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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887호
2012.7.27 (음6 9)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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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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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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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성이란 탐험되지 않은 땅. 카누를 타고는 갈 수 있지만 택시를 타고는 도달할 수 없는 곳. - 앨런 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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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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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바루기] 쌍거풀, 쌍가풀, 쌍꺼풀, 쌍까풀
원래 성형수술은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몸의 일부 중 부족한 부분을 재건하기 위해 시행됐다. 특히 제1차, 2차 세계대전 이후 온몸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사회 복귀를 위해 성형술이 급격히 발달했다고 한다. 요즘은 주로 미용을 위해 성형수술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눈 성형수술은 '수술'이 아니라 간단한 '시술'"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가장 흔히 하는 수술 부위 중 하나가 눈이다. 여기서 문제 하나.
㉠쌍거풀 수술 ㉡쌍가풀 수술 ㉢쌍꺼풀 수술 ㉣쌍까풀 수술
어떤 게 올바른 표현일까.
정답을 먼저 얘기하면 ㉢과 ㉣ 둘 다 가능하다. 왜 답이 두 개일까. '쌍꺼풀/쌍까풀'은 모두 '겹으로 된 눈꺼풀'을 의미한다. '여러 겹으로 된 껍질이나 껍데기의 층'을 뜻하는 말인 '꺼풀'과 '까풀'은 둘 다 표준어로 인정된 복수표준어다.
'눈알을 덮는 살갗'을 의미하는 '눈꺼풀'과 '눈까풀' 역시 올바른 표현이다. 따라서 '쌍까풀' '쌍꺼풀'은 모두 표준어이지만, '쌍거풀' '쌍가풀' 등은 잘못된 표현이다.
깃
지난 주말 강원도 철원 지장산 기슭에 있는 도연암에 다녀왔다. 생태동화작가 따라나선 길이었다. 거기서 도연스님이 거두어 돌보는 새끼 고라니를 만났다. 방 한가운데 주인인 양 퍼더버린 채 누워 있는 그의 이름은 ‘도란이’. 들고양이에게 물려 생사갈림길에 있던 걸 스님이 보살피고 있는 녀석이다. 깊은 눈동자 끔벅이며 주저앉아 있던 도란이가 가녀린 다리를 일으켜 세우더니 몇 걸음 내딛다 이내 뭉그러진다. 마음은 ‘겅중겅중’인데 몸은 말 그대로 ‘하체부실’이었다.
물끄러미 도란이를 바라보는 내 앞에 나를 그곳으로 이끈 작가가 슬그머니 책 한 권을 내밀었다. 경기도 고양시 백로마을을 지켜보며 엮어낸 책 <백로마을이 사라졌어>이다. 백로가 깃들여 사는 ‘솔수펑이’(소나무숲)의 생태를 이야기로 담아낸 것이다. ‘백로나 왜가리나, 두루미나 학이나 그냥 거기서 거기’라 치부하던 내게 그네들이 쇠백로, 중백로, 중대백로, 대백로, 황로, 왜가리, 해오라기, 검은댕기해오라기, 덤불해오라기, 알락해오라기처럼 사뭇 다른 실체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앎을 덤으로 귀띔해주었다. 토박이말이 건네는 살가운 느낌이었다.
치렛깃(몸치장을 위하여 붙어 있는 아름다운 깃), 날개깃(새의 날개를 이루고 있는 깃털) 따위의 말이 그랬다. ‘깃 깃 깃으로 끝나는 말’은 참으로 많았다. 발갯깃(김 따위에 기름을 찍어 바를 때 쓰는 꿩에서 떼어 낸 깃털), 빼깃(매의 꽁지 위에 표를 하려고 덧꽂아 맨 새의 깃), 솜깃(새의 보드라운 털), 칼깃(새의 날갯죽지를 이루는 빳빳하고 긴 깃)…. 오른손잡이가 쓰는 ‘좌궁깃’(새 오른쪽 날개깃으로 꾸민 화살 깃)도 있었다. 세상에, 쓰는 손에 따라 깃 결을 달리하다니! ‘신궁신화’는 헛된 게 아니었다. 오늘부터 우리 ‘메달밭’ 올림픽 양궁 경기가 시작된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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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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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비가 오는 날도 있다 - 강연호
솥뚜껑 위의 삼겹살이 지글거린다고 해서 생의 갈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찍 취한 사람들은 여전히 호기롭다 그들도 박박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는 것이다 세상의 남루나 불우를 그저 견디겠다는 듯 반쯤 남은 술잔은 건너편의 한가로운 젓가락질을 우두커니 바라볼 뿐 이제 출렁거리지도 기울어지지도 않는다 참다 참다 그예 저질러버린 생이 있다는 듯 창밖으로 지그시 내리는 빗줄기 빨래는 오래도록 마르지 않고 쌀알을 펼쳐본들 점괘는 눅눅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아마 이 밤이 지나가면 냉장고의 찬물을 벌컥벌컥 들어켜야 할 새벽이 온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어쩌면 이 술잔은 여기 이 생에 건네질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삼겹살을 뒤집어봐야 달라질 것 없고 희망은 늘 실날같지만 오늘의 운세는 언제나 재기발랄 명쾌하다 62년생 범띠, 살다보면 비가 오는 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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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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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편지 - 김민정
속뼈까지 다 드러낸 내 그리움 닮아 있어 자꾸자꾸 쓸어주고픈 잎 다 진 가로수가 호호호 입김을 불며 다가서는 계절입니다.
눈시울 붉혀오던 그 가을도 다 보내고 목숨의 결을 흔들며 깊은 삶을 탄주하는 한겨울 뿌리깊은 나무 내 안에서 자랍니다.
찬바람과 눈보라 속 쓸쓸함도 다 지우고 하늘 닮은 맑은 눈빛, 푸른 희망을 담아 연화대 부처님 같은 환한 미소 보냅니다.
언 손을 녹여주고 시린 마음을 뎁혀주고 모락모락 정담 피어날 한 잔의 차 그리워 찰랑한 기다림 속에 겨울 편지 씁니다.
우리들의 눈빛 속에 출렁이는 기쁨 같은 사랑을 가득 담아 축복을 가득 담아 이 겨울 함박눈 같은 편지 띄워 봅니다.
(20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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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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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1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나도 그런 형이 될 수 있었으면
폴이라는 이름의 내 친구가 있는데, 그의 형이 큰 부자였다. 폴은 지난 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형으로부터 자동차 한 대를 선물받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폴이 일을 마치고 사무실 밖으로 나와 보니, 개구쟁이 소년 하나가 폴의 새 차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폴이 다가가자 소년은 부러운 눈으로 차를 바라보면서 폴에게 물었다. "아저씨가 이 차의 주인이세요?" 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내 형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거지." 그러자 소년의 놀라움이 더 커졌다. "아저씨의 형이 이 차를 사줬고, 아저씨는 돈 한푼 내지 않고 이 멋진 차를 얻었단 말이에요?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년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당연히 폴은 소년이 멋진 차를 갖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년의 그 다음 말은 폴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소년이 말했다. "나도 그런 형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폴은 놀라서 소년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무심결에 소년에게 말했다. "너, 이 차 타 보고 싶니? 내가 한 번 태워 줄까?" 소년은 기뻐서 소리쳤다. "정말이에요? 고맙습니다." 폴은 소년을 차에 태우고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런데 소년이 문득 폴을 돌아보면서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저씨, 미안하지만 저희 집 앞까지 좀 태워다 주실 수 있으세요?" 폴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소년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멋진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자신의 모습을 이웃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폴의 생각은 또다시 빗나가고 말았다. 집 앞에 도착한 소년은 폴에게 부탁했다. "저기 층계 앞에 세워 주세요. 그리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소년은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잠시 후 폴은 소년이 집 밖으로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소년은 집 밖으로 나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소년은 두 다리가 불구인 어린 동생을 데리고 나오는 중이었다. 소년은 동생을 계단에 앉히고, 어깨를 껴안으면서 폴의 자동차를 가리켰다. "내가 방금 말한 게 저 차야, 버디. 저 아저씨의 형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거래. 그래서 저 아저씨는 한푼도 낼 필요가 없었대. 버디, 나도 언젠가 너에게 저런 차를 선물할 거야. 넌 한푼도 내지 않아도 돼. 그리고 넌 그 차를 타고 가서 내가 너한테 설명해 준 세상의 멋진 것들을 모두 구경할 수 있게 될 거야." 폴은 차에서 내려 층계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불구자 소년을 번쩍 안아 차의 앞좌석에 앉혔다. 불구자 소년의 형도 눈을 반짝이며 그 옆에 올라탔다. 그런 다음 그들 세 사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크리스마스 드라이브를 떠났다. 그날 크리스마스 이브에 폴은 성경에 적힌 예수의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베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댄 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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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사회/문화/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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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왜? - 여성 억압의 어제와 오늘 : 서진영
제2부 땅에서 하늘의 절반으로
자본주의는 여성의 삶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 백여년간 우리 사회의 급격한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나타난 많은 변화들 가운데서도 여성의 삶과 지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손꼽힐 정도로 두드러진 것이다. 여성들은 가정의 속박에서 벗어나 사회적 노동과 정치를 비롯한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여성들에 대한 법적인 차별은 철폐되고 있다. 축첩과 봉건적인 혼인 제도는 폐지되었다. 흔히 "요즘 여자들 살기 좋아졌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듯이 우리 할머니 세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옛날에는 남녀 불평등과 차별이 자연 법칙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흔히 우주와 신의 법칙으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거의 모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남녀 평등이 법칙이 되었다. 각국은 여성과 남성의 권리 평등을 헌법에 규정하고 있으며, 누구도 이 대의에 공공연히 반대를 표명할 수는 없게 되었다. 여성 국회 의원, 여성 법관, 여성 장관이 늘어나고 있고, 장관의 절반 이상이 여자거나 여성이 국방부 장관이 된 나라도 있다. 여성들 중에는 학자, 화가, 시인, 음악가로서 이전 같으면 묻혀버렸을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경우가 늘고 있고, 노동자로서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하고 있다. 사회 활동 중에서 여자는 할 수 없고 남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졌다. 여성들은 이제 가정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유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남녀 차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우리나라에서도 헌법 전문에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고 규정했으며, 헌법 제 11조 1 항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또 제36조 1 항에는 가족 제도에 대한 민주주의적 제도 보장과 혼인의 자유, 양성의 평등을 규정했다. 6공화국에 들어서면서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국가는 모성 보호를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조항까지 신설되었다. 최근에는 가족법도 개정되었으며, 남녀 평등에 관한 법도 제정되었다. 이런 법률들은 그 의도와 실제가 어찌되었든 간에 아무리 비민주적인 정부라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 시대가 변했으며, 역사가 피할 수 없이 남녀 평등을 향해 나아가리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한 일이다. 일단 깨어나기 시작한 여성들을 뒤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억압이 생겨나 오히려 여성들을 더욱더 심각한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가 여성에게 가져온 모든 진보가 함정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여성을 사회적 노동에 끌어들이면서 가사 노동의 부담을 철폐하지 않았으며, 일부일처제를 확립하면서 매춘 역시 하나의 사회 제도로 만들었다. 가정의 역할이 축소됨에 따라 가정에서의 여성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노동에서의 확고한 위치 역시 아직 자리잡히지 않았다. 남녀 평등의 대의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전래의 관념을 타파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성 문제의 복잡성과 상호 모순되는 현상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여성의 지위에 있어서 과도기적인 시기임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여성 억압은 붕괴되고 새로운 남녀 관계를 위한 광범위한 토대가 마련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자본주의가 남녀 평등을 위한 충분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명백하다. 남녀 평등의 진전은 오히려 자본주의 자체에 의해 제한되고 왜곡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이러한 모순적이고 과도기적인 성격은 여성의 고통을 더욱 가증시킨다. 여성의 지위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이런 과도기적인 성격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앞에서 말했듯이 여성의 지위는 궁극적으로 노동과 가족에서의 위치에 의해 규저오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과 가족에서 여성의 위치를 살펴보는 것이 여기서의 주요한 과제이다. 그런데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계급적 위치에 따라 여성들이 놓인 처지와 안고 있는 문제가 서로 다르다. 따라서 먼저 계급적 위치에 따라 자본주의가 미친 상이한 영향을 지적하고, 다음으로 주로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노동과 가족에서 여성들이 놓인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제1장 계급적 지위와 여성 문제
1. 자본가 계급 여성, 황금빛 예속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전래의 성별 분업을 타파한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에 있어서는 결정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성별 분업이 자본가 계급에 있어서는 아직 완강하게 지켜지고 있다. 노동자 중에서 여성의 비율이 40%에 달하는 반면, 자본가 중에서 여성의 비율이 단지 1.4%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서관모의 연구에 따르면 1985 년 현재 우리나라 경제 활동 인구 중 자본가 계급은 1.4%인 22 만 명에 불과한데, 그 중 여성 자본가는 전체 자본가의 1.4%로 겨우 2천 명에 지나지 않는다. 사유 재산의 소유와 상속이 가족 관계의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 자본가의 가족이야말로 여성이 아직도 고전적인 역할, 즉 상속자를 낳는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부일처제 가족이다. 자본가의 아내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일은 미래의 상속자를 낳아서 잘 키우는 일이다. 여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미래의 상속자를 낳아 기르는 것인 한, 여성이 사회 활동으로부터 배제되거나 최소한 남편의 보조자, 혹은 부차적인 담당자에 그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자본가 계급에게 있어서는 성별 분업이 더욱더 확고해졌다. 봉건제 사회의 가족이 하나의 생산 단위였던 것과는 달리, 자본주의 사회의 가족은 단지 소비의 단위이다. 자본가 계급의 여성들은 법적으로는 남성과 평등해졌지만, 실제로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봉건 시대보다도 더 좁은 영역에 갇히게 되었다. 봉건 시대 영주의 아내들은 남편 대신 장원의 경영을 맡아보고, 가신을 거느리는 일이 흔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가족과 생산이 완전히 분리됨에 따라 자본가 가족 내에서는 남편의 일과 아내의 일도 보다 더 확연히 구분되었다. 또한 봉건 시대 귀족의 지위는 귀속적인 것이었으며, 그의 토지는 신분과 함께 세습되는 영속적인 권리였다. 그러나 자본가의 지위는 끊임없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만 유지되는 것이다. 사유 재산권은 신분과의 결합이나 농민의 하급 소유권 따위를 떼어버리고 완전히 배타적인 권리로 완성되었지만, 그대신 그것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더욱더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빈둥거리고 사냥이나 다니는 것으로 소일할 수도 있었던 귀족에 비하면 오늘날의 지배 계급인 자본가들은 비교할 수 없이 바빠졌다. 자본가로서 성공하는 것은 거의 전적인 시간과 정력을 투자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여자들은 일차적으로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가 남편을 가진 여성이 자식을 돌보는 대신 구태여 험한 일에 뛰어들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도 없다.
가족을 단위로 생각할 때 이러한 성별 분업은 가족이 살아가는 하나의 합리적인 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을 놓고 보면 이런 분업이 불평등의 기초가 된다. 자본가인 남편이 많은 부를 쌓아올릴 수 있는 반면, 임신, 출산, 육아 등에 전념하고 있는 그 아내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자본가 계급 내에서 법적인 평등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남성에게 예속되어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생산과 가족, 사회적 활동과 사적 생활의 분리가 진행될수록 부르주아 가족의 여성은 드높은 담에 둘러싸인 성에 갖힌 꼴이 되었다. 단지 그 담이 황금 벽돌로 되어 있다는 것으로 인해 이들의 예속이 잿빛이 아니라 황금빛으로 보이는 것이다. 엥겔스는 부르주아 가족의 눈부신 광휘에 숨겨진 본질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경우, 적어도 유산 계급에 있어서는 남편은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로 인해 어떠한 법률상의 특권이 없더라도 그에게는 지배자의 지위가 부여된다. 가족 내에서 남편은 부르주아지이며 아내는 프롤레타리아트이다." 부르주아 가족의 이러한 황금빛 지배 예속은 다음과 같이 찬미되고 있다.
흔들림 없는 지혜를 가지고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주인인 그가 모든 것을 다스린다. 지켜주는 자, 이끌어가는 자, 그리고 심판하는 자, 그는 부귀영화를 쌓아올린다. 그 밑에서, 이름난 철학자인 마틴 터퍼의 말을 빌면 "가정의 선량한 천사인 어머니, 아내, 여주인"이 훨훨 날개치고 다녔다.
자본가의 아내들은 착취한 부에 기생해서 산다는 점에서 노동자 계급과는 정반대의 사회적 위치에 놓여있다. 그러나 가족 내에서는 재산의 소유자인 남편에게 종속되어 있다. 즉 이들은 이중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한편으로 이들은 남편을 통해서 지배자의 권리의 일부에 참여하고, 부유한 생활을 누린다. 이들은 자기 자신은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고 남편이 획득한 이윤에 기생해서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이미 사치와 낭비, 비생산성의 분야에서 명예 학위를 얻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가족 내에서 이들은 피지배자의 위치에서 불평등을 감수해야 한다. 특권과 부유한 생활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편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그들이 누리는 권리 역시 제약되고 불안정하다. 이들이 누리는 가장 큰 권리라고 해야 소비 생활의 담당자로서의 권리인데,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살기 빠듯한 노동자들과는 달리 자본가에게 있어 소비(노동자들이 일생 동안 뼈빠지게 일해도 도저히 한 번에 만져볼 수 없는 엄청난 돈을 단순히 사치와 방탕에 써버리는 자본가들의 어마어마한 소비)는 그의 부 전체에 비해 아주 적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의 지위는 단지 혼인을 통해서 유지되는데 혼인은 자본주의와 함께 매우 약화되었다. 자본주의는 세습적인 신분 제도와 결별함으로써 결혼의 자유뿐 아니라 이혼의 자유도 그 법전에 새겨넣었다. 그리고 이는 여성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남성이 우월한 지위를 갖는 사회에서는 보다 흔히 남성의 권리로 변한다. 물론 아직은 지배 계급들이 겉만 번지르르한 명예를 위해 사랑 없는 결혼을 유지하는 경우가 피지배 계급의 경우에서 보다 많긴 하지만, 법률과 강력한 관습에 의해 보장되던 봉건 시대 안방마님의 자리에 비해 현대의 '사모님'의 자리는 매우 불안정해졌다. 이런 상황으로부터 이들의 여성 운동의 목표와 방향이 나온다. 그것은 기존의 체제 내에서 남자들의 권리를 같이 누리는 것이다. 재산 상속권의 평등과 국가 기관에의 평등한 참여가 이들의 핵심적인 요구이다. 서구와 우리나라의 부르주아 여성 운동이 참정권 운동과 가족법 개정 운동으로 전개되어 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그나마 남성의 영역에 뛰어들어 개척을 하고 있는 2천 명의 여성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들이 개척자로서 온갖 편견과 불이익과 차별과 역경과 맞서 싸워왔으며, 이를 이겨내왔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2천여만 명 중에서 2천 명이 누리고 있는 남녀 평등의 권리가 나머지 1천 999 만 8천 명 여성들의 고통과 억압 상태를 상쇄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성공한 여성들의 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이들의 성공이 대다수의 상대적 빈곤과 소외를 이면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의 존재는 인구의 대다수를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고는 먹고 살 수 없는 노동자로 만드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이들 대다수 여성의 삶을 고려하지 않고는 남녀 평등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자본가로서, 이 사회의 지배자로서, (그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층 계급 여성들을 억압하는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부르주아 여성 운동, 그리고 그들이 내세우는 "모든 여성에게 공통된 이해 관계"가 갖는 한계다. 게다가 자본가의 아내들은 대개 자본가 계급의 딸들로서 어느 정도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고, 부동산 투기나 증권 투기 등 지하 경제 활동에 손대고 있는 경우도 많으며, 실제로 그 방면에서도 이미 확고한 명성을 구축했다. 이들은 자본가로서 성공하기에 (같은 조건의 남자들에 비하면) 장애가 많지만, 다른 계급과 계층에 비하면 오히려 유리한 위치에 있다. 노동자 계급 여성들에게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자녀 양육에 있어서도 이들은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여러 가지 수단을 강구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더욱이 사회 활동의 법적인 자유 (특히 국가 기관의 고위직에의 진출 보장과 일정 비율의 할당 등)가 확대되어 감에 따라 이들의 문제는 점점 더 부차적인 것으로 축소되어 가고 있다. 남은 가장 큰 문제는 '사모님'의 지위에 안주하는 자기 자신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정권 획득과 가족법 개정 이후의 서구의 부르주아 여성 운동이 여성들 자신을 향한 '자기 개발'의 호소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여성 해방에 있어서 부르주아 계급 여성의 역할이 이미 끝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역할은 노동자 계급 여성의 어깨로 넘어갔다.
2. 노동자 계급 여성, 진퇴 양난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자본가 계급 여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처지에 놓여 있다. 자본가 계급 가족의 가장 중요한 구성 원리는 재산을 지키고 상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 가족의 가장 중요한 구성 원리는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는 노동 분업과 이에 기초한 생산 수단의 소유에 달려 있다. 봉건 사회에서 농노 남성은 주요한 생산 수단인 토지에 대한 점유권을 가졌으며 이는 남성을 중심으로 상속되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농민은 토지를 빼앗기고 무산자가 되었으며, 동시에 여성 지배의 기초도 잃어버렸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나성과 여성을 똑같은 무산자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똑같이 노동자로 만듬으로써 적어도 노동자 계급에 있어서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예속에 절반쯤 종지부를 찍었다. 자본가 계급과는 달리 사실 오늘날 노동자의 아내는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일에 전념할 수가 없다.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성들 자신도 나가서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남자들과 함께 사회의 짐을 떠맡게 되었다. 노동자 계급 여성이 노동자 계급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8 년 현재 33.7%이고, 여성 경제 활동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8.4%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는 1960 년대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여성 노동자의 증가율은 남성 노동자 증가율보다 훨씬 높다. 이는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노동자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노동자가 됨으로써 가정 안과 밖을 축으로 한 노동 분업도 붕괴되었다. 남존 여비라는 '우주의 법칙'은 적어도 노동자 계급에게는 잘 안 통하게 되었다. 성별 분업을 결정적으로 붕괴시키고 여성을 대거 사회적 노동에 참여시킨 것은 자본주의가 여성에게 가져온 가장 중요한 진보이며, 다른 모든 진보의 기초이다. 여성들이 새로 떠맡은 짐이야말로, 그들이 가정과 사회에 대해 가지는 권리의 기초이다. 여성들은 생산 노동에 참여함으로써 생산의 주인이 되고, 사회와 역사 발전의 주체가 된다. 여성이 생산력의 주요한 담당자가 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수천 년의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여성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는 여성의 사회적 노동 참여를 해방이 아니라, 자본에의 예속으로 만든다. 여성은 가정에의 속박에서 벗어났지만, 그것은 보다 완강한 적에게 예속되기 위해서였다. 여성들은 노동자로서뿐 아니라 여성으로서 자본의 착취와 억압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위치가 다시 노동자 계급 여성들의 가정 내에서의 지위를 열등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하여 여성은 사회적 노동에서나 가정에서나 모순에 처하게 된다. 이런 모순은 다음과 같은 말에 요약되어 있다.
월요일 아침 그때부터 시작하는 일주간을 생각하고 나는 가정에 있는 여자들을 부러워한다. 그렇지만 일요일 저녁 하루의 청소를 끝낸 후에는 나는 그녀들을 동정한다.
직업을 갖든 가정에 머물든 그것은 자유지만, 그 자유는 진퇴 양난으로 귀결되었다. 이제 여성 노동자를 진퇴 양난에 몰아넣는 사회적 노동과 가사 노동의 문제들에 대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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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계 교수의 철학 이야기 - 탈레스에서 라캉까지
제1부 그리스 철학 이야기
제2장 인간 본성의 시대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의 입장에 동조하는 척하면서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끈질기게 질문하여, 상대가 스스로 무지를 폭로하게 한다. 밀물이 지나면 썰물이 있게 마련이다. 타락한 궤변철학에 의해서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질서와 윤리 그리고 법까지도 혼란한 지경에 이르자 이에 대한 강력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한 운동은 소크라테스가 이끌었다. 소크라테스(479~399 B.C.)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가치를 제시함으로써 백성의 윤리 의식을 끌어올리고 동시에 청년들의 가치관을 고양시키려고 했다. 그는 건전한 사회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인간에 대해 모든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는 아테네 출신으로 조각가인 소프로니스코스와 산파인 파이나레테의 아들로 태어났다. 청년 시절에는 아버지를 따라서 조각하는 일에 종사했다. 그는 아무런 저술도 남기지 않았으나 그에 관한 이야기는 플라톤, 크세노폰, 아리스토텔레스 등에 의해서 조금씩 전해 오고 있다. 그는 작은 키에 뚱뚱했으며 눈이 나쁜데다 매부리코였다. 입이 크고 두꺼웠으며 옷을 아무렇게나 입었고 행동도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했다. 그렇지만 일단 그가 입을 열고 말을 시작하면 인간적 매력이 넘쳐흘렀고 유창한 대화 솜씨가 사람들을 사로잡아서 신체적인 흠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고 한다. 부인 크산티페가 벌이를 제대로 못한다며 그에게 구정물을 끼얹은 이야기는 크산티페를 악처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길거리, 시장, 운동장 등에서 정치, 결혼, 우정, 사랑, 예술, 무역, 종교, 과학 등 인간의 모든 문제들과 특히 도덕 문제에 관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과 기꺼이 논의했다. 그는 나무나 돌과 같은 것으로부터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연 세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말년에는 아테네의 신들을 믿지 않으며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해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제자들의 도움으로 탈주할 수도 있었으나 '악법도 법'이라는 생각을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정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독약이 든 잔을 마시고 일흔 살에 세상을 떠났다.
참다운 앎에 이르는 소크라테스의 대화
소크라테스는 상대방과의 끈질긴 대화를 통해서 참다운 앎에 이르는 길을 추구했다. 이것을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대화' 또는 '소크라테스의 방법'이라고 부른다. 소크라테스는 언제나 두 가지 방법을 함께 사용했다. 하나는 반어법 또는 역설의 방법이며 또 하나는 산파술인데 앞의 것은 부정적인 생각의 과정인 반면에 뒤의 것은 긍정적 생각의 과정이다. 예컨대 정의에 관해서 대화할 때, 우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각은 나타내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 동조하는 척하면서도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끈질기게 질문해서 상대방이 스스로 자신의 무지를 폭로하게 한다. 원래의 생각과 반대되는 것을 말함으로써 상대방을 무지의 상태에 몰아넣는 방법을 일컬어 반어법 또는 역설의 방법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반어법의 예를 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소크라테스: 정의란 무엇인가? 트라시마코스: 강자의 모든 행위는 정의입니다. 소크라테스: 강자는 사람인가 아닌가? 트라시마코스: 물론 사람이지요. 소크라테스: 사람은 옳게 행동할 때도 있고 그릇되게 행동할 때도 있겠지? 트라시마코스: 그럼요. 소크라테스: 강자도 사람이니까 옳게 행동하기도 하고 그릇되게 행동하기도 하겠지? 트라시마코스: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강자가 옳게 행동할 경우 그것은 정의이지만 그릇되게 행동할 경우에도 그것은 정의일까? 트라시마코스: 그것은 불법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처음에 자네가 강자의 모든 행위는 정의라고 한 것이 이치에 맞는가?
이렇게 되면 대화 상대방은 자신의 원래 생각을 부정하게 되고 무지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소피스트들은 지식을 팔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지만,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스스로 참다운 인식을 이끌어 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젊은이들을 가르치면서 아무런 보수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후세에 와서 소피스트들은 궤변철학자 또는 지식을 소유한 자로 불리운 반면,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자, 즉 철학자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막연히 추상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지 않고, 구체적인 사태를 통해서 대화 상대방으로 하여금 윤리 문제에 대한 참다운 앎에 도달하게 한다. 이러한 방식은 긍정적인 방법으로서 그것을 일컬어 산파술이라고 한다. 산파는 산모가 출산하는 것을 도와주기만 할 뿐, 직접 아이를 낳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는 사람은 산모이다.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는 참다운 앎을 산출해 내고 그것에 도달하는 것은 각각의 사람이며 자신은 단지 옆에서 도와주는 산파와 같다고 생각했다. 용기나 정의는 아무나 마음대로 말하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구체적인 경우를 참조함으로써 누구에게나 타당한 용기나 정의 등의 윤리 개념을 이끌어 내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영혼의 깊은 내면에서 불변하는 보편 타당한 윤리 개념을 시민들의 의식에 각성시켜 주려고 했다.
소크라테스가 본 '선하게 산다는 것'
소크라테스는 사람이 내면의 본성을 파악하면 선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내면의 본성을 안 사람은 그것에 어긋나게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누구도 본질적으로 악을 행할 수 없다"고 생각해 사람의 내면적 본성을 선하다고 보았다. 그러면 악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선한 본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에서 악이 생긴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견해이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선하게 산다는 것은 덕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고, 그 사람의 행동이 내면적 본성과 일치하는 것이다. 내면으로 선을 지니고 살아가면 사람은 외면으로 즐겁다. 내면적 본성을 알고 선을 실행하는 것은 덕스러운 삶이며 그러한 삶은 행복한 삶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는 덕은 곧 행복의 열쇠인 셈이다. 명언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델피 신전의 무당에게서 들은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인 선을 알고 그것을 실행하면, 곧 덕스럽게 살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후계자들
소크라테스의 후계자들은 몇 가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삶의 모범을 따르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후계자들은 덕에 치중하는 사람들과 행복에 치중하는 사람들의 두 부류로 구분된다. 그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제자는 플라톤이었다. 그는 스승의 모든 이론을 가장 질서정연하게 체계적으로 발전시켰으므로 그를 일컬어 완전한 소크라테스주의자라고 부른다. 플라톤 이외의 후계자들을 일컬어서는 불완전한 소크라테스주의자라고 한다. 불완전한 소크라테스주의자들은 퀴니코스 학파, 퀴레네 학파 및 회의학파의 사람들이다. 퀴니코스 학파의 철학자들은 외부 세계를 떠나서 모든 욕심을 버리고 자기 자신 속으로 은둔할 때 덕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선을 추구했으며 자족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악으로 보았다. 대표적인 퀴니코스 철학자는 디오게네스(412~323 B.C.)이다. 그는 사회와 민족의 의무 그리고 외적 선과 가치는 물론이고 친구나 혈연 관계 등을 무시했다. 후에 퀴니코스 철학자들은 철학적 거지, 세계 시민적 거지로 일컬어졌고 플라톤은 그들을 사치스러운 돼지라고 불렀다.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신하로 쓰기 위해서 디오게네스를 찾아갔을 때, 자신의 소원은 왕이 햇빛을 가로막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대낮에도 등불을 켜 들고 거리를 다녔는데 그 이유를 묻자 "인간을 찾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퀴레네 학파는 퀴니코스 학파와 반대로 향락과 쾌락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학파의 창시자는 퀴레네 출신 아리스티포스(435~355 B.C.)이다. 그의 목적은 행복이며 행복은 쾌락에서 성립한다. 더 나아가서 행복은 단순한 감각 쾌락이 아니라 현명한 통찰을 통한 향락에서 성립한다. 세상과 삶의 지혜를 누리는 향락이야말로 순수한 정신적 향락이며 그것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회의학파는 윤리적 덕을 이론적 토론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이 학파는 모든 것의 통일이 행복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회의학파는 마치 궤변철학자들과 같이 말장난에 그치는 종명만을 일삼게 되어 개인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방향으로 기울게 되었다. 회의학파는 메가라 학파와 엘리스 학파 두 부류가 있고 특히 메가라 학파의 유불리데스는 '거짓말쟁이의 추리'로 유명하다. 다음은 유불리데스의 '거짓말쟁이의 추리'의 내용이다. 크레타 사람인 에피메니데스는 모든 크레타 사람들이 거짓말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역시 거짓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말은 거짓이고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모든 크레타 사람이 거짓말한다고 크레타 사람인 그 자신도 그의 말로써 거짓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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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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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 - 미셸푸꼬 / 인간사랑
제5장 광기의 여러 형태들 (1/5)
이 장에서 우리가 하려는 것은 17,8세기의 정신분석학의 개념사에 대한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고전주의의 사유가 광기로 인정한 여러 특수한 형태나 양상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고전주의의 사유는 이러한 양상이나 형태들에게 여전히 신비적인 색채를 가미했다. 그러나 그 신비주의적인 색채들이야말로 우리가 고전주의의 광기에 대해서 실제적인 지식을 얻는 데 본질적인 역할을 한다.
1 조증과 우울증
17세기에 우울증이란 개념은 특정의 증상들에 입각한 정의와 하나의 해석원리 사이에서 고정되었다. 그런데 그 해석원리는 우울증이라는 용어 자체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 우울증의 증상들 중에서 우리는 각 우울증 환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갖는 정신착란적인 생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야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목소리와 행동이 야수와 닮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을 유리로 된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은 깨어지기 쉽고, 따라서 자신은 타인과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른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포함하여 일체의 죽음을 두려워한다. 따라서 종종 자신이 죽을 것 같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상상한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그것은 자신을 체포하여 사형을 언도하기 위해서라고 믿고 두려워한다." 정신착란적인 견해들은 이성 전체로부터 격리되어 있고, 따라서 이성의 총체성에 어떤 손상도 가져오지 않는다. 토마스 시드남(Thomas Sydenham)은 심지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들의 불평과는 달리 신중하고 감각이 예민하고 비범한 통찰력과 민감성을 가진 능력을 뛰어나다는 관찰할 수 있었다." 이러한 명백하고 일관된 증상들은 하나의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 그 단어는 인과성의 체계 전체를 함축하는 우울증이라는 단어이다. "나는 그대에게 우울증 환자의 생각, 말, 행위, 통찰력과 통찰방식을 자세히 검토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 그대는 얼마나 그들의 전감각이 그들의 뇌에 퍼져 있는 우울한 기분 때문에 황폐해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분적인 정신착란과 우울한 기분은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단지 우울증이라는 개념 속에서 병렬해 있을 뿐이었다. 그것들이 병렬될 수 있었던 것은 기호의 의미를 나타내 주는 이름에 의해서, 동일한 집단의 기호 속에서 한순간 동안 대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세기가 되자 부분적 정신착란과 우울한 기분은 통합되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양자는 서로 동일한 가치로 취급되어 상호 촉발이 가능해졌다. 음침하고 우울한 기분의 본성인 정신착란은 열광증, 정신분열, 발광과 비교되는 정신착란의 주된 특징적인 기분이 된 것이다. 헤르만 보어라브(Hermann Boerhaave)는 우울증을 단순히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그에 의하면 우울증은 "열광의 징후 없이 오랫동안 고집스럽게 지속되는 정신착란이며, 우울증에 걸려 있는 동안 환자는 단 하나의 생각에 집요하게 사로잡혀 있다." 반면에 뒤푸르(Dufour)는 그보다 몇 년 뒤에 우울증에 대한 자신의 정의에서 '공포와 슬픔'을 강조했다. 공포와 슬픔은 이제 정신착란의 특성의 한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상정되었다. "따라서 우울증 환자들은 고독을 사랑하고 친구나 타인과의 접촉을 피한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은 자신의 정신착란이 만든 대상이나 자신을 지배하는 열정에 더욱 집착한다. 반면에 그들은 그 밖의 것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식의 개념은 엄밀한 관찰이나 원인이 될 만한 영역의 발견을 통해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식의 개념들은 우울증이라는 이름에 함축되어 있음으로 해서 원인으로 추정된 것은 결과로서 지각되는 현상으로의 전이에 의해서 확정되었다.
17세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우울증에 관한 논의는 전통적인 네 가지 기분의 테두리 내에서만 이루어졌다. 이 네 가지 기분은 그러한 기분의 원인으로 간주되는 기질적인 실체에 내재한 고정되고 안정된 특질이었다. 장 페르넬(Jean Fernel)에 의하면 우울한 기분은 가을이라는 계절과 대지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기분은 "언제나 변함 없는 일관되고 진한 액즙이며, 메마르고 냉담한 기질"이다. 그러나 17세기 초엽이 되자 우울증의 기원에 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반드시 우울증의 기질을 가져야만 하는가? 우울한 기분은 언제나 차고 메마른가-그것은 결코 따뜻하고 눅눅할 수 없는가? 작용하는 것은 기질적인 실체이고 전이되는 것은 우울증의 특질들인가? 이 논쟁은 제법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이제 이 논쟁의 결론을 요약해 보자.
(1)기질적 실체에 의한 우울증의 발생이라는 인과론은 지속적으로 특질의 운동이라는 인과론으로 대체되었다. 그 특질들은 어떤 실체적 매개수단도 없이 신체에서 정신으로, 기분에서 생각으로, 기관에서 행위로 즉각적으로 전달된다. 따라서 덩깡(Duncan)의 옹호자들에게는 우울증의 액즙이 우울증을 야기시킨다는 주장에 대한 최고의 증명은 우울증 자체에서 병의 특징 자체를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이 될 것이다. "이러한 우울증의 액즙은 광포한 분노보다 훨씬 더 심한 정도로까지 우울증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조건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액즙이 차가워지면 정신적인 성향들의 양이 줄어들게 되고, 액즙이 마르게 되면 오랫동안 정신의 성향들을 강하고 집요한 유형의 상상에 매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액즙의 색이 진해지면 정신적 성향들은 자신들의 본성적인 발랄함과 민감함을 상실하게 된다."
(2) 특질의 역학 이외에 또 다른 동학(dynamics)이 존재한다. 이 동학은 각 특질이 고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힘을 분석하게 해주는 동학이다. 즉 차가움, 그리고 기질과 특질들의 상태간의 대립은 대립의 정도에 비례하여 광포한 증상들을 발생시킬 것이다. 각 특질이 가지고 있는 힘은 그러한 특질에 저항하는 모든 것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 동시에 그러한 것들을 전부 잠식해 버린다. 따라서 본성적으로 우울증을 거의 견디지 못하는 여자는 그 힘의 침해를 가장 심각하게 받는다. "그녀들은 그 힘에게 잔인하게 이용당하고 동시에 그 힘에 의해 끔찍한 혼란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녀들의 기질과는 전혀 맞지 않는 우울증은 그녀들에게서 자신의 본성적인 체질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3) 그러나 때때로 한 특질 내에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나의 특질은 발전해 가는 동안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고, 따라서 자기 자신과 반대되는 것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리하여 "신체 내부의 모든 것이 과열되게 끓어오르고 체액이 다 소모되면 내장들은 뜨거워진다." 그러면 이제 이러한 열기는 차갑고 냉담한 우울증으로 변할 수 있다-거꾸로 세워진 초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촛농 때문에 촛불이 차갑게 꺼지는 것처럼 ... 신체의 이러한 차가움은 보통 신체가 자신의 활력을 거부하고 자신의 정력을 소진시키기만 하면 발생하는 과열된 열기의 결과이다. 특질들간에는 기질적 실체로부터 어떤 제약도, 어떤 예정도 거부하는 일종의 변증법적인 운동이 성립한다. 이러한 운동을 통해서 특질들은 역전과 모순을 거듭 겪으면서 발전해 간다.
(4) 마지막으로 특질들은 사건, 환경, 삶의 조건이나 상태에 의해서 변할 수 있다. 따라서 메마르고 차가운 특질은 따뜻하고 눅눅한 특질로 변할 수 있다. 물론 거기에는 처음 특질의 소유자의 삶이 두 번째 특질에 이끌리는 삶으로 변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여자들의 경우를 보자. "여자들은 대체로 언제나 게으름을 피운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땀을 적게 흘린다. 따라서 여자들의 기존의 열기, 성향, 기분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질적인 실체라는 토대로부터 자유로워진 특질들은 우울증이라는 개념의 형성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특질들은 여러 드러나는 증상이나 징후들 가운데에서 특정의 슬픔, 특정의 어두운 기분, 특정의 무기력의 윤곽을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특질들은 하나의 인과론적 토대를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질에 의해서 제시되는 인과론적 토대의 역할은 더 이상 기질생리학이 담당할 수 없고 관념의 생리학, 공포의 생리학이 담당하게 될 것이다. 우울증이라는 병적인 본체는 관찰 가능한 징후적 기호들이나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들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기호와 원인들 양자사이 또는 양자의 바깥의 어디선가에서 우울증이라는 병적인 본체는 특정의 질적인 정합성을 가진 것으로 지각되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정합성은 고유한 '전이의 법칙, 발전의 법칙, 변혁의 법칙'을 가진 것이었다. 우울증에 대한 이론적인 발전을 조절한 것은 의학 이론이 아니라 이러한 특징을 가진 비밀스러운 논리였다. 그것은 토마스 윌리스(Thomas Willis)의 저작들을 통해서 일찌감치 명백해진 사실이다.
얼핏 보면 윌리스의 저작들에서 행해진 분석들은 사변의 수준에서나 인정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윌리스의 설명 전체는 동물적인 성향들과 그러한 성향들의 고유한 역학적 성질을 이용하고 있다. 우울증은 "열광이나 발작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광기로서 공포와 슬픔을 수반한다." 우울증이 정신착란의 범주에 속하는 범위에서는, 즉 우울증이 진리와의 본질적인 단절인 한에서는 우울증의 기원을 정신적 성향들의 혼란스러운 작용과 뇌의 결함상태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우울증 환자를 "슬프고 소심할 정도로 꼼꼼하게" 만드는 공포와 불안이 정신적 성향의 작용이나 운동 자체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는가? 슬픔 자체를 야기시키는 고유한 공포의 메카니즘이나 정신적 성향들의 순환운동이나 작용이 존재할 수는 없는가? 데카르트에게는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윌리스에게는 더 이상 명백한 사실이 되지 못했다. 우울증은 활동성 마비나 졸도, 기절, 현기증, 또는 경련으로 취급될 수 없다. 사실상 우울증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정신분열로 해석될 수는 없다. 즉, 우울성 정신착란에서도 정신분열의 경우에 나타나는 정신적 성향들의 혼돈스러운 작용상태를 상정할 수 있다. 또한 정신착란-정신분열, 우울증 등의 일체의 광기에 공통된 바로 그 오류-은 정신적 성향의 작용 메카니즘에서의 교란상태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이 그토록 특징적이고 고유한 지평을 갖는 것은 우울증이 갖고 있는 슬픔과 공포라는 고유한 색채 때문이지 정신착란의 고유한 특질 때문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우울증의 병적 소질의 신비한 비밀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결국 정신적 성향의 역설적인 운동을 설명하는 것은 신체 내부의 물질적 조직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질들인 것이다.
우울증에서는 비록 광포함도 힘도 없는 미약한 것이라 할지라도 흥분은 정신적 성향에 의해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즉, 우울증에서 정신적 성향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경로를 따라 작용하거나, 모두에게 공통된 경로(aperta opercula)를 따라 작용하기 위해서 한 성향이 다른 성향을 밀어내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뇌의 물질들에서는 한 성향이 다른 성향을 밀어내기 위해서 다른 성향을 흡수하는 작은 구멍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정신적 성향이 따라온 작용 경로에서는 정신적 성향의 혼란은 아직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곧 정신적 성향의 활동은 약화되고 그 힘은 사라진다. 따라서 작용이나 운동은 중지한다. "더 이상의 도달은 그들에게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모든 정신착란에서 볼 수 있는 그와 같은 혼란에 의해서 야기되는 광포한 운동이나, 열광과 발작에서 볼 수 있는 외침은 우울증 환자의 신체를 통해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발작이나 소리지름과 같은 광포한 증상은 우울증에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우울증은 가장 무기력한 광기인 것이다. 무기력한 광기라는 이러한 역설은 정신적 성향들의 비밀스럽고 신비한 작용의 결과이다. 때때로 정신적 성향들도 거의 즉각적인 민첩성이나 번뜩이는 섬광과 같은 명료함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울증 때문에 그러한 민첩함이나 명료함도 기본적으로는 음울함이나 음침함의 지배하에 있다. 정신적 성향들은 결국 '어둠, 희미함, 불투명함'이란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정신적 성향들에 의해 뇌 속이나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상들은 '그림자와 그늘', 즉 어둠과 슬픔의 색채를 띠고 있다. 그러한 음울한 상상은 투명하고 깨끗한 빛의 접근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망상을 일으키는 포말의 형태를 띤 기운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다. 망상을 일으키는 이 기운은 유황질이나 알콜성의 성질을 갖지 않고 산성의 성질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산성 포말에서는 입자의 운동은 쉴 새 없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활동성은 미약해서 특별한 효과를 산출하지 못한다. 이제 이러한 산성의 포말성 기운이 소진해 버리면 아무 것도 남지 않고 불활성 점액질만 남는다.
그렇다면 산성의 포말성 기운은 우울증의 고유한 성질을 갖게 하는 것이고, 알콜성의 포말성 기운은 언제나 타오를 수 있기 때문에 발작을 일으키는 것인가? 그렇다면 또한 유황성의 포말성 기운은 계속되는 광포한 운동을 야기시키므로 열광을 일으키는 것인가? 이제부터는 우울증을 일으키는 '원인이나 공식화된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혈액에서 발생하여 뇌로 전달되고, 그리하여 산성의 부식성 기운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포말성 기운에 대해 고찰해야 할 것이다. 현상적으로는 우울증의 정신적 성향이나 기분에 관한 화학적 설명이 윌리스의 분석의 길잡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상 분석의 원리적인 단서는 우울증의 고통스러운 증상이라는 일차적인 특질에 의해서 제공되었다. 무기력한 혼란의 상태, 그리고 사고작용과 정서 모두를 해치는 산성의 통렬한 통증에 수반되는 어두운 마음 등의 증상적 특징이 원리적 단서가 되어 준 것이다. 산성의 포말성 기운을 설명하는 화학은 증상을 설명할 수 있는 장치가 아니라 우울증의 원인과 특징들을 설명하고자 채택된 것이다. 말하자면 우울증이라는 경험에 관한 현상학인 것이다.
약 70년 후에 우울증의 정신적 성향들이 동물적 성향과 동일하다는 주장은 그 과학성을 의심받기 시작했다. 그 이후 질병의 원인은 신체의 고체적인 요소와 액체적인 요소에서 찾아졌다. 로버트 제임스(Robert James)는 1743년 영국에서 편찬한 "의학사전"(Medical Dictionary)의 조증(mania)이라는 항목에서 열광증과 우울증의 비교를 통해 우울증의 원인을 제시하고 있다 : "뇌는 명백히 이러한(우울증의) 본성을 가진 질병이 발생하는 자리이다. ...창조주는 영혼, 정신, 천성, 상상력, 기억력, 그리고 일체의 감각작용이 발생하는 장소로 뇌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뇌의 정상 기능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변질되고 약화되고 나빠지며, 심지어는 뇌의 기능이 완전히 파괴되기도 한다. 즉, 혈액과 체액이 양과 질의 측면에 있어서 오염되고, 따라서 더 이상 잘 조절되고 항상적인 과정을 통해 뇌에 전달되지 못하고, 대신에 뇌에서의 혈액과 체액의 순환이 격렬하고 급하게, 또는 정상보다 느리고 힘겹게 진행될 때 뇌의 정상 기능은 변질되거나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무기력하고 느린 순환, 원활한 소통이 힘든 막힌 혈관, 심장이 신체의 전기관에 배분하기에 매우 힘든 혈액, 따라서 뇌의 미세동맥에 전달되기에도 힘든 혈액, 그렇기 때문에 뇌에서는 사유의 운동을 유지하기 위해서 빠른 혈액순환이 일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현상-이러한 고통스러운 순환장애가 우울증을 설명해 준다. 말하자면 여기서 다시 한 번 힘겨움, 장애라는 원초적 특질이 분석의 길잡이로 등장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설명의 중점은 환자의 상태, 행위, 말을 통해서 지각되는 특질들의 유기적 작용으로 넘어간다. 우리는 질적인 설명에서 추론적인 설명으로 옮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여전히 횡행했고 이론적 정합성이라는 점에서는 언제나 우위를 점했다. 안느 - 샤를르 로리(Anne-Charles Lorry)는 고체와 액체를 가지고 두 개의 중요한 의학적 설명원리를 병치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로리는 그 두 원리를 분리시켜 우울증을 두 종류로 구분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고체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신경성 우울증이다. 하나의 감각이 특별히 강해질 때 그 감각은 감각을 받아들이는 신경섬유를 자극하여 흥분시킨다. 그 결과 긴장은 다른 신경섬유에로 전이되어 배가되고, 이 신경섬유는 보다 강직되며 동시에 정상치 이상으로 진동하게 된다. 그러나 감각이 훨씬 더 강해진다면 다른 신경섬유들에서의 - 처음의 신경섬유에서 전이된 - 긴장은 더욱 더 심해져서 다른 신경섬유들은 오히려 진동을 할 수 없게 되고, 대신에 동물적 성향들이 고착된다. 우울증은 이 단계에서 생겨난다. 질병의 다른 형태인 액체형태를 보면 우선 체액은 우울한 기분으로 꽉 차게 된다. 그런 다음 체액이 점점 짙어지게 되고, 이렇게 짙어진 체액 때문에 혈액의 순환은 둔해지다가 뇌막에서 막히게 된다. 그 결과 신경계의 주요기관의 압축이 발생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신경섬유의 강직상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 현상은 체액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결과이상의 것이 아니다. 로리는 우울증을 두 종류로 구분하여 두 개의 설명체계를 만들었지만 그것은 단지 이중적인 이론구성에 불과했다. 경험의 질적인 토대는 여전히 동일한 것이다. 혈액 순환은 약화와 동물적 성향의 둔화, 그리고 사물에 대한 상상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음울한 불명료함, 혈관 사이를 졸졸거리면서 힘겹게 돌아다니는 점액질의 혈액, 우울하고 해롭게 혹독한 기분을 야기시키는 포말성 기운의 심화, 둔화되고 불안정해진 내장의 기능, 이러한 것들에 의해서 형성된 하나의 상징적 통합체는 사유나 이론적인 통합체라기보다는 감각적인 통합체이다. 그런데 우울증의 특징적인 낙인은 이러한 통합체에 의해서 찍히는 것이다.
이 견해는 충실한 관찰 이상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분석을 통해 우울증의 징후와 외적 증상들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분적 정신착란이라는 견해는 점차로 다음의 이유 때문에 우울증의 주된 징후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 즉, 부분적 정신착란으로는 슬픔, 통렬한 느낌, 고립성과 고착에 대한선호와 같은 특징적인 증상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18세기 말엽 정신착란 증세가 없는 모든 형태의 광기, 예를 들어 무기력증, 좌절감, 일종의 무감각함이란 특징을 갖는 광기는 모두 우울증으로 분류되었다. 제임스의 사전이 편찬된 무렵 이미 졸도성 우울증에 대한 논의가 행해지고 있었다. 졸도성 우울증에 걸린 환자는 "결코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동료 수감자나 간수가 강제로 걷게 하지 않는 한 절대로 제 발로 일어서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환자들이 동료 수감자나 간수를 피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에게 어떤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그들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을 뿐이다." 만일 이 경우 부동성과 침묵의 증상이 너무나 심해서 우울증의 특징적인 증상으로 규정될지라도, 이 경우들에서도 관찰자는 통렬한 슬픔, 무기력, 혼자 있고자 하는 성향만을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관찰자는 환자의 흥분이나 동요에 속아서 환자를 조증이라고 성급하게 진단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환자들은 분명히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타인과의 접촉을 기피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때문이며, 그들은 황색의 분위기나 색채를 가지고 있고, 매우 목마른 사람처럼 혀가 말라 있으며, 그들의 두 눈은 메마르고, 움푹 꺼져 있고 결코 눈물로 젖어 있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전신체는 메말라서 마치 불타는 듯이 뜨겁고, 그들의 얼굴은 어두우며 단지 공포와 슬픔만을 나타낸다. 고전주의 시대에 행해진 조증(mania)에 대한 분석의 발전과정을 보면 하나의 동일한 정합의 원리가 발견된다.
윌리스는 우울증과 조증을 대립시켰다. 우울증 환자의 정신활동은 전적으로 반사 또는 반향작용이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에게는 상상작용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다. 반면에 조증 환자의 상상작용은 격렬한 사고들의 끊임없는 분출과 변화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우울증 환자의 정신작용은 하나의 대상에 고정되어 그 대상에게만 비상식적인 중요성을 부여하지만 조증 환자의 정신작용에서는 일체의 관념과 개념이 해체된다. 조증 환자의 정신작용에 의해서 각 개념과 관념들은 정합성을 상실하거나 표상으로서의 가치를 왜곡당하게 된다. 여하튼 사유작용 전체는 진리와의 본질적인 관계를 방해받는다. 우울증에는 언제나 슬픔과 공포가 수반되듯이 조증에서는 뻔뻔함, 대담무쌍함, 발작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우울증이건 조증이건, 이러한 질병의 원인은 언제나 동물적 성향의 활동에선 찾아진다. 조증의 경우 동물적 성향은 특별히 특징적이다. 조증에서는 동물적 성향의 활동은 지속적이고 광포하여 뇌의 물질 속에 새로운 작은 흡수공을 꿰뚫어 버릴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의 결과 정합성이 결여된 횡설수설의 생각들, 폭발성행위, 휨 없는 지껄임의 물질적 토대가 형성된다. 말하자면 동물적 성향의 활동 결과 조증의 물질적 토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유해한 활동 전부는 광란스럽게 요동하는 유황성 액체의 활동은 아닌가? 이러한 활동 속에서는 정신적 성향을 일으키는 입자들도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입자들은 뇌의 어떤 물질에서든지 자극을 흡수하는 새로운 구멍, 자극을 전달하는 새로운 전달 경로를 만들어낸다. 또한 이러한 입자들은 스스로를 확산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마치 조증의 정신적 성향들이 신체의 전부분에로 흥분과 동요를 확산시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현상이다. 유황성의 광란성 액체는 조증의 현상이 구체화된 모든 상상들을 자신의 비밀스러운 활동을 통해 집결시킨다. 그리하여 유황성의 광란성 액체는 망상의 성격을 갖는 조증의 신화와 조증의 역동적인 진리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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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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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症下藥(대증하약) 對(대할 대) 症(증세 증) 下(내릴 하) 藥(약 약)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화타전(華 傳)에는 동한(東漢) 말기 뛰어난 의술로 신의(神醫)라는 칭송을 받았던 화타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한번은 고을의 벼슬아치인 예심(倪尋)과 이연(李延) 두 사람 모두 고열(高熱)과 심한 두통(頭痛)을 앓게 되었다. 다른 의원들이 와서 그들을 살펴 보았으나 효과가 없자, 결국 화타가 초빙되어 왔다. 그는 두 사람의 상태를 살펴 본 후, 각각 다른 처방을 내렸다. 증상이 똑같은 두 사람에게 각기 다른 약을 먹게 하자, 많은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 이유를 물었다. 화타는 예심은 신체 외부에 병은 없으나 잘못 먹어 내부에 배탈이 났으므로 사약(瀉藥)을 먹어야 하고, 이연은 신체 내부에 병은 없으나 외부의 영향으로 감기에 걸린 것이니 발산약(發散藥)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對症下藥(There is a slave for every sore) 는 증세에 맞게 약을 써야 한다 는 뜻이며, 이는 곧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보고 대처해야함 을 비유한 말이다. 환경문제, 학원 폭력 문제, 기아(起亞) 문제 등을 놓고 말들이 많다. 증세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이에 맞는 처방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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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과학 / 예술 / 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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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다살이 - 권오길
26. 장은 피로회복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잠을 자야 꿈을 꾸지"란 말은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란 말과 같이 어떤 순서를 밟아가는 과정이 있어야 결과를 얻는다는 뜻이 되겠다.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노려 잠 없는 꿈. 대낮에 별을 따겠다고 설쳐대니 허황하기 그지없다. 어쨌거나 역사는 밤에 이루어져 사람이 병이 낫고 키가 크는 것도 주로 밤에 일어난다. 실제로 밤 11시 이후에 면역성이 높아지고 그래서 상처의 치유도 그때 왕성하다고 하니 밤잠의 의미를 높이 평가해야 하겠다. 젖먹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도 밤이요. 오이, 호박줄기도 밤에 주로 성장한다니 '밤의 역사'는 정녕 여러가지 뜻을 지녔다 하겠다. 실제로 염색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밤에 세포분열 관찰을 하므로 그 효과를 높인다. 세포분열 시기 중 중기가 제일 염색체 관찰이 좋은 때인데 분열이 왕성해야 중기를 많이 찾고 그래야 염색체의 개수나 크기, 형태 등을 쉽게 관찰하게 된다. 그래서 세포학자들은 밤에 주로 활동한다. 사람의 탄생도 주로 밤이다. 모든 생물이 해뜨기 전에 벌써 유전자 발현을 위한 준비를 해놓고 있다고 하고 '생명이 태동하는 인시(3~5시)'란 옛말에는 이런 과학적 근거가 있다.여름철 호박꽃이 피는 것을 봐도 전날 해거름녘이면 내일 아침에 필암수꽃을 알아낸다. 꽃봉오리가 팽팽히 부풀어 나고 노란색을 띠는데 아니나 다를까 꼭두새벽에 나가보면 샛노란 꽃잎을 활짝 펴고는 벌써 호박벌 받을 준비를 끝내고 있다. 그때는 호박꽃 피는 소리가 들린다. 밤이 준 선물인 것이다. 사람이 잠이 드는 과정을 보면 잠이 들 듯하다 깨고 다시 수면으로 들다가 깨어 세번째에야 진짜 잠으로 들어가는데 이것은 사람이 죽어갈 때의 과정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닭의 목을 비틀어 날갯죽지 밑에 넣어 붙들고 있어 보면 세번 요동을 치고야 죽는 것을 보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의 죽음과 같다. 이렇게 잠이 드는 것과 명이 끝나는 것이 왜 서로 비슷한지 아직까지 아무도 설명을 못한다.
그러면 잠은 왜 자는 것일까. 졸음이 오는 것을 우리는 피로 때문이라 하지만 습관적으로 자는 시간만 되면 잠이 쏟아지는 것은 또 왜 그럴까. 분명한 것은 사람 몸도 조수처럼 때가 되면 잠이 오고 또 잠이 깨는 생물학적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우리 몸 안에 생물시계(biological clock)가 들어 있어 새벽녘에 수탉이 제 시간에 꼭 맞춰 울 듯이 정해진 일주기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잠을 자는 것은 뇌(대뇌) 피로 회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대뇌의 피로 회복에 필요한 시간은 짧게는 70분이면 충분하다고 하니 7~8시간의 수면은 우리 몸의 모든 조직(기관)의 피로를 풀기 위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몸에 분포한 13만 킬로미터나 되는 혈관도 쉬어야 한다. 잠이 들면 심장박동은 물론이고 호흡수도 줄어들고 모세혈관도 반이 닫혀지고 그래서 체온까지 떨어진다. 온몸의 대사기능이 떨어지게 되니 그것이 잠이요, 휴식인 것이다. 서 있거나 앉아 있을 때는 피를 위 아래로 흘려야 하니 심장에 힘이 가나, 드러누워 잠을 자면 피 흐름도 옆으로 물 흐르듯 쉽게 순환하니 심장의 부담도 덜게된다.
그런데 잠을 자는 것을 잘 뜯어보면 처음 잠이 든 자세로 자지 않고 엎치락뒤치락 대략 20~30분마다 한번씩 몸부림을 친다. 그래야 될 것이 내장만 봐도 한쪽으로 누워 있으면 그쪽만 눌려져서 그곳에는 피가 통하지 못하니 자꾸만 움직이는 것이다. 식물도 잠을 자고 소도 닭도 염소도 잠을 잔다. 야행성 동물은 반대로 낮에 자고(쉬고) 밤에는 활동하는데 이 점도 재미가 있다. 주행, 야행은 그 동물의 먹이가 주행이냐 야행이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에서 보면 어느 생물이고 일만 하고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물이 잠을 잔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어느 식물이나 해가 지고 나면 이파리를 오므려 줄기 끝의 새순을 보호하는 것을 보는데 그것도 식물 잠의 한구석이라 봐도 되겠다. 그것보다도 식물에 밤낮으로 세게 인조광선을 비춰주면(잠을 재우지 않으면) 잎, 줄기, 뿌리(영양기관)의 성장은 촉진되어 잠자는 식물보다 훨씬 웃자라게 된다. 여기서 '웃자란다'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조금더 계속해서 읽어보자. 이렇게 키운 식물은 꽃(생식기관)이 피고 열매가 맺는데 문제가 생긴다. 이렇게 잠을 재우지 않으면 어쨌거나 꽃이 되는 데까지는 어떻게 이를 수가 있으나 열매맺기(결실)를 하지 못한다. 실제로 어느 군부대 담 아래의 벼가 수확량이 줄어서 보상을 요구한 민사사건이 있었다. 그 담에는 밤마다 대낮같은 불빛을 내뿜어 벼가 수면부족증에 걸렸더라는 것이다. 식물도 잠을 자야한다. 꿈을 이루고 싶으면 잠을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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