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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42호
단기 4343. 4. 30 (음력 3. 17)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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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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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복숭아문학상 공모
이천 장호원의 [세계 일등 복숭아-황도]를 널리 알리고자 청미문학회(회장ㆍ박승열)가 주관하는 제5회 복숭아문학상 공모에 많은 분들의 응모를 바랍니다.
● 공모 장르 : 복숭아를 주제로 한 시, 수필(15매 내외) ● 응모 자격 : 누구나(16세 이상) ● 시상 - 대상 1편: 상금 100만원ㆍ상패 - 최우수상 2편: 상금 30만원ㆍ상패(장르별 각 1편) - 우 수 상 4편: 황도 1박스ㆍ상패(장르별 각 2편) ● 심사 : 심사위원은 추후에 발표 ● 마감 : 2010년 8월 20일 ● 발표 : 2010년 9월 1일 청미문학회 홈페이지 ● 원고 접수 및 기타 1. 응모작은 청미문학회 홈페이지(cmpen.co.kr)에서 온라인으로만 접수합니다. 2. 기 발표된 원고는 입상작에서 제외합니다. 3. 입상작은 복숭아축제(9월17~19일) 때 시화로 제작 전시합니다. ● 문의 : 016-346-0695
후원ㆍ이천시청, 경기동부과수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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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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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거의 모든 삶이 어리석은 호기심에 낭비되고 있다.(보들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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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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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치미 개겁구마!
‘엄치미 개겁구마!’는 ‘엄청나게 가볍구먼!’이라는 뜻인데, 여기에서 ‘개겁다’는 고장말 ‘하깝다/허껍다/해깝다’와 함께 표준어 ‘가볍다’에 대응한다. ‘개겁다’는 ‘가볍다’가 ‘가볍다>가겹다>개겹다>개겁다’와 같은 소리의 변화를 겪은 고장말로, 주로 경상도와 함경도, 그와 인접한 지역에서 쓰는 말이다. “소화가 나와 장구를 왼손으로 살짝 들고 징채로 가겹게 두들기며 가락을 시작했다.”(<태백산맥> 조정래) “무겁아 가 다 가 가도(가지고 가도) 못할 긴데 우짤라 주는고 싶어서 들어보이 엄청 개겁운 기라.”(<한국구비문학대계> 경북편) 고장말에서 ‘ㅂ>ㄱ’과 같은 변화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표준어 ‘재봉틀’에 대응하는 고장말 ‘자봉침’의 ‘자봉침>자공침~자광침’과 같은 변화가 한 예이다. 표준어의 ‘가볍다, 밉다’ 등은 ‘가벼워서, 미워서’와 같이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가 연결되면 ‘가벼우’(가벼우-+-어서>가벼워서)와 같이 단어의 꼴이 바뀌지만, ‘개겁다’는 ‘개겁어서’와 같이 단어의 꼴이 바뀌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경상도와 함경도 고장말의 주된 특징 중의 하나이다.
‘개겁다’의 또다른 형태로는 ‘개갑다, 개굽다’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또한 ‘가볍다’가 소리의 변화를 겪은 고장말이다. “그러며 계섬이는 우길의 목줄기를 개갑게 싸쥐고 얼굴만 무섭게 씨루며(씨루다: 힘겨운 일을 이루기 위하여 애쓰다) 우길일 뒤흔들어 주다가 덥석 들어서 업었다.”(<탑> 한설야)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통장을 부르다’와 ‘시끄럽다’
어떤 어려운 일을 성취한 경우 우리는 이를 널리 알리고 싶어 한다. 이때 북녘에서 쓰는 말 가운데 ‘통장을 부르다’라는 생소한 말이 있다. 북녘의 사전에서는 이 말을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성과를 이룩하고 그것을 보란 듯이 큰소리로 공포하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로다. 마지막 싸움이 될 이번 울돌목 해전은 벌써 통장을 부른 셈이나 다름없도다. 백성들이 이처럼 돕고 있으니 싸움하기 전에 이미 승패는 정해졌노라.”(<리순신 장군>, 김현구, 문예출판사, 1990년, 506쪽)와 같은 예가 있다.
‘시끄럽다’는 말은 북녘에서 “성가시도록 말썽이나 가탈이 많다”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소리 개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예를 들면 “가만 내버려두면 아낙네는 종일이라도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 가늠을 해 보니 10리나마 되는 명주촌에 들렸다가 돌재로 돌아가자면 날이 저물어 두만강 나루를 건너기 시끄러울 것 같았다. 오석하는 적당한 기회에 아낙네와 작별하고 걸음을 다우쳐 단숨에 명주촌에 들이댔다.”(<대지는 푸르다>, 4·15 문학창작단, 문예출판사, 1981년, 287쪽)와 같이 쓰인다. 이때 ‘들렸다가’와 ‘다우쳐’는 남녘 표현으로는 ‘들렀다가’와 ‘다그쳐’가 된다.
전수태/전 고려대 전문교수
곤욕과 곤혹
곤욕(困辱)은 심한 모욕이나 참기 힘든 일을 뜻한다. 어떤 일로 욕되거나 수치스러움을 당했을 때, 어렵거나 괴로움을 겪을 때 쓰인다.‘곤욕을 당하다/치르다/겪다’의 형태로 주로 사용된다.
곤혹(困惑)은 곤란한 일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의미를 지녔다.‘예기치 못한 질문에 곤혹스러웠다.’‘곤혹’은 ‘곤란한 일로 느끼는 감정’이다.
의존명사 ‘만’
‘만에’,‘만이다’ 형태로 쓰일 때는 경과한 시간을 나타낸다. 동안이 얼마간 계속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떠난 지 사흘 만에 돌아왔다.’‘3년 만이다.’ 동사의 어미 ‘-ㄹ’ 아래 쓰일 때는 앞말이 뜻하는 동작이나 행동이 가능함을 뜻한다.‘모르는 척 살 만도 한데.’ 타당한 이유가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듣고 보니 좋아할 만도 하다.’
진짜
"진짜 진짜 좋아해 너를 너를 좋아해." 예전에 널리 불리던 대중가요 '진짜 진짜 좋아해'의 노랫말 중 후렴 부분이다. 잊혀 가던 이 노래가 청와대를 소재로 한 TV 드라마의 제목이 되면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진짜 예쁘다, 진짜 진하다, 진짜 급하다, 진짜 심각하다, 진짜 부탁한다, 진짜 많다' 등 일상생활에서 '진짜'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어가 너무 자주 사용되다 보니 식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색시 볼 같은 연분홍 복사꽃이 진짜 예쁘다""비 온 뒤라 아까시나무 꽃향기가 진짜 진하게 퍼진다"를 예로 들어 보자. 여기서 '진짜'는 '가짜'의 반대말이 아니라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참으로'란 뜻의 부사 '진짜(로)'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그 의미를 전달하는 데 큰 무리는 없다.
그러나 이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나를 생각하면 아쉬운 점도 있다. '참(으로), 정말(로), 꽤, 무척, 매우' 등 '진짜'를 대신할 수 있는 말이 많이 있다. "새색시 볼 같은 연분홍 복사꽃이 참 곱다" "비 온 뒤라 아까시나무 꽃향기가 매우 강하게 퍼진다"처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단어를 골라 쓰면 우리말이 더 풍요롭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절이다, 저리다
다음 중 맞는 표현을 골라 보시오. 1. 요즘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지 다리가 자주 ㉠절인다/㉡저린다. 2. 배추를 소금에 적절히 ㉠절여야/㉡저려야 맛있는 김치를 담글 수 있다.
'절이다'와 '저리다'는 헷갈리기 쉬운 단어다. 각각 의미가 다르므로 주의해 써야 한다.
'절이다'는 푸성귀나 생선 따위에 소금기나 식초, 설탕 등이 배어들다는 의미의 '절다'에서 파생된 사동사다.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다" "오이를 식초에 절이다" "굽기 전에 생선을 미리 소금에 절여 놓다"와 같이 쓰인다.
'저리다'는 "벌을 받은 지 한 시간이 지나자 다리가 저려 왔다"에서처럼 뼈마디나 몸의 일부가 오래 눌려 피가 잘 통하지 못해 감각이 둔하고 아리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리움으로 가슴이 저려 왔다"에서와 같이 가슴이나 마음 따위가 못 견딜 정도로 아프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따라서 1번은 "요즘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지 다리가 자주 ㉡저린다"고 해야 하며, 2번은 "배추를 소금에 적절히 ㉠절여야 맛있는 김치를 담글 수 있다"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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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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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통에 넣을 편지가 없다 - 원재훈
한때 나는 편지에 모든 생을 담았다. 새가 날개를 가지듯 꽃이 향기를 품고 살아가듯 나무가 뿌리를 내리듯 별이 외로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에 내 생의 비밀을 적었다. 아이의 미소를, 여인의 체취를, 여행에 깨우침을, 우체통은 간이역이었다. 삶의 열차가 열정으로 출발한다. 나의 편지를 싣고 가는 작은 역이었다.
그래 그런 날들이 분명 있었다.
낙엽에 놀라 하늘을 본 어느 날이었다. 찬바람 몰려왔다 갑자기 거친 바람에 창문이 열리듯, 낙엽은 하늘을 듬성듬성 비어 놓았다. 그것은 상처였다. 언제부턴가 내 삶의 간이역에는 기차가 오지 않아 종착역이 되었다. 모두들 바삐 서둘러 떠나고 있다. 나의 우체통에는 낙엽만 쌓여 가고 하늘은 상처투성이의 어둠이었다. 밤엔 별들이 애써 하늘의 아픔을 가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서성거리는 나의 텅 빈 주머니에는 그대에게 보낼 편지가 없다. 분명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가고 있는데 분명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는데 그들의 주소를 알 수가 없다. 그들의 이름을 알 수가 없다. 그들의 마음을 볼 수가 없다.
우체통에 넣을 편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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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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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3) - 이혜옥
눈 푸른 독수리로 숲을 이운 영축산(靈蹙山) 비 내리면 새소리도 또또르륵 흐르는데 사미가 새벽 여는 길 즈려밟고 가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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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평론 /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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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 최재봉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 문익환의 `잠꼬대 아닌 잠꼬대'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이건 진담이라고//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가기로 결심했다구”.
문익환(1918~94) 목사가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한 것은 1989년 초였다. 그해가 저물기를 기다릴 것도 없었다. 그로부터 불과 두달여 뒤인 3월25일 그는 유원호·정경모씨와 함께 평양 땅을 밟는다. 시에서 밝힌 대로였다. 문 목사 일행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닷새 앞선 3월20일엔 작가 황석영씨가 역시 일본과 중국을 거쳐 북한에 들어갔다. 그해 6월27일엔 가톨릭 농민회 출신 서경원 의원이 이미 88년에 2박3일간 북한을 다녀온 사실이 뒤늦게 발표됐고, 서 의원 파문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 6월30일엔 한국 외국어대생 임수경씨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가히 북한행 러시라 할 만한 추세였다. 87년 대통령선거에서의 정권교체의 꿈은 후보단일화를 거부한 김대중·김영삼씨의 고집으로 무위로 돌아갔다. 선거라는 민주적 방식을 통해 재집권에 성공한 신군부는 88년 서울 올림픽을 차질 없이 치르면서 한층 안정적인 통치가도를 달리는 듯했다. 6월항쟁의 거대한 몸부림으로도 아무런 현실정치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민주세력은 바야흐로 실의와 낙담의늪으로 빠져들려는가 보았다. 87년 대선국면에서 김대중씨의 상대적 진보성을 근거로 이른바 비판적 지지(비지)의 입장에 섰던 문 목사가 평양행을 감행한 것은 이같은 민주화 운동 진영의 침체된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서였다. 물론 그것이 당장의 국면전환을 위한 수단만은 아니었다. 그의 평양행이 조국의 분단현실에 대한 오랜 고뇌와 각고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그가 그보다 10여년 전에 쓴 또다른 시 `꿈을 비는 마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개똥 같은 내일이야/꿈 아닌들 안 오리오마는/조개 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진주 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벗들이여!/이런 꿈은 어떻겠소?/155마일 휴전선을/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푸른 바다가 굽어보이는 산정에 다다라/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 땅 한 삽/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 땅 한 삽씩 떠서/합장을 지내는 꿈,/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비록 휴전선상에 남북 병사의 넋이 깃든 무덤을 만들고자 하는 꿈이 평양으로 가겠다는 잠꼬대로 바뀌었을지언정, 휴전선과 평양 사이의 거리, 꿈과 잠꼬대 사이의 거리란 근본적으로는 영에 가깝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어쨌든, 문 목사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갖고 허담 조국평화통일위원장과 연방제 통일 원칙 등 9개 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문 목사의 방북 기간이 열흘 정도였던 데 반해 황석영씨는 한 달 이상을 북한에 머물면서 김 주석은 물론 홍명희·박태원 등 월북작가들의 가족과도 만나는 등 다채로운 활동을 펼쳤다. 게다가 그는 93년 귀국하기 전까지 미국과 독일 등지에 머물면서 몇차례 더 북한을 방문했으며 그 결과를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기행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서경원 의원의 입북이 비밀리에 수행됐고 일찌감치 간첩사건으로 규정된 경우인 데 반해, 임수경씨의 방북은 전대협에 의해 공식 발표됐고 여론의 지지도 등에 업은 경우였다. 그는 방북 목적대로 평양축전 개막식에 참가했고, 축전 기간 중인 7월7일에는 북한 청년학생 대표와 함께 `남북청년학생공동선언문'을 채택, 발표했다. 그의 활동을 전하는 북한의 텔레비전 방송은 부분적으로나마 남쪽에서도 방영됐고, 여론은 그에게 `통일의 꽃'이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붙여 주었다. 특히 그의 구김살 없고 발랄하면서도 소신이 뚜렷한 언행은 북쪽 동포들에게 문화충격과도 같은 것을 주었다는 후문이다. 임씨는 그의 귀환길에 동행하고자 파견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문규현 신부와 함께 8월15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어옴으로써 자신의 방북 목적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문 목사 일행과 황석영씨, 서경원 의원, 임수경씨 등의 잇따른 방북은 단기적으로는 공안 합동수사부로 상징되는 공안정국을 불러오기도 했으나, 장기적으로는 민간 통일운동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문 목사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에서 말하고 있는 바 역사를 산 사람들이라 할 만했다.
“객쩍은 소리 하지 말라구/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 바꾸는 일이라구/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이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주장하는 일이라고”.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가 지난 93년 3월 출소한 문 목사는 그 뒤에도 `통일맞이 칠천만겨레모임'을 만드는 등 민간통일운동을 위해 애쓰다가 94년 1월18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결혼 50주년을 불과 다섯 달 남겨놓고서였다. 일제 말기의 암울한 시절부터 반백년 동안 그의 삶의 동반자 노릇을 해온 부인 박용길(77) 장로는 김일성 주석의 1주기를 앞둔 지난해 6월28일 남편의 뒤를 좇아 평양을 방문해 한 달 남짓을 북에 머무르다가 판문점을 통해 돌아왔다.
“우리 목사님도 돌아가시고, 김일성 주석도 갑자기 세상을 떠 버려 남북 정상회담도 일단은 허사가 되고 말았죠. 게다가 남쪽의 `조문파동' 여파로 남북관계는 갈수록 꽁꽁 어는 것만 같았습니다. 나라도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목사님의11년 옥살이를 나도 겪어보고 싶었습니다.”
판문점에서 박 장로를 체포한 당국은 그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던 임진각을 피해 포장도 안 된 시골길을 이리저리 달려서는 그를 경찰병원에 입원시켰다.
드문드문 눈발까지 날리는 평일 오후의 임진각은 비교적 한산했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시골 아주머니들과 두어 쌍의 젊은 연인들, 이따금씩 보이는 군복 차림의 휴가병들을 제하면 지긋한 연배의 노인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제각기 지니고 온 자동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붙박이 사진사 정성춘(50)씨가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25년째 임진각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정씨의 고향은 20리 밖 장단. 걸어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거리를 반세기가 가깝도록 되짚지 못하고 있다. 남가좌동의 집에서 매일 출퇴근을 한다는 그는 “올해 미수인 모친이 돌아가시기 전에 고향 땅을 밟아 보시는 것이 소원”이라면서 “남북관계가 갈수록 나빠지는 것을 봐서는 그 소원을 풀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던 70년대만 해도 이곳을 찾는 실향민도 많고 사진기도 별로 보급되지 않을 때여서 일할 만했죠. 세월이 갈수록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목포에서 신의주로 이어지는 1번국도는 임진각 자유의 다리 앞에서 문득 끊기고, 방향을 틀어 내려오는 길 양옆으로는 미군부대들이 호위하듯 늘어서 있다. 필경 서울 사람들의 분위기 있는 한 끼 식사를 위한 것일 식당들은 임진각 턱밑까지 치받치고 있는데, 끊어진 철길 위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문장이 자물쇠처럼 걸리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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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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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실체
두 절이 이웃해 있었는데, 두 절의 주지에게는 심부름을 하는 작은 소년이 하나씩있었다. 두 소년은 절에서 필요한 채소나 물픔 등을 시장에 가서 사오곤 하였다. 그런데 이 두 절은 서로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소년들은 역시 소년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관계를 잊어버리고 길에서 만나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놀곤 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도 금지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한쪽 절이 소년이 시장에서 돌아와 주지에게 말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늘 시장에 가다가 저쪽 절에 사는 소년을 만나게 되어 그에게 어디 가는 중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애가 바람부는 대로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의 대답이 저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그 절의 주지가 말했다.
<우리 절의 사람은 누구나, 설사 하인까지도 저쪽 절의 사람들에게 져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너도 그 아이에게 이겨야만 한다. 내일 만나거든 다시 어디 가는 중이냐고 물어봐라. 그 아이가 바람부는대로라고 대답하면 너는 바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니?하고 말하여라>
그 소년은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여러번 되새겼다. 그가 물어보고 상대편 소년이 대답하면 그때 그는 준비한 질문을 할 것이다. 다음날 그는 길에서 소년을 기다렸다. 마침내 소년을 만나, 그가 물었다.
<어디 가는 중이니?> 그 소년이 대답했다. <발 가는대로>
그는 다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의 대답은 고정되어 있었고 상대의 대답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매우 침울하게 돌아와서 주지에게 말했다.
<그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대답은 바뀌었고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자 주지가 말했다. <내일 그 아이가 발 가는 대로라고 말하면 너는 네가 절름발이가 되거나 발이 잘려지면 어떻게 할래?하고 물어라>
다시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일찌감치 나가서 길에서 그 소년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 소년이 왔을 떄 그가 말했다.
<어디 가는 중이니?> 그러자 그 소년이 대답했다. <시장에서 야채를 사오려고!>
그는 매우 혼란스러워져서 돌아와 주지에게 말했다.
<그에게는 도저히 안되겠어요. 그는 계속 바뀌고 있어요>
삶이란 그 소년과 같다. 실체는 고정된 현상이 아니다. 그대는 현재에 존재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그 안에... 오직 그대의 반응만이 실체와 부합할 수 있다. 만약 그대의 대답이 미리 고정되어 있다면 그대는 이미 죽은 것이며, 이미 놓친 것이다. 내일이 오면 그대는 내일을 맞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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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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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제1장 문학 안팎의 내 삶
술을 혼자 마시는 습관
나는 혼자서 술을 마시는 일이 많다. 집에서도 음악을 듣거나 비디오를 보면서 맥주나 위스키, 와인을 혼자서 홀짝홀짝 마시고, 혼자 밖에 나가서도 훌쩍 바 같은 데 들어가 두세 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나는 자폐증은 아니니까-일전에 3년 만에 업계의 파티에 참석했더니 모 여성 작가가 "어머나, 무라카미 씨도 파티에 다 나오시네요. 자폐증이 아니셨네" 하며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다른 사람과 함께 즐기며 술을 마시는 일도 있다. 그러나 횟수로 따져 보면 혼자서 마시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원래 친구가 그다지 않지 않은 데다 지방의 소도시에 살고 있는 탓도 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절대로 자폐증 같은 건 아니다. 내가 자폐증이라면 무라카미 류 씨는 자개증이다. 하긴 바에서 혼자 술을 마셔도 결코 필립 멀로우 라든가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처럼 딱 작정하고 조용히 앉아 분위기를 잡으며 마시는 건 아니고, 그저 멍청히 술을 마신다. 조용히 혼자서 술을 마시는 것과 멍청하게 혼자서 술을 마시는 건 한눈에 척 보기에도 상당히 다르다. 한신 타이거스를 놓고 얘기하자면 마유미와 오카다 선수 정도로 다르다. 같잖은 말도 하지 않고, 트렌치 코트 깃도 세우지 않고, 물끄러미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멍청하게 술을 마시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저쪽에서 쓸쓸한 눈으로 마티니를 마시고 계신 분께 내가 한잔내겠어요"라는 얘기를 해주는 여성도 나타나지 않는다(나타날 턱이 없지). 어째서 이런 식으로 멍하니 있는가 하면, 우선 내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의 시력 차가 몹시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상시 바깥 세계에 있을 때는 나는 양쪽 눈의 근육을 긴장시켜서 양쪽의 상을 인위적으로(물론 극히 자연스럽긴 하지만) 일치시킨다. 그러나 술집에 들어가 혼자서 술을 마시거나 할 때는 그 근육을 이완시켜서, 말하자면 '오카다 현상'이 생겨 얼굴 전체가 멍청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집사람한테 "당신은 왜 나만 보면 항상 그렇게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고 야단을 맞는다. 그러나 나라고 해서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긴장을 하고 있으란 법은 없잖은가.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전부터 꽤 오랫동안 술집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바텐더를 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스탠드에서 혼자 조용히 술을 마시는 사람이 있으면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상당히 신경 쓰이게 마련이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 많다. 상대방은 손님이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것도 아니므로, 아무래도 좋은 거겠지만, 그래도 역시 그런 하드보일드 풍의 사람이 눈 앞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침착할 수가 없다. 종종 유리컵을 깨거나 칵테일의 배합을 잘못하거나 한다. 그러니까 나는 손님으로서 조용히 있는 것보다는 멍청하게 있는 쪽을 택한 것이다. 멍청히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손님이란 바텐더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고객이다. 어찌 됐건 그런 사람은 그냥 내버려두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혼자서 술을 마시는 버릇이 들어 버리면 여자가 옆에 앉아 얘기를 하는 바 같은 데 들어가는 게 무척 난감하다. 일단 눈도 긴장시켜야 할 뿐더러 화제를 계속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대체로 처음 대면한 사람과는 거의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성격인 것이다.
며칠 전 호텔에 투숙해 일을 하고 있는데, 밤 열한 시 무렵에 맥주가 마시고 싶어져서 훌쩍 거리로 나섰다. 호텔의 바에서 마시는 것도 괜찮지만, 어쩐지 거리의 등불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득 눈에 뜨인 스낵 바 같은 곳에 들어가 맥주를 주문하자 까만 양복을 입은 남자가 정중하게 맥주를 날라 왔다. '엇, 이거 잘못 들어왔나?' 하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아니나다를까 이어서 짤막한 드레스를 입은 스무 살 정도의 아가씨가 와 내 옆에 앉더니 "안녕하세요, 혼자세요?" 하고 물었다. 이럴 땐 정말 눈앞이 아찔하다. 나로서는 일의 긴장을 풀기 위해 혼자서 멍하니 맥주를 두세 병 마시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런 때 옆에 이 방면의 달인이자 대가인 안자이 미즈마루 씨가 있었다면 레슬링을 할 때처럼 재빨리 교대를 하고 빠져 나갈 수 있을텐데, 혼자서는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술집에서 여자와 얘기를 하면서 가장 난처한 경우는 직업이 뭐냐고 물어 올 때다. 상대편 역시 처음 만나는 사람과 할말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니까 아무래도 날씨 얘기 다음에는 직업을 화제에 올리게 된다. 그렇지만 이제 겨우 일을 끝내고 느긋하게 쉬려고 오는데, 나로서는 술을 마시면서 일 얘기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음, 그러니까 뭐랄까 자유업 같은 건데..." 하고 얼버무리다 보면 화제가 금방 동이 나고 만다. 야구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술자리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즈 얘기를 해봤자 분위기만 침울해질 뿐이다.
그럭저럭 별로 대단한 얘기를 한 것도 없이 맥주를 세 병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나도 피곤했지만, 상대방 여자도 무척 피곤했을 것이다. 참 안됐다 싶다. 문득 생각이 났는데, '뜨개질 바'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여자들은 묵묵히 뜨개질을 하고 있고, 그 옆에 손님이 앉아 조용히 술을 마시는 형식의 바 말이다.
"뭘 뜨고 있지" "응... 장갑."
이런 느낌이라면 나도 차분히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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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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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를 위하여 - 김규항·김정란·진중권·홍세화
김규항 에세이
교양
서울 나갔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30대 여자 코미디언과 40대 남자 가수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정확하게 말해서 버스 기사가 저 들으려고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승객 가운데 하나인 나에게 들려온다. 처음 듣는 프로그램이지만 사람들이 전화로 자기 사연은 이야기하고 전화를 걸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이 듣는 식인 모양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남의 체험을 즐긴다. 젊은 여자가 재미없는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은 다음 등장한 남자다. "제가 옛날에 구사대였거든요." `피디수첩'도 `정범구의 세상읽기'도 아닌 30대 여자 코미디언과 40대 남자 가수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등장한 `구사대'에 내 귀는 긴장한다. 그러나 긴장은 이어지지 않는다. 30대 여자 코미디언과 40대 남자 가수는 `구사대'를 모른다. "제가 옛날에 구사대였거든요." "뭐라구요?" "제가 옛날에 구사대였거든요." "구사대? 구사대가 뭐지?" "제가 옛날에 구사대였거든요." "구사대라, 회사를 구하는 대다 이건데, 어쨌든 그래서요" 30대 여자 코미디언과 40대 남자 가수는 어물쩍(방송용어로 순발력이라고 하는) 넘어간다.
`구사대'라는 말을 모르는 30대 여자와 40대 남자를 어찌 생각해야 할까. 나는 당혹스럽다. 나는 `교양'에 대해 생각한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교양이 문화적인 지식이나 감정표현의 절제. 우아한 말과 행동 따위라는 생각은 봉건적이다. 그것은 결국엔 맨 얼굴이 될 유한계급의 사회적인 메이크업일 뿐이다. 아마도 교양이란 `사회적인 분별력'일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뜻과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반드시 자기 힘으로가 아니어도), 그게 교양이다.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교양은 근대적인 사회에 주어지는 축복이면서 더욱 근대적인 사회를 지향한다. 말하자면 교양은 그지없는 진보다(보수적인 교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보수란 사상이 아니라 그저 `욕망'이다. 남보다 더 가진 걸 내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사상인가). 버스가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라디오 소리는 디젤엔진에 묻힌다. 나는 `구사대'를 모르는 30대 여자 코미디언과 40대 남자 가수의 애처로운 교양과 그들이 꾸려주는 허접쓰레기를 들으며 피곤한 저녁을 맞는 노동자들의 가소로운 교양 환경을, 사회문화적인 이슈만 있으면 유럽과 비교하여 제 나라를 비하하는 게 일인 문화인들(유럽형 한국인)의 안개 낀 교양 환경과 비교한다. 나는 30대 여자 코미디언과 40대 남자 가수의 애처로운 교양을 용서한다.
나는 다시 썩은 세상을 욕하면서 그 기원인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강북 아저씨들의 시궁쥐 같은 요양과, 여전히 옛 여당을 그리는 강남 아줌마들의 암내나는 교양과, <조선일보>를 보며 하루를 안도하는 파시스트들의 구역질나는 교양과 그 이빨에 편승하여 안도하는 중산층의 악어새 같은 교양에 대해 생각한다. 서럽게도 이 나라의 어디에도 조직적인 교양은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이 나라는 봉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게 분명하다. 윗줄에 있는 놈들은 여전히 `마님'의 교양(사람의 귀천은 하늘이 정한 것이며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을 유지하고 아래 줄에 있는 이들은 여전히 `머슴'의 교양(모든 것은 운명이며 주는 대로 받아먹고 죽은 듯이 일한다)을 간직하는 것 같다. 나는 다시 이 나라의 나머지를 머리통 속에 넣고 검색해 보지만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의 폴더에 다다르자 또다시 미궁에 빠진다. 글쓰는 일을 `내공'이니 `진검승부'니 하며 한낱 재주 겨루기로 여기는 그 양아치 같은 교양과, 사상이라는 패키지 상품을 10년에 한 번씩 개비하는 그 이동변소 같은 교양과…. (98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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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양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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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검의 극치 - 설검
왕이 말했다. "세 개의 칼에 대해 듣고자 하오." 장자가 말했다. "천자의 칼이 있고, 제후의 칼이 있고, 서인의 칼이 있습니다." 왕이 물었다. "천자의 칼은 어떠하오?" "천자의 칼은 연계*와 석성으로 칼끝을 삼고, 제의 대산*으로 칼날을 삼으며, 진과 위로 칼등을 삼습니다. 또 주와 송으로 손막이를 삼고, 한과 위로 칼자루를 삼습니다. 사방을 오랑캐와 춘하 추동으로 둘러싸고, 발해를 두르고 상산을 띠로 하며, 오행으로 제어하고, 형벌과 덕으로 논합니다. 음양을 열어 봄과 여름을 조화시키고, 가을과 겨울을 운행시킵니다. 이 칼은 바르게 하면 앞에 적이 없고, 위로 들면 위에 적이 없으며, 아래로 누르면 아래에 적이 없고, 움직이면 사방에 적이 없습니다. 위로는 뜬구름을 가르며, 아래로는 지기를 끊습니다. 이 칼은 한 번 쓰면 제후를 바로잡고, 온 천하를 굴복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천자의 칼입니다." 문왕이 망연 자실하여 물었다. "제후의 칼은 어떠하오?" 장자가 대답했다. "제후의 칼은 지용의 선비를 칼끝으로 하고, 청렴한 선비로 칼날을 삼습니다. 현량한 선비로 칼등을 삼고, 충성스런 선비로 손막이를 삼으며, 호걸스런 선비로 칼자루를 삼습니다. 이 칼은 바르게 하면 앞에 적이 없고, 위로 들면 위에 적이 없으며, 아래로 누르면 아래에 적이 없고, 움직이면 사방에 적이 없습니다. 위로는 둥근 하늘을 본받아 삼광을 순하게 하고, 아래로는 모난 땅을 본따서 사시를 따르며, 가운데로는 민의를 살펴서 사방 고을을 편안하게 합니다. 이 칼은 한 번 쓰면 우뢰와 번개가 떨어지는 듯하여 사방 국경이 항복하고, 군명을 따르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후의 칼입니다." 왕이 다시 말했다. "그럼 서인의 칼은 어떠하오?" 장자가 대답했다. "서인의 칼은 더벅머리에 수염투성이로서 관은 뒤에 붙고, 오랑캐의 관 끈을 늘였으며, 옷은 뒤가 짧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말이 시끄러워 임금 앞에서도 서로 치며, 위로는 몸과 옷깃을 베고 아래로는 간과 허파를 가릅니다 이것이 곧 서인의 칼로서 투계와 다를 것이 없으니, 일단 목숨이 끊어지면 나라일엔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습니다. 지금 대왕은 천자의 지위에 계시면서도 서인의 칼을 좋아하시니, 신은 대왕을 가볍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왕은 간신히 몸을 움직여 전상에 올랐다. 재인이 밥을 올렸으나 왕은 그 주위를 세 번이나 돌았다. 장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편히 앉아 기운을 차리십시오. 칼에 대한 것은 이미 다 아뢰었습니다." 이로부터 문왕은 석 달 동안이나 궁 밖에 나오지 않았고, 검사들은 모두 그곳에서 자살해 죽었다.
*연계 : 연나라의 계곡. *대산 : 태산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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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칼이란 어떤 거요?" "천자의 칼, 제후의 칼, 그리고 서민의 칼입니다." "그래, 천자의 칼이란 무엇인가?" "이 칼은 북쪽의 연계와 석성을 칼끝으로 하고, 제나라의 대산이 칼날, 진과 위가 칼등입니다. 또 손막이는 남쪽의 주와 송이며, 칼자루는 서쪽의 한과 위입니다. 그 세력과 위엄은 멀리는 발해와 상산에 까지 미치고, 동서남북의 오랑캐들을 포섭하여 춘하 추동 사철을 두릅니다. 오행을 관장하여 자연계를 운행시키고, 상벌을 분명히 하여 인간 세계를 질서있게 합니다. 그리고 음양 두 기운을 움직여 우주의 대생명을 작용시킴으로써 봄과 여름에는 이를 약동하게 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이를 숨어들게 합니다. 이 칼의 위력은 위로는 뜬구름을 찢고, 아래로는 지축을 끊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것을 한번 쓰면 제후는 숙연히 몸을 바로 하고, 온 천하가 일시에 굴복하게 됩니다. 이것이 천자의 칼입니다."
문왕은 기가 질렸다
"흐음, 그럼 제후의 칼은?" "제후의 칼은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선비를 칼끝으로 하고, 청렴한 선비를 칼날로 합니다. 또 어질고 착한 선비를 칼등으로, 충성스런 선비를 손막이로, 호걸스런 선비를 칼자루로 하고 있습니다. 천자의 칼과 마찬가지로 상하 사방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위로는 해와 달과 별의 삼광에 순응함으로써 하늘의 법칙에 맞게 하며, 아래로는 사철의 변화에 순응, 땅의 법칙에 맞게 하여 민심을 부드럽게 하고 사해를 편안하게 합니다. 이 칼을 한 번 쓰면 천둥 번개와도 같은 위력이 있어서 온 사해가 다 임금의 명령에 복종하게 됩니다. 이것이 제후의 칼입니다." "그럼 서민의 칼은?" "머리는 더벅머리에다 관은 뒤에 붙어 있고, 옷은 전투복, 말을 주고받는 것까지 살기에 차 있는 사람들이 갖는 칼입니다. 한 번 올려 치면 상대방의 목을 자르고, 내려치면 상대방의 창자를 가릅니다. 마치 투계가 싸우는 것 같습니다. 이 칼을 쓰는 사람은 목숨이 끊어지면 그것으로 끝장이어서 나라를 위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대왕께선 천자의 높은 지위에 계시면서 이런 비천한 서민들의 칼에 매혹되어 있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왕은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모르며 몸소 장자의 손을 잡아 전상으로 맞아 올렸다. 요리사들이 음식상을 차렸으나 왕은 정신없이 상머리를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장자가 말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자리에 앉고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이야기는 이미 끝났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문왕은 석 달 동안이나 한 발짝도 궁전 밖에 나오는 일없이 근신했다. 그리고 왕에게 버림받은 검사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쳐 자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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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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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빈손
어느 날 뮬라 나스루딘의 집에 도둑이 들어왔다. 뮬라는 잠을 자는 척 그냥 눈을 감고 도둑이 하고 있는 짓을 지켜보고 있었다. 뮬라는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생활 신조로 삼고 있었다. 그러니 도둑이 그의 잠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가 도둑의 직업에 간섭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도둑은 그가 이상하게 여겨져서 걱정이 되었다. 그가 집안의 물건들을 들고 가다가 떨어뜨려 요란한 소리가 났는데도 뮬라는 잠만 자고 있었던 것이다. 도둑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 집 물건을 훔쳐 가는데 아무말도 안 하다니 참 이상한 사람이야!' 어쨌든 그러는 사이 모든 기구들이 밖으로 옮겨졌고 하다못해 베개까지 몽땅 밖으로 옮겨졌다. 도둑이 모든 것을 싸들고 자기 집을 향해 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뒤따라오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뒤돌아보니 바로 조금 전에 잠을 자고 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도둑이 말했다.
"왜 나를 따라오고 있는 거요?"
뮬라가 말했다.
"아니오, 나는 당신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니오. 나는 집을 바꾸고 있는 것이오. 당신이 모든 것을 가져갔으니 이제 그 쓸모 없는 집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소. 어쨌든 나는 매우 게으른 사람이라 나를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하오. 그런데 당신은 모든 것을 가지고 가면서 왜 나를 혼자 내버려두는 거요?"
도둑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일생 동안 도둑질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이런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었다. 도둑이 말했다.
"당신 물건을 도로 가져가시오." 이에 뮬라가 대답했다. "아니, 그럴 것까지 없소. 당신이 모든 것을 다시 옮겨야 할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경찰을 부르겠소. 나는 신사처럼 행동하고 싶소. 나는 당신을 도둑이라 부르진 않겠소. 그저 당신을 내 집을 바꾸기 위해 나를 돕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싶소."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단 한 번뿐인 짧은 생애라는 그대의 관념은 위험한 생각이다. 또한 그대는 그것들을 그대와 함께 가져갈 수는 없다. 그대는 빈손으로 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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