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시인 김수영 때문이다. 정확한 현실 판단과 삶의 곡절을 노래한 김수영은 나를 움직였고 사표를 던지게 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얘기를 이미 수십 년 전에 이미 해버렸다. 피가 거꾸로 솟았고 통쾌하기도 했다.
지금 2024년엔 어느 단체나 인터넷 동호회에서도 정치 이야기를 금한다. 분란의 원인이 되고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씨앗 말이 되기에 금하고 있다. 나는 답답하다. 속이 터지는데,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저지한다. 입닥치는 게 내가 할 일인가? 모든 예술가는 벙어리처럼 산다. 떠들면 값이 내려가거나 잡혀간다. 입다물고 무게 잡고 있어야 예술가다. 반세기 전 김수영이 한 말과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같다. 혁명적인 예술가는 볼 수 없으며 인간의 삶을 벗겨 내보여 주는 글도 없다. 안타깝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도 못 하고 눈치나 보며 위엄있는 듯 나이 처먹은 노인들만 존재한다. 노인 따라 4, 50대도 따라 한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바라보는 기성세대는 말이 통하지 않는, 속이 터지는 세대로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꼰대라는 말이 생겼다. 사마천을 포함해 오랜 세월 진보는 희생양이었다. 많이 죽었으나 그 결심은 포기 하지 않아 왔다. 지금 시대의 진보는 희생양은커녕 미리 포기하기에 안전하다. 진보가 보수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지구 중심에는 핵이 있다. 태양은 하루에 셀 수 없는 핵폭발이 일어난다. 기나긴 세월 저 빛이 꺼지지 않는 것은 진보의 핵 때문이다. 꺼지지 않으며 조용히 보여도 자신을 유지한다. 진보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세계로 가는 기차다. 올라타면 기차는 멈추지 않으며 연료는 무한 제공된다. 현실에 만족하면 기차에서 내려 보수가 된다. 보수는 영역을 지키기 위해 달리는 진보처럼 목숨도 바친다. 내려버린 그 역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산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물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다. 그러나 진보는 험난한 선로를 끝없이 달린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진보의 업적은 현재의 문화생활을 이룩했다는 것인데 모두 그 희생을 기억하지 않는다. 진보의 무모한 도전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수도 없이 진보주의자는 희생 당했다. 그것이 진보가 갈 길이고 더 나은 인류가 되기 위해 희생하는 어리석음으로 비추어진다. 보수는 비웃고 진보는 울며 달린다. 그것은 숙명이다. 외롭고 괴롭다. 그러나 핵이 있기에 진보 열차는 멈추지 않는다. 오늘날의 예술가들처럼 보수화되지 않는다.
정치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이다. 내 몸이 먼저 겪는 무서움이다. 그런데 왜 입 닥치고 있나. 역에서 내렸나? 과거보다 지금의 예술가들이 멍청이 소리 듣는 원인은 입닥치고 살기 때문이다. 어디가서 ‘나는 예술가요~’ 하려면 현실을 노래하라. 지금을 노래하지 않으면 과거도 미래도 없다. 도인 인척 살지 마라.
올라타면 기차는 멈추지 않으며 연료는 무한 제공된다. 현실에 만족하면 기차에서 내려 보수가 된다. 보수는 영역을 지키기 위해 달리는 진보처럼 목숨도 바친다. 내려버린 그 역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산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물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다. 그러나 진보는 험난한 선로를 끝없이 달린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너무 멋진 문장입니다.
답답한 지금의 심정을 대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