다. 문중의 잔일 궂은 일에 치성도 드리고 굿도 하는 당골네가, 몇 날 며칠을 일 삼아 수소문하고, 그도 잘 안되어 달포가 지나고, 그러고도 한 해 겨울을 그냥 넘기더니, 지난 초여름에야 겨우 강수와 맞는 한 규수의 혼신을 찾아냈던 것이다.
"별 넋 떨어진 소리를 다 듣겄네. 어느 나라 법으로 무슨 그런 해괴한 일을 한다는 게야?"
처음에 동녘골양반은, 죽은 강수의 넋을 달래고 혼인을 시키는 굿을 해 주자는 동녘골댁의 말에 불같이 화를 냈었다.
"미워도 자식이고 고와도 자식 아닌가요. 어떻게, 죽은 놈이라고 무심할 수가 있단 말이요... 남이야 무어라고 하든 말든, 천금 같은 자식놈이 비명에 죽어서, 천상으로도 구천으로도 못 가고 이리저리 배회하는 혼신을, 잘 달래서 제 길로 가게 해 주는 것이 부모된 도리 아니겄소? 자다가도 일어나 앉어 생각허면 내 오만 간장이 녹아 내리고, 억장이 무너져서 잠이 안 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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