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로 살아가는 법90가지 - 자크린느 클랭 옮긴이 : 최복현
2. 자유롭게 존재하는 기술 (1/3)
"나는 그것을 예술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그녀는 끊임없이 자문하고, 정정하고, 사랑의 전쟁을 피하는 평화에 조인하기 때문이다."
감상적인 사랑, 자유로운 풍속
인간은 조화와 평온을 꿈꾸면서도 황홀한 사랑의 열정에 잠기도록 만들어졌거나 그렇게 계획되어진 존재입니다. 고요한 평온보다는 흥분, 혼란,전복, 고뇌 고뇌속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더 느끼게 되는 걸까요? 사랑에 빠진 여인은 욕망의 대상을 위해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기꺼이 말합니다. 이 세상 끝까지라도 갈 것이며, 에디트피아프의 노래에서처럼 "당신이 나에게 사랑을 요구한다면 나는 친구들을, 나의 조국을 모른다고 부인할 거에요"라고 강조합니다. 열정은 아주 강하고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폭풍을 체험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즉시, 우정의 깨끗한 강가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정은 선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개인을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경우도 없습니다. 우정은 지혜의 길처럼, 지혜의 사랑을 담은 요정처럼 찾아옵니다. 그래서인지 낭만적인 사랑보다 고객이 적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실패를 경험할 때, 절망에 빠져 진통제를 먹거나 정신병원으로 서둘러 가게 되지요. 그러고 나서 그들은 더 이상의 설명도 의문도 없이, 이미 경험했던 일이면서도 또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들은 영원히 갈망하여 세상을 유람하게 만드는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요.
모든 것은 마치 인간의 존재를 자신을 초월하기보다는 상황에 의해, 감정에 의해 쫓겨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일어납니다. 인간은 그 감정에 따라 살기를 더 좋아합니다.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린 적도 없고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도무지 알수 없는, 검정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지요. 우정은 나중의 일입니다. 우정은 감정이 흘러가는 만큼의 세월과 함께, 혹은 그 환멸과 함께 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정은 가끔씩 평가절하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정을 사랑의 음역, 또는 열정의 음역과 비교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감상적인 사랑에 빠질수 있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마치 사랑과 우정의 관계가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다른 것보다 더 흥미 있고 강하기라고 한 것처럼 배타적이며, 우정을 방해하며, 친구들을 배척하거나 저버린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에 대한 결정은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여는 모든 일과 모든 이행 과정을 금지시킵니다. 이것은 자발적이면서도 감미로운 일종의 풍속이지만, 거기에는 오로지 불행만이 생길 뿐입니다. 이러한 감정적인 혼란으로부터 찾게 되는 우정은 그저 일시적인 구명대가 아니라 대기를 향한 창이며, 그 호소들입니다. 태양 아래에는 이토록 발견해야 할 다른 것들도 많고, 사랑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사랑의 감정은 선택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어떤 목적을 위해 사랑의 감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며, 조심성없이 거기에 탐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엄격한 데카르트의 말을 부정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데카르트는 생각에 의해서만 인간이 존재한다고 여겼으니까요. 가끔 준칙들이 미리 정해지고, 사회와 가정, 대중매체가 우리를 사랑의 감정에 몰두하게 할 때 우리는 스스로 그 감정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용이한 길, 아주 빈번하게 나타나는 그길... 이 너그러운 여행자들은 거기에서 무엇을 알려고 애쓰게 될까요? 그들은 스스로를 망각하려 하며, 자신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고, 그것으로 충분한 것처럼 여깁니다. 60세의 정신요법 의사인 주느비에브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의 관계는 우정보다 더 용이 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우정에 대해서는 빨리 포기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본능에 따라, 사회적, 문화적 관습에 따라, 대중매체의 이미지에 다라, 그 사랑을 위해 처신할 수 있으니까요. 반면에 우정은 보다 더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것들을 요구하게 되지요. 친구에게 신실한 도움을 요구할 수도 있고, 도움 줄 수도 있지요. 사랑은 불가해안 요인, 눈에 보이지 않은 요인들로부터 생깁니다. 반면 우정은 서로를 찾고, 서로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지요. 우정은 두려움을 넘어 대담성과 신뢰를 필요로 합니다."
우정의 관계는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남녀의 사랑 관계는 일종의 향수일지도 모릅니다. 이 향수에서 시작된 사랑 관계는 반복(서로 싫증을 느끼지 않고), 과거로의 희기와 같이 행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정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자유를 만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우정에 의해 우리는 결국 이 미묘한 구습, 고집스러운 이 향수병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진부한 옛날 장난감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육체로부터 시작되는 감수성
의사로서 융을 연구한 정신분석학자인 피에르 솔리에는 우정의 기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과 우정에 대한 감수성은 육체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첫 교류는 유아와 어머니와의 사랑이다. 갓난아기의 어머니에 대한 첫인상, 첫 접촉, 애무 등은 아주 중요하다. 어머니는 그 순간에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아이와 관련된 모든 미래는 그 첫 교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첫인상을 플라톤의 [향연]의 <대화>에서는 '에로스'라 부르고 있다. 에로스는 육체와 영혼 속에서 사랑의 계단을 허용한다. 그리고 이것은 철학,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으로까지 고양된다. 유아는 어머니의 시선에서 정신적인 아름다움의 반영을 보게 된다. 만일 이 접촉이 잘 이루어지면, 그 감수성은 심령현상적인 모든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즉 미의 관념을 향한 접근을 허용하게 될 것이다. 나는 프로이드에 의해 정립된 무의식의 3단계(구강기, 항문기, 생식기)를 정신적 3단계(에로스,카리타스, 아가페)에 대응시키려 한다. 그래서 생식기는 남녀간의 일반적인 사랑(에로스)으로 대체할 수 있고, 항문기는 이웃간의 사랑(카리타스)으로 변형시킬수 있으며, 구강기는 세계에 대한 사랑(아가페)으로 변형시킬수 있다. 이 세가지 단계에 일반적으로 '사랑'이라 부르는 세 가지 유형이 부합된다. 이 세가지 유형은 그 자리에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할 수 있으므로 육체적인 사랑, 소유적인 사랑은 어느 단계에 이르면 정신적으로 승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을 열게 하거나(카르타스) 세계에 대한 사랑(아가페)을 추구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향연>에서의 에로스이며, 우정이다. 우리가 자애의 우정이라 부르는 정신적 우정은 아가페의 신비적인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 정신적분석학자인 미셀 몽트를레이는 인성으로 구성되는 우정에 관해 말했습니다. 여기에 만일 우정이 부족하거나 균열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분석을 요구하도록 하는 심각한 혼란을 유발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두 종류의 우정을 알고 있습니다. 15세에서 20세 사이의 몇몇 소년과 소녀들의 우정은 애정과 성적 방식에 대해 극도로 단호하고 체험적입니다. 남성들의 우정은 부성애적 관계와 형제애적인 관계 사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강하게 이끌리는 성적인 상황속에 존재하는 여성의 유형이기도 합니다.... 남성들에게 우정이 없다면 그들은 불안정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박애적이고 부성애적인 관계가 중요하고, 보다 사회화된 우정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동일화의 지표를 이용하는 근본적인 우정입니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 대칭 관계는 없습니다. 남성은 자신을 정립하기 위해서 우정을 필요합니다. 남성적인 이미지를 띤 관계속에서만 자신을 정립할 수 있으니까요. 남성적인 인성의 구성 요소는 다른 남성들(아버지, 선생님, 아저씨등)과의 애정적인 관계를 강압적으로 요구합니다. 만일 다른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남성적인 장점을 발견 할 수 없다면, 남성들은 동성애적인 빛깔을 띠고 있다 해도, 여성과의 사랑으로 인해 남편과 아버지로서 구성되게 마련입니다. 역으로 소년에게 남성들이 없다면, 그 결핍은 적극적인 동성애로 변할 것입니다. 그 소년은 다정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아버지가 그리워 질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의 특성은 아들이나 딸의 정신적 구성에서, 성적인 부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너그러움, 아버지의 우정은 환경, 세대, 계속되어온 현존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가 존재한다는 것, 자신의 아이와 함께 하기를 좋아하는 것, 그리고 가정의 전통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정신과 영혼의 교류
우리는 사랑을 하며, 더러 사랑의 감정으로 회귀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세계는 항상 위태롭습니다. 그 무엇도 얻어진 것이 없는 것 같고,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야 하며, 상대방을 감동시켜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동안 상실과 고통의 번민이 있기도 합니다. 언제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것으로 느껴지는 사랑의 관계에서 우리는 의심과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불확실을 예방하기 위해 미래를 구상합니다. 우정은 상호성을 갖는 것이므로, 서로의 정신과 영혼이 교류됩니다. 친구들은 오랫동안 혹은 평생토록 서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갈색 머리이며 언제나 미소를 띤 시골 태생의 처녀인 모니크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우정은 처음에 대상에 대해 그다지 착각을 하지 않습니다. 서두를 필요도 없고, 그러면서도 서로에 대해 더 분명해집니다. 그건 이미 좋은 토대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보다 진지한 자세로 상대를 발견하게 됩니다." '넌 내 친구야'라고 말할 만큼 되었을 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게 전혀 없지요. 그런데 성공하기가 더 어려워요."
한 남성은 자기를 전혀 모르는 여성, 또는 아주 냉정한 여성에게 반할수 있습니다. 한 여성은 자기를 모르고 있는 남성, 또는 자기를 무시하거나 우습게 여기는 남성을 깊이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방적인 사랑의 관계는 고뇌와 고통을 계속 안고 있게 됩니다. 반면에 우정은 결코 일방적인 관계로 시작될 수 없습니다. 우정은 처음부터 서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느낄수 있는 위태로움은 언제나 상대를 잃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생겨납니다. 우리는 상실에 의한 고통을 두려워하고 있으니까요. 이것은 상대를 차지하고 싶어하는 욕망과 상대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욕망 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정은 그런 식으로 상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며, 상대에게 의존하는 것도 아닙니다. 각자는 자율성과 이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다 더 평온하며, 협박이나 격한 파괴, 경멸의 감정, 증오, 질투 등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아주 다른 두 사람을 결합시키고, 그들을 동등하게 해주는 것이 우정입니다. 우정을 돈독히 한다는 것, 그것은 번갯불을 훔치는 것보다 더 강렬한 일입니다. 시간과 육체의 한계, 죽음 등을 포함하여 그 모든 한계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우정은 사냥금지 구역을 감시하는 대신에 그곳의 문을 열고 통행로를 트는 일이며, 경쟁과 질투를 포기하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