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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08호
단기 4343. 3. 3 (음력 1. 18)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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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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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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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한 훌륭한 인생을 만들라. 인생은 짧고 곧 지나간다.(오울디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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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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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용어
남쪽에서는 입시철만 되면 일류 대학의 의대와 한의대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의사가 인기 직업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북쪽에서는 의사가 국가에 속하기 때문에 남쪽처럼 인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북쪽에서는 시티(컴퓨터 단층촬영), 엠아르아이(자기공명장치) 등과 같은 첨단 장비나 동위원소를 이용한 기능 검사 용어, 혈액검사 용어, 정신과 용어, 신경과 용어가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력을 잃은 눈동자의 색이 푸르게 보이는 ‘녹내장’은 ‘푸른동자’이고 ‘단백질’은 ‘계란소’이다. ‘달걀’은 ‘닭알’(발음은 [달갈])이라고 하면서 단백질을 계란소라고 하는 것이 이색적이다. 척추동물의 간에서 만들어져 쓸개에 저장되었다가 십이지장으로 가는 것으로서 주로 지방질의 소화액인 ‘담즙’은 ‘열물’이라 한다. 여자에게서 유전되어 남자에게도 나타나는 것으로서 조그만 상처에도 피가 쉽게 나고 잘 멎지 않는 ‘혈우병’은 ‘피나기병’이라 한다. 또 ‘위염’은 ‘가슴쓰리기’, ‘제왕절개’는 ‘애기집가르기’, ‘좌약’은 ‘끼움약’, ‘자궁’은 ‘애기집’, ‘적혈구’는 ‘붉은피알’, ‘형광현미경’은 ‘반디빛크게보기’, ‘흉강내시경’은 ‘가슴안보개’, ‘생리’는 ‘달거리’, ‘부목’은 ‘덧대’, ‘멸균’은 ‘균죽이기’, ‘십이지장’은 ‘ㄷ자밸’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가슴쓰리기’는 위염의 증상을 말하는 것으로 의학 용어로는 적절하지 않아 보이고 ‘애기집가르기’는 너무 섬뜩한 느낌을 준다.
전수태/고려대 전문교수
코펠
집에서 멀리 떠나 경치 좋은 산이나 들에서 밥과 국을 지어 먹으려면 짐을 간편하게 꾸리는 것이 좋다. 짐이 무거우면 즐거운 여행이 자칫 고행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가 반드시 챙기는 것이 ‘코펠’과 ‘버너’(burner)이다.
코펠은 여러 크기의 냄비를 겹겹이 넣고 마지막에는 조그마한 주전자와, 손잡이가 접어지는 국자 정도를 넣는 취사도구이다. 코펠의 어원은 독일말 ‘코허’(Kocher)인데, 이는 ‘요리하다’라는 뜻인 ‘코헨’(kochen)에서 나온 말이다. ‘코헨’이 영어 ‘쿡’(cook)과 어원이 같기 때문에 ‘코허’는 요리기구를 뜻하는 영어 ‘쿠커’(cooker)와 같은 말이 된다. 그런데 ‘코허’가 일본말에서 ‘곳헤루’(コッヘル)로 받아들여졌고, 이것이 우리말에 들어올 때 원어를 잘못 해석해 ‘코펠’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촉음(ッ)이 있어 원래가 ‘ㅍ’에 해당하는 소리였던 것으로 생각할 만했고, 일본말에서는 독일말 ‘헤어’(Herr)와 ‘헬’(Hell)이 모두 ‘헤루’(ヘル)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펠’이 일본말을 통하지 않고 독일말에서 들어왔다면 ‘코허’가 되었을까? 외래어는 들어오면서 또는 들어와서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영어를 통해서 들어왔다면 ‘쿡셋’(cookset)이나 그 비슷한 말 혹은 그 대표적인 상표 이름이 지금의 ‘코펠’을 대신할 것이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관
동서남북 순서
방위를 나타낼 때 우리는 동-서-남-북 순으로 말한다. 그래서 동쪽과 남쪽 사이는 동남쪽이라고 부른다.‘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오백리….’ 서쪽과 북쪽 사이는 서북, 동쪽과 북쪽 사이는 동북이 우리 정서다. 영어권은 북(north)-남(south)-동(east)-서(west) 순이다. 이 기준으로는 동남풍이 남동풍, 서북풍이 북서풍이다.
‘Mac-,Mc-’의 한글 표기
영어 Mac-,Mc-은 c,k,q 앞에서 ‘매’,l 앞에서 ‘매클’로 적는다. 따라서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John McCain은 존 매케인, 미 25대 대통령 William McKinley는 윌리엄 매킨리로 표기한다.McQueen은 매퀸,Maclay는 매클레이가 된다. 다른 자음 앞에서는 ‘맥’이다.MacMillan은 맥밀런이다.
애시당초
'바보 같은 사랑은 애시당초에 시작하는 게 아니다. 애시당초 우리 사이는 잘못된 만남이었다.' '제가 담배를 끊을 거라는 생각은 애시당초 하지 마세요.' '일을 할 때 끝까지 해낼 자신이 없으면 애시당초 시작하지 마라.' 이처럼 '애시당초'는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애당초(-當初)'가 맞는 말이다. '애시당초'는 '애시+당초'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애시'는 '애초(-初)'의 사투리다. '맨 처음'을 뜻하는 '애초'는 '그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녀의 맑은 눈을 보는 순간 내 애초의 계획을 포기했다'와 같이 사용된다. '당초'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 처음'을 뜻한다. '일이 당초 생각과는 다르게 풀렸다/ 그의 본심이 어디에 있는지는 당초부터 알 만한 것이었다'처럼 쓰인다. '애당초'는 '애초+당초'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애초' 또는 '당초'를 강조해 이르는 말이다. '그런 일은 애당초에 거절했어야 했다/ 기대할 수 없는 희망이라면 애당초에 단념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다'처럼 쓰인다. '애당초'와 같은 뜻으로 '애저녁'이란 말이 쓰이기도 하는데 이 역시 사투리다.
검식, 감식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의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든 듯하다.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의 유무나 진위를 밝혀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유전자 검사다. 유전자를 과학적으로 분석.감정하는 작업을 '유전자 검식'이라 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유전자 감식'이 맞다. '검식(檢食)'은 음식물에 어떤 이상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음식물을 내놓기 전에 먼저 먹어 보는 것을 말한다. '식중독에 대비하기 위해 낡고 비위생적인 급식 시설을 보완하고 매일 검수와 검식을 한다' '왕이 먹는 모든 음식은 사전에 엄격한 검식 절차를 거친다' 등과 같이 쓰인다. 이 '검식'은 사실은 일본식 한자어다. 우리식으로 '음식 검사'로 바꿔 쓰는 것이 좋다.
'감식(鑑識)'은 어떤 사물의 가치나 진위를 알아내거나 범죄 수사에서 필적.지문.혈흔(血痕) 등을 과학적으로 감정하는 일을 의미한다. 문화재 감식, 지문 감식, 보석 감식, 현장 감식 등처럼 쓰인다. 따라서 '유전자 검식'도 유전자를 가지고 과학적으로 분석.감정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유전자 감식'이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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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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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 성미정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리도 발 못지 않게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머리까지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어디부터 시작했나요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였나요 약간 휘어진 새끼손가락이었나요 지금 당신은 저의 어디까지 사랑하나요 몇 번째 발가락에 이르렀나요 혹시 아직 제 가슴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요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그러했듯 당신도 언젠가 저의 모든 걸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구두에서 머리카락까지 모두 사랑한다면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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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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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월드컵 - 송지은
충격의 사이렌은 없어도 좋았다.
활활 달아 오르는 이 놀라운 단결력
동방의 시계 바늘을 돌려, 돌려 어제로.
한 순간 위기 일발의 전쟁지로도 만들고
한순간 근육적인 show로 긴장의 넋을 빼 놓는
엄청난 그 나라로부터 날아 오는 적색, 청색 소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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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평론 /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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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 최재봉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 박태순 `밤길의 사람들'
“시위대는 매일 밤마다 명동을 순회하고 있었고, 강강수월래를 하고 있었다. 을지로쪽에서 와아와아 하다가 신세계쪽으로 돌고 퇴계로 쪽으로 술래잡기를 하다가 다시 충무로쪽으로 제일백화점 앞으로, 그리하여 명동성당 쪽으로 원무의 무대를 바싹 좁혀 놓곤 했다. 밤길의 사람들은 새로운 기질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최루탄이 터지면 마치 불꽃놀이에 놀란 강아지들처럼 흩어졌다. 그러나 금세 다시 모여들었다. 결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박태순(54)씨의 중편 <밤길의 사람들>은 1987년 6월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어떤 열기에 관한 이야기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에 요약된 그 열기는 많은 사람들을 밤길로 내몰았다. 4·19나 부마사태, 그 이전의 농민군 봉기에 필적할 함성과 흥분이 그 밤길을 채웠다. <밤길의 사람들>은 비록 그 범위를 서울 영등포와 명동 일대로 국한시키고 있지만,
1987년 6월의 밤과 낮에 그 열기는 휴전선 남쪽의 거의 전부를 채우다시피 했다. 12·12 쿠데타와 광주학살을 통해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두번째 집권을 위한 시나리오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 86년엔 서울 아시안게임을 성공리에 열었고, 88년엔 꿈과도 같은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다. 국민들은 수출고와 국민소득 향상으로 대별되는 경제성장에 현혹 돼 어느정도의 정치적 부자유쯤은 용납하려는 것 같았다. 재집권을 위한 권력쪽의 의욕은 5·3 인천사태와 부천서 성고문 사건, 건국대 사건과 같은 무리수와 강압책도 마다하지 않았다. 87년 초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던 서울대생 박종철이 숨진 사건은 “(책상을)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식의 어거지로 흐지부지되는 듯했다. 그것은 5공화국의 저 숱한 의문사의 하나로 역사의 갈피에 접혀지려는가 보았다.
정권은 마침내 “(직선제로의)개헌은 없다”는 이른바 4·13 호헌 조처를 발표하고, 6월10일의 대통령후보 지명을 위한 민정당 전당대회를 예고한다. 이에 맞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한 재야와 범민주 세력은 민정당 전당대회일에 맞추어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라는 긴 이름의 집회를 벌이기로 한다.
박태순씨의 소설은 서춘환과 조애실이라는 남녀 노동자의 눈을 통해 그 해 6월을 증거한다. 한때는 중동 건설현장에도 다녀온 적이 있지만 지금은 이렇다 할 근거가 없는 뜨내기 신세인 `노가다' 서춘환과, 열여섯 나이부터 스물여덟이 될 때까지 종사해온 노동의 삶을 마감하고 이제는 가정을 이루어 안주하고 싶어하는 조애실. 그해 6월의 최루탄과 화염병, 눈물과 재채기 속에서 이 둘은 어울리지 않게도 결혼을 전제로 한 데이트를 한다. 그러나 남자의 경제적 무능과 여자의 정신적 피폐는 그 데이트에서 활기와 의욕을 앗아가 버린다.
소설 속에서는 첫번째 만남이자 그들의 인생에서는 두번째 만남이 있던 6월 초의 어느날 밤 바깥 사회를 들끓게 하던 열기와 함성은 다만 이야기의 배경으로만 제시될 뿐이다. 서춘환과 조애실이 데이트 삼아 걷는 영등포의 대로와 골목에서는 “노동삼권 보장하라!”는 구호와 “우리 승리하리라”는 노래가 터져나오고 있었지만, 결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던 적령기 남녀 노동자에게 그것들은 당장의 관심사에서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었다.
두사람의 세번째이자 소설에서는 두번째가 되는 만남은 6월14일 아침에 이루어진다. 조애실을 포함한 2백여 학생·시민이 농성 중인 명동성당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그 안에 서춘환이 끼어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실은 저 역사의 날 6월10일 오후에 서울역 휴게실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던 것이지만, 조애실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긴 바 있었다. 노동운동 경험이 있는 조애실이 명동성당 농성자들 속에 들어 있을 것으로 짐작한 서춘환은 그날부터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맴을 도는 `밤길의 사람들'에 합류한다. 그의 눈이 사회와 역사를 향해 열린다.
“이 혼란, 무질서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시간은 고장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시간이 해방을 구가하고 있었다. 서춘환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가를 정말이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앞서 영등포 거리에서의 맥빠진 데이트가 역사의 변방에서의 만남이었다면, 명동성당에서의 그들의 해후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이루어진 만남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 새벽을 여는 밤길의 사람들로서 그들의 만남은 더이상 역사와 무관한 만남일 수는 없게 됐다. 소설 속에서 명확히 제시되지는 않지만 그들의 결합은 비로소 역사적 필연성조차를 지니게 된다. 6월항쟁의 와중에 터진 연세대생 이한열의 직격 최루탄 피격 사망 사건은 밤길의 사람들을 한층 분노케 했으며 권력의 저항의지를 한결 꺾어 버렸다. 민정당 대통령후보 노태우씨는 6월29일 직선제 개헌을 뼈대로 한 이른바 6·29선언을 발표한다. 언론은 `중산층의 승리'라며 이를 반겼다. 넥타이 부대로 불리던 사무직 노동자들이 밤길의 사람들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것을 염두에 둔 명명이었다. 그것은 과연 승리였을까? `항복선언'이라고도 불린 6·29선언이 있기 훨씬 전 조애실을 포함한 명동성당 농성자들은 자체 투표를 통해 근소한 차로 해산을 결정한 다음 설움이 복받쳐서 통곡을 한다. 그들은 왜 울었을까?
“그렇게 갈구했어도, 이 땅에 우리 모두가 원하던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 그러니 우리의 농성은 성공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도 속상하고 분해서 울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사실입니다.”
<밤길의 사람들>에서 작가의 시각은 `중산층의 승리' 운운했던 언론의 시각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그것은 그가 넥타이 부대나 대학생을 제쳐두고 한 쌍의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난민과 부랑 노동자를 거쳐 조직 노동자로 문학적 시선을 옮겨온 작가는 이 소설에서 `과연 노동자들에게 6월항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양김씨에게는 6월항쟁이 사면복권과 직선제를 가져다 주었겠고, 중산층과 학생운동권은 그 나름으로 87년 6월을 평가하겠지만, 노동자들에게는 그것의 성과보다는 이제부터 쟁취해야 할 게 무엇인가를 알게 했다는데 그해 6월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해 가을 해방 뒤 최대 규모의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진 데서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가는 명동성당 농성에 참여했던, 전태일의 누이동생 순옥씨에게서 농성장의 분위기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전태일의 분신 때 그 르포를 썼고, 청계피복노조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전태일의 어머니인 이소선씨에 관한 소설을 쓰고자 가족과 자주 접촉하던 중이었다. 서춘환이 밤길의 사람들에 섞여 눈물 콧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하며 오갔던 명동 거리에서 이제 그 흔적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입구에 세워진 `평화의 거리' 간판을 지나 명동 거리를 걷노라면 각종의 옷가게에서는 악다구니와도 같은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화사한 차림의 사람들은 생각없이 어깨를 툭툭 치며 지나간다. 그 거리에 여전히 사람들은 북적대지만, 그들이 연출하는 것은 서춘환이 목격했던 생산적인 무질서는 더이상 아니다. 일상의 늪에 함몰된 타자들의 섬. 광장이면서도 실은 수많은 밀실의 집합에 불과한 이 거리의 복판에 명동성당이 있다. 한때는 `민주화의 성지'로 불렸던 이곳 역시 이제는 본디의 종교적 구실에 자족해 있는 모습이다. 오랜만에 찾은 성당 앞에서 작가가 말한다.
“4·19에서 87년까지가 한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90년대란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지난 연대의 거대담론이, 고스란히 부활하지는 않더라도, 그 기저의 정신만은 어떤 형태로든 되살아나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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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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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4장 지혜의 메아리
천국
천국을 찾아 헤매지 말라.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고, 지금 밟고 있는 땅보다 더 천국인 곳은 없다. 천국(가장 행복한 곳이라는 상징적 의미)을 그리워하는가? 그렇다면 다음 질문에 대답해 보라. 나는 지금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있는가? 나는 지금 두 다리 펴고 잠잘 수 있는 공간이 없는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타인의 강압에 의한 것인가? 이 물음에 그렇다 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지옥(가장 불행한 곳)에 살고 있음이니 탈출하라. 아니오 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천국에서 살고 있음이 분명하니 투정 부리지 말고 살아가라.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은 천국의 모형이다. 스스로 노력만 하면 얻고 싶은 것 다 얻을 수 있고,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릴 수 있고, 먹고 싶은 것 다 먹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 다 갈 수 있는 이 땅이 진정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천국은 죽어서 누리는 곳이 아니라 살아서 누리는 곳이다. 살아 있는 자체로써 우리는 천국에 있는 것이고, 우리에게 지옥은 죽음뿐이다. 우리는 너무 편하고 행복한 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 나은 천국을 원한다. 고통 없고 불행 없이 살고 있기 때문에 죽어서 천국갈 생각을 한다. 자유를 빼앗겨 본 사람이라면, 굶주림으로 고통받아 본 사람이라면 이곳이 얼마나 자유롭고 등 따뜻한 천국인가를 실감한다. 그들은 비록 호강을 받지 않아도 자유롭고 등 따뜻하다는 사실만으로도 더 이상의 천국을 원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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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사회 / 문화 / 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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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성과 권력 - 권택영
제1부 무의식과 성이론
1. 무의식과 성
사장이 베푸는 파티에 참석한 어느 사원이 축배를 들고 사장의 건강과 회사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우리 모두 사장님을 위해 트림을 합시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프로이트는 이 트림이란 말이 우연히 튀어나온 게 아니라 사장을 존경하는 사원의 심중에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뒤틀림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트림'이라는 단어가 무엇에서 파생되었는지를 밝히면서 그는 인간의 말실수는 의식이 믿는 것을 가로막는 무의식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았다. 19세기 영국작가 찰스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에 이런 장면이 있다. 가난한 고아 핍이 어느 날 부유한 해비샴의 대저택에서 아름답고 오만한 에스텔라를 만난다. 그녀로부터 모욕을 당했음에도 그는 그날 이후 줄곧 그녀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신분의 차이를 의식하기에 그녀를 무시하려 했지만 그녀에게 매료된 핍의 본능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나타난다. 해비샴 저택을 '해비-텔라'라고 잘못 말해버린 것이다. 우리의 의식 밑에는 사회에서 금기하지만 본능이 원하는 소망을 묻어둔 거대한 창고가 있어서 의식의 빗장을 뚫고 틈틈이 솟아오르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말실수가 아닐까. 비록 보이지 않지만 그 거대한 본능의 저장고는 우리를 단순히 사회적 동물로만 만들지 않고 언제나 본능에 침해받는 갈등의 존재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프로이트의 가설은 이 거대한 창고가 있다는 데서 시작된다. 꿈은 현실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옛부터 꿈의 신비를 푸는 일은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해왔다. 간밤의 꿈자리가 사나우면 그날의 일이 심난하게 느껴지고 돼지꿈을 꾸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 아기를 갖은 후에 꾸는 신비한 꿈은 태몽이라 하여 한 인간의 미래를 점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꿈속에서 갈증이 나 물을 마시고 또 마셔도 해소되지 않을 때 우리는 현실에서 목이 마른 것을 깨닫는다. 또 실제로 소변이 마려울 때 화장실을 찾는 꿈을 꾼다든지 오줌을 싼 아이가 홍수가 난 꿈을 꾸는 것 등 육체적인 소망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늘 의식 속에서 그리워하는 사람보다는 잊혀진 사람이 엉뚱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꿈은 현실에서 억압된 무엇인가가 있다는 증거이고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을 에둘러 이루는 소망충족의 길일는지 모른다. 프로이트에 게 꿈은 무의식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왕도였다.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 애의 침상을 지키던 아버지가 잠깐 옆방으로 눈을 붙이러 간다. 그는 아들의 방에서 불길이 훨훨 치솟는 꿈을 꾼다. 아버지, 아버지, 내가 불에 타는 게 안 보이세요? 아들은 외쳤다.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아들의 방으로 달려갔다. 정말로 그 방에서는 불길 이 치솟고 있었다. 프로이트의 이 유명한 일화는 무엇을 말하는가. 물리 적인 현실이 꿈속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죽은 아들이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소망이 꿈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이라는 프로이트의 작업의 첫획을 그은 책은 '꿈의 분석'이었다. 그의 나이 44세가 되던 1900년에 출간되어 첫판이 팔리는 데 수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고전이 되었다. 그에게 꿈은 말실수와 함께 인간의 의식 저변에 묻힌 무의식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꿈이 재현되는 방식을 설명했고 그것은 소쉬르 언어학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언어의 속성, 아니 비유체계의 속성을 설명한 선구적 작업이 된다. 현실에서 금지된 인간의 소망은 그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의식 밑에 잠재해 있다가 의식의 고리가 헐거워진 틈을 타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러나 그대로 재현되지 못하고 시처럼 압축되고 무대 위의 배우처럼 다른 모습으로 위장한다. 꿈사상이라는 이야기를 몇 장면으로 압축하고 그래도 안심이 안 되어 옆의 것과 슬쩍 자리를 바꾼다. 압축(condensation)과 전치(displacement) 이다. 이 두 단계를 통해 억압된 내밀한 욕망은 몇 개의 그림으로 재현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꿈작업은 훗날 야콥슨이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언어 의 속성을 압축(은유)과 전치(환유)로 푼 것과 같다. 모든 비유체계는 은유와 환유로 되어 있고 문학 역시 마찬가지라면 프로이트가 꿈을 해석한 방식은 바로 인간의 사상과 재현의 체계를 설명한 셈이 된다. 그러기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과학이었고 동시에 비 과학이었다. 언어 혹은 꿈 작업은 은유와 환유로 이루어졌고 그것은 대체라는 절대가치와 옆의 것을 짚는 허구가 함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과학 속에 개입되는 이 허구 때문에 문학과 예술이 존재하고 프로이트의 이론 역시 해석되고 재해석되는 것은 아닐까.
프로이트가 그토록 무의식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신분석자로서 환자의 신경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또 유대인으로서 박해받는 까닭을 짚어보고 싶어서다. 문명이 발달되는데도 우리는 왜 행복하지 못한가, 바로 그 존재의 불안을 해석하기 위해서다. 그는 환자뿐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문명, 존재의 궁지를 분석하는 분석가였다. 우선 최면요법보다 자유연상법을 선호했던 그는 환자의 기억을 되살려 억압된 것이 무엇이고 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지 알아야만 했다. 화산폭발로 무너진 폼페이의 잿더미 속에서 옛 도시의 모습을 재현해 내듯 그는 환자의 기억 속에 묻힌 상흔을 되살려내려 한다. 무너진 잿더미가 곧 무의식이고 그 속에 여기저기 흩어진 파편들을 되살려내 조각들을 맞추어 이야기 (서사, narrative)를 만들어내야 한다. 신경증의 원인이 되는 상흔, 사회와 현실이 금지했지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어떤 것을 캐어내야만 환지치 병이 치료되기 때문이다. 쾌감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은 타인과 어울려 살아야 되는 현실 속에 서 금지되고 억압된다. 무의식은 바로 이 만족과 충족을 원하는 본능이다. 그러므로 이기적이다. 그런데 이 본능은 사회가 억압해도 소멸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다른 모습으로 실현을 꿈꾼다. 프로이트는 본능을 중시한 당대의 자연주의 사상에 에너지 불변의 법칙을 결합했다. 리비도라는 에너지는 형태를 달리할 망정 그 총화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꿈은 잠 속에 등장하는 리비도 충족의 한 형태다. 말실수에도 소망이 튀어나오고 기억을 되살리는 환자의 대화 속에도 소망이 깃들어 있다. 그러면 인간에게 최초로 억압된 가장 근원적인 상흔은 무엇일까. 가장 본능적인 리비도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인간은 어머니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세상에 태어난다. 마치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듯이 어머니는 대지요, 고향이다. 그의 첫 울음은 고향과의 이별, 대지와 분리되는 고통스러움의 표현이다. 그리고 한동안어머니의 품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자란다. 자리가 젖으면 갈아주고 울면 먹여주고 씻겨주고 안아준다. 아무도 아이에게 명령하거나 야단치거나 금지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나의 모든 것이고 나는 어머니의 모든 것으로 나와 어머니 사이에 틈새가 없이 완전한 합일을 느낀다(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이 행복한 시기를 프로이트는 '유아기',혹은 '근원 적 나르시시즘' 이라 이름 붙이고 약 2세에서 4제 사이로 본다. 그 이후부터 금기와 억압이 일어난다. 아이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연인인 것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구순기, 항문기, 남근기라는 시기적인 구분은 이후 이론가 들에 의해 재해석되기도 한다. 라캉은 유아기를 '상상계'라 하여 생후18 개월까지로 보고 크리스테바는 유아기를 세분하여 여성이론을 만든다. 어쨌든 사회를 의식하고 현실 속에서 압박감을 느끼며 사는 인간에게 현 실을 모르던 시절은 지복의 시기였고 이 평화와 이기적인 충족에 대한 소 망은 억압될지라도 결코 포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는 성인이 되어 거꾸로 추론한 가설의 산물이다. '꼬마 한스에 관한 분석' '후기'는 이것을 기막히게 잘 표현하고 있다. 한스의 아버지가 기록한 긴 보고서를 그대로 소개한 후 긴 세월이 지나 한스를 만난 프로이트. 한스는 그 속에 그려진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전 혀 낯설게 느낀다. 내가 아니라고. 억압된 것은 바다 저 밑에 깊숙이 가라앉은 타이타닉의 잔해와 같아 물위에 있는 나의 시선으로는 볼 수가 없다.
인간의 원초적 행복은 어머니와 한 몸이었을 때이고 원초적 상흔은 어머니와의 헤어짐이다. 아버지 때문에, 아우 때문에 어머니를 빼앗길 때 그는 그 방해물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한다. 물론 그 증오는 억압되지 만. 어머니는 프로이트의 가설에서 쾌감원칙의 대상이요, 영원한 애인이며 삶의 목표요, 죽음으로 완성되는 최후의 목적지이다. 프로이트의 글, '세 바구니의 주제'(The Theme of the Three Caskets, 1913)를 보면 정신 분석에서 어머니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신화와 문학에서 되풀이되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세 번째 여신, 탄생 과 죽음의 여신이다. 아름답고 옳고 말이 없는 '리어왕'의 셋째 딸 코딜 리어를 비롯해 많은 작품들이 세 번째 것에 의미를 둔다. 마지막 선택으로 "바로 그것"인 세 번째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욕망을 드러낸다. 그는 아주 어릴 적에는 어머니의 품안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그리고 성장하면 어머니를 닮은 연인의 품에서 사랑 받기를 소망한다. 이제나이가 들면 아무도 그를 사랑해주지 않기에 대지의 품안에 안길 것을 소망한다. 흙은 세 번째 연인이요, 마지막 선택으로 어머니의 또다른 모습이다. 인간의 삶을 움직이는 근원적 대상으로서 어머니는 은유요, 연인과 대지는 어머니가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환유이다. 은유는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어머니이고 환유는 늘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잃어버린 어머니다.
억압된 것이 있고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된다는 프로이트의 가설은 그의 글 전체에서 다르게 되풀이되는 무의식이요, 타자이다. 이 리비도 불변의 법칙은 오늘날 푸코의 '성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데리다나 라캉등의 현대 '해체론'의 기원이 되고있다. 이성이 억압해온 감성은 제거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늘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고 중심이 억압한 주변, 제국이 억압한 야만인은 타자로서 중심 속에, 제국 속에 자리잡고 있다. 포스트모던 철학이나 미학, 그리고 탈 식민주의 이론들은 모두 이 타자가 있음을 보여주어 중심주의나 객관재현의 독재가 허구임을 드러낸다. 역사의 타자로서 여성들이 프로이트 이론에서 저항의 근거를 찾을 때 끌어내는 부분이 바로 이 무의식과 타자이다. 프로이트의 글, '가족 로맨스'(Family Romances, 1909)에서 무의식이라는 타자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어릴 적에 아이는 자신의 부모를 절대적이고 완벽한 최고의 존재라고 믿는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현실에 눈을 뜨면 아이는 부모를 타인과 비교하게 되고 그들의 왜소함에 실망을 느낀다. 게다가 동생이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빼앗기게 되면 질투를 느끼고 증오마저 경험한다. 아버지의 권위를 벗어나 독립하려는 아들의 노력은 현실에 대한 불만을 낳고 아들은 그 불만을 백일몽이나 공상으로 해소하려 한다. 공상 속에서 아들은 왕이나 멋진 기사, 우아한 황태자를 꿈꾸며 부모에 대한 실망을 위로 받는다. 가족 로맨스의 두 번째 단계에는 성이 개입된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늘 불확실한 존재이다. 이에 비해 어머니는 확고한 존재로 아이의 환상 속에 로맨스의 주인공이 된다. 아들은 아버지를 라이벌로 느끼고 아버지 에 대한 실망까지 곁들여 어머니를 사랑하며 내밀한 각본을 꾸민다. 자 신을 제외한 형제 자매를 모두 서자라고 믿고 그러기 때문에 누이들 가운 데 성적으로 끌리는 대상이 있으면 근친상간도 꿈꾼다. 프로이트는 이 글의 말미에서, 이런 각본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가 나무라겠지만 지극히 자연스럽게 시작된다고 말한다. 부모에 대한 지극한 애정 밑에 숨은 강한 증오심, 지나간 어린 시절에 대한 비대해진 그리움은 그런 사 악한 그림을 그려낸다. 인간은 그렇게 명료한 이성의 존재만이 아니요, 억압된 동물적 본성은 틈틈이 의식을 뚫고 솟아오른다. 프로이트는 이 글에서 억압된 무의식이 어떻게 돌아오는지 보여주고 그것이 성과문명의 이해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암시한다. 문명과 문화사란 아들이 아버지를 배반하며 독립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배반과 독립의 밑바탕에는 강렬한 애정과 실망에서 오는 증오가 깔려 있다. 가족 로맨스는 아이가 성장한 후에도 늘 그리게 되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로서 환상 속의 고귀한 남녀는 모두 어릴 적에 흠모했던 부모의 잔상이다. 그러므로 문명이 아무리 성본능을 억압해도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성인이 된 남성은 현실원칙과 쾌감원칙을 융통성 있게 수용한다. 만약 이때 결벽증과 죄의식으로 쾌감원칙이 돌아오는 것을 수용하지 못하면 신경증 환자가 되고 지나치게 수용하면 도착증 환자가 된다. 여성에게 신경증 환자가 더 많은 것은 결벽증 때문이다.
무의식과 타자의 귀환을 흔한 일상에서 찾는 프로이트는 성의 대상을 선택하는 흔한 예로 어머니에 대한 어릴 적 사랑이 어떻게 달리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고귀한 신분의 남자가 그에 걸맞은 여성을 아내로 맞은 뒤 그녀에게 애정을 전혀 못 느끼고 비천한 신분의 여자를 평생 동안 숨겨놓고 사랑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은 아주 흔해서 동양에서는 양반이 기생집에 드나들거나 소실을 맞는 게 당연시되었고 서양에서도 귀족이 비천한 계급의 정부를 두는 일이 흔하다. 아니 더 흔하게는 오늘날에도 결혼 후 곧 불감증에 빠지거나 같은 대상을 바꾸고픈 욕망은 사랑의 속성에 속할 정도다. 술꾼은 늘 같은 술을 마셔도 싫증이 나지 않는데 왜 사랑은 같은 대상에 싫증을 내는가. 성본능 그 자체 속에는 이미 완벽한 충족의 실현을 싫어하는 무언가가 들어 있지는 않을까. 맨 처음에는 그저 전화로 음성만 들어도 좋았다. 그 다음에는 만나서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고 그 다음에는 손길만 스쳐도 짜릿했으나 그 다음에는 손목을 잡고 입술을 찾고‥‥‥ 이렇게 사랑은 완벽한 충족을 모르는 욕망 그 자체다. 그래서 욕망은 욕망을 욕망 한다. 성본능과 현실이 타협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간의 주체를 욕망 하는 주체로 보았을 때 이 부분은 좀 더 명료해진다. 욕망의 본질은 바로 죽음 외에는 아무 것도 만족시킬 수 없는 '결핍'(lack)이기 때문이다. 헤겔이 인간은 욕망을 욕망하고 동물은 대상을 욕망 한다고 했을 때, 또 라캉이 인간 주체에 상상계라는 거울단계를 상정할 때 이들은 모두 성본능 속에 있는 결핍을 암시했다.
이제 프로이트의 글에서 이 부분을 짚어보자. 그의 글 전체가 이것을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랑이 지닌 보편적인 대상천시의 경향'(On the Universal Tendency to Debasement in the Sphere of Love, 1912) 은 특히 이런 성본능에 대해 잘 설명해준다. 왜 성본능은 장애물이 있어야만 더 증진되는가. 남성이 여성과 사랑에 빠질 때는 그녀를 과대평가 하다가 소유하고 난 후에는 과소평가 한다면 여성은 얼마나 불리한 입장에 서는가. 결혼 전까지 순결을 강요한 성이 결혼 후에 불감증에 빠진다면 그런 도덕이란 인간에게 이익만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미 성이론의 고전으로 불리는 '성이론에 대한 세 글'에서 암시된 것들을 이 글에서 다르게 되풀이하면서 무의식이 얼마나 일상에 끈질기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사랑은 두 가지 성향을 갖는다. 애정성향(the affectionate current)과 관능성향(the sensual current)이다. 전자는 유아기의 주로 2세에서 4세 사이에 가장 강하게 느끼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다. 자신을 보살펴주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은 육체적 접촉과 정신적 평안이 완전히 일치하는 단계로 이 시기의 리비도를 자아보존 본능, 혹은 에고 본능이라 이름 붙인 다. 4세가 지난 후 아이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금지를 당하거나 부모로부터 꾸지람을 듣는다. 또 형제가 태어나 사랑을 빼앗긴다. 아 이는 이제 어머니로부터 받던 사랑을 포기하거나 억압한다. 유아기의 무한한 애정본능은 차츰 축소되고 사춘기에 이르면 남녀의 성차가 육체에 나타나면서 관능성향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억압된 것은 사라지지 않고 타자로 나타난다. 어머니에 대한 욕망은 원초적인 것이고 그것에 대한 금기는 너무도 강렬하여 이후의 많은 대체물들은 금기가 있어야 욕망이 가능하거나 증폭된다. 또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서 벗어나 지 못하고 고착되거나 어릴 적 부모의 성행위에서 우연히 받은 나쁜 인상 이 남아 있으면 주체는 막연히 내부에서 사랑의 행위를 억제하거나 막는 성향을 갖는다.
사춘기란 어릴 적의 나르시스적 에고본능이 억압되고 차츰 성본능으로 바뀌며 자기애에서 대상으로 애정이 옮아가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남녀는 결혼을 통해 그 동안 억압되어온 성본능을 해방시키는 게 아니라 다시 한번 현실원칙에 종속시킨다. 자식을 낳아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도덕적인 임무다. 그러기에 성본능은 필연적으로 완전한 만족을 얻기 어렵고, 오직 억압된 애정성향과 새롭게 태어난 관능성향을 잘 조화시켜야만 정상적인 성생활이 가능하게 된다. 무의식 속에 억압된 어머니에 대한 소망이 그토록 강한데 사회가 금지령을 내릴 때 성인이 된 남성은 어머니와 닮지 않은 여성을 찾으려 애를 쓴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여인은 어머니와 어딘지 닮아 있다. 에고 본능이 가치 있게 평가한 대상, 즉 존경하는 여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제 어머니를 천한 창녀의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애정의 대상을 관능의 대상으로 바꿔치는 것이다. 천한 여성에게만 성적 만족을 느끼는 남성은 어릴 적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너무 강하고 현실에서 만족을 못하기 때문이다. 금기가 있을 때만 성욕이 강해지는 것도 남성이 사랑에 빠진 여성 을 과대평가 하다가 소유하고 난 후에 과소평가 하는 것도, 어릴 적에 경험한 어머니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 사라지지 않고 나타나는 데 있다.
프로이트의 성 이론에서 무의식은 이토록 강렬하고 끈질긴 타자이다. 그것은 리비도요, 원초적 상흔으로 깊이 잠재하면서도, 신경증환자는 물론 정상인의 일상에도 표층에 흔적을 드러낸다. 그러면 이런 성이론들 은 여성이론가들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프로이트 자신이 남성이었는데 그가 여성에 대해 얼마나 알 것인가. 그러나 프로이트가 분석한 히스테리 환자들은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증상은 사회가 금기한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환자의 기억을 통해 무의식을 더듬으며 가부장제 사회가 억압한 여성의 원초적 소망과 경험을 읽게 된다. 그가 남긴 기록들은 인간 심리를 과학적으로 탐색하려 애쓴 흔적이다. 늘 불확실한 여운을 남기면서... 그러면 이제 프로이트의 성이론을 살펴보고 그것이 어떻게 혁명적이고 어떻게 보수적인지 알아본다. 혁신은 여성이론가들이 끌어내는 부분이고 보수적인 측면은 그들이 비판하는 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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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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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망아의 잠 - 지북유
설결이 피의에게 도를 묻자 피의가 말했다. "그대의 형체를 바로 하고, 시선을 한결같이 하시오. 장차 천화*에 이를 것이오. 그대의 앎을 거두고 헤아림을 한결같이 하시오. 신명*이 와서 머물 것이오. 덕이 장차 그대의 아름다움이 되고, 도가 장차 그대의 집이 될 것이오. 그대는 갓난 송아지처럼 눈을 뜨고 그 까닭을 알려 하지 마시오."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설결은 잠이 들었다. 피의는 크게 기뻐서 노래를 부르며 돌아갔다. "모양은 마른 뼈와 같고, 마음은 죽은 재와 같다. 실상을 아는 것을 참으로 하고, 까닭을 가지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다. 어둡고 깜깜하며 무심해서 함께 꾀할 수 없으니 저 자는 어떤 사람일까?"
* 천화 : 자연의 조화. * 신명 : 하늘과 땅의 신령, 즉 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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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결이 피의에게 도에 대해 물었다. 피의가 말했다.
"먼저 전신의 힘을 뺀 후 시선을 자연스럽게 하시오. 조화가 절로 몸에 갖춰지게 될 거요. 그런 다음 사려와 분별을 쫓아내 마음을 무로 하면 만유의 실상을 절로 느껴 깨닫게 되오. 그것이 곧 도와 한몸이 되고, 도의 움직임과 합치된 상태인 것이오. 금방 태어난 송아지와 같은 마음, 그리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의식조차 하지 않는 상태가 바로 그것이오."
이야기를 들으면서 설결은 어느 사이엔지 곱게 잠이 들어 있었다. 피의는 더할 수 없이 만족스러워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갔다.
"몸은 마른 나무, 마음은 죽을 재, 슬기를 버리고 참으로 돌아간다. 망연히, 그저 황홀히 텅 비어 밑바닥도 모르고 사람이면서 또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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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말글/국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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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원왕생(願往生)의 그리움
달님 이시어 이제 서쪽 나라로 가시나이까 무량수 부처님 앞에 두 손 모아 맹세하나이다 원왕생 원왕생 그리워 하는 이 있다고 아뢰소서 아아 이몸 버려 두고 48원을 이루실까
한평생 살아가는 게 너무 짧아서인가. 아니면 세상살이가 더럽고 욕되어 그러함인가. 누구에게나 살아서나 죽어서 그리는 누리가 있는 법. 어찌 광덕의 아내만 그럴 수가 있을까. 원왕생(願往生)은 원왕생극락의 준말로서 '극락에 가서 살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이 노래는 사연 깊은 옛적으로 거슬러 오른다. 신라 문무왕 때의 일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때에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이란 이들이 함께 불도를 닦고 있었다. 둘 사이는 서로 친하여 약속하기를 '먼저 극락세계로 가는 사람은 반드시 알리도록 하자(先歸安養者須告之)'고 했다. 광덕은 아내와 함께 분황사 서리에서 신을 삼아 팔아서 살았고, 엄장은 남산의 한 암자에서 나무를 베고 밭갈이를 힘 쓰면서 살았던 터. 어느 날인가 해 어스름에 소나무 그늘이 고요히 드리워 졌는데 창밖에서 '나는 이미 서녘으로 가니 그대는 잘 있다가 속히 나를 따라 오라(某已西往矣惟君好住速從我來)'고 하여 엄장이 창을 열고 내어다 보니 구름 밖에서 하늘의 노래 소리가 나면서 밝은 빛이 땅에까지 비추는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나머지 광덕을 찾아 가 보니 과연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해서 장사를 지내고는 광덕의 아내에게 함께 살자고 제의를 하니 그러자고 하였다. 잠자리를 함께 하여 엄장은 친구의 아내에게 한 몸이 되고자 하였다. 한데 이게 웬 일인가. 광덕의 아내는, "스님께서 극락에 가고자 함은 마치 나무에 올라 가서 물고기를 찾는 것이나 같습니다."고 하면서 크게 나무랐다. 엄장은 기가 막혀 '광덕도 함께 살면서 잠자리를 같이 했거늘 이게 무슨 큰 일인가.'고 다그쳐 물었다. 여인이 이르기를 '남편은 나와 함께 10년을 살았지만 한번도 잠자리를 같이 하질 않았는데 음란한 짓을 했겠습니까.' 눈에는 단호한 빛이 서려 있었다. 또 '남편은 밤마다 단정한 모습으로 염불을 하고 진리를 얻고자 하였으며 달 밝은 밤이면 부처님의 모습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정성이 이같으니 극락으로 안 가고 어디로 갔겠습니까. 이제 보니 스님께서는 극락왕생하기는 싹수가 노랗습니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 뒤로 엄장은 크게 뉘우치고 몸을 깨끗이 하면서 원효법사에게 깨달음을 구했다. 마침내 도(道)를 얻고 극락으로 든다. 엄장(嚴莊)은 스님의 이름으로서 그 속에 담긴 불교적 그리움이 짙게 드리워 있다. 운허 스님의 불교사전을 보면 '장엄'이 나온다. 하면 '엄장-장엄'으로 바뀌어 쓰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엄'이란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향이나 꽃으로 장식하거나 나쁜 일로부터 자기의 몸을 삼가하여 공덕을 쌓는 것'으로 풀이된다. 있는 이들에게 소외 당하고 억눌려 사는 삶에서 누구든지 불도를 닦아 극락으로 갈 수 있다는 미륵불의 극락정토 신앙은 당시의 보통사람들에게는 큰 꿈이요, 희망이었으니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이 노래에 은은히 배어 있음은 아닐까. 그 단적인 표현이 '원왕생극락'이요, 현실에서는 도달할 길 없는 저승의 언덕이니 원왕생이야말로 황홀 장엄한 곳에 대한 몸짓이며 바람이다. 죽살이를 통틀어 그리는 극락(極樂)은 '달'로 드러난다. 우리들에게 달이란 고향의 어머니처럼 그리운 영혼이요, 위안임을 느끼면서 살아 간다. 초승달과 보름달에서 얻는 정서가 다를 때도 많다. 조지훈의 <승무>에서 오동나무 잎새로 지는 달빛이며, <사미인곡>에서의 달 또한 임의 영상이 담긴 상징으로 떠 오른다. <원왕생가>에서는 극락으로 가는 길잡이가 아닌가. <정읍사>에서는 어떠한가. 멀리 간 임의 둘레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우리들 의식 밑바탕에서 늘 우리의 영혼에 등불이 되어 잊혀지질 않는다. '달'이란 땅덩어리란 뜻도 되며 높고 크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지구의 또 다른 모습이며 해의 되비침판이 되기도 한다. 기실 따져 보면 달은 지구에 달린 한 별덩이일 뿐인데. 벽에 물체를 '달다(懸)'의 '달'은 하늘에 뜬 달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엄장-장엄'을 풀이하였거니와 <원왕생가>의 지은이는 광덕이나 그의 처가 아니라 엄장(嚴莊)이 아닌가 한다. 삼국유사에 실려 전하는바, 무애가를 지은 원효, 무량수불이 된 박박(朴朴)의 경우는 하나 같이 뒤에 깨달은 이가 앞에 깨달은 의상(義湘)이나 부득(夫得)보다 뉘우치면서 절실하게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것이다. 결국<원왕생가>의 지은이는 엄장이란 유추가 가능하다. 하면 광덕(廣德)에 드리우는 뜻은 무얼까. 덕을 널리 베풀라고 풀이하면 어떠할런지. 나막신이든 짚신이든 신이나 만들어 팔면서 넉넉지 않은 살림에 부처님의 길을 지극정성으로 닦아 극락으로 갔다는 것이다. 짐작컨대, 신발이 없고 자기보다도 어렵게 사는 이들에게 먹거리나 입을 거리를 나누면서, 부처님의 진리를 행함에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친 것이다. 먼저 그의 가족사항을 보면 아이를 낳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살이를 하지 않은 점이다. 타고난 저마다의 본능이 다 있는데 종교적인 믿음 때문에 삼가하고 정진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원초적인 본능을 삼가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끝 없이 먹고 마시며 성적인 충동에 이끌리어 가고자 하는 충동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러한 광덕의 거룩한 생각을 이해하고 함께 선 이가 바로 그의 아내였으니 참으로 그 남편에 그 아내가 아닌가. '베풀다'는 우리말은 엄청난 속내를 갖고 있다. '베를 풀다'가 굳어진 말이다. 여기 '베'란 무엇인가. 말할 것 없이 입을 옷이며 먹거리가 됨이 아니던가.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과 함께 나누며 사는 이른바 덕(德)을 베푸는 것이다. 목 마른 이에게 물 한모금, 배 고픈 이에게 한 그릇의 밥이 갖는 의미는 괜찮게 사는 이들에겐 하찮은 일일 수도 있다. 그건 그렇지 않다. 피가 모자라 죽어 가는 이들에게 피 한 방울은 꺼져 가는 등불의 기름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살기에 바빠서 관심이 무관심일 뿐이다. 이 세상에 사람이 필요로 하는 물건이란 한정되어 있기 마련. 그래서 신(神)은 누구에게나 빛을 던져 주신다. 빈부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저 푸른 하늘에 해님과 달님은, 별님은 정답게 살라 한다. 나누며 함께 서라고 하신다. 광덕이면 엄장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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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대제 이야기
역사에 '미친 대제'로 알려진 러시아의 표트르 1세는 괴팍한 성격에 감정을 절제할 줄 모르며,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변덕이 심한 사람이었다. 1799년 어느 날 아침 그는 호위병들을 점검하다가 갑자기 한 병사의 목단추를 보고 기분이 상하게 되자 곧 대제의 얼굴은 분노로 납빛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명령했다.
"얼굴을 들고, 앞으로 전진!" "친애하는 대제시여! 어디로 말입니까?" "시베리아로!"
소수 정예 부대의 400명의 군사들은 한마디 불평도 못하고 길도 닦여 있지 않은 황폐한 북부 러시아 땅을 가로질러 시베리아를 향해 3,200km나 되는 행진을 시작했다. 식량도 없이 먹을 것을 구할 곳도 없는 데로 필요한 옷도 가지지 않고 그들은그렇게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그 후 그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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