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밥을 못 먹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오로지 갓 담근 김치만 생각났다. 병원에서 나가면 필히 김치만 먹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살다보니 냉장고가 창고가 되어갔다. 난 너무나도 부자다. 먹을 것이 흘러넘친다. 밖에서 사 먹기도 하니 냉장고 속 음식들이 썩어간다. 결심했다. 냉장고를 모조리 비우기 전엔 밖에서 사 먹지 않으리라. 오늘 보니 냉장고가 거의 비었다. 이젠 냉동고 차례다. 모조리 비우기 전엔 밖에서 사 먹지 않으리라. 누가 이기나 해보자.
우린 뭐든 흘러넘치는 풍족한 삶을 산다. 무소유라는 것은 갖지 말고 가난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필요 없는 것은 소유하지 말라는 뜻이다. 욕심이 많아 먹지도 입지도 않을 것들을 우린 사들인다. 그래 놓고 먹을 게 없다는 둥, 입을 게 없다는 둥 투덜댄다.
강제로 굶어보거나 강제로 벗겨져 봐야 안다. 한 톨과 한오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흔히들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는데 단순한 것이다. 쓰지 않을 것이라면, 먹지 않을 것이라면 나누면 된다. 필요한 사람에게 주던지 사다 놓은 책임을 지면 된다. 우린 지나치게 풍족하다.
20년 전인가? 부천에서 쌀은커녕 밀가루조차 없던 때가 있었다. 라면 한 젓가락의 희열을 당신은 아는가. 냉장고나 옷방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수일 내로 처리 예정이다. 여백이 생기니 얼마나 여유로운지…. 난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