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 역사 - 조르주 장
제6장 문자해독자 (3/3)
1800년 이후의 악보(예를 들면 엑토르 베를 리오스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및 기타 작곡가들의 작품)는 기록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소리나게 하라는 방법, 즉 연주 방법을 기록해 놓은 것이라 할 수있다. 주어진 지시를 잘 따르면서 음표를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이 정확한 음악을 얻는 길이 되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악보가 곧 음악이라는 입장에 따라 쓰인 1800년 이전의 악보를 연주하려고 할 때에는 정확한 연주 방법을 알 길이 없다. 그렇게 하려면 악보 말고 다른 근거를 찾아야만 했다. 이것은 음악 교수법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먼저 기보를 배운 다음에 음악의 형태를 연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표준 기보가 음악 그 자체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리고 아무도 학생들에게1800년 이전의 악보와 그이 후의 악보를 다르게 읽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따라서 선생이나 학생이나 이런 이원적 기준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악보가 연주 방법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음악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오류가 흔히 방생한다. 이와 같이 악보를 읽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작품의 표기냐 흑은 연주 방법이냐-이 있음을 음악사 시간 첫머리에 기악이나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얘기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기록된 대로만' 연주를 한 거나 노래를 부를 것이고(대부분의음악선생은 이렇게 가르친다) 악보를 잘 분석하여 그 가치를 완전하게 활용하는 방법은 모르게 될 것이다.
이것을 음악의 정서법을 이용하여 설명하는 음악적 정서법이라는 것이 있다. 기보법에 사용되는 몇 가지 특징적인 부호도 이 정서법에서 나온 것이다. 예를 들면 리타르단도(접접 느려지는 연주: 역주),트릴(떠는 소리: 역주), 아포자투라(앞꾸밈음: 역주)등은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는 악보에 기재되지 않는 다 그러니 악보에 '적혀 있는 대로' 연주한다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음악적 장식은 써넣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을 써넣다 보면 음악가의 창조적 상상력 구속받기 때문이다. 오히려 창조적 상상력은 자유로운 장식을 요구한다.
니콜라 아르농쿠르 (음악의 대화) 기술의 영향
어떤 도구로 어떤 소재에다가? 글쓰기의 구성과 역사를 생각할 때 당연히 생기는 질문이라고 할 수있다. 기록된 기호는 그것을 창조해 낸 문명에도 많이 의존했지만 필기 도구와 필기 소재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가죽, 왁스판 그리고 비단 어디에 쓸 것인가? 필기 소재는 파피루스(이집트),천(이집트),구운 진흙판(메소포타미아), 돌(메소포타미아),대리석(그리스),구리(인도), 가죽(사해 근처), 사슴 가죽(멕시코),자작나무 껍질(인도),용설란(중앙 아메리카), 대나무(폴리네시아), 종려나무 잎(인도),나무(스칸디나비아), 비단(중국, 터키),상아(오턴), 왁스판(이집트, 서유럽) 등으로 다양하다. 그러면 필기 도구는? 이렇게 다양한 소재에다 동일한 도구로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갈대 줄기, 붓(파피루스나 동물의 뻣뻣한 털로 만든 것),첨필, 끌, 깃촉 펜등이 이용되었다.
필기 소재와 도구는 글씨의 형태를 결정했다. 파피루스에 갈대로 쓴 글씨를 연구하는 두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전혀 다른 문자체계를 연상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독자적인 문자체계를 만들어 내지 않고 이미 알려진 문자체계를 재생하는 일만 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판이할 수있다. 어는 정도 시간이 경과하면 필기 소재의 성격이 필기 도구의 사용에 영향을 미쳐 원래 문자체계와 재생된 문자체계 사이에서도 서로 유사점을 찾기 어렵게 된다. 필기 소재로는 유리, 뼈, 납, 철, 양피지, 벨룸지, 그리고 종이 같은 것도 추가할 수있을 것이다. 그런 목록을 길게 열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또 그런 소재가 모두 기술 혁신을 가져온 것도 아니다. 그러나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만은 틀림없다. 기호의 형태는 처음에 필기 도구와 필기 소재의 유형에 따라 결정되었지만 그 뒤에 꾸준히 발전해 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령 종이가 널리 사용되었을 때, 또는 펜을 잡는 손의 위치가 달라졌을 때, 비록 문자체계가 완전히 새로워지지는 않았지만 형태가 어느 정도 달라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서로 다른 서체는 금방 식별한다. 어떤 서체를 볼 때 가장 분간하기 어려운 것은 필기 소재가 그서 체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즉, 그 필기 소재가 특정 서체를 만들어 낸 것인지 아니면 나주에 그 서체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인지를 분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석비에 새겨진 글씨에 매흑되어 왔다. 그런데 석비 서체는 늘 돌 위에 글씨를 샛길 때만 사용되던 것일까? 필경 사들이 이 서체를 다른 소재에 널리 사용했는데 우연히 돌에 새긴 것만 오랜 동안 남아 지금까지 전해진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어떤 언어와 문자체계는 흔적도 없이, 아니 아주 희미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는가? 왜 어떤 언어는 견고한 소재 위에 쓰여져 시간에 의한 마멸고 풍우에 의한 손상을 극복하고 오늘날까지 살아 남게 되었는가?" 르네 포노 (의사소통과 언어)
명암의 사용
그리스 비문과1,2,3세기의 로마 비문을 비교해 볼 때 어떤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가? 이 비문들은 그다지 크지 않고-어떤 것은 높이가 몇cm밖에 안 된다-똑같은 굵기의 획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직선으로 구성된 비문이다. 그리스 것과 로마 것 사이의 유일한 차이라면 그 직선에매어있는 정신이다. 그리스 대문자는 크기가 비슷하고 기하학적 형태를 띠고 있다. 그것들은 질서와 정연한 배열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스 대문자는 고대 그리스 사회의 조화로운 면모를 여실히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서로 잘 조화되지 않는 라틴 대문자는 처음에는 통일성을 지향한 것 같으나. 나중에는 거기에서 벗어나 글자꼴에 따라 크기를 다리 하여 조화보다는 리듬을 더중시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이것은 로마인의 기질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같이 글자의 크기가 달라지는 시점은 로마인이 정복 지역에서 자신들의 위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던 때와 일치한다.
보통 눈 높이였던 비문은 점점 더커졌고, 깊이 새겨졌다. 글자에 채색을 한 경우에도 서로 다른 각도에서 행간에 비추어지는 명암의 적절한 효과로 글자의 흠이 분명하게 인식되게 했다. 이러한 기법은 가독성을 높여 주었다. 빗물이 수직 부분이 채색을 서서히 벗겨 내 점점 읽기 어렵게 된 반면 수평 부분은 먼지가 쌓여 더 진게 되면서 음영의 효과가 더욱 커졌다. 글자가 통일성 있는 외관을 갖추려면 글자 사이의 균형을 바로잡아 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려면 수평 부분을 가늘게 하고 수직 부분을 굵게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또 수직에 가까이 가면 커브를 더 굵게 새기고 바깥으로 파도쳐 나가며 가늘게 새기는 방법도 었었다. 이것이 '음영을 생각한 글씨 새기기" 기술이다. 이 과정에서 미학적 배려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바로 이 때문에 N자의 경우-이것은 한가지 실례에 불과하다-두개의 수직은 그것들을 잇고 있는 사선보다 가늘게 새겨져 있는 것이다. 만약 유연한 갈대로 글씨를 쓴다고 해도 손의 위치를 바꾸지 않는 한 두 개의 가는 수직과 하나의 굵은 사선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글자가 진화된 과정을 단 하나의 요인-그것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발견되었든지-에다 돌린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그렇지만 결과를 결정한 기술적 고려 사항을 무시할 수 없다. 더러는 글씨를 쓰는 사람이 일부러 자기 자신에게 기술적 난제를 부과한 경우도 있었다. 르네 포노 (납, 잉크 그리고 빛)
서예와 글자놀이
어원을 살펴보면 서예란 말은 아름다운 글씨를 뜻했다. 실제로 서예는 예술과 표현의 필요, 그림과 기호의 표기 사이에 아슬아슬 하고도 불확실하게 존재하는 어떤 것이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이든 글씨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아름다운 서체의 예술이 존재했고 또 그것을 돌에 새기고 베껴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캘리그램(주제에 어울리는 도형에 시행을 맞춘 시)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아폴리네르였다. 그전에는 그리스-라틴 세계에서 '그림으로 나타낸 시'라는 명칭이 널리 쓰였는데 그렇게 된 데에는 대체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히브리 문자나 아라비아 문자-이 문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캘리그램이라 할 수있다-또는 오늘날까지도 그림 문자를 사용하는 중구 군자와 달리 서구의 문자체계는 서예와 잘 어울리지 않았다. 둘째, 서구 문자는 강한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가끔 그림으로 나타낸 시가 그 구속을 뜷고 나와-극히 제한된 경우이지만- 자연스런 형태를 취하기는 했다. 그 이상을 넘어서면 불법은 아니었지만 별로 자랑할 것 없는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되었다. 이같이 그림으로 나타낸 시가 문학적 호사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걸 만들어 내려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 같은 흘대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서구의 서체 특히 라틴 서체는 고도의 수상화 과정을 거쳐 얻어진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현재의 사태에 만족해 버린 것만 같았다. 이러한 사정은 라틴 문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 문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리스 문자는 더 먼저 개발되었기 때문에 힘들게 얻은 균형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마음이 간절했던 거 같다. 반면 아라비아 사람은 그리스 사람과 전혀 달랐다. 아라비아 문자는 서예로 구성할 수있을뿐만 아니라 글자 자체가 그림과 문자의 중간쯤에 위치했다. 아라비아 세계에서는 이미지를 이용하여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그림이나 다름없는 그 글씨는 곧 그것을 쓴 사람 자신을 나타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림으로 나타낸 시의 잠재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의사 표현의 다른 수단으로만 여겼던 것 같다. 그림으로 나타낸 시의 장정은 텍스트를 읽어보지 않아도 그것이 나타내는 것-말개, 계란, 문장-을 금방 알아볼 수있다는 것이다.
최초로 각운에 맞춰 시를 쓴 로데스의 시미아스라는 시인은 언뜻 보기보다는 더욱 복잡한 구조를 가진 시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인은 로데스 북동쪽 해안에서 야간 떨어진 섬인 시미 출신으로 추정되는데B. C.300년 프톨레마이오스 1세 치세 시의 인물이다. 시미아스는 자신의 시에다 시각적 시미아스 효과를 주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시의 리듬을 자신이 묘사하려는 사물에 일치시키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시행을 늘이고 줄여서 날개, 달걀, 도끼를 묘사하고 싶다면 그 사물의 형태를 이루게끔 써 나갔다. 이렇게 되어 시각적 형태와 시적 형태(여기서 형태라는 pun을 사용한 것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시각과 시의 형태를 대비시키려다 보니 이 말을 쓰게 되었다)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서로 도움을 받지 않으면 이해가 잘 되지 않게끔 꾸며져 있는 것이다.
캘리그램을 제작하는 노력에 힘입어 형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물론 형태와 의미를 일치시키는 데 따르는 혼란들 있을 수 있지만, 캘리그램은 시와 언어의 본질을 찾아내려는 진지한 노력이라고 볼 수있다. 제롬 페뇨 (캘리그램에 대해)
일반적인 태도에 대하여
글씨 쓰는 재주를 타고난 사람이 있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노력한다면 이런 사람은 단시간 내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고난 재주가 없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오로지 연습과 실습을 통해 재주를 보충해 나가야 한다. 재주 있는 사람과 똑같은 수준에 이르려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노력은 반드시 결실을 가져다준다.
굵은 획, 가는 획, 그리고 연자획
붓의 효과를 확실하게 하려면 굵은 획, 가는 획, 그리고 연 자획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굵은 획은 펜이 움직이는 방향과 관계없이 펜의 날카로운 가장자리를 피해서 쓴 획을 말한다. 가는 획은 펜이 낼 수 있는 섬세한 줄을 말한다. 연 자획은 글자와 글자를 이어주는 것이다. 가는 획과 연 자획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있다. 서예의 대가들은 가는 획을 글자의 한 부분으로 치부하고, 연자획은 글자를 시작하고, 끝내고, 이어주는 정도로 기능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연자획을 가볍게 보아서는안된다. 영혼이 인간의 육체에 소중하듯이 연자획도 서예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이같은 연결이 없다면 움직임도 없고 정열도 없고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어 주는 생명력도 없게 된다. 모든 연자획과 일부 가는 획은 엄지손가락을 이용하여 펜의 네모진 가장자리를 잘 사용함으로써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가장자리는 글씨를 쓸 때 가장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펜을 만들 때 가장자리를 가장 넓적하고 길쭉하게 만든다. 나의 원칙을 충실히 따른다면 곡선으로 된 연자획은 사선으로 된 직선보다 훨씬 우아하다. 연자는 원형에서 수직으로, 원형에서 원형으로, 수직에서 수직으로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글씨쓰기나 알파벳 연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가 시도한 입체시로서, 시, 회화, 음악의 세 가지를 타이포그래피적 표현을 통하여 결합시켰다. 아폴리네르는 글줄 위주의 정형시적 형태에서 자유시로의 이행을 시도하여, 자신의 시에서 구두점을 사용하지 않고 콜라주와 같은 입체파 미술의 영향을 받았으며 글자의 회화화를 시도하여 시에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시집 《calligramme》(1918)은 시의 형상 영역 개척에 큰 구실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캘리그램 [calligram]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글을 쓸 때의 손놀림
연습을 하면 글쓰기에 속도가 붙는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서둘러 쓰려고 하면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천천히 쓰는 것도 좋지 않다. 너무 빨리 또는 너무 느리게 쓰면 좋은 글씨를 얻기 어렵다. 너무 빨리 쓰면 글씨가 고르지 못해 일관성을 잃게 되고, 너무 천천히 쓰면 동작이 무겁게 되고 머뭇거리게 되어 때에 따라서는 떨리는 글씨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속도에 관한 한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말고 양극단의 중간에 서려고 노력해야 한다. 서두르지 말고 기초를 충실히 익히고 나면 서서히 속도가 붙게 되며, 또 글쓰기에 절대로 필요한 손의 자유로움도 얻게 된다.
형태에 대하여
아름다운 글씨꼴을 얻으려면 기본규칙을 충실하게 지키고 지속적으로연습해야 한다. 글자를 크게 쓰고 펜의 각도를 정확하게 알아야만 글씨가 좋아진다. 이것을 완전히 몸에 익혀 글쓰기 교본이나 다른 참고서를 보지 않고서도 본능적으로 다양한 서체를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글씨를 쓰는 사람이 형태를 제대로 익혔는가는 속필을 시켜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천천히 쓸 때는 알 수 없었던 명백한 오류가 속필을 할 때에는 금방 드러나기 때문이다.
운필에 대하여
두 가지 형태의 운필이 있는데 하나는 타고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단한 연습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다. 물론 천부적인 자연스런 운필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펜을 눌러 쓴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사이에 자연스럽게 균형이 잡히게 해준다. 이러한 재주를 타고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글은 잘 쓸 수 있다. 불행하게도 자연은 그런 사람에게 주지 않았다. 후천적으로 획득한 운필요령은 천부적 재주만큼 날렵하지는 못하다. 그렇지만 부지런히 연습을 계속하고, 손을 가볍게 놀리고, 펜촉을 날카롭게 깎고, 펜을 다양한 방식으로 힘차게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돌 위에다 새겨 넣은 글씨처럼 견고하고 무거운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므로 부드럽고 우아한 운필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
글씨의 정돈에 대하여
글씨를 쓰는 원칙을 알되 질서정연한 마음을 갖고 있지 못하면 서예의 일부분만 완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여러 번 이야기 한 것처럼 상상력과 품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상상력은 글씨를 아름답고 힘차고 뛰어난 효과를 갖게 해준다. 품위는 글씨를 아름답고 힘차고 뛰어난 효과를 갖게 해준다. 품위는 글씨를 검토하고 조정하고 눈에 거슬리는 것을 간파하게 해준다. 질서정연한 마음의 모든 측면이 이 간단한 설명에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능력을 갖춘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정돈된 작품을 남길 수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의 작품은 일관성이 있고, 좋은 구조를 갖출 수 있는 한편, 자간과 행간의 배열이 일정하고 글자의 선택이 알맞아서 지나친 데라고는 전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면 반드시 혼란과 부조화가 드러나게 된다. 파예송 (글쓰기의 기술)
내용 텍스트의 의미와 서예는 전혀 별개라고 할 수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기도 한다. 서예는 텍스트를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세계 일반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검은 글자와 그 주위의 하얀 종이와의 대비는 충분히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완벽의 경지를 추구한 전통 서예는 정서와 사고로 가득 찬 강력한 구성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그리하여 공간에 쓰인 글자의 진정한 뜻을 전달 할 수 있었다. 서예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은 우선 글씨의 디자인을 먼저 볼 것이고 그 다음에 글자의 뜻을 살필 것이다. 어떤 때는 글자의 아름다운 디자인에 가려 그 의미가 잘 파악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서예의 수준은 글쓰는 사람의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 풍부하고 다양한가에 따라 결정된다. 전체적인 구성, 흑백의 배열, 리듬 등을 살펴본 뒤에 텍스트를 해독하고, 마지막으로 서예의 형태밑에 감추어진 의미를 읽어야 한다.
준비
속도와 유용성의 시대인 20세기에도 서예는 여전히 인내의 예술이다. 서예에는 지름길이란 없다. 서예를 공부하려면 몇 년에 걸쳐 도제시절을 보내야하고 서예와 관련된 모든 문화적 측면을 습득해야 한다. 대가들의 글씨를 그대로 베껴 쓰면서 끊임없는 연습을 해야한다. 대가들의 탁월한 솜씨를 몸소 접함으로써 심미안을 개발해야 한다. 과일나무는 대지로부터 양분을 천천히 빨아들여 과일을 익게 하고 과일마다 독특한맛, 색깔, 풍취를 준다. 서예가도 이처럼 자신의 예술을 천천히 익혀 나가야 한다. 연습은 그의 내부에 축적되어 있는 지식을 천천히 일깨워 주고 수만 가지의 뉘앙스를 지닌 표현을 가능하게 해준다.서예가는 획득된 지식과 정신적 수양을 바탕으로 붓 끝에 온 정신을 집중시킨다. 그 끝에서 점 , 획, 단어가 생긴다. 그가 사용하는 잉크는 정맥에서 흘러 나오는 피와 같다. 서예가의 본질이 잉크 속에 완전히 녹아들고 그래서 그 본질이 붓끝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다.
호흡
서예가의 호흡조절 능력은 붓놀림을 보면 알 수 있다. 보통사람은 본능적으로 숨을 쉰다. 서예가는 도제로 훈련받는 시절에 호흡조절 방법을 배운다. 그래서 글자와 글자 사이의 중단 시간에 숨을 들이쉰다. 서예가가 글씨를 쓸 때 숨을 들이쉬느냐 내쉬느냐에 따라 선을 긋는 움직임이 달라진다. 운필이 길어질 때 서예가는 방해 받지 않기위해 숨을 꾹 참는다. 글씨를 쓰기 전에 숨을 쉴 수 있는 곳, 먹물을 다시 채울 수 있는 곳을 미리 보아 두어야 한다. 숨을 참을 수 있다거나 아직 먹물이 남아 있다하더라도 작품의 예정된 지점에 이르면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이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호흡을 가다듬고 먹물을 보충해야 한다. 전통 필기구를 사용하는 서예가는 만년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잉크가 무제한 흐르기 때문에 호흡조절을 불필요하게 한다. 그리고 작업하는 도중에 시간의 무게를 느끼는 즐거움을 서예가에게서 빼앗아 간다.
집중
서예가는 정신을 완전히 집중하는 순간이 오면 황홀경에 빠져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게 된다.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정한 길을 찾게 된다. 온몸이 서예에 몰입하게 되고 그의 정신과 육체는 완전 일치를 이루게 된다. 완전한 집중상태에 도달하면 시각과 청각의 공백을 경험하게 된다. 서예가는 스스로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야 하면 그의 시간을 일상생활의 구속에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의 주변에 있는 것이 모두 사라진 것 같은 진공을 창조해야 한다. 그것은 공 모양의 진공으로 그는 그 중심이 된다. 그는 정신집중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진공의 정중앙에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이렇게 하여 자신이 주인이 되는 풍성한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그의 몸은 무게를 잃게 되고 겨드랑이에서는 날개가 생겨날 것이다. 그의 표현양식은 점점더 심오해지면서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게 될 것이다. 그의 내부 에너지는 최고점에 달해 글씨로 분출되어 나올 것이다. 집중은 더욱 분명하고 더욱 명석한 비전을 보여 준다.
모든 틀을 넘어서
서법은 전통의 수호자요 서로 다른 세대의 서예가들을 이어주는 고리이다. 서법은 나라와 서예의 대가마다 다를 수 있다. 서법은 서예가의 내적 흥분을 조절해 주고 그의 감정이 용출하는 것을 막아 준다. 또 이 때문에 서예가들 사이에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법이 마련해 주는 특정한 기준이 하나의 이상적인 출발점은 될 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서예가는 이런 모든 원칙의 고정된 틀을 벗어 넘어서야 한다. 서예가로 대성하려면 처음에는 원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되겠지만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진정한 서예는 규정할 수 없는 것, 만질 수 없는 것, 모든 원칙을 뛰어넘는 강력한 어떤 것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일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간배치
서예의 구성에서 빈 공간이라는 개념은 없다. 오로지 흑과 백이 있을 뿐이고 흑이든 백이든 모든 공간은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건축과 서예를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으리라. 건축의 디자인은 살아 있는 공간을 규정한다. 벽 사이의 공간은 벽 그 자체만큼이나 실제적이고 의미가 있다. 서예에서 공간의 가치는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글자, 혹은 글자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과의 상호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표현
환희, 행복, 평화, 근심, 사회적 폭력등은 서예에 흡수되어 표현된다. 정서를 흡수하여 다시 활성화시키는 능력 때문에 서예는 보편적 언어가 되었다. 비록 아라비아 문자로 쓰여 많은 사람이 읽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산 마수디 (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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