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속 작은 새를 넣었는데 커져서 못 꺼냅니다.
병을 깨면 새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다치지 않게 어떻게 꺼내나요?’
서양은 논리학이 우선입니다. 증명하고 증명이 나오기까지
논리에 어긋나선 안 됩니다. 유추와 산술이 일치해야 합니다.
모두 상상입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질문에는
과학적 시도가 우선시 되고 시뮬레이션합니다.
동양은 반대죠. 경험이 우선입니다. 조상들이 경험한 지혜와
내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해결합니다. 그래서 동양엔 논리학이 없어요.
사실만 받아들이며 체험하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몰카를 하나 예로 들면 임신한 여인이 길거리에 쓰러지면
한국 사람은 모조리 달려듭니다. 어떻게 해서든 구하지요.
자신이 뛰어들고 경험합니다. 계산 안 합니다.
그래서 맹자의 사단칠정 중 ‘측은지심’을 최고로 칩니다.
일본에 지하철에서 사람을 구한 대한민국 청년의 신사는 있어도
서양인 신사는 없어요.
이러한 동양 철학을 흔히 불교 말로 빗대어 ‘화두’라 하죠.
화두에 정답이 있나요? 나름 정답을 내 보시길 권장합니다.
저같이 낮은 수준의 뇌라면 이렇게 해석하겠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있어요. 비울 필요가 있어요.
마음도 몸도 너무 무겁게 삽니다.
요즘 최소주의(minimalism)가 유행이라던데
예전 시청에서 미니멀리즘에 대한 서적을 동시 출간하자는 의뢰가 있었죠.
마음을 비워야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물병에 물을 담아야지
새를 왜 담아 괴로워하나요. 새가 날씬해지면 스스로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비우려 하지 않아요. 아까워서. 저대로 그냥 살아요. 괴롭게.
날씬해지면 나가서 드넓은 세상을 볼 텐데 안 나가요.
때 되면 먹이도 주고 잠도 그냥 잘 자니까요.
물도 고이면 썩어요. 비워야 새 물을 담지. 그래야 물병이 예쁩니다.
그나저나 비움에 관한 수필을 쓰고 있는 지 몇 개월이나 지났는데
여간 진도가 안 나갑니다. 조금 더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