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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96호
2010.10.11 (음 9.4)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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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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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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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작가협회<가야하>인터넷문학상공모통지
연변작가협회와 연길가야정보과학기술유한회사는 인터넷문학의 창작과 문학신인양성을 취지로 연변작가협회<가야하>인터넷문학상을 제정한다. 수상대상과 상금: 연변작가협회<가야하>인터넷문학상은 소설, 시(5수), 수필(보고문학) 등 쟝르를 포함한다. 대상 1명(상금 1만원), 우수상 2명(상금 각 5천원), 신인상 3명(상금 각 3천원)을 선정하여 상금과 증서를 수여한다.
작품수록: 공모된 작품은 <가야하>사이트에 수록하게 되며 수상작은 <연변문학>에 추천하여 거재한다.
공모시간: 2010년 9월 1일부터 2011년 3월 31일까지이며 공모작은 공모작이라고 밝혀야 한다. 보내실 곳: <가야하>사이트문학코너- www.gayaha.net 연변작가협회창작련락부 윤옥주- yuzhuyun2@hotmail.com 문의전화: (0433)-273-3347
연변작가협회 연길가야정보과학기술유한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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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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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도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이 한 마디가 모든 것을 해명한다. 그는 사과 그 자체를 위해서 사과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금지된 것이기 때문에 원한 것이다. -마크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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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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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남으십니다”
새로 산 구두에 흠집이 있어서 백화점으로 바꾸러 갔다. 가까이 있는 점원에게 구두 가게의 위치를 물었다. 점원이 답했다. “구두 매점은 4층에 있으십니다.” 4층에서 해당 상표의 매점을 찾아 다른 구두를 골랐다. 셈을 치르는데 새로 고른 구두가 먼저 산 구두보다 값이 싸다고 했다. 점원이 말했다. “돈이 남으십니다.”
좋은 언어 관행인지 아닌지는 따로 따져보아야겠으나, 우리말에는 복잡한 존대법이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면서 이 부분을 매우 어려워한다고 한다. 백화점 두 점원의 말은 흡사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외국인이 하는 말처럼 들린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존대법을 엄격히 지키라고 강요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천을 거듭하고, 우리의 전통적인 존대법은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존대법에 ‘압존법’이라는 것이 있다. 문장의 주체가 말하는 이보다는 높지만 듣는 이보다 낮을 때는 주체를 높이지 않는 어법이다. “사장님, 김 전무가 입원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김 전무님’이라고 하면 어법에 어긋난다. 하지만 압존법은 현실 언어에서 많이 흔들리고 있다.
한때 ‘사물존대’라는 말이 있었다. “사모님, 눈이 참 예쁘십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눈’은 존대 대상이 아니지만 ‘사모님’의 눈이기에 높이는 것이다. 이런 말투도 이젠 언어사회가 수용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백화점 점원의 말투는 그런 것도 아니다. 백화점에서 손님을 응대하는 언어교육을 다시 했으면 한다.
우재욱/시인
몇과 수
기능은 다르지만 비슷한 뜻을 지녔다. ‘몇 살이야?’에서 ‘몇’은 관형사다. 그리 많지 않은 얼마만큼의 수를 막연하게 이른다. 뒷말과 띄어 쓴다. ‘수’는 접두사다. ‘몇’ ‘여러’ ‘약간’ 등의 뜻을 더한다. ‘수십, 수백, 수천.’ ‘몇’도 ‘십, 백, 천’ 등 뒤에 수를 나타내는 말이 오면 붙여 쓴다. ‘몇십’ ‘몇백’ ‘몇천’이 하나의 관형사가 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늦깎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어떤 일을 시작한 사람을 이렇게 부른다. ‘늦깎이로 시작한 연기 생활.’ ‘늦깎이 교수.’ 남보다 늦게 사리를 깨달아도 늦깎이다. 늦게 익은 과실·채소 따위도 늦깎이라고 한다. 이 말도 본래 불교용어였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승려가 된 사람을 뜻했다. 반대말도 있다. 올깎이. 나이가 어려서 승려가 된 사람을 가리킨다.
독촉, 독려
명장들은 대부분 인적자원을 활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은 1만 명에 달하는 병사의 이름을 줄줄 외며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용기를 북돋웠다고 한다. 로마의 카이사르도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알렉산더와 카이사르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독려'의 힘이 바탕이 됐다. 반대로 장수가 제 한 몸 돌보는 데 급급하면서 부하들에게 "왜 빨리 전진하지 않느냐"고 '독촉'만 해 댄다면 전쟁에서 질 게 뻔하다. 이처럼 '독려'와 '독촉'이 불러오는 결과가 다르고 그 쓰임새 또한 차이가 있는데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 낱말은 품고 있는 뜻이 다르므로 문맥의 의미에 맞게 구별해 써야 한다.
"윈스터 처칠은 대공황으로 20억원어치의 주식이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돼 빚 독촉에 시달리는 신세가 됐다"와 같이 '독촉'은 일이나 행동을 빨리하도록 조르는 것을 일컫는다. "원고.집세 독촉"처럼 미리 한정해 놓은 시간을 넘길 것 같거나 넘겼을 때 그 일이 해결되도록 거듭 요청하는 것이다. '독려'는 감독하며 격려한다는 뜻으로 용기나 의욕이 생기도록 이끌고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히딩크 감독은 사기가 떨어진 선수들에게 깨져 봐야 이길 수도 있다고 독려했다"와 같이 긍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마는, 만은
'마는'과 '만은'은 발음이 같아서 헷갈리기 쉽다. 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말이다.
① "저 옷을 정말 사고 싶다마는 돈이 없네그려." "이거 얼마 안 되지마는 생활비에 보태 쓰게." "먹고 마시지 않는 사람이 없지마는 맛을 잘 아는 이는 드물다." ② "불행히도 우리의 변화가 모두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세금을 줄인다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불황으로 다른 가전제품 판매는 둔화하고 있지만 공기청정기만은 불티나게 팔린다."
①에 쓰인 '마는'은 종결어미 '-다, -냐, -자, -지' 따위의 뒤에 붙어, 앞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의문이나 그와 어긋나는 상황 따위를 나타내는 보조사다. 이 '마는'은 '만'으로 줄여 쓸 수 있다. ②에서 '만은'은 보조사(만/은)가 중첩된 것이다. '만'은 어느 것을 한정하거나(명사 뒤에서), 무엇을 강조할 때(종결어미 '-지' 뒤에서) 쓰이는 보조사다. '은'도 강조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다. '만은'이 종결어미 '-지' 뒤에 올 때는 거의 다 부정어 '않다'가 따라온다.
'마는'으로 연결되는 문장을 '-다.'로 끊고 '하지만'으로 연결해 자연스러우면 '마는'이 제대로 쓰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만은'은 그 앞의 말만을 한정해 강조하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없다. "그녀는 얼굴은 못생겼지마는 마음씨만은 비단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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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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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시간아 - 강상윤
줄지렁이들이 아스팔트 바닥 위에 시간처럼 말라죽어 있다 타원형, S자형, 기역자, 니은자 모양으로 밤색 바탕에 핏빛이 선명하다 어떤 것은 짓이겨진 채로 아스팔트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산소를 마시러 나왔다가 당하는 변이라 한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흙 속에 물이 스며들어 숨을 쉬기가 어렵다 하는데 나는 지렁이들이 축축한 몸을 말리러 나온 줄로만 알았다 어둡고 축축한 땅 속을 기는 것이 지겨워져서 밝은 태양 아래 목숨을 거는 것으로 생각했다 지렁이들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축축한 삶을 말리려던 생각을 접은 적이 있다 어차피 삶이란 어둡고 축축한 걸 밝고 보송보송하게만 살 수 없다는 것을 미안하다 시간아 숨쉬는 것이 고통스럽더라도 참고 있어라 아스팔트 바닥에 짓이겨져 죽는 것보다 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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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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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의 코스모스 - 이영지 - 새벽기도. 1529 -
마을에 분홍버스 내릴 때 쳐다보다 고개를 푹숙이고 오시지 않은 사람 분홍꽃 접어들이며 산들산들 흔들고
정류장 코스모스 마을의 빨간버스 내릴때 쳐다보다 고개를 푹 숙이고 빨간꿈 접어들이며 빨갛도록 흔들고
버스가 설때마다 빠알간 얼굴되어 버벌떡 일어서다 앉으며 일어서며 허리가 휘어지도록 흔들다가 또 보고
버벌떡 일어서다 퍼펄썩 주저앉다 막차가 내리다가 새하얀 얼굴되어 앉았는 코스모스에 고개숙여 부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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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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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집 아이 - 유경환
길모퉁이 움막집에 햇볕이 들었습니다
아이 하나 성에 앉은 창으로 내다봅니다
거리엔 벌서 지게꾼 꽈배기 장수들이 나왔습니다
전쟁은 뒷골목으로 지나갔고
아이는 움막집의 귀한 햇볕만이 좋았습니다
우동집 아이 눈먼 창에 입김을 불어
우동 떡국 빈자떡 심환 금일 개업
빨간 손가락으로 이렇게 옮겨 쓰고 있습니다.
거꾸로 쓰인 우동 떡국 빈자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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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시조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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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祝(춘축) - 권상하
積雪千山一病翁하니 人間萬事摠成空이라
눈 쌓인 온 산에 병든 늙은이 인간 만사 모두 허사로 돌아갔어라.
只願春來兄弟會하여 滿庭花樹醉春風이라
오직 바람은 새봄이면 형제 모여 가득한 뜰 꽃나무 속, 봄바람에 취함이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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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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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제4장 꿈이 서린 계절의 회상을 위하여 -《scrap(그리운 1980년대)》
텔레비전과 먹는 것에 대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먹으며 하나의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광경이 왠지 모르게 기묘하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텔레비전이 없으니까 당연히 비디오도 없다. 내 친구의 집에는 텔레비전과 비디오가 있어서 이따금 한꺼번에 몰아서 보러 간다. 지난번에는 가서 하루 종일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와 <피터팬>과 <라일락의 문>, 이렇게 세 편의 비디오를 보고 왔다. 그때 사람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정말로 잘 먹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평소에 거의 간식을 하지 않는 인간이다. 담배를 끊고 얼마 안되었을 때에는 입이 심심해서 여러 가지 것을 열심히 먹어댔지만, 이러다가는 살이 한없이 찌게될 것 같아 어느날 단단히 결심을 하고 쓸데없는 것은 일체 입에 넣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은 간식을 하지 않는다. 간식을 먹고 안 먹고는 습관적인 문제라서, 익숙해지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나까지도,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이것저것 꽤나 여러 가지 것을 집어먹게 된다. 더군다나 내 친구는 대단히 친절해서, 쿠키라든가 전병이라든가 초콜릿이라든가 애플파이라든가 그러한 것을 주위에 쭉 늘어놓아 주기때문에, 나는 극히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계속적으로 먹어 치우게 된다. 과자를 잔뜩 먹으면 목이 마르니까, 그 다음에는 차나 커피, 주스나 맥주 같은 것을 꿀꺽꿀꺽 마시게 된다. 그 덕분에 오줌만 계속 나오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나는 일곱 시간이나 여덟 시간 가량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여러 가지 것을 먹고 마시고 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온다. 나의 경우 그러한 일은 2개월에 한 번 정도밖에 없어서 아주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러나 매일 그 짓을 했다가는 영락없이 뚱보가 될 것이다.
지난번에 공항 대합실에서 스탠드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으려니까, 정면에 놓인 커다란 텔레비전에서 <웃어도 좋고말고!>라는 플그램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 곳에는 300명 가량의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광경이 왠지 모르게 굉장히 기묘하게 느껴졌다. 점심때였기 때문에 모두들 주스를 마시거나, 도시락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하면서, 이따금 일제히 웃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러한 광경을 쳐다본다는 의식도 없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위장이 꿈틀거리는 소리가 텔레비전 화면에 오버랩되어서, 점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특별히 그런 것이 좋다든가 나쁘다든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이라고 하는 기계가 갖는 기능의 기묘함을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왜 섹스는 재미없게 되어 버렸을까? -헤르페스는 한창 일할 나이의 엘리트가 걸리기 쉬운 신종 성병. 이 병을 예방하려면 여러 사람과 자지 말고,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
(롤링 스톤)지 3월 4일호에 실린 섹스 특집 기사를 소개하고 싶다. 물론《롤링 스톤》지의 섹스 기사니까 상당히 노골적이다. 읽고 있으려니까 피곤해진다. 우선 헤르페스(Herpes) 이야기가 나온다. 헤르페스를 잘 모르는 사람을위해서 설명한다면, 이것은 신종 성병이다. 헤르페스라는 것은 그리스 어로, '근질근질하다'라는 의미다. 헤르페스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타입 1은'구강 헤르페스'고, 타입 2는 '성기 헤르페스'다. 타입 1은 오럴 섹스에 의해서, 타입 2는 성교에 의해서 감염된다.(이런얘길 쓰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하다). 이것은 줄곧 이성에 의해서 감염된다고 애기되어 왔지만, 최근에 와서는 샌프란시스코의 동성 연애자 사이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증상으로는 쑤시고 가렵고 발진이 있고, 뒤이어 임파선이 뭇고 근육통, 발열에 이른다. 이와 같은 증상은 몇 주일이면 가라앉는데, 가라앉았을 때에는 이미 바이러스가 신경절에 침입해,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정기적으로 피로를 느끼게 되거나 생리불순이 된다. 좀더 끔찍한 일이 있다. 성기 헤르페스에 걸린 여성의 가웅 경관부의 발암률은 보통 사람의 여덟 배나 된다. 더구나 이러한 증상들은 최근에 이르러서야 겨우 해명된 것이어서, 그 전체 상황은 지금까지도 분명치가 않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좀 더 무서운 수치가 있다. 놀랍게도 2,000만 명의 미국인이 이 헤르페스에 감염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가운데 10퍼센트는 구강 헤르페스와 성기 헤르페스 양쪽 다 감염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치료법은 없다. 이 병의 재미있는 점은(재미가 없다고 해야 할까), 인텔리·중산층 환자가 참으로 많다는 것이다. 10대 보다는 20대 후반이나 30대에 많다. 게다가 놀랍게도 대학졸업자와 대학원 졸업자가 5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고등 학교 졸업 이하의 환자(취학 기간 12년 이하)는 겨우 21퍼센트다. 즉 한창 일할 나이의 엘리트가 걸리기 쉬운 병이다. 경구 피임약과 오럴 섹스, 프리 섹스, 스와핑(역주: 파트너를 교환해서 하는 섹스 파티)의 탓이다.그러니까 이 병을 예방하려면 난잡하게 여러 명의 상대와 자지 말고,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 이것말고는 방법이 없다. 시대는 조금씩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롤링 스톤》지의 다음 페이지는 <베드 컨트롤 블루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다. 인텔리 여성들 사이에서 경구 피임약의 사용률이 뚝 떨어져서(80퍼센트→50퍼센트), 그것이 부부간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다 주고 있다는 리포트다. 이 기사도 굉장히 재미가 있지만, 소개할 지면이 없어서 보류하기로 한다. 성욕을 감퇴시키고 싶은 사람은, 《롤링 스톤》지의 3월 4일호 기사를 꼼꼼히 읽어 보기 바란다. 특집의 제목은 <왜 섹스는 재미 없게 되어 버렸을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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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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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의지하는 마음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 꿋꿋하게 홀로 서라. 의타심은 당신으로 하여금 망설이게한다. 당신이 의타심을 가지고 있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의타심은 당신을 군중 소긍로 끌어들인다. 의타심은 혼자가 되는 것을 방해한다. 의타심은 당신이 당신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판단력을 약화시킨다. 의타심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모방하고 따르도록 종용한다. 의타심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사악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은 언제나 달콤한 목소리로 당신을 유혹한다. 인생에는 쉬운 길이 있다. 탐구는 당신을 지치게 할 뿐이다. 결정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 그러므로 당신이 무엇인가를 결정했을 때,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세상에는 당신이 책임지지 않고도 적당히 살아가는 편한 방법이 있다. 당신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모두 그 방법을 택했다. 이제는 당신 차례다. 쉽게 살아갈 수 있는 적당한 기회가 왔다. 당신은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다가 다른 사람들이 다 해 놓으면 그때 따라가라. 다른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서 아주 쉽게 걸어갈 수가 있다. 늘 이렇게 유혹한다. 그러나 절대 속지 말라. 그것은 마음이 파 놓은 함정이다. 당신이 마음의 유혹을 못이겨 마음이 하자는 대로 따르면 잠깐동안은 편할는지 모르지만 궁극에 이르는 길은 결코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남의 뒤를 따라가는 당신은 제아무리 빨리 뛴다 해도 결국 다른 사람의 뒷전에 있을 뿐이다. 마음은 환상과 같아 허망한 분별에 의해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마음은 바람과 같아, 붙잡을 수 없으며 형태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 멈추지 않고 일어나자마자 곧 사라진다. 마음은 등불의 불꽃과 같아, 인(모든 일의 씨앗)이 있어 연(모든 일의 대상)에 닿으면 불이 붙어 빛을 비춘다. 마음은 번개와 같아,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소멸한다. 마음은 허공과 같아, 뜻밖의 연기로 더럽혀진다.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움직인다. 마음은 그림 그리는 사람과 같아, 온갖 형태를 나타낸다.
마음은 존경에 의해, 혹은 분노에 흔들리면서 교만해지기도 하고 비겁해지기도 한다. 마음은 도둑처럼 다름 사람의 삶을 훔쳐 간다. 마음은 불에 뛰어드는 부나비처럼 화려함을 좋아한다. 마음은 전쟁터의 북처럼 소리를 좋아한다. 마음은 썩은 시체냄새를 탐하는 멧돼지처럼 타락의 냄새를 좋아한다. 마음은 음식을 보고 침을 흘리는 개처럼 맛을 좋아한다. 마음은 기름 묻은 접시에 달라붙는 파리처럼 감촉을 좋아한다. 재물을 보면 갖고 싶어 탐을 내는 것도 마음이요, 권력의 칼로 천하를 휘어잡고 싶어하는 것도 마음이다. 마음은 번뇌하는 것도 싫어한다. 마음은 당신이 탐구자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탐구란 혼자서 걷는 고행의 길이기 때문이다. 남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은 결코 내면의 여행을 떠날 수가 없다. 당신의 삶은 당신만의 것이며, 당신이 찾는 진리 또한 다란 사람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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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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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9장. 다시 여는 내 인생
결단력
확고한 결단력을 가져라. 그래야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아진다. 신중함으로 얻어 놓은 떡은 용기 있는 자가 먼저 입에 넣는다. 적당한 때가 왔다고 판단되면 머뭇거림없이 용단을 내려야 한다.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모하게 덤벼드는 것도 가치 없는 일이지만 때가 넘어섰는데도 불구하고 머무적거리고만 있는 것도 가치 없는 일이다. 결단력이 필요할 때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무적거리는 자는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다. 그런 자는 눈앞에 있는 떡조차도 먹어 보지 못하고 남에게 빼앗기고 만다.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를 취하다가 잃는 것보다는 과감하게 달려들었다가 잃는 것이 오히려 떳떳하고 낫다. 좋은 공이 들어올때까지 기다리다가 삼진 아웃당하는 것보다는 스트라이크가 되었을 때 머뭇거림없이 치고서 아웃당하는 편이 낫고, 프로포즈도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머무적거리다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보다는 프로포즈를 해 보고서 거절당하는 편이 나은 것처럼 말이다. 신중한 사람보다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면 머뭇거림없이 잡아채야 한다. 세상은 눈으로 주시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손을 뻗어 가지는 자의 것이고, 기회는 머무적거리는 자의 것이 아니라 주저없이 잡아채는 자의 것이다.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를 취한 나머지 눈앞에 왔던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예 기회를 맞이하지 않은 것만도 못하게 약오르는 일이다.
능력
처음부터 잘해야 하고 능숙하게 해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을 갖지 마라. 걷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은 기고 걸음마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사고 방식을 버려야 한다. 누구나 처녀작은 볼품없고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을 만큼 초라한 것이다. 낳자마자 걸어다닌 사람도 없고, 젖가락을 잡은 순간부터 음식을 집어먹는 사람도 없다. 어느 누구나 시행 착오를 거듭하는 가운데 능력을 개발하고 기술을 익히게 되는 것이지 태어날 때부터 능수 능란하게 해내는 사람은 없다. 아이가 걷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넘어지는가를 살펴보라. 아이가 말을 배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말을 되풀이하는가를 살펴보라. 우리가 모든 능력도 숙달되지 않으면 아이와 다를 것이 없다. 아이가 걷기 위해서 수없이 넘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하나의 능력을 숙달시키기 위해서는 수없이 실수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능력은 연마되는 것이지 태어날 때 지고 오는 것이 아니다. 능력이란 갈고 닦아야 빛을 내는 다이아몬드의 원석과 같은 것으로서 끊임없이 개발하고 갈고 닦음으로써 뛰어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업적도 뼈를 깎아 내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통해 닦아진 후천적인 능력을 발판으로 해서 얻어진 것들이다. 선천적인 능력으로써 얻어진 업적이란 세상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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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 / 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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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 유시주
10.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태양계의 작은 섬, 소행성
1792년, 보데라는 독일 사람이 당대 천문학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연구논문을 하나 발표했다. 그는 베를릴 천문대의 대장이었다. 그의 주장인즉 행성들은 그저 무질서하게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게 아니라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우주를 향해한다 는 것이었다. 지금으로서야 상식에 불과하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던 그의 주장은 상당한 지지를 얻어 보데의 법칙으로 정립되었다. 그런데 뒷날 이 법칙은 보데가 다른 사람에게서 도둑질한 것임이 과학자가들에 의해 밝혀졌다. 실제로 그 법칙의 핵심적인 내용을 처음 밝혀낸 사람은 뷔텐베르크에 살던 티티우스라는 무명의 청년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베를린천문대의 보데에게 전했는데 보데가 그걸 슬쩍 가로채서 마치 자신의 연구성과인 양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밝혀진 뒤부터 보데의 법칙은 티티우스-보데의 법칙으로 개명되었다. 보데의 얌체짓을 놓고 보건대 늘 별을 쳐다보며 산다고 해서 마음이 별 같아지는 건 아닌가보다. 경위야 어쨌거나 티티우스-보데의 법칙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천문학자들 사이에 행성 찾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독일에선 내노라 하는 천문학자들이 '미지의 행성을 발견하기 위한 연맹'을 결성하기까지 했다.천문학자들은 특히, 다른 행성들에 견주어 굉장히 넓은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화성과 목성 사이의 우주 공간에 집중적으로 망원경을 들이댔다. 티티우스-보데의 법칙 에 따르면 화성과 목성 사이에 분명히 아직 알려지지 않은 천체가 있을 법했던 것이다.
화성과 목성 사이의 우주 공간에서 가장 먼저 새로운 천체를 발견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피아치였다. 그는 1801년에 지름이 992m에 불과한 아주 작은 행성을 발견하고 거기다 세레스라는, 자신의 고향인 시칠리아 섬의 수호신 이름을 붙여주었다. 세레스는 행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아 소행성이라고 불렀다. 피아치의 발견에 이어서 1902년에는 팔라스가, 1804년엔 주노가 발견되었으며 이후 본격적인 소행성 탐사 시대가 개막되었다. 소행성들은 거의 대부분의 화성과 목성의 궤도 사이에 분포해 있다. 그래서 태양에서 5억km 떨어져 있는 그 우주 공간대를 소행성의 고향이라 일컫는다. 지금까지 발견된 소행성은 무려 4만 5천여 개에 이른다. 그렇지만 이 소행성들의 질량을 모두 합해도 지구질량을 모두 합해도 지구 질량의 1/500에 지나지 않는다. 제일 큰 세레스에서 작은 알갱이에 이르기까지 소행성의 크기는 제각각이다. 소행성은 행성이 부숴지면서 나온 찌꺼기들이다. 태초에 어떤 행성이 아직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폭발하면서 그 파편들이 태양계 곳곳으로 흩어진 것이다. 그래서 소행성은 태양계의 작은 섬이라 불린다. 이들 점점이 흩어진 섬들을 모자이크하면 하나의 행성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천문학자들은 소행성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태양계의 기원을 밝혀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소행성의 개체발생 과정이 태양계의 계통발생 과정을 설명해 주리라는 생각에서이다. 작기는 하지만 소행성도 행성으로서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소행성은 대체로 기다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스스로 회전하면서 일정한 궤도를 따라 우주 공간을 향해한다. 따라서 소행성에도 하루가 있고 1년이 있다. 행성의 하루는 대개 7∼10 시간이며, 1년은 지구 시간으로 환산하면 평균 5년이다. 궤도가 인접해 있는 소행성들은 이따금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그파편이 지구쪽으로 날아들기도 하는데 지상에 떨어진 소행성의 파편이 바로 운석이다.
대담무쌍한 소행성, 이카로스
소행성 가운데 특별히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트로이 소행성군과 아폴로 소행성군이다. 목성의 궤도선상에 운집해 앞서거니 뒷서거니 공전하는 15개의 소행성 무리를 트로이 소행성군이라 한다. 우주의 군도인 셈이다. 이 무리에 속한 소행성에는 모두 트로이 전쟁에 등장한 영웅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아킬레우스는 목성보다 서너 발자국 앞서 태양 주위를 돌며, 아킬레우스의 둘도 없는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는 목성보다 서너 발자국 뒤에서 돈다. 일부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목성이 거느린 20개의 위성들은 원래는 목성 주변을 맴돌던 트로이 소행성군의 식구였다고 한다. 그러다 양아버지인 목성의 강력한 인력에 끌려들어가 위성으로 입양되었다는 것이다. 태양계의 기원과 관련해서 특히 흥미를 끄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폴로 소행성군은 금성보다 더 가까이 태양에 다가가는 일군의 소행성들을 가리킨다. 에로스, 아도니스, 헤르메스 같은 소행성이 이에 속한다. 아폴로 소행성군은 우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반란군이다. 공전 궤도를 놓고 볼 때 다른 행성, 그 가운데서도 지구와 충돌할 위험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만약 지름 10m짜리 소행성이 서울시 한 복판에 떨어질 경우 서울 시민 모두가 하늘나라로 가야 한다니 아폴로 소행성과의 충돌은 곧 지구의 종말을 의미한다. 천문학자들은 지름이 0.8km 이상 되는 아폴로 소행성들이 적어도 750개 정도는 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지구의 미래를 점치기 좋아하는 호사기들은 앞으로 100만년 동안 적어도 네 개의 아폴로 소행성들이 지구와 충돌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그냥 흘려들어도 좋은 허황된 엄포만은 아니다. 1937년에 헤르메스가 80만 km를 사이에 두고 지구를 지나갔다. 지구와 헤르메스의 공전 주기를 따져 계산하면 최소 30만 km 안쪽까지도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30만 km라면 달까지의 거리보다 더 가까운 거리이다. 그런데 이렇게 위협적인 반란군에 속하는 또하나의 새로운 소행성이 1949년에 발견되었다. 발견자는 미국 팔로마 천문대의 월터바드였다. 멀리는 화성 궤도의 안쪽까지 거대한 타원형을 그리며 태양을 돌고 있는 이 소행성은 태양에 2천 8백 30만 km까지 바싹 다가간다. 지름 1.3km에 불과한 자그마한 몸으로, 혜성을 제외하고는 태양계의 그 어떤 행성보다 태양에 가까이 접근하는 이 대담무쌍한 소행성의 이름은 아카로스이다. 공전 주기가 409일인 이카로스는 한번 충돌과 종말의 공포 속에 몰아넣았다.
이카로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
이카로스는 장인 다이달로스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다이달로스는 크레타 섬에 살면서 미노타우로스를 가둔 미궁을 만든 바로 그 사람인데 원래는 아테네 사람이었다. 지상의 헤파이스토스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건축과 목공, 철공에 두루 능해 돛과 수레, 도끼 등 사람들에게 요긴한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들어냈다.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이 이를 어여삐 여겨 아크로폴리스 언덕 꼭대기에 높이 솟아 있는 자신의 신전 한 귀퉁이에다 다이달로스의 작업장을 내줄 정도였다. 그런데 다이달로스 밑에는 탈로스라는 도제가 한 명 있었다. 탈로스는 나이가 어려 아직 손재간은 스승을 따라갈 수 없었지만 자연의 이치를 깨쳐 그것을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드는, 말하자면 격물치지의 능력은 오히려 스승을 앞질렀다. 그는 물고기 등뼈에 착안해 톱을 만들었고 바람개비가 도는 걸 보고 원을 그릴 수 있는 양각기(콤파스)를 고안했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고 가히 그 앞날이 기대되었다. 새로운 것은 늘눈길을 끄는 법, 자연히 아테네 사람들의 눈길이 구관인 다이달로스보다 신인인 탈로스에게 더 자주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유일무이한 명성을 누리던 다이달로스의 가슴엔 불 같은 질투가 일었다.(다른 사람이 자신을 능가하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이런 마음보를 다이달로스의 질투 라고 한다. 모차르트를 향한 살리에리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결국 다이달로스는 어느 날 탈로스를 신전 지붕 위로 데려가 밀어 버렸다. 아테나 여신은 이 사실을 알고 다이달로스를 아테네에서 쫓아냈다. 차마 죽이지 못한 것은 재주가 아까와서였다.
아테네에서 쫓겨난 다이달로스가 찾아든 곳이 바로 미노스 왕이 다스리던 크레타 섬이었다. 다이달로스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잇던 미노스는 왕가의 여자 노예를 다이달로스와 짝지워 줌으로써 이 재간꾼을 자신의 왕국에 눌러 앉혔다. 다이달로스는 이 크레타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들 이카로스를 얻었다. 그런데 다이달로스는 뜻하지 아니한 사건에 휘말려 미노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에가 포세이돈의 황소와 사랑을 하여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은 바로 그 사건에 연류되었던 것이다. 시련에 눈이 먼 왕비에게 암소 가죽을 입히니 누가 보아도 살아 있는 암소 그대로였다. 왕비는 속이 빈 그 가짜 암소 속에 들어가 포세이돈의 황소에게 접근했고 급기야 괴물을 낳았다. 미노스는 사건의 전말을 알고 격분했다. 그러나 그는 홧김에 쓸곳 많은 재간꾼을 죽일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우리가 아는 대로 미노스는 결자해지의 원칙을 적용해 다이달로스에게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미궁을 만들게 했다. 다만 말 끝에 미노스는 이런 단서를 달았다.
만약 미궁에서 살아나오는 자가 있으면 너를 그 곳에 가둘 터이니 그리 알아라!
그러나 알다시피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미노타우스를 죽이고 미궁을 빠져나오게 된다. 체면이 말이아니게 된 미노스는 다이달로스뿐 아니라 그 아들 이카로스까지 함께 미궁에 가두어 버렸다.
이카로스의 비상과 추락
미노스는 다이달로스가 또 무슨 손재주를 부려 미궁을 탈출할까 우려하여 군사들로 하여금 미궁을 겹겹이 에워싸게 했고 그러고도 못 미더워 바다로 나가는 배까지 철저하게 수색하게 하였다. 다이달로스 부자는 꼼짝없이 죽을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다이달로스는 여느 때처럼 아들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다가, 가슴이 답답하여 미궁의 제일 높은 곳, 바다쪽 절벽에 면한 첨탑에서 절망스레 바깥 세상을 내다보았다. 첨탑 위로 새떼들이 날아 올랐다. 그 중에 몇 마리는 창틀에 앉아 깃을 쪼기도 했다. 순간 섬광처럼 미노스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는 방도가 떠올랐다.
하늘! 땅과 바다는 막았지만 하늘은 미노스도 막지 못하리라!
그날부터 다이달로스는 첨탑에 떨어진 새의 깃털을 모으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몫의 날개를 만들 수 있을 만큼 깃털이 모이자 다이달로스는 작업을 시작했다. 큰 깃은 옷에서 뽑아낸 실로 묶고 작은 깃은 미궁의 천정 모서리에서 긁어낸 밀랍으로 붙었다. 날개가 완성되자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를 데리고 첨탑으로 올라갔다. 아들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고 나는 법을 가르친 뒤 다이달로스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일렀다.
아들아, 너무 높게 날아서도 아니 되고 너무 낮게 날아서도 아니 된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이 날개를 녹여 버릴 것이며 너무 낮게 날면 날개가 물에 젖게 된다. 반드시 내가 나는 높이만큼만 날아라.
아들을 먼저 허공으로 밀어 준 뒤 다이달로스도 바람에 몸을 실었다. 다이달로스는 아들보다 앞서 날며 아들이 제대로 날고 있는지 가끔씩 뒤돌아 보았다. 시킨 대로 잘 날고 있는 듯하여 다이달로스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델로스 섬을 지날 즈음이었다. 푸른 바다와 뭇 섬을 눈 아래로 굽어보며 하늘을 나는 기분에 도취되어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당부를 무시하고 조금씩 고도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아득히 비상하여 창공의 한 점이 되는가 싶은 순간, 이카로스는 추락하기 시작하였다. 태양이 날개를 이어붙인 밀랍을 녹여 버린 탓이었다. 추락은 비상보다 더 짧은, 찰나의 일이었다. 다이달로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땐 두어 개 가벼운 깃털만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내려다 보니 이카리아(이카로스의 바다) 위엔 그저 하얀 포말만이 무심히 동심원을 그리며 잦아들고 있었다.
추락하는 것들의 아름다운 날개
무엇이 이카로스를 높이 더 높이로 이끌었을까? 높이 더 높이 비상하여 이카로스는 무엇을 보았을까? 신화는 아무런 대답도 남기고 있지 않다. 다만 그 뒤로 인간 세상에서 이카로스의 비상을 당랑거철과 같은 격에 놓는 걸 보면 겁없이 아무 것에나 도전하지 말아라 라는 게 이카로스의 짧은 생을 통해 신들이인간에게 내리고자 했던 가르침인 듯하다. 우주 공간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한 점 티끌에 불과하면서도 그 어떤 행성보다 더 가까이 태양에 접근하는 소행성에 이카로스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도 거기에 연유한다. 같은 이유로 패기와 열정 하나로 재벌에의 꿈을 키웠던 70년대의 야심만만했던 몇몇 청년 기업가들을 사람들은 이카로스의 후예 이라 일컬었다. 빈민굴에서 태어나 흑인 해방운동의 지도자로 우뚝 선 말콤 엑스를 어떤 사람들은 검은 이카로스 라고 부른다. 이카로스처럼 그들은 모두 추락했다. 패기만만했던 청년 기업가들은 모두 파산했으며 말콤 엑스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사주한 괴한들의 기관총에 난사당해 죽었다. 태양을 향해 비상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비상은 늘 위험하고, 추락은 그저 깃털 몇 개와 허망한 물거품만으로 끝나는 것일까? 날개가 없는 것은 추락하지 않는다. 비상하려 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그러라고 있는 게 아니다. 추락이 두려워 비상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일러 새라고 할수 있을까?
우리에겐 모두 날개가 있다. 꿈과 이상이라는 그 날개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다. 비상하지 않는 삶, 그것은 배부른 돼지의 삶이지 인간의 삶은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수많은 이카로스들의 날개짓으로 여기까지 발전해 왔다. 신에겐 이카로스가 무모한 도전의 희생자일지 모르나 우리 인간에겐 그렇지 않다. 그는 이상을 향한 위대한 이륙의 표상이다. 사랑, 평등, 평화, 자유, 정의를 위해 고투하는 인간의 날개짓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한 비상 뒤에는 추락조차 아름답다. 땀흘려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가 지금은 창살 안에 갇혀 있는 시인 박노해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싸워가나 무엇으로 일어서나 끝모를 징역 마룻바닥에 허물어져 미친 듯 나는 통곡한다 그러나 나는 나를 잘 알지 나는 나를 잘 알지 마지막 한 가닥 희망과 애착마저 툭, 끊어져 오직 홀로 남은 나 자신과 처절한 묵시의 투쟁 끝에 서면 나는 결국 죽음조차 의연하게 껴안을 수 있었지 시퍼런 슬픔의 심연 끝바닥에 다다르면 그래 나는 다시 서서히 솟아오를 수 있을 것이야 허허로운 눈빛으로 다시 솟아오를 수 있을 것이야
- <그리운 사람> 중에서
비상 뒤의 추락은 이렇듯 단단한 깨달으과 지혜, 겸손함을 남긴다. 그리하여 뒤이어 솟아오르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며 심연으로부터의 새로운 비상을 기약한다.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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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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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시간
사양 산업인 섬유업계가 종업원들을 해고하자 실업자가 된 한 직공이 실업자 수용소로 들어갔다. 얼마 후 그의 친척들이 그곳으로 그를 면회 와서 한참 동안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면회 종료 시간이 다가오자 친척들 중 한 명이 물었다.
"몇 시야?" "15분 전인데." 실직한 직공이 말했다. "몇 시 15분 전?" "그건 몰라. 시간도 그다지 경기가 좋지 않아 시침을 해고해 버렸거든."
-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시간 경기가 좋지 않아 내 시계의 시침과 분침을 모두 해고해 버렸다.
지각한 이유
어린 앨버트가 학교에 또 지각을 했다. 그러나 그는 오늘은 완벽한 변명거리를 갖고 있었다. 그는 선생님에게 말했다.
"비가 내리고 있어서 정말 걷기가 힘들었어요. 한 걸음을 옮기면 두 걸음 뒤로 미끄러졌어요." 선생님이 물었다. "그러냐? 좋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까지 올 수 있었지?" 앨버트가 말했다. "그래서 저는 학교로 오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어요. 역시 한 걸음 나아가면 두 걸음 후퇴했어요. 그러다 보니 마침내 학교까지 후퇴했지 뭐예요."
- 변명을 만들지 말라. 그것은 과정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이 변명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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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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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44. 송, 중국회화의 황금시대 - 문인화의 세계(11세기~13세기)
어느 서양 성악가가 판소리 공연을 관람한 후에 하는 첫마디가 (저 사람 화났습니까?)였다고 한다. 아무리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서구식 가치기준에 의존하는 정규 학교교육을 받아온 사람들은 음악이든 미술이든 우리 문화, 혹은 동양의 문화보다 서양의 것에 더 익숙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나라의 회화사에 카다란 영향을 키쳐왔던 중국의 회화는 송대에 그 황금기를 맞았다. 흔히, '당시 송화'라고 표현하듯이. 화원, 사대부, 재야 직업화가들이 대거 활약했다. 송대의 국립 미술기관 한림도화원은 중국 화원 사상 가장 완벽한 화원제도로 평가 받으면서 훌륭한 화원들을 낳았다. 사대부 화가들은 어디까지나 사대부 계층의 취미생활로서 그림을 즐겨 그렸는데, 그들 사이에서는 전문화원의 그림과는 구별되는 이른바 '문기어린' 그림이 강조되었다.
송대에는 점차 불교가 쇠퇴하면서 조각에 쏟아졌던 중국인들의 예술적인 정열이 회화로 옮겨지게 되었다. 왕실의 궁정화가에 의해, 혹은 종교의 부속화로서 종속되어 있던 하나의 독립된 예술분야로 정착, 높은 예술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특히, 화가의 주관적인 가치를 담아냈던 문인화는 송대 회화의 독특한 경지를 개척했다. 좁은 의미의 문인화란 사대부의 의취를 담은 매란국죽의 사군자화를, 나아가서는 사대부들이 그린 그림 일체를 일컫는다. 사군자는 사대부들에 의해 즐겨 그려졌던 주제이며, 화원의 시험에서도 대나무 그림의 배점이 제일 높았다. 문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는 소동파와 문동이다. 특히 소동파는 직업적 화가들이 기교를 중시하고 실제의 대상을 얼마나 닮게 그리느냐에 치중한다고 보고, 사대부들은 그와 달리, 눈앞의 현상보다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은 다음, 다시 그것을 초월하여 흉중의 뜻을 담아내야 한다고, 이른바 '문기어린'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적벽부의 문장으로 더욱 알려지고, 대대로 짝사랑을 아낌없이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러한 주장이라면, 일찍이 고개지도 회화를 논하면서 이른바 전신, 즉 정신을 전하는 것을 회화가 추구해야 할 사명으로 예기한 바 있다. 가령 대나무를 그린다면, 마디로 분절해서 치밀하게 그리는 거이 아니라, 대나무를 깊이 관찰하여 그 본질을 마음에 담아낸 다음, 땅에서 가장 꼭대기까지 한 획으로, 그 속도가 마치 '토끼가 튀는 듯, 솔개가 급강하하면서 덮치듯이' 그려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사대부들은 그림을 즐겨 그리면서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군자로서 정신적인 수양을 위한 하나의 세련된 여가생활이었지, 그림을 전문으로 하는 화업은 여전히 천기로 취급하고 있었다. 당초기의 염립본은 대신급 고위관료였는데, 그림을 잘 그리기로 유명했다. 어느 날 왕과 동행, 놀이를 나갔는데, 왕이 명하여 모두들 노는 자리에서 엎드려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후 그는 '화기는 천기'라 하여 붓을 꺾어버렸다고 한다. 특히 송대에서는 산수화가 독보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송대에 도시가 널리 발달, 도시적 분위기가 성숙해지자 사람들에게 자연미에 대한 각성이 새롭게 다가왔을 것이며, 그간의 불교, 도교의 자연에 대한 애착 등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동양의 산수화, 즉 풍경화는 사의를 강조하는 까닭에 흔히 '동양화는 읽는 그림'이라고도 하고, '시는 소리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없는 시'라는 표현도 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좋은 시에 붙여 그림을 그리고, 좋은 그림에 돌려가며 감상을 쓰는 것은 일반적인 것, 그 속에 사대부들의 한가로운 아취가 담뿍 담겨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결합은 이 둘이 먹과 붓의 동일한 도구를 사용했기 때문에 더욱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흔히 동서양의 풍경화를 비교하여, 그들의 상이한 자연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동양인이 자연의 내재적 질서를 중시하고 그 '운동태'를 중시해서 선적인 미술을 창조했다면, 서양인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파악, '존재태'를 중시함으로써 면적 미술을 창조했다. 서양화에서는 한 화면에 하나의 시각만이 존재하고, 또 하나의 시간만이 존재하는 반면, 동양화에는 여러 개의 시각과 시간의 경과까지도 표현되고 있다. 예컨대, '끝없는 강산' 같은 유의 화폭에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주제의 표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중국의 산수화에서는 근경, 전경, 원경이 잘 구분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근경은 위에서 내려다본 시각이고, 전경은 옆에서 본 시각이며, 원경은 아래에서 올려다본 시각을 잡았다. 서양사람들이 자연보다 인간이 중심이 되고, 그것도 개인의 시점에서 자연을 표현했다면, 동양사람들은 자연을 위주로 해서 인간이 거기에 시각을 맞추고 있다.
안견 이래 우리 나라의 화단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곽희는 전문 화원 출신으로, 북송기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고개지 이래 7백년의 뛰어난 화론을 이룬 평론가였다. 그는 자신의 화론을 담은 '임천고치'에서 말하기를, "산은 가까이에서 보면 이와 같고, 멀리 몇 리 밖에서 보면 또 이와 같으며, 멀리 수십 리 밖에서 보면 또 이와 같다. 매번 멀어질수록 매번 다르니, 산의 모습은 '걸음걸음마다 모두 돌아 보지 않으면' '천 개의 산'을 '두 눈으로 빼앗을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북송의 곽희파, 남송의 마하파의 그림을 비교해보면, 북송의 그림은 여백이 강조되고 부드러운 남송의 그림보다 산봉우리가 꽉 짜여져 있고, 낮은 산이라기보다 준령이 첩첩하며, 습기가 느껴지는 부드러운 느낌보다는 건조하고 메마른 느낌을 준다. 이러한 경향은 화풍의 차이에도 기인하지만 화북과 강남지방의 자연이 이처럼 차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중국인들은 어디까지나 실경을 그렸던 것인데, 이를 받아들인 우리에게는 가경이되는 것이다. 뒷날, 우리 나라의 화단에 실경을 그리는 화풍이 등장, 이를 '진경산수화'라 부르게 되는 연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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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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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 -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 苛(매울 가) 政(정사 정) 猛(사나울 맹) 於(어조사 어) 虎(범 호)
예기(禮記) 단궁편檀弓篇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실려있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고 있는데, 한 부인이 무덥 앞에서 울며 슬퍼하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그 까닭을 묻게 하였다. 그 부인은 대답하길 오래전에 시아버님이 호랑이게 죽음을 당하였고, 저의 남편 또한 호랑이에게 변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의 아들마저 호랑이게 목숨을 잃게 되었답니다. 라고 하였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그 부인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無苛政). 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자로의 말을 듣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잘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다(苛政猛於虎也)." 라고 하였다.
춘추 말엽 노(魯)나라의 대부 계손자(系孫子)의 폭정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은 차라리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쪽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苛政 이란 번거롭고 잔혹한 정치를 뜻한다. 政을 徵(징)의 차용으로 보아 번거롭고 무서운 세금과 노역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잔혹한 정치, 무거운 세금이나 노역은, 결국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에게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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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苛:가혹할 가, 政:정사 정, 猛:사나울 맹, 於:어조사 어, 虎:범 호 [출전] <禮記> <檀弓記>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는 뜻으로, 가혹한 정치는 백성들에게 있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고통보다 더 무섭다는 말.
춘추 시대(春秋時代) 말엽, 공자(孔子:B.C 551~479)의 고국인 노(魯)나라에서는 조정의 실세(實勢)인 대부(大夫) 계손자(季孫子)의 가렴 주구(苛斂誅求)로 백성들이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 날, 공자가 수레를 타고 제자들과 태산(泰山) 기슭을 지나가고 있을 때 부인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일행이 발길을 멈추고 살펴보니 길가의 풀숲에 무덤 셋이 보였고, 부인은 그 앞에서 울고 있었다. 자비심이 많은 공자는 제자인 자로(子路)에게 그 연유를 알아보라고 했다. 자로가 부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부인, 어인 일로 그렇듯 슬피 우십니까?” 부인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더니 이윽고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는 아주 무서운 곳이랍니다. 수년 전에 저희 시아버님이 호환(虎患)을 당하시더니 작년에는 남편이, 그리고 이번에는 자식까지 호랑이한테 잡아 먹혔답니다.” “그러면, 왜 이곳을 떠나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여기서 살면 세금을 혹독하게 징수 당하거나 못된 벼슬아치에게 재물을 빼앗기는 일은 없지요.” 자로에게 이 말을 전해들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잘 들 기억해 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苛政猛於虎]’는 것을…‥.”
태산 :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오악(五嶽) 중 동악으로 중국 제일의 명산. 도교의 영지(靈地). 해발1335m. ‘於’ : ① 어조사 어. ‘…에, …에서, …보다’ 등의 뜻을 나타냄. ② 탄식하는 소리 오. (예) ‘於乎(오호)’-감탄하는 소리. 가정(苛政) : 가혹한 정치, (동) 학정(虐政), (반) 관정(寬政). 가렴주구(苛斂誅求) : 세금을 혹독하게 징수하고 백성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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