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덕(1376-1445)의 본관은 통천이고, 자는 여화이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 운해는 국경을 지키러 나가고 집에 없었다. 최윤덕은 그 이웃 동네 양수척(무자리:사냥과고리를 걸어 파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집에서 길러졌다. 그는 차츰 자라면서 힘이 세고 활쏘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어느 날 목우산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윤덕이 즉시 달려가서 화살 하나로 호랑이를 쏘아 죽였다. 양수척이 윤덕을 데리고 그의 아버지가 있는 합포진으로 갔다. 운해에게 윤덕의 재능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자 운해가 "한번 시험해 보리라" 하고 사냥을 시켰는데, 달리면서 좌우로 쏘는 족족 다 맞추었다. 아버지 운해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너의 손이 제법 빠르긴 하지만 아직 법도를 전연 모르는구나. 네가 보인 솜씨는 하찮은 재주일 뿐이다"
아버지는 그 길로 아들에게 병법을 가르쳐 드디어 명장으로 만들었다. 세종 원년(1419)에 이종무와 함께 주사(해군)를 거느리고 대마도에 들어온 왜군을 토벌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전과가 보고 되자 세종은 그에게 편지를 보내어 위로하고 그를 우찬성 겸 평안도 절제사 및 안주목사를 겸직하게 하였다. 그는 공무가 끝나는 여가여가로 관청 뒤 빈 땅에 손수 채소를 가꾸었다. 어느 날 채소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소송을 하러 온 백성 하나가 그가 목사인 줄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향해 "지금 사또께서 어디 계시오?" 하니, 윤덕이 시치미를 떼고 "지금 관청에 있소" 하고 재빨리 가서 관복으로 갈아 입고 그 소송을 처리하였다. 어느 날 부인 한 사람이 울면서 고하였다.
"지난 밤에 호랑이가 제 남편을 물어 죽였습니다" "내가 너의 남편 원수를 갚아 주마"
최윤덕은 호랑이를 쏘아 죽여 그 배를 가르고 뱃속에 있는 뼈를 거두어 의복으로 싸서 관속에 넣어 주었다. 그 부인은 감사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여진족 이만주가 국경을 침범하였다. 세종 임금이 최윤덕을 보내어 정벌하도록 하니, 최윤덕이 크게 승리하고 돌아왔다. 세종은 근정전에서 최윤덕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잔치를 베풀고 직접 최윤덕에게 술을 권했으며, 또 세자에게도 술을 따르도록 명하였다. 윤덕이 일어나서 잔을 받으려고 하니 임금은 일어나지 말고 앉아서 받으라고 하였다. 세종이 군관에게 춤을 추라고 하자 술에 취한 윤덕이 일어나서 그 군관과 함께 춤을 추었다.
경원부사 송희미가 군법에 걸려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윤덕은 송희미와 친구 사이였다. 윤덕은 그를 위하여 술상을 차리고 술을 권하면서 위로하였다.
"상심하지 말게. 법은 피할 수 없네 우리 인생은 한번은 죽어야 하네. 나 또한 죽어서 그대 뒤를 따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