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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07호
단기 4343. 3. 2 (음력 1. 17)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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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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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KBS TV드라마 미니시리즈 극본공모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무엇이든 드라마가 될 수 있습니다.
도전하십시오!!”
KBS 한국방송은 대한민국 드라마의 경쟁력을 한층 더 고양시키기 위해 미니시리즈 극본을 공개 모집합니다.
1. 공모부문 : 미니시리즈(16부작 이상) - 제출내역: 시놉시스 및 대본(4회 이상) 2. 응모자격: 기성 및 신인 작가(공동 집필 가능) 3. 공모일정 가. 공고일정: 2010. 2. 1(월) - 접수 종료까지 나. 접 수: 2010. 4. 1(목) - 4. 26(월) 24:00까지 다. 발 표: 2010. 7월(예정) 라. 시 상: 추후 결정 4. 상금: 총액 1억5백만원 가. 최우수상: 5천만원(1편) 나. 우 수 상: 4천만원(2천만원 * 2편) 다. 가 작: 1천5백만원(500만원 * 3편) * 평가 결과에 따라 수상작을 선정하지 않을 수 있음 5. 당선된 작품에 대한 권리 당선된 작품에 대한 모든 저작재산권(2차적저작물 작성권 포함)은 저작권 법에 의한 보호기간 동안 KBS가 소유함 6. 응모방법 : 가. KBS 홈페이지(http://www.kbs.co.kr)내 ‘2010 KBS 드라마 「미니시리즈」극본공모’에서 접수 나. 접수된 작품 및 개인정보는 수정 및 반환(회수) 불가 7. 연락처: KBS 드라마제작국(02-781-3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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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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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훌륭한 예언은 상식,즉 우리의 원래의 지혜이다.(에우리피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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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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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지 못한 말
골프 경기에서 한 선수가 친 공이 해저드 깊숙한 곳으로 날아가, 다음 플레이가 아주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이때 중계방송 해설자가 말했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말의 깔끔하지 못한 부분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해설이었다. 우리말은 서술어가 문장의 마지막에 오기 때문에 자칫하면 주술 관계가 틀어지기 쉽다. 또 문장 마지막의 서술어는 한 단어로 끝나지 않고 다른 말이 이어 붙기 쉽다.
해설을 꼼꼼히 살펴보자. “최악의 상황입니다” 하면 깔끔하게 정리된다. 해설도 이렇게 끝낼 일이다. 그런데 ‘상황’에 ‘이라고’라는 조사를 붙여 ‘상황이라고’로 한 다음 ‘말씀드리다’를 이어 붙였다. ‘말씀드립니다’로 끝냈으면 차선은 되겠는데, ‘드립니다’를 관형형 ‘드릴’로 만들어 다시 의존명사 ‘수’와 이어 놓았다. 의존명사 ‘수’에 조사를 붙여 ‘수가’로 만든 다음 ‘있습니다’라는 말을 이었다. ‘있습니다’에는 또 선어말어미 ‘겠’을 넣어 ‘있겠습니다’로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짧은 문장에 얼마나 많은 굴절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해설 문장에 문법적 오류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말을 이렇게 쓰기 때문에 깔끔하지 않고 나아가서는 불명확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말을 이렇게 하는 것은 단정적으로 말했을 때 오는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깔려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재욱/시인
그르이께 어짤랑교?
‘그르이께’는 “그리이께네”와 더불어 표준어 ‘그러니까’에 대응하는 전형적인 경상도 고장말이다. ‘그르이께’의 또다른 형태의 고장말로는 ‘그러이께, 그러이까, 그르이깨’와 ‘그러니까니, 그러이까네, 그러이꺼네, 그르이께네’ 등을 들 수 있다. 위의 고장말들은 대부분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쓰지만, ‘그러니까니’는 강원·제주·충청도에서도 두루 쓰며, ‘그러이까네’는 강원도에서도 쓰는 말이다. “그르이께 딸 너이를 그릏게 놨대요.”(<한국구비문학대계> 경북편) “그르이께네 인제 그래고 디루고 갔부랬그던.”(위 책) “그러니까니 뭘 먹을 때는 고시래도 좀 하고 해야 한다구.”(<장한몽> 이문구) “그러이까 넘어가 뿌린 기지요.”(<노을> 김원일)
또한 ‘그러니까’에 대응하는 전라도 고장말로는 ‘긍께, 그렁께, 그랑께’ 등을 들 수 있으며, 제주도 고장말로는 ‘게나네’와 ‘게난’을 들 수 있다. ‘긍께’는 주로 전라도에서만 쓰는 말이지만, ‘그렁께’는 전라도뿐만 아니라 충청도·전라도와 인접한 경상도에서도 쓰는 말이다. 특히 ‘그랑께’는 전남 지역에서 주로 쓴다. “긍께 내가 시방 미안하다고 안 그랬소.”(<부초> 한수산) “그랑께 공연히 사람 욕뵈지 마시오잉.”(<외촌장 기행> 김주영) “게난 뭐 이제 팡(파서) 봐사(봐야) 알주마는(알겠지만)…”(<한국구비문학대계> 제주편) “게나네 원 아도(말해도) 대답도 안 해연(했어).”(위 책)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넥타이는 매고,배낭은 멘다
매다는 끈이나 줄이 풀어지지 않게 마디를 만든다는 뜻이다. 마디를 만드는 방법은 끈이나 줄의 두 끝을 엇걸어 잡아당기면 된다. 넥타이를 매고, 신발 끈을 매는 것이다. 매다에는 끈이나 줄로 어떤 물체를 가로 걸거나 드리운다는 뜻도 있다.‘나무에 그네를 매다.’
메다는 어깨에 걸치거나 올려놓는 일이다. 배낭을 메고, 총을 멘다고 한다.
들르다와 들리다의 활용
“집에 가는 길에 서점에 들렀다.” ‘들렀다’는 지나는 길에 잠깐 들어가 머물렀다는 의미다.‘들르다’가 활용한 형태다.‘집에 들러’‘낮에 들르니’처럼 쓰인다.‘들려’로 활용하지 않는다.
“밤새 천둥소리가 들렸다.” ‘들렸다’는 ‘듣다’의 피동형 ‘들리다’가 활용한 말이다.‘들려’는 이 ‘들리다’의 활용형이다.‘들리어’가 줄었다.
스크린 도어
지하철 역에서 추락 사고가 빈발하는 가운데 위험을 무릅쓰고 떨어진 사람을 구했다는 아름다운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추락 방지 시설인 소위 '스크린 도어'가 역마다 설치돼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영어에서 '스크린 도어(screen door)' 자체는 벌레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추가로 방충망을 설치해 놓은 문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정의 창문에 대부분 방충망이 설치돼 있으므로 집집마다 '스크린 도어'가 있는 셈이다. 지하철 역에 설치된 것은 정확하게는 '플랫폼 스크린 도어(platform screen door)'다. 선로와 격리되는 벽과 가동문을 설치해 승객의 안전을 도모하고 먼지와 바람을 막아 주는 장치다. 영문 머리글자를 따 'PSD'라 부르기도 한다. '플랫폼 스크린 도어'는 무엇보다 승객의 안전을 위한 것이므로 우리말로는 '안전문' 정도의 이름이 어울린다. 국립국어원도 '스크린 도어', 즉 '플랫폼 스크린 도어'를 '안전문' 또는 '지하철 안전문'이라 부를 것을 권하고 있다. '스크린 도어'는 '스크린 쿼터'와 비슷해 헷갈리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스크린 도어'라는 말이 쓰인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으므로 처음부터 '(지하철)안전문'이라 부르는 게 좋겠다.
밥힘, 밥심
"거참, 시원하네." 뜨거운 국물을 마실 때 추임새처럼 따라붙는 아버지의 말씀. 밥상을 물리시며 어머니가 거드신다. "밥이 보약이지, 다 밥심이에요." 도통 와 닿지 않던 부모님의 대화가 이해되기 시작했다면 나이를 먹어 간다는 증거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광고 문구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성인 남녀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밥의 힘, '밥심'. 그러나 '밥심'이란 말 자체에는 모두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사전을 아무리 뒤져도 주먹심도 있고 팔심도 있는데 밥심은 없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주먹심은 '주먹으로 때리거나 쥐는 힘', 팔심은 '팔뚝의 힘'이란 뜻으로 어원적으로 보면 주먹힘, 팔힘이지만 '힘'이 '심'으로 변화한 형태가 널리 쓰이면서 주먹심ㆍ팔심이 표준어가 됐다. 새말은 알고 있던 말에 약간의 변형을 가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밥심'은 사전에 올라 있지는 않지만 국립국어원이 2002년 발간한 신어 목록엔 포함돼 있다. 뱃심ㆍ뚝심ㆍ입심ㆍ뒷심ㆍ뼛심 등과 마찬가지로 '밥+힘'으로 구성된 밥심도 음운 변화를 인정해 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쓰는 데는 별문제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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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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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주소는 이사를 하지 않는다 - 김명원
때때로 감추고 사는 것들이 있습니다 마른 날 거리에 서면 플라타너스, 예수의 앙상한 두 팔 사이로 고요한 무덤처럼 걸리어 있는 은빛 태양이 잊을 수 없는 그대 이름으로 빛나기도 합니다
세월을 약속해 오던 시절이 소리없이 걸어와 축축한 저녁을 어깨에 걸어주고 괜찮아, 등 두드려 주기도 하지만 먼 기억들은 그저 발바닥이 따뜻하도록 아득할 뿐입니다
우리는 단지 조금 알아가는 걸까요 굽 낮은 구두 뒷발길에 걸려 넘어지는 젊은 날의 환성과 희망 몇 조각이 아직은 수선점에서 정성들여 못질되고 있으리라는 지금은 흐려지는 시력을 호호 불며
윤색되는 얼굴들에 애써 실핏줄 몇 개를 더 그려 넣지만 뒷날 언제인가는 우리 모두 어깨동무하며 살아왔던 옛 집에서 그리움의 등불을 밝히고
나의 천박한 감수성에 그대 눈부시던 눈물을 섞어 한 잔의 차로 타서 나누어 마시며 오래 오래 마주 앉아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으려니
하니 기다리겠습니다 주소가 바뀌지 않을 바로 이 마음에서, 소박하나 순결한 詩안에서 아주 낮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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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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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이야기 - 송지은
달빛타고 하늘과 맞닿은 전설의 섬.
그 옛날 처용에게 내침당한 역신(疫神)은 부끄 러운 바다 거품을 물고 우와 좌왕 갈피를 못 잡아 허둥대다, 승천, 승천, 羽化登仙, 염라대왕 청천 하늘의 벼락을 삭신 구석 구석 뼈마디에 침으로 박고 뒷걸음질치다, 뒷걸음질치다, 초생달 삐죽한 정강이에 채여 떨어진 바다. 그 장난스레 길다란 달빛의 꼬리를 붙잡고 꺼구러진, 月尾島는 그 날부터 하늘과 가장 가까운 유배지가 되고 말았다. 하늘도 땅도 친구도 여자도 역신의 것은 없었다. 애초부터 神이 정하심대로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면, 역신으로 나와 죄인으로 살라 하신 神은 아-아, 얼마나 가혹하고 짖궃은가,
애궃은 바다 한 구석이 섬이 되어서 철-썩 철-썩 귓볼만 얻어맞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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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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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3
1. 사랑을 위하여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 버질)
두 가족
금세기 초에 일본에서 이민온 한 가족이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자리잡았다. 그들은 장미 농장을 일구어 일주일에 세 번씩 이른 아침마다 장미꽃을 트럭에 싣고 샌프란시스코로 배달하는 사업을 정착시켰다. 또다른 가족은 스위스에서 이민온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장미 재배 사업을 했다. 이들의 장미꽃은 샌프란시스코 꽃시장에서 널리 알려져 두 가족은 웬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거의 40년이 넘도록 두 가족은 이웃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 아들들이 농장을 물려받았다. 그러다가 1941년 12월 7일에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공격했다. 다른 식구들은 이미 미국인으로 귀화했지만 그 일본인 가정의 아버지만은 그때까지도 고집스럽게 일본 국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일본인 가족은 곧 강제 수용소로 끌려갈 처지가 되었다. 그들은 끌려가고 나면 장미 농장은 폐허가 되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반세기 가까이 열심히 일궈 놓은 사업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돌아갈 판이었다. 이때 이웃에 사는 스위스인 가족이 찾아와서 말했다. "아무 염려하지 마시오. 우리가 당신들의 농장을 대신 돌봐 주겠소." 수없이 감사의 절을 하는 일본인 가족에게 스위스인 가정의 아버지는 말했다. "당신들이라도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겁니다." 얼마 후에 일본인 가족은 콜로라도 주 그라나다에 있는 황폐한 장소로 강제 이주당했다. 그 강제 수용소는 아주 형편없었다. 기름종이로 지붕을 한 군대 사막에다, 철조망과 무장한 경비대가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꼬박 일 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두 해가 지나고 세 해가 지났다. 일본인 이웃이 수용소에 억류돼 있는 동안 그들의 친구인 스위스 가족은 두 군데의 장미 농장에서 땀을 흘리며 일해야만 했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기 전까지 일을 했고, 아버지는 하루에 16시간 이상을 일했다. 어느날 유럽에서의 전쟁이 막을 내리자 일본인 가족은 다시 짐을 꾸려 열차에 실렸다. 오랜 기간의 유배가 끝나고 마침내 그들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그 가족이 열차에서 내리자 그들의 이웃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일본인 가족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잘 다듬어진 장미 농장이 햇빛을 받으며 건강하고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스위스인 가정의 아버지가 은행 예금통장을 일본인 아버지의 손에 건네주었다. 일본인 가족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 역시 장미 농장만큼 잘 관리되어 있었다. 거실의 테이블 위에는 이제 막 피어나기 직전의 붉은색 장미 송이 하나가 꽂혀 있었다. 한 이웃이 다른 이웃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 다이안 레이너·캐롤 브로드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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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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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4장 지혜의 메아리
명언
보기 좋게 꾸며진 말들만이 진리이고 명언인 것은 아니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그 어떤 명언보다 나을 때가 있고 명사의 가르침보다 나을 때가 있다. 좋은 명언이란 일상 생활에서 꼭 필요한 말이고, 꼭 필요할 때에 주어지는 말이다. 꼭 필요할 때에 주어지는 말은 그것이 아무리 평범한 것일지라도 좋은 명언이 된다. 밖에 나가려 할 때 차 조심하거라 , 날씨가 추울 때 감기 조심하거라 , 끼니를 거를 때 끼니 거르지 말고 꼭꼭 챙겨 먹어라 하는 말들은 비록 평범하지만 잘 꾸며진 명언들 못지않게 훌륭한 것이다. 명사들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말만이 명언인 것은 아니다. 일상 생활을 해 나가는 가운데 때와 상황에 맞게 주어지는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이 좋은 명언이 된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내 처지에 어울리지 않거나 삶을 살아나가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나에게 있어 그저 좋은 말일 뿐 나를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명언은 되지 못한다. 일생 생활을 해 나가는 가운데 주어지는 작은 충고들을 무심코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인생을 바꾼다. 진정으로 나에게 필요한 명언은 잘 포장된 말이 아니라 나에게 꼭 필요한 한 마디이다. 여러 곳을 기웃거리고 있는 나에게 한 우물만 파거라 라는 충고는 나에게는 절실한 명언이고, 그것은 몇 권의 명언집도다도 훨씬 더 소용이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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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사회 / 문화 / 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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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성과 권력 - 권택영
3. 에로스의 저항
어릴 적에 경험했던 유희를 성인은 공상 속에서 되풀이하지만 창조적인 작가는 이 꿈을 사회가 용납하는 내용으로 설득력있게 바꾸어낸다. 그렇다면 예술은 에로스를 현실에 맞게 변용시켜 관객의 에로스를 승화시키는 고안이다. 프로이트가 살았던 당시 그의 이론은 작품을 저자의무의식이 순조롭게 해방되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는 저자가 어릴 적에 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압축하고(은유) 슬쩍 다르게 해서 (환유) 표현한 것이라고 읽는다. 마치 프로이트가 꿈을 분석하듯이 작품을 읽는다. 그러다가 모더니즘시대에 이르자 자의식적이고 자율성을 강조하게 되어 자아가 어떻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초자아를 내부에 의식하며 이드를 조정해 가는가에 관심을 둔다. 무의식이 초자아에 밀려 이드로 압축된 느낌이다. 그러다가 50년대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르러 라캉은 무의식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며 프로이트를 재해석한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꿈 해석이 소쉬르 언어학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은유와 환유였던 것에 관심을 두고, 프로이트를 구조주의와 관련시켜 종래는 후기 구조주의에 이른다. 모던 심리학이 축소시킨 나르시시즘이 얼마나 압도적인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선배가 인정하면서도 망설였던 부분을 과감히 끌어낸다. 무의식을 표층 위로 끌어내 정신분석을 근원을 캐어내는 것이라기보다 대화 속에서 서로의 욕망을 길들이는 과정으로 전환시킨다. 선배가 언급한 '전이'현상을 확대한다. 거울단계를 내세운 그의 이론은 선배의 나르시시즘을 달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선배에게서 새 시대를 암시하는 새로운 사유를 끌어낸다. 여성들이 그토록 비난하던 남근선망이니 거세 콤플렉스니 하는 용어들을 없앰으로써 성차를 지우는 효과를 얻어낸다. 남녀 모두 언어의 세계(상징계)에서 풀려날 수 없기에 남근은 여성만이 갖지 못한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포착할 수 없는 실재요, 억압된 초월 기표, 즉 어머니가 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쾌감원칙과 현실원칙을 상상계와 상징계로 바꾸어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사회화를 피할 수 없는 언어의 세계로 대치한 그는 데리다보다도 앞서 새로운 사유체계를 암시한 것이다. 그러나 해체는 또다른 도전을 받는다. 축소된 나르시시즘을 복원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러다 보니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성차나 인종간의 억압을 개선할 길이 모호해 보인 것이다. 억압된 나르시시즘을 좀더 복원하라. 이제 억압된 계층들의 나르시시즘이 자신들의 것이 그 동안 지배계급의 나르시시즘에 의해 지워져왔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남성 혹은 제국에 의해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 혹은 식민지인들은 지배계급의 나르시시즘, 혹은 상상계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식민주의는 비록 제도적으로는 해결되었으나 무의식 속에 잠재한 문화적 식민주의는 지속되며 그것은 의식, 혹은 이성만으로는 더 이상 해결되지 않는 욕망의 문제이기에 탈 현대의 해결방법은 그리 단순한 것이 될 수 없었다.
피지배계급의 나르시시즘은 어떤 식으로 저항할 것인가? 우선 역사적으로 피지배 계급이었던 사람들이 말을 한다. 그러나 지배계급이 했던 짓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자신들의 상상계가 또다른 계급의 상상계를 지우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 그들은 조심스럽다. 해체 이후에 세워지는 정치성은 본질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기에 전략이 되고 타협이 될 수밖에 없다. 지배계급의 상상계가 무엇을 착각했는가. 그들의 나르시시즘이 간과한 것을 짚어주자. 소위 탈 식민주의 문화비평이라는 범주로 등장하는 이론들은 주로 과거 영국의 식민지인 이었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가운데에서도 실천비평에 강한 스피박(Gayatri Spivak)은 인도 출신의 여성으로 프로이트를 비롯한 서구의 선배들이 인간의 고통을 덜어보려고 혁신적으로 사유했지만 그것이 어떻게 무의식중에 지배계급의 사유가 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프로이트가 현실이 억압하고 있는 무의식을 드러내 인간의 독선과(나치즘과 같은) 정치적 폭력을 경고했지만 그 역 시 여성이나 당시의 빈민층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르시시즘 신화 속에 엄연히 등장하는 에코를 지워버린 서구의 상징 질서에서 프로이트 역시 벗어나지 못한다. 스피박은 나르시시즘을 지배층의 상상계로 보고 그것에 억압되어온 에코를 흔적, 혹은 의미의 산종 (dissemination)으로 복원해낸다. 자신의 음성을 갖지 못하고 오직 타인 의 말을 끝부분만 반복하는 에코의 미덕을 대상 속에서도 자기 얼굴만을 보는 나르시시즘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스피박은 서구의 텍스트를 분석해온 남성 비평가들이 어떻게 제국의 에로스를 간과했는가 드러낼 뿐 아니라 백인 여성 비평가들조차 남성에 억압되어온 여성은 고려했지 만 백인 여성에게 억압되어온 제3세계 여성은 간과했음을 들춘다. 제3 세계 여성이라는 자신의 에로스로 지배계급의 에로스를 해체하고 그들 이 제시해온 남근선망 대신에 자궁선망과 같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 대안은 앞의 것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공존하는 타협이다. 지금까지 열등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것들은 다르지만 결코 못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바(Homi Bhabha)의 '문화적 차이'가 등장한다.
영국의 식민주의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식민지인의 나르시시즘으로 증명하는 호미 바바는 프로이트의 전이와 에로스에서 문화이론과 저항이론을 만든다. 제국은 원주민을 교화시켜 문명인을 만든다는 명목 아래 원주민의 땅에 들어선다. 그러나 그들의 이성 속에는 타자가 있었다. 물자와 노동력을 얻어내려는 이기적 욕망이 숨어 있었다. 원주민은 어떤가. 그들 역시 제국의 교화를 따르는 척하지만 자신들의 문화와 충돌하는 부분은 결코 변화되지 않는다. 이 녹지 않는 알맹이가 바로 원주민이 지닌 나르시스적 주체다. 교화는 둘 사이의 나르시시즘이 충돌하면서 이성에서 멀어지고 혼동만 깊어진다. 그리고 얼룩덜룩한 닮음은 저항이 되어 완벽한 닮음이라는 환상을 무너뜨린다. 바바는 원주민의 녹지 않는 알맹이를 '사악한 눈'이라고 표현한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이기적인 자아보존 본능으로 보았다면 바바는 그 자아보존 본능이 제국의 문화에 저항하여 자국의 문화를 보존하려는 본능으로 본다. 이 본능이 제국에 의해 억압되어도 결코 제거되지 않고 다른 형태로 되돌아오기에 식민주의는 거대한 혼동을 낳고 실패한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이 둘 사이의 전이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한 프로이트에게서 바바는 문화적 차이 혹은 문화적 혼혈성이라는 저항이론을 만든다. 문화는 늘 타협이다. 그것은 두 문화가 지닌 자아보존 본능에 의해 시간에 따라 덧칠해지는 혼혈적인 것일 뿐,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순수하게 동화되는 일은 없다. 국경이 엷어지는 다문화시대에 무조건 외국문화를 수용하는 일도, 그렇다고 자국의 문화만 순수하게 보존하는 일도 환상임을 바바는 보여준다. 문화는 녹지 않는 알맹이를 갖고 있으면서도 두 개가 충돌하는 현실원칙에 의해 서로의 욕망을 나누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우리 삶과 세상을 어떻게 설명해나가는지 살펴보았다. 의식이 감지하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의식은 삶이 지닌 고난과 궁경을 일깨워 주면서 낙원이 아닌 세상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일깨워준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해석됨으로써 새로운 사상의 바탕이 되곤 한다. 저자의 무의식 자아의 조정능력 , 읽기는 반복일 뿐이라는 해체비평 , 그리고 최근의 문화비평에 이르기까지 나르시시즘은 현실에서 다르게 귀환한다. 그렇다면 프로이트의 후배들은 바로 그가 발견한 반복충동을 실천하고 있는 셈은 아닌가. 억압된 것은 늘 다르게 되돌아온다는 가설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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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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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말없는 가르침 - 지북유
지*가 북쪽의 현수 가에서 놀다가 은분이란 언덕에 올랐을 때, 우연히 무위위를 만났다. 지가 무위위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소.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헤아려야 도를 알 수 있소? 어디에 살고 어떤 일을 해야 도에 안주할 수 있소? 무엇을 따르고 무엇에 말미암아야 도를 얻을 수 있소?" 세 번 물었으나 무위위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답을 몰랐다. 지는 묻지 못하고 백수의 남쪽으로 돌아왔다. 호결이란 언덕에 올라 광굴을 만났다. 지가 그말을 광굴에게 물었더니 광굴은 말했다. "아, 내가 알고 있소. 당신에게 말해주겠소." 말하려는 참에 그 말할 것을 잊어버렸다. 지가 대답을 얻지 못하고 제궁에 돌아가 황제를 보고 물었다. 황제는 대답했다. "생각하지 않고 헤아리지 않는 것이 도를 아는 첫걸음이오. 아무데도 거처하지 않고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이 도에 안주하는 첫걸음이며, 또 아무것도 따르지 않고 아무것에도 말미암지 않는 것이 도를 얻는 첫걸음이오." 지는 황제에게 물었다. "나와 당신은 이를 알고 저들은 모르오. 누가 올바르겠소?" 황제는 대답하였다. "무위위가 진실로 바르고 광굴은 비슷하며, 나와 당신은 끝내 가깝지 않소. 무릇 지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모르는 사람이오. 그 때문에 성인은 말하니 않고 가르치는 것이오."
* 지 : '지식'이라는 추상 개념을 의인화한 것으로 이 편에 나오는 현수, 은분, 무위위, 백수, 호결, 광굴, 제궁, 황제 등을 모두 이와 같은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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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지가 북쪽 현수 가에서 놀 때, 은분이라는 언덕에서 우연히 무위위와 만났다. 지는 무위위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헤아리면 도를 알 수 있겠소? 어떤 곳에 살면서 어떤 일을 해야 도에 안주할 수 있겠소? 무엇을 따르고 무엇에 말미암아야 도를 얻을 수 있겠소?"
지가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였지만 무위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대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무위위는 답을 몰랐다. 지는 더 묻지 못하고 백수의 남쪽으로 돌아와 호결이라는 산에 올랐다. 거기서 광굴을 만나자 지는 광굴에게 같은 말을 물었다.
"그건 내가 알고 있소. 내가 가르쳐드리리다."
그는 말을 꺼내려다가 문득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잊어버려서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지는 광굴에게도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제궁으로 돌아가 황제에게 물어보았다. 황제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아무것도 헤아리지 않아야 도를 알 수 있소. 아무데에도 살지 않고 하는 바가 없어야 도에 안주하여 편안해지오. 따르는 것이 없고 말미암은 것이 없어야 도를 얻는 것이오."
지는 다시 황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과 나는 도에 대해 아는 것이지만 저 무위위와 광굴은 모르는 것이 되오. 과연 어느 쪽이 정말로 아는 것이 되겠소?"
황제가 대답했다.
"무위위야말로 진정 도를 아는 사람이며, 광굴은 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소. 하지만 나나 당신은 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오. 예부터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그것을 모르는 자라고 했소. 그러므로 성인은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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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마음의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대숲에 바람이 일 때면 도림사(道林寺)의 뒤뜰에서 들리는 소리다. 무슨 일이 있기로서니 대나무 밭에서 사람의 소리가 난다는 말인가.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48대 경문왕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진 것이다. 마치 나귀의 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는데 임금의 머리를 만지는 이만이 현장을 보았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기어이 살아 남을 수가 없음을 눈치 챈 복두장은 속으로만 끙끙거리다가 나이 들어 죽기 전에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의 비밀을 털어 놓은 것이다. 흔히 일러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충동에서 말을 아니 하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으므로 일어난 일. 왕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마침내 대나무를 다 베어 내었다.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었더니 소리가 달라졌다. '임금님의 귀는 길다'고. 말을 하는 존재로서의 상징적인 부분이 입과 귀이다. 입으로는 말을 하고 귀로는 말을 듣는다. 행동주의자들의 말대로라면 말은 대용자극이요, 대용반응이어서 행동을 불러 일으키는 행위 개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소리상징으로 볼 때 '귀'란 무엇일까. 중세 문헌에서 '귀'는 복모음이었기에 '구이'로 발음이 된다. 구이는 '굿이→구시→구이'의 과정을 거쳐서 쓰이게 된다. 말의 짜임새로 보아 '굿이'는 구덩이나 굴을 뜻하는 '굿'(증수무원록1.42)에 사물이나 사실을 드러 내는 접미사 '이'가 어우러져 된 말이다. 하면 귀란 무슨 굴이며 구멍이라면 어떤 구멍인가. 다름 아닌 소리가 담기는 구멍이란 뜻이다. 사람의 생각과 느낌이 담기는 구멍. 아무 것도 아니면서 이 땅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귀불알과 귀바퀴, 귓구멍이 합하여 귀라 이른다. 우리 몸에는 많은 구멍이 있다. 땀구멍에서부터 코구멍, 눈구멍, 목구멍, 똥구멍 등 실로 많은 구멍이 있어 이를 통하여 드나드는 물질이 있으므로 우리의 목숨살이가 가능하지 않은가. 고려수지침술학에서는 우리 몸에 바늘을 꽂는 구멍을 경혈이라 해서 360여의 구멍을 보기로 모임 들고 있으니 땅덩어리가 자전하는 횟수와 다르지 않음도 우연한 일이 결코 아니다. 일러 환경결정론이라 하여 환경과 사람의 걸림을 중시하기도 한다.
지구 위에서 사니까 돌아 가는 지구의 리듬에 맞추어 우리의 몸은 숨을 쉬고 있다. 사람의 마음에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소리가 담기는 소리 구멍. 그래서 바른 말을 떳떳하게 하면서 살 수 있는 누리. 하면 자유와 평화가 꽃피는 홍익인간의 마을이 될 것이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 될 것이구먼. 파우스트는 눈이 멀고 귀가 멀면서부터 하늘의 소리를 듣게 되고 하늘의 빛을 보게 된다. 어버이에게서 자연의 귀를 물려 받았는데 이제 하늘과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우리는 갖도록 해야 한다. 같은 소리이면 같은 뜻으로 받아 들을 수 있는 한 겨레의 듣기 훈련을 갈고 닦아야 한다. 저 높은 곳에의 바람과 믿음을 가지고 귀를 열자. 열린 누리를 만들어 봅시다.
처용의 노래
서울 밝은 달 아래 밤드리 노니다가 들어와서 자리 보니 가랑이가 넷이구나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해이지만 빼앗아 감을 어찌 하리오 (처용가)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세상에 그래 어느 사내가 눈 앞에서 제 여편네가 다른 이에게 능욕 당하는 꼴을 보면서 한탄만 하고 있담. 그것도 노래를 부른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쯧쯧). 마음이 착한 탓에 끝 없이 용서하기 때문만은 아닐 터. 왜 그랬을까. 그럼 안 되는 줄 알면서. 얘기인즉슨 이러하다. 산과 땅의 신(神)이 장차 나라에 큰 어려움이 있어 망할 걸 미리 알고 이를 춤으로써 왕에게 알리었으나 사람들은 이에 별로 마음씀이 없었다. 오히려 깨닫기는커녕 이는 아주 좋은 징조라 하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에만 빠졌으므로 드디어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것. 연극은 인생의 거울이라 한다. 시대는 달라도 연극의 겉모양이 조금씩 다른듯이 보인다. 옛적에는 노래와 춤, 문학이 한테 어울려 이루어지는 종합예술이었다. 하면, 처용이 추었던 춤은 당시의 어지럽고 힘든 상황들을 노래에 담긴 가락으로 그리 하면 안된다는 속내로, 미쳐 날뛰는 많은 이들에게 다가 선 것은 아닐까. 헌강왕(憲康王)이 개운포(開雲浦)에 갔을 때, 산신과 땅신은 물론이요, 용이 나타났다. 용은 곧 바다의 신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옛말로 용은 '미르·미르기'(훈몽자회)로 불리워진다.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서는 이들을 일컬어서 산과 바다의 정령이라 적고 있음을 보아 용은 물을 다스리는 위대한 지배자였다. 이렇게 용에 대한 숭배는 농경문화에서 물이 아주 중요한 대상으로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점치는 일관(日官)의 예언
산신과 땅신은, 바다의 신은 춤을 추는데 왜 사람들은 보도 알도 못하고 점치는 일관만이 춤을 보면서 그 뜻을 알아차렸을까.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거니와(視而不見) 신이 주는 계시를 아무나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나 보다. 눈이 먼 이가 앞을 볼 수 없듯이 향락에만 빠진 이들이 앞으로 다가올 겨레와 나라의 어려움에 관심이 없을 건 뻔한 일이요, 무얼 들어도 들릴 까닭이 없다(聽而不聞). 헌강왕은 몹시 애가 탔다. 동해의 용신이며 땅신, 산신에게 가까이 가고자 했으나 힘이 미치지 않았다. 단 몇 사람의 옳은 생각과 움직임이 없어 나라가 기울어진 것은 동서고금에 왕왕이 있던 일. 이 어찌 헌강의 시대뿐이었겠는가. 왕은 생각했다. 이다지도 나라가 어지럽고 왜적의 군침 넘김이 심한 것은 모두가 자신의 탓이라고. 이윽고 왕은 오늘의 대학에 맞먹는 국학(國學)에 나아가서 박사들에게 경전 풀이를 들으며 함께 토론하기도 한다. 관심의 주요 대상은 올바른 나라 다스림의 길이었을 게 뻔하다.한편 부처님의 힘을 빌어 나라의 안녕과 겨레의 번영을 위하는 믿음으로 황룡사에 나아가 불경을 듣기도 하였다.때로는 만백성의 소리를 듣고자 하여 멀리까지 시골 나들이를 하였으니 울산 개운포(開雲浦)에 간 것도 흩어진 사람들의 민심을 모으고 무엇인가 나라의 힘을 기르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더러는 농사철을 맞이하여 여름지이를 북돋우기 위하여 여러가지 민속놀이에 자리를 함께 하여 관심을 보이는 헌강왕. 어느 신하 아뢰기를 '백성들이 먹고 입을 게 족한 것이 모두 임금님의 덕'이라고 한다. 왕은 이에 대하여 '그건 당신들의 덕이지 어찌 내 덕이겠소'라 한다. 기울어진 나라의 흐름을 되살리기에 있어 헌강의 정성과 힘이 채 미치지를 못하였다. 그림의 떡이라고나 할까. 나라의 꼴이란 그야말로 울리는 꽹과리요, 십여 걸음의 앞을 못 보고 사냥꾼 쪽으로 달려가는 코뿔소들의 행진 바로 그것이었다.
처용이 춤을 춘 것이나 왕이 몸소 땅과 바다신에게 제사를 올린 건 모두가 나라와 겨레의 평안함을 빌었던 일. 그러니까 노래와 춤으로 신을 즐겁게 해서(樂神) 복을 받고자 하였다(장진호, 1989, 신라가요의 주원성 연구 참조). 인구어에서도 페스티발(festival)은 '신을 즐겁게 한다'는 데에서 말의 뿌리를 찾는다. 어찌 노래와 춤뿐이리오. 때로는 꽃다운 처자가 이바지의 속내가 되기에 이른다. 이바지를 드릴 때는 반드시 주술적인 말을 한다. 말 속에는 신과 서로 통하는 거룩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말을 함부로 할 수도 없으며 마구 바꾸기도 어렵게 된다. 이르러 말은 곧 영혼-언령설(言靈說)이라 한다. 그러니 홍수가 난 뒤에 가래로 보를 막아 보니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지리다도파(智理多都波), 예고된 시련
헌강왕이 개운포에 갔을 때 동해 용왕에게 제사를 드렸다. 어찌 된 일인가. 동해의 용은 구름과 안개를 일으켜 헌강으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든다. 이 게 헌강이 겪어야 할 시련의 징조가 아니던가. 한편 춤과 노래로서 산신(山神)들이 예언한다. 마치 맥베스의 세 마녀처럼 말이다. '지리다도파도파(智理多都波都波)'라고. 슬기로운 이들은 있으나 다 도망치고 없으므로 나라는 마침내 큰 시련을 겪을 것이라는 얘기다. 굿판에 구경 간 사람이 굿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눈독 드린다고 산신의 춤과 노래에만 정신이 팔려 사람들은 흥겹기만 했다. 망할려면 무슨 일이 없겠는가. 자신의 아내를 범한 역신을 용서하는 처용(處容)은 얼굴을 숨기기가 일쑤였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진정한 지도자가 안 보이는 일이 종종 있다. 처용은 어찌 보면 신과 교통하는 일종의 무당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이에 미치지 못함은 어쩔 수가 없었으니.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어떠한가. 물질만능이라. 덮어 놓고 돈만 생기면 그 무슨 짓거리라도 다 하려는 세상 아닌가. 가야 할 사람의 길을 벗어나 오로지 저 하나만 먹고 살겠다고 눈이 뒤짚힌 세월이 되고 말았다. 벼슬의 자리에 있는 이들이 돈 받아 챙기고 심지어는 나라의 국방이 걸려 있는 무기까지도 속임수가 끼어 들어선 검은 손들과 짜고 온갖 더러운 돈벌이를 하는 터. 이러고서야 무슨 통일을 한다고 사설을 풀어 댄단 말인가. 마음이 없으면 올바른 부처의, 예수의, 공자의 말씀이 제대로 들어 올 까닭이 없다. 산은 산, 물은 물이라고 일렀으나 문제는 사람의 마음과 행위가 바르지 못한 곳에 그 무슨 더불어 사는 홍익인간의 꿈이 이루어질까. 우리 겨레는 운명지워진 한 핏줄의 목숨살이들이다. 홍익인간이란 멀고 큰 그리움을 위하여 함께 서는 길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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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301년 동안이나 일어나게 했던 구레나룻
역사적으로 유명한 비운의 구레나룻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그는 바로 프랑스의 왕 루이 7세이다. 그는 귀엔느와 프와투 두 지방을 마지막으로 다스렸던 공작의 딸 엘레나와 결혼했다. 그때 엘레나는 이 두 곳을 신부의 지참금으로 가지고 왔었다. 한편,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루이 7세는 이제 그의 구레나룻을 말끔히 면도하겠다고 말했다. 그 후 왕이 진짜로 구레나룻을 없애자 왕비인 엘레나는 더 이상 왕을 사랑하지 않는다면서 이혼을 요구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왕과 이혼을 하고 영국의 헨리 2세와 재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결혼할 때 가지고 왔던 두 지방의 소유권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응답으로 루이 7세는 헨리에게 선전 포고를 했고, 이때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일어났던 전쟁(1152~1453)은, 301년 후 로엔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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