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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669호
단기 4342. 11. 10 (음력 9. 24)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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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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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사 제14회 신춘문예 작품 공모
농민신문사는 제14회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합니다. 역량 있는 작가와 우수 작품 발굴로 농촌문화 창달에 기여하기 위한 농민신문 신춘문예작품 공모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응모를 바랍니다.
< 모집요강 >
모집 부문 및 원고료 구분 선정편수 분량(원고지는 200자 기준)
단편소설 당선작 1편 원고지 70~100매 500 만원
시 당선작 1편 5 편 이상 300 만원
시조 당선작 1편 5 편 이상 300 만원
작품 내용 및 응모 자격 - 작품 내용은 제한 없으며, 기성 문인은 등단하지 않은 장르에 응모할 수 있음
응모 요령
- 응모 작품은 발표된 적이 없는 순수 창작품이어야 함 - 입상작에 대한 모든 권리는 당선작 발표일로부터 3년간 본사가 소유함 - 응모작품은 일체 반환하지 않음
응모할 때 유의사항
-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원고는 앞부분에 200자 원고지로 환산한 분량을 적을 것 - 원고지를 사용시 하나의 묶음으로 묶고 맨 뒤에 이름(필명인 경우 본명 병기)·주소·전화번호를 적을 것 - 겉봉에는 ‘농민신문 신춘문예 ○○부문 응모작’이라 적을 것
특 전
- 당선작은 농민신문에 게재하고 당선자가 신인인 경우 기성 문인으로 대우 마 감 : 2009년 11월 30일(마감일자 소인 유효) 발 표 : 2010년 1월 1일자 농민신문
보내실 곳 (110-764)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36 농민신문사 생활문화부 신춘문예 공모 담당자 앞
문의 전화 : 02-3703-6146, 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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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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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목받는 인물들은 성공하기 전에 반드시 큰 장애물에 부딪쳤음을 역사가 증명해 준다. 그들은 거듭되는 실패에도 용기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 - B.C.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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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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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리
중종 22년(1527년), 남평에 있는 절의 머슴 ‘눈쇠’(目隱金)가 ‘꽃계집’(花妻) ‘복덕이’를 때려죽였다. 조선 때 ‘죽을죄인’에게 마지막 판결을 내리기 전에 임금께 결재(계문)를 올리던 제도가 있었는데 이를 ‘계복’이라고 한다. 계복은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지며 추분이 지나 시월에 행하였다. 대신과 육조판서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의견을 들은 뒤 임금이 최종 판결을 내렸다.
눈은 빛을 받아 물체를 보는 기관이다. 더해진 뜻에 시력, 사물을 보는 태도, 눈금도 이르고, 그물코 사이 구멍, 가죽신의 코와 뒤울의 꾸밈새, 바둑판 줄이 만나는 곳도 눈이라고 한다. 풀이나 나무에서 돋아나는 꽃눈·잎눈도 있다. 이에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더해진다. ‘눈’(目隱/目/雪)이 든 이름에 ‘눈이·눈가이/눈개·눈동이·눈비·눈사리·눈쇠·눈졀이·눈지·눈이·왕눈이’가 있다. 눈이 크거나 내리는 눈처럼 하얘서 붙인 이름일까? 눈살은 눈썹 사이 잡히는 주름이다. ‘눈사리’(雪沙里)는 눈이 오면 아주 나가 살았나 보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 했던가? 감동을 받았을 때도 눈물이 난다. 감동 없는 사회는 사막이다. 겁 많은 왕눈이, 눈이 고운 눈졀이를 비롯해 모두가 서로 감동인 사회, 조금 덜 먹고살아도 먹은 게 모두 살로 가는 사회, 하여 사람들의 눈이 맑게 빛나는 사회는 참으로 살맛나는 세상이리라.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나절은 낮 시간의 절반
나절은 낮 시간의 절반쯤 되는 동안이다. 하루 중 해가 떠 있는 시간의 반이다. 그래서 한나절도 같은 뜻을 가졌다. 하루 낮의 반이다. 반나절은 한나절의 반이다. 나절은 낮의 어느 무렵이나 동안이라는 의미도 있다. 아침나절은 아침 먹고 점심 먹기 전까지의 한나절, 점심나절은 점심때를 앞뒤로 한 반나절, 저녁나절은 저녁 무렵의 한동안이다.
꾸물꾸물한 날씨, 찌뿌둥하다
김치전ㆍ만화책ㆍ늦잠…. 비가 올듯 말듯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은 '꾸물꾸물한' 날씨엔 한 박자 느려지고 싶다. 고양이가 소동을 부리면 큰비가 온다는 속담처럼 날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동물만이 아니다. 저기압이 접근하면 습도가 높아져 사람도 날카로워진다고 한다.
날씨가 활짝 개지 않고 자꾸 흐려지는 모양을 '꾸물꾸물하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날씨가 꾸물꾸물하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다. '꾸물꾸물'은 "눈발이 흩날리는 도로 위를 차량이 꾸물꾸물 기어가고 있다"처럼 매우 느리게 자꾸 움직이는 모양이나 "시간이 다 돼 가는데 왜 그렇게 꾸물꾸물하고 있니?"처럼 게으르고 굼뜨게 행동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요즘처럼 바람이 스산하고 끄물끄물한 날엔 따뜻한 우동 한 그릇이 생각난다"처럼 날씨와 관련된 말은 '끄물끄물하다'고 써야 한다. 날씨와 관련해 잘못 사용하는 말로는 '찌뿌둥하다'도 있다. "하루 종일 찌뿌둥한 날씨 때문에 기분까지 우울하셨죠?"라고 흔히 쓰지만 '찌뿌듯하다'가 바른 표현이다.
깍두기, 짠지, 섞박지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된 데 이어 일부 국산 김치에서도 이물질이 발견되는 바람에 사 먹는 김치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이에 따라 올해는 집에서 김장을 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배추 가격도 벌써 많이 올랐다고 한다. 올해는 잘못하면 김치가 아니라 금치를 담그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치와 관련해 잘못 쓰기 쉬운 단어들이 몇몇 있다. 김치는 포기 전체나 포기를 반으로 갈라서 담그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배추를 절인 다음 썰어서 담그는 것도 있다. 배추와 무.오이를 절여 넓적하게 썬 다음, 여러 양념에 젓국을 쳐서 한데 버무려 담은 뒤 조기젓 국물을 약간 부어서 익힌 김치를 흔히 '석박지'라고 적는다. 그러나 이것은 '섞박지'라고 쓰는 게 맞다.
그리고 일부 지방에서는 배추김치를 일러 '짠지'라고 부르는데 표준어에서 짠지는 '무를 통째로 소금에 짜게 절여서 묵혀 두고 먹는 김치'를 말한다. 배추와는 관련이 없다. 또한 무를 작고 네모나게 썰어서 소금에 절인 후 고춧가루 따위의 양념과 함께 버무려 만든 김치를 '깎두기'라고 쓰는 이들이 많지만 이것도 '깍두기'로 쓰는 게 옳다.
노숙인과 노숙자
얼마 전부터 노숙자들을 '노숙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놈 자(者)'보다 '사람 인(人)'을 쓰는 것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연 '노숙자'와 '노숙인' 간에 의미상 차이가 있을까. '인'과 '자'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사람'이란 뜻을 나타내는 접미사이지만 '연기인/연기자'처럼 '인'과 '자'를 혼용해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 또한 '범죄인/범죄자'에서 보듯 '인'자가 붙은 단어가 좋은 의미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인'은 원시인.사회인.감시인처럼 앞 단어의 의미를 나타내는 사람임을 가리킨다. 또한 연극인.예술인.상공인처럼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거기에 소속된 사람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자'는 과학자.교육자.기술자처럼 그 방면의 일이나 지식에 능통하며 무엇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 정복자.공로자.노동자와 같이 어떠한 사람이나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나타내기도 한다. 결국 '노숙자'를 '노숙인'으로 바꾸어도 의미상으로 달라지는 것이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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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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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딘 슬픔 - 황동규
불을 끄고도 어둠 속에 얼마 동안 형광등 형체 희끄무레 남아 있듯이, 눈 그치고 길모퉁이 눈더미가 채 녹지 않고 허물어진 추억의 일부처럼 놓여 있듯이, 봄이 와도 잎 지지 않는 나뭇가지 중력(重力)마저 놓치지 않으려 쓸쓸한 소리 내듯이, 나도 죽고 나서 얼마 동안 숨죽이고 이 세상에 그냥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대 불 꺼지고 연기 한번 뜬 후 너무 더디세 더디게 가는 봄.
황동규 시집"꽃의 고요'[문학과 지성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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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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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扁柏)나무 숲에서는 - 최광림
편백(扁柏)나무 숲에서는 두 눈이 멀어도 좋다 질 고운 햇살의 입자(粒子) 문간채에 걸어두고 달빛도 잘게 썰어서 연등(燃燈)으로 내어 걸고,
사방 백 리 향불 사뤄 눈 감아도 부신 노을 산란(山蘭)이 포란(抱卵)하는 청태(靑苔) 낀 돌 틈에서 갈바람 속살거리는 언어들을 줍는다.
태청산(太淸山) 한 자락을 울안에 들여놓고 화선지에 먹물 지펴 한 점 획(劃)을 지었더니 편백향 취기(臭氣)에 젖어 문풍지도 우는 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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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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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2
3. 진정한 삶을 산 사람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나의 기쁨과 열정은 내 목소리에 있다. 나는 내가 사는 지역의 연극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번은 특별히 고된 작품을 연습하던 중에 목이 몹시 쑤셔 왔다. 나로선 처음으로 오페라 무대에서 연기하는 기회였기 때문에 나는 성대가 고장났을까 봐 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나는 주연 배우였고, 게다가 막 오를 날짜가 임박해 있었다. 나는 우리 집 가정 주치의와 진료 약속을 하고 가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직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화번호부를 뒤져 인근 지역에 목 전문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재차 진료 예약을 하고 서둘러 그 병원으로 달려갔다. 간호사가 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의사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몹시 기분이 우울했다. 나는 병에 잘 걸리지 않는 체질인데, 하필이면 체력이 꼭 필요한 시점에서 병이 난 것이다. 게다가 직장에서 일할 시간에 두 명이나 되는 의사를 만나러 다니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게다가 두명 다 나를 기다리게만 하고 있었다. 정말 기운 빠지는 일이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잠시 후 간호사가 다시 와서 말했다.
"저, 개인적인 질문을 한 가지 드려도 될까요?"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병원인데 개인적인 질문밖에 다른 어떤 걸 물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튼 나는 간호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 무슨 질문인데요?" 간호사는 약간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당신의 손을 봤거든요."
나는 열 한살 때 지게차가 전복하는 사고 때문에 왼손 절반을 잃었다. 그렇게 해서 연극 배우가 되겠다는 내 꿈이 사라졌었다. 물론 모두가 "그래요?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요. 당신이 너무 자연스러워서요." 하고 말하긴 했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성한 사람만 보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나 같은 사람이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게다가 나는 키가 너무 크고 체중도 많이 나갔으며 재능도 별로 없었다. 맞아, 사람들이 나를 보고 싶어할 리가 없어. 하지만 난 뮤지컬 코메디가 좋았고, 또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한 극장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오디션에서 내가 첫 번째로 뽑힌 것이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의 일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시도하는 거의 모든 작품에 캐스팅되었다. 간호사는 조금 더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그것이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거예요."
지난 25년 동안 아무도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진 사람이 없었다. 흔히들 "신경 쓰이겠군요."라든가 "좀 불편하였어요." 라고 말할 뿐이지 "당신의 삶에 그것이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하고 대놓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있고 나서 간호사가 다시 말했다.
"얼마 전에 제가 출산을 했거든요. 그런데 아이의 손 하나가 당신의 손처럼 생겼어요. 그래서" "이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냐구요?"
나는 적당한 대답을 찾느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난 말했다.
"물론 이것은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하지만 나쁜 식으로는 아녜요. 난 정상적인 두 손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하기 힘든 많은 일을 하죠. 1분에 75단어를 타이핑할 수 있고, 기타 연주를 하며, 수년간 승마를 해 왔어요. 또 승마 교관 자격증까지 갖고 있죠. 난 현재 뮤지컬 무대에서 일을 하고 있고, 전문적인 강사이며, 계속해서 대중들 앞에 서죠. 그리고 일년에 4,5회 정도 텔레비전 프로에 나갑니다. 난 한번도 불구인 손이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가족들의 사랑과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죠. 가족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두 손을 갖고도 하기 힘든 일을 내가 한 손으로 해내는 걸 보고는 나보다 더 기뻐했어요. 가족 모두가 함께 흥분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죠. 이것은 장애가 아니라 우리 가족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됐어요. 당신의 딸은 아무 문제도 갖고 있지 않아요. 그 아인 정상이에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제부터 당신이 그 아이에게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가르칠 거예요. 그 아이는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겠죠. 하지만 당신은 그 아이에게 '다른 것' 은 좋은 것이라고 가르쳐야만 해요. 정상적이라는 건 평균을 의미하잖아요. 평균은 너무 시시하지 않겠어요?"
간호사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런 다음 간단히 "고마워요." 하고 말하고는 걸어나갔다.
나는 그곳에 앉아서 생각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모든 일은 어떤 이유 때문에 일어난다. 지게차가 내 왼손 위로 떨어진 것조차 그렇다. 모든 상황이 나로 하여금 이 병원에 오게 했고, 지금 이 순간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정확히 그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의사가 들어왔다. 그는 내 목안을 들여다보더니 목에 마취를 해서 조직 검사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가수든 성악가든 자신의 목에 의료 기구를 집어넣는 것을 질색한다. 특히 마취를 해야 할 정도라면! 난 말했다.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나는 얼른 밖으로 걸어나왔다. 다음 날 내 목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이 나 있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 릴리 월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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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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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3장 사랑하는 나에게
예의
좋은 예의를 보여라. 예의는 돈도 들지 않으면서 돈을 들인 것보다도 더 높은 가치와 품위를 남기고 거기에 좋은 이미지까지 불러일으킨다. 자신을 아름답게 내보이는 비결은 바른 예의를 보이는 것이다. 예의는 자신은 물론 타인들까지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좋은 옷이요 장식품이다. 사람들은 누구와 만나든 외모에 앞서 예의에 주목한다. 외모가 훌륭해도 예의 없이 행동하면 좋은 이미지를 가져 주지 않지만 외모가 비록 보잘것없어도 예의 있게 행동하면 좋은 이미지를 가져 준다.
예의는 인격의 가장 좋은 표현이다. 모든 인격은 바른 예의 속에서 잉태되고 싹튼다. 인품도 학덕도 명예도 바른 예의가 추가됨으로써 그 가치를 드러내고, 만났다 헤어진 후 따뜻한 인간미가 되살아나 또다시 만나고 싶어지는 감정도 좋은 예의에 의해서 일어난다. 외모도 결국은 예의에 의해서 빛을 발한다. 깔끔한 외모에 바른 예의까지 덧붙인다면 그야말로 멋진 사람이 된다.
사람에게서 눈 뜨고 보지 못할 것은 못생긴 얼굴도 누추한 옷차림도 아닌 무례이다. 무례는 불쾌감을 유발시켜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인격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아주 나쁜 것이다. 무례 앞에서 그 가치가 제대로 남아나는 것은 없다. 제아무리 고매한 인품도, 제아무리 빼어난 외모도 무례 앞에서는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이란 비난을 면치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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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양고전/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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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1장 서양문학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 오스틴(Jane Austin, 1775-1817)
영국 최초의 위대한 여성작가 오스틴이 19세기 초의 영국 중류사회의 풍자적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4쌍의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19세기를 전후한 영국 중산층의 결혼관과 가치관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엘리자베스와 다시라는 두 주인공이 오만과 편견 의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인간성이 완성되어간다는 이야기로, 가정과 여성의 삶, 그리고 결혼을 통해 시대적반향과 내면의 성찰을 함께 드러낸 오스틴 문학의 정수다.
생애와 작품활동
영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여류 소설가인 오스틴은 햄프셔 주의 스티븐턴에서 신앙심이 깊고 온화한 아버지와 유머가 풍부한 어머니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학교교육은 거의 받지 않고 주로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문학적 성향이 뛰어난 가족들의 영향으로 처음으로 풍자적인 습작을 쓰다가, 점차 본격적인 소설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재치있는 여성으로 시와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지어내는 재주로 유명했다. 이 대가족이 즐긴 오락은 연극이었는데, 오스틴 일가와 이웃들은 스티븐턴 극단을 만들어 여름휴가 때는 목사관 헛간을 소극장으로 개조해 연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활기차고 애정이 넘치는 집안 분위기는 그녀의 창작을 자극했는데, 부친의 은퇴와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 한동안 방황했으나. 제2의 고향인 초턴에서 작품활동을 재개하여 경이적인 활동을 한다.
이전의 원고를 고쳐 출판한 분별과 다감(1811)에서 이성과 낭만적 감성 사이의 갈등을 풍자했고, 젊어서부터 첫인상으로 구상해두었던 소설을 다듬어서 오만과 편견 (1813)으로 출판했다. 그뒤 맨스필드 공원(1814), 에머(1815)를 연속 출판했다. 그러나 1816년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1817년 5월 눈을 감았다. 사후에 출간된 노생거 사원 은 18세기 후반에 유행하여 낭만주의를 선도한 중세를 배경으로 한 괴기소설인 고딕소설의 과잉을 풍자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오스틴은 주로 18세기 후반의 중류계급에서 일어나는 일상생활 중, 특히 남녀의 결혼을 둘러싼 문제를 극적이고 사실적으로 다루었다. 그녀는 방어적이고 풍자적인 문체는 소재의 빈약함과 작품공간의 협소함을 극복함으로써 많은 독자층을 확보했다. 특히 오만과 편견 은 두 남녀 주인공의 오만과 편견으로 인한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시골의 여러 가족을 중심으로 한 중상류층 남녀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통하여 마침내는 여주인공이 많은 과오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밀도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소재도 좁은 편이고 동시대의 스콧과 같은 화려한 표현도 없지만, 18세기 특유의 도덕의식을 바탕에 둔 인생비평, 제한된 세계를 묘사하면서 날카로운 비판을 포함한 우수한 인물의 창조, 이야기를 극적으로 전개하는 절묘한 서술방법으로 영국 소설사상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오스틴에 대해 19세기의 마코레나 테니슨은 셰익스피어와 견주기도 했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여류작가인 버지니어 울프도 셰익스피어라는 사람 그 자체는 그 작품에서 종잡을 수 없는데, 오스틴의 경우에도 그와 흡사하다. 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녀의 인물됨이 아무리 정겹고 허물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성격상 종잡을 수 없는 면도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녀의 문학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신선하고 예술 심리적인 문학으로 그 예술성이 인정받기 시작하고 있다.
시대적 상황과 작품세계
오스틴이 살았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는 영문학사상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 문학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였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거나 감상적인 탐미주의에 흐르고 있었는데, 오스틴은 그러한 낭만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18세기의 고전적 정서를 강하게 지닌 그녀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나갔다. 그는 풍경의 묘사보다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정교한 인물묘사를 통하여 무조건 중세를 동경하거나 병적인 감상에 흐르던 당시의 젊은 여성들의 심리를 비웃었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이 있었으며 이에 따른 각 분야의 급격한 증가가 있었다. 문학사적으로는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문학관과 인생관이 일기 시작했다. 이성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전통의식과 더불어 질서와 상식, 보편타당한 합리성이 인생에 있어서나 문학에 있어서 목표가 되었던 18세기의 고전주의에 비해, 이 새로운 움직임은 개인의 감정과 상상력이 모든 판단의 기본임을 천명하고 콜리지와 워즈워스의 서정적인 발라드를 발판으로 차츰 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초기 낭만주의의 기수들은 대부분 시인들로서 이들의 낭만정신은 자연에 심취한 워즈워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먼 이국정서를 동경한 콜리지, 아득한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혁명정신을 강조한 셸리, 미를 추구한 키츠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문학운동은 기존의 고전주의와는 정반대의 문학적 특징을 추구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문학적 조류 속에서 작가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틴은 그러한 영향을 별로 받지 않은 이색적인 작가였다. 그녀는 오히려 18세기 초의 고전주의로 회귀하는 듯한 문학세계를 펼쳤다. 그녀는 당시 유럽을 뒤흔들었던 역사적인 사건의 의미 해석이나 서술보다는 평범한 일상의 삶의 묘사에 주력하였으며, 과거에 대한 동경, 꿈과 관념의 감상주의적 경향보다는 이성적인 현실의 세계를 지향했다. 이처럼 오스틴의 생애와 작품세계는 그녀가 살았던 19세기 초 영국의 정치상황이나 사회 제반문제와는 무관한 것 같다. 현대 비평가들은 오스틴의 소설이 지닌 빈틈없는 짜임새에 매료되고, 겉보기에 평범하고 제한된 사건과 배경을 가진 이야기를 통해 존재의 희비극을 드러낼 수 있게 한 기법상의 성취에 높은 평가를 한다.
주요 등장인물
인간의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생각케 하는 소설로, 사람을 재산과 신분으로 평가하는 사회적 통념에 반대하는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다시의 오만에 편견을 보이다가 사회의 편견에 편견을 가졌음을 깨닫게 되고, 재산이나 신분과 무관하게 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작가의 아이러니컬한 서술이 재미를 더해주는 작품으로,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제인 : 장녀로서 솔직성과 조심성, 포용력을 가진 정적인 인물. 엘리자베스 : 둘째딸로 생기발랄하고 재기가 넘치며 인습에 맹종하지 않는 동적인 미인으로, 후에 편견 을 버리고 참된 사랑을 얻는 검은 눈동자의 소유자. 다시 : 명문집안의 남자로 약간은 오만 하나, 정직하고 자상한 인물. 리디아 :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로 꿈과 동경에 싸여 있으며, 심성이 착하고 정열적인 인물. 베네트 부인 : 즉흥적이고 부드러우며 사소한 일에도 마음을 두는 인물. 베네트 : 과묵하면서도 사색적이며 자식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지니고 있는 인물. 빙글리 :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로 자신의 주관이 강한 인물. 위컴 : 남을 공모하지만 진실된 사랑 앞에서 참회하는 인물.
작품의 주요내용
상당한 재산을 가진 남자에겐 틀림없이 아내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사실이다. 이 소설은 이런 말로 시작된다. 어느 작은 마을의 베네트 가에는 베네트 씨 부부와 다섯 딸이 함께 살고 있다. 베네트 씨는 냉소적이며 농담을 즐겨 하는 편이지만, 바탕은 온화한 사람이다. 어머니 베네트 부인은 삶의 의미를 딸들의 결혼에 두고 있는 여자다. 장녀인 제인과 둘째인 엘리자베스는 혼기가 되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자나깨나 그들의 결혼 문제만을 생각한다. 마침 근처의 네더필드라는 곳에 독신청년 빙글리가 찾아든다. 그의 수입이 4~5천 파운드나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베네트 부인과 가족은 이에 솔깃한다. 이윽고 빙글리를 환영하는 마을 무도회가 열리고 베네트 부인은 딸들을 데리고 여기에 참석한다. 드디어 여기서 빙글리의 친구인 다시와 엘리자베스가 운명적인 만남을 한다. 용모가 훤칠하고 부유한 미남청년인 다시는 뭇사람의 시선을 받는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그의 오만 한 태도에 화를 낸다. 그리고 다시에게서 예쁘지 않기 때문에 같이 춤을 출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자존심이 상해,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그후부터 엘리자베스는 다시와 관련된 모든 것에 우선적으로 편견 을 갖고 적대감을 키우게 된다. 반면 다시는 그녀에 대해 처음에는 무관심했다가 차츰 그녀에게 감탄하게 되고, 그녀의 재치와 기지에 끌려 마침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자존심과 진실된 자아실현의 의지를 지닌 엘리자베스는 어머니나 세상사람들이 품고 있는 돈 많은 청년이 제일이라는 편견에 동조하지 않는다. 대신 특유의 독립성과 지성으로 진실한 삶과 사랑을 이루려 한다. 이러한 그녀의 성격은 네더필드의 빙글리의 집으로 언니 제인을 데리러 가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어느 날 네더필드에서 제인에게 놀러오라는 초대장이 온다. 본인보다 어머니가 더 좋아한다. 그리고 제인이 네더필드로 간 뒤 비가 와서 하룻밤이라도 더 묵게 되기를 바란다. 실제로 제인이 비를 맞아 감기가 들었다는 소식이 온다. 이대 엘리자베스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비를 맞으며 언니를 데리러 간다. 엘리자베스의 이러한 행동에 빙글리의 여동생인 캐롤라인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괜한 짓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다시 역시 그녀의 행동에 놀라면서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캐롤라인은 다시에게 호의를 품고, 다시와 오빠인 빙글리가 베네트 집의 딸들과 가까이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차츰 엘리자베스의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에 끌려가고 있던 다시는 캐롤라인에 대해서는 냉정한 태도를 보인다. 다시는 런던의 재산가의 아들로서 귀족으로 자랐기 때문에 오만한 태도가 남아있다. 그래서 그는 엘리자베스에게는 호의를 가지면서도, 그녀의 부모나 마을여자들을 경멸한다. 그런 다시에게 엘리자베스는 계속해서 반감을 갖는다.
이즈음 베네트 가의 먼 친척이 되는 콜린스라는 젊은 목사가 찾아온다. 그는 아들이 없는 베네트 가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이다. 그는 캐서린 영부인의 알선으로 조그만 교회의 목사직을 갖고 있으며 아내 될 사람을 고르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다. 이 청년은 몹시 경박한 인물이어서 큰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베네트 가의 딸들 중 하나와 결혼해주겠다고 의기양양하게 말을 한다. 베네트 부인은 그 제의를 맞장구를 치고 엘리자베스를 설득시키려고 한다. 어느 날 콜린스는 엘리자베스에게 구혼을 하나, 그녀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에 콜린스는 기대했던 것이 어긋나자 엘리자베스의 친구인 샬로트 루카스와 결혼해버린다.엘리자베스의 동생들은 근방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내왕하고 있었는데, 그 군인 중에는 위컴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위컴은 명랑한 성격인데다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해서, 엘리자베스는 다소 호의를 갖게 된다. 그녀는 위컴으로부터 다시와 가까운 사람이며, 다시의 냉대로 불행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원래 의협심이 있는 엘리자베스는 더욱 다시를 미워하게 되고, 위컴을 동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위컴의 모함으로, 후에 위컴은 엘리자베스의 동생인 리디아와 도망을 간다. 이즈음 다시는 뜻밖에도 엘리자베스에게 청혼을 한다. 그는 자기의 자존심이 꺾이는 것은 억울하지만, 사랑은 막을 도리가 없으므로 당연히 엘리자베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의 주위에서 그를 흠모하는 다른 여자들처럼, 그녀도 자신의 사랑과 거기에 그의 부유함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그의 오만함을 알고는 거절해버린다. 동시에 제인으로부터 빙글리를 갈라놓은 일과 위컴을 냉대한 일에 대해 비난한다. 두 사람이 서로 길러온 오만과 편견이 절정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 다시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뉘우치고 겸허한 마음으로 엘리자베스에게 편지를 쓴다. 거기에는 위컴에 대한 상세한 비리와 그동안의 오해에 대한 솔직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 편지를 받고 엘리자베스 역시 마음의 변화를 느낀다. 또한 샬로트와 콜린스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엘리자베스는 다소 놀라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 즉 그것은 지금까지 스스로 타인의 기분을 측정하고 타인의 특성과 개성을 판단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심을 가졌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인 것이다. 이 점은 그녀가 다시의 편지를 읽으면서, 자신의 편견을 깨닫게 되는 것과 상통한다. 결국 그녀는 이 순간까지 나는 나 자신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면서 자아발견의 성숙한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다시의 타고난 오만도, 엘리자베스의 편견도, 참된 사랑에 의해 극복되고 두 사람은 비로소 진실한 사랑을 맺게 된다.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소설은 엘리자베스와 다시가 오만과 편견의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의 인간성이 완성되어간다는 이야기를 주된 흐름으로 하고 있다. 즉 다시가 오만 이라면, 엘리자베스는 편견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서로 교차되는 두 인물이 어느 한 가지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모두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마 이러한 뜻이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혀 있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가 이 작품을 이끄는 요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들을 중심으로 5명의 딸들을 결혼시키는 것이 평생과업인 베네트 부인, 아첨꾼 목사 콜린스, 그리고 위풍당당한 귀부인 캐서린 등등의 인물군상을 등장시킴으로써, 생생한 중류사회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 작품은 조용한 환경에서 작가의 경험을 주요 토대로 한 것들이며, 작품의 무대나 등장인물도 그녀의 삶 속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녀의 소설무대는 18세기 말 그녀가 태어난 영국 남부의 고요한 시골마을이고 등장인물도 대부분이 그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귀족과 목사. 군인 등이다. 그들이 빚어내는 평범한 생활상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를 이룬다. 이러한 소설의 일상성은 그녀가 시골마을의 서너 집안 일이 바로 작품소재다 라고 조카에게 쓴 편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소설을 가정소설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국 최초의 여성작가인 그녀의 소설의 중심에는 언제나 가정이 있다. 그녀는 등장인물의 행동 자체보다도 그러한 행동을 유발한 동기라든가,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 즉 가정생활. 사랑. 결혼 등을 경험하는 동안에 이루어지는 내적 성장을 섬세하게 그렸는데, 이것은 오스틴 작품의 내면적 탁월성을 말해준다.
그녀의 소설의 저변에 면면히 흐르는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아이러니는 발전과 영광이라는 화려한 전면에 의해 감추어진 영국 중류계급의 퇴폐적인 치부를 풍자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에는 오스틴의 문학세계가 가장 잘 반영된 것으로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질적. 양적인 면에서 그녀의 천재적인 작가역량이 발휘된 작품이다. 특히 이 소설은 가정과 여성의 삶, 그리고 결혼을 통해 시대적 반향과 내면의 자아성찰을 함께 드러낸 오스틴 문학의 특성이 가장 잘 집약되어 있다. 이른바 오스틴 문학의 정수요. 세계문학의 보석인 것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가정사와 결혼, 사랑의 과정을 풍자와 아이러니 수법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오만과 편견 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듯이 소설을 결국 외양과 실제 차이를 두 주인공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오만과 편견의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을 아이러니와 풍자적 방법으로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두 주인공의 자기발견의 과정을 꿰뚫어보게 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다시를 외모로만 판단하여 오만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짐으로써 갈등이 생겼던 것처럼, 다시도 큰딸인 제인을 빙글리에게 시집보내려고 애쓰는 베네트 부인의 저속함을 보고, 다른 딸들도 저속하리라는 편견을 가짐으로써 엘리자베스에게 오만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작가는 사물의 실체나 진실이 무엇인가를 독자에게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오스틴의 명랑하고도 위트 있는 유머와 풍자 속에서 우리는 삶의 실체와 진실을, 그리고 당시 영국사회의 인간상과 시대상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작가가 지니고 있는 재질은 평범한 사건의 뒤에 숨어 있는 심리적 깊이를 파헤치는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이 극히 국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를 이끄는 원동력은 바로 이러한 심리적 상태를 관찰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가가 담담한 필체로 인생의 깊이를 포착하고 은근한 유머를 담은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한 여류작가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세계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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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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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칭찬하는 사람, 헐뜯는 사람 - 프란체스코 알베로니
4부 - 창조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
혼자 도전하는 사람
살아가면서 우리는 새로운 길, 탐험해 본 적 없는 길에 들어서는 순간이 있다. 공부를 마치고 직장을 구할 때나 대도시로 가기 위해 고향을 떠날 때가 그런 순간이다. 사업을 하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떠날 때, 사랑에 빠져 새로운 사람과 함께 살게 될 때도 마찬가지이다. 또 우리가 정치나 종교 또는 예술의 길을 가기로 결심할 때도 그렇다. 이런 모든 경우에 우리는 일상적이고 평온하고 예측이 가능한 과거의 세계를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한다. 그런데, 그 판에서는 눈앞에 보이는 대로 항해하고 잘 가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알 수가 없다. 판돈이 크면 클수록 시도는 더 위험하고 불확실해진다. 그래서 지적, 감정적 에너지를 거기에 송두리째 쏟아부어야만 한다. 잠시라도 방심했다가는 큰일이 난다! 잠깐 느슨해져도 큰일이다! 가끔씩 어려움이 커질수록 목표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듯이 보일 때가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어려움의 반 정도는 바깥 세계에서 오지만 나머지 반은 버림받았다는 생각에서, 우리 곁에, 우리편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의 몰이해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어렵고 중요한 순간에, 낯선 땅에서 싸움을 할 때 사실 우리는 거의 혼자이다. 가까운 사람들, 부모, 자식, 남편이나 아내, 아주 친한 친구와 친지들은 당혹스러워하며 한쪽에 물러서서 우리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우리를 믿지 않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우리를 비난하고 정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다. 왜 그럴까? 우리가 그들 그룹에서 빠져나와 따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룹이라는 것, 다시 말해 가족, 친지, 친구들의 통합체는 완전한 하나의 조직이며 그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은 뚜렷한 위치가 있다. 그리고 다양한 위치들이 조합되어 하나의 모자이크를 형성한다. 이제 우리가 역할을 바꾸면서 과거의 역할을 저버리고 그 모자이크를 흐트러뜨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뒤흔들어 놓고 그들의 평온함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룹의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가 된 개인이라면 우리를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다시 그 사람들에게 돌아가 이야기를 하면 생각이 바뀌고 그룹의 반발에 전염되고 만다. 우리와 헤어질 때까지는 우리에게 열광해 있었는데, 다시 만났을 때는 냉담해져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는 쉽다. 머리 손질 방법을 바꾸어 보고, 수염을 기르거나 머리를 빨간색으로 물들여 보라. 당신이 화가가 되기로, 아니면 성악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해 보라. 당신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때, 새로운 길을 택하고 싶어할 때의 반응은 아주 심각하다. 그러면 비록 그룹에 속한 사람들 중 아무도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당신을 거부한다. 갑자기 당신은 혼자가 된다. 그들의 눈에서 비난과 불신을 감지한다. 누군가 당신을 홀린게 아니냐고,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라고 미심쩍은 듯이 충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남자가 그럴 경우 사람들은 그가 돌았다고 말하고, 여자일 경우 별로 질이 좋은 여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게 당신은 혼자서 기어 올라가야만 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은 당신의 노력과 고민을 일부러 모르는 척한다. 당신을 도와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개 자신들의 문제를 당신에게 떠 넘기고 당신이 그들을 위해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모르는 사람에게, 외부의 구원자에게 도움을 받기가 훨씬 더 쉽다.
혁신적인 시도가 실패하게 되면 흠 잡는 사람들이 의기양양해지는데, 자신들 생각이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개 혁신하는 사람은 승리한다. 거칠게 몸을 던지기 때문이며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승리를 하고 나면 그룹은 축제 분위기에 들떠 그와 그의 성공을 자신들의 것으로 하려고 한다. 먼곳에 살던 친지들이나 고향 사람들까지도 그를 만나러 오고 모두들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말한다. <내가 그랬잖아, 생각나지?> 그들은 이렇게 치근거리며 과거를 다시 꾸며낸다. 외로움 때무에 너무나 힘이 들었던 혁신자는 이제 이런 집단적인 거짓말로 위로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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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지식, 생활, 건강, 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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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현들의 풍류기 술. 멋. 맛 - 원융희
꽃으로 술을 빚어 무궁무진 먹사이다
세상에 이해 못할 일이 어디 한 두 가지랴마는 우리가 정말 이해 못할 일 가운데 하나가 등산인가 한다. 휴일에 하루 이틀 소풍 삼아 가족이나 남녀 벗과 더불어 가까운 산에 올라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자연의 고마움과 인정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돌아오는 정상인의 산행이야 누가 이해 못하랴만, 수주일 씩 직장도 팽개치고 떼돈 들여가며 히말라야니 알프스니 하는 험산에 도전하여 꽃같은 목숨을 건다는 것은 얼른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민족의 해방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독립투사가 아니고, 종교의 자유와 포교를 위해 목숨을 건 순교자는 더구나 아니다. 통일을 외치며 고층에서 뛰어 내리는 운동권 학생이나 노동해방을 부르짖으며 휘발유 불꽃 속에 산화하는 노동자는 그대로 자기 죽음의 값을 톡톡히 받아 내겠다는 계산이나 있지만,설산의 빙벽이나 험산의 계곡에 몸을 내던지는 등산가야말로 수수께끼 같은 인물들이다. 제1차 세계대전후 유럽의 산사람들이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의 정상인 에베레스트에 군침을 흘리기 시작하여 30여년을 두고 숱하게 도전했으나 매번 참패였다. 그러나, 1953년 5월29일 정오, 영국등반대의 힐러리(Sir E.P.Hillary)란 사람은 드디어 이 일을 해냈다. 참으로 장한 일이었고, 그는 일약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기자가 그에게 당돌한 질문을 했다. "당신은 뭣하러 산에 올라가오?" 턱없이 흥분하여 우쭐거리던 이 친구가 뭐 할 말이 있나. 얼결에 한다는 소리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 (우물쭈물)"이다.
술꾼이야말로 이해 못 할 사람들이다. 돈 버리고 몸 버리고 종종 명예조차 담보하고 가정파탄까지 불가하면서 왜 술을 먹느냐 이말이다. 그것도 식사 때 한두잔 하는 반주나 즐거운 자리에서 기분좋을 만큼 마시는 애주는 이해 못할 바 아니로되, 대취,만취,주야장취 이래서야 직성이 풀린다니 정말 이해 못할 일이다. 등산가 이야기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당신은 뭣 하러 술을 마시오?" 는 우문이고, "술이 거기 있기 때문에!" 는 현답이다.
술먹고 비틀걸음 칠제 술을 먹지 말자 맹세하였더니/술 보고 안주 보니 맹세도 허사로다./아이야, 술 가득 부어라 맹세풀이 하자. -실명씨-
술끊기, 담배끊기, 여자 끊기만큼은 맹세하지 말일이다. 외람 되나마 예수님 말씀 좀 인용하자. "옛사람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마태5:33-34)
술을 내 아더냐 광약인 줄 알건마는/ 잔 잡아 웃음나니 일배 일배 부일배라./ 유영이 이러함으로 장취불성하니라. -신희문-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하는 술이 정녕 광약일시 분명한데,"첫잔은 사람이 술을 마시고,둘째잔은 술이 술을 마시고,세째잔은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부처님이 누누이 타이르셨건만 그걸 알면서도 한 잔, 한 잔 다시 한 잔, 그러다 보니 취생봉사라. 유영이란 이는 중국 진나라 죽림칠현의 하나로 주량기본이 열 말인데다 닷말을 마셔야 비로소 해장이 된다는 술꾼이다. 술꾼들이 매양 "술이 거기 있기 때문에"식 답변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나름의 핑계가 있다. 그 핑계 중에 대표적인 것이"근심을 잊으려고"이다.
이러니 저러니 말고 술만 먹고 노세그려./ 먹다가 취하거든 먹은 채 잠이 들어/취하여 잠든 덧이나 시름잊자 하노라. -실명씨-
세상 시름이 백팔 번뇌인지 팔만사천 번뇌인지 모르나 어찌 됐건 맨 정신으로는 괴로워서 못 살겠으니 술에 취해 잠든 동안이나 잊어보자는 것이다.
옳은 일 하자 하니 이제 뉘 옳다 하며/그른 일 하자 하니 후에 뉘 옳다 하리/ 취하여 시비를 모르면 긔 옳은가 하노라. -실명씨-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불의에 온 몸으로 부딪쳐 보니 그거야 달걀로 바위 치기지. 그렇다고 역사의 심판을 각오하고 낯두꺼운 속물이 되어 부정한 무리와 같은 배를 탈수는 없다. 그래서 빈허 현진건은'술 권하는 사회'라고 했다. "본 정신 가지고는 피를 토하고 죽든지 물에 빠져 죽든지 하지, 하루라도 살 수가 없단 말이야. 흉장이 막혀서 못 산단 말이야!"하고 울부짖는 남편. 몸생각 해서 술좀 작작 마시라는 아내. 술을 먹고 싶어 먹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술을 권해서 어쩔 수 없이 먹는다는 남편.'사회'가 어떤 술집이름 이거나 작부 이름쯤 되는 줄 아는 숙맥 같은 아내, 이래서 답답한 남편이 갈곳은 다시 술집밖에 없다는 거다.
술을 취케 먹고 두렷이 앉았으니/ 억만 시름이 가노라 하직한다./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시름 전송하리라. -정태화-
시름의 해소는 앞에서 말한 바 술의 효용 중 소극적 기능이라 하면, 적극적 기능이 또 있다. 말하자면, 기뻐할 일이 있거나 즐거운 자리가 마련됐을 때, 이 기쁨과 즐거움을 강화하고 심화하는 구실이다.
한잔을 먹사이다. 또 한잔 먹사이다./ 꽃으로 술을 빚어 무궁무진 먹사이다./ 동자야 잔 가득 부어라 취코 놀고하리라. -실명씨-
옛날 어떤 사내가 술만 먹으면 하도 주정을 해대서, 시달리던 아내가 한 번은 술 달라는 남편에게 맹물을 주었더란다. 아니나 다를까 맹물 몇 잔 따라 먹고 주정이 태심하니 아내는 견디다 못해 "여보, 그게 술이 아니라 맹물인데 당신을 맹물 먹고도 주정을 하오?"하고 쏘아 붙였단다. 그러자 머쓱해진 사내왈 "어쩐지 좀 싱겁더라니!" 이런 술꾼은 술이 가진 정서적 가치를 몰각한 저질이다. 이에 비하면 꽃으로 술을 빚는 사나이야말로 술멋을 아는 이다. 술 시조라면 송강 정철의 사설시조 '장진주사'를 빼놓을 수 없다. "한 잔 먹세그려... ."이렇게 시작되는 권주가, 이것은 저 이백의 '장진주'와 함께 술의 공허감을 달래주는 수작이다.
인생무상을 느낄 때 생에 대한 집착은 강화되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노, 병, 사, 의 검은 그림자를 보면서 '노세 노세 젊어 노세'의 창부타령과 함께 권주가 한 곡조 아낄 수 없으렸다. 그러나 사람이 술을 마셔야지 술이 사람을 마시는 단계까지 간다면 이는 노, 병, 사를 재촉하는 어리석을 짓일 뿐이다. 과유불급은 주나 색이나 간에 금언이다. 다음과 같은 생각이라면 구제 불능이다.
주색이 폐인지본인 줄 나도 잠깐 알건마는/먹던 술 잊으며 예던 길 아니 예랴/아마도 장부의 하올 일이 주색인가 하노라. -실명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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