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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812호
2010.11.26 (음 10.21)/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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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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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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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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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경험을 본문으로 친다면 반성과 지식은 주해서다. 경험이 적은데서 반성과 지식만이 많다고 하는 것은 두 줄의 본문에 마흔 줄이나 되는 주석이 달린 책이며, 그 반대가 된다면 주해를 달지 않은 채 불분명한 사실을 함부로 늘어놓은 책 따위와 같은 것이다. ─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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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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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릴 예정이다
“나는 서울에 갈 예정이다.” 이 문장의 통사구조를 분석해보면 조금 헷갈린다. 주어 ‘나는’을 받는 동사는 ‘갈’인데 ‘예정이다’의 주어가 없다. ‘명사+이다’로 끝난 문장을 흔히 명사문이라고 하는데, 예시한 문장은 명사문도 아니다. ‘갈 예정이다’가 술부인데 이를 ‘용언+보조용언’으로 분석할 수도 없다. 우리 문법 체계에서 보조용언은 보조동사와 보조형용사뿐이므로 서술격 조사 ‘이다’가 보조용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사구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YS가 주재하는 동교동계-상도동계 만찬 회동이 시내 한 음식점에서 열릴 예정이다.” 중앙 일간지 기사의 한 구절이다.
‘-ㄹ 예정이다’는 우리말에서 매우 흔히 쓰이는 어형이다. ‘예정이다’ 대신에 ‘작정이다, 계획이다, 전망이다, 것이다’ 등도 쓰인다. 이 중에서 ‘예정이다, 작정이다, 계획이다’는 행위 주체의 의지가 실려 있는 말이다. 따라서 피동형 뒤에 이런 말을 쓰면 어색하다. ‘예정이다’의 주어는 사람이나 단체가 되어야 반듯하다. 이를 피동으로 하면 사람이 아닌 ‘회동’이라는 무정명사가 주어가 되어 스스로 ‘시내 한 음식점에서 열려야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꼴이 된다. 일반화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굳이 따져보면 깔끔한 표현은 아니다. 주어를 설정하기가 어려워 피동형으로 하겠다면 행위 주체의 의지가 실려 있는 말은 피하고, ‘열릴 전망이다’, ‘열릴 것으로 보인다’ 또는 현재형으로 미래를 나타내는 ‘열린다’로 하는 것이 좋겠다.
우재욱/시인
안팎
‘안’과 ‘밖’의 합성어지만 ‘안팎’으로 적는다. 중세 국어에서 ‘안’은 끝소리로 ‘ㅎ’을 가지고 있었다. ‘ㅎ’은 ‘안’이 단독으로 쓰일 때는 보이지 않고 다른 말과 결합할 때 나타났다. 이 ‘ㅎ’ 소리가 ‘안’과 ‘밖’이 결합하는 과정에 살아나 ‘안팎’이 됐다. 머리와 살 등도 ‘ㅎ’이 끝소리였다. 그래서 머리카락(머리ㅎ+가락), 살코기(살ㅎ+고기)로 적게 됐다.
구메구메
‘구멍’의 옛말은 ‘구메’다. 일부 합성어에 아직 형태가 남아 있다. 옥에 갇힌 죄수에게 벽 구멍으로 몰래 주는 밥 ‘구메밥’, 작은 규모로 짓는 농사 ‘구메농사’, 널리 알리지 않고 하는 혼인 ‘구메혼인’에서 보인다. 구멍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구메’가 중첩된 ‘구메구메’는 ‘남모르게 틈틈이’라는 뜻을 지녔다. ‘구메구메 돈을 모았다.’
핼쑥하다, 해쓱하다, 헬쓱하다, 헬쑥하다, 핼슥하다, 헬슥하다
남편과 두 번이나 사별하고 세 번째 결혼을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를 위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녀는 잘 웃지도 않고 날이 갈수록 핼쑥해졌다. 보다 못한 남편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당신이 먼저 죽을까 봐 너무나 걱정돼서예요."
긍정의 힘은 기적을 낳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마음의 병을 만들고, 마음이 병들면 건강하던 몸도 축나게 마련이다. 이처럼 몸이 약해져 마르고 얼굴에 핏기가 없는, 즉 병약한 느낌을 나타낼 때 흔히 '핼쑥하다'고 표현한다. 또 '핼쓱하다.핼슥하다.헬쓱하다.헬슥하다.해쓱하다.해슥하다' 등으로 쓰는 사람도 많다. 어떻게 표기하는 게 맞을까?
'핼쑥하다' '해쓱하다' 외에는 모두 잘못 쓰이는 말이다. 한 단어 안에서 뚜렷한 까닭 없이 나는 된소리는 다음 음절의 첫소리를 된소리로 적는다는 규정에 따라 '핼슥하다' '헬슥하다' '해슥하다'로는 표기하지 않는다. 발음이 비슷해 '핼쓱하다'' '헬쓱하다'고도 많이 사용하지만 이 역시 틀린 말이다.
"말라 보이는 몸매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마른몸매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면서 '왜 이리 핼쑥해졌어?'란 염려에 오히려 반색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깡마르다 못해 해쓱하기까지 했던 브라질의 한 모델이 살을 더 빼기 위해 과일과 주스로만 연명하다 목숨을 잃은 일이 발생했다"처럼 써야 한다.
성숙해지다, 주춤해지다, 팽배해지다, 만연해지다
"기상청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추위가 주춤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적인 자산운용사 UBS의 대한투신운용 인수가 돌출적인 감독 당국의 개입으로 주춤해졌다." 기상 예보나 증권 시황 관련 기사들에 자주 나오는 '주춤해지다'는 표현은 잘못 쓰는 말이다.
'주춤하다, 주춤거리다, 주춤대다'(어떤 행동이나 걸음 따위를 망설이며 자꾸 머뭇거리다)는 자동사이므로 '아/어지다'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 동사 그대로 활용해 '주춤할' '주춤했다/주춤거리고 있다'로 써야 한다.
'성숙해지다'도 잘못 쓰고 있는 대표적인 예다. "아직도 많은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여러 방면에서 양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에 비해 그 평가나 기대효과는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지난 1년간 통일된 비폭력저항운동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이 성숙해졌습니다" 등에서 '성숙(成熟)하다'는 자동사이기 때문에 '성숙해지다'로 쓰면 틀린다. '성숙하는' '성숙했다'로 써야 맞다.
"온라인에서 불법 복제물을 발견해도 시정하는 데 3~4일이나 걸려 이미 복제가 만연해진 뒤에 뒷북치는 식이 많았다" "논리와 실증이 빈약한데도 재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국내에 팽배해진 데에는 재벌 문제에 관한 논의가 이렇게 정치화됐기 때문이다"의 '만연해진' '팽배해진'도 동일한 사례다. '만연(蔓延/蔓衍)하다' '팽배(澎湃/彭湃)하다'가 자동사이므로 '만연해 있는' '만연한'으로, '팽배하게 된, 팽배해 있는'으로 써야 바르다.
이런 단어들을 잘못 사용하는 까닭은 이들을 형용사인 줄로 착각해 이것을 다시 동사로 만들어 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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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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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타주가 된다는 것 - 이수명
지금 여기에 가장 가까운 심급에 도착하지 못하는 번개를 위하여 나는 번개를 버틴다. 번개를 뒤집어쓰고 어둠의 일부인 채 어둠과 단절하면서 어둠을 밝히지 않는다. 나는 머뭇거린다. 머뭇거려야 한다. 누가 돌출되는가를 누구를 지나 흘러가는 무늬인가를
그곳에서 나는 내 그림자와 일치하는 실물인가를 그곳에서 나는 내 그림자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넓은 혀로 세계를 통분하고 있는 가를
입에서 지루한 탄약이 쏟아진다. 꿈처럼 호흡은 짧게 끊어져 밟힌다. 한 사건이 벌어 지는 심급에서부터 결코 나타나지 않는 장면의 심급에 이르기까지 나는 지금 형상을 만들지 못하는 몽타주이다. 나는 짧은 운동으로 분포한다. 한순간도 나를 지킬 수 없다. 그러나 깨진 두개골 속에 신을 벗어 놓은 자들과 함께
얼굴 없이 빚어지는 나의 이 다양한 표정을 보라
벽면들이 거미줄에 걸려 바스락댄다. 채찍을 맞고 있는 사실들이 빈둥거린다. 나는 막무가내로 벌을 선다. 공평하게 산산조각이 난다. 더할 나위 없이 다양해진다. 그러 므로 윤곽 없이 모든 꿈은 마주치고
유추의 피가 벌써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나는 보라
마치 꿈 속에서처럼 적절한 잠도 없이 나는 이 잠을 확정해야 할 것이다. 잠의 온도를 맞추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잠의 온갖 척도 아래로 다시 통상적으로 부재하는 눈을 도려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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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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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제비꽃 - 최지향
우리 회사 정원에 보라 제비꽃이 피었다. 마른 잔디만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무리무리 꽃송이들 어느새 한쪽에서는 애달프게 시드는 걸
꽃송이 다섯 장에 기다란 목을 하고 꽃잎에 새겨 있는 잠자리 날개 무늬 나빈가 잠자리인가 보드란 보라 꽃잎
가녀린 봄꽃은 어여쁜 봄의 꽃은 이제 오나 하였는데 어느새 가 버린다. 화창한 햇살 받으며 오래 있지 못한다.
봄빛은 강렬해서 꽃색도 바래는가. 금새 피었다가 어느새 가 버린다. 봄날이 아름다운 건 길지 않아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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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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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산복이 - 이문구
이마에 땀방울 송알송알 손에는 땟국이 반질반질 맨발에 흙먼지 울긋불긋 봄볕에 그을려 가무잡잡 멍멍이가 보고 엉아야 하겠네 까마귀가 보고 아찌야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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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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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제6장. 작지만 확고한 행복을 나는 원한다
트레이닝 셔츠에 얽힌 이 생각 저 생각 -나는 와세다 대학 출신이지만, 그렇다고 '와세다'라는 로고가 들어간 트레이닝 셔츠를 입느냐 하면,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
1960년대의 미국 영화를 보고 있으면, 컷 오프 트레이닝 셔츠가 자주 나온다. 긴 소매 트레이닝 셔츠를 가위로 싹둑 잘라서 7부 소매 정도로 만든 것이다. '거칠다, 입는 옷 같은 것에는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느낌이 잘 드러나 있어서, 나는 비교적 그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웨스트코스트와 같은, 계절에 의한 기온차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곳에서나 적당한 것이지, 일본에서는 그다지 적합하지가 않다. 여름에 티셔츠 대신으로 입기에는 옷감이 너무 두껍고, 겨울에는 소매가 없어서 너무 춥다. 나는 언젠가 흉내를 내서 트레이닝 셔츠의 소매를 싹둑 잘랐다가 크게 후회한 것이 있다. 일본에서는 컷 오프 트레이닝 셔츠를 입기에 알맞는 기간이 상당히 짧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 원고를 쓰면서 입고 있는 옷은 니혼 대학의 매점에서 구입한 것으로, 가슴에 '뷰티풀 캠퍼스 니혼 유니버시티'하고 씌어져 있다. 어째서 니혼 대학의 트레이닝 셔츠를 입고 있느냐 하면, 단지 이전에 니혼 대학 이공학부 근처에 살 때 구내 매점에 가서 자주 쇼핑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와세다 대학 출신이지만, 그렇다고 '와세다'라는 로고가 들어간 트레이닝 셔츠를 입느냐 하면,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 자기가 졸업한 대학에는 여러 가지로 애증이 엇갈리게 때문에, 아무래도 너무 자극이 강하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대학의 셔츠를 신경 쓰지 않고 입는 것이 헐씬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이 '뷰티풀 캠퍼스'라고 하는 캐치 플레이즈는 조금 잘못된 것이 아닐까? 캠퍼스가 아름다운 니혼 대학이라는 것은 마치 리조트 호텔의 광고 같은 느낌이다. 대학에는 캐치 프레이즈가 필요 없다. 나는 프린스턴과 하버드 대학의 구내 매점에도 가보았지만, 트레이닝 셔츠에는 단지 대학 이름밖에 써 있지 않았다. 그런 것이다. 하긴, 남의 대학 일이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밖에도 트레이닝 셔츠에는 여러 가지 영어 문구가 씌어져 있다. 개중에는 상당히 엉망진창인 것이 있어서, 거리에 나가서 바라보고 있으면 굉장히 재미있다. 누가 그런 문구들을 생각해 내는 건지 나는 늘 궁금했다. 언젠가는 '나이스 박스 1384'라는 문구가 씌어진 트레이닝 셔츠를 입고 있는 아가씨를 보았는데, 박스라고 하는 것은 사서함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일까? 그러나 나이스 박스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성능이 좋은 여자의 성기를 의미한다. 이런 것은 왠지 좀 서늘하다.
남자는 돈을 지불하고 운반만 하는 '캐스&캐리'인가 -남자는 쇼핑하는 아내나 애인을 따라다니며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운반하는 일개미 같은 인간이 아니다. 남자도 살아 숨쉬는 인간이다.
대다수의 남자들이 아마 그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애인과 데이트를 하거나, 아내와 거리를 걷거나 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옷 사는 데 따라가는 일일 것이다. 그것도 한 집이나 두 집이라면 또 모를까, 여섯 집이나 일곱 집싹 따라다닌 끝에, "안 되겠어요. 제일 처음에 갔던 집에 다시 가봐야겠어요"하는 식의 말을 듣게 되면, 온몸에서 힘이 쑥 빠져 버린다. 여자는 남자가 레코드 가게나 장난감 가게 같은 곳에서 열중하고 있을 때 동행해 주었으니까, 하는 생각도 있을 테지만, 그녀들이 옷을 고르는 데 쏟는 집념에는 남자의 온갖 취미의 영역을 하나로 합쳐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의 파워와 위협이 있어서, 그 에너지가 이따금 우리 남자들은 압도라고 놀라게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는 어제 다이칸야마에서 시부야,아오야마 3번가를 여유해서 하라주쿠까지 쉴 새 없이 따라다녀야만 했다. 나는 미리 신중하게 생각한 뒤 조깅화를 신고 가서 약간 득을 보았지만, 하이힐을 신고 그런 장거리를 걷는 에너지를 집념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항간의 뷰티크라는 곳은 남자에게 있어서 참으로 어색한 장소다.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없고, 어쩐지 모든 것이 거북스럽기만 하다. 손님이 붐빌 때에는 멍청하니 서 있으면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가 되고, 그렇다고 해서 원피스나 핸드백에 가벽할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일일이 상품을 구경하며 시간을 때울 수도 없다. 그것은 정말 난처한 일이다. 하지만외국에 나가면 이상하게 그런 일이 없고, 아내의 뷰티크 군례에 도앵을 해도 그렇게 지루하고 따분했던 기억이 없다. 이것은 상점 쪽이 함께 들어오는 남성에 대해서 그 나름대로 신경을 써주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샌프란 시스코의 '로라 아슐레이'에서는 아내가 옷을 고르고 있는 동안, 그 집의 예쁜 아가씨가 나를 상대해 주면서 "도쿄에서 오셨나요? 좋은 곳인가요? 가보고 싶어요. 저는 뉴올리언스 태생이에요. 뉴올리언스에 가보셨어요?"하고 말을 걸어 주었으며, 호놀룰루의 교외에 있는 뷰티크에서는 소파에 앉게 해주고, 콜라와 프리첼까지 대접해 주었다. 이러한 뷰티크라면 남자 쪽도 다시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도쿄의 뷰티크도 남자의 입장이라는 것을 조금은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남자는 단지 캐시&캐리(역주: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운반하는 인간)가 아닌 것이다. 남자도 살아 숨쉬는 인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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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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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2. 예언자 - 칼릴 지브란
법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한 법률가가 말했다. 스승이시여, 그러면 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법을 제정하기를 좋아한다. 물론 그 법을 어기는 것을 더욱 좋아하면서. 마치 바닷가에서 끊임없이 모래성을 쌓았다가는 그것을 허물어 버리며 노는 어린아이들처럼. 그러나 그대들이 모래성을 쌓는 동안, 바다는 보다 많은 모래를 기슭으로 밀어 보내고, 그대들이 모래성을 허물 때면 바다는 그대들과 함께 미소짓는다. 진실로 바다는 늘 천진난만한 이와 함께 웃는다. 그러나 삶이 바다와 같지 않은 자에게, 인간이 만든 법도 모래성과 같지 않은 자에겐 어떠한가. 삶이란 단지 바위이며, 법이란 그 바위에 그들 자신의 모습을 새기는 조각칼일뿐인 사람에겐? 춤추는 자들을 시기하는 절름발이에겐? 자기의 명예를 사랑하면서 또 길 잃은 사람, 또는 정신없이 방황하는 것들을 생각하는 황소에겐? 제 허물을 벗을 수 없다고, 다른 모든 뱀들을 벌거숭이이며 수치심도 모르는 것들이라고 큰소리치는 늙은 뱀에겐? 또한 결혼 피로연에 일찌감치 나타나서는 실컷 먹어대고 돌아가면서, 모든 잔치란 법에 걸리는 것이며 피로연에 참석한 모든 손님들은 법을 어긴 법률 위반자라고 떠드는 자에겐? 내가 이들에 대해 무어라 말해야 할는지. 햇빛 속에 서 있지만 태양을 등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 외엔? 그들은 단지 그림자만을 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법인 것을. 그렇다면 태양이 그들에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늘을 드리우는 것 외에. 그러므로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이 될 것인가. 엎드려 대지 위에 그들의 그림자를 쫓아가는 것 외에? 그러나 태양을 향해 걸어가는 그대들이여, 어떤 풍향계가 그대들의 길을 인도해 줄 것인가? 만약 인간이 만든 감옥의 문이 아니라 자기의 멍에를 부수는 것이라면, 어떤 인간의 법이 그대들을 묶을 수 있을 것인가? 그대들이 인간이 만든 쇠사슬에 결코 비틀거리지 않고 춤출 수 있다면, 어떠한 법이라도 그대들을 두렵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대들의 옷을 찢는다 해도 그것을 인간의 길에 버리지 않는다면, 그대들을 판결할 자는 없다.
올펄레스 시민들이여, 그대들은 북소리를 약하게 할 수도 있고, 하프의 줄을 늘어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어느누가 저 종달새에게 지저귀지 말라고 명령할 수 있을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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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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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심리 - 김성태
첫째 묶음 - 생활 속의 심리
여성의 수줍음
수줍어 하는 여성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수줍음을 여성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습성이라고 여겨 왔다. 그러나 과연 수줍어 한다는 것이 그렇게 여성에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습성일까. 우리는 남자 아이가 수줍어하면 못난 녀석이라며 혼내지만, 여자 아이에게는 오히려 수줍음을 가르치는 것이 관례다. 여성은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이들의 수줍어하는 습성은 천성적인 것이라기보다 조장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여성은 무서워하기를 사회로부터 요구 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이 수줍어하는 경향이 더 많다는 것은 결국 사회 체제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회는 여성이 수줍어하는 역할을 해야 원만히 진행되는 체제이기 때문에 수줍어하는 연출을 여성에게 기대하고, 또 여성들이 이러한 역할의 연출을 준수하도록 사회 분위기가 이를 조장하고 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떤 때 수줍어 하는가. 흔히는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 앞에서나, 자기보다 뭔가 훌륭해서 근접하기 힘든 사람 앞에서 수줍어하게 된다. 이성 교제에 경험이 적은 젊은이라면 이성들과의 모임에 낀다든가, 좋아하기는 하지만 몇 번 만나 본 적이 없는 이성을 대할 때도 수줍어하게 된다. 또는 자기의 약점이 드러나게 될 경우나, 제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때 자신 없어 두려워질 때도 수줍어한다. 이렇게 보면 수줍어한다는 것은 대인 관계, 그 중에서도 특히 대응하기에 자신 없어 두려움이 앞서는 대인 관계에서 나타나는 반응 양식이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자극적인 일이 갑작스레 벌어지면, 또는 익숙지 못한 낯선 사태,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히 대응할 길이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대체로 사람은 위험을 직감하고 당황해 한다. 그 사태에서 벗어나려는 이른바 퇴거 반응이 나타나는데, 우리는 이를 공포 정서라고 한다. 이같은 공포는 현실적 위험이 없는 경우에도 일어난다. 과거에 몹시 무서운 경험을 했던 대상이나 경험이 없어도 타인이나 사회가 위험하다고 일러준 것에 대해서도 무서워한다. 이렇듯 무서워하는 대상은 직접 신체적 위험을 주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사건만이 아니다. 이러한 대상은 자기의 사회적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경우나 자존심이 손상 받게 하는 대인 관계일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여러 사람 앞에서 처음 연설한다든가, 마음이 드는 상대자와 맞선 보는 경우, 자칫 실수라도 하면 수모와 멸시를 당해 자존심이 상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공포감은 생긴다. 이처럼 자기 지위에 위협을 느끼는 경우는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경우보다 긴박감이 적어 예비적 태세를 취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따라서 위험 사태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자기의 능력, 특성 등을 타인과 비교하여 생각하게 되는 자의식이 생긴다. 이 자의식 때문에 자세는 부자연스럽고 어색해지면 억지로 미소짓고 어울리지 않는 교태도 부려 본다. 이렇듯 대인 관계에서 위험 사태를 예상한 준비 조치가 바로 수줍음이다. 따라서 이 수줍음이라는 것은 무서워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포 정서의 반응은 그 사태에서 물러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물러나는 행동에는 위험을 미리 피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퇴거시키는 것도 있지만, 사과, 회유, 아첨 따위의 상징적인 퇴거로 위험을 미리 방지하는 수도 있다. 수줍어한다는 것은 이같은 상징적 퇴거의 한 수법이다. 대인 관계에서 정정당당하게 겨루거나 대등하게 어울릴 자신이 없으므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를 공격하지 못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대등하게 겨룰 필요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 웃음 띠는 얼굴로 좋은 인상을 갖게 하고, 자기의 열등과 적의가 없음을 보이기 위해 어린 아이 같은 몸짓을 꾸민다고 볼 수 있다. 굴복 또는 아양으로 동정과 선심을 애걸하는 모습이 수줍어하는 것의 본질이라면, 수줍어한다는 것은 약자가 뒤집어쓴 아름다움 조개 껍질에 비유할 수 있다. 적극적으로 자기 능력을 발휘하여 자기를 주장할 자신이 없으므로 미리 후퇴하여 굴복함으로써 치명적인 타격만이라도 피해 보려는 반응 양식이다. 어떤 사람이 대인 관계에서 사사건건 실패를 거듭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대인 관계에 적극 참여하지 않으려 하고 꽁무니 빼는 습성이 생길 것이다. 이같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 자연스럽게 참여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망설임으로 후퇴만을 일삼는 태도를 열등감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열등감은 습관적으로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대응 행동에 정서적 혼란을 일으켜 어색한 행동을 취하는 경향이다. 수줍어하는 것도 이같이 어색하고 교란된 정서 반응 중의 하나인데, 이는 열등감이라는 괴물의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즉 수줍어한다는 것은 열등감을 가진 사가 웃음과 아양으로써 자기의 열세를 가장하고 상대방을 회유하여 자기를 방어하는 것이니 이는 약자의 자기 방어 수법에 지나지 않는다. 이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때 수줍어하는 것이 여성다운 습성이라거나, 수줍어하는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입장 등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라 하겠다. 어쨌든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 사회에서는 여성의 수줍음이 그리 바람직한 습성만은 아니라고 본다.
"195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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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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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장수의 비결
뮬라 나스루딘이 백 살이 되었다. 신문 기자들이 그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몰려왔다. 그가 그 도시에서는 처음으로 탄생 백 주년을 맞은 시민이었던 것이다. 기자들은 그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고령까지 장수할 수 있었는지 비결을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나는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고, 여자에게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장수의 비결입니다."
그런데 그때 옆방에서 무엇인가 시끄럽게 떨어지는 소리와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신문 기자들이 깜짝 놀라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뮬라가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일 것입니다. 아버지가 또 술에 취해서 하녀의 뒤를 쫓아다니고 있는 모양입니다."
- 뮬라 아버지는 틀림없이 125살은 넘었을 것이다. 뮬라는 다음과 같이 장수의 비결을 말했다. "나는 독신 생활을 했고,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기 때문에 장수할 수 있었소." 그러나 그때,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뛰어다니며, 술에 취해 여자를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성을 탐닉할 수도 있고 독신을 즐길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무런 차이도 초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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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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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60. 황제의 충성스런 부대 - 팔기군의 성립(1616년)
만주족은 지리적인 생활조건으로 말미암아 유목생활이 중심이 되었으며 그들의 사회조직도 그들의 생활특성에 때라 이루어졌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팔기제다. 청의 건국자 누르하치는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부족단위로 흩어져 살던 만주족들을 모아 대세력을 형성하게 되자 사회 및 군사조직을 정비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족집단들을 4개의 묶음으로 하여 노랑, 빨강, 남색, 백색의 4가지 색의 깃발로 구별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팔기가 아니라 사기였던 셈이다. 그후 나중에는 4기를 더 만들어 팔기로 했다. 이것은 마치 신라가 삼국을 통합하면서 고구려, 백제 출신들까지 부대를 편성하여 9서당을 만들었던 것과 비슷하다. 팔기의 기나 9서당의 당은 모두 깃발을 의미하는 한자다. 팔기의 기본단위는 니루인데 1니루는 300명의 장정이다. 국가는 니루를 기본단위로 하여 군대징발, 장비 마련, 요역, 노동력 징발을 했다. 5니루를 1잘란, 5잘란을 1구사로 편성했고 구사고 곧 기가 된다. 따라서 한 기는 산술적으로 하면 7천 5백 명의 장정이 속해 있는 집단이 된다. 각 기는 유력한 대표자들에 의해 통제되엇고, 만주족을 통일한 누르하치도 전 부대를 다 장악하지 못했다.
태조의 뒤를 이어 태종 홍타지에 이르면 정복활동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몽고족, 한족들을 중심으로 몽고 팔기와 한인 팔기를 따로 편성했다. 물론 군사력의 핵심은 만주팔기였다. 마침내 만주족이 이자성군을 몰아내고 북경에 들어와 중국대륙의 주인이 되자 당연히 만주 팔기들도 대부분 북경성 내에 거주하게 되었다. 원래 팔기제는 행정조직과 군사조직의 기능을 병행하는 것이었는데, 만주뿐만 아니라 중국의 넒은 대륙을 다스리게 되자 부족적인 팔기체제로는 중국대륙을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없었다. 청은 한족들을 통치하면서 명나라 때부터의 제도를 계승하여 군현제를 신시했다. 따라서 팔기는 이제 행정적인 기능보다는 군대조직의 의미로 굳어지게 되었다. 팔기병은 청의 군사력의 핵심이 되어 북경 수비뿐만 아니라, 국경이나 군사상의 중요한 지역에 주둔했다. 특히 황색 깃발의 황기와 백기는 황제 직속의 부대였다.
중국을 지배하게 된 만주족은 지배 신분층으로서 많은 특권을 누렸는데, 그들의 경제적인 기반은 기지였다. 이는 팔기군에 편성된 만주족이 군대에 복무하는 대가로 지급받은 땅으로, 보통 정복지를 넓혀갈 때 정복한 땅이 지급되었다. 물론 소유자인 만주족은 그것을 집접 경작하지 않았고 한족 노예들을 시켜 경작하게 했다. 이 땅에는 세금이 면제되었기 때문에 한족 중에서 땅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땅을 기지로 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경작을 담당했던 한족 노예가 고통을 견디지 못해 도망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기지는 전호(소작인)들에 의해 주로 경작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원래 이 땅은 팔 수 없게 되어 잇는데, 점차 매매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어 이를 막을 수 없게 디자 아예 매매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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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言(식언) 食(먹을 식) 言(말씀 언)
서경(書經) 탕서(湯誓)에는 하(夏)나라의 폭군 걸왕(桀王)을 정벌하려는 은(殷)나라 탕왕(湯王)의 맹서가 기록되어 있다.
탕왕은 박 땅에서 출전에 앞 둔 전군(全軍)에 다음과 같이 훈시한다. 나는 감히 난을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오. 하나라의 임금이 죄가 많아 하늘이 명하시니 그를 치려는 것이오. 나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니 감히 바로잡지 않을 수 없소. 하나라 임금은 백성들의 힘을 빠지게 하고, 하나라 고을을 해치게만 하였소. 탕왕은 하나라 걸왕의 죄상을 설명하며, 계속하여 정벌의 불가피함을 외친다. 바라건대 나를 도와 하늘의 법이 이루어지도록 하시오. 나는 여러분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니, 여러분들은 믿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爾無不信). 나는 약속을 지킬 것이오(朕不食言).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처자식의 목숨을 담보로 제시한다.
食言 이란 밥이 뱃속에서 소화되어 버리듯 약속을 슬그머니 넘겨 버리는 것 이니, 이는 곧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거짓을 말함 을 뜻한다. 떡값 받아 떡을 사 먹는 것으로도 모자라, 선거 때 내뱉었던 공약의 말(言)까지도 깡그리 먹어치우는 이들은 탕왕에게서 신의(信義)를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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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1. 약탈혼이 정당하던 시절
네안데르탈인들의 장례식
장례식은 서아시아 일대에 사로 있던 네안데르탈인, 즉 우리들과 같은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에 속하는 원시인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이라고 하면 표정이 없고 두툼하고 커다란 코를 가진 원숭이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 놓은 것이 많은데 실제로는 오늘날의 유럽 인종에 가까운 용모를 하고 있고 피부도 희며 온몸에 털이 텁수룩하지도 않았다. 또한 발굴된 두개골에서 네안데르탈인의 뇌의 크기가 현대인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려져 있다. 그들은 동료의 시체를 쓰레기처럼 버리지 않고 장례식을 하고 매장하였다. 구멍을 파서 그 속에 시체를 누이고 음식물, 사냥 도구, 불을 일으키는 숯을 함께 넣어 그 위에다 갖가지 꽃을 뿌렸다. 실제로 이라크의 샤니다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무덤에는 여덟 종류나 되는 꽃가루가 남아 있다. 이미 5만 년 전부터 사람은 장례식에 불을 사용하였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어쨌든 네안데르탈인의 무덤가에는 횃불을 피운 흔적이 있다.
시간이 흘러 고대 로마에 와서는 장례식 때의 횃불은 육체를 떠난 혼을 저 세상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어의 funeral(장례)이라는 말은 '횃불'을 뜻하는 라틴어의 funus에서 유래한다. 장례식 때 촛불을 켜놓게 된 것도 로마 시대부터이다. 그들은 시체 주위에 촛불을 세워 놓아 한번 육체를 떠난 영혼이 다시 돌아와 시체를 되살아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그들은 어둠을 집으로 삼는 영혼은 빛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갖가지 장례식의 관습도 죽은 사람에 대한 경애의 마음에서라기보다 저승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된 것이 많다. 고인을 애도해 입는 까만 옷도 원래는 공포 때문에 생긴 관습이다. 서양에서 검은색이 상복의 색깔이 된 것은 친척이건 적이건 또는 타인이건 어쨌든 죽은 사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 기원은 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 사람들은 한순간이라도 경계를 늦추면 죽은 사람의 혼령이 언제 다시 날아 들어올지 모른다고 두려워하였다. 인류학의 자료에 따르면 원시시대의 백인은 장례식 때 영혼을 속이기 위해 온몸을 새까맣게 칠했다고 한다. 또 아프리카에서도 같은 이유로 온몸을 새하얗게 칠하는 흑인 부족이 있었다고 한다. 인류학자들은 몸을 까맣게 칠한 것으로부터, 많은 사회에서 가족이나 친척이 죽으면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내내 검은 상복을 입었던 것은 영혼의 눈을 멀게 하는 방법이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얼굴을 숨기는 베일도 물론 이 공포 때문에 생긴 것이다. 지중해 여러 나라에서는 미망인이 꼬박 1년을 까만 옷으로 몸을 감싸고 베일로 얼굴을 감춘 채 떠돌아다니는 남편의 영혼으로부터 숨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상복이 검은색인 것은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가 아니라 하얀 피부에 반대되는 색이었기 때문이다.
관(coffin)이라는 말은 바구니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온 것이다. 기원전 4000년경 고대 사마리아인은 죽은 동료를 작은 가지로 엮어 만든 바구니에 거두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죽은 사람의 영혼에 대한 공포가 예사 바구니를 관으로 변화시켰다.
아주 먼 옛날 북유럽에서는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위협하지 않도록 특별한 방법을 썼다. 시체를 묶고 머리와 다리를 잘라낸 다음 매장할 장소로 곧바로 가지 않고 일부러 멀리 돌아가 만에 하나라도 죽은 사람이 돌아오려고 해도 길을 알 수 없도록 하였다. 또한 시체를 집 밖으로 내갈 때 출입구로 가지 않고 벽에 구멍을 뚫어 그곳으로 내보낸 뒤 다시 곧 막아 버리는 관습도 많은 나라에서 볼 수 있다.
땅 속을 깊이 파고 시체를 묻는 것도 안전하지만 나무관에 시체를 넣고 관 뚜껑을 못으로 박아 땅 속에 묻는 것은 더욱 안전하다. 이 때문에 옛날 관에는 못이 무수히 박혀 있다.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박아놓았다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못이었다. 게다가 이것도 모자라 관 위에 커다란 돌을 얹고 흙으로 덮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덤 위에 다시 한번 무거운 돌을 얹었는데 이것이 비석의 시초였다. 가족이 애정을 담아 비석에 이름을 새기거나 그리운 고인을 찾아 묘소를 방문하거나 하는 것은 훨씬 뒤의 얘기다. 그런 문화가 생겨나기 전에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고인을 방문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었다.
시체를 묘지로 운반하는 영구차의 기원을 알려면, 고대 농기구의 하나인 갈퀴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왜 그럴까? 거기에는 복잡한 역사가 있다. 로마 시대의 농민은 밭을 경작한 후 히르펙스(hirpex;라틴어로 갈퀴라는 뜻으로 큰 못이 붙어 있는 나무나 쇠로 만든 삼각형의 도구를 말한다)를 사용하여 흙을 긁어 골랐다. 기원전 51년 시저의 통치시대에 로마는 갈리아 지방의 평정을 끝내고, 그에 따라 서유럽으로 옮겨가 살게 된 로마인이 이 갈퀴를 새로운 토지로 가져갔다. 이 도구는 이윽고 영국의 여러 섬에도 전해져 하로(harrow)라 불렀지만 11세기 노르만인이 영국을 정복하자 프랑스식으로 에르스(herse)로 불리게 되었다. 노르만인은 이 갈퀴를 뒤집으면 교회에서 쓰는 가지가 달린 촛대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리하여 교회의 촛대를 차츰 '에르스'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제사를 지낼 성인과 축제일이 늘어남에 따라 세워야 할 촛불의 숫자가 늘어나 촛대는 자꾸만 커지게 되었다. 이 커다란 촛대는 원래는 제단에 설치되어 있었지만 훗날 명사의 장례식에서는 관을 얹어 놓은 대 위에 놓이게 되었다.
15세기에는 2미터나 되는 커다란 촛대로까지 발전했다. 다시 아름답게 꾸며진 커다란 촛대는 장례식 때에 관 뚜껑 위에 얹혀져 관과 함께 운반되었고, 16세기 영국에서는 촛대와 관을 얹은 운반차를 가리켜 하스(hearse)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농기구였던 하스는 드디어 장례식 때의 관을 운반하는 영구차가 된 것이다. 장례 행렬이 느릿느릿하게 나아가는 것도 실은 고인에게 존경을 나타낸 것만은 아니다. 관 위에 세워 놓은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장례식에 참가한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자연히 느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무렵 장례 행렬의 속도가 오늘날 영구차의 속도에도 영향을 끼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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