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모자(母子)가 사는 법」(소설가 한창훈) 2009년 5월 26일_스물한번째 |
그렇다면 어머니와 아들은 어떤가. 오래 전 나는 시골 친구 집엘 무작정 찾아들어간 적이 있다. 당시 친구는 군 제대를 하고 복학을 기다리고 있었다. 응석받이 막내아들이 군대엘 간다고 땅바닥치며 어머니 울던 시절도 다 지나고, 아이고 삼 년 동안 탈 없이 지내다가 돌아와 주어서 고맙다, 껴안던 장면도 시들어진 다음이었다. 때는 가을 추수철. 친구는 끝없는 들판 일이 지겨워, 내가 왜 제대를 했나, 한탄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당장 갈 곳이 없었고 그 집에서는 바쁜 시절에 장정 하나 찾아온 게 손해는 아니었다. 한 보름 지나 그곳을 떠날 때가 되었다. 문제는 내 주머니에 한 푼도 없다는 데 있었다. 친구는 엄마를 졸랐다. 내 차비 명목으로 돈을 내놓으라는 거였다. 가난한 시골살림 증거는 어머니의 주머니가 으뜸이다. 어머니는 꼬깃꼬깃 만 원 한 장을 내놓았다. 친구는 더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그 돈이면 서울도 충분히 가겠다. 뭐가 더 필요하다냐?” 맞는 말이었다. 나는 친구를 한쪽으로 잡아끌었다. 그러나 밸이 뒤틀려 버린 그는 만 원짜리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이것을 돈이라고 줘? 얘가 먹고 놀았소? 그동안 일한 것을 돈으로 쳐도 몇 만 원은 되겠구만.” (내 핑계로 우려내서 지가 좀 쓰려고 했다는 고백이 나중에 있었지만 어쨌든) 어머니도 지지 않았다. “에미한테 하는 짓 보소? 그렇다면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먹이고 재운 것은?” 둘은 감정이 상해 갔다. 내 낯이 있지 어떻게 달랑 만 원만 주느냐? 돈이 없는 것을 어떡한단 말이냐, 거짓말 마라 고춧가루값 받은 거 봤다, 어린애들처럼 떼만 쓰면 대수냐, 나도 제대해서 이때껏 일했는데 용돈 한푼 제대로 안 주었지 않느냐, 개학하면 돈을 다발로 들고 갈 놈이 집에서 뭔 돈을 쓴다고 난리냐… 뭐 그렇게 싸움은 격해져 갔다. 밀려난 나만 아주 이상하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친구는 결국 최후의 수단까지 꺼내고 말았다. “제기랄, 이렇게 하려면 뭐하러 놨어. 낳지 말지 뭐한다고 나를 놨냐고?” 내가 달려들어 입을 틀어막았으나 늦고 말았다. 나를 왜 낳았느냐. 부모 입장에서 듣기에 가장 괴로운 말 아닌가. 그러나 어머니는 같잖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바로 반격을 했다. “내가 놨다냐?” “그럼, 엄마가 안 낳고 누가 났어?” “나는 다른 놈 낳으려고 했는데 네가 아득바득 용을 쓰고 기어 나왔지.” 친구는 역전타 한 방에 나가 떨어졌다. 지금도 손자 보러 올라오면 그 정도 투덕거리면서 지낸단다.
|
|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수 | 날짜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4,860 | 2023.02.04 |
3160 | Love is... | 風磬 | 19,016 | 2006.02.05 |
3159 | 동시상영관에서의 한때 - 황병승 | 윤영환 | 15,940 | 2006.09.02 |
3158 | 136명에서 142명쯤 - 김중혁 | 윤영환 | 19,143 | 2006.09.02 |
3157 | 고통은 과감히 맞서서 해결하라 - 헤르만 헷세 | 風磬 | 11,932 | 2006.11.02 |
3156 | 어느 한 가로수의 독백 - 우종영 | 風磬 | 10,051 | 2006.11.21 |
3155 | 외로운 노인 - A. 슈티코프 | 風磬 | 10,901 | 2006.11.21 |
3154 | 별똥 떨어져 그리운 그곳으로 - 유안진 | 風磬 | 8,970 | 2006.12.01 |
3153 | 국화(Chrysanthemum) | 호단 | 9,804 | 2006.12.19 |
3152 | 세상을 보게 해주는 창문 | 호단 | 7,785 | 2007.01.09 |
3151 | 석류(Pomegranate) | 호단 | 6,583 | 2007.01.09 |
3150 | 세상에서 가장 슬픈건.. | 風磬 | 10,734 | 2007.01.19 |
3149 | 연암 박지원의 황금에 대한 생각 | 바람의종 | 8,976 | 2007.02.01 |
3148 | 방 안에 서있는 물고기 한 마리- 마그리트 ‘낯설게 하기’ | 바람의종 | 16,130 | 2007.02.08 |
3147 |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 루쉰, 사실은 의사 지망생이었다? | 바람의종 | 11,908 | 2007.02.28 |
3146 | 불을 켜면 사라지는 꿈과 이상, 김수영 「구슬픈 肉體」 | 바람의종 | 11,884 | 2007.03.09 |
3145 | 나그네 | 바람의종 | 8,822 | 2007.03.09 |
3144 | 어머니의 사재기 | 바람의종 | 7,235 | 2007.04.13 |
3143 | 맑고 좋은 생각으로 여는 하루 | 바람의종 | 7,228 | 2007.06.05 |
3142 | 스스로 자기를 아프게 하지 말라 | 바람의종 | 7,155 | 2007.06.07 |
3141 | 행복과 불행은 쌍둥이 형제라고? | 바람의종 | 23,141 | 2007.08.09 |
3140 | ‘옵아트’ 앞에서 인간은 천진난만한 아이가 된다! | 바람의종 | 47,455 | 2007.08.15 |
3139 |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 맹자의 왕도정치를 통해! | 바람의종 | 13,844 | 2007.08.30 |
3138 | 안중근은 의사(義士)인가, 테러리스트인가? | 바람의종 | 15,967 | 2007.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