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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814호
2011.2.20 (음 1.18)/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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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 한자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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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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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경험을 본문으로 친다면 반성과 지식은 주해서다. 경험이 적은데서 반성과 지식만이 많다고 하는 것은 두 줄의 본문에 마흔 줄이나 되는 주석이 달린 책이며, 그 반대가 된다면 주해를 달지 않은 채 불분명한 사실을 함부로 늘어놓은 책 따위와 같은 것이다. ─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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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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꽂감
서울 여의도에 있는 63빌딩을 64층으로 증축하였다면 그 빌딩의 이름을 어떻게 해야 할까? 숫자는 건물의 층수를 나타내므로 ‘64빌딩’으로 해야 하나, 63이라는 숫자는 층수의 의미에서 벗어나 그 건물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으므로 층수에 관계없이 ‘63빌딩’으로 해야 하나. 두 안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다.
“이밖에 유자향이 나는 볼펜과 당근을 꽂감처럼 말랑말랑하게 만든…”
중앙 일간지 기사에서 잘라온 구절이다. 사전은 ‘곶감’을 “껍질을 벗기고 꼬챙이에 꿰어서 말린 감”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곶감’은 ‘곶+감’으로 된 복합어다. ‘곶’은 ‘곶다’의 어간이고 ‘곶다’는 ‘꽂다’의 옛말이다. 그래서 ‘곶감’은 ‘곶은 감’이다. 한때 ‘먹거리’라는 말이 조어법상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있었듯이 우리말에는 ‘곶은 감’을 ‘곶감’이라는 복합어로 만드는 기능이 있다. ‘늦잠, 접바둑, 익반죽’ 등 수많은 예가 있다. 그런데 ‘곶다’는 현대어에서 ‘꽂다’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곶다’를 말밑으로 하는 ‘곶감’도 ‘꽂감’으로 바꾸어 써야 할까? 그렇게 바꾸어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곶감’은 하나의 단어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꽂다’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의 곶감은 꼬챙이로 꽂지도 않으므로 굳이 ‘꽂다’를 따를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언어대중은 ‘꽂감’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잦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글말에서는 대부분 ‘곶감’으로 쓰고, 사전도 ‘꽂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신문은 ‘곶감’으로 쓰는 것이 옳겠다.
우재욱/시인
아무개
아무개 아나운서 맞지요?
어느 날 택시 기사가 뜬금없이 내게 건넨 한마디. 방송 잘 듣고 있다, 요즘은 어떤 방송을 하느냐 따위의 말이 이어졌다. 온종일 라디오를 벗하며 사는 택시 기사이니 손님이 누구인지 목소리만으로 알아채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다. 내 이름 석 자까지 아는 기사 아저씨, 왜 ‘강 아나운서’가 아닌 ‘아무개 아나운서’라 했을까.
뉴스를 할 때, 특히 사건 사고 소식을 전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인 ‘모 씨’를 나는 ‘아무개 씨’라 했기에 그랬다. 일테면 ‘고속도로 삼중 추돌 사고로 운전자인 김 모 씨가 숨지고, 함께 타고 있던 박 모 씨 등 두 명이 크게 다쳤습니다’는 ‘… 김 아무개 씨가 … 박 아무개 씨 등 …’으로 말이다. 내가 ‘모 씨’를 ‘아무개 씨’로 전한 이유는 한자말보다 토박이말을 앞세워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특정 성씨의 경우 뜻하지 않게 조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김씨, 이씨에 이어 셋째로 많은 성씨인 박씨가 그렇다. ‘박 모 씨’의 소릿값은 [방모씨]. 기사에서 익명 처리한 ‘박 씨’가 방송 뉴스에서는 ‘방 씨’가 되기도 한다. ‘박 아무개’와 ‘방 아무개’로 하면 헷갈릴 일이 없지 않은가. 이런 까닭에 나는 한동안 ‘아무개’를 고집했다.
말과 글은 하나이면서 그렇지 않기도 하다. 방송말은 뉴스 원고와 구성 대본 같은 글이 바탕이어도 전달은 말로 한다. 소릿값을 제대로 따져 바르게 발음하는 것은 프로그램에 담긴 메시지와 뉴스의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토대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
신장이 좋다?
지난해 말 받은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
신장과 심장 기능 정상. 체중과 신장도 조금 늘었다. 비장과 담낭에 낭종 소견 있으니 추적 관찰 필요.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단백질 위주 식단 권장. 폐포 기능 향상을 위해 금연할 것. 건강검진 결과 통보서에 담긴 내용은 대충 이랬다. 같은 내용을 이렇게 풀어쓰면 어떨까. “콩팥과 염통은 제 몫을 하고 있음. 몸무게 늘고 키도 커졌음. 지라와 쓸개에 주머니혹이 있으니 더 자세히 살펴보기 바람. 녹말은 적게 흰자질은 많이 먹을 것. 허파꽈리가 제구실하게 담배 끊을 것.” 앞과 뒤 글월의 뜻은 같다.
비장과 담낭은 내 몸 어디에 있는 내장인지 해가 거듭되어도 여전히 헷갈린다. 비장(脾臟)=지라, 담낭(膽囊)=쓸개. 이번에는 제대로 알아두어야겠다. 지라는 왼쪽 콩팥 위에, 쓸개는 오른쪽에 있는 간 아래에 붙어 있다.
‘염통에 털 났다’(체면도 없이 아주 뻔뻔하다), ‘염통에 바람 들다’(마음이 들떠서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다)처럼 심장을 버리고 염통만 쓰자고 제안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자말도 외래어도 잘 품고 다듬어 써야 할 우리말이니까. 하지만 ‘신장이 좋다’는 말은 삼가야 한다. 스포츠 중계방송에 나선 해설자가 흔히 쓰는 이 말은 ‘키가 크다’ 하면 될 일이다. 그나저나 ‘겉은 멀쩡해 뵈는 아나운서가 속병을 앓고 있네’ 하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다. 내 ‘건강 성적표’를 그대로 옮겨 온 것은 아니니까. 독자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기 바란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있으매와 있음에
‘있으매’는 ‘있-’에 어미 ‘-(으)매’가 결합한 꼴이다. ‘-(으)매’는 어떤 일에 대한 원인이나 근거를 나타낸다. ‘강이 깊으매 큰 고기가 살고 덕이 넓으매 인물이 모여드니라.’
‘있음에’는 ‘있-’에 명사형 어미 ‘-음’과 부사격 조사 ‘에’가 결합했다. ‘에’도 앞말이 원인임을 나타낸다. 어감상 ‘있으매’는 ‘있으므로’, ‘있음에’는 ‘있기 때문에’와 비슷하다.
슬라이딩 도어
문은 열고 닫는 방법에 따라 크게 미닫이.여닫이로 구분된다. 옆으로 밀어서 열고 닫는 문이 ''미닫이''고, 문틀에 고정돼 있는 경첩이나 돌쩌귀를 축으로 해 열고 닫는 문이 ''여닫이''다. 구조와 여는 방식에 따라 외미닫이.쌍미닫이, 외여닫이.쌍여닫이, 가로닫이, 내리닫이 등으로 세분되기도 한다.
접이문과 들문도 있다. 병풍처럼 접어가며 열 수 있는 문이 ''접이문''이며, 천장 쪽으로 들어올려 매달 수 있게 만든 문이 ''들문''이다. 대형 건물에서 많이 사용하는 ''회전문''도 있다. 문이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출입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이들 문을 사람이 직접 열고 닫아야 했지만 근래에는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자동문이 설치된 곳이 많다. 주로 미닫이 문이나 회전문에 전자 장치를 달아 사람이 접근하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형태다. 단추를 누르거나 신분증 등을 갖다 대면 자동으로 열리는 방식도 있다.
요즘은 이들 우리말 이름이 아닌 ''슬라이딩 도어(sliding door)''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쓰이고 있다. 미닫이 문을 뜻하는 영어로, 특히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미닫이 문이 늘면서 ''슬라이딩 도어'' 또는 ''자동 슬라이딩 도어''란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영어 ''오토매틱 슬라이딩 도어(automatic sliding door)''를 줄여 대충 ''슬라이딩 도어''라 부르기도 한다.
디자인보호법 시행규칙에도 ''슬라이딩 도어''라는 용어가 나온다. 여기저기에서 ''슬라이딩 도어''가 우리말 ''미닫이''를 밀어내고 있다. ''미닫이(문)'' ''자동 미닫이 문'' 또는 그냥 ''자동문'' 등 우리말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영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병구완, 병구환, 병간호, 고수련
스페인의 국민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기 전까진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였다. 갓 스물의 그는 모든 게 끝났다고 절망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생각이 달랐다.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고 격려하며 매일같이 아들의 병상을 지켰다. 그리고 5년 뒤, 이글레시아스는 다시 걷게 됐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가수로 거듭났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듯이 오랜 병시중은 누구나 지치게 하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이 또한 무색하게 만든다는 걸 보여 주는 일화다. 이처럼 병을 앓거나 다친 사람을 곁에서 돌보는 일을 병구환.간병.병간호 등 다양한 말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엔 주의해야 할 표현이 있다. 흔히 ''병구환''으로 알고 사용하고 있지만 ''병구완''이 바른 표기다. ''구완''이 ''구환(救患)''에서 온 말이긴 하나 원말에서 변한 형태의 ''구완''을 표준어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병구완에 필요한 의료 지식을 습득해 간호사가 되려던 나이팅게일의 뜻은 가족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와 같이 써야 한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들의 간병 문제가 새로운 사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처럼 ''간병(看病)''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일본어의 잔재로 병간호.병구완 등으로 순화해 쓰는 게 좋다. 비슷한 뜻으로 ''고수련''이란 예쁜 우리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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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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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묻다 - 천서봉
나는 나의 아무것도 나무와 바꿀 생각이 없으나 그가 꿈꾸는 것들을 물어 본 적도 없다.
스님들은 일찍부터 禪房에 들었단다. 지나가던 보살에게 위치를 묻자 낮지 않은 돌담, 속세를 막아서는데 천천히 고개 돌려보니 담장 위로 낯을 내민 대숲이 오히려 나를 보고 있다. 앉았던 돌무지 위를 추스리며 내가 다가가자 대숲은 바람 지는 곳을 가리키며 이내 서걱거리고 사백 년이 넘었다는 느티나무는 그저 소소한 웃음만으로 제 주름 누르고 섰을 뿐이다. 나무들은 언제 이곳에 처음 뿌리 내렸을까. 나뭇잎만큼의 자잘한 햇살 밑으로 세월의 갈피를 펼치고 섬세한 잎맥들의 반흔을 짚어 가면 뒤바뀐 생의 主語들이 왈칵 쏟아져 내린다. 언젠가 내가 게워내던 순한 연둣빛 마른 가지를 닮은 사람 하나 정갈한 싸리비 자국을 밟고 한 번쯤 뒤돌아보며 스쳐가던 기억, 하늘에 닿지 않아도 가늠할 수 있던 내 오래된 궤도의 연원 위를 까치 한 마리 선 긋고 달아난다. 적요한 오후, 적멸궁에 매달린 물고기가 제법 소금기 가신 투명한 파동을 일으킨다. 이제, 나는 묻고 싶다. 우리의 모든 길은 어떻게 圓을 그리다 다시 그 자리에 숨쉬게 되는지. 슬쩍 돌아앉는 나무가 둥근 햇무리, 後光 아래로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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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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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린 후 - 최지향
비 온 후 맑은 햇살은 생생한 어린아이 웃음소리죠
밤사이 봄비가 소리없이 내리더니 마른 먼지 말끔하게 청소하고요.
억세고 딱딱하게 굳은 땅을 마술로 부드럽게 반죽하지요.
늦가을 열매주는 과실수를 기지개를 펴며 천천히 잎 내밀고요
봄 과일 만들기 바쁜 살구 복숭아 자두 일찌감치 화려한 꽃을 피웠다 진지 오래.
자연은 제모양대로 나다운 모습들 펼쳐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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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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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질 - 김녹촌
우리 집엔 소도 경운기도 없어서 어머니가 소가 되어 고추밭에 골을 탄다.
형님은 군에 가고 일손이 모자라 남보다 고추 모종이 늦어지자 답답해진 어머니.
남이 볼세라 머릿수건 푹 눌러쓰고 어깨에 멍에 걸어 소처럼 말없이 끙끙 쟁기 끌고 나가면, 아버지는 애처로워 이랴 이랴 소리도 못하고 그저 느릿느릿 쟁기만 밀고 나갈 뿐.
대대로 농사지어도 논밭도 적고 일손도 모자라 항상 가난을 벗지 못하는 우리 집.
밥짓고 빨래하고 안살림 살기만도 한짐인데 소가 되어 고된 일까지도 해야 하는 우리 어머니......
내가 어서 커서 의젓한 농부가 되어 소도 사고 경운기도 사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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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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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제6장. 작지만 확고한 행복을 나는 원한다
공부를 하기 싫어했던 나는 -나는 고교 시절에 "어느 면도사에게나 철학은 있다"는 서머셋 몸의 글을 읽고 감동했었다. 어른이 되어 술집을 경영하면서도, 어떤 온더록에도 철학은 있다, 하고 생각하면서 8년 간 매일 온더록을 만들었다
나는 학생 때부터 공부를 하기 싫어해서 성적이 그다지 신통치 않았던 편이지만, 그래도 '영문 일역' 참고서를 읽는 것만은 예의적으로 좋아했다. '영문 일역' 참고서의 어던 점이 그렇게 재미있느냐 하면, 거기에는 예문이 잔득 실려있기 때문이다. 이 예문을 하나씩 하나씩 읽거나 외우거나 하기만 해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고, 그런 일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틈엔가 극히 자연스럽게 영어 원서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학교의 영어교육의 문제점이 있다고 트집을 잡는 것은 아니지만, 전치사라든가 동사변화 같은 것을 아무리 정확히 암기한다 해도 원서는 읽을 수가 없다. 나는 그 무렵에 외운 예문을 지금도 몇 가지 기억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서머셋 몸의 '어느 면도사에게나 철학은 있다"고 하는 말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 앞 뒤 문장이 상당히 긴데, 그건 잊어버렸다. 요컨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매일 계속하다 보면 , 거기에서 자연히 철학이 생겨난다고 하는 취지의 문장이다. 여자의 입장에서 말하면, '어떤 립스틱에도 철학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는 고교시절에 서머셋 몸의 이문장을 읽고, '으음, 인생이란 그런 거로구나'하고 상당히 순진하게 감동했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 술집을 경영하면서도, '어떤 온더록에도 철학은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8년 간 매일 온더록을 만들었다. 그런데 온더록에 정말로 철학이 있느냐 하면, 대답은 틀림없이 '있다'이다. 물론 이 세상에는 맛있는 온더록과 맛없는 온더록이 있겠지만, 맛있는 쪽의 온더록에는 확실히 철학이 있다. 온더록이란 얼음 위에 위스키를 따르는 것 뿐이잖으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얼음을 쪼개는 방법 하나로도 온더록의 품위와 맛이 확 달라지는 것이다. 얼음도 커다란 얼음과 작은 얼음의 녹는 방식이 다르다. 커다란 얼음만 사용하면 투박해서 모양이 보기 싫고, 그렇다고 해서 작은 얼음이 많으면 금세 물이 많아진다. 그래서 크고 작은 얼음을 잘 배합한 뒤에 거기에 위스키를 따라야 한다. 그러면 위스키가 잔 속에서 호박색의 조그만 소용돌이를 그리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런 경지에 도달하기 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그런 식으로 몸에 익힌 조그만 철학은 나름대로 나중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백화점의 사계절 -백화점은 미묘한 계절감을 엿볼 수 있는 식물원과 비슷하다
여자들은 대개 백화점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나도 백화점을 끔직이 좋아한다. 그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는 동물원을 빼놓고는 달리 찾아볼 수 가 없고, 더군다나 입장료도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거리에는 놀랍게도 백화점이 다섯 군데나 있다. 물론 교외 도시라서 도심의 백화점처럼 규모가 크거나 물건을 많이 갖추어 좋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10분쯤 걸어간 곳에 백화점이 다섯 군데나 있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만 있으면(대개 매일 시간이 있지만), 역 앞까지 걸어가 백화점 안을 돌아다닌다. 백화점을 돌아다니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대는 뭐니뭐니해도 평일 오전 중이다. 붐비지 않고, 공기도 깨끗하고, 모든 것이 손을 대지 않은 느낌으로 빽빽이 늘어서 있다. 개점 직후에 가면 종업원이 비교적 공손히 인사를 하기도 한다. 붐비지 않는 백화점은 왠지 모르게 식물원과 비슷하다. 어슬렁어슬렁 거리면서 물건을 구영하다 보면, '아, 이제 슬슬 수국이 꽃봉오리를맺기 시작했겠구나'라든가, '목련꽃도 다 떨어졌겠군' 하는 것과 같은 미묘한 계절감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여름이 가까워 오면 백화점 안의 장식에서도 시원한 느낌을 받게 되고, 여름용 드레스나 수영복이나 서프보드(역주:파도 타기에 쓰이는 널빤지)나 어깨 끈이 없는 브래지어(그런 것을 너무 오래 보면 곤란하지만)가 눈에 띄게 되고, '벌써 여름이 왔구나!' 하고 실감을 하게 된다. 에어컨의 서늘한 바람을 여름 들어 최초로 접하는 곳도 대개는 백화점 안이다.가을의 낙엽 빛깔로 물든 백화점도 스웨터 냄새가 나서풍취가 있고, 크리스마스 전의 그 들뜬 분위기에 대해서는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백화점 옥상이라는 데도 상당히 즐거운 곳이다. 맑게 개인 날에 벤치에 앉아서 아이들과 함께 핫도그나 오징어 튀김을 먹거나, 제빙스 게임을 하며 놀거나 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며, 비가 내리는 날에 우산을 쓰고 옥상을 산책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최근에는 그럴 기회가 없어서 그다지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옛날에는 비가 내리면 여자와 둘이서 자주 백화점 옥상에 올라가곤 했었다. 옥외 테이블이나 목마 같은 것이 비에 젖어 있고, 주위의 풍경도 희미하게 흐려져 있었다. 당연한 거지만, 사람들도 거의 없다. 애완 동물 매장의 열대어가 언제나 변함 없이 수족관 안을 헤엄쳐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다. 백화점에는 아직도 발굴해야 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나는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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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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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2. 예언자 - 칼릴 지브란
이성과 열정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여사제가 말했다.
이성과 열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말했다.
그대들의 영혼이란, 떄로 이성과 판단력이 열정과 욕망에 대항하여 싸우는 전쟁터이다. 내가 만약 그대들 영혼의 조정자가 될 수만 있다면, 그대들 내부의 모든 불화와 적대를 하나로 만들고 노래로 화하게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대들 스스로가 조정자가 되지 않는 한, 아니 스스로가 내부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대들의 이성이나 열정이란 것은 바다 위를 달리는 그대들 영혼의 키이며 돛이다. 돛이나 키가 망가진다면, 그대들은 버려진 채 표류하거나 바다 한가운데에서 멈추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이란 홀로 지배하기엔 힘이 부족하며 버림받은 열정이란 다만 스스로를 부수어 불태워 버리는 불꽃이 될 뿐이기에. 그러므로 영혼으로 하여금 이성을 열정의 높이에까지 이르게 하고 노래하게 하라. 그리하여 이성으로써 열정을 인도하게 하라. 자기의 재 속에서 또다시 일어나는 불사조처럼, 그대들의 열정이 날마다 스스로의 부활을 통해 살아가도록. 그대들의 판단력과 욕망을, 집으로 초대한 귀한 손남처럼 생각하기를 내바라노라. 실로 그대들은 어느 한 손님만을 다른 손님보다 높이 대할 수는 없으리라. 왜냐하면 어느 한쪽에만 신경을 써준다면 결국 두 사람 모두의 사랑과 신뢰를 잃을 것이기 때문에. 그대들이 언덕 사이 흰 백양나무들의 시원한 그늘에 낮아 먼산과 들과 숲의 평화를 즐기고 있을 때면, 가슴으로 하여금 고요히 말하게 하라. 신은 이성을 믿으신다라고. 그리하여 폭풍이 몰아치고 거센 바람이 온 숲을 뒤흔들고 천둥번개가 하늘의 장엄함을 소리칠 때면 가슴으로 하여금 두려움에 떨며 말하게 하라. 신은 열정으로 움직이신다라고. 그러면 신의 세계 속의 한 숨결이며, 신의 숲속의 한 잎인 그대들 또한 이성을 믿고, 열정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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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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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심리 - 김성태
첫째 묶음 - 생활 속의 심리
여성의 우수성
여성의 우수성을 심리학적으로 따질 때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자유당 정권 시절에 사사오입 개헌이 이루어진 직후 어떤 좌석에서 이 사건을 놓고 이야기가 있었다. 나이든 여교수 둘이 합석해 있었는데, 이 사건에 관련지어 한 사람이 말하기를 "남성들이 하는 일이 제대로 되는 것 보았어?" 라고 말하니 또 한 사람이 받아넘기는데 "말해서 무엇해. 남자들이 하는 짓이 다 그 꼴이지."라고 하며 숫제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그 자리에서는 올드 미스들의 거부적 태도 때문이려니 하고 웃고 넘겼지만, 그 후 이 말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고 머리 속에 남아 여러 가지로 되새겨 보는 주제가 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허황된 욕심, 공연한 어거지, 무책임하고 자기 중심적인 방종, 그리고 지나친 공격심 때문에 생기는 충돌과 불안정 같은 것들이 제거될 수 있다면 훨씬 인간적인 사회가 되리라고 본다. 따라서 남성적 요인의 극복이라는 입장에서 여성적 요인의 고찰은 큰 의의를 지닌다고 본다.
우리 주변에는 부인을 잃고 적절한 내조가 없어 몰락해 버린 집이 많은데, 생계의 기둥이던 남편을 잃어 사회에 발벗고 나선 미망인들이 오히려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최근에는 여권이 신장되어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들의 직업이 다양화하면서 이제까지 남성들만이 하던 일에도 여성들의 진출이 늘고 있다. 심지어 복덕방 일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친절하고 정직하게 흥정붙여 가며 인기를 높이고 있다. 또 여자는 못하는 것으로 여기던 주택 건축업에도 젊은 가정 부인들이 많이 손대고 있다. 가정 생활에 알맞는 공간 배치, 인간미 있는 노무자 관리, 눈썰미 있는 자재 선정, 그리고 알뜰한 금전 관리 등으로 건축비를 절약하면서도 훨씬 아담하고 실용성 있는 주택을 짓고 있어 새 주택가에서는 이들이 지은 주택들이 인기가 높다고 한다. 여성은 성호르몬의 비율이 다르고 신체의 구조 기능이나 생화학적 바탕도 독특하여 표면상으로는 사뭇 약한 편이지만, 생존 능력은 훨씬 강해 어느 나라에서나 남성보다 평균 수명이 5-6세 더 긴 편이다. 발달의 속도도 여성 쪽이 빨라 신체적 성숙이나 정신적 성숙이 남자보다 일찍 이루어진다. 여자의 사춘기는 남자의 사춘기보다 10개월 내지 20개월 더 빨리 오며, 뼈가 경골화 하는 것이나 영구치가 나오는 것도 여자 쪽이 더 일찍 이루어진다. 심지어는 태내 발달로 더 빨라서 여아의 경우 임신 기간이 짧은 편이라고 한다.
생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떤 불균형이 생기면 이를 극복하여 균형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을 호메오스태시스라고 한다. 이 호메오스태시스의 입장에서 성의 차를 볼 때, 여성 쪽의 변화 진폭이 큰 편이라고 한다. 여성은 내분비선의 불균형이나 생리적 불안정이 격심하고 심리적으로도 정서 불안과 신경증적 습성 등이 남성보다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를 잘 극복한다. 운동 적성 명에서 근육의 힘 또는 속도, 정확성, 협동성 같은 것에서 남성이 우수하지만, 순발력이나 기술 쪽에서 여성이 우수하다. 지각 과정에서 정밀성, 주의전환, 지각 속도도 여성 쪽이 우수하다. 언어적 적성에서도 단연코 여성 쪽이 우수하다. 어릴 때나 성인이 된 후 또 저능아나 천재의 경우 여성 쪽의 발달이 빠르고 성숙 수준에도 일찍 도달한다. 말더듬이나 말이 막히는 것 등 말이 전달되지 않는 경우는 여성에겐 거의 없다. 어린이의 경우 이 언어 부전의 남녀 비는 10대 1이라고 한다. 여자 아이 쪽이 욕구 불만이나 혼미 상태가 적은 것도 어려서 어머니와의 접촉이 많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무튼 이러한 여성의 언어 능력의 우수성은 독서 속도, 유추력, 문장력, 이야기 창작에서도 나타난다. 기억 능력도 여성 쪽이 우수한 편이다. 숫자와 도형의 기억이나 논리적 기억 등에서도 여성이 우수한데, 이것은 그들의 우수한 언어 능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즉 이로 인해 기억의 파지와 재생이 우수해지고 심상도 더 선명하고 강력해지므로 기억이 훨씬 우월해질 수밖에 없다.
관심, 기호, 태도 가치관에 관한 성의 차를 비교해 보면, 여성이 사회 지향성이 강한 편이다. 주된 요인은 역시 여성의 언어 발달의 우수성에서 찾을 수 있다. 어려서부터 말이 빨리 습득되면 자연히 다른 아이나 어른들과 의사 소통이 잘 되고, 이에 따라 사회성도 잘 발달될 것이므로 사회 지향성이 우수하게 나타난다. 다만 성숙한 후 여성에게는 사회적으로 제한이 많아지면서 여성의 우월한 사회성이 계속 유지되지 못하는 것뿐이다. 여성들의 사회성이 우월하다는 점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나타난다. 놀이를 보아도 남자 아이는 인위적 놀이를 좋아한다면, 여자 아이는 대인 관계에 관한 놀이가 많다. 책임 있는 일이라든가 어떤 역할에 관한 것 등 사회적 관계를 연출하는 내용이 많다. 그리고 여자 아이들은 자신의 외모나 예절 또는 남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더 머리를 쓰는 것 같다. 어린이들 사이에 붙이는 별명에도 남자 아니는 신체적 특징에 맞추어 붙이는 경우가 많고, 여자 아이는 애정적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여자는 비교적 현실적으로 낮게 요구 수준을 잡기 때문에 목표와의 격차가 적은 편이며 성취 동기도 상황에 맞추어 적당히 바꾸어 나간다. 이 모두가 여성의 사회 지향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관심 면에서 보더라도 여자 아이의 놀이는 앉아서 하는 것, 보수적이며 제약적인 것이 많다. 남자 아이는 활동적이며 근육을 많이 쓰고 재주부리는 쪽이 많다. 책, 텔레비전, 영화 등을 보는 데도 여자 아이는 애정극, 가족극, 아동극을 좋아하며, 직업 선택에서도 여성은 흥미 위주로 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치관에서도 남성은 경제적인 것, 이론적인 것, 정치적인 것에 더 가치를 둔다면 여성은 심미적인 것, 사회적인 것, 종교적인 것에 더욱 치중한다.
정서적 적응 면에서도 성의 차가 많다. 어린 시절에는 여자 아이가 무서워하는 것이 더 많고 근심, 걱정과 신경증적 습성도 많지만, 문제 행동면에서 볼 때 여자 아이가 훨씬 덜한 편이다. 또 문제 행동이 나타난다 해도 여자 아이의 경우는 온건하고 비폭력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사회 제약이나 성 역할 의 차이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문제 행동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자 아이들은 관심을 획득하기 위해 괴상한 짓을 하거나 질투, 과잉 경쟁, 거짓말, 이기적 행동, 심한 짜증 등 지나치도록 어수선한 활동을 많이 하는데, 여자 아이들은 손가락을 빨거나 수줍음을 많이 타고 공포, 우울, 지나친 흥분을 많이 한다. 어떤 면에서는 신경증적 증후나 정서 불안의 경향이 여성 쪽에서 더 심하게 나타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성들이 이렇게 심리적 부적응이 심한 것은 비단 문화적 요인에만 기인되지 않는다. 여성 특유의 체질적 요인에서 더 영향력이 많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증거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 신경증적 습성에서의 성의 차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나타난다. 둘째, 사회적 압력은 다 같은 경우에도 여성 쪽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셋째, 기관에 수용된 어린이들은 남녀의 취급이나 조건이 거의 같은데도 역시 성의 차가 보인다. 넷째, 이런 증세가 심한 시기는 초경기나 폐경기 같은 생리적 변동기와 상응되고 있다.
성의 차가 심하고 또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은 공격성과 지배성의 문제다. 이들의 성차는 문화적 요인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물학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문화적으로 남성의 공격성은 칭찬 받게 되고, 반사회적 행동이나 파괴 행동도 남자의 경우에는 너그럽게 보아준다. 또 신체적으로 남자는 체격과 근육의 힘이 세고 성호르몬 관계도 공격성을 자극하게 되어 남성의 공격성과 지배욕은 자연히 우세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남성이 더 공격적이고 화를 잘 내며 파괴 행동과 도둑질 같은 것도 더욱 심하다. 어릴 때부터의 이러한 경향은 성장 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래서 범죄 행동의 남녀 비는 25대 1이나 되고, 경찰이 범법자로 구속하는 건수의 남녀 비도 20대 1이라고 한다. 이러한 남성 범법자의 독점성에 대해 여성들이 "남성들이 하는 일 제대로 되는 것 보았느냐?"고 비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학교 공부나 과학, 사회와 수리적 추리 같은 것에서 남자가 우수하지만, 철자나 말의 사용 그리고 계산에서는 여자가 우수한 편이다. 학업의 진전도도 여자 아이가 지체함이 적고 성적 수준도 높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여자 쪽이 빠르다. 그들의 우월한 언어 능력, 산뜻한 맵시의 글씨, 유순한 봉사성, 참을성, 자제력 등이 합쳐서 이같은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어쨌든 여성의 좋은 점을 제대로 평가하고 이를 받아들여 인간의 운명을 바로잡아 나가야 할 시기가 온 것은 아닌지.
"197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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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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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손을 주세요
어느 날 뮬라 나스루딘은 시내의 우물가에 군중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거기엔 커다란 터반을 머리에 두른 모슬렘의 한 사제가 물에 빠져 구원을 요청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몸을 구부리고 말했다.
"손을 주세요, 신부님."
그러나 그 사제는 자기를 구원하려는 그 시도에 주의를 쏟지 않고 계속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구원을 외칠 뿐이었다. 마침내 뮬라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자기 손을 사제를 향해 내밀고는 소리쳤다.
"내 손을 잡아요!"
사제는 뮬라의 손을 움켜쥐고는 못에서 끌려 올라왔다. 사람들은 매우 놀라서 뮬라에게 까닭을 물었다.
"그것은 간단하지. 나는 이 불쌍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심지어는 손조차도 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네. 그래서 나는 '손을 주세요'라고 말하는 대신에 '신부님, 내 손을 잡아요'라고 말했다네. 그것으로 충분했네. 그는 당장 내 손을 잡았으니까."
- 자아가 계속 성숙하여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너는 더욱 깊숙이 진흙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너는 더욱더 구속에 빠지게 되며, 더욱 더 자아의 감옥에 갇혀버린다. 결국 너는 질식할 것이며 삶 전체가 지옥이 되어버릴 것이다. 자아의 성숙은 암적인 성숙이다. 자아는 암과 같다.
못난 원숭이
어떤 해병이 여자라고는 한 명도 없고 거대한 원숭이 집단만이 살고 있는 외딴섬의 전초 기지로 파견되었다. 그는 동료 해병들이 모두 예외없이 원숭이들과 성교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만은 절대로 그런 더러운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동료들은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라고 충고하곤 했다. 그러나 몇 달이 흘러가자 그 해병도 더 이상 계속해서 버틸 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한 원숭이를 붙잡아 성교를 했다. 친구들은 그가 행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서 그가 말했다.
"왜 웃지? 자네들은 언제나 이 짓을 하라고 말하지 않았었나?"
그들이 대답했다.
"그건 그렇지만 너는 왜 하필 제일 못난 놈을 골랐니?"
- 억압을 하면, 너는 제일 못난 삶을 선택할 가능성이 생긴다. 억압을 하면 흥분하여 제정신을 잃게 된다. 억압이 지나치게 커지기 전에 긴장을 풀고 삶으로 뛰어들라. 죄의식을 느끼지 말라. 살고, 사랑하고, 알고, 존재하는 것은 너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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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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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62. 안에는 반군, 바깥에는 적군 - 명의 멸망(1644년)
주원장의 건국 이후 200여년이 지나면서 명조는 안으로는 환관의 횡포와 도처에서 발생하는 민란, 그리고 밖으로는 홰구와 몽고족의 공격으로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특히 만주지방에서 세력을 확대해 명조를 압박해오는 후금(청) 세력은 명나라가 쉽사리 막아 내기 어려운 상대였다. 명은 이 만주족과의 싸움에 엄청난 국력을 소비해야 했고, 그만큼 백성들의 고통도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의 고통이 커질수록 그 불만을 들에 엎고 반란세력들이 나타나게 된다. 특히 천재지변으로 인한 기근이 심각한 지역이었던 하남과 섬서지방을 중심으로 거대한 반란세력이 형성되었다.
원래 섬서지방은 기름진 땅이었지만 잦은 가뭄으로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명의 국경수비 중심이 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앙에서 군수물자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게 되자 군인들이 반란군에 가담하게 되었다. 명을 멸망시킨 이자성도 이 지역의 반란세력의 지도자 중 하나엿다. 이자성은 연안출신으로 역에서 일하는 천한 신부의 사람이었다. 그는 그 지역의 반란군 지도자의 한 사람인 고영상의 휘하에 들어가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명나라 군대의 거센 공격으로 인해 반란군은 수세에 몰리게 되었고 이자성도 여러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피해 다녀야 했다. 명 정부군의 공격으로 거의 숨통이 끊겨가고 잇던 반란군이 전열을 정비할 수 있게 한 것은 청나라였다. 명이 반란군을 토벌하는 데 국력을 소모하고 있을 때 청은 명의 수도인 북경 근처에까지 육박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명의 황제 숭정제는 하남, 섬서 등지에 있는 정부군을 청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북경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명군이 북경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하남, 섬서 등지의 반란군들은 다시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숨어 있던 이자성은 다시 군대를 모아 하남지역에 활동을 개시했다. 고통에 신음하고 잇던 하남지역의 농민들은 이자성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자성군은 농민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토지를 고르게 분배한다거나 악독한 지주의 창고를 열어 농민들에게 곡식을 나누어준다든가 하여 그들의 환심을 샀다.
이자성은 세력을 더욱 강화시켜 마침내 1641년에는 낙양을 함락시켰다. 42년에는 개봉을 점령했으며, 43년에는 양양에 궁전을 짓고 스스로 신숭왕이라 칭하고 국가체제를 갖추어나갔다. 그 이듬해 다시 나라 이름을 대순으로 하고 서안을 서경으로 삼았다. 서안을 거점으로 한 이자성군은 동쪽으로 군대를 이동하며 명의 요충지를 하나씩하나씩 점령해들어갔다. 마침내 3월 17일 이자성군은 북경에 당도했다. 북경은 명의 수도라고 하지만 그 수비는 너무 허술하여 이자성의 반군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월 18일 저녁 무렵 황제가 가장 믿고 있던 신하가 성문을 열고 이자성군을 불러들였다. 성문이 열리자 이자성군은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황제가 머물고 있던 궁성인 자금성 주변에는 이자성군의 함성이 들리고 북경 시내는 반란군이 방화한 불길이 여기저기서 번지고 있었다. 숭정제는 최후를 생각하고 있었다. 명의 맥을 잇기 위해 세 아들을 피신시킨 후 왕비와 후비들에게 자결을 명한 다음, 그의 딸들은 직접 죽였다. 아직은 자금성 안에까지 이자성군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만수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유서를 남긴 다음 자결했다. 그가 자신의 옷깃에 적어 남긴 유서는 비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죽어 지하에 가도 선왕들을 뵐 면목이 없어 머리털로 얼굴을 가리고 죽는다. 내 시신은 도적들에게 갈기갈기 찢겨도 좋지만 백성들은 한 사람이라도 상하게 하지 말라"
그가 이 유서를 남기고 죽을 때 그의 나이 서른 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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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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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國之音(망국지음) 亡(망할 망) 國(나라 국) 之(갈 지) 音(소리 음)
한비자(韓非子) 십과편(十過篇)에는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진(晉)나라로 가는 도중에 들었다는 멋있는 음악에 관한 고사가 기록되어 있다.
진나라에 도착한 영공은 진나라의 평공(平公)에게 산동의 복수( 水)라는 곳에서 들었던 음악을 자랑하였다. 당시 진나라에는 사광이라는 유명한 악사가 있었는데, 그는 이 음악을 듣고 깜짝 놀라 이건 새로운 음악이 아니라 망국의 음악입니다(亡國之音). 라고 말하며 연주를 중지시켰다. 사광은 그 음악의 내력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것은 주나라의 악사인 연(延)이 주왕(紂王)을 위해 만든 음탕한 음악입니다. 무왕(武王)이 주나라를 정벌하자 연(延)은 복수까지 도망와서는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음악은 복수 강변에서만 들을 수 있으며, 최초로 듣는 자는 반드시 나라를 빼앗긴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亡國之音은 亡國之聲(망국지성)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음란하고 사치스러워 나라를 망칠 음악을 말한다. 최근 일부 유행가의 가사에도 음란한 표현이나 욕설 등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주왕의 음악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음악이라면 곧 亡國之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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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 망국지성(亡國之聲). [유사어] 정위지음(鄭衛之音). [출전]《韓非子》〈十過篇〉.《禮記》〈樂記〉 나라를 망치는 음악이란 뜻. 곧 ① 음란하고 사치한 음악. ②망한 나라의 음악. ③ 애조(哀調)를 띤 음악.
① 춘추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진(晉)나라로 가던 도중 복수[?水:산동성(山東省) 내] 강변에 이르자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멋진 음악 소리가 들려 왔다. 영공은 자기도 모르게 멈춰 서서 잠시 넋을 잃고 듣다가 수행중인 사연(師涓)이란 악사(樂師)에게 그 음악을 잘 기억해두라고 했다. 이윽고 진나라에 도착한 영공은 진나라 평공(平公) 앞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들은 새로운 음악’이라고 자랑했다. 당시 진나라에는 사광(師曠)이라는 유명한 악사가 있었는데 그가 음악을 연주하면 학이 춤을 추고 흰 구름이 몰려든다는 명인이었다. 위나라 영공이 새로운 음악을 들려준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입궐한 사광은 그 음악을 듣고 깜짝 놀랐다. 황급히 사연의 손을 잡고 연주를 중지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새로운 음악이 아니라 ‘망국의 음악[亡國之音]’이오.”
이 말에 깜짝 놀란 영공과 평공에게 사광은 그 내력을 말해 주었다.
“그 옛날 은(殷)나라 주왕(紂王)에게는 사연(師延)이란 악사가 있었사옵니다. 당기 폭군 주왕은 사연이 만든 신성백리(新聲百里)라는 음미(淫?:음란하고 사치함)한 음악에 도취하여 주지육림(酒池肉林)속에서 음일(淫佚)에 빠졌다가 결국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주벌(誅伐)당하고 말았나이다. 그러자 사연은 악기를 안고 복수에 토신 자살했는데, 그 후 복수에서는 누구나 이 음악을 들을 수 있사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국의 음악’이라고 무서워하며 그곳을 지날 땐 귀를 막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사옵니다.”
②《예기(禮記)》〈악기(樂記)〉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
“복수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망국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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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1. 약탈혼이 정당하던 시절
악수는 무기가 없다는 의사표현?
가장 오래된 기록에 의하면 악수는 천상의 신이 지상의 지배자에게 권력을 수여하는 동작이라고 한다. 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 손을 내민 그림이 '주다'하는 뜻을 나타내는 것도 여기에서 온 것이다.
기원전 1800년경 바빌로니아에서는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축제를 벌이고는 그 자리에서 왕이 최고신 말두크 상의 손을 잡았는데 이것은 말두크가 그해의 통치권을 왕에게 내린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의식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어서 아시리아인이 바빌로니아를 정복했을 때 아시리아의 왕들은 자기들도 이 의식을 행하지 않으면 통치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 이것을 받아들였을 정도이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이 악수의 의식이 남아 있다. 악수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이런 얘기도 있다. 이집트 시대보다 훨씬 더 옛날 사람들은 길에서 낯선 사람과 만나면 우선 적이라고 의심해 몸에 지니고 있는 칼에 손을 댔다. 물론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서로 경계하면서 얼굴을 마주본 채 상대에게 천천히 다가선다. 그러다가 서로 싸울 뜻이 없음을 알게 되면 칼을 거두고 무기를 쓰는 오른손을 내밀어 적의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 보였다. 이 설에 의하면 어째서 여성에게는 악수를 하는 습관이 없는가 하는 것도 설명이 된다. 여자들은 오랜 옛날부터 무기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수 이외의 인사법들도 아주 오래 전의 일에 기원을 두는 것이 많다. 모자테에 손을 대는 신사들의 인사는 고대 아시리아의 포로가 정보자에게 복종을 나타내기 위해 옷을 벗고 벌거숭이가 되어 보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스에서도 새로 고용된 하인은 상반신의 옷을 벗어 주인에 대한 복종을 나타냈다고 한다.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을 벗어버리는 동작은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 자주 행해졌다. 로마인은 신전에 가까이 가기 전이나 연장자의 집에 들어갈 때에는 신발을 벗었다. 영국에서는 왕족이 앉아 있는 곳에서 여성은 장갑을 벗었다. 남성이 인사하는 것도 여성이 무릎을 굽혀 인사하는 것도 복종과 존경의 동작에 대한 흔적인 것이다. 여성의 옛 인사는 완전히 한쪽 무릎을 땅 위에 대는 것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영주에게 복종을 나타내기 위해 노예는 머리에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이것은 예전에 옷을 벗고 복종을 표시했던 아시리아의 포로와 마찬가지로 '나는 당신의 충실한 하인입니다'라는 것을 뜻했다. 기독교 교회는 재빨리 그것을 받아들여 남성에게 교회에 들어가기 전에 모자를 벗도록 명했다. 이윽고 모자를 벗는 것은 상대에게 존경을 나타내는 남성의 기본 예절이 되었다. 그리고 모자테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같은 의미를 나타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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