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편지】: 제747호
단기 4343 / 서기 2010. 5. 9 (음력 3. 26)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한자가 「 ? 」 로 표시되어 보이지 않는 경우 누리집에 오시면 어떤 한자인지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
문예소식 |
|
|
계간 『창비어린이』는 창간 7주년을 맞아 우리 아동청소년문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역량있는 신예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신인상을 제정 운영합니다. 패기있고 개성있는 신인들의 많은 관심과 응모를 바랍니다.
모집부문 |
- 동시 부문: 5편 - 동화 부문: 원고지 기준 30매 내외 1편 - 청소년소설 부문: 원고지 기준 60매 내외 1편 - 아동청소년문학 평론 부문: 원고지 기준 60매 내외 1편 * 기존의 ‘창비어린이 신인평론상’은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으로 통합됨. |
응모자격 |
미등단 혹은 등단 후 작품집을 출간하지 않은 신인 |
상금 |
부문별 200만원 |
마감 |
2010년 6월 30일 |
보낼 곳 |
우편으로만 받으며, 마감일 발송분까지 유효합니다. 413-756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513-11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담당자 앞 |
발표 |
『창비어린이』 가을호(2010년 9월 1일 발행) |
기타 |
1. 우편으로만 받습니다. 2. 응모시 겉봉에 응모분야를 꼭 써주십시오. 3. 원고 첫장에만 성명,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주소와 작품 제목을 적어주십시오. 4. 다른 지면이나 인터넷 상 등에 발표하지 않은 작품이어야 하며, 원고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5. A4용지에 출력해서 보내주십시오. |
|
|
|
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
|
노령에 활기를 주는 진정한 방법은, 마음의 청춘을 연장하는 것이다.(콜린즈)
|
|
|
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
|
‘꾹돈’과 ‘모대기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에는 뇌물이라는 것이 꼭 있는 모양이다. 뇌물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만이 아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부정적인 것이라 남몰래 살짝 건네기 때문이다. 북녘에는 ‘꾹돈’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꾹 찔러주는 돈’이라는 뜻으로 ‘남에게 뢰물로 주는 돈’을 형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 말을 듣자 홍일천은 이놈이 나한테서 요구하는 것이 지도로구나 하고 넘겨짚으며 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다. 10여년 전엔 프랑스 선교사가 꾹돈을 찔러주며 부탁했는데 오늘은 또 미국 선교사까지 한몫 보려 드니 이보다 더 좋은 장사가 또 어디 있겠는가!”(<김정호>, 강학태, 문예출판사, 1987년, 311쪽)와 같은 예문을 찾을 수 있다.
북녘말 가운데에는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모대기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괴롭거나 안타깝거나 하여)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움직이다”의 뜻이다. 그 예문으로는 “참된 사람, 참된 삶, 참된 사랑, 내가 동경·상해로 떠돌아다니며 몸부림 속에 탐구하던 그 모든 것이 김성주 동무의 말 속에 집약되여 있었다. 사흘을 모대기다가 나는 짐을 꾸려서 신안툰으로 갔다. 3편의 시와 함께 낡은 원고들을 불사르고 새 노트를 장만하였다.”(<대지는 푸르다>, 4·15 문학창작단, 문예출판사, 1981년, 63쪽)와 같은 것이 있다.
전수태/전 고려대 전문교수
아줌마
결혼한 여성을 허물없이 호칭 또는 지칭하는 말 아줌마. 이 말에는 염치는 물론 예의도 별로 없고, 촌스럽고 교양도 없다는 부정적 의미가 덧씌워져 있다. 그래서 가려 쓰게 된다. 아줌마는 아주머니를 달리 부르는 말이었다. 상대가 말하는 사람과 특별한 관계가 없고, 마땅하게 부르거나 가리키는 말이 없을 때 쓴다.
시옷불규칙활용
‘짓다’는 ‘짓고, 지어, 지으니, 짓는’ 등으로 활용한다. 어간 ‘짓’에 붙는 어미들은 상황에 따라 바뀌며 각기 새로운 문법적 구실을 한다. 이 과정에서 ‘짓’에 불규칙한 변화가 생긴다.‘짓’의 끝소리 ‘ㅅ’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탈락한다. 이를 시옷불규칙활용이라고 한다.‘뒤잇다’는 ‘뒤이어’,‘젓다’는 ‘저어’로 바뀐다.
애끓다, 애끊다
6월 13일 밤 전국은 월드컵 열기에 휩싸였다. 이날 벌어진 경기에서 한국은 토고에 먼저 한 골을 내줬다. 그러나 '애끓는' 마음을 모은 국민의 응원이 통했는지 후반 총공세 끝에 한국 팀은 이천수 선수의 절묘한 프리킥 골에 이어 안정환 선수가 추가 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거뒀다. 역전승이라 기쁨은 두 배였다.
'애끓다'와 '애끊다'는 많이 쓰이지만 자주 혼동되는 낱말들이다. 창자를 뜻하는 옛말이 '애'란 점을 생각하면 구분이 쉬울 것이다. '애끓다'는 '몹시 답답하거나 안타까워 속이 끓는 듯하다'라는 뜻으로 '애타다'로 바꿔 쓸 수 있다. '애끊다'는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 듯하다'라는 뜻이다. 토고전 전반이 우리에게 '애끓는' 경기였다면 후반은 토고 국민에게 '애끊는' 경기가 됐음 직하다.
뽀개기
요즘 인터넷 동호회 이름이나 책 이름으로 '취업 뽀개기' '수능 뽀개기' '토익 900 뽀개기'와 같이 '○○ 뽀개기'란 이름이 유행이다. '뽀개기'는 어려운 취업이나 입시 상황을 과감하고 힘차게 헤쳐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뽀개다'가 비표준어이므로 '뽀개기'로 쓰는 것은 옳지 않다. 표준어인'빠개다'나 '뻐개다'를 활용해 '빠개기' '뻐개기'등으로 쓰는 게 바르다.
'빠개다'는 "장작을 빠개 아궁이에 던졌다"에서처럼 작고 단단한 물건을 두 쪽으로 가른다는 의미로 쓰이거나, "굴 껍데기를 빠개고 굴을 빼내는 솜씨가 일품이다"에서처럼 작고 단단한 물건의 틈을 넓게 벌린다는 의미로 쓰인다. 또 "계를 빠개다" "다 된 흥정을 빠개다"와 같이 거의 다 된 일을 어긋나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빠개다'가 작고 단단한 물건을 가르는 것인 데 비해 '뻐개다'는 "집채 같은 물결이 뱃전을 뻐갤 듯이 후려쳤다"에서처럼 크고 딴딴한 물건을 둘 이상으로 가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장작을 반으로 쪼개다"에서 보듯 둘 이상으로 나눈다는 의미로는 '빠개다' '뻐개다' 대신 '쪼개다'를 써도 좋다.
|
|
|
문학나눔 → 우리나라 |
|
|
이제 닫을 시간 - 이경림
나를 닫고 너를 닫고 고통도 닫고 고통 위에 짙푸른 억새들도 닫고 해질녘 미친 듯한 시장기도 닫고 일생 문밖에서 서성거리던 발소리도 닫고 돌아서자, 돌아서 뚜벅 저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가자 사방 치맛자락 붙드는 빈집들 돌아보지 말자 저 초경 같은 이야기들도 돌아보지 말자 생은 천천히 마시는 술 같은 것 돌아볼수록 발목 잡히는 것
너와 나를 닫고 나니 문득 보인다 고통이 얼마나 짙푸른 두엄이었는지 그 꼭대기 사철 푸른 억새는 얼마나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는지 절망의 자물쇠는 얼마나 완강한지 시장기에 지친 것들이 왜 자꾸 늪 쪽으로 걸어가는지
이제 돌아서자 닫힌 문들을 업고 아우성치는 골목을 돌아 미친 듯 붉은 시장기를 지나 가자 캄캄한 골목 끝 깎아지른 벼랑으로 흑장미 같은 어둠들이 툭툭 피어오르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바위처럼 뚜렷한 버려진 시들이 움찔움찔 피어나는 버섯 같은 꿈들이 튼튼한 지붕을 이루는 그곳으로
|
|
문학나눔 → 현대시조 |
|
|
저녁강물은(6) - 전성렬
망각보다 더 아픈 깊은 잠이 또 있을까
나울치는 물결 사이 외로 뜨는 별 몇 이랑
잊혀진 얼굴을 찾아 밤을 새워 걷잔다.
바람이 몰켜 오면 조용히 눈을 감고
흔들림을 거부하며 외로움을 삼키다가
뫼, 들이 이슬에 젖는 밤을 앉아 우잔다.
|
|
|
|
문학나눔 → 이글저글 |
|
|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이야기 - 김형균 엮음
1. 신비한 세계로의 여행
우는 소년 그림
1985년 10월
"저것 좀 봐요 !"
구경꾼들이 잔뜩 모인 곳은 바로 영국인 런홀 씨의 집이었다. 런홀 씨네 집에 갑자기 불이 난 것이다. 런 홀 부인은 퉁퉁 부은 얼굴로 떨고 서 있었다. 텔레비전 뉴스 기자가 런홀 부인에게 인터뷰를 청했지만 런홀 부인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런홀 씨가 침착하게 기자에게 말했다.
"제가 대신 하겟습니다." 기자가 승낙을 했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이번 화재가 왜 발생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6개월 전에 그림을 하나 샀습니다. 그 그림은 원래 이탈리아 화가가 그린 것인데, 제가 산 것은 다른 화가가 똑같이 베껴 그린 것이었지요. 그 그림 때문에 우리집에 불이 난 것입니다." "그 그림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그 그림은 '우는 소년'그림인데,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의 소년입니다. 아내는 그 그림을 보자마자 기분 나쁜 그림이라고 싫어했습니다. 진짜로 살아있는 아이같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만 거실에서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서늘한 기가 느껴져서 벌떡일어났지요. 내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뻣뻣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분명히 고리를 채웠는데 말입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눈을 부비고 일어서서 창문 족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때였어요. 창문 옆 벽에 걸어둔 그림 속의 아이가 날 쳐다보면서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뒤로 나자바졌지요." 기자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물었다. "런홀 씨,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그 그림을 그냥 두셨습니까?" "아니지요, 몇번이나 그림을 버리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버리려고 할 때마다 그림이 내 손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버리면 더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아 그냥 놔두었지요." 기자가 런홀 씨에게 물었다. "그럼, 그 그림을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런홀 씨는 두 손을 깍지끼며 똑똑히 말했다. "먼 시골에 있는 골동품가게에 보낼 겁니다."
그렇게해서 그 그림을 골동품가게로 보내졌다. 골동품가게 옆집은 산드라 클라스케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산드라 씨는 한 달 전에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고 슬픔에 빠져 있었다. 산드라 씨는 골동품가게에 우연히 들렀다가'우는 소년'그림을 보게 되었다. 산드라 씨는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그 소년이 죽은 아들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들을 닮았군. 그 녀석이 살아 있었다면."
산드라 씨는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는 그 그림을 샀다. 산드라 씨 그 그림을 자기 집에서 가장 잘 눈에 뜨이는 곳에 걸어 두었다.그리고 아침저녁으로 그 그림을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요녀석, 또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냐?"
그러던 어느 날, 산드라 씨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림속의 소년이 나타나서 산드라 씨 발 밑에 엎드려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빨리 이집에서 나가세요. 이집에 불이 날거예요. 빨리가세요. 빨리요." 잠에서 깬 산드라 시는 '설마'하고 생각했다. "별 이상한 꿈도 다 있군."
그러나 일은 그날 오후에 벌어졌다. 느닷없이 커튼에 불이 붙더니 활활 타올랐다. 불길은 금세 여기저기에 번지기 시작했다. 산드라 씨는 겨우 집에서 빠져나왔다. 산드라 씨 집은 하나도 남은 것 없이 몽땅 타버렸다. 그러나 단 하나, 불에 그을린 흔적조차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우는 소년'그림이었다. 산드라 씨의 부인은 산드라 씨에게 말했다.
"저 그림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거예요. 저 그림을 당장 태워버려야겠어요." 산드라 씨가 부인을 잡고 말했다. "절대 그 그림을 태워선 안돼!"
그러나 부인은 막무가내였다. 부인은 액자에서 그림을 듣어 냈다. 그리고 그림에 막 불이 붙이려는 찰나, 부인은 비명을 지르고서 정신을 잃었다. 산드라 씨가 그림을 주워올렸다. 그림을 본 산드라 씨가 신음 소리를 냈다.
"으음... 이럴수가."
그림 속의 소년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그 그림을 돌아가며 보고는 모두 한마디씩했다.
"저 그림은 악마가 씌웠어. 빨리 없애버려야 해." "큰일날 소리 말아요. 그러면 무서운 저주를 받을지도 몰라요."
산드라 씨는 부들부들 손을 덜며 그림을 다시 액자에 끼워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터덜터덜 골동품가게로 갔다. 그 그림은 산드라 씨가 골동품가게에 돌려준 1시간 뒤에 누군가가 사갖다고 한다. 이상하고 소름끼치는 '우는 소년'그림! 그 그림은 지금도 어느 집 벽에 걸려 눈을 번쩍거리며 '이집을 오늘밤 태워버릴까'하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
|
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
|
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펌프
사막을 지나던 한 여행자가 몹시 목이 말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길가에 펌프가 하나 있었다. 알다시피 펌프는 그냥 두면 물이 밑으로 빠지기 때문에 물을 퍼올리려면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을 펌프에 부어야 한다. 목이 마른 여행자는 무척 반가와서 펌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펌프 손잡이에 종이 쪽지가 매달려 있었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부탁의 말씀.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몇 년이 흘러야 한두 명씩 이 곳을 지나갑니다. 펌프는 제대로 작동이 되지만 몇 년 동안 아무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물을 퍼올리려면 먼저 펌프에 물을 부어야 합니다. 물 한 병을 건너편 바위 밑에 숨겨 놓았습니다. 그 물을 마셔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마신다면 펌프를 작동시키기에는 물이 부족하게 됩니다. 이 말을 믿어주십시오. 그 물을 전부 붓는다면 틀림없이 펌프가 물을 퍼올릴 것입니다. 그때는 당신이 원하는 만큼 충분한 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당신이 떠나기 전에 반드시 도로 그 물병에 물을 가득 채워 그 바위 밑에 갖다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다음 사람이 펌프를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물병을 도로 채워서 바위 밑 원래 자리에 숨겨 놓으십시오
그 쪽지에는 서명까지 되어 있었다. 무려 이십년 전의... 그 남자는 흰 바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과연 그곳에는 물병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그 펌프에 써 있는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여행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만일 그 글을 써 놓은 사람이 미친 사람이라면? 혹은 누가 장난을 친 것인지도 모른다. 물을 부었는데도 펌프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물만 낭비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지금은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 아닌가?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누가 아는가?
- 이것은 대단한 모험이다. 무턱대고 믿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그 글을 써 놓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이며, 서명을 해 놓긴 했지만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따랐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고 신뢰이다. |
|
|
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
|
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6장 내 마음의 향기
용서
먼저 용서하라. 먼저 용서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용서가 늦으면 승리는 상대에게 넘겨진다. 용서하라. 용서함으로써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증오심과 복수심, 원한을 깨끗이 씻어 내라. 용서는 큰 사랑의 실현이다. 용서의 뒤끝이 훈훈하고 아름다운 것은 큰 사랑의 힘이요, 큰 사랑의 관용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이 도리어 그 해를 입는다. 증오심과 복수심에 의해 따뜻한 인간애가 모두 죽어서 차디찬 사람, 매정한 사람이 되고 만다. 용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용서해야 한다. 용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속 좁은 자존심에 얽매여 용서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자신이 용서받아야 한다. 먼저 용서하는 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잘잘못이 누구에게 있든 먼저 큰 사랑을 베풀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는 사실로써 이미 승리한 것이다. 주먹을 쥐고 살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사는 데는 쥐어진 손(응어리진 마음)보다는 반듯하게 펴진 손(열린 마음)이 진정올 필요하다. 반듯하게 펴진 손이어야 만나는 이들과 악수도 나눌 수 있고, 잘하는 이들에게 박수도 쳐 줄 수 있으며, 실의에 빠져 있는 이들을 쓰다듬어 줄 수도 있고, 상처로 괴로워하고 있는 이들을 다독거려 줄 수도 있게 된다.
복
타인에게 피해 입히지 마라. 그것이 복을 받는 일이다. 타인으로부터 손가락질 받지 않으니 그것이 복이요, 타인으로부터 원한 사지 않으니 그것이 복이다. 나로 인하여 타인에게 피해 입히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사람이 되지는 못할망정 잘 타고 있는 촛불을 꺼뜨리는 바람과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타인에게 피해 입힌 대가는 별로 돌아올 뿐 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내 욕심 내 속셈 차리려고 타인을 가슴 아프게 하면 그만큼의 대가를 돌려받는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내 눈에서는 피눈물 난다'는 말처럼, 내가 행하는 선악의 업보는 반드시 남아 살아서 받지 않으면 죽어서라도 받게 된다. 내 대에서 받지 않으면 자식의 대에서 받게 되고 자식의 대에서도 받지 않으면 손자 대에서라도 받게 된다. 살아 있는 동안 복받을 일(선행)을 많이 쌓아 놓아야 한다. 사람이 죽었을 때 남는 것은 그것뿐이다. 일류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도 돈이 많았었다는 사실도 죽으면 허무하게 잊혀진다. 사람은 은혜를 베풀어 놓으면 알게 모르게 그 대가를 거둬들인다. 웃는 낯으로 은혜를 안겨 주면 상대방도 언젠가는 웃는 낯으로 그 공을 돌려준다. 그래서 세상에는 손해보는 베풂은 없는 것이다. |
|
문학자료 → 수필 |
|
|
아웃사이더를 위하여 - 김규항·김정란·진중권·홍세화
김규항 에세이
에덴의 왼쪽
전세계 영화인들의 저주와 전세계 영화팬들의 찬미를 먹고사는 20세기의 에덴 동산, 할리우드의 연례 재롱잔치. 오스카 수상식은 보는 사람의 오감을 사로잡는 마력이 잇다. 그것은 그 자체로 모든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온갖 컨벤션들을 화사하게 배열한 최고급 종합선물이다. 오스카 수상식은 서너 시간 넘어 하기 때문에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 버릇을 가진 나는 챙겨보지 않아도 해마다 보게 된다. 그리고 매번 쇼가 무르익을수록 볼거리가 쌓여갈수록 불편함도 같이 쌓여 간다. 자본주의를 거부하기로 한 내가 자본주의의 꽃을 감상하고 있기 때문이며, 전세계 피압박 영화를 지지하기로 한 내가 가해 영화의 자축연에 참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스카는 자족적인 불편함에 기대어 구경을 지속하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메뉴까지 준바한다. 올해의 메뉴는 엘리아 카잔의 공로상 수상. 알다시피, 엘리아 카잔은 빨갱이 사냥이 극에 달한 1952년, 이른바 하원 반미행동조사위원회에 나가 자신이 좌파임을 시인하고 동료 8명을 밀고 했다. 카잔은 54년 <워터프론트>로 오스카 감독상을 받는 등, 영화와 연극을 넘나들며 활동을 계속했지만 '밀고자'로 손가락질 받아 왔다. 그를 불리한 처지로 몰아넣은 건 그 자신이었다. 카잔은 52년 하원 증언을 마친 직후 '공산주의는 위험천만한 적들의 음모'라는 광고를<뉴욕 타임스>에 싣는가 하면, 88년 발간한 회고록에선 "그런 기회가 또 다시 오더라도 똑같이 명예로운 행동을 하겠다"고 밝히는 배 째라 식의 행태를 보여왔다.
72년, 좌파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쫓겨나 20년 동안 망명생화을 해오던 찰리 채플린이 '영화를 20세기의 예수이게 한 공적'으로 오스카 공로상을 받았다. 채플린의 공적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그 상은 할리우드가 매카니즘의 피해자에게 정중하게 용서를 구하는 절차이기도 했다. 영화 <채플린>에 묘사된 대로, 채플린이 83세의 노구를 끌고 입장하자 할리우드 영화인들은 열광적인 기립 박수를 보냈고 채플린은 눈물을 흘렸다. 오스카가 FBI에 의뢰해서 좌석을 배분을 한 걸까. 카잔이 입장했을 때, 객석의 오른쪽은 거의가 기립했지만 왼쪽은 팔짱을 끼고 있거나 박수치지 않았다. 머리가 비었을 거라 여겨지던 할리우드 영화인들의 만만치 않은 사회의식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일이었고, 역사 속에서 '이미 확보된 이성'이 '우상이 남긴 상처'를 지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카잔은 "아카데미의 용기와 관용에 감사한다"는 짤막한 인사말을 하고 서둘러 퇴장했다.
<조선일보>는 그 일을 두 번 언급했다. "엊그제 열린 7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엘리아 카잔 감독이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매카사 광풍에 의해 채플린이 추방된 1952년, 카잔 감독은 자신의 동료였던 공산당원들의 이름을 의회 청문회에 밝혀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카잔의 원죄는 '마녀(공산주의자)사냥'이 극에 달했던 52년,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동료 영화인 8명을 밀고한 것."
도무지 <한계례>와 구분할 수 없는 이 공평무사한 표현은 <조선일보>와 그들의 보수 사상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들은 왜 52년 미국의 매카시즘을 '광풍'이며 '마녀사냥'이라고 하면서, 오늘 한국의 '광풍'과 '마녀사냥'을 요구하는 걸까. 그것은 그들의 보수사상이 세상을 판단하는 신념체계가 아니라, 가진 것을 내놓지 않으려는, 혹은 더 많이 가지려는 동물적인 욕망 체계이기 때문이다. 52년 미국의 매카시즘은 내 돈궤하고 아무 상관이 없지만, 오늘 한국의 매카시즘은 내 돈궤를 보존하거나 늘리는 일인 것이다. 새삼스런 얘기지만, 보수사상이 진보사상과 대립한다 해서 보수 사상을 진보 사상과 같은 층위에 놓는 일은 터무니없다. 적어도 한국에서 보수 사상은 순수한, 매우 순수한 욕망이다. (99년 4월) |
|
|
문학자료 → 동서양고전 |
|
|
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스물한 가지 위변 - 천하
알에 털이 있다. 닭은 발이 세 개다. 영에 천하가 있다. 개를 양이라 할 수 있다. 말은 알을 낳는다. 개구리는 꼬리가 있다. 불은 열이 없다. 산은 입에서 나온다. 수레바퀴는 땅에 닿지 않는다. 눈은 보지 않는다. 손가락은 닿지 않고, 닿으면 안 떨어진다. 거북은 뱀보다 길다. 곡척으로 모를 그릴 수 없고, 그림쇠로 원을 그릴 수 없다. 구멍은 자루에 맞지 않는다. 나는 새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화살에는 정지된 시간이 있다. 구는 견이 아니다. 누런 말과 검은 소는 셋이다. 흰 개는 검다. 어미 없는 망아지는 어미가 있은 적이 없다. 한 자짜리 지팡이를 하루에 반씩 자르면 만세가 지나도 다 잘라낼 수가 없다.
변자들은 이를 혜시와 서로 주고받으며 종신토록 그칠 줄을 몰랐다. 환단*이나 공손용도 변자의 무리로서, 사람의 마을을 꾸미고 사람의 뜻을 바꾸어놓았다. 사람의 입은 이길 수 있으나 사람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는 없으니, 이것이 곧 변자의 한계이다. 혜시도 날마다 그 지혜로써 이들과 변론했으나, 특별히 천하의 변자들과 더불어 괴상한 짓을 한 데 불과했다. 이것이 그 개략이다.
************************************************************************************
혜시를 비롯한 여러 논리학자들의 궤변에 이런 것이 있다.
알에 털이 있다. 시간이란 본래 무한하다는 입장에서 볼 때 알에서 새가 되기까지의 시간은 무시된 것이다. 닭은 발이 셋 있다. 인식은 대상과 개념에 의해 성립되게 마련이다. '닭의 발'이라는 단독 개념 하나와 구체적 대상인 발 둘을 합해 닭의 발은 셋이 된다. 영(초나라의 서울)에 천하가 있다. 무한한 공간에서는 천하 역시 무와 같으니, 따라서 천하는 영에 있다. 개는 양이다. 개와 양은 모두 네 발 달린 짐승이기 때문이다. 말은 알을 낳는다. 태생 동물인 말이나 난생 동물인 새나 다 같이 동물이다. 개구리는 꼬리가 있다. 올챙이에 꼬리가 있기 때문이다. 불은 열이 없다. 불이 뜨겁다는 것은 인간이 느끼는 것일 뿐, 불 자체의 성질은 아니다.
산은 입에서 나온다. 산은 거대하지만, 그 이름은 입으로 말할 수 있다. 수레바퀴는 땅에 닿지 않는다. 달리는 수레바퀴와 땅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눈은 보지 않는다. 대상이 있기에 볼 뿐, 단독으로 볼 수는 없다. 손가락은 닿지 않고 닿으면 안 떨어진다. 손가락이 어떤 물건에 완전히 닿았다면 그 순간 떨어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거북은 뱀보다 길다. 무한한 공간에서는 뱀도 짧은 것이다. 곡척으로 모를 그릴 수 없고, 그림쇠로 원을 그릴 수 없다. 절대적인 의미의 사각형이나 원은 있을 수 없다. 구멍은 자루에 맞지 않는다. 조금의 차이라도 있게 마련이다. 나는 새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은 무한히 쪼갤 수 있으며, 새의 그림자 역시 그 쪼개진 시간시간마다 정지된 상태이다. 나의 화살에는 정지된 시간이 있다. 화살이 나는 거리는 쪼개지며, 또 그대로 볼 수도 있다. 구는 견이 아니다. 용어가 다르다. 누런 말과 검은 소는 셋이다. 누런 말과 검은 소는 같은 동물로서 한 개념을 이루므로 한데 합치면 셋이 된다. 흰 개는 검다. 흰 빛과 검은 빛은 다르지만 빛깔인 점에서는 같다. 어미 없는 망아지는 어미가 있은 적이 없다. 시간을 쪼개서 현재만 생각한 것이고, 또 '어미 잃은 망아지'와 '망아지'는 그 용어가 다르다. 한 자짜리 지팡이를 하루에 반씩 잘라내면 영구히 해도 다 잘라낼 수 없다. 무한소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학자들은 혜시와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끝낼 줄울 몰랐다. 환단과 공손용 같은 궤변론자들은 이런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꾸미고 경박하게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론으로 남을 제압할 수는 있었지만, 마음으로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혜시 또한 자기의 지혜를 다해 이들과 논쟁했으나 천하의 궤변론자들과 마찬가지로 괴상한 이론을 판해 성립되게 마련이다.
|
|
|
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
|
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멋진 꿈
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꿈을 꾸었는데, 아! 정말 멋진 꿈이었어. 코니 아일랜드에 갔는데, 오, 그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맛있는 저녁... 나는 여태껏 그처럼 맛있는 것은 먹어 보지 못했어."
친구가 말했다.
"웃기지 마, 그게 멋진 꿈이라고? 어제 저녁 나도 꿈을 꾸었는데 한쪽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마릴린 몬로가 있었는데 둘 다 나체였단 말야."
그러자 상대방이 화를 내면서 말했다.
"그러면 왜 나를 부르지 않았나?"
친구가 말했다.
"자네 부인이 그러더군. 자네는 이미 코니 아일랜드로 떠났다고."
- 꿈속에서조차 마음은 계속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대는 다른 사람의 꿈에 대해서조차 질투를 한다.
|
|
|
|
|
바탕화면 |
|
|
|
『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