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2 - 임어당
제10장 자연의 즐거움
6. 장조의 경구 열 가지
자연의 즐거움은 시문이나 회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말하였다. 자연은 인생 전반 속에 파고 드는 것이다. 자연이란 모든 소리이며 색깔이며 기분이며 분위기이다. 슬기롭고 재빠른 생활 예술가인 인간은 우선 자연의 정당한 기분을 가려내어 그것을 자기의 기분에 조화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중국의 모든 시인 문인의 태도다. 그러나 그 가장 뛰어난 표현은 장조(17세기 중엽의 사람)의 저서 <유몽영> 중의 경구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문학적인 격언을 모은 것으로, 이러한 종류의 격언집은 중국에 그 수가 많이 있으나 장조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안데르센의 동화가 영국의 오랜된 옛이야기와 관계가 있고, 슈베르트의 예술적인 가요가 민요와 관계가 있는 것처럼, 이러한 문학적 격언은 민속적인 속담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세상에서 매우 사랑받고 있으며, 한무리의 중국의 학자들이 참으로 유쾌하고도 경쾌한 기분으로 그 격언 하나하나에 저마다의 평석을 붙였을 정도다. 그러나 여기서는 자연의 즐거움에 대한 가장 우수한 것 몇 가지만을 번역하는 것으로 그치기로 한다. 그러나 인생에 관한 격언도 매우 뛰어난 것이 몇 편 있고, 전편 가운데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몇 절을 마지막으로 수록하기로 했다.
A. 무엇이 본격인가? 꽃에는 나비가 있고, 산에는 샘이 있으며, 바위에는 이끼가 있고, 물에는 논냉이가 있으며, 교목에는 이에 기생하는 덩굴이 있게 마련이며, 인간에게는 도락이 있다. 이것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꽃은 미인들과 함께 즐겨야 하며, 달빛 아래 술은 마음에 맞는 유쾌한 친구들과 함께 즐겨야 하며, 눈빛은 품격이 고상한 선비들과 함께 즐겨야 한다. 꽃을 심는 것은 나비를 부르기에 좋다. 바위를 쌓는 것은 구름을 부르기에 좋다. 소나무를 심는 것은 산뢰(산바람이 나무가지를 스치는 소리)를 부르기에 좋다. 노대를 마련하는 것은 달을 부르기에 좋으며, 파초를 심는 것은 비를 부르기에 좋다. 버드나무를 심는 것은 매미를 부르기에 좋다. 사람은 높은 누각에서 산을 바라보고, 성벽에 서서 눈을 바라보며, 등불 아래서 달을 우러러보며, 조각배에서 아롱진 구름을 감상하며, 방안에서 미인을 대한다. 정경에 따라 정취는 스스로 다른 것이다. 매화 옆에 가까이 있는 바위에는 <고색창연>한 맛이 있어야 하며, 소나무 밑의 바위는 <우둔>해야 하며, 대나무 옆에 있는 바위는 가냘퍼야 하며, 수반 옆에 있는 바위는 <정교>해야 한다. 맑고 푸른 물은 푸른 산에서 흘러 나온다. 물이 산의 빛을 빌어오기 때문이다. 명시는 향긋한 술에서 나온다. 거울이 못 생긴 여자를 대할 때, 세상에 희귀한 벼루가 옹졸한 주인의 손에 들어갔을 때, 명도가 하찮은 장수의 손에 쥐어졌을 때 모든 것을 끝장을 보는 것이다.
B. 꽃과 여자에 대하여 꽃이 시들고, 달이 지며, 미인이 명이 짧아 일찍 죽는 것은 차마 볼 것이 아니다. 꽃을 심어 그 꽃이 활짝 피는 것을 봄이 좋다. 달을 기다려 만월이 된 것을 관상함이 좋다. 저술은 완성된 것을 봄이 좋다. 미인은 쾌활하고 즐거워 보일 때 보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낙심할 뿐이다. 미인을 보는 때는 아침 화장을 한 뒤라고 알아야 한다. 밉지만 볼품있는 얼굴도 있다. 밉지는 않지만 보기 싫은 얼굴도 있다. 문법에는 맞지 않지만 애독할 만한 문장도 있다. 문법이 지나치게 맞아도 읽기 힘든 나쁜 글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속이 얕은 사람들에게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들이다. 미인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은 마음으로 꽃을 사랑하면 꽃의 각별한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꽃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은 마음으로 미인을 사랑한다면 특히 사랑스럽고도 귀여운 맛을 알 수 있다. 미인은 말을 알기 때문에 꽃보다 낫고, 꽃은 향기를 풍기기 때문에 미인보다 낫다. 양손에 미인과 꽃을 다같이 잡을 수 없다면 향기를 풍기는 꽃을 버리고 말하는 꽃을 잡도록 하라. 짙은 붉은 색 꽃병에 꽃을 꽂으려면 꽃병의 크기와 높이가 꽃과 균형이 맞도록 할 것이며, 또 꽃병 빛깔의 짙고 연함이 꽃과 좋은 대조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요염한 고운 꽃에는 대부분 좋은 향기가 없다. 몇 겹이나 꽃잎이 포개져 있는 꽃은 대개 밉다. 아아, 세상에 완전한 것이란 참으로 드물구나! 양쪽을 모두 갖춘 것이라곤 오직 연꽃이 있을 뿐이다. 매화는 사람에게 청쾌한 느낌을 주고, 난은 그윽한 느낌, 국화는 소박한 느낌, 연꽃은 만족한 느낌을 암시한다. 봄철 해당화는 사람의 정열을 태우고, 모란은 용기와 의협, 대나무와 파초는 맑고 소슬하며, 가을 해당화는 우아한 기품을 나타내고, 소나무에는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사는 사람의 느낌이 있고, 오동나무는 사람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며, 버드나무는 사람의 감상을 돋군다. 미인이 꽃 같은 얼굴, 새 같은 목소리, 달 같은 정신, 버드나무 같은 모습, 가을 호수의 아름다움, 경옥의 뼈, 눈과도 같은 살결, 시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지극히 만족하다 하겠다(참으로 그러하다! 임어당 역시...) 만일 이 세상에 책이 없다면 아무것도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책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니까 읽어야 한다. 만일 술이 없다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술이 있다. 그러니까 마셔야 한다. 만일 명산이 없다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명산이 있다. 그러므로 명산을 찾아야 한다. 만일 꽃과 달이 없다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꽃과 달이 있다. 그러므로 꽃과 달을 즐기며, 이와 함께 놀아야 한다. 만일 재주 있는 사람과 아름다운 사람이 없다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재사와 미인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사랑하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 거울이 못 생긴 여자의 적이 되지 않는 것은 거울에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감정이 있다면 틀림없이 산산조각으로 깨뜨려지고 말 것이다. 이제 막 사온 아름다운 화분의 꽃에도 사람은 사랑을 느낀다. 하물며 <말하는 꽃>에 대해서는 그 얼마나 깊은 애정을 느낄 것인가! 시와 술이 없다면 산수도 헛되이 가로놓여 있을 뿐, 좋은 사람과 아름다운 여인이 없다면 꽃과 달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재주가 뛰어나고 용모가 빼어난 사람, 아름답고 재주가 뛰어난 여자는 둘 다 오래도록 살기 어렵다. 반드시 신의 시새움만은 아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일대의 보배일 뿐 아니라, 만대의 보배이므로 그 신성함이 모독될 것을 두려워 하여 조물주가 이 세상에 오랫 동안 머물러 있게 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C. 산수에 대하여 우주의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강하게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 하늘에는 달이 있고, 악에는 금이 있고, 날짐승에는 두견새가 있고, 초목에는 버들이 있다. 달과 함께 구름을 근심하고, 책과 더불어 좀벌레를 근심하고, 꽃과 함께 폭풍을 근심하고, 재사나 미인과 함께 가혹한 운명을 근심하는 것은 부처님의 대자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의 <마음의 벗>, 다시 말해서 <나를 알아 주는 사람>이있으면 죽어도 후회됨이 없다. 옛날의 어느 문인은 꽃과 달과 미인이 없으면 이 세상에 태어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말에 덧붙여서 이렇게 말하겠다. 만일 필묵과 바둑과 술이 없다면 인간으로 태어나서 무엇하겠는가. 산의 빛, 물의 소리, 달의 빛깔, 꽃의 향기, 문인의 매력, 미인의 모습, 이 모든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사람의 마음을 끌어 당긴다. 사람은 이러한 것들을 꿈꾸고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러한 것에 생각을 달리고는 식욕을 잃어 버린다. 눈은 고매한 선비를 생각케 하고, 술은 숙달한 검객을 생각케 하고, 달은 정든 친한 벗을 생각케 하고, 산수는 작자의 마음에 흡족한 시문을 생각케 한다. 풍경엔 지상의 풍경, 화면의 풍경, 꿈에 보는 풍경, 머릿속의 풍경 등이 있다. 지상의 풍경의 아름다움은 그 깊이와 파격적인 윤곽이 있다. 화면의 풍경의 아름다움은 필색의 자유와 다채로움이 있다. 꿈에 보는 풍경의 아름다움은 이상하게 변하는 기막힌 그 경치에 있다. 머릿속의 풍경의 아름다움은 모든 것이 정연하게 있어야 할 곳에 자리잡고 있는 데에 있다. 여행을 하면서 지나가는 경치에 대해서는 예술적으로 그 좋은 곳만을 고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살 곳을 정하여 일생을 보내려는 장소에 대해서는 그 좋은 점만을 가려서 골라야 한다. 죽순은 야채 중에서 진귀한 것이며, 여지는 과일 중에서 진귀한 것이며, 게는 수서동물 중에서 진귀한 것이며, 술은 음식물 중에서 진귀한 것이며, 달은 천계에서 진귀한 것이며, 서호는 산수에서 진귀한 것이며, 송의 서정시 사와 원의 극시 곡은 문학에서 진귀한 것이다. 이름 높은 산수에 접하려면 숙명적인 행운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나에게 정해진 때가 오지 않으면 비록 근처에 있다 하더라도 산수를 찾을 만한 때는 없다. 거울을 비치는 영상에도 섹이 있다. 그러나 달빛 아래 영상은 펜으로 그린 스케치다. 전자는 명확한 윤곽이 있는 그림이지만 후자는 <골격이 없는 그림>이다. 달빛에 떠 있는 산수의 그림자는 하늘 나라의 지리이며, 물에 비치는 별과 달의 그림자는 땅 위의 천문이다.
D. 봄과 가을에 대하여 봄은 하늘의 뜻이 자연을 따르는 계절이고, 가을은 하늘의 뜻이 변함을 나타낸 것이다. 옛사람은 겨울을 다른 세 철의 <부속물>(즉 쉬는 시간)이라고 하였지만 나는 여름은 <세 가지 부속물>의 계절이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름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밤의 <부속물>, 여름 한밤중에 일어나 있는 것은 낮의 <부속물>, 낮잠은 사교의 <부속물>이다. 옛 시인이 말한 것처럼 나는 진심으로 <여름날의 긴 것을 사랑한다> 사람은 가을의 정신을 가지고 내 몸을 단련할 것이며, 봄의 정신을 가지고 남을 대해야 한다. 명문과 당시는 가을 정기로 맑아져야 하며, 송의 유명한 서정시와 원의 극시는 봄마음으로 향기로워야 한다.
E. 소리에 대하여 봄의 새가 지저귀는 소리, 여름의 매미가 우는 소리, 가을 벌레가 우는 소리, 겨울에 내리는 눈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낮에는 바둑두는 소리에, 달빛을 받으면서는 피리소리에, 산에서는 소나무를 스치는 바람소리에, 물가에서는 잔물결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젊은 부랑배가 거리에서 싸움을 시작하거나 마누라가 귀찮은 잔소리를 퍼부을 때는 귀머거리가 되는 것이 가장 좋다. 거위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 남경에 있는 것같이 생각된다. 썰매타는 소리를 들으면 소주, 창주, 호주에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바닷가에 물결치는 소리를 들으면 절강에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여윈 말의 방울소리를 들으면 사안으로 가는 나그네 길에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소리는 모두 떨어져서 듣는 것이 좋다. 다만 금소리 만은 곁에서 들어도 좋고 떨어져서 들어도 좋다. 소나무 아래서 금소리를 들을 때, 달빛을 받으며 피리소리를 들을 때, 골짜기를흐르는 시냇물에 내려가서 폭포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 산속에서 염불하는 소리를 들을 때 귓가에 그윽한 향기가 감돈다. 물소리에는 네 가지가 있다. 폭포 떨어지는 소리, 솟는 샘물 소리, 물살이 세게 흐르는 소리, 도랑을 흐르는 소리. 바람소리에는 세 가지가 있다. 소나무를 흔드는 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 수면을 달리는 폭풍 소리. 빗소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오동과 연꽃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처마에서 통속으로 떨어지는 빗물 소리.
F. 비에 대하여 비라는 것은 낮을 짧게, 밤을 길게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봄비는 영예로운 상을 주는 칙서와도 같고, 여름비는 기결수에게 내리는 사면장과도 같고, 가을비는 만가와도 같다. 봄비는 독서하기에 좋고, 여름비는 바둑두기에 좋으며, 가을비는 가방 속이나 다락방 속을 뒤지기에 좋고, 겨울비는 술 마시기에 좋다. 나는 비의 신에게 편지를 내어 다음과 같이 말하련다. 봄비는 정월 보름이 지난 뒤에 내리고, 청명절(3월 3일, 그 무렵에 복숭아 꽃이 피기 시작한다)의 10일 전까지 계속해서 내리고, 모내기 때(곡우)에도 내리게 해 주십시오. 여름비는 매달 초순에 열흘과 그믐께 열흘에 내리도록 해 주십시오(달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을비는 7월과 9월의 초순께 열흘과 그믐께 열흘에 오도록 해 주십시오(8월, 즉 중추에는 중추의 보름달을 감상하기 위하여 하루도 비가 내리지 않도록). 겨울의 석 달은 비 한 방울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G. 달과 바람과 물에 대하여 사람들은 초승달이 너무 빨리 진다고 화를 내고, 그믐달이 너무 늦게 뜬다고 또 화를 낸다. 달빛 아래 독경하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은 점점 더 속세에서 멀어져 가고, 달빛 아래 검법을 논하면 용기가 점점 더 떨치며, 달빛 아래서 시를 논하면 운치 있는 기상은 넓고 끝이 없어 세상을 멀리 떠나며, 달빛 아래서 미인을 보면 마음의 번거로움이 더 한층 깊어간다. 달을 벗삼아 놀려고 생각하면, 달이 밝게 빛나고 있을 때에 낮은 곳에서 우러러 보고, 안개가 깊어 달이 밝지 못할 때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좋다. 봄바람은 술과 같고, 여름바람은 차와 같고, 가을바람은 연기와 같으며, 겨울바람은 생강과 같다.
H. 한가로움과 우정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이 정색을 하는 일에 정색하지 않은 사람들만이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일에 정색을 한다. 세상에 한가로운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한가롭다고 해도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가로움은 사람에게 글을 읽게 하며, 며승고적으로 여행을 하게 하며, 좋은 친구를 사귀게 하며, 술을 마시게 하며, 글을 쓰게 한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기쁨이 있겠는가. 구름에 햇빛이 비치면 운애가 되고, 골짜기를 흐르는 계류가 절벽에 이르면 폭포가 된다. 서로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이름도 달라진다. 이것이 우정의 존귀한 점이다. 정월 보름 날, 등절을 축하할 때는 담담하게 벗과 술을 마시고, 5월 5일, 용단절을 축하하려면 잘 생긴 벗과 함께 마시며, 7월 7일, 한 해에 한 번 견우 직녀가 만나는 것을 축하할 때는 유쾌한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며, 중추절에 보름달을 바라볼 때는 조용하고도 온순한 친구를 상대해야 하며, 9월 9일, 중양절에 높은 산에 오를 때는 로맨틱한 친구와 함께 마셔야 한다. 아는 것이 많은 벗과의 정담은 좀처럼 보기 드믄 진기한 책을 읽는 것과 같고, 시취를 아는 벗과의 정담은 우수한 작가의 시문을 읽는 것과 같으며, 조심성 많은 벗과의 정담은 성현의 경서를 읽는 것과 다름이 없고, 기지 있는 벗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소설이나 전기소설을 읽는 것과 다름이 없다. 조용한 선비에게는 반드시 몇 사람인가의 마음의 벗이 있다. <마음의 벗>이라는 것은 반드시 생사를 맹세한 벗을 의마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마음의 벗이라는 것은 수백리를 서로 떨어져 있어도 절대로 자기를 믿어 주며, 자기에 대해 나쁘게 평하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 또 그러한 소문을 들었을 때도 모든 수단을 다하여 그것을 변명하고 부인해 주는 사람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이렇게 하라, 이렇게 하면 안된다고 충고해 주는 사람들, 위기에 처했을 때는 도와 주고, 때로는 이쪽이 모르는 동안에 자기의 생각대로 빚을 정리해 주거나, 하는 일에 따라서는 지나친 간섭이라고 할 만한 일이라도 도무지 아랑곳하지 않고 단안을 내려줄 만한 사람들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다. 마음의 벗, 즉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처첩보다도 친구 사이에서 이를 찾기가 더 쉽다. 군자의 관계에서 마음의 벗을 찾아보기란 더 한층 곤란하다. <명저>란 선인이 일찌기 말하지 않는 것을 저술한 책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다. <마음의 벗>이란 가정의 비밀을 서로 털어놓을 수 있는 벗이다. 시골 생활은 좋은 벗들과 함께 살 수 있어야만 즐거움이 있다. 곡식 종류를 분별하거나 내일의 날씨를 알아맞히는 일밖에 모르는 농사꾼이나 나무꾼에게는 이내 싫증이 나고 만다. 또한 친구도 여러 가지가 있다. 시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첫째이고, 이야기를 잘 하고 정담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둘째이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세째이고,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사람이 네째이며, 술을 통하는 사람이 다섯째이다.
I. 책과 독서에 대하여 한창 젊었을 때 책을 읽는 것은 작은 틈을 통하여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고, 늙어서 책을 읽는 것은 푸른 하늘 아래 노대에 서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독서의 깊이는 체험의 깊이에 따라서 변하기 때문이다. 글자 없는 책(즉 인생 그 자체인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만이 그야말로 현묘한 말을 할 수 있다. 말로 설명하기 곤란한 길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부처님의 극히 높은 예지를 터득할 수 있다. 예나 이제나 찬란하게 빛나는 문학은 그 모두가 피와 눈물로 씌어져 있다. <수호전>은 비분의 서, <서유기>는 정신적 각성의 서, <금병매>(호색 소설)는 수탄의 서. 문학은 탁자 위의 풍경이며, 풍경은 땅 위의 문학이다. 독서는 모든 기쁨 가운데서 가장 큰 기쁨이다. 다만 역사서를 읽으면 기쁨보다는 분함이 앞선다. 그러나 분노 속에도 기쁨이 있다. 경서는 겨울에 읽어야 한다. 겨울은 마음이 집중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서는 여름에 읽어야 한다. 여름은 한가로운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옛 철인의 책은 가을에 읽어야 한다. 사상에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후대 문인의 문집은 봄에 읽어야 한다. 봄은 대자연이 다시금 소생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문사의 병담은 대개 서재의 병학에 지나지 않는다(글자 그대로 지상의 병담이다). 무장이 문학을 논할 때는 대개 귀로 얻어 들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독서술의 참다움을 살피기에 철저한 사람은 만물이 화하여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산수 또한 책이 될 수 있고, 바둑도 술도 또한 책이 될 수 있으며, 달도 꽃도 또한 책이 될 수 있다. 현명란 여행자는 가는 곳마다 풍경이 있음을 안다. 책과 역사는 풍경이다. 술도 시도 풍경이다. 달도 꽃도 또한 풍경이다. 옛날 어느 문인은 말했다... 10년을 책읽기에 바치고, 10년을 여행에 바치고, 10년을 그 보존과 정리에 바치고 싶다고.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보존에 10년을 허비해서는 안된다. 이삼 년으로 충분해야 한다. 독서와 여행은 내 소망을 채우기에는 두 배나 다섯 배라도 아직 모자란다. 내 소망대로 하자면 <황구연> 선배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3백 세의 수명을 보존할 수밖에 없다. <시는 시인이 가난해지거나 불행에 빠진 뒤에야 비로소 좋아진다>고 옛 사람들은 말했다. 불행한 사람에게는 할 이야기가 많고 따라서 자기를 유리하게 발표하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출세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빈궁에 대한 한탄도 없고, 불행에 대한 아쉬움도 없이 언제나 바람과 구름과 달과 이슬에 대한 시만을 짓고 있다고 한다면 좋은 시가 나올 리 없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있어 시를 짓는 유일한 방법은 여행길을 떠나 눈에 띄는 모든 것, 산도 냇물도 들도 풍속도 생활하는 모습도, 때로는 전화나 굶주림에 시달리는 민중의 모습도 그 모든 것을 자기의 시의 소재로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자기 자신의 노래와 탄식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비애를 빌어온다면 구태여 가난해져서 불행해지기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좋은 시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J. 일반 모든 생활에 대하여 번뇌는 우주의 토대를 받치고, 재품은 그 지붕을 칠했다. 군자에게 멸시받는 것보다는 시정의 소인배에게 욕을 당하는 편이 낫다. 유명한 학자에게 인정받지 못하느니 시험관에게 낙제를 당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사람은 시처럼 살아야 하고, 사물은 그림처럼 보여야 한다. 고요하고 차분하기는 하지만 생각하면 우수에 젖는 쓸쓸한 정경이 있다. 안개나 비 따위가 그것이다. 시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견디기 어려운 것이 있다. 병과 가난이다. 귀엽게 들리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야비한 목소리가 있다. 꽃 파는 소녀의 꽃 사라는 목소리가 그러하다. 나 자신은 농사꾼이 될 수는 없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뜰에 물을 뿌릴 정도다. 나 자신은 나무꾼이 될 수는 없다. 풀을 뜯는 게 고작이다. 유감스러운 일, 화나는 일이 내게는 열 가지가 있다.
1. 책 겉장은 좀이 먹기 쉽고, 2. 여름밤은 모기 때문에 기분이 상하고, 3. 달을 바라보는 망월대는 비가 새기 쉽고, 4. 자칫하면 국화 잎이 마르기 쉽고, 5. 소나무엔 큰 개미가 잔뜩 끼고, 6. 대나무 잎은 한꺼번에 땅에 떨어져 쌓이고, 7. 물푸레나무와 연꽃은 시들기 쉽고, 8. 푸른 풀에는 뱀이 곧잘 숨고, 9. 울타리에 핀 꽃에는 가시가 있어 밉고, 10. 고슴도치에는 독이 있어 먹을 수 없다.
누군가가 방안에서 창호지에 글씨를 쓰고 있는 것을 창 밖에서 보면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꽃이 되려거든 훤초(물망초라고 부르는 식물)가 되어라. 새가 되려거든 두견새가 되지 말라(피눈물에서 진달래가 자랐다고 한다) 태평한 세월에 청렴하고 강직한 지사가 다스리는 산천 호소지방에 태어나서 남부럽지 않게 생활하는 집안에서 자라서 이해성 있는 아내를 맞이하고, 똑똑한 자식들을 둔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말하는 완전한 인생이다. 산이나 골짜기를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사람은 도시에 있어도 산속 숲에서 사는 것과 같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며, 구름에 마음을 쏟고 있으면 명부도 신선이 사는 섬으로 화한다. 고요한 밤에 홀로 앉아 있다... 달을 불러 나의 슬픔을 달래 본다. 좋은 밤에 홀로 있다... 벌레를 불러 내 마음 속의 회한을 풀어 본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그림을 풍경으로 보며, 화분의 모습을 뜰로 보고, 책을 자신의 벗으로 보아야 한다. 고명한 학자에게 아들의 교육을 부탁하는 것, 명산을 찾아서 시험 논문을 쓰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 유명한 문인에게 대작을 의뢰하는 것... 이 세 가지는 터무니 없는 사도다. 중은 술을 삼갈 필요는 없다. 다만 비속함을 떠나면 족하다. 여자는 문학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다만 무엇이 예술적으로 흥미 있는가를 이해하면 된다. 세무 관리가 덮칠 것으로 골머리를 앓는다면 지세를 바쳐야 한다. 중과 불법을 논하기를 낙으로 삼는다면 때로 사원에 시주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명성이라는 이 하나의 유혹만 잊어버리면 모든 일은 문제없이 잊어버릴 수 있다. 석 잔의 술만 있으면 세상 만사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술은 차를 대신할 수 있지만 차는 술을 대신할 수 없다. 시는 산문을 대신할 수 있지만 산문은 시를 대신할 수 없다. 원의 극시는 송의 서정시를 대신할 수 있지만 송의 서정시는 원의 극시를 대신할 수 없다. 달은 등불을 대신할 수 있지만 등불은 달을 대신할 수 없다. 붓은 입을 대신할 수 있지만 입은 붓을 대신할 수 없다. 여자 종은 남자 머슴을 대신할 수 있지만 남자 머슴은 여자 종을 대신할 수 없다. 가슴 속의 사소한 부정은 술로 지울 수 있지만, 천하의 부정은 검이 아니면 없앨 수 없다. 바쁜 사람의 뜰은 안채 바로 옆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가로운 사람의 뜻은 안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좋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사는 즐거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른바 고기잡이, 나무꾼, 농사꾼, 정원사, 승려이다. 뜰, 정자, 사랑하는 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른바 부유한 상인과 고관이다. 아픔을 참기는 쉬우나 가려움을 참기는 힘들다. 쓴맛을 견디기는 쉽지만 신맛을 견디기란 힘들다. 한가로운 사람의 벼루는 물론 좋은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나쁜 사람의 벼루일지라도 그래야 한다. 쾌락을 위한 애첩은 아름다와야 하겠지만 혈통을 끊지 않기 위한 애첩도 또한 아름다와야 한다. 황새는 로맨틱한 모습을 보이고, 말은 용감하고 늠름한 것을 보이고, 난은 속세를 버린 사람의 모습을 띠고, 소나무는 옛사람의 장중함을 나타낸다. 나는 언젠가 큰 나체 무도회를 열려고 생각하고 있다. 첫째 그 이유는 모든 시대의 재사들의 영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 모든 시대의 가인들의 영과 화목하기 위해서다. 다만 이것은 참된 고승을 찾아냈을 때에 실행하기로 하고, 그 고승에게 사회를 부탁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급히 먹고, 훌륭한 경치를 급히 보고, 심각한 감정을 경박하게 나타내고, 아름다운 하루를 먹고 마시는 일로 지내고, 부를 오로지 사치로만 즐긴다는 것은 신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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