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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809호
2010.11.16 (음 10.11)/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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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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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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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소설은 책으로서의 인생이다. 각기 인생은 하나의 제목, 하나의 표제, 하나의 서문, 하나의 서론, 하나의 본문 등을 지니고 있다. ─ 노발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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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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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치미를 떼다
길들인 매로 꿩이나 새를 잡는 매사냥. 매사냥은 고려 때 특히 성했다고 전한다. 길들여진 매는 귀한 대접을 받았는데 도둑맞거나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 표지를 달기도 했다. 이 표지 이름을 시치미라고 한다. 이것을 떼면 주인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 여기서 ‘시치미를 떼다’에 ‘자기가 하고도 안 한 체하거나 알고도 모르는 체한다는 뜻이 생겨났다.
거절과 거부
‘거절’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쓰인다. ‘그녀의 거절에 자존심이 상했다.’ ‘친구 부탁이라 거절도 못 했다.’
‘거부’는 주로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사용된다. ‘주식시장 상장이 거부됐다.’ ‘야당은 여당의 협상안을 거부했다.’ ‘거부’는 개인 사이에서도 쓰이는데 이때는 동조하지 않는다는 뜻을 더 강하게 나타낸다.
‘그는 완강히 거부했다.’
생선, 생파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엄마, 생선 사야 돼. 돈 좀 주세요"라고 했다. "생선-, 생선은 왜." "생파에 가야 돼요." "뭐. 생파-." 무슨 말인지 몰라 멍하니 생각하던 엄마는 한참이 지나서야 '생선'과 '생파'가 '생일선물'과 '생일파티'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처음엔 무슨 과제물인 줄 생각했다. 신세대가 쓰는 말 중에 어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비호감(호감의 반대말), 갈비(갈수록 비호감), 열공(열심히 공부함), 반띵(반으로 가름), 훈남(훈훈한 남자), 완소남(완전 미소남), 길막(길을 막는 행위), 출첵(출석 체크), 썩소(썩은 미소), 살소(살인 미소)…. 친구 사이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로 '열라' '절라' '졸라' 등과 어울려 쓰이기 일쑤다.
인터넷상에서 사용하는 줄임말이나 신조어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로긴, 아뒤, 비번, 자삭, 채금, 친추, 포샵, 지대, (캐)안습, 완소, 갠소, 므흣, 아놔, 넘넘, 샹훼…. 'ㅎㅎ', 'ㄱㅅ', 'ㅈㅅ' 등 자음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적지 않다. 여친, 남친, 얼짱, 쌩얼, 악플 등은 이미 언론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정도로 누구에게나 익숙한 것이다. 이들 줄임말의 출발지는 대부분 인터넷이다. 속도를 중시하는 인터넷의 특성상 줄임말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글자 수 제한이 따르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도 한몫하고 있다. 사물이나 감정 등을 이처럼 두 글자로만 표현하는 사람들을 '투글족'이라 부르기도 한다.
인터넷상에서 줄임말이 사용되는 것을 무턱대고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선' '생파'에서 보듯 실생활에서 그대로 사용됨으로써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가져온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말들은 본질적으로 우리말 파괴를 수반하기도 한다. 기형적 언어의 양산을 막고 의사소통 장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자세와 올바른 우리말 교육이 더욱 필요하다.
계기, 전기, 기회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앞머리는 더부룩해 누구나 쉽게 잡을 수 있지만 지나간 뒤엔 다시는 붙잡을 수 없도록 뒤통수는 대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리시포스는 이런 모양의 동상을 만들어 '기회'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적절한 시기나 경우를 가리키는 말인 기회(機會)는 삶의 변화를 이끌기도 하고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이를 달리 '계기'나 '전기'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 그 쓰임새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계기(契機)'는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 원인이나 기회를 일컫는다.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국내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졌다" "한국계 미식축구 선수인 하인스 워드의 성공담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인종 편견을 반성하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처럼 사용한다.
'전기(轉機)'는 전환점이 되는 시기나 기회를 이르는 말로 "허정무 감독에게 발탁돼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박지성 선수는 2001년 거스 히딩크를 만나 축구 인생의 전기를 맞이한다" "월드컵 공동 개최 이후 한국과 일본 간 문화.스포츠 등 민간 교류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와 같이 쓰인다.
두 단어 모두 기회라는 의미를 품고 있지만 '계기'는 어떤 것을 움직이고 결정하는 원인에, '전기'는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는 시기에 주안점을 두고 쓰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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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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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魂에 불을 놓아 - 이해인
언제쯤 당신 앞에 꽃으로 피겠습니까. 불고 싶은대로 부시는 노을빛 바람이여, 봉오리로 맺혀 있던 갑갑한 이 아픔이 소리없이 터지도록 그 타는 눈길과 숨결을 주십시오. 기다림에 초조한 내 비밀스런 가슴을 열어놓고 싶습니다. 나의 가느다란 꽃술의 가느다란 슬픔을 이해하는 은총의 바람이여, 당신 앞에 <네>라고 대답하는 나의 목소리는 언제나 떨리는 3月입니다. 고요히 내 혼에 불을 놓아 꽃으로 피워내는 뜨거운 바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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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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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세게 부는 날 - 최지향
나목의 느티나무 가지 위에 까치가 앉았어요. 작년에 남아 있던 까치집 열심히 보수를 하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은 부지런히 집을 지어요.
매서운 부리로 나뭇가지 날라다가 이리로 맞추어 보고 저어리 맞추어 가며 집짓기 여념이 없어요. 바람세게 부는 날은
까치집 있는 느티나무 높다란 가지 위에 봄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 건드리면 꽃잎이 피어나면서 느티나무 봄이 옵니다.
느티나무 꽃이 피고 잎새 커지는 동안에 까치는 집 짓느라 꽃 감상할 틈이 없어요. 꽃망울 보지도 못한 채 봄날들을 다 보내요.
까치집 완성되면 느티나무 꽃은 지고 푸르는 잎새들로 까치집 가려지면 까치는 잎새 속에서 아기새를 기다립니다.
4월은 까치 부부 무~척 바쁜 시절 알을 낳고 알 품으며 아기새 그려본답니다. 푸르른 오월이 되어 귀여운 아기새 지저귈 그날 바다 밑에 숨겨두고 성난 파도 세차게 아무리 떼를 써서 덤벼봐 하고픈 대로 해 내 있을 곳 여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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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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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눈1) - 최춘해
- 배고프다고 분별없이 먹지 마셔요 까투리가 당부한 말 지나쳐 듣지 마라.
양지바른 논둑 밑에 맨 먼저 눈 녹은 자리에 낟알 굵은 콩이 없다가 나타났는데 너는 왜 의심하지 않느냐.
남에게 잘 속으면 사람들은 수꿩이라 한다. 속일 줄 모르는 꿩 소는 줄도 모르는 꿩.
온 산 온 들에 눈이 하얗게 쌓였는데 햇살이 눈부신 아침에 때깔 좋은 꿩 서너 마리 논둑 밑에 서성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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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시조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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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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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제6장. 작지만 확고한 행복을 나는 원한다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새로 사귄 애인 사진 -나처럼 회사에 다니지도 않고 자식도 없는 사람은 자기 나이에 대한 정상적인 감각을 점점 상실하게 된다. 어떤 부분에서는 형편없이 어린애 같아지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묘하게 노인처럼 되거나 한다.
얼마 전에 오래간만에 옛 친구와 만나서 잡담을 하며 술을 마시고 있으려니까, 갑자기 지갑에서 젊은 여자 사진을 꺼내 보여주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사진이냐고 물어 보았더니, 새로 사귄 애인 사진이라고 했다. 꽤 귀여운 얼굴이었다. 덧붙여 말하면, 그는 나와 나이가 같지만 독신이다.
"어때, 어리지?"하고 그가 말했다. "그래, 어리군"하고 내가 대답했다. "후후후, 열여덟 살이란 말이야, 열여덟"하고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강조했다.
상당히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기뻤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갑 속에 자기 나이의 절반쯤 되는 어린 애인 사진을 넣어 가지고 다닌다니 정말로 대단하다. 어쨌든 꽤 즐거워 보인다. 하지만, 이런 친구는 정말로 특수한 예고-이런 사람들만 있다면 이쪽 머리까지 이상해질 것 같다-나만한 연배가 되면 대개의 사람들은 지갑 속에 어린아이의 사진을 넣어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만나면 나에게 보여 준다. 벌써 큰아이는 초등 학교 3학년이거나 한다. "이 녀석이 벌써 아홉 살이라니까"하고 말하는 그도 즐거워 보인다. 상당히 타입이 다른 이 두 가지 예를 함께 종합해 보면, 나도 이제 꽤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실감을 문득 하게 된다. 독신자는 독신자 나름대로, 가정을 꾸린 사람은 가정을 꾸린 사람 나름대로 나이를 먹고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것이다. 나처럼 회사에 다니지도 않고 자식도 없는 사람은 자신의 나이에 대한 정상적인 감각을 점점 상실하게 된다. 어떤 부분에서는 형편없이 어린애 같아지고,또 어떤 부분에서는 묘하게 노인처럼 되거나 한다. 그래서 이따금 옛날 친구들과 만나거나 하면, 여러 가지 감정이 새삼스럽게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내 지갑 속에는 어느 누구의 사진도 들어있지 않다. 자식은 없고, 젊은 여자의 사진을 넣어두거나 하면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문제로 발전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의 사진을 넣고 다니는 것도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이 내 아내인데, 서른 몇 살이야"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하긴 그렇게 난처한 일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지만.
낡은 혼의 흔들림 같은 여름의 어둠 -틈만 있으면 슬리핑 백을 둘러메고 혼자 여행을 하며 돌아다니던 무렵, 여행지에서 그 고장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 옛날에 내가 아직 학생이고, 틈만 있으면 슬리핑 백을 두러메고 혼자 여행을 하며 돌아다니던 무렵, 여행지에서 그 고장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즐거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기묘한 이야기를 말이다. 어느것이나 다 그 고장의 역사와 지형이나 기후와 밀접하게 결부된 이야기였다. 자신의 다리로 마을이나 부락을 일일이 돌아다니다 보면, 하나하나의 장소에 사람들의 추억이 미세한 비늘처럼 달라붙어 있다는 것을 알 수 가 있다. 이러한 것은 비행기나 신칸센이나 자동차를 이용하는 바쁜 여행자의 눈에는 거의 띄지 않는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땀에 흠뻑 젖어서 바보처럼 며칠씩이고 뚜벅뚜뻑 겉고 있노라면 조금씩 보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산속에서 한 노인이 '죽은 이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죽은 이의 길'이라는 것은 죽은 사람의 혼이 명도9역주:불교에서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영혼이 세계)로 향하는 길을 말하는데, 그것은 모든 물이 강 줄기를 따라서 바다로 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신성한 길이어서 사람들은 될 수 있는 대로 그 길에 가까이 가서는 안된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죽은 이의 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까?"하고 나는 노인에게 물어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칫 잘못해서 그런 곳에서 노숙이라고 하게 되면 큰일이 날 테니까 말이다. "추우니까 금세 알 수가 있지. 한여름이라도 등줄기가 얼어붙을 것처럼 춥거든. 혼이 길을 걷고 있을 때는 말이야"하고 노인은 말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여름 밤은 무더운 것이 좋다고 나는 개인저긍로 생각하고 있다. 여름은 무더운 것이 당연하며, 극서이 가장 평화로운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데, 도시 한가운데서 숨을 거둔 사람들은 어떠한 코스를 더듬어서 죽은 이의 나라로 향하는 것일까? 그들은 빌딩 그늘을 살며시 더듬에서 지하철 궤도의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 가거나, 혹은 빗물과 함께 하수도로 기어들어가서 소리도 없이 도시를 가로질러 가는 것일까? 나로서는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요즘도 그 노인의 말을 떠올리면서, 지하철 차량의 맨 앞에 서서 뒤로 밀려가고 있는 어둠을 뚫어지게 바라볼 때가 있다.
낡은 혼이 흔들리는 것 같은 여름의 어둠
지각한 여학생이 담 넘어가는 광경 보면 하루 종일 즐겁다 -나는 호텔의 4층 창문에서 지각한 여고생이 담 넘어가는 광경을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박수를 보내고는, 하루 종일 즐거운 기분으로 보낸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시간에는 츨두철미한 편이어서,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약속 시간에 늦지를 않는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저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학생 때는 상습적으로 지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밥 먹듯이 사람을 기다리게 했다. 학교를 나와 직접 장사를 시작하고, 타인을 향해서 절대로 지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입장이 되고 나서부터 나 자신의 지각하는 버릇도 완전히 고쳐진 것이다. 지각하지 말라고 주의를 조는 당사자가 지각을 하면, 아무도 그 사람의 말은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학생 때는 아무런 지각을 해도 별로 상관이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교에 가는 시간이 다소 늦어졌다고 해서 시시한 수업의첫부분을 조금 듣지 못하고 해서 그렇게 손해볼 것까지는 없는 것이다.필요에 따라서 갖가지 버릇과 습관을 고쳐 나가는 것은 사회에 나오고 나서 해도 충분하다. 내가 이따금 머무는 시내의 호텔 창문에서는 여자 고등학교의 정문이 바로 내려다 보인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샤워를 하고 아침식사를 끝내고 담배를 한 대 피우면, 대개 이 학교의 등교 시간이된다.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들이 한결같이 검은 가방을 들고 차례차례로 걸어와서 교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바삐 뛰어오는 여학생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고 나서 운명의 벨이 울리고, 정문이 끼익 하고 닫힌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심술 사나워 보이는 선생님이 교문 옆에 서서, 지각한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의를 주면서 이름을 적어 나간다. 그러나 개중에는 반드시 '호락호락 지각생 명단에 오를 수야 없지'하는 생각을 하는 짓궂은 여학생이 있다. 그런 학생은 정문 근처에 있는 전신주 뒤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다가, 트레이닝 복을 입은 선생님이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는 한 순간을 포착하여, 재빨리 길을 가로질러서 옆집 담으로 다가가서 슬슬 그것을 타고 넘어 그대로 학교의 담 안으로 뛰어내리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스커트 자락을 툭툭 털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서 교실로 들어간다. 용기와 판단력과 체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재주다. 나는 호네르이 4층 창문에서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박수를 보내고는, 하루 종일 즐거운 기분으로 보낸다. 그런 일로 인해서, 나는 그 여자 고등학교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이 꽤 마음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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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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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2. 예언자 - 칼릴 지브란
옷에 대하여
그러자 한 직공이 말했다. 옷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의 옷이란, 아름다운 것은 많이 가리지만 추한 것은 가리지 못하는 것. 그대들은 옷으로써 각자의 자유를 누리려 하지만, 오히려 옷이야말로 갑옷이 되며 쇠사슬이 됨을 알게 되리. 그대들은 옷을 좀 덜 입음으로써, 그대들의 살이 좀더 태양이나 바람과 접촉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노라. 왜냐하면 삶의 숨결은 태양 속에 있고, 삶의 손길은 바람 속에 있기에. 어떤 이는 말한다. <우리의 옷을 짠 이는 북풍이다>라고. 난 말한다. 그래 북풍이었다. 그러나 그의 베틀은 수줍음, 그의 실은 약해진 힘줄. 그리하여 일을 다 마쳤을 때 바람은 숲속에서 웃었다. 수줍음이란 불결한 자의 눈을 가리는 방패일 뿐임을 잊지 말라. 그리하여 불결한 자가 더이상 있지 않게 될 때, 수줍음이란 마음의 더럽힘, 또는 족쇄 이외에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잊지 말라. 대지는 그대들 맨발의 감촉을 기뻐하고, 바람은 그대들 머리카락과 장난하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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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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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심리 - 김성태
첫째 묶음 - 생활 속의 심리
불안이란 무엇인가
불안이란 대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이같은 불안이 인간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청소년들의 불안의 요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불안이란 공포와 아주 비슷한 감정 상태인데, 다만 무서워하는 대상이 분명하지 않고 막연하며, 대상을 두려워하는 정도가 미약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스필버거(미국의 심리학자)는 불안을 "긴장과 두려움이 불쾌하게 의식 속에서 지각되는 감정 상태인데, 이때 자율신경 계통의 흥분이나 이와 연합된 활동이 결부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정의 하였다. 이렇듯 그는 불안의 주된 요인을 두려움이나 근심이라는 의식 요인과 이에 수반되는 만성적인 정서상태로 본다. 또한 근심이 일에 실패할 때 나타나는 결과를 인지적으로 문제삼는다면, 정서는 생리적 기능 특히 자율신경 계통의 기능 변화에 관련된다고 본다. 이렇듯 불안은 불쾌한 긴장 상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게 될 때면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애를 다 쓰면서 이를 위해 여러 가지 반응을 나타낸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대상이 뚜렷하지 않다. 그래서 이 불안을 면하는 방법도 알 수 없으므로 이 불안에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불안은 외부로부터 상당한 위협을 받거나 사회적 접촉에서 적절한 기교를 행사하지 못할 때, 또는 마음속에 어떤 갈등 상태가 지속될 때 나타난다. 그러나 불안의 해소는 쉽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불안 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불안이 만성화되면 병적 행동으로 굳어지거나 성격 자체가 일그러지기도 한다.
쉽게 해결하기 어렵고 깨뜨리기 힘든 이같은 불쾌감의 상태를 프로이트는 "자아가 위험을 느끼면서 자기 힘으로 감당해 낼 수 있느냐의 여부를 저울질해 자신의 무력을 자인할 때 나타나는 상태"라고 본다. 그는 직면하고 있는 위험 상황이 외적 세계에서 유래되었음이 분명할 때 이를 "현실 불안"이라고 이름하고, 그 위험 사태의 기원이 초자아에 있다고 보일 때 이를 "도덕적 불안"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위험 사태의 기원이 이드(본능)에서 연유한다고 할 때 이를 "신경증적 불안"이라고 한다. 그는 바로 이 신경증적 불안이 신경증의 병인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이런 불안이란 정체 모를 위험에 대한 두려움의 정서 상태라고 한다.
호나이(1885-1952, 미국의 정신 분석학자)는 불안을 인간 활동의 원동력이라고 본다. 그는 자기 주변에 잠재적으로 깔려 있는 위험에 대응하면서 기본적으로 지니는 주관적 위험에 대한 반응을 "기본 불안"이라고 하고, 이 기본 불안의 여러 가지 변형에 의해 여러 병적 상태가 유발된다고 본다. 이처럼 설명 개념 내지 지속적 정서 상태로서의 불안을 생각하는 대신,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정서 상태 또는 긴장 상태가 발산된 후 약간 잔류된 긴장이 누적되어 불안 상태가 나타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불안반응이라는 반응들의 정도를 수량적으로 측정해서 불안의 강약을 규정짓는 이른바 조작적 정의로 불안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였다. 임상 심리학적으로는 현재 심한 불안이 지속되거나 때때로 심한 불안 발작이 나오는 경우 이를 병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때 전문가의 처치가 요구된다. 그러나 약간 심한 불안 상태는 일시적이면서 지속적으로 흔히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태는 생활에 지장은 주지만 이를 쉽게 극복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후 이 불안 반응 내지 불안 상태를 요인 분석해 본 결과 이들은 만성적 불안과 급성적 불안으로 나뉜다. 전자는 비교적 영속적인 성격을 띠며, 후자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일시적 정서 상태를 띤다. 스필버거는 이 두 불안을 "특성 불안"과 "상황 불안"이라고 한다. 상황 불안은 일시적 정서 상태로서 객관적 위협과는 상관없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에 따라 그 강도가 불규칙하게 변한다. 특성 불안은 안정성이 있으며 개인의 차가 많고 상황 불안의 밑받침이 된다. 특성 불안의 세기가 강해지면 상황 불안도 더 자주 나타나며 더 세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비교적 안정된 특성 불안을 기초로 하여 주변에서 작용하는 스트레스에 의해 그때그때 강도가 다른 상황 불안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이때의 스트레스는 심리적 스트레스와 물리적 스트레스로 나뉜다. 자존심의 손상이나 자아의 위협이 되는 것을 전자로 본다면, 신체적 손상이나 심한 통각이 위협받고 있는 것은 후자라고 하겠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근심이 있을 때는 특성 불안의 측정치에 일시적으로 다소의 변동이 있을 수 있겠지만, 높은 특성 불안을 지니게 되면 자기 비하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높은 상황 불안이 나타난다. 물리적 스트레스는 상황불안을 높이지만 특성 불안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 요컨대 특성 불안이 높은 사람은 심리적 스트레스에 의해 어떤 상황을 더욱 위협적으로 보게 되지만, 물리적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특성 불안이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간에 상황 불안에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불안이 일의 수행에 주는 영향이 어떠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에 의해 많이 연구되었는데, 대체로 일 수행에 미치는 불안의 효과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물론 불안이 모든 일의 수행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의 곤란도와 상호작용을 일으켜 어려운 일이나 복잡한 일의 수행에서는 특히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렇게 곤란한 일이나 복잡한 일에 불안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일의 종류와 관계된다. 즉 어렵고 복잡한 일을 수행할 때는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실수도 많겠고, 또 실패 경험이 많으면 근심이 습성화되어 불안을 더욱 세게 조장시킨다. 사실 상황 불안은 쉬운 일을 할 때보다 어려운 일을 할 때(또는 한 후)가 더 높다고 한다. 그러므로 특성 불안이 높은 사람은 실패를 많이 할수록 학습이 부실해지고, 성공을 많이 할수록 학습이 더욱 효과적으로 진행된다. 곤란한 일에 불안이 더욱 부정적인 작용을 하는 이유를 불안이 단기 기억 작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사실 불안은 단기 기억의 효율성을 감소시킨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불안에 단기 기억 체계의 기능을 좌우하는 요인이 있지 않나 하고 1960년 이후 이 방면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불안은 주의 과정(그 중 특히 선택 작용)에도 영향을 끼친다. 의도적 학습과 우연적 학습이 합쳐 있을 때, 의도적 학습에는 불안이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만 우연적 학습에는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는 불안이 높으면 높은 우선권을 지닌 자극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이 주의의 통제력에 영향을 끼치는 기제에 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다. 불안이 자극에 주의를 집중시켜서 산일(흩어져 일부가 없어짐)을 막는힘이 있다고 보기도 하고, 반대로 불안이 주의의 산일을 조장한다고 보기도 한다. 결국 불안은 산일을 조장하기도 하고 감소시키기도 하는데, 특히 높은 불안은 복잡한 일을 할 때 산일이 증진된다. 불안한 사람은 자신에 관해 많은 댓가를 치르면서 복잡한 일을 수행하므로 부가적인 산일 자극에 아주 약한 편이라 하겠다. 산일은 외적 자극에 의해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고 내적 자극에 의해서도 나타난다. 내적 사고나 상념에 의해 진행 중인 주의가 산일 되기도 한다. 내적 자극에 의한 이러한 산일은 불안이 심해지면 근심이 생기고 편견에 빠지기도 하여 하던 일에서 주의가 벗어나고 만다. 검사에 심한 불안을 보이는 사람은 검사할 상황에서 명상적 생각이 주가 되는 근심에 사로잡혀 해야 할 일 그 자체에는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불안이 기억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불안이 정보처리 과정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안은 정보처리 과정 중에서도 특히 정교화의 억제나 처리의 범위를 좁히는 기능을 한다. 불안이 높으면 강한 단서의 재생은 영향받지 않으나, 약한 단서의 재생은 이것의 영향으로 광범위한 처리 과정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처리 과정의 정교화가 억제된다. 결국 불안이 일을 수행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 것은 단기 기억 작용을 억제하고 주의의 선택력을 증진시키며 주의의 통제력을 억압하는 작용 때문이라 하겠다. 이렇게 고찰해 볼 때 일을 수행하는 데 끼치는 불안은 아주 적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같은 불안의 영향을 극복하려면 불안 중에서도 특히 근심 요인의 재검토가 시급하다. 근심은 일을 수행하는데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이 근심은 일을 수행하는데 적합하지 않은 정보처리 과정이기 때문이라 하겠다. 따라서 만일 이 근심이 일을 수행하는데 적극적인 조장적 처리 과정이 되게 끔만 한다면, 이 근심은 일을 수행하는 데 촉진적 효과를 지니게 될 것이다. 요컨대 불안은 주의 과정의 선택 작용을 증진시키며 단기 기억 능력과 그 정확성을 감속시킨다. 또한 불안은 장기 기억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하며 주의의 통제력을 감소시켜 수행하는 일 혹은 그 일에 관계없는 근심까지 하게 한다. 이것은 불안이 자기 관여 활동에도 주의를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서구의 문학자들은 청소년 시절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해서 낭만적으로 이 시절을 미화시키고 있으나, 정신 분석학자들은 청소년 시절을 심리적으로 교란이 심한 때로 파악한다. 그러나 정상적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연구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고 한다. 어쨌든 청소년기는 인간의 일생 중에서 가장 의욕적이고 어려움이 많다고 느껴지는 시기임에 틀림없다. 청소년 시절에는 변동이 많다. 신체적인 급성장과 성적인 성숙 등 여러 변화가 연속되고 인지 작용도 발달한다. 이와 아울러 사회적 욕구가 분명해지면, 독립 요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친구와 어른들에 대한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또한 장래의 직업을 준비하기 위해 학업을 이수하며 교양을 넓히고 나름대로의 인생관을 굳혀 주체성을 확립시켜 나간다. 이런 변화는 의식적이기도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수가 많다. 이러한 변화 과정이 스트레스를 수반하기도 하는데, 변화 후에 전개되는 새로운 역할 수행이 큰 스트레스를 가져다 주어 이와 관련해 불안이 나타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면 청소년들이 불안해 하는 일반적인 요인들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현대 사회에는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규범이 있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는 가치관도 다양해 세대간 개인에 따라, 혹은 같은 개인에게서도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가치 기준을 찾아야 하므로 가자는 가치 기준 적용에 신중을 기하고 머리를 많이 쓰게 된다. 이러한 생활 조건에서는 불안이불가피하게 나타난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과보호로 다룬다. 이들이 청소년기에 이르면 갑자기 높은 수준의 독립성과 역할 수행을 요구받게 된다. 이러한 강요에 떠밀리는 청소년들은 심한 부담감을 지니며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관련시켜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소임의 인지와 실천 사이에서의 괴리감이다. 즉 청소년 부모나 사회가 기대하는 것과, 자기가 해낼 수 있는 것 사이의 격차가 심해 불안을 느끼게 된다. 사회가 점차 핵가족화 되면서 가정 내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이 약화되는 것도 불안의 한 요인이 된다. 특히 아버지를 접할 기회가 적어지면서 남자 아이의 경우 아버지를 자신과 동일시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 이에 따라 남자 아이는 성장한 후 남자로서의 소임을 수행해 볼 기회가 적어진다. 이 때문에 그 아이는 자아상이 뚜렷하게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일에든 자신 있게 대응해 나가지 못하고 공연히 불안스러워 하는 경향을 지니게 된다. 또 하나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을 지나치게 불안하게 하는 요인은 입시 준비에 치중된 교육 분위기에도 있다. 독립심을 기르고 인생관을 확립시키며직업 준비에 열중할 시기에 입시 경쟁에 몰두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확고한 인생관이 없는 무정견한 사람이 되기 일쑤다. 이러한 무정견의 상태에서는 불안이 그의 생활 저변에 자리잡고 괴로움을 주게 마련이다. 실로 청소년들의 이러한 불안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 나가야 하는 과제는 오늘날의 청소년 문제와 사회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관건이 아닌지. 아니 더 나아가 이것은 현대 사회의 운명을 좌우하는 과제가 아닐는지.
"198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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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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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항아리 속의 달
어느 날 밤 위대한 회교 시인 아와디 커만은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위대한 신비주의자인 샴스 에 타브리지가 그 앞을 지나가다가 그 시인의 행동을 바라보고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시인이 대답했다. "물항아리 속의 달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샴스 에 타브리지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시인은 기분이 꺼림칙해졌고 이윽고 그 소리에 군중이 몰려들었다. 시인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당신은 왜 그렇게 웃으며 나를 조롱합니까?" 샴스 에 타브리지가 말했다. "네 목이 부러지지 않았다면 왜 곧장 하늘의 달을 쳐다보지 않는가?"
- 진실을 경전이나 철학 속에서 찾는다는 것은 물에 비친 달을 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네가 어떤 이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너는 그릇된 가르침을 청하고 잇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오직 그의 삶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단코 두 개의 삶이란 동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너에게 어떤 말을 하든지 그것은 그의 삶에 관한 것이다. 진짜 달은 저 하늘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 저 달은 너의 달이고 저 하늘은 바로 너의 하늘이다. 곧장 보라. 왜 너는 다른 사람의 눈을 빌리려 하는가? 너에게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눈이 있다. 직접 보라. 왜 다른 사람의 깨달음을 빌리려 하는가? 명심하라.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깨달음일지라도, 네가 그것을 빌리는 순간, 너에게는 지식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더이상 깨달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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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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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57. 지행합일을 최고선으로 - 양명학의 성립(15세기 말~16세기 초)
남송대 이후 원나라를 거쳐 명대에 이르는 동안 중국사상의 핵심은 주자가 완성시킨 성리학이었다. 성리학은 거의 완벽한 사상적 체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명대 초기만 하더라도 주자학(성리학)의 큰 흐름 밖에서 새로운 사상의 흐름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아울러 후세 사람들은 주자의 생각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지게 되어 사상의 새로운 변화를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치의 빈틈이 없을 것 같은 성리학에 반대하여 새로운 사상을 들고나온 사람이 있으니, 그가 곧 양명학을 성립시킨 왕양명이다. 1472년 절강성에서 태어난 왕양명은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가게 된 아버지를 따라 10세 때 북경으로 가게 되었다. 28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35세 때 세도를 부리던 환관 유근에 반대하다가 투옥되기도 했으며, 유배나 다름없는 변방의 관직에 머물기도 했다. 머무를 집초차 없어 스스로 집을 지어야 했고, 수행하는 시중이 병들어 도리어 그를 간호해야 하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어려운 조건에서 과거 옛 성현들의 도(진리)가 무엇이었을까를 깊이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는 마친매 도라는 것은 여러 사물을 통해 깨닫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서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음을 깨우치게 된다. 자기를 내쫓았던 환관 유근이 살해되면서 왕양명은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정상적인 관료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가 살던 시기(1472~1528)는 문화적으로 명대의 융성기이면서도 반란이나 민란이 자주 일어나던 시기로서, 그는 사상으로뿐만 아니라 군사 전략가, 정치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는 광서성의 반란군을 토벌하고 돌아노는 길에 폐결핵이 재발하여 60세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왕양명은 주자학(성리학)을 비판하고 그의 독창적인 학문인 양명학을 만들었는데, 양명학과 주자학은 어떻게 다를까? 우선 주자의 성즉리설에 의하면 이라는 것은 개인의 내적인 이인동시에 외적인 여러 사물의 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왕양명의 사상은 이것과 달리 이른바 심즉리를 주장하여 마음을 바로잡아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성리학에서는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덕성을 존중하고 학문에 의존한다고 했는데, 양명의 생각에는 덕성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학문에 의존할 수 있겠는게 하는 것이다. 또한 성리학에서는 성인의 경지는 배워서 도달할 수 있다고 한 데 반해, 양명은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컨대 양명은 마음을 강조한 것이다. 예를 들어 효라고 하는 것은 효에 관한 덕목을 배워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버이를 공경한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즉, 효심과 효행은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경향으로 해서 양명학은 '지행합일' 즉,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라는 주장을 펴게 된다.
성리학에 대항한 양명학이 나오게 되는 것은 송대 사회와 명대 사회가 다른 데에도 이유가 있다. 즉, 송나라 시기는 사대부 중심의 신분질서가 확고한 농업사회였다. 따라서 성리학에 의하면 사람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그의 직분이 있다는 것이다. 지주와 소작인(전호) 관계는 하늘의 이치에 따라 결정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명대는 상품생산이 활발해지고 화폐경제가 성립했으며 소농민들의 농업경영이 더욱 활발했던 시기였다. 송대 이래의 신분질서가 무너져가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상도 그러한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새로이 정리될 필요가 있었다. 양명학의 탄생은 그런 사회 변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하여 양명은 "마음으로 구해 옳지 않을 때에는 공자의 말이라도 옳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백성들에 대한 생각에도 두사상의 차이가 있다. 사서 중 (대학)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신민,..."이 나온다. 여기서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구절은 원래 "백성을 친하게 한다"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주희는 이 '친'자를 '신'자로 보며, 왕양명은 원래대로 본다. 이것은 신분질서를 옹호하는 입장인 성리학은 백성을 새롭게 한다고 하여 백성을 교화의 대상, 즉 지배층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양명학에서는 백성을 친하게 한다고 해석하여 단순히 지배층의 교화의 대상이 아니고 함께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왕양명을 이어서 양명학을 계승 발전시킨 사람이 이탁오(1527~1602)였다. 복건성 사람으로 그의 집안이 이슬람 교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족보가 최근에 발견되기도 했다. 이탁오 스스로는 나중에 머리를 깎고 마치 승려처럼 행동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세상 사람들의 도덕과 일반적인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괴상한 생동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결국 70이 넘는 나이에 체포되어 옥에 갇쳐 있다가 옥중에서 자살함으로써 생을 마쳤다. 이탁오는 왕양명이 마음을 중시한 것을 더욱 강조하여 기존의 인습이나 도덕, 지식 등에 의해 오염되지 않는 지극히 순수한 마을을 '동심'이라 하고, 이 동심 앞에서는 공자, 맹자도 유교경전도 절대적 권위를 가질 수는 없다고 했다. 그의 유교에 대한 이러한 거친 비판이 그의 적들을 많이 만들어냈고 결국 체포되기에 이른 것이다. 왕양명과 이탁오 등의 사상적 활동으로 인해 성리학은 핵심적인 사상의 위치로부터 서서히 밀려나게 되었고 명나라에서는 양명학이 융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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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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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평양에선... - 塗炭之苦(도탄지고) 塗(진흙 도) 炭(숯 탄) 之(갈 지) 苦(괴로울 고)
서경(書經) 중훼지고(中?之誥)에는 은(殷)나라 탕왕(湯王)의 어진 신하였던 중훼가 탕왕에게 고하는 글이 실려있다. 탕왕은 무력으로 왕위를 차지한 것을 늘 괴롭게 여기고 후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구실 삼을까 염려하였다. 중훼는 이러한 탕왕의 마음을 알고 다음과 같이 아뢰어 그를 격려하였다.
하늘은 총명한 이를 내셔서 이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夏)나라 임금은 덕에 어두워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게 되었으니(民墜塗炭), 하늘은 이에 임금님께 용기와 지혜를 내리시어, 온 나라의 의표가 되어 바로 다스리게 하시어, 우(禹)임금의 옛 일을 계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분의 법을 따라서 하늘의 명을 받드시는 것입니다.
塗는 진흙을 뜻하고 炭은 숯불 을 뜻하니, 塗炭之苦 란 진흙수렁이나 숯불에 빠진 것과 같은 괴로움 을 말한다. 이는 재난(災難) 등으로 몹시 곤란한 처지에 빠져있음을 나타낸다. 북한의 어려운 형편을 묘사함에 도탄(塗炭) 이라는 표현은 적절하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속에서 허덕이는 북한 동포들은 지금 塗炭之苦 를 겪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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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이글저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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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1. 약탈혼이 정당하던 시절
웨딩드레스의 색깔 논쟁
하얀색은 청정과 순결을 나타내는 색깔이다. 그러나 고대 로마에서는 신부가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노란 베일을 썼다. 사실 신부가 쓰는 베일은 웨딩드레스보다 역사가 오래 되었다. 그리고 베일은 신부가 쓰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복식사가들에 의하면 베일은 남자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여성을 종속적인 지위에 두고 다른 사내의 눈으로부터 숨겨두기 위해서 고안된 물건이다. 그 긴 역사 속에서 고상함과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거나 비밀리에 정을 통한다든가 상을 당한 것을 나타내왔던 베일은 여성의 몸에 걸치는 물건이면서도 여성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은 유일한 의상 용품이다. 동양에서는 베일이 적어도 4000년 전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얌전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결혼한 여자는 남편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기 위해 베일로 얼굴을 가렸다.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은 집에서 한 발짝이라도 나갈 때에는 반드시 머리와 얼굴의 일부를 덮어야 했다. 남자가 만든 이 계율은 더욱 엄격해져서 눈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가려야만 했다. 눈을 내놓은 것은 당시의 베일이 두꺼운 천이어서 푹 뒤집어쓰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북유럽의 여러 나라에는 그런 관습은 없었다. 여기서 베일을 쓴 것은 약탈된 신부뿐이었다. 이 베일은 색깔과는 상관없이 얼굴을 가릴 수만 있으면 족했다. 기원전 4세기에는 그리스인과 로마인들 사이에서 결혼식 때 얇고 환히 비치는 베일을 쓰는 것이 유행하였다. 신부는 베일을 핀으로 머리카락에 고정시키거나 머리에 잡아맸다. 당시는 드레스, 베일 모두 노란색이 유행이었다. 중세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색보다는 천의 재질이나 레이스와 같은 장식을 중시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하얀 웨딩드레스가 처음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이다. 그러나 이 하얀 웨딩드레스는 '하얀색은 신부의 순결을 나타낸다'는 말의 노골적인 표현이어서 환영받지 못했다. 반면에 목사들은 신부의 순결은 당연한 일이며 새삼스럽게 떠들썩하게 말할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후 150년 동안 영국의 신문과 잡지들은 하얀 웨딩드레스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18세기 말경에 와서는 하얀 웨딩드레스가 일반화되었다. 복식사가에 의하면 그것은 당시 팔리고 있던 정장용 드레스가 거의 하얀색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1813년, 프랑스의 인기 있는 여성지 "저널 드 다메"에 커다란 순백의 웨딩드레스 삽화가 실린 이래 하얀색은 웨딩드레스 색깔로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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