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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61호
단기 4343 / 서기 2010. 6. 19 (음력 5. 8)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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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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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일은 어려운 듯이, 어려운 일은 쉬운 듯이 하라. -B.그라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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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일전쟁
1904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 ‘러일전쟁’이다. 그러나 약 한 세대 전만 해도 ‘노일전쟁’(露日戰爭)이라고 했다. 노(露)는 노서아(露西亞)를 말한다. 노서아는 러시아를 한자로 음역(音譯)한 말이다. 아라사(俄羅斯)라는 음역어도 쓰였다. 1896년 2월부터 약 1년간 고종과 세자가 러시아 공관으로 옮겨간 사건이 아관파천(俄館播遷)인데, ‘아관’은 아라사 공관을 이른다.
‘무력충돌 피하고 중·러와 제재 공조 포석’ 중앙 일간지 머리기사 제목이다. 옛날 같았으면 ‘중·러’를 ‘중·노’로 적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외국의 국명이나 지명에 한자로 음역한 말이 많았다. ‘불란서, 오지리, 화란, 서반아, 토이기, 포도아, 비율빈, 애급, 희랍, 정말, 화성돈, 나성’ 등으로 적은 것이었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몇 개나 알아들을까? 현재 이 말들은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터키, 포르투갈, 필리핀, 이집트, 그리스, 덴마크,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등으로 거의 바뀌었다. ‘불란서, 오지리’는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 말들도 ‘프랑스, 오스트리아’에 거의 자리를 내준 상태다.
현재 우리가 국가 명칭을 한자음으로 적는 나라는 ‘미국, 영국, 독일, 이태리, 일본, 중국, 대만, 태국, 인도, 호주, 남아공’ 정도인 성싶다. 그것도 한자는 차츰 없어져 가고 한글로 그렇게 쓰고 있다. 한글의 승리다.
우재욱/시인
‘으’의 탈락
‘담그다´는 어미 ‘아´가 오면 ‘담가´가 된다.‘담그+아´에서 어간 ‘으´가 탈락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래서 흔히 ‘으불규칙활용´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간이 ‘으´로 끝나는 용언은 다 어미 ‘아´나 ‘어´ 앞에서 탈락해 버린다. 따라서 ‘으불규칙´이라는 말은 의미 없는 말이기도 하다. ‘크다´는 ‘커´, ‘모으다´는 ‘모아´, ‘치르다´는 ‘치러´가 된다.
안갯속
‘안개’와 ‘속’이라는 두 개의 실질 형태소가 결합했다. 새로운 의미를 가진 말이 됐다.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르는 상황일 때 ‘안갯속’이라고 비유적인 표현을 한다. 오리무중(五里霧中)과 비슷한 뜻이다. 발음은 [안ː개쏙/안ː쏙]. 뒷말이 된소리여서 사이시옷이 들어갔다. 지난 10월9일 한글날 나온 국어사전에는 표제어로 올랐다.
객관적
공급자가 발표하는 대로 기사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기자라면 다 알고 있는 기본 사항이다. 하지만 마감시간을 지키려다 보면 말처럼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다음은 어떤 기사의 처음 부분이다. "불필요한 각종 부담금이 대대적으로 정비될 전망이다. … 기획예산처는 … 수년 동안 징수 실적이 없거나 앞으로도 징수 가능성이 낮은 부담금 13개를 폐지하는 것을 포함해 모두 21개 부담금에 대한 제도 개선을 기획단에 건의했다고 14일 밝혔다."
부담금이 ''대대적으로'' 정비될 전망이라고 밝힌 뒤 ''모두 21개 부담금에 대한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고 썼다. 그러나 기사를 훑어보면 각종 부담금의 전체 규모가 얼마인지 나타나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전체 규모를 모르므로 21개의 부담금 개선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부담금의 전체 규모가 30개 정도라면 ''대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100개라면 ''대대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 기사만 보아서는 21개의 부담금을 개선하는 것이 과연 ''대대적''인지 ''부분적''인지 판단할 수 없다. 전체 규모를 밝혔어야 ''대대적으로''라는 말이 힘을 얻게 되는데 그만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다. ''대대적으로''를 빼거나 정도가 낮은 말을 사용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복허리에 복달임
''복허리에 복달임-''.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복(伏)허리''는 초복에서 말복까지의 사이를, ''복달임''은 복날 더위를 물리치기 위해 고기로 국을 끓여 먹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복허리에 복달임''은 복중(伏中)에 고기를 끓여 먹으면서 몸에 원기를 불어넣는 것을 말한다.
''복달임''을 ''복대림'' 또는 ''복다림''이라 하는 사람도 있으나 ''복달임''이 맞는 말이다. 예부터 이열치열(以熱治熱)로 주로 개장국이나 삼계탕, 육개장을 먹으면서 복달임을 해 왔다. 복날에 복달임하는 일로 여러 사람이 모여 노는 것은 ''복놀이''라 부른다. 가족.친지.친구끼리 모여 음식이나 과일을 함께 먹으면서 삼복더위를 달래고 얘기꽃을 피우며 노는 것이 복놀이다.
요즘은 삼복더위 기간에 휴가를 떠나는 것이 일반화했으므로 휴가지의 시원한 산속에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놀거나 해수욕장에서 파도를 타며 즐겁게 물놀이를 하는 것 등이 모두 복놀이라 할 수 있다.
곧 지루한 장마도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고 한다. 삼복더위에 벌써 몸은 지쳐가고 복달임과 복놀이가 필요한 때다. 모레 일요일(30일)이 복허리 중에서도 허리인 중복(中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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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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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이슬 - 상희구
새벽들녘의 풀잎마다 함초롬히 맺혀 있던 이슬, 이제 도심에서는 그 이슬마저 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이슬을 이슬답게 하는 요체는 이슬방울의 표면에 表面張力이라는 작용이 있어서 물방울의 표면을 형성하고 있는 물의 입자가 입자끼리 서로 끌어당기고 버퉁겨서 겉을 팽팽하게 하여 영롱하고 완벽한 구슬모양의 물방울 형태를 견지해야 하는 것인데, 생태학자들에 의하면 온갖 공해물질과 먼지들이 이 이슬방울의 표면에 끼어들어 그만 그 모양이 이지러지고 허물어져서 참다운 이슬을 보기가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외려 후미진 시장골목의 어수룩한 선술집에 참이슬이 더 많다. 집 나갔던 탕자가 몇 십 년 만에 만난 제 아비를 끌어 안고 쓴 소주 몇 순배에 회한의 뜨거운 눈물 한 방울 떨구었을 때, 그 눈물의 結晶, 눈물의 한쪽 입자는 아비가 끌어당기고 다른 한 쪽을 자식이 버퉁겨서 더욱 단단해져 깨지지 않는, 돌처럼 단단해진 눈물의 粒子들, 참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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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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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톱질 - 박영록
바람에 선잠 깨어 비늘 세워 번뜩인다
거대한 몸을 굴려 산만큼 우뚝 솟던
파도는 무릎을 꿇고 백사장만 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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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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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중 에 - 이원수
달 달 달 달......
어머니가 돌리는 미싱 소리 들으며 저는 먼저 잡니다, 책 덮어 놓고. 어머니도 어서 주무세요, 네?
자다가 깨어 보면 달달달 그 소리. 어머니는 혼자서 밤이 깊도록 잠 안 자고 삯바느질 하고 계셔요.
돌리시던 미싱을 멈추시고 "왜 잠 깼니? 어서 자거라."
어머니가 덮어 주는 이불 속에서 고마우신 그 말씀 생각하면서 잠들면 꿈속에도 들려 옵니다.
"왜 잠 깼니? 어서 자거라. 어서 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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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삶속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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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첫느낌 그 설레임으로 살고 싶다
안도현 - 첫사랑, 그 설레임으로 살고 싶다
저물 무렵 그 애와 나는 강둑에 앉아서 강물이 사라지는 쪽 하늘 한 귀퉁이를 적시는 노을을 자주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둘 다 말도 없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 애와 나는 저무는 세상의 한쪽을 우리가 모두 차지한 듯싶었습니다 얼마나 아늑하고 평화로운 날들이었는지요 오래오래 그렇게 앉아 있다가 보면 양쪽 볼이 까닭도 없이 화끈 달아오를 때도 있었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붉은 노을 때문인 줄로 알았습니다 흘러가서는 되돌아오지 않는 물소리가 그 애와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그 애는 날이 갈수록 부쩍 말수가 주러드는 것이었고 나는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웠습니다 다만 손가락으로 먼 산의 어깨를 짚어가며 강물이 적시고 갈 그 고장의 이름을 알려주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자랑이었습니다 강물이 끝나는 곳에 한없이 펼쳐져 있을 여태 한번도 가보지 못한 큰 바다를 그 애와 내가 건너야 할 다리 같은 것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습니다 날마다 어둠도 빨리 왔습니다 그 애와 같이 살 수 있는 집이 있다면 하고 생각하며 마을로 돌아오는 길은 늘 어찌나 쓸쓸하고 서럽던지 가시에 찔린 듯 가슴이 따끔거리며 아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애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을 포개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열 몇 살 열 몇 살 내 나이를 내가 알고 있는 산수공식을 아아 모두 삼켜버릴 것 같은 노을을 보았습니다 저물 무렵 그 애와 나는 강둑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세상을 물들이던 어린 노을인 줄을 지금 생각하면 아주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시 '저물 무렵'전문
나는 나의 첫사랑을 모른다. 그게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냐고 의아해 할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 속에 단 한폭의 그림으로 저장되었는, 유일무이한, 딱히 첫사랑이라고 정의할 만한 사랑을 나는 모른다.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라는 말을 내가 깊이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그말은 이 세상의 어떤 잠언보다도 아름다운 게 사실이지만, 데체로 바람둥이들의 자기 변명을 위한 허사로 쓰이기 일쑤여서 엄격하고 안전한 사랑을 꿈꾸는 이들의 귀에는 매우 불온하게 들릴 수도있다. 또 첫사랑은 실패한다는, 상당한 경험이 깃들어 있는 듯한 인생파적인 잠언도 볼온하기는 마찬가지다. 미리 실패를 상정하고 만나는 사랑은 그 어떤 위험한 불장난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두려움으로 인산 가슴 두근거림이 없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고, 더구나 첫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더욱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나는 여자 사람으로 하여 가슴이 두근거린 적이 한번도 없었던가.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가. 그때만 해도 6학년들이 졸업을 하기 전에 선생님들을 모시는 사은회라는 게 있었다. 학예발표회를 겸하여 1년에 한 번 열리는 이 행사에 나는 여자 아이들과 짝을 맞추어 무용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산토끼 같은 분장을 하고 학교의 숙직실에서 무용 연습을 했는데...... 비좁은 숙직실에서 줄을 맞추어 내가 등장할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던 나는 한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하고 짝을 지어 같은 연습을 하는 여자 아이의 몸이 내 등에 바짝 붙어 있는 게 아닌가. 그저 아무렇지도 않았을 그 아이의 양쪽 가슴에 뭔가 말랑말랑한 정구공만한 게 달려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너무 조숙했기 때문일까. 그후로 나는 돌이 킬 수 없는 죄를 지은 것 같아서 그 아이의 커다란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2학년 때도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우리 학교에 초임 발령을 받고 부임한 담임 선생님은 누가 봐도 곱고 예쁜 처녀 선생님이었다. 하루는 선생님이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장터 근방에 있는 선생님의 자취방으로 가서 무엇을 좀 가져오라고, 밤톨만한 자물쇠를 열고 선생님의 자취 방을 들어가는 순간, 나는 가슴이 콱 막힐 뻔하였다. 내가 그때까지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화장품 향기가 내 온몸을 얼얼하도록 적셨기 때문이었다. 거울이 달린 선생님의 화장대 위에는 크고 작은 화장품들이 꼬마병정들처럼 도열해 있었는데, 그것들이 풍기는 향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의 비밀을 엿본 듯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이다.
그 동안 여자 사람이 내 가슴을 두드린 일들이 어디 그뿐이랴. 중학교 다닐 때 학교 벤치에서 '라면땅'이라는 과자를 건네주던 같은 학년 여자 아이의 가느다란 손끝이며, 고등학교 시절 수 십통의 편지를 주고 받던 여학생의 작은 키며, 시화전 같은 데서 만나 내 이야기에 자주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반짝이던 여학생의 단발머리며 모두 내 가슴에 북소리를 나게 했던 기억들이 아니던가. 또 있다. 얼마 전에 출간한 어른을 위한 동화 '사진첩'에서 아련한 추억으로 다시 만난 봉자 누나였다. 내가 학교에 입학할 때 손수건을 사 준 사람이 종자 누나였다. 봉자 누나는 우리 옆집 양장점에서 일을 거들던 처녀였다. 어른들이 양장점 시다라고 불렀지만, 누나가 자신을 시다라고 말한적은 한 번도 없었다. "축하한다." 어느 날 누나는 내 손에 신문지로 정성스럽게 싼 물건을 쥐어주었다. "이게 뭔데?" "입학선물이야" 파란 물방울 무늬가 그려진 손수건이었다. 나는 그때 적잖이 감격하여 얼굴이 다 빨개질 정도 였는데, 그것은 축하와 선물이라는 낯선 말을 생전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덟 살이 될 때까지 해마다 생일을 맞이했지만 누구한테서 정식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며, 더군다나 선물을 받는 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사소하고 일상적인 사적세계 속에 머물러 있다가, 뭔가 인간과 인간이 새로운 관계를 갖게 되는 공적세계로 편입하는 순간의 감격이 그런 것인지 몰랐다. 나는 매일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학교를 다녔다. 그렇지만 한번도 거기에다 코를 닦지 않았다. 처음 받은 선물에다 더러운 코를 묻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다 봉자 누나가 보고 싶을때면 혹시나 누나 냄새가 나지 않을까 싶어 손수건을 코 가까이에다 대어 볼 뿐이었다. 봉자누나는 전혀 화장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봉자 누나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었다. 누나가 내 옆에 있다가 어쩌다 그 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길 때면 향기로운 누나의 냄새가 아찔할 정도로 느껴지곤 했다. 봉자 누나의 냄새를 기억하고부터 나는 누나의 모든 게 좋았다. 고무 슬리퍼를 끄는 소리도 싫지 않았고, 딱딱 소리 내어 껌을 씹는 볼도 보기 좋았으며, 선반에 있는 옷감을 내리기 위해 팔을 쳐들었을 때 겨드랑이 사이에 거뭇거뭇 드러나던, 그 윤기 나는 털도 보기 좋았다. 덕구네 큰형이 봉자 누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나도 봉자 누나에게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학 교에 입학해 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다른 것에 신경을 쓸 틈이 어디 있었겠는가. 어느 날 나는 양장점 주인 이모에게 식혜를 한 주전자 갖다주러 심부름을 간 적이 있었다. 양장점 주인 이모는 내가 왔는지도 모르고 봉자 누나를 호되게 꾸짖고 있었다. "니 신세 니가 알아서 하겠지만, 다시 한 번 극장을 갔다가는 다리 몽테이가 뿌러질 줄 알아라." 그 전날밤 봉자 누나는 덕구네 큰형과 함께 몰래 영화를 봤던 모양이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풍산면민 여러분, 오늘 밤 개봉할 영화는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순애보 중의 순애보, 신성일과 엄앵란이 주연하는 에로티크 러브......'매일 저녁 무렵이면 확성기를 통해 드려오는 극장의 영화 선전 방송은 열아홉 살 봉자 누나의 가슴을 흔들기에 족했으리라. "극장 들락거리다가 신세 조진 년들 많다는 거, 니 아나?" "나도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고요..... 딱 한 번만 가자고 해서......" "이 가시나가 시상 무서운 줄 모르네. 그라만 남자가 딱 하번만 자자고 하면 니 잘래?" 봉자 누나의 고개가 더 아래로 숙여졌다. 나는 위기에 빠진 봉자 누나를 구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으흠, 하며 염소 콧김 빠져나오는 소리를 냈다. 그제서야 내가 왔다는 것을 알고 양장점 이모는 봉자 누나를 방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봉자 누나가 직접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봉자 누나가 덕구네 큰형보다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누나는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다. "니 얼굴은 배호를 빼닮은 것 같애." 누나가 좋아하는 배호의 둥그런 얼굴과 내 얼굴이 닮았다는 것은 결국 나를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던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어 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 안고울고만 있을까.....' 그러니 나도 배호의 낮게 깔리는 굵은 목소리를 그때부터 흉내낼 수밖에. '다아-씨 한번 어루마지며 돌아서는 장충단 공원......' 어쨌든 나는 봉자 누나와 덕구네 큰형 사이를 떼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중요한 정보 한 마디 던지고 지나가는 말인 것처럼. "누나, 덕구네 큰형이 올 겨울에 군에 간다고 하드라." 내말을 들은 봉자 누나의 눈빛이 노래 가사에 나오는 낙엽송 고목처럼 쓸쓸해지는 것을 나는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렇다. 그렇게 첫사랑들은 나도 모르게 스쳐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나의 첫사랑을 모른다. 그것을 구태여 따져 가려낼 생각도 없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보다 세월을 더 산뒤에, 머리 위에 허옇게 서리가 내리더라도, 늙은 아내의 주름진 눈가를 들여다보며 가슴 두근거릴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살아 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비록 짧다고 해도 나는 둥둥둥둥 가슴의 북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라는 말을 이렇게 바꾸려고 한다.
'당신의 가슴이 두근거리면, 언제 어느 때든 그게 바로 첫사랑이라고'
안도현-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대구애일신문 신춘 문예에 '낙동강'이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 되었다. 시집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모닥불','그대에게 가고 싶다','외롭고 높고 쓸쓸한','그리우 여우'가 있고, 어른을 위한 동화로 '연어','관계','사진첩'들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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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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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억압
어느 날 한 농부가 외출을 하려고 막 나서는데, 그를 찾아온 어린 시절의 소꼽친구와 맞닥뜨렸다. 농부는 오래간만에 만남 그 친구를 반기며 말했다.
"여보게, 잘왔네. 그동안 어디서 무얼하며 지냈나? 어서 들어 오게나. 그런데 때마침 선약이 있어 외출을 해야 하는데 미룰 수도 없는 형편이니 돌아올 때까지 내 집에서 쉬고 있게. 한시간 내로 돌아오겠네. 그때 우리 그동안의 회포를 풀기로 하세" 친구가 말했다. "아, 그럴게 아니라 나도 가도 되는 곳이라면 우리 함께 가는게 어떻겠나. 비록 내 옷이 남루하여 좀 꺼림직하긴 하지만 자네가 내게 옷을 빌려줄 수 있다면 곧 갈아 입고 자네와 동행하겠네!" 그런데 농부는 언젠가 왕으로부터 하사 받은 값비싼 비단 옷을 특별한 날에 입기 위해 장농 깊숙히 보관하고 있었다. 농부는 기꺼이 그 옷을 친구에게 빌려주었다. 농부의 친구는 그 화려하고 멋진 옷을 차려입고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허리에 천을 매고 아름다운 신을 신었다. 그렇게 차려입으니 마치 귀족이나 왕같아 보였다. 친구를 바라본 농부는 약간의 질투를 느꼈다. 그의 모습과 비교해보니 자신은 마치 하인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농부는 괜히 친구에게 비단옷을 내주었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자기 친구에게만 시선을 주고 자신은 그의 하인 정도로 여길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매우 언짢아졌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책망하며, 오직 신과 숭고한 것만을 생각하려 애쓰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값비싼 옷과 터번이 무슨 소용 있는가. 다 부질없는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시켰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 옷과 터번은 그의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가 예상했던 대로 지나가는 행인들은 그의 친구에게만 눈길을 줄 뿐, 농부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는 점점 풀이 죽기 시작했다. 친구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그의 머릿 속에는 옷과 터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마침내 방문하기로 되어 있던 집에 도착하였다.
"이 사람은 어릴적 나의 소꿉친구입니다. 매우 훌륭한 사람이죠" 그리고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갑자기 이렇게 내뱉았다. "그리고 이 친구가 입은 옷은 바로 내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그의 친구는 물론 그들을 맞이하던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농부는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곧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고 자신을 나무랐다. 그 집을 나오면서 그는 친구에게 사과를 했다. 친구는 말했다.
"정말 놀랐네. 어떻게 자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미안하네. 내가 혀를 잘못 놀려 그만... 내가 잘못했네"
그러나 혀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은 언젠가는 입을 통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혀는 절대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는 다시 한번 사과했다.
"날 용서해 주게나. 내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네"
농부는 그런 생각이 그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농부는 친구가 입고 있는 옷이 자기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고 또 마음먹었다. 그 가엾은 농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면 할수록, 그 옷이 자기 것이라는 의식은 내부 속으로 더욱 굳게 뿌리를 내린다는 사실을 몰랐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금욕할 것을 맹세한다면, 그의 성욕이 내부에서 필사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또 한일 오늘부터 식사량을 줄이거나 단식을 하겠다고 결심한다면, 그것은 그가 먹고 싶다는 깊은 욕망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 노력은 반드시 내적 갈등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욕망을 자제하려고 애쓰고, 또, 그것과 싸워 이겨내기 위해 결심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잠재의식 속에서의 갈등의 원인이 될 뿐이다. 내적 갈등에 얽매여 그 농부는 두번째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친구를 소개했다.
"이 사람은 나의 친구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에 주의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그도 얼른 알아챘다. 모두들 그의 친구와 친구가 입고 있는 옷을 외경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저것은 나의 옷이고 나의 터번이다라는 생각이 자꾸만 그의 머리를 때렸다. 하지만 옷에 관한 말은 절대 하지 않기로 했던 사실을 다시 한번 자신에게 상기시켰다. 그러나 옷은 시계추처럼 좌우를 왔다갔다하며 그의 눈앞에서 흔들리는 것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친구를 소개했다.
"이 사람은 나의 소꿉친구입니다. 그는 매우 훌륭한 신사입니다. 그리고 친구가 입고 있는 그 옷은 그의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그런 식의 소개말은 이제껏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곳을 떠나면서 농부는 친구에게 전보다 더 미안한 마음으로 사과하였다. 자신이 또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음을 인정했다. 그는 이제 무엇이 해야 할 말이고, 무엇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인지를 혼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말했다.
"지금껏 옷에 대해 이렇게 집착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오, 신이시여!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의 친구는 크게 노하여 이제 더이상 함께 가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농부는 친구의 팔을 붙들며 말했다.
"이보게, 제발 그러지 말게. 옷에 대해서는 이제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네. 진심이네. 신에게 맹세코 옷에 대해 다시는 언급하지 않기로 약속함세"
그러나 당신은 맹세하는 사람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사람이 무언가를 결심하는 경우에, 거기에는 뿌리깊은 무엇인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부분으로 나눈다면, 결심한 것은 그 중의 한부분일 뿐이고, 그것은 단지 상층부분에 불과하다. 나머지 아홉 부분은 그것에 반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음의 한 부분이 금욕의 맹세를 세운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은 성을 구하려고 열광하고 있고, 신에 의해 인간에 심어진 바로 그것을 찾으려고 절규하고 있다. 그들은 세번째 집으로 갔다. 농부는 엄격하게 자신을 통제했다. 뭔가를 억제하는 사람은 매우 위험스럽다. 그의 내부에 활화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내부에는 벗어나려고 하는 충동이 몸부림치고 있다. 강제되는 것은 어떤 것이든 대단한 긴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될 수도 완성될 수도 없다. 당신은 가끔 긴장을 풀고 휴식해야만 한다. 당신은 주먹을 꽉 쥔 채 얼마동안 있을 수 있는가? 12시간? 24시간? 주먹을 꽉 쥐면 쥘수록 피곤해지고 그만큼 빨리 손이 펴질 것이다. 심하게 일하면 일할수록 에너지를 많이 쓰면 쓸수록 당신은 더 빨리 피곤해진다. 작용에는 항상 반작용이 있다. 당신은 손을 쭉편 채로 있을 수는 있지만, 언제나 손을 꽉 쥔 채로 있을 수는 없다. 당신을 피로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삶의 자연적인 부분일 수 없다. 무엇인가를 억지로 할 때는 휴식이 필연적으로 따른다. 농부는 옷에 대하여 절대 말하지 않도록 자신을 엄격하게 억제했다. 농부의 상태를 한번 상상해 보라. 만일 당신이 맹세를 해 본적이 있다면, 혹은 어떤 종교적인 이유로 자신을 억제했던 적이 있다면 그 가엾은 농부의 마음 상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다음 집으로 들어갔다. 농부는 긴장으로 많은 땀을 흘렸고, 극도로 지쳐 있었다. 그의 친구도 걱정하고 있었다. 농부는 불안한 나머지 온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그는 소개의 말을 시작했다.
"제 친구를 소개합니다. 제 오랜 친구입니다. 매우 좋은 사람입니다"
그는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치듯이 내뱉았다.
"이 친구의 옷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옷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이 농부에게 일어났던 일은 그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을 엄격하게 억제하면 할수록 마음은 활화산이 되어 언젠가 폭발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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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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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7장 나 그리고 인생
유혹
섣불리 미소를 받아들이지 마라. 곧 쓰디쓴 눈물을 머금어야 한다. 미소로 다가와서 눈물을 남겨 놓고 냉정하게 떠나가는 것이 유혹자들의 한결같은 주특기이니까. 작은 것을 던져 주는 대가로 큰 것을 뺴앗아 가는 유혹자들의 술책을 간파해야 한다. 과거나 현재나 유혹자들의 술책은 한결같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화려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들은 원하는 바를 유혹 속에서 성취하기 위해서 온갖 친절과 봉사, 선심과 미소 등을 동원해서 정에 약하고 사랑과 친절에 약한 사람들에게 파고든다. 상대방이 지나칠 정도의 호의적인 태도로 대하면 한 번쯤 의심을 해 보아야 한다. 또 상대방이 지나치게 과대 평가를 해 줄 때도 의심을 해 보아야 한다. 세상에는 유달리 희생심이 많고 인간애가 풍부해서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도 있지만, 표면상의 친절과 마음에도 없는 달콤한 말로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다. 목적도 없이 베풀어 주는 과잉 친절을 경계해야 한다. 목적(이유)있는 친절은 소박하며 결코 도를 넘지 않는다. 화려하고 달콤하며 도를 지나쳐서 행해지는 과잉 친절 속에는 반드시 어떠한 목적이 감추어져 있다. 고기를 낚아 올리기 위해서 맛있는 미끼를 달 듯이, 상대의 허점을 이용해서 어떠한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과잉 친절을 베풀어 주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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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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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를 위하여 - 김규항·김정란·진중권·홍세화
김정란 에세이
진보잡지들과 명예훼손
탈근대적 상황 안에서 언어의 중요성은 상당 부분 깨져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미지가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북구하고, 이미지가 인류가 지금까지 개발해 왔던 탁월한 소통 수단이었던 언어를 완전히 대체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지는 언어의 추상성을 교정하는 직접적 매체로서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고, 또한 화사한 매력을 발산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지의 즉물성은 언어 의식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세련된 발화 양식으로 정립되기 어렵다. 더군다나, 이미지 언어는 그것을 구체화된 표현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기술과 자본에 매여 있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따라서, 인류는 여전히 소통의 수단으로서 언어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군다나, 우리사회는 아직까지 언어 문화를 폐기처분하고 이미지 문화로 달려가도 좋을 만큼 충분히 심화된 언어 의식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아직도 한참 동안 언어 의식을 심화시켜야 한다.
이렇게 문명사적으로 근원적인 논의까지 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언어 의식, 또는 언어 문화는 그닥 높은 수준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말'의 봇물은 우리 사회가 어느덧 심화된 언어 의식을 향하여 서서히 발걸음을 옮겨놓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누구든 '말이 하고 싶어서', 그것도 '잘 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른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세계 안에서 '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 '말한다'는 것이 존재의 증명이 되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말'이 권력을 구성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인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처럼 모든 것이 간접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생과 그것이 확보하고 있는 진실성은 직접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을 통한 진실성의 조작은 우려할만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따라서 '말의 운용'을 지켜본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권력행위를 감시한다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 안에 '일인 잡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 잡지들이 대중의 환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옛날처럼 거대 언론들이 자기들 방식대로 '말'을 통해서 진실을 조작하는 행태를 그대로 좌시하지 않겠다는 시민의식의 각성과 맥을 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잡지들 중의 하나인 잡지가 "말"이라는 표제를 택하고 있는 것은 따라서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잡지들이 보수 언론처럼 두루뭉수리한 비판전략을 택하지 않고, 매우 구체적인 비판 대상을 적시한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논객, 즉 오피니언의 구성 방향을 정하는 말의 운용자들에게 투명성과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위험한 전략의 선택은, 그럴듯한 수사와 대중에게 겁을 주는 현학적 논리 뒤에 숨어서 권력자들에게 아부하는 말의 운용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말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다. 그러나 당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져라. 그런데, 이런 잡지들이 줄곧 '명예훼손'이라는 덫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말의 정당성'을 묻는 비판자에게 말의 수단 그 정당성을 설득하는 대신, 힘에게 도움을 청하겠다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보여진다. 실명비판을 한 당사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비판의 대상에게 말의 정당성을 증명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것은 '법'이라는 제도 이전에, 한 명의 지식인이 삶과 사회 안에서 지고 있는, 져야 마땅한 개인적, 실존적 책무에 관한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아주 생생한 가치의 장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말이다. '법'이라는, 모든 개인적 차이를 지워서 일반화된 경우로 다루는, 종래에는 비판의 구체적 맥락으로부터 떨어져 단어의 기술적 시시비비나 가리게 될 몰가치적 영역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논쟁의 장으로 나와 떳떳하게 논지를 펼치며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일이 툴 하면 명예훼손으로 겁을 주는 일보다 훨씬 더 떳떳한 일이다.
설사 그렇게 해서 명예훼손 재판에 이겼다고 해도, 논쟁의 장으로 나와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지 못했던 비판 대상자의 도덕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법은 도덕성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당신의 거짓말은 언제라도 당신을 노리고 있다. 그것은 당신 스스로의 손으로 당신 자신을 향해 저지른 존재론적 명예훼손이다. 말은 만만한 물건이 아니다. 그것을 녹녹하게 생각지 말라. (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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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양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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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 200선 해제 3 - 반덕진
춘향전 - 작가 미상
고전소설의 최대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춘향전은 단순한 러브 스토리를 넘어, 어두운 중세의 질곡을 뚫고나오려는 근대적 충동과 나아가 인간해방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격적 무시를 당하며 살아야 했던 춘향은 억눌린 민중의 대변자로, 엄격한 양반사회의 자기 폐쇄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이도령은 민중의 구원자로 변모한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해답을 찾는 우리에게 민족의 영원한 고전작품으로 남아있다.
춘향전의 형성
세익스피어의 햄릿이 영국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춘향전이 한국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유사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작품은 그 작자와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고전소설로, 처음에는 판소리로 불리다가 소설로 정착된 판소리계 소설이다. 이 작품은 영정조 시대에 생성되어 구전과 필사본으로 전해오다가 독자들의 요구가 증대하면서 목판본과 활자본으로 출간되었다. 이에 따라 그 내용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면서 내용과 형식상에 다소 변모가 있었다. 이 작품은 소설 뿐만 아니라, 판소리, 희곡, 오페라 등으로 개작, 상연되고 있어 우리에게는 친근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형성과정에 대한 학설은 다양하나, 대체로 몇 가지 근원설화와 전라도 남원 땅에 전해오는 전설을 소재로 한 판소리로 형성되어, 차츰 소설로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내용이 삽입되고, 한시, 시조, 가사, 속담 등 다양한 문학 양식이 수용되어 그 내용이 풍부해졌음은 물론이다.
춘향전의 근원설화
남녀간의 사랑은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사랑받는 문학의 소재다. 남녀가 서로 만나서 사랑을 나누다 본의 아니게 이별과 고난을 겪고, 후에 다시 감격적인 재회를 한다는 내용은 시대와 민족을 초월하여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춘향전도 예외는 아니다. 춘향전의 근원설화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의 견해 차이가 있다. 이 작품의 근원설화로는 여러 설화가 거론되지만, 여기서는 열녀설화, 신원설화와 암행어사 설화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도미설화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정절을 지켜낸 이야기인 열녀설화 중에서도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도미의 아내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도미의 아내 설화는 소위 관탈민녀형 설화라는 점에서 춘향전의 중심적인 근원설화의 위치를 차지한다. 즉, 권력을 가진 자가 민간의 여인을 탈취하려는 행위와, 그에 맞서 고통을 당하면서도 정절을 지키는 여인의 의지가 갈등을 이루는 구조다. 도미는 백제 사람으로 신분은 낮으나 의리를 알고 그의 아내 역시 아름답고 절개를 지켜온 부인이다. 백제의 개로왕은 이를 알고 도미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도미를 잡아두고 신하를 왕으로 변장시켜 도미의 아내에게 보내 "도미와의 내기에서 이겨 너를 궁녀로 삼게 되었으니 너는 내 것이다."라고 속였다. 이에 도미의 아내는 몸종을 자기처럼 단장시켜 들여보내 왕의 일방적인 횡포에 맞섰다. 후에 자신이 기만당했음을 안 왕은 도미의 두 눈을 빼고 멀리 보낸 다음 도미의 아내를 다시 범하려 한다. 그러자 도미의 아내는 몸을 씻고 오겠다며 궁을 탈출한다. 그러나 강가에 이르러 더이상 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조각배 한 척이 나타나 올라타니 천성도에 이르렀는데, 눈먼 도미가 거기서 살고 있었다. 극적으로 재회한 두 사람은 온갖 어려움 끝에 고구려 땅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살았다.
신원설화
신원설화란 원한을 풀어주는 내용의 설화를 말한다. 남원지방에 추하게 생긴 기생이 있었는데 너무나 박색이어서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느 날 냇가에 빨래하러 나갔다가, 마침 말을 타고 건너는 사또의 아들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남몰래 사모하게 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것이 병이 되어 죽게 되었는데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한번 보기를 소원했으나, 끝내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기생은 한을 품고 죽었고, 그후 남원 지방에는 가뭄이 들어 3년이나 비가 오지 않았다. 사또가 그 사정을 알고 그 기생의 혼을 달래주는 굿을 했더니 비가 왔다고 한다.
암행어사 설화
이 설화는 양반자제와 지방의 기생 사이에서 일어난 연애담으로서, 박문수 설화와 이시발 설화등이 있다. 양반의 자제가 어떤 연유로 시골에 가서 어린 기생을 사귀다가 헤어지게 된다. 기생은 양반의 자제와 사귄 이후로 갖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절개를 지킨다. 그러다가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온 양반자제를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인데, 춘향전의 전체 줄거리와 대체로 비슷하다. 춘향전에는 이 세 가지 설화 외에도 많은 다른 국내외의 설화들이 수용되어 있으며, 그 양상은 이본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판소리계 소설과 춘향전
춘향전은 심청전, 흥부전 등과 함께 일명 판소리계 소설이라 한다. 판소리계 소설이란 판소리로 불려졌던 소설은 물론, 판소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소설을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다. 판소리란 무대를 뜻하는 판과 소리의 합성어이다. 무대판에 광대가 등장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노래(창)와 말(아니리), 몸짓(벌람,너름새)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고수는 옆에서 북을 치면서 여흥을 고조시킨다. 일종의 한국판 오페라라 할 수 있다. 숙종 말엽에 발생한 판소리는 원래 열두 마당이었으나, 고종 때 명창 신재효(1812--1884)에 의해서 여섯 마당(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으로 정리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다섯 마당이다. 주로 고대설화에서 소재를 취하여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므로 구비문학에 속한다. 이런 판소리가 기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므로 구비문학에 속한다. 이련 판소리가 기록문학으로 정착된 소설이 판소리계 소설이다. 판소리계 소설은 평민계층의 발랄함과 진취성을 바탕에 깔고 전승되면서 끊임없이 재창작 및 개작되었고, 그들의 체험과 원망이 투영되었다. 판소리계 소설에서는 전대 소설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초경험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을 대폭 축소하고, 현실적인 경험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물론 그 표현에 있어서는 매우 조잡한 면도 있지만, 풍자해학 등의 수법을 풍부하게 구사하고 있다. 따라서 소설의 독자가 양적계층적으로 확대되면서 군담소설의 인기를 판소리계 소설이 차지하게 되었고, 그 결과 소설사의 전환이 촉진되었다. 이 판소리계 소설은 판소리가 지닌 개방적 면모와 해학과 풍자를 기본으로 하는 평민계층의 문화적 역동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판소리계 소설의 특징은 주로 평민문학적이고 양반의 위선을 폭로하는 풍자문학적인 면이 강하다.
인간해방을 위한 사랑의 대서사시
이작품의 내용은 엄격한 사회제도 속에서 계층을 초월한 자유연애와 인간평등을 주장하여 당시의 사회제도에 반기를 든 서민층의 자각과 탐관오리의 부패상을 폭로하는 내용이다. 숙종 때 전라도 남원에 사는 퇴기 월매는 춘향이라는 아름다운 딸을 낳는다. 춘향이 성장하니 자색이 절륜하고 시화에 능했다.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은 춘삼월을 맞이하여 방자를 데리고 광한루에서 시를 읊고 있다가, 춘향이 향단을 데리고 시냇가 버들숲에서 그네를 뛰는 것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날 밤 춘향의 집으로 찾아가 춘향과 백년해로의 가약을 맺는다. 두 청춘남녀는 이내 깊은 사랑에 빠지지만, 이 부사가 갑자기 서울로 영전하게 되어 이들은 굳은 약속을 하고 헤어지게 된다. 남원부사로 새로 부임해온 변학도는 호색가여서 춘향이 절세미인이라는 말을 듣고 수청들기를 명하지만, 춘향은 죽기를 각오하고 이를 거절한다. 갖은 회유와 고문에도 춘향의 마음을 움직일수 없자 춘향을 옥에 가둔다. 한편 서울에 올라간 이도령은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여 문과에 급제하고, 전라도 지방의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온다. 이몽룡은 춘향이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하여 옥중에 갇혀 있다는 말을 듣고, 변학도의 생일잔치에서 거지 행색으로 찾아간다. 각 고을의 수령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사출도를 단행하여 변학도를 파직시키고 춘향을 구출한다. 이도령은 춘향을 정실부인으로 맞아 백년해로한다.
조선후기 인물들의 초상화
춘향전의 주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여인의 정절을 고취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관리의 횡포에 대한 저항으로 보기도 하며, 남녀간의 사랑으로 보기도 한다. 내용상 춘향과 이몽룡의 연애담이 중심이 되어 있고, 그 과정에서 춘향이 수청을 강요하는 변학도에 맞서 절개를 지킨다는 구성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춘향이 이도령과 결합을 이루려는 것은 신분적 제약을 극복하고 인간적 해방을 이루고자 하는 이면적 주제가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신분상승을 통한 인간해방>이 <춘향전>의 목적적 가치이자 작품의 이면적 주제라면, 열녀의식은 이를 달성키 위한 수단적 가치로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인물들의 성격을 살펴보면 주인공인 춘향은 여타 고전소설의 수동적인 인물들과는 달리 매우 강렬한 자의식의 소유자로, 주관이 뚜렷하고 이익사회 지향적인 성격으로 묘사되고 있다. 변학도가 주동적 인물인 춘향의 성취욕구에 대항하는 반동적 인물인 반면, 이몽룡은 구원자 혹은 보조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춘향의 항거와 복종의 상반된 반응은 이 때문이다. 또 월매나 방자 등의 성격에서 나타나듯이 세속적인 관심과 현실주의적인 세계관도 아울러 반영되고 있다. 관료사회의 부패가 심해지고 민중들의 시대적 각성이 왕성해지던 시기에 폭군적인 변학도에 맞서 수절의식을 표방하면서 신분상승을 성취해가는 춘향의 모습은 대다수 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으며, 아울러 춘향을 통한 대리만족의 기쁨을 누리게 했다. 이 작품은 일관성의 결여 및 논리의 상실 등 몇 가지 결함이 지적되고 있지만 우수한 서민 문학작품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첫째 서민들에게 친근한 소재를 취하고 있고, 둘째 서민사회의 예술양식인 설화와 판소리를 통해 전파되었으며, 셋째 서민사회의 꿈과 정서를 절실하게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반관료의 대표적인 소설인 구운몽과 대비되면서 향후에도 생명력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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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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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결혼
어느 마을에 갑자기 매우 아름다운 젊은 아가씨가 나타났다. 아무도 그녀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으나 이 세상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그 마을에 거의 300명이나 되는 젊은 사내들이 몰려들어 모두가 그녀에게 장가를 들고 싶어했다. 그녀가 말했다.
"보세요. 나는 하난데 당신들은 300명이나 되어요. 나는 단 한 사람하고만 결혼할 수 있어요. 그러니 당신들은 한 가지 일을 해내십시오. 제가 내일 다시 오겠어요. 여러분께 24시간을 드리죠. 여러분들 중에서 누군가 붓다의 연경전을 암송할 수 있다면 그와 결혼하겠어요."
젊은 사내들은 모두 집으로 급히 돌아갔다. 그들은 먹지도 자지도 않고 밤새도록 경전을 외웠다. 그리하여 그들 중에서 10명이 성공했다. 다음날 아침, 그녀가 와서 그 열 사람에게 암송하기를 청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이 암송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 열 사람은 모두 성공했다. 그녀가 말했다.
"좋아요. 그러나 나는 하나인데 내가 어떻게 열 사람과 결혼할 수 있겠어요? 당신들께 24시간을 다시 드리겠어요. 이번에는 연경전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이해하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암송은 단순한 것이어서 당신들은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므로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시간은 오로지 하룻밤뿐이었다. 연경전은 긴 경전이다. 그러나 멍청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열심히 했다. 다음날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은 연경전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또 문제가 남아 있군요. 사람 수는 줄었지만 아직도 곤란해요. 300명에서 3명으로 크게 줄었어요. 그래도 나는 세 사람과 결혼할 수는 없지요. 단 한 사람하고만 결혼하라 수 있어요. 24시간을 더 드리겠어요. 이번에는 경전을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경험한 사람과 결혼하겠어요. 그러니 24시간 안에 경전의 의미를 경험하도록 하세요. 당신들은 경전을 설명했는데, 그것은 지적인 것이에요. 좋아요. 당신들은 어제보다는 훨씬 나은 이해력을 갖게 되었지만 그 이해력은 지적이지요. 저는 간접적으로 조금이나마 경험해 보고 싶어요. 그 향기를 조금이라도 맛보고 싶어요. 저는 당신들의 존재가 연꽃이 된 것을 보고 싶어요. 저는 연꽃의 향기를 맡아 보고 싶어요. 그러면 내일 제가 다시 오지요."
단 한 사람이 왔다. 확실히 그는 목적을 이루었다. 그녀는 그를 마을 변두리에 있는 그녀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남자는 한 번도 그런 집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집은 마치 꿈나라인 것처럼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녀의 부모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 젊은이를 맞이하며 말했다.
"어서 오시지요."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그의 부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부모가 말했다.
"자, 들어가시지요. 그 애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저기가 그 애 방이지요."
젊은이는 다가가서 문을 열었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방은 빈방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바로 정원으로 통하는 문이 하나 있었다. 그는 아마도 그녀가 정원에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 통로 위에 발자국을 따라서 갔다. 이윽고 그는 거의 1마일이나 걸어갔다. 정원이 끝나고 그곳에는 아름다운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보이지 않았고 이젠 발자국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엔 단지 그녀의 것인 황금으로 만든 구두 한 짝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혼란해졌다. 어찌 된 일인가?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정원도 집도 그녀의 부모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는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이제 그녀의 황금구두도 사라졌고 아름다운 강물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이 공허했다. 그때 그는 크게 크게 웃어 제쳤다.
- 그는 웃었다. 그는 결혼한 것이다. 이것은 한 아름다운 불교도의 이야기이다. 그는 공, 무와 결혼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성인들 누구나가 찾고 있는 결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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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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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9. 백가가 쟁명하다
인류의 정신사를 더듬어볼 때, 인류의 자유로운 정신활동이 최초, 최고로 고양되었던 시기는 아마도 기원전 6~5세기, 각국이 고대제국으로 나아가는 대변혁기를 꼽아야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 석가, 공자 등 동서양의 위대한 철인들은 모두 이시기에 활약했다. 이 시기에 인류는 비로소 자연으로부터 독립, 자아를 확립해나갈 수 있었다. 생산력의 비약적 발달은 분업을 촉진, 생산에서 자유로워진 전문적 지식인을 배출했으며, 이들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때가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 우리가 산업화 이후 전통적 가치가 무너지고 혼란 속에서 새로운 가치관의 수립에 골몰했던 것처럼, 당시의 중국도 제22의 농업혁명 이래, 씨족 공동체적 질서에 기반한 주의 봉건제도와 예교문화가 이미 중심적 위치를 상실한 상태에서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위해 치열한 탐색의 과정을 겪고 있었다. 거기에 저마다 통일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각국 군주의 경쟁은 사상의 발달을 더욱 촉진, 그 결과 중국 사상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대를 열었다. 흔히 춘추전국 시대를 사상의 황금시대, 이름하여 '제자백가' 시대로 부르는데, '자'는 교사를 존대하여 부르는 명칭이고, '가'는 직접적으로는 저술가, 확대해서 사상의 한 흐름을 이룬 학파를 일컫는다.
춘추 말기에 최초의 교사로 등장한 공자는 주대의 봉건적 질서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했던 반면, 전국 초기의 묵자는 반전론을 주장하면서 만인 평등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혁신적인 철학을 개창했다. 한편 허무주의자요 문명비판론자인 노자는 모든 인위적인 노력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그러므로 자연으로 돌아가 순리에 맡기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사상은 각기 뛰어난 제자들에게 이어져 후대에 계승, 중국사사의 원천이 되었으나, 실제로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를 지향하던 당시의 군주들에게 채택, 구현되었던 사상은 역기 법가의 사상이었다. 유가의 시조인 공자의 이름은 공구, 그의 신분은 명확치 않으나 아마도 귀족 중에 다소 낮은 신분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주왕실의 전통일 강했던 노나라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제사 용기를 갖고 놀았다고 하는데, 일찍이 고아가 되어 독학으로 학문을 성취했다. 그는 세상의 어지러움은 전통의 예문화가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 그가 가장 존경해 마지 않았던 주공과 같은 성인 군주가 출현, 이 난세를 수습해주기를 기대했다. 그는 실제로 어진 정치를 펼칠 군주를 찾아 14년간 전국을 주유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에서 후세를 교육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유교의 경전이 된 (오경)은, 말하자면 그가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든 교과서를 기초로 뒷날 만들어진 것이다. 그의 제자는 모두 3천명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학업을 익힌 후 관리로 등용되기를 바라는 평민들이 많은 수를 차지했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인'과'예'. 인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예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은 이러한 덕목이 가장 순수하게 나타나는 첫 번째 장이다. 그는 이 가족애를 보다 큰 사회단위로 차츰 확산, 어진 정치를 펼 것을 주장했지만, 이러한 가족중심의 설명방식은 그의 사사의 가장 커다란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어떤 신분의 사람이든지 관계 없이 가족으로부터 최초의 인간관계를 경험하고 애착을 갖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가족으로부터 출발하는 공자의 구체적 접근방식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가까운 것에 치우치는 것을 당연시했으나 평등한 사랑은 아니었다. 아울러 보수적인 그의 사상은 신분제의 철폐로 나아가지 않았다.
공자의 '인'은 전국 중기의 맹자에 의해, '예'는 전국 말기의 순자에 의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맹자는 성선설에 기초하여 왕도정치의 구현을 강조했으며, 순자는 성악설에 의거, 환경과 후천적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니 법의 중요성도 크게 부각되었다. 한비자와 이사는 순자의 제자였다. 묵자의 이름은 묵적. 그 역시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는 낮은 신분이었다고 생각된다. 초기에 공자의 사상에 심취했던 그는 공장의 인이 차별적인 사랑임을 깨닫고, 무차별적인 사랑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의 사상은 '겸애설'로 일컬어지는데, 겸애란 다른 사람의 신체, 가족, 국가를 자기의 것과 독같이 여기는 것이다. 빈번한 전쟁은 각국 군주의 이기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므로 전쟁은 즉각 중지되어야 하며, 유가에서 미화되는 귀족들의 호화로운 장례도 중지되어야 한다. 그는 단순히 사상의 주장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사상의 실천에 앞장섰다. 직접 신성한 노동에 종사했으며, 근검절약의 생활을 실천했다. 그의 평등의식과 검증을 요구하는 논리적 사고방식은 귀족적 신분제, 운명론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나아갔다. 도가의 시조는 노자다. 그의 이름은 이이, 초나라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가 실존인물이었다는 것조차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의 사상은 전국말기, 장자에 의해 정리되어 흔히 노장사상이라고 불려진다.
도가의 중심사상은 '도'다. 도란 사물의 근본을 따져나갈 때 맨 마지막에 남는 것이다. 즉, 우주만물의 생성근원으로, 천지만물을 초월해 있으면서도 천지만물이 벗어날 수 없는 위대한 힘이다. 그것은 유일하고 절대적이며 불변하는 것. 이 도를 제외하면, 우주적 존재들은 모두 상대적이고 허무해서, 서로 대립되는 것들의 그 대립조차 무의미한 것이다. 인가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어서 도라고 말해지는 것은 이미 도가 아니다. 모든 인위적이 노력은 도에서 멀어지게 할뿐이다. '무위자연'만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이며, 문명 이전의 원시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면 그때에 인간을 가장 행복할 것이다. 매우 난해하면서도 또한 매우 매력적인 도가의 사상서인 도덕경(노자)과 (장자)는 그 풍부한 상상력과 낭만적인 언어 구사로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혀지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번역되는 책의 하나이다. 대개 유가는 지배층의 철학으로, 도가는 피지배층의 철학으로 발전했는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흔히 중국사람들은 '공인으로서의 유가, 개인으로서는 도가'라고 하듯이, 고도의 긴장 생활을 요구하는 유가와 이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도가는 상호대립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 시기 현실적인 정치에서 가장 커다란 힘을 발휘했던 사상은 역시 법가이다. 당시의 군주들은 제가의 사상에 모두 귀를 기울이고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으나. 실제로 구현한 것은 법가의 사상이었다. 이회, 상앙, 신불해 등의 관료들은 모두 법가의 선구자들이며, 진의 통일도 이사 등의 법가적 실천에 의해 이루어졌다. 법가의 사상을 완성한 사람은 전국 말기의 한비자이다. 그의 이름은 한비, 본래는 한자라고 불렀으나, 당나라의 명유인 한유와 구별하기 위해 한비자라고 부른다. 그는 역사의 진보를 믿었다. 현명한 군주는 고대사를 모범으로 삼아서는 안되며, 현실의 상황을 직시, 이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봉건제를 타파하고 관료제를 채택해야 하며, 규범으로서의 법과 법을 실천하는 수단으로서의 술을 강조했다. 그는 동학이었던 라이벌 이사에게 모함을 받아 살해당했다. 이외에도 일종의 논리학인 명가, 세계를 음양의 2원적 원리에 의해 설명하는 음양가, 우주만물이 '목화토금수'로 구성되었다고 주장, 이의 운행으로 모든 변화를 설명하는 오행가, 외교와 변설을 중시하는 종횡가 등도 출현했다.
병가의 서적인 (손자병법은 전국시대의 실전경험에서 출발한 고도의 전쟁이론서이자, 심원한 인생철학을 담은 명저로 오늘날까지 널리 애독되고 있다. 손빈은 친 구 방연의 모함으로 두 다리의 힘줄을 잘리는 형벌을 받은 후 저술에 몰두, 이 책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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