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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55호
단기 4343 / 서기 2010. 5. 29 (음력 4. 16)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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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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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인 예술가는 그 전의 작품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다음 작품을 만든다.(쇼스타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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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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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아주 얇고 바삭바삭해서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 듯하고 맛이 달아 아기들이 잘 먹는 서양과자로 ‘웨하스’가 있다. 이 과자는 아이스크림에 얹어 먹기도 하고 간식으로 다른 과자처럼 먹기도 하지만, 너무 달아서 이것만으로 요기하는 경우는 없는 듯하다. ‘웨하스’는 밀가루, 우유, 달걀노른자 등을 섞어서 만든 묽은 반죽으로 얇게 구워 만드는 과자인데, 두 겹의 과자 사이에 크림을 넣어 서로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래는 유아용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담는 그릇으로 쓰였는데, 요즘에는 케이크에 얹는 장식이나 잔칫상의 모양을 내는 재료로도 쓰이는 등 활용도가 넓어지고 있다. 이 과자로 1940년대에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기업이 있다고 하니 당시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웨하스’라는 말은 영어로 ‘얇은 조각’을 뜻하는 ‘웨이퍼스’(wafers)가 변한 말이다. 이를 일본에서 ‘우에하스’(ウエハ─ス)라 일렀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웨-화-쓰’로 적힌 적이 있다는 1930년대의 기록이 있다.(당시에는 붙임표로써 외래어의 장음을 표시하였다.) 그러다가 지금의 ‘웨하스’가 된 것인데, 그 발음은 ‘버스’, ‘가스’처럼 마지막의 ‘스’를 [스]로 하지 않고 [쓰]로 해서 전체를 [웨하쓰]로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보인다.
한편 ‘웨이퍼’는 반도체의 재료가 되는 얇은 원판을 이르기도 하는데, 이는 실리콘이나 갈륨비소 등 단결정(單結晶) 막대기를 얇게 썰어 만든다.
김선철/문화체육관광부 학예연구관
애꾸미르(독안용)
‘애꾸미르’(애꾸눈 용)는 당나라 말기 이극용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당당했던 당나라도 끝 무렵에는 쇠약해져서 힘을 잃고 큰 반란이 잇따라 일어났다. 그 으뜸이 ‘방훈의 난’이다. 정부 쪽 군대는 싸울 뜻이 없어 쓸모가 없었으나, 그 가운데에서도 잘 싸워 이 반란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사타 겨레 출신 장수 ‘주사적심’이었다. 그 공으로 적심은 황실과 같은 성 이씨, 이름은 ‘국창’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서기 875년, 산둥의 소금 밀수 상인 황소가 일으킨 반란은 규모가 커서 중국 전역을 거의 혼란 속으로 빠뜨리고, 끝내는 서울 장안을 점령하여 도읍을 삼고 나라이름을 ‘대제’라 일컬었다. 당나라 정부는 쓰촨으로 도피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그때 뛰어난 공을 세운 사람이 이국창의 아들 극용이었다. 극용의 군대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므로 ‘까마귀병’이라고 불려, 황소의 장병이 “까마귀병이 왔다”는 말을 들으면 그냥 도망쳤다고 한다. 극용은 이 난을 평정했다. 이 일을 <자치통감>에 “극용은 나이 28, 여러 장수 중에서 가장 젊다. 그런데도 황소를 쳐서 장안을 도로 찾았다. 그 공이 으뜸이다. 군대의 세력이 가장 강하여 여러 장수들이 두려워했다. 극용은 한 눈 애꾸눈이다”라고 적고 있다. 아마 한 눈이 작았거나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 사람들이 이를 ‘애꾸미르’(독안용)라고 했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호두까기 인형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발레곡 ‘호두까기 인형’. 호두까기 인형은 호두를 까는 도구다.‘까기’에서 ‘-기’는 ‘배우기, 놀기’의 ‘-기’다.‘-기’는 동사나 형용사가 명사 구실을 하게 한다. 다른 의미를 덧붙이진 않는다. ‘날개, 지우개….’‘-개’는 ‘도구’의 뜻을 나타낸다. 분명하게 뜻을 전달하려 했다면 ‘호두까개 인형’이 됐어야 했다.
나들목
고속도로는 나오고 들어가는 길이 정해져 있다. ‘인터체인지’라고 부른다. 한글 대신 로마자로 ‘IC’라고 표기한 모습이 흔히 보인다.‘나들목’이 같은 의미로 쓰인다. ‘인터체인지’보다 말하기 쉽고,‘IC’보다 알기 쉽다. ‘드나든다’는 ‘나들’과 ‘목’이 합쳐져 만들어졌다.‘목’은 ‘건널목’의 ‘목’이다. 길을 이루는 좁은 곳이란 뜻이 있다.
소강상태에 빠지다
매우(梅雨). 매실이 익어 갈 무렵에 내리는 비라는 뜻으로 중국과 일본에선 장마를 이렇게 표현한다. 대개 6~8월에 찾아오는 극동 지방의 기상 특징 중 하나다. 올해 장마는 7월 중순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장마와 관련된 날씨 예보 등에서 "소강상태에 빠져…"라고 표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나 ''소강''은 소란이나 분란, 혼란 따위가 그치고 조금 잠잠하다는 뜻으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상태를 나타내므로 ''빠지다''와는 호응이 잘 안 된다. 부정적 어감이 강한 ''빠지다''는 궁지.역경 등의 말과는 어울려도 ''소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장마가 소강상태에 들었다" "소강상태에 있던 장마전선이 활성화되면서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처럼 소강상태에 들다/있다 등으로 바꿔 쓰는 게 자연스럽다.
비가 거의 오지 않아 맑은 날이 계속되면 ''마른장마'', 여러 날 동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면 ''억수장마''라 하는 등 장마의 종류도 다양하다. 제철이 지난 뒤 지면 ''늦장마'', 초가을에 오다 말다 하는 장맛비는 ''건들장마''라고 부른다. 3년 가뭄엔 살아도 석 달 장마엔 못 산다는 말도 있듯이 모두 비 피해가 없도록 유의해야겠다.
글러브, 글로브
"한.중.일 합작 영화 무극의 주인공인 장동건은 골든 글러브 수상이 불발된 데 대해 ''후보에 오른 것에 만족한다. 주위에서 골든 글러브에서 상을 타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위안 삼고 있다''며 웃었다."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가 한 해의 각 부문 최우수 영화와 남녀 배우를 선정해 수여하는 상을 두고 흔히 골든 글러브라고 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수여되는 트로피가 장갑 모양이 아니라 황금빛 지구 모양을 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이 상은 골든 글로브(golden globe awards)가 바른 명칭이다.
물론 황금빛 장갑 모양의 트로피를 주는 골든 글러브(golden glove) 상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프로 야구에서 시상한다. 이 상은 미국의 스포츠 용품 제조 업체인 롤링스가 홍보를 목적으로 메이저 리그에서 최고 수비 선수들을 뽑아 수여한 골드 글러브(gold glove)가 원조다. 이 ''골드'' 글러브가 일본에 도입되면서 ''골든'' 글러브가 되고 우리도 골든 글러브로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골든 글러브는 수비는 물론 공격도 감안해 각 부문 최고 선수에게 수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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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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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에 대하여 - 함성호
여기서 핸들을 조금만 오른쪽으로 틀면 그대로 피안이다 도시의 지붕들 위를 날아 긴 포물선을 그리며 추락하겠지 나는 그 포물선의 어느 좌표쯤에서 생의 끈을 놓고 있을까? 살아 있다는 것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일이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나오면 다시 생은 더 어두운 터널로 나를 채근한다
좌석버스 안에서 죽은 사람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옆자리에서 앉았던 사람들은 그가 자고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썩지만 않는다면 죽음도 옆에 두고 친할 만하다 인형에게 말을 건네는 아이들은 살아 있는 죽음을 보고 있다
익사자는 어느 순간 생을 포기하기 마련이다 뻔한 낙관이지만 나는 그 순간에야 무엇이 보일 것 같다 소는 불이 나면 그냥 서서 타죽는다 처음부터 삶은 없었던 것이든가, 아니면 가위에 눌린 꿈의 다른 방식이라는 걸까?
되돌아간다 또, 되돌아간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새로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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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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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홍성란
쓸쓸한 생각을 위해 기대서는 작은 창
우표안의 작은 새도 뺨을 붉혀 우는데
바람은 귀 먼 영혼을 후려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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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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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 윤석중
보리를 찧어 주는 절굿공아.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팥을 타주는 맷돌아.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쌀을 일어 주는 조리야.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불을 때주는 부지깽아.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밥을 퍼주는 주걱아.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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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시조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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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園帶鋤 (화원대서) 꽃밭에 호미 메고
강희맹 姜希孟 1424(세종6) ~ 1483(성종14)
荷鋤入花底 (하서입화저) 호미 메고 꽃 속에 들어가 理荒乘暮回 (이황승모회) 김을 매고 저물녁에 돌아오네. 淸泉可濯足 (청천가탁족) 맑은 물이 발 씻기에 참 좋으니 石眼林中開 (석안림중개) 샘이 숲속 돌틈에서 솟아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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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평론 /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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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첫느낌 그 설레임으로 살고 싶다
박노해
사랑의 침묵
그대에게도 세월이 지나갔구나 꽃들은 어둠 속에 소리 없이 지고
내 사랑하는 것들은 말이 없다 내 사랑하는 여자도 말이 없고 나는 너무 많은 사랑을 하다가 쓰러져 겨울 사내로 말이 없고
깊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듯 진실로 사랑하는 가슴은 너무 많은 말과 너무 많은 사연과 너무 많은 눈물이 있어 말없이 흘러가는 것
그래도 꼭 한 마디 품고 가야 할 말이 있어 나 이렇게 새벽 강가에서 사랑의 침묵을 듣고 있을 뿐
짝사랑의 상처
벌교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나는 여학교 퀸으로 뽑히던 글 잘 쓰고 눈빛이 슬퍼 보이던 그 애를 짝사랑했는데 부끄럼을 많이 타서 편지로만 무지 몸살을 앓았는데
읍내를 꽉 잡고 누비던 어깨 큰 선배들이 그 애를 자기한테 인수인계하라고 해서 밤중에 공원으로 불려가 싸움이 붙어 엄청 깨져버려 지금도 머리에 짝사랑의 흉터가 챙피하게 남았는데
그때 선배들한테 목을 밟힌 채 내가 한 말은 그 여자애 마음을 가져와 보라고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힘으로 주고받냐고 어떻게 내 것도 아닌 사랑을 내 것인 양 인수인계하냐고 사랑의 방향은 오직 그녀 마음 안에 들어 있는 거라고......
지금도 누군가 나에게 힘으로, 돈으로 내 마음을 바꾸라고 강제할 때면 나는 문득 25년 전의 그 사랑싸움이 생각나는 것이다
아, 그때 피투성이로 밟힌 채 쳐다보던 그 밤하늘엔 어찌나 별이 맑고 곱던지 풀벌레 소리는 왜 그리 서럽게 환하던지 그래서였던가 나는 정신을 잃는 순간까지 단호하게 말했었지
어떻게 사랑을 힘으로 주고받냐고 어떻게 내 것도 아닌 그녀 마음을 우리끼리 주고받냐고 어떻게 그녀 마음을 함부로 빼앗느냐고
그래, 지금도 난 그래, 어떻게 양심을 강제로 바꾸려하냐고 어떻게 민심을 힘으로 판단하냐고 어떻게 미래를 돈으로 가지려하냐고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 것들을 어떻게 힘으로 빼앗아가겠다는 것인지 그때나 지금이나 나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사랑의 상처를 다시 내 온몸으로 수놓을지라도 나로서는 정말 그 이상하고 이상한 생각에 굽힐 수 없는 것이다.
가을에 떠나다
이 가을에 나는 쓰러져 우네
다시 겨울은 오는데 저 겨울산을 무엇으로 혼자 넘나
너와 함께해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젖은 눈으로 지켜봐 주던 너도 이제 없는데
침묵의 불덩어리 품고 언 살 터진 겨울 사내로
무엇으로 혼자 넘나 저 겨울산
박노해 - 1957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했으며 본명은 박기평, 세례명은 가스발이다. 선린상고 야간부를 졸업하고 섬유.금속 노동자로 일했으며, 버스회사에 취업하여 운수노동운동을 하다 해고당하고 1985년 결성된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에서 활동했다.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의 결성을 주도했으며, 시집 '노동의 새벽', '참된 시작'과 산문집 '사람만이 희망이다'가 있다. 1991년 구속되어 국가보안법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중 1998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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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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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신호등
붐비는 어느 거리에서 정신과 의사가 한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건너편에 남자가 보이죠?" 그녀가 속삭였다. "그 남자가 제 남편이에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는 자신이 교통신호등이라고 생각해요. 남편은 밤새도록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깜빡깜빡 하거든요." 그 의사는 끄덕이며 말했다. "건너가서 그와 이야길 해봐야겠습니다." "아니에요. 기다리세요." 부인이 소리쳤다. "신호등이 지금 꺼져 있어요."
- 자기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알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남이 미쳤다는 것을 알기는 매우 쉽다. 남에 대해서 그가 미쳤다고 샌각하는 것은 바로 사고자의 미친 마음에서 연유한다.
훨씬 쉬운 일
멋쟁이이긴 하지만 빈털터리며 바람둥이인 사람이, 있는 거라고는 돈밖에 없는 추녀와 전격적으로 결혼을 하여 그의 친구들을 매우 놀라게 하였다. 그런데 더욱 그의 친구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은. 결혼 후에도 그가 어디를 가든지 그가 가는 곳이면 반드시 아내를 데리고 다닌다는 사실이었다. 친한 친구 중의 하나가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자네가 돈 때문에 저렇께 소름끼칠 정도로 못생긴 여자와 결혼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네. 그렇지만 자네가 외출할 때마다 그녀를 동반하는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네." 그러자 바람둥이가 설명했다. "그거야 간단하지. 그것이 그녀에게 작별 키스를 하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니까 말일세."
- 마찬가지로, 지식을 소유하는 것은 깨달음을 얻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것은 매우 값싸고 노력을 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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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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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7장 나 그리고 인생
소속감
나의 잘못된 행동으로 해서 부모를 욕되게 하지 마라.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 손가락질은 나를 거쳐 죄없는 부모에게까지 간다. 소속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어떤 집단에 소속되든 자신으로 해서 그 집단 전체의 이미지를 흐려 놓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소속원의 행동은 그 집단 전체의 이미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좋은 행동을 했다면 좋은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남기는 데 공헌한 셈이 되고, 좋지 못한 행동을 했다면 좋지 않은 집단이라는 오명을 사는 데 공헌한 셈이 된다. 집단 구성원들 전체가 좋지 못한 행동을 해서 좋지 못한 집단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몇몇 소속원들의 좋지 못한 행동으로도 소속원들 전체에게 욕먹이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싹수 없는 가문이라는 모욕을 당하게 하는 데는 한두 사람의 싹수 없는 행동으로 충분하고, 저질스런 단체라는 오명을 사게 하는 데는 한두 사람의 불량스런 행동으로 충분하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 아닌 한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집단을 위해서도 행동해야 한다. 좋은 이미지를 남기려고 노력하는 그들에게 이익되는 행동을 해 주지는 못할망정 피해 입히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저지른 잘못이 나 혼자에게만 미치고 마는 경우는 없다. 내가 잘못하면 나에게만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속되어 있는 집단에게도 예외없이 손가락질을 한다.
농담
농담은 가끔씩 하라. 음식의 맛을 내는 데만 사용하는 조미료처럼 농담은 대화의 흥미를 돋우는 데만 사용하라. 농담은 철저히 희소성의 원칙에서 나와야 한다. 많은 진담이 오가는 가운데 가끔씩 나와야 농담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농담은 또한 이성과 진담 속에서 나와야 한다. 진담을 하는 가운데 가끔씩 나오는 농담만이 진담을 침해하지 않을 수 있고, 이성을 가지고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하는 농담만이 허풍쟁이라는 비난을 사지 않게 한다. 너무 자주하는 농담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 가끔씩 하는 농담은 무미 건조한 대화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지만 너무 자주 하는 농담은 대화를 천하게 하고 상대를 불쾌하게 한다. 가끔씩 농담을 하는 사람은 유머스런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지만 시도 때도 없이 농담을 일삼는 사람은 푼수라는 놀림을 받는다. 그리하여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농담으로 둔갑되어 버리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농담하면서 진담하고 진담하면서 농담하여, 진담인지 농담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농담이 진담으로 변하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웃어넘기자고 가볍게 한 농담이 자기 멋대로 뻗어나가 진담으로도 변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무기로도 변한다면, 그로부터 발단되는 비난은 걷잡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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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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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를 위하여 - 김규항·김정란·진중권·홍세화
김정란 에세이 (지식인과 글쓰기)
누가 영웅인가?
이른바 영웅주의 신드롬은 그 실체가 대단히 모호하다.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성공리에 끝난 KBS 사극 <용의 눈물>, 박정희 향수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이인화의 <인의 길>,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해냄 출판사의 <징기스칸>, 문학동네의 <나폴레옹>등, '영웅'의 생애를 다룬 문화 상품의 생산이 줄을 이었다. 이 현상은 대중의 진정한 욕구를 반영하는 것일까. 아니면, 매스컴이나 출판사의 판매 전략이나, 개인적 야심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결론을 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대로 넘겨버리기엔 무엇인가가 석연치 않다. 시대착오적인 극우 이데올로기가 영웅주의 뒤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문화적 징후가 표면화되었을 때, 그것을 곧장 대중적 욕구의 발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과거와 달리, 문화 테크노크라트들은 세련될 대로 세련되어 있다. 그들은 전략적으로 무장하고, 대대적인 대중조작에 나선다. 베스트셀러는 거의 대부분 기획 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만들어진다'. 이러한 상황 안에서, 일단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해서, 그 작품이 무조건 대중적 코드로 유의미한 것이라는 단정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영웅주의 신드롬' 역시 그 자체로 투명한 대중적 코드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일단, 문민정부의 수준 낮은 정치에 실망하고, IMF로 실제적인 경제 위기에 몰린 우리 사회 안에 '박정희 향수'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97년에 <람세스>를 번역했을 때, 이 책의 성공을 '박정희 향수'와 연관지으려는 일부의 시각이 있었다. 나는 그러한 시각이 완전히 문화적 맥락을 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책임하고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각종 일간지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해서 이 작품의 수용 논리를 '문화주의' 적인 쪽으로 돌려놓았고, 다행히 이 책의 출간과 때맞추어 열린 <이집트 문명전>이 그 논리의 정착을 도와주었다. 그래서 <람세스>는 다행히 '영웅주의'의 마수를 비껴서 '문화주의' 적인 방식으로 수용될 수 있었다.
해냄 출판사의 <징기스칸> 역시 영웅주의에 기대어 판매대기를 기대하고 기획 출판된 책이다. 그러나 대중조작에 능한 이 출판사의 기대와는 달리 별 재미를 보지 못한 모양이다. 이인화의 <인간의 실> 역시, 이 영리한 작가의 계산대로라면, 박정희 향수에 힘입어 상당히 판매되어야 옳았겠지만, 불발로 끝났다. 문학동네의 <나폴레옹>도 무책임하게 박정희와 연관시킨 광고카피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경제 상황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서적 판매 부수 자체가 현저하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출판사나 대중 매체가 선전하는 것만큼 '영웅주의 신드롬'이 대단한 규모를 자랑하고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결국, `영웅주의 신드롬`이란 없거나, 있다 해도 미미한 수준이며, 상당 부분 출판사나 작가에 의해 조작되거나 과장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도 무방할 것 같다.
순수한 '출판 기획물'로서 베스트셀러를 기대하는 출판사들의 `영웅주의` 편승은 결과적으로 극우세력을 도울 수 있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다. '박정희 복권' 시도는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암암리에 5,6공 세력으로 분류되는 반민주적 수구세력의 기득권 유지를 합법화시키고, 반개혁적 성향을 옹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숨기고 있다. 어려운 경제 상황, 어지러운 정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문화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위대한 인물'을 찾고 싶어하는 대중적 심리가 문민정부를 건너뛴 자리에서 가까운 시대의 영웅을 찾게 만들었다는 것을 깡그리 부정할 수는 없다. '박정희 향수'가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중들의 '박정희 향수'는 대단히 소박한 것이다. 더군다나 박정희 시대의 정치적 폭압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층에서 발견되는 박정희 향수는 '정치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이다. 그들은 박정희씨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지, 그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한 순진한 반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극우세력의 상징조작에 출판인들이 힘을 실어준다는 것은 아무리 출판 상황이 어렵다 해도 용인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특수 정황을 모두 다 고려에 놓지 않는다 하더라도, '영웅주의'는 한심한 발상이다. 서구, 특히 프랑스에서 <람세스>나 <나폴레옹>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영웅주의 신드롬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대중의 인문학적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현상이다. 즉, 개인성의 포화로 거의 거덜나 버린 '역사'의 의미를 대중적 방식으로 재점검해 보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재발견'이라는 인문학적 메시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말이다. 특히 망국적인 박정희 향수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더군다나, <나폴레옹>의 인기는 순전히 프랑스적인 현상이다. 그건 우리의 영웅주의와 정말이지 아무런 상관도 없다. 영웅을 구하는 사회는 유약한 사회이다.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할 수 없는 사회가 영웅에 기댄다. 내가 못 하겠으니까, 나 대신 해주셔요, 하고 영웅을 소환하는 것이다. 결국 영웅주의는 패배주의적 운명주의의 뒤집힌 이름에 불과하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순진한 대중을 정신적으로 유약한 상태에 묶어두려고 하는 이 상징조작이 두렵기 그지없다.
현대의 영웅은 징기스칸도 나폴레옹도 박정희도 아니다. 현대의 영웅은 무의미한 삶과 싸우며 나날의 의미를 길어 올리려고 애쓰는 거대사회 안의 일상인, 바로 당신 자신이다. 당신 자신만이 당신 자신의 영웅이다. 즉, 당신 자신만이 당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영웅은 없다. 있다 하더라도, 그는 당신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당신 자신이 당신 자신을 위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한, 영웅이 있다한들, 그는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 (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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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양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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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 200선 해제 3 - 반덕진
양철북 (Die Blechtrommdl) - 그라스(gunter Grass, 1927~ )
이 작품에서 작가는 난쟁이라는 탈사회적 존재의 눈을 통해 악의 세계를 밑바닥의 시각에서 관찰하고 있다. 주인공은 자발적으로 나치의 토대가 된 소시민 계층의 부패한 모습과 정치적 무의식을 고발하고, 다른 한편 과거의 죄악을 의도적으로 망가하려는 전후 서독사회의 몰역사적기회주의적 태도에 저항한다. 20세기 전반기의 독일 소시민 계층의 몰락과정과 나치의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전후 서독사회를 형상화한 전후의 위대한 역사소설의 하나다.
문학활동과 정치참여 병행
20세기 후반기 독일 최대의 작가로 평가되는 귄터 그라스는 1927년 그의문학적 원천인 단치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단치히 교외에서 작은 식료품 가계를 경영했다. 그래서 그라스는 어린 시절부터 소시민의 비참한 환경을 목격하며 자랐다. 그라스의 사상과 작품에 있어서 소시민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는 이러한 체험에 기인한다. 양철북의 주인공 소년 오스칼은 양철북을 힘껏 두드리면서 거친 반항을 보여주는데, 여기서도 소시민적인 절망성이 엿보인다. 10세에 나치 소년단에 가입하게 되고 2차대전중인 17세의 어린나이에 전차병으로 일선에 끌려갔다가 가벼운 부상을 당해 미군 포로수용소로 옮겨졌다가 18세에 겨우 풀려나왔다. 나치의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저항적 도를 교육을 받은 젊은이에게 패전은 곧 새로운 각성의 시작이었다. 그라스가 일체의 이데올로기에 저항적 태도를 취한 것은 바로 그 자신의 쓰라린 체험에 기인하고 있다. 그는 뒷날 "그때부터 나는 겨우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술회한적이 있는데, 그는 이때부터 나치의 추악상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전후 독일인들이 경제발전에 매진함으로써 과거의 죄를 잊으려는 경향에 대해 강한 저항을 느꼈다. 그는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는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깊이 통찰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문제의식은 양철북의 제3부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후 그라스는 농부로서, 광산의 광부로서 스스로 생계를 꾸려갔다. 1946년 조각공부를 위해 뒤셀도르프 예술대학에 입학하여 석판화와 동판화를 공부했다. 그라스는 조형예술뿐만 아니라 재즈 그룹 멤버로도 활약했다. 1956년에는 독일을 떠나 부인과 함께 파리로 이주했다. 그가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은 것은 1959년 양철북이 발표되면서부터다. 그라스는 이 작품 하나로 전후 독일문단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며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그는 1960년 베를린으로 돌아와 1961년에 독일 사회민주당의 빌리 프란트를 도와 선거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때부터 10년간에 걸쳐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작가로서의 직업과 시민으로서의 정치활동을 확실하게 구분했다. 작가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선언이나 저항을 해서는 표현해서는 안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신적 우월감을 버리고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고 했다. 1970년대 초부터는 정치에서 다소 물러선 후 다시 집필을 시작하여 '넙치'(1977)를 발표함으로써 그의 문학적 역량을 다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의 분위기는 그로테스크하고 비현실적이지만, 다루는 주제와 비판정신은 매우 냉혹하고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세기 전반기의 독일역사 형상화
이 작품은 전후 서독 문학의 최대의 수확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나치 독일, 전쟁, 패전 등으로 단절되었던 위대한 독일 장편소설의 전통이 이 작품으로 다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오스칼이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20세기 전반기의 독일역사를 형상화한 허구적 자서전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시간순서에 따라 구성되어 있으며, 3부로 되어 있다. 제1부는 나치의 등장과정을, 제2부는 제2차대전과 나치의 몰락을, 제3부는 전후사회를 다룬다. 이중 제2부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작품의 이해를 위해 내용을 요약해 본다.
30세의 오스칼 마첼라트는 서독의 한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 그는 지금 자신의 회상록을 쓰고 있다. 그는 1899년 외할머니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다. 할머니는 감자밭에서 4겹의 치마 밑에 어느 방화범을 숨겨주게 되는데, 그 방화범과 외할머니 사이에서 오스칼의 어머니가 태어난다. 오스칼은 1924년 단치히 교외의 랑푸르 라베스베크에서 태어났는데, 그는 아버지 마첼라트를 법률상의 아버지로만 인정할 뿐, 실제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촌이자 애인인 브론스키로 믿고 있다. 오스칼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완전한 성인의 지각을 갖추고 있다. 오스칼은 아버지라고 자칭하는 사나이가 요구하는 억지 장사꾼이 되지 않기 위해 세 살 때 성장을 멈춘다. 그는 소시민 사회의 정해진 궤도를 따라가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소시민 사회 속에서 예정된 삶을 거부하려고 그는 영원한 세 살배기로 살아남기로 하고 결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지하실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성장을 멈추게 한다. 그의 키는 94cm에서 성장이 멈춘다. 나치가 붕괴하는 1945년까지 그는 성장하지 않은 채, 세 살배기의 시점에서 세상을 관찰한다. 세 살이 된 생일날, 그는 양철북 하나를 선물받는다. 그는 항상 이북을 치고 다니며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려 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상당히 먼 거리에서도 소리를 질러 유리를 깨뜨릴 수 있는 특이한 재능을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북을 빼앗으려는 자에 대해서는 목소리로 저항한다. 어머니는 1937년 브로스키와 불륜관계가 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생선을 먹은 뒤 결국 황달로 죽는다. 어머니가 죽은 후 오스칼의 아버지 마첼라트는 자신의 가계에서 일할 마리아를 고용한다. 오스칼은 마리아를 애인으로 삼고자 한다. 아버지는 오스칼의 애인인 마리아와 재혼한다. 오스칼은 훗날 이 계모와 결혼하려고 하나 그녀가 응하지 않는다. 오스칼은 음악광대 베브라와 함께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로 간다. 그곳에서 1943년부터 1944년까지 난쟁이들로 구성된 나치 위문단의 일원으로 전선 위문공연에 참여하다.
전쟁이 끝날 무렵, 나치 당원이던 아버지 마첼라트가 나치의 휘장을 목에 삼킨 채 러시아 병사에 의해 살해된다. 그의 장례식에서 오스칼은 마첼라트의 무덤 속에 자신의 북과 북채를 묻어버리고 다시 성장하기로 결심한다. 즉, 독일의 패배와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계모와 함께 단치히를 떠나 화물열차를 타고 서독으로 가게 되는데, 이것으로 소설의 2부가 끝난다. 여기까지가 영화화되어 있다. 서독에 온 오스칼은 뒤셀도르프 근교에서 화폐개혁과 암거래 시장을 경험한다. 오스칼은 직업을 찾는다. 처음에는 묘비석을 깎는 석공장에서 석수로, 나중에는 미술대학에서 모델로 일한다. 그의 성장은 다시 121cm에서 중단된다. 그는 이제 어린 아이가 아니고, 등에 혹이 난 난쟁이가 된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소리로 유리를 깨는 능력도 사라진다. 그후 그는 다시 북을 잡는다. 그는 북 연주자로서 그 분야의 스타가 된다. 그후 그는 애매한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혐의자로 체포된다. 그는 정신이상자로 몰려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수상록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1954년 30세의 생일날, 그는 2년간의 집필을 끝내는데, 이것으로 소설도 끝난다.
유유히 흐르는 바이크셀 강 연안의 민요적목가적인 세계를 비롯하여 나치의 대두, 독일의 몰락, 전후의 혼란 등이 양철북을 두드리면 의식의 세계에 힘차게 되살아난다. 소시민의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악의 집단에 의한 소시민의 몰락은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난쟁이 오스칼의 인생회고는 독자들을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세계 속으로 몰고갈 것이다.
인간의 의식을 일깨운 난쟁이의 양철북
20세기 독일의 역사, 특히 나치와 제3공화국을 상징적으로 다룬 역사소설인 양철북에 대해 그동안 수많은 연구결과가 나왔지만, 이 작품은 나치의 비극적인 역사와의 대결을 전제로 할 때만 궁극적 메시지를 추출해낼 수 있다. 어른들의 세계로 대표되는 기존체제에 대한 부정과 반항으로 스스로 성장을 멈춘 오스칼은 키가 작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대상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게 된다. 즉, 사물의 밑을 관찰하는 '앙각의 퍼스펙팁'를 갖는다. 오스칼의 이러한 시각은 사물을 아래로부터 폭로하고 변형시키며 전통적 가치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기능을 갖고 있다. 오스칼은 이러한 독특한 시각을 이용하여 소시민 사회의 부패한 모습을 폭로하는 데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오스칼은 '아래에서' 소시민 사회의 부패상을 폭로한 것과 마찬가지로 연단의 '뒤에서' 나치즘의 서구성과 기만성을 꿰뚫어본다. 그라스는 "여러분은 한 번이라도 연단을 뒤에서 본 일이 있는가? 일찍이 연단을 뒤에서 본 사람은 연단 위에서 거행되는 어떠한 마술에 의해서도 동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연단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해 꾸며진 허상을 폭로한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점은 주인공 오스칼은 그 개인이 아니라 보편이 집약된 존재이다. 그라스 자신의 체험과 의식은 물론 하나의 계층, 한 시대 전체의 체험이 구체화되고 형상화된 모델이라는 점이다. 즉,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 위에 역사적 사실들을 일치시켜 역사과정을 시간순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오스칼의 출생은 나치 세력의 강화를, 오스칼의 어머니의 죽음은 자유도시 단치히의 몰락을 유태인 마르쿠스의 죽음은 유태인 박해를 그리고 독일인 마첼라트의 죽음은 나치의 종말을 암시하고 있다.
소시민의 정치적 무관심 질타
소시민 사회 속에서 예정된 소시민적 삶을 거부하고 영원한 세살배기로 남기로 결심한 오스칼을 소시민 계층의 메가폰으로 볼 때, 우리는 작품 전체를 통일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된다. 당시 독일 소시민 계층은 악화일로에 있는 그들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절망하여 나치즘을 받아들인다. 오스칼이 소시민 사회의 예정된 행로를 거부하고 북에만 매달린다는 사실은 몰락하는 소시민계층이 협소한 소시민적 일상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으로 상징되는 공격적인 나치즘에 매달린다는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고 있다. 오스칼이 지닌 '우리 파괴의 목소리'도 이런 맥락에서 올바로 조명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강요된 이유에서만 비명을 질러 유리를 깨던 그가 1932년 단치히의 스토크 탑에 올라가 '아무런 이유도 강요도 없이' 시립극장의 유리를 깨는 것은 나치의 집권이 임박했던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 전쟁이 발발하자 그의 목소리는 '기적의 병기'로 둔갑되어 전쟁무기로 이용된다. 이제 소시민 사회의 공격적 분위기는 전쟁이라는 집단적 폭력으로 폭발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소설의 1, 2부에 나타나는 오스칼의 '북'과 '유리파괴의 목소리'는 그의 시대사적 기능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오스칼은 공격적인 시대의 분위기를 구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치의 축소판으로서 나치 독일이 전쟁이라는 대영역에서 행한 것을 소시민적 환경의 소영역에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성장이 중단되었던 오스칼은 나치 몰락 후에 다시 성장하나 정상적인 키에는 이르지 못하고, 전후 독일사회에서는 등에 혹이 달린 불구자가 된다. 이러한 오스탈의 신체변화는 또 하나의 다른 시대사를 상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1927년 오스칼의 성장중단은 독일 소시민 계층이 나치의 이데올로기로 전락함을 의미하며, 나치가 멸망한 1945년 후 오스칼은 다시 성장을 시작하는 데 이는 나치 치하에서 어떠한 정치적 책임감이나 역사의식도 지니지 못하던 소시민 계층이 그 '세 살배기 수준'을 벗어나 이제 비로소 정상성을 향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의 잭임의식 일깨워
침략과 야만의 시대가 지난 후 오스칼과 그의 동시대인들의 삶에는 평온이 찾아온다. 그러나 전후에도 오스칼의 키는 121cm에 멈추고 거기다가 등에 혹까지 붙은 불구자가 된다. 이는 전후 서독사회가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통해 과거를 극복하려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지우려고 함으로써 과거청산에 실패했음을 암시한다. 오스칼의 신체적 불구는 역사의 상처로 계속 남게 된다. 이는 심각한 동요를 겪은 독일사회의 반영으로 사회적 병이 개인의 병으로 전이된 것이다. 그의 병은 과거를 기피하려는 전후 서독사회의 병인 것이다. 나치의 붕괴와 함께 오스칼의 공격적 자질이었던 북과 유리파괴의 목소리는 사라진다. 그는 전후의 새로운 사회에서 성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그러나 오스칼은 위에서 언급한 반역사적 사회풍조에 반항하여 다시 북을 두드리는데, 이번에는 오스칼의 공격적인 자질의 상징이었던 북이 새로운 역할, 즉 독일인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독일의 소시민들이 나치즘을 받아들이고, 전후 과거를 기피하려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일 때 오스칼만이 주변세계와 개개의 사건을 똑바로 바라보는 눈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오스칼을 통해서 자발적으로 나치의 토대가 된 소시민 게층의 부패한 모습과 정치적 무의식을 고발하고, 다른 한편으로 과거의 죄악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려는 전후 독일사회의 몰역사적기회주의적 태도에 저항하려 했다. 이런 의미에서 '양철북'은 20세기 전반기의 독일 소시민 계층의 몰락과정을 형상화한 '소시민 계층의 만가'이며 나치의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전후 사회에 대한 '비탄의 노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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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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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결혼의 위험
어느 날 남편이 자기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친구 한 명과 같이 집으로 저녁 식사하러 가려고 하오."
부인이 소리지르며 말했다.
"바보 같은 양반,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요. 요리사는 가 버렸고, 아이는 이빨이 나는 중이고, 나는 3일 동안 열이 있단 말이에요."
그 남자가 조용히 대답했다.
"나도 잘 알고 있소. 그래서 내가 이 친구를 집에 데려 가려고 하는 거요. 이 바보가 결혼할 생각을 하고 있거든."
- 삶 전체가 하나의 제도가 되었으며 거기에서는 사랑이 아닌 의무가 완수되어져야 하고, 자연스럽게 있지 못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며, 삶과 에너지가 넘쳐흐르지 못하고 어떤 규범을 따라야 한다. 그래서 마음은 생각을 통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가
중국의 어떤 마을에 큰 식당이 하나 있었다. 그 마을에서 가장 크고 가장 호화스러운 식당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식당 옆에는 어떤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그 식당의 음식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사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음식 냄새, 그 향기... 그는 점심이나 저녁을 먹을 때면 의자를 집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가능한 한 식당 쪽으로 가까이 갔다. 그리고는 거기 앉아서 킁킁거리며 그 식당에서 나오는 냄새를 맡으며 식사를 했다. 그는 그것을 즐겼다. 그는 작은 세탁소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놀랄 만한 일이 생겼다. 그 식당의 주인이 음식 냄새에 대한 청구서를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그 가난한 사람은 자기 집안으로 달려들어가 작은 금고를 가지고 와서 식당 주인의 귀에 대고 흔들며 말했다.
"나는 이렇게 돈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당신의 음식 냄새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소."
- 마음은 단지 냄새와 소리일 뿐, 진실한 것이 아니다. 그대가 무엇을 하든. 그것은 모든 오류의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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