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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4/h2010042222215484330.htm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지율(왼쪽에서 세번째)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4대강 달성보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인간의 탐욕·조급함… 강이 울고 있어요"
베네딕도회 수도자들 '평화와 치유를 비는 생명의 강 순례'
"4대강 사업 모른척 하는 건 그리스도인 의무 저버리는 것"
해는 아직 낮게 떠 있는데 땅은 빠르게 말랐다. 깎이고 파헤쳐져 속을 드러낸 낙동강 둔치는 아침 공기의 습윤함을 머금지 못했다. 키버들과 갈대가 자라던 자리에 바퀴 자국이 어지러웠고, 그 자국 끝에서 덤프트럭들이 분주히 황토 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순례에 나선 67명 수도자의 발 아래에서도 텁텁한 흙먼지가 일었다. 순백의 수사복이 속수무책 더럽혀졌다.
"강이 신음하는 소리에 수도원 안에 앉아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의 이기심과 탐욕 때문에 상처 입고 아파하는 강의 소리를 들으러 나왔습니다."
20일 오전 '낙동강 살리기' 사업이 진행 중인 대구 달성군 논공읍 달성보 건설 현장에 한 무리의 가톨릭 수도자들이 나타났다. 19일 부산 을숙도를 출발한 '평화와 치유를 비는 생명의 강 순례단'이다. 베네딕도회 소속 수도자인 이들은 21일까지 낙동강의 4대강 사업 현장, 자연 습지 등을 거슬러 오르며 침묵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메시지를 세상에 전했다. 주교나 신부가 아닌 가톨릭 수도자들이 세상에 나서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달성보 건설 현장은 고층빌딩을 세우는 도심의 풍경과 흡사했다. 강의 한복판에 콘크리트 장벽이 쳐지고 그 가운데 수십 미터 높이의 타워 크레인이 세워졌다. 공사장 곳곳엔 '우리는 물로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 '지금 낙동강은 더 크고 행복한 변화를 준비합니다' 같은 선전 문구가 집채만한 크기로 매달려 있었다. 제 길이 막힌 강은 허리를 꺾은 채 기신기신 흐르고 있었는데, 모래톱을 적시던 푸른 물은 누런 탁류로 변해 있었다.
"아…. 가슴이 아파 눈을 뜰 수 없네요." 전날 밤 숙소인 경남 창녕의 한 폐교에서 고라니가 뛰어놀던 이곳의 예전 모습을 비디오로 본 수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묵주를 든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수도자들의 탄식 소리는 그러나 건설 기계가 내는 굉음에 묻혀 입 모양으로만 전달됐다.
"우리들은 환경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수도원 곁에 골프장, 조선소가 하나 둘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눈을 뜨기 시작했죠. 살아있는 모든 것 안에 하나님의 숨결이 담겨 있는데, 우리는 너무 급하게 그것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더 이상 외면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에요."
순례단의 안내는 2003년 천성산 지키기 운동에 앞장섰던 불교계의 대표적 환경운동가 지율 스님이 맡았다. 지난해 3월부터 낙동강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는 그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공사 현장도 기도터가 되는 것"이라며 기꺼이 길잡이 노릇을 했다. 달성보 현장을 떠나 칠곡보 현장을 향하는 수도자들의 머리 위로 'Be the Global Top Leader'라고 쓴 건설회사의 현수막이 펄럭였다. 매연과 먼지로 싸인 인간의 어리석은 탐욕 속에서, 수도자들의 침묵이 강을 따라 흘러갔다.
"4대강 사업 모른척 하는 건 그리스도인 의무 저버리는 것"
해는 아직 낮게 떠 있는데 땅은 빠르게 말랐다. 깎이고 파헤쳐져 속을 드러낸 낙동강 둔치는 아침 공기의 습윤함을 머금지 못했다. 키버들과 갈대가 자라던 자리에 바퀴 자국이 어지러웠고, 그 자국 끝에서 덤프트럭들이 분주히 황토 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순례에 나선 67명 수도자의 발 아래에서도 텁텁한 흙먼지가 일었다. 순백의 수사복이 속수무책 더럽혀졌다.
"강이 신음하는 소리에 수도원 안에 앉아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의 이기심과 탐욕 때문에 상처 입고 아파하는 강의 소리를 들으러 나왔습니다."
20일 오전 '낙동강 살리기' 사업이 진행 중인 대구 달성군 논공읍 달성보 건설 현장에 한 무리의 가톨릭 수도자들이 나타났다. 19일 부산 을숙도를 출발한 '평화와 치유를 비는 생명의 강 순례단'이다. 베네딕도회 소속 수도자인 이들은 21일까지 낙동강의 4대강 사업 현장, 자연 습지 등을 거슬러 오르며 침묵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메시지를 세상에 전했다. 주교나 신부가 아닌 가톨릭 수도자들이 세상에 나서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달성보 건설 현장은 고층빌딩을 세우는 도심의 풍경과 흡사했다. 강의 한복판에 콘크리트 장벽이 쳐지고 그 가운데 수십 미터 높이의 타워 크레인이 세워졌다. 공사장 곳곳엔 '우리는 물로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 '지금 낙동강은 더 크고 행복한 변화를 준비합니다' 같은 선전 문구가 집채만한 크기로 매달려 있었다. 제 길이 막힌 강은 허리를 꺾은 채 기신기신 흐르고 있었는데, 모래톱을 적시던 푸른 물은 누런 탁류로 변해 있었다.
"아…. 가슴이 아파 눈을 뜰 수 없네요." 전날 밤 숙소인 경남 창녕의 한 폐교에서 고라니가 뛰어놀던 이곳의 예전 모습을 비디오로 본 수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묵주를 든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수도자들의 탄식 소리는 그러나 건설 기계가 내는 굉음에 묻혀 입 모양으로만 전달됐다.
"우리들은 환경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수도원 곁에 골프장, 조선소가 하나 둘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눈을 뜨기 시작했죠. 살아있는 모든 것 안에 하나님의 숨결이 담겨 있는데, 우리는 너무 급하게 그것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더 이상 외면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에요."
순례단의 안내는 2003년 천성산 지키기 운동에 앞장섰던 불교계의 대표적 환경운동가 지율 스님이 맡았다. 지난해 3월부터 낙동강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는 그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공사 현장도 기도터가 되는 것"이라며 기꺼이 길잡이 노릇을 했다. 달성보 현장을 떠나 칠곡보 현장을 향하는 수도자들의 머리 위로 'Be the Global Top Leader'라고 쓴 건설회사의 현수막이 펄럭였다. 매연과 먼지로 싸인 인간의 어리석은 탐욕 속에서, 수도자들의 침묵이 강을 따라 흘러갔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28) 모든 생명이 하나의 인드라망('그물'이라는 뜻으로, 삼라만상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우주관)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불교와 달리 가톨릭과 기독교는 인간을 자연 속의 지배적 존재로 인식한다. 그래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현대의 생태주의와는 모순돼 보인다. 가톨릭계가 벌이는 생태주의 운동을 신학적으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가톨릭 생태영성학자인 황종렬 박사는 "창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질서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질서는 파괴가 아닌 조화와 공존이며, 인간이 다른 창조물과 관계를 가질 때도 그 생명의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창세기 구절에 대해서 "인간이 자연의 작은 일부였던 기원전 6~7세기의 맥락에서 이해해야지, 자연 훼손과 파괴적 개발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대 가톨릭 교의에서 생태주의의 흐름이 포착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사회적 관심' 회칙이다. 여기에는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동물, 식물, 자연 요소들… 인간이 자기 필요에 의해서만 사용할 수 없으며, 그렇게 했다가는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명기돼 있다.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우주에서 작용하는 상호연관성에 대한 현대 가톨릭의 기본 관점으로 해석한다. 2009년 교황 베네딕도 16세가 발표한 '진리 안의 사랑' 회칙에는 "인간이 발전을 위해서 자연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환경에 대한 관점이 분명해진다. 교황은 올해 새로 발표된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는 "우리의 발전 모델을 장기적으로 깊이 재검토하고, 아울러 경제의 의미와 경제 목표를 고찰하여 그 역기능과 오용을 바로잡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