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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09호
단기 4343. 3. 4 (음력 1. 19)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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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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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학과사회』는 2002년 봄호(통권 57호)부터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공모 및 발표를 정례화하고 있습니다. 투고 자격은 신인에 한하며, 수상자에게는 문학과지성사에서 특별히 제작한 모뉴망(기념 조형물)과 함께 등단 작품에 대한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합니다. 우리 문학의 전위를 꿈꾸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 응모부문
- 시: 10편 이상 - 소설: 단편소설(100매 내외) 2편 이상, 중편소설(250매 내외) 1편 이상 -비평: 2편 이상 ◆ 응모요령 - 우편접수에 한하며 마감일자 소인까지 유효합니다. - 겉봉투에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응모작'임을 명기해주십시오. -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 응모 작품 마감 및 발표 - 원고 마감: 매년 3월 31일 (당해 3월 31일 우체국 소인분까지 유효합니다.) - 수상작 발표: 『문학과사회』 봄호 ◆ 보낼 곳: 121-840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95-2 (주)문학과지성사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담당자 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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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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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기회가 없다고 불평하지 않는다.(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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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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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잡이 차지(어부지리)
서로 양보하지 않는다는 끌어대기(비유)로 ‘조개·도요 싸움’(방휼지쟁)이라는 것이 있다. 두 것이 싸워서 딴것이 재미를 차지해 버린다는 말이다. 전한의 <전국책>에 연나라를 치려는 조나라 혜문왕을 소대라는 사람이 만나러 갔던 이야기가 있다.
“여기 오는 길에 역수를 건너는데 뻘조개가 입을 벌리고 비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도요새가 와서 그 살을 먹으려고 부리를 처박으므로 뻘조개가 아가리를 닫아, 그 부리를 꽉 물었습니다. 도요새가 ‘오늘도 비가 안 오고 내일도 비가 안 오면 죽은 뻘조개가 되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뻘조개도 질세라 ‘오늘도 못 나오고 내일도 못 나오면 죽은 도요새가 되어 버린다’고 맞받아쳤습니다. 둘이 다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때 고기잡이가 와서 두 것을 다 붙잡아 버렸습니다. 이제 조나라가 연나라를 치려고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두 나라가 맞붙어 싸우다가 백성이 결딴나면 진나라가 고기잡이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혜문왕은 연나라를 치지 않았다.
“개가 토끼를 잡으려고 산을 다섯 번 오르고, 토끼가 산을 세 번 돌다가 둘 다 죽어 버리자 농부 차지가 되었다”는 ‘개·토끼 싸움’(견토지쟁)과 비슷하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가능성이 높다
주어와 술어의 정확한 호응은 문장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주술이 어긋나 있는 문장은 아예 말할 것도 없지만, 문법 형식으로는 주술 관계가 어긋남이 없어 보이는데도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다. 주어와 술어가 착 달라붙지 않을 때 이런 느낌이 든다.
“능력이 확인된 인물이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 부패로 나아갈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임기에 제한이 없다.” 신문 칼럼에서 잘라온 구절이다.
‘가능성’이라는 주어에 ‘높다/적다’라는 술어가 호응하고 있다. ‘높다’가 정확한 용어라면 반대의 경우에는 ‘적다’가 아니라 ‘낮다’를 써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적다’가 정확한 용어라면 반대의 경우에는 ‘높다’가 아니라 ‘많다’를 써야 할 것이다.
높낮이, 크기, 수량 따위를 나타내는 형용사는 대립이 확실하다. ‘높다/낮다, 크다/작다, 많다/적다’에서 보듯이 확실한 짝을 이루고 있다. 이런 형용사들을 주어와 호응시킬 경우에는 같은 짝끼리 맞세워야 반듯하다. ‘높다/적다’, ‘크다/낮다’ 또는 ‘많다/작다’라는 짝을 만들면 매우 어색하게 전달된다.
‘가능성’이라는 주어에는 어떤 짝을 쓰는 것이 좋을까? ‘크다/작다’가 잘 어울린다. 어느 고등학교 학생들의 대학 합격이라는 문제를 놓고 ‘합격 가능성’은 ‘크다/작다’, 합격률은 ‘높다/낮다’, 합격자 수는 ‘많다/적다’로 하면 반듯하다. 여기서 술어를 바꿔 보면 아예 말이 안 되거나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다.
우재욱/시인
운영과 운용
운영(運營)은 단체, 조직, 사업체 따위를 움직이게 하거나 경영한다는 뜻이다. 학교, 당, 기업, 상점, 학회, 대회 등과 어울려 사용된다.‘사장은 기업을 건실하게 운영했다.’ 운용(運用)은 물건이나 제도 등을 적절하게 사용한다는 의미다. 주로 자본, 기금, 예산, 물품 등과 어울려 쓰인다.‘법을 멋대로 운용하지 말라.’ ‘기금을 잘 운용했다.’
기침을 깇다?
잠을 자다, 꿈을 꾸다. 목적어 잠, 꿈은 서술어 자다, 꾸다와 뿌리가 같다. 동족목적어라고 부른다. 기침은 ‘깇다’에서 왔다. 옛 형태는 ‘기츰, 기참’이었다.‘기츰을 깇다’로 쓰였다. 그러다 서술어 ‘깇다’는 사라지고 동족목적어 ‘기침’만 남았다. 국어사전은 ‘깇다’를 ‘기침하다’의 북한어라고도 풀이한다. 우리에게는 옛말이지만 북녘에서는 현재어다.
입소문
'귀 소문 말고 눈 소문 내라'는 속담이 있다. 실지로 보고 확인한 것이 아니면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다. 남의 말을 아무리 여러 번 듣는다 해도 내 눈으로 직접 한 번 보는 것이 더 확실하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널리 알려진 어떤 말이나 사실을 소문(所聞)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진위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가리킨다. '귀 소문' '눈 소문' 말고 '입소문'이란 말이 있다. 실제로 말이나 글에서 상당히 많이 쓰인다.
'영화 팬들의 입소문이 나면서 '왕의 남자'는 관객 1000만 돌파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이 제품은 대대적인 광고나 판촉 활동 없이 소비자들의 입소문이 번지면서 출시 2개월 만에 월 5만 대가 판매됐다.'
'입소문'은 단순한 소문과 다르며 뜬소문하고는 아주 다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는 점에선 '소문'과 같지만, '입소문'은 어떤 제품을 써 본 사람이나 어떤 일을 체험한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직접 전한다는 점에서 '소문'보다 진실성이 더 있다. 하지만 '입소문'은 표준국어대사전엔 올라 있지 않고, 일부 사전에만 실려 있다. 어설픈 외국어나 어려운 한자어보다는 우리말이 더 좋다는 입소문들을 좀 내주셨으면….
멘토링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아들의 교육을 친구인 멘토에게 맡겼는데 20여 년 동안이나 멘토는 부모처럼, 스승처럼 그를 가르치고 이끌었다고 한다. 이후로 '멘토(mentor)'는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라는 뜻으로 쓰이게 됐으며, 이러한 교육 방식을 '멘토링'이라 부른다. 대학생들이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초.중학생을 가르치는 '대학생 멘토링' 제도가 4월부터 시범 실시된다고 한다. 저소득층 학생들이 수준 높은 과외를 받을 수 있고, 결손가정 어린이들에게는 후견인 역할도 되어 줄 수 있으니 여러 모로 좋은 제도라 생각된다. 그러나 굳이 '멘토링'이란 말을 사용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외래어인 '멘토링'의 의미가 잘 와 닿지 않고, '대학생 멘토링' 제도를 우리말로 '대학생 개인지도' '대학생 후견인' 제도 등으로 불러도 별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정책 용어에 외래어가 난무하는 판인데 교육 정책을 담당하는 교육인적자원부마저 충분히 표현 가능한 우리말을 두고 외래어를 썼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이제라도 적당한 우리말 이름으로 바꾸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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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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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관한 명상 수첩 - 이외수
비는 소리부터 내린다. 흐린 세월 속으로 시간이 매몰된다. 매몰되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나지막히 울고 있다. 잠결에도 들린다. 비가 내리면 불면증이 재발한다. 오래도록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었던 이름일수록 종국에는 더욱 선명한 상처로 남게 된다. 비는 서랍 속의 해묵은 일기장을 적신다. 지나간 시간들을 적신다. 지나간 시간들은 아무리 간절한 그리움으로 되돌아 보아도 소급되지 않는다. 시간의 맹점이다. 일체의 교신이 두절되고 재회는 무산된다. 나는 일기장을 태운다. 그러나 일기장을 태워도 그리움까지 소각되지는 않는다. 비는 뼈 속을 적신다. 뼈저린 그리움 때문에 죽어간 영혼들은 새가 된다. 비가 내리는 날은 새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날 새들은 어디에서 날개를 접고 뼈저린 그리움을 달래고 있을까. 비 속에서는 시간이 정체된다. 나는 도시를 방황한다. 어디에도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도시는 범람하는 통곡 속에서 해체된다. 폐점시간이 임박한 목로주점. 홀로 마시는 술은 독약처럼 내 영혼을 질식시킨다. 집으로 돌아와 바하의 우울한 첼로를 듣는다. 몇 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날이 새지 않는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목이 메인다. 우리가 못다한 말들이 비가 되어 내린다. 결별 끝에는 언제나 침묵이 남는다. 아무리 간절하게 소망해도 돌아갈 수 없는 전생. 나는 누구를 사랑했던가. 유배당한 영혼으로 떠도는 세속의 거리에는 예술이 암장되고 신화가 은폐된다. 물안개 자욱한 윤회의 강변 어디쯤에서 아직도 그대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나는 쓰라린 기억의 편린들을 간직한 채 그대로부터 더욱 멀리 떠나야 한다. 세속의 시간은 언제나 사랑의 반대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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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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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 신명자
빈 뜰에 홀로 서서 별빛을 안아보니
한가닥 피리소리 들릴 듯한 고요 속에
달님도 옷자락을 끌고 사뿐사뿐 내려 선다
여울못 잠 못 들면 더 외로운 밤이어라
빛부신 얼굴들도 그 속에 다 묻히고
산과 들 야위어 가는데 하늘 빛만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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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평론 /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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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 최재봉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 김원일의 `겨울 골짜기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은 높이 7백~9백m대의 산들로 옴팍하니 둘러싸인 분지형 지세를 이루고 있다. 남상면을 지나 거창읍으로 통하는 북쪽으로는 신원면의 상징과도 같은 감악산(951m)이 버티고 있고, 산청군 오부면 및 차황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남쪽에는 보록산(800m)과 소룡산(779m)이, 그리고 동쪽과 서쪽으로는 각기 월여산(863m)과 갈전산(764m)이 절집의 사천왕처럼 신원면을 지키고 있다. 분지 너머로 시야를 뻗으면 남서쪽의 지리산과 북동쪽의 가야산, 그리고 북서쪽의 덕유산에 이를 테지만, 신원의 사천왕들은 그같은 시야의 확장을 가로막고 나선다. 사천왕들이 가로막는 것은 안으로부터 밖으로 향하는 시야만은 아니어서, 신원면 밖에서 보면 높직한 산과 깊숙한 골짜구니가 눈에 들어올 뿐 그 안에 아기자기한 마을과 논밭들로 이루어진 분지가 자리잡고 있으리라고는 짐작하기 어렵다. 예로부터 천분과 소여에 만족하지 못하는 중생들은 감악산을 끼고 도는 숭더미재나 소룡산을 빗겨나가는 밀치재를 통해 분지 너머로의 출타를 도모해왔다.
그러한 사왕의 위요와 영검으로써도 이념의 차이로 인한 인간의 광기와 맹목은 물리칠 수 없었음인가. 1951년 2월11일 신원면의 분지 안에서는 총성과 비명, 초연과 선혈이 뒤섞이고 교차하면서 아수라의 지옥을 연출한다. 국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 병력들이 신원면 대현·중유·와룡리 주민 6백여명을 집단학살한 것이다. 군인들이 여자와 어린아이, 노인이 포함된 비무장 양민을 `청소'한 까닭은 그들이 빨치산과 내통한 통비분자라는 것이었다. 국군의 주장은 사건 발생 두 달 전인 1950년 12월5일 4백∼5백명의 빨치산이 신원면 양지리의 분주소를 습격, 점령한 이후 다음해 2월7일 국군이 신원면에 진주하기까지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국군이 다시 들어올 무렵 빨치산에 적극 협력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을 따라 산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군쪽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한 것이었다.
전시의 혼란과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건은 당분간 물 밑에 잠겨 있다가 한 달 뒤부터야 국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한다. 국회의 진상조사반은 4월7일 현장을 확인하고자 숭더미재를 넘던 길에 빨치산으로 위장한 국군의 공격을 받고 철수하기도 했다. 그해 말 군법회의에서 연대장과 대대장 등 관련자들은 3년에서 무기까지 징역형을 선고받지만 1년 뒤 모두 형집행정지로 풀려난다. 이승만 정권 아래서 극도로 숨 죽이며 살아온 희생자의 유족들과 신원면 주민들은 4·19 이후 유족회를 구성하고 위령비를 세웠으나, 5·16으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는 그 위령비를 무너뜨려 매장해 버렸다. 그 뒤로 30여년 이어져온 군인 대통령 시절에 희생자들의 명예는 위령비와 함께 땅 밑 어둠 속에 묻혀져왔다.
김원일(54)씨의 장편 <겨울 골짜기>는 빨치산의 신원면 점령 직전 시점에서부터 시작해 이후 `거창양민학살사건'으로 알려지게 된 비극의 연원과 전개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유혈비극의 와중에 세상 빛을 본 한 아기의 가족을 중심으로 사건의 전모를 담고는 있지만, 사건의 뼈대를 제외하고는 작가적 상상력에 의한 허구에 의존했다. 소설은 `산'과 `마을'의 시점을 오가면서 서술되는데, 양쪽의 중심인물은 천우신조로 살아난 아기의 아버지 문한돌과 그의 동생이자 빨치산인 한득이다.
군인 출신 대통령 전두환씨의 서슬이 시퍼렇던 85년부터 현지답사를 거쳐 87년 초까지 몇몇 잡지에 나누어 발표한 뒤 단행본으로 펴낸 이 소설은 당시까지만 해도 금기의 사슬에 단단히 묶여 있던 빨치산들의 생활을 비교적 객관적·사실적으로 그려 관심을 모았다. 김원일씨가 소설에서 그린 빨치산은 그 전까지 공비(共匪)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잔인하고 맹목적인 이념의 노예와는 달리 나름의 역사·철학적 신념을 순수한 인간애와 결합시킨 더운 피의 소유자들이다. <겨울 골짜기>에서 또하나 인상적인 모습은 산과 마을에 관계 없이 당시 사람들을 괴롭혔던 극도의 굶주림이다. `들피지다'라는 표현에 실려 전해지는 전쟁통 기아의 참상은 전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소설은 그러나 신원면을 점령하여 국군 토벌대의 보복적 학살에 빌미를 주었던 빨치산의 움직임에 대부분의 분량을 할애하고 정작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은 결말 부분에서 간략하게 처리하고 넘어감으로써 학살의 무분별과 잔혹성을 충분히 부각시키지 못한 아쉬움을 준다. 거창에서 총을 난사한 부대가 그 사흘 전에는 이웃 산청군 금서면의 8개 마을에서 주민 5백 여명을 집단학살했으며, 경북 문경과 전북 순창·고창 등에서도 수백명에서 1천여명에 이르는 양민들이 군경에 의해 떼죽음을 당했다. 게다가 거창사건의 충격파가 채 가시기도 전인 그해 3월에는 제2국민병에 해당하는 국민방위군들의 식량과 의약품, 부식비를 사령관 등 간부들이 착복함으로써 1천수백명의 사상자를 내게 한 사건이 밝혀지는 등 전쟁기 군의 부패와 행악은 극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거창읍을 거쳐 신원면에 이르는 길은 곳곳이 꽃사태였다. 이미 한철 지난 느낌의 벚꽃과 진달래, 개나리는 물론 길 양옆에 펼쳐진 과수원의 복숭아·배·사과꽃, 마을의 살구꽃과 길섶의 싸리꽃, 민들레, 할미꽃, 그리고 크기와 색깔과 모양은 달라도 제각기 아름다운 이름 모를 들꽃들, 거기다가 꽃보다 덜 예쁠 것도 없는 버드나무와 포플러, 미루나무, 히말라야시다 따위의 연록색 새 잎들…. 첩첩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 그리고 옥계천의 맑은 물을 지나는 길은 흡사 강원도의 어느 산악지대를 달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깨끗한 포장도로를 타고 면소재지인 양지리와 학살 전날 주민들을 집결시켰던 신원초등학교가 있는 과정리를 지나 이르른 오후의 대현리는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외롭게 논을 가는 두어명의 농부와 그들이 부리는 소의 아령과 경운기의 엔진 소리가 새소리에 섞여 들릴 뿐 인적조차 뜸하다.
대현리와 학살 장소인 탄량골 사이에는 당시 희생자들의 무덤이 있다. 수백명의 주검이겨우 두개의 커다란 무덤에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묻혀 있다. 학살 뒤 3년이 지나 주인을 알아볼 수 없게 된 뼈를 수습하도록 허락되자 큰 뼈는 남자, 작은 뼈는 여자, 더 작은 뼈는 아이 식으로 분류를 해 3기의 묘를 꾸몄지만, 그나마 아이들 묘는 아예 군과 당국이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4·19의 자유 공간에 세웠던 위령비 역시 5·16과 함께 무너뜨려졌다. 그 뒤로도 요원할 것만 같았던 신원의 신원(伸寃)은 사건 발생 45년 만인 지난해 말에야 특볍법이 통과돼 비로소 법적인 근거가 마련됐다. 쓰러진 위령비와 스프레이 구호 따위로 어수선한 묘지에서 만난 마을 주민 박종권(52)씨는 “위령탑을 세우고 묘지도 확장, 정비해 학생들을 위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쓰일 수 있게 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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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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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5장 나 하나 행복 둘
놓아 버린 자유
삶을 억지로 살려고 하지 마라. 세상에는 발버둥쳐서 되는 일도 있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는 일이 있다. 소용없는 일에 발버둥치면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구속하는 원인이 된다. 가려고 하면 가게 놓아 주라. 다시 돌아올 때도 있지 않겠는가? 눈물이 나오려고 하면 나오게 내버려두라. 다 나와 눈물심이 말라 버리면 멈추지 않겠는가? 아픔이 밀려오거든 밀려오게 내버려두라. 그 아픔이 생명까지야 빼앗아 가겠는가? 자신의 잘못된 신세를 비관하지 말라. 못되면 지금보다 더 못되지겠는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고통의 올가미에 걸려드는 것은 가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잡으려고 하고, 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고 하고, 아픔을 피하기 위해서 요리조리 꽁무니를 빼고, 더 잘되기 위해서 끙끙 앓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남보다 못하다고 해서 스스로를 질책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질책은 삶에 고통만을 더할 뿐이다. 나물국 대신 고깃국을 먹으려고 입맛을 다시고, 버스 대신 택시를 타려고 기웃거리기 때문에 삶에 불만이 생기는 것이지, 고깃국 대신 나물국 먹고 택시 대신 버스 타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면 불만은 사리지고 마음은 언제나 부자가 된다. 그리고 텅 비어서 더 비울 것이 없는 마음에는 오히려 평온함이 깃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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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사회 / 문화 / 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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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성과 권력 - 권택영
제1부 무의식과 성이론
1. 무의식과 성
프로이트의 성이론 : 혁명성과 보수성
혁명성 '성이론에 대한 세 글'과 '문명화된 성도덕과 현대 신경증'
현대 여성이론가들이 프로이트의 성이론 가운데 교과서처럼 삼는 중요한 글, '성이론에 대한 세 글'(Three Essays on the Theory of Sexuality)은 1905년에 발표되었다. 이 해는 여성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글 '도라 분석' (Fragment of an Analysis of a Case Hysteria)이 출판된 해이다. 자신의 새로운 발견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기를 바랐던 프로이트는 '꿈의 분석'을 한동안 접어두었다 발표했고 '도라 분석'도 5년이 지난 후에 발표한다. 그러므로 '성이론에 대한 세 글'은 도라 분석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이 선 후 그것에 새로움을 보태고 정리한 글이라 볼 수 있다. 두 글은 어느 점이 비슷하고 어느 점이 다른가. 도라는 프로이트의 초기 사상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의 주저인 '꿈의 분석'이 출판되던 때쯤 이루어진 신경증 환자의 치료였고 무의식의 확인뿐 아니라 여성이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동성애 문제가 암시된다. 또 환자와 분석자사이의 전이, 기억과 대화와 구성 사이에 존재하는 허구성이 암시되어 훗날 그의 글들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주요 사상들이 이미 배태되어있었다. 프로이트는 '도라 분석'을 출판하며 자신의 치료가 실패했고 분석의 기록조차 정확치 못하다고 밝힌다. 실패 이유는 도라가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K씨에 대한 분노를 자신에게 전이시켜 복수하느라 치료를 중단해 버린 것이고 기록에 허구가 개입되는 것은 도라의 환상, 분석 과 정, 그것의 기록이 시간의 차이를 두고 이루어져 사후에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서문 아래 밝혀지는 도라 분석이 중요한 것은 맨 마지막, 가장 억압된 신경증의 원인이 도라의 K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데 있다. 즉 아버지를 사랑한 도라는 K부인과 밀회를 갖는 아버지에게 증오를 품게 되고 그 대가로 주어지는 K씨의 구애를 즐기지만 막상 호숫가에서 K씨가 청하는 요구를 격렬히 거부한다. 도라의 가장 깊은 무의식 속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보다 더 근원적인 욕망, 동성애가 있었다. 그것은 여성 이 같은 여성을 증오하고 아버지의 아이를 갖기 위해 수동적이고 열등한 존재가 된다는 가부장제 성이론을 반박하는 근거가 된다. 가부장제 사회에 의해 남성과 여성이 적극성과 수동성이라는 우월의 관계로 구조되기 이전, 오이디푸스 상황 이전에는 남녀가 동등했다는 암시가 도라의 의식 깊이 묻혀 있었고 프로이트는 이것을 감히 건드릴 수가 없었다. 아마도 도라가 전이를 일으켜 치료가 중단되었다기보다 프로이트가 더 이상 치료의 끝을 보기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가 서둘러 서술을 마감한 시절이 바로 도라가 아버지와 동일시하여 K부인을 사랑했다는 동성애, 아니 도라의 남성성에 이르러서였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사회에서 동성애는 죄악으로 인정되었다. '도라 분석'에 대한 출판을 미루고 5년이 지난 후 프로이트는 좀 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도라 분석을 선보이는데 그 근거가 바로 '성이론에 대한 세 글'이었다. 그리고 이 글에서 핵심이 되는 성도착, 유아기의 성, 양성성, 자기성애 등은 오이디푸스 상황 이전에 남녀 평등의 단계가 있었다는 중요한 근거들로서 여성이론가들의 성차별이란 가부장제 사회와 문명의 산물이지 태어날 때부터 지닌 인간의 자연스런 속성이 아니라는 주장에 공헌한다.
성도착이란 문명이 인위적으로 주변화시킨 성본능이다
리비도는 배고픔과 같은 인간의 본능이고 프로이트에게는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흔히 인간의 성은 사춘기 때부터 시작된다고 알려져 있지 만 그 이전에 이미 태어난 후부터 성이 있었고 그것이 억압되어온 것은 아닐까. 흔히 우리가 성도착이라고 제외시키는 성은 신경증 환자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교양인에게도 귀족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은밀히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성도착은 무엇인가. 남녀가 자식을 낳는 것에 목적을 두고 생식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성합, 즉 이성간의 성(hetero-sexuality) 이외의 성이다. 그런데도 동성애 등 도착이라고 밀려난 성들이 얼마나 공공연하게 정상인들 사이에서 행해져 왔는가. 그렇다면 이성간의 성이란 사회가 규정한 성이지 본래의 자연스런 성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춘기란 남녀간의 성을 위해 남성과 여성이 우월의 관계로 가름지어지는 사회적 성의 출발일 뿐 그 이전에 태어날 때부터 지닌 아주 자연스런 성이 있었을 것이다. 이 억압된 성, '유아기 성'(Infantile Sexuality)이 프로이트 성 이론에서 무의식이요, 타자이다. 인구 정책으로 문명이 성을 규제하기 이전의 원시 사회나 유아기에 남녀의 구분은 없었다. 아이는 태어나서 삶 본능에 의해 자기를 보살피는 사람과 애정을 교감한다. 이때 애정은 대상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혼자스스로 충만한 기쁨으로 몸 전체를 성감대로 하는 자발적 혹은 자기성애(auto- erotism)이다.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과 입맞춤, 젖을 먹여주고 배설을 치워주는 것 등 모든 게 환희요, 아늑함인 이 시기는 어떤 사회적금기도 존재하지 않는 낙원이었다. 아담과 이브 사이에 다른 어떤 타자가 존재하지 않고 서로가 완벽하게 서로를 사랑하고 충만해 하던 에덴동산이었다. 둘의 시선은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누구에 의해서도 보여지지 않는다. 바라봄(eye)만 있고 보여짐(gaze)이 없는 낙원에서 타자란 없었다. 제 삼의 시선이 없으니 금기도 억압도 없는 것이다. 둘은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회와 문명이 개입되기 이전, 지식의 열매를 먹고 눈을 뜨고 부끄러움을 알기 이전이다. '자발적 성애', 혹은 '유아기성'이란 바로 이것이고 이때 어머니와 아이는 한 몸이고 서로가 서로의 완벽한 남근이다. 물론 이것은 아이의 환상일 뿐, 어머니는 아버지의 연인이고 동생의 연인이다. 그러나 이 환상과 경험을 단념하지 못하고 실낙원에 사는데, 낙원이 있으리라고 믿는 것에 존재의 비극이 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이 단계를 '원초적 나르시시즘'이라 했고 라캉은 '거울단계'라 한다.
2세에서 4세 사이에 정점을 이루고 그 이후 억압되는 자기성애는 성장하면서 사회적 제약에의해 남녀가 자식을 낳는 사회적 임무에 종속된다. 그러나 그 이후 정상적인 성인들에게 여전히 도착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사회와 문명에 의해 제약이 가해져 주변으로 물러났을 뿐 원래는 자연스런 성이었다는 추론을 낳게 한다. 성도착이 원래는 자연스런 성이었다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왜 사랑에 빠진 연인은 대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과대평가 하는가. 그녀를 사랑하는 순간부터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은 광휘를 발하며 빛나 보인다. 젊은 베르테르는 로테가 준 오렌지를 소중히 간직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였지만 그녀가 아이들에게 오렌지 조각을 나누어줄 때 그는 마 치 아이들이 자신의 살점을 떼어 가는 것처럼 느낀다. 죽을 때 베르테르는 로테를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연미복을 입는다. 로테가 바라본 옷은 그에게 그녀 자체이고 그는 그 옷을 입으며 그녀에게 감싸인 듯 느낀다. 그리고는 로테가 만진 권총에 의해 목숨을 끊는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에서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직업이 언제나 최고의 가치를 갖는다. 그가 극장 매표원이면 연극이 세상에서 최고요, 그가 목수이면 나무가 수의사면 동물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는 미다스의 손길처럼 연인과 관계되는 모든 것이 에로틱해진다. 오렌지는 그냥 하나의 과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주었을 때는 바로 그 연인과 같아진다. 이것이 사랑이 지닌 환유적 속성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페티시즘'으로 표현했다. '자발적 성애'는 대상을 사랑할 때 특히 손에 닿지 못할 때 그것을 완벽한 어린 시절의 어머니로 믿게 만드는 환상을 창조한다. 온몸이 성감대였던 시절, 나르시즘적 자기애에 충만해 있던 경험은 억압되었지만 사라지지 않고 되돌아와 대상에 투사된다. 그는 연인의 얼굴에서도 자기 얼굴을 보고 대상을 사랑하지만 사실은 대상에 비친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과대 평가는 지상에서 결코 지속되지 못한다. 그런 사랑은 대상을 얻음으로써 끝이 나거나 대상을 잃음으로써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사회가 금지하는데도 여전히 교양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남성끼리 사랑하는 경우에 한쪽은 남성적 성향(mus-culinity)을 띠고 상대방은 여성적 성향(femininity)을 띤다. 여성끼리 사랑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인간은 원래 양성적 존재가 아닐 까. 해부학은 인간이 원래 암수 한몸이었는데 차츰 단성으로 퇴화되었다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심리적으로도 인간은 원래 양성이었는데 사회가 단성이 되도록 억압했다고 말한다. 인류의 보존과 노동력의 증가를 위해 사회는 남녀가 이성으로 합법적인 결혼을 통해 아이를 낳아 양육하도록 가르쳐 왔다는 것이다. 문명은 그런 이성간의 성만이 옳은 것이라고 훈련 시켜온 것이다. 자발적 성애의 단계에서 남녀의 구별은 없다. 그때에는 남아와 여아가 모두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남성적 성향을 갖는다. 리비도는 하나였고 그 것은 남성적이었다. 프로이트가 지적한 이 '리비도는 하나였다'라는 말과 양성성(bisexuality)은 여성 이론가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인간이 사회에 의해 억압되기 이전에 남녀가 평등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가설은 프로이트 성이론의 혁신적 측면으로 많은 용어들을 낳고 여성이론가들에 의해 재해석된다. 남근기, 자발적 성애, 동성애, 양성성 등은 소위 '오이디푸스 전 단계'라 하여 20세기 후반부의 지적 흐름에서 도전적인 부분이 된다. 그가 말한 '사회'라는 말 앞에 '가부장제' 라는 형용사를 덧붙이면 그대로 여성이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비도는 공격적이기에 성 본능에는 본질적으로 대상에게 고통을 주려는 욕망이 들어 있다. 가장 흔하고 중요한 도착 가운데 하나가 사디즘과 마조히즘이다. 성이 갖는 잔인성은 동물적 욕망의 잔재이다. 한 쪽은 고통을 주는 데서 쾌감을 얻고 다른 쪽은 고통을 당하는 데서 쾌감을 얻는다. 어떻게 고통을 받는 경우에도 쾌감을 느끼는가. 프로이트는 말한다. 사디스트는 늘 동시에 마조히스트라고. 가학자는 피학자의 얼굴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피학자는 가학자의 얼굴에서 자신을 본다.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충족이란 나르시스적 욕망, 자기성애가 억압되었다가 되돌아오는 것은 아닌가. 사실 이런 충동은 정상인에게도 있으며 오직 극단적인 경우에만 도착증 환자가 되고 그것을 억압할 때 신경증 환자가 된다. 도착증과 신경증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억압된 성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예이다. 인간은 교육의 정도와 인성의 차이에 의해 도착증이 더 나타나거나 덜 나타날 뿐이고 지나치게 결백할 때는 오히려 신경증이 된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하나라는 것은 공격성과 수동성, 남성성과 여성성이 하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간은 원래 양성성이었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여성이론에 공헌한 부분이다. 전희(fore-pleasure) 역시 유아기 성이 억압되었지만 되돌아오는 예를 보여준다. 성은 두 가지 성향을 지닌다. 어릴 적 어머니의 보호를 받던 유아기 성인 '애정성향'과 사춘기부터 발달되는 '관능성향'이다. 나르시스적 자발적 성애의 단계가 억압된 후 성감대는 온몸에서 특정 부위로 축소된다. 사춘기가 지나면 남녀의 구분이 명확해지고 성은 대상을 찾는다. 자기성애에서 대상을 향해 옮아가며 성은 남녀가 결합하여 자식을 낳는 사회적 이익(후에 프로이트는 이 성본능도 역시 자아보존 본능이라 하여 삶 본능의 범주에 넣고 대신 죽음 본능을 대치시킨다)에 종속된다. 그런데 애정성향은 관능성향의 밑받침이 되어 애정과 육체가 조화를 이룬다. 정상적인 성생활을 위해서는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이 대상을 향한 관능과 조화를 미루어야 한다. 전희는 바로 억압된 애정성향이 되돌아온 흔적이다. 사춘기 이전에 유아기 성이 있었고 오이디푸스 상황 이전에 오이디푸스 전 단계가 있었다는 프로이트의 가정은 상징계의 성차를 의심해보고 가부장제를 무너뜨리려는 여성이론가들에게 이론적인 뒷받침이 되었다. 특히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인 엘렌 식수스의 '여성적 글쓰기'나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기호계의 저항은 바로 남녀의 성차가 없던 유아기 성인 양성성에 뿌리내린 이론들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이론이 늘 그렇게 여성들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후기에 가서 그가 초자아와 거세 콤플렉스를 강조할 때 그는 당대 가부장제 질서를 거와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초기에 무의식이나 타자를 강조하는 혁명적인 글 속에서도 이런 보수적인 측면은 언뜻 보인다. 사춘기 이후성에서 남아와 여아가 적극성과 수동성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은 아마도 그 악명 높은 '남근선망' (penis-envy)이라는 용어일 것이다. 남근의 유무에 의해, 눈에 보이는 해부학적 특성에 의해 그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규정지었고 이런 암시는 후기의 글들에서 본격적으로 발전되며 되풀이된다.
20세기 전반부 존스(Ernest Jones)나 호나이(Karen Horney)와 같은 여성이론가들이 프로이트의 거세 콤플렉스에 반발하고 프로이트를 반여성주의자로 규정한 것은 특히 그의 후기의 글들 때문이었다. 1970년에 나온 케이트 밀렛의 '성의 정치학'(Sexual Politics)에서도 프로이트는 반 여성주의의 대표적 인물로 비난을 면치 못한다. 그 이후 프랑스 해체론에 영향을 받은 영국의 마르크시스트 줄리엣 미첼(Juliet Mitchell)이 20세기후반부의 지적 흐름을 감지하고 프로이트를 제대로 읽어서 여성이론에 보탬이 되게 하자는 글이 나을 때까지 프로이트는 여성들의 적이었다. 그러면 이제 프로이트의 후기 글들, 그가 모더니즘 시대의 고전적인 분위기를 초자아에 담고 현실을 충실히 설명하려 애썼던 보수적인 글들 가운데 여성성을 규명한 몇 편을 살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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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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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잡편
<잡편> 역시 <외편>과 동일하게 각 장의 제목이 서두의 두세 자를 따서 명명되어 있다. '경상초', '서무귀', '측양', '외물', '우언', '양왕', '도척', '설검', '어보', '열어구', '천하' 등 11장으로서, 사람 이름으로 된 제목이 5장이나 도어 주목을 끈다. 소식은 이 중 '양왕', '설검', '어보' 3장은 천박하여 도에 미치지 못하므로 명백한 위작이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또한 '우언'과 '천하'는 발문 같은 성격을 띠어 장자 사상의 본질을 요약, 논찬하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내편>과 <외편>보다는 문장의 품격이 치졸하고 논리의 전개가 단순한 점도 없지 않다.
경상초의 번민 - 경상초
노담의 제자에 경상초란 자가 있었는데, 노담의 도의 한 조각을 얻어 북쪽의 외루산에서 살았다. 그 하인 중 똑똑한 자는 내보내고, 그 계집종 중 고분고분하고 어진 자는 멀리 하여, 추한 자들과 함께 살고 열심히 일하는 자들만을 부렸다. 3년이 지나자 외루산은 풍족해졌다. 외루산 사람들이 서로 모여 말했다. "경상자가 처음 왔을 때, 우리는 놀라고 이상하게 여겼다. 지금 우리가 하루하루를 계산하면 부족하지만, 1년을 통해 계산하면 남는다, 그분은 성인이 아닌가? 우리 그분을 시축과 사직으로 모셔보지 않겠나?" 경상자가 이 말을 듣고 남면하여 석연치 않게 여기자 제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경상자는 말했다. "너희들은 왜 나를 이상하게 여기느냐? 무릇 봄기운이 나면 온갖 풀이 생기고, 가을이 되면 온갖 곡식이 영근다. 봄과 가을이라 할지라도 그 이치를 얻지 않고는 그렇게 될 수 없다. 천도가 이미 행한 것이다. 내가 듣기로는 '지인은 작은 방에서 조용히 살지만, 백성들은 마음대로 날뛰어 오가는 바를 모른다.'고 했다. 지금 외루산의 하찮은 백성들이 쓸데없이 수군대며 나를 현인으로 받들려 하는데, 그러면 내가 사람의 표적*이 되지 않느냐? 내가 노자의 가르침에 면목이 없게 되기에 이러는 것이다."
* 사직 : 한 왕조의 기초, 또는 토지와 곡식의 신. * 표적 : 원문은 표로서, 자신을 남 앞에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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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제자 중에 경상초라는 사람의 있었다. 그는 얼마 동안 노자의 도를 체득한 다음 북쪽으로 가서 외루산에 머물러 살았다. 그는 하인 중에서 똑똑하고 분별력이 있거나 고분고분하며 마음이 착한 사람은 모두 내보냈다. 그리하여 경상초와 같이 사는 자들은 대개 무뚝뚝하거나 순박한 사람뿐이었다. 경상초가 외루산에 머문 지 3년, 그 일대 사람들은 생활이 풍족함을 깨닫고는 서로 놀라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저 경상 선생님이 처음 이사해왔을 때, 우리는 놀라고 수상히 여겼었다. 그런데 그후 우리들의 살림을 돌아보면 하루하루는 부족해도 1년을 두고 계산해보면 수입이 남아돌아 간다. 이것은 아무래도 경상 선생님 덕택일 것이다. 그분이 성인이 아니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분을 시축처럼 받들고, 사직으로 모시자."
이 말을 전해들은 경상초는 남쪽을 보고 앉은 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보았더니 경상초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희들에겐 내가 이상하게 보이느냐? 무릇 봄기운이 돌면 온갖 초목이 싹트고, 가을이 되면 모든 열매가 영근다. 그러나 봄이나 가을 역시 자연의 법칙에 의거하지 않으면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뿐, 나 때문이 아니다.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지인은 조그만 방에서 고요히 살뿐,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며, 백성들은 마음대로 행동하여 무엇이 도인지 모른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삶들의 표본이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되면 나는 가르침을 따르지 못한 것이므로 스승님께 면목이 없다. 그 때문에 언짢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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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말글/국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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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길 쓸 별의 노래
옛날 동쪽 물가에 건달파(乾達婆)의 논 성으로 바라보고 왜군이 왔다고 봉화불 사른 모양이야 세 화랑이 산구경한다는 말 듣고 달도 바삐 불 켜는 터에 길쓸 별 바라보고 혜성이야 말한 이가 있다. 아아 길잡이 하러 떠갔더라 이에 벗들 궂히는 빗자락 별이 있을고 ('삼국유사'에서)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 나라 일본. 왜군이 쳐 들어 옴을 노래로써 경계하고 있다. 이 노래에서 혜성을 길쓸이별이라 하고 세 화랑이 산구경하러 감은 무슨 뜻인가. 그 중요한 때에 산구경이라니. 또 건달파가 노래와 춤을 추던 사람인데 왜군이 침입했는데 무슨 건달파가 있어야만 한단 말인가. 참으로 해괴한 일이지를 아니한가. 해를 초점으로 하여 타원으로 돌아 가는 별이 혜성이다. 흔히 살별, 꼬리별이라 하며 오늘날 가끔 64년만에 찾아 온다는 헬리 혜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행여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면 그 건 곧 이 땅의 끝이 나고 만다는 엄청난 사실인바, 왜적을 이에 비유하다니. 그 제나 이 적이나 일본 사람들은 언제나 힘겨운 사람들이었다. 얼핏 보아서는 빗자루처럼 보이니까 빗자루 별로 불러서 이상할 건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비로 쓴다면 길을 가로막는 왜군을 쓸어 버린단 말인가. 그렇다. 왜군의 앗음을 물리침으로 평화를 되찾고 우리의 길을 걸을 수가 있었던 정황. 융천스님은 마침내 '길을 쓸어 내기를 별에게 기도했던' 것은 아닐런지. 옛부터 별님에게 행복을 빌었음은 우리 민속에서도 드러난다. 혼인할 때 초례청에 든다고 하는데, 여기 초례의 초(醮)가 별을 보고 점을 치고 복을 빈다는 뜻이니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도 같은 뜻으로 쓰인 경우이다. 사람이 다니는 길뿐만이 아니고 군인의 길, 학도의 길, 물길, 불길과 같이 길은 참으로 다양하다. 길이란 '긷-깃'에서 갈라져 나온 말로서 보금자리로, 일터로 통하는 공간을 이른다. 새가 깃 들인다에서 '깃'은 집이요, 보금자리이니까 말이다. 한데, 왜군이 우리들의 길을 막았으니 그 집안이며 나라가 편할 턱이 있을까.
길이 막혔는데 세 화랑인들 어떻게 산구경을 갈 수가. 또 무슨 놈의 산구경이라니. 이거야 말이 되질 않는다. (허.참). 하필이면 또 셋일까. 하늘, 땅, 사람일까. 아니면 임금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일까. 아니면 신(神)과 인간, 그리고 대자연일까. 상황으로 보아 왜군과 싸우려는 우리 모든 이들일게다. 거기에 임금이, 신하가, 백성이 따로 있을 수가 없는 것을. 혜성 곧 왜군이 쳐들어 옴을 횃불로 알렸던 것이다. 정신 없이 건달파의 노래와 춤을 즐기는 이들을 향해서. 횃불로 잘 안되니까 밝은 달에게 알려 달라는 기원을 겸하여서, 달은 극락으로 오가는 석가세존의 사자이니까 부처님의 법력(法力)을 빌어 보려는 애씀은 아니었을까. 산구경의 본 바탕은 무엇일까. 흔히 사냥이라고 하지만 기실 헤치고 보면 전쟁 훈련을 하기 위한 산행(山行)이었던 것이다. 용비어천가 에서는 임금이 직접 산행하였음을 예로 보이거니와 소리가 바뀌는 과정에서 '산행-사냥'이 된 걸로 보인다. 이르자면 짐승을 적으로 보고 전술을 갈고 닦는 싸움마당이 곧 사냥터란 말이다. 이제 화랑이 군사를 이끌고 전쟁 훈련을 하려는데 느닷없이 혜성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바로 그 왜군이 갑자기 쳐 들어 온 것이다. 싸움을 알리는 횃불도 필요했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달을 횃불 삼아서 바쁘게 싸움터로 나아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 길잡이는 곧 화랑이란 생각을 할 수 있다. 막느냐 못 막느냐 하는 기로에서 길잡이란 흥망성쇠를 가늠하는 주요한 구실을 한다.목숨을 걸고 왜군을 물리침으로써 마침내 건달파와 같이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과 평안을 안겨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이 노래에 담겨 있다고 본다. 길쓸별의 별은 소리 상징으로 보아 '불'이 된다. 역사로 보면 광명을 숭배하는 태양숭배요, 어두운 밤을 밝히는 하늘에 비친 또 하나의 횃불일 수도 있다. 위험신호임과 아울러 어려움에 대비하라는 가르침이기도 하기 때문에 별은 아주 상징적이요, 암시하는 바가 크다. 나라와 겨레의 평안을 비는 융천 스님의 절절한 소원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높고 빛난다. 노래의 가락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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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은 미국의 수도가 아니다
미국의 법적 수도이자 미국 정부의 중심지는 콜롬비아 특별구이다. 헌법 8절 1항에는 콜롬비아 특별구의 위치와 함께 의회의 승인 콜롬비아 특별구가 미국 정부의 영원한 중심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메릴랜드와 버지니아 양도법, 국회법(1790년 7월 16일), 특허권에 관한 서문, 1791년 5월 30일에 제정된 개정 법률안 등에는 콜롬비아 특별구를 분명히 미국 정부의 영원한 중심지로 명시해놓고 있다. 그리고 아담스 대통령은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 행한 연설에서 콜롬비아 특별구를 미국의 수도로 언급했다. 이에 응답이라도 하듯 미국 의회에서도 콜롬비아 특별구가 법적으로 미국의 수도임을 되풀이하여 강조했다. 그러나 의회는 미국의 수도와 관련된 법조항을 한번도 부정하거나 개정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의회가 어떤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 미국의 법적 수도는 워싱턴이 아닌 콜롬비아 특별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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