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언어예절
‘모두’가 ‘어찌·어떻게’로 쓰이는 게 자연스럽듯 ‘서로’도 그렇다. ‘서로’를 풀이하기가 쉽지 않은데, 사전마다 풀이 차이가 난다. 뭉뚱그리면 ‘저마다 또는 두 쪽이 함께’ 정도가 되겠다. ‘서로서로’는 ‘서로’를 겹쳐 힘준 말로서 좀 수다스런 느낌을 준다.
이따금 ‘서로가·서로는·서로의’처럼 토를 붙여 ‘양쪽·두 쪽’을 일컫는데, 본디 쓰임을 깨뜨림으로써 강조하는 구실을 한다. 그럴 필요까지 없는 쓰임들을 손질하면 토는 주체를 이루는 말로 옮기거나 아예 떼어 버리는 게 낫다.
“서로(를) 사랑한다/ 우리 서로(가) 힘을 합치면 두려울 것이 없다/ 모두(가) 가슴이 철렁해서 서로(를) 돌아보고 있었다”에서는 토가 없는 게 깔끔하다.
‘서로’를 명사적으로 쓰는 것보다 ‘상대, 양쪽, 저마다, 각자 …’들로 바꿔 쓰는 게 정확하고 순순해진다.
△서로가 서로를→서로 또는 서로서로 △그들은 서로의 약점을 알고 있다→그들은 서로(상대의) ~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서로 마음을 ~. △서로에 대한 친밀감과 신뢰가 배어나는 통화 내용이었다→서로간에 친밀감과 신뢰가 ~ △서로의 이해가 충돌하는→서로 이해가 ~ △서로가 옳다고 주장한다→서로 옳다고 ~ △서로를 섬기면서→서로 섬기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언제나 힘이 됐다→우리는 언제나 서로 ~ △아픔을 서로에게서 치유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상처를 서로 어루만지고 ~.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야트막하다, 낮으막하다, 나지막하다
"제주도는 관광 명소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비경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360여개에 이른다는 제주의 오름에 올라 보면 그 의문은 쉽게 풀린다. 특별할 것 없는 '얕으막한' 언덕처럼 보이지만 그곳에 오르면 '낮으막한'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최근 오름 트레킹이 각광받는 이유다."
여행 책자 등에서 우리나라 산세를 설명할 때 '얕으막한''낮으막한' 또는 '나즈막한' 등으로 표기한 것을 자주 본다. 얕다, 낮다에서 파생된 말이므로 '얕으막하다''낮으막하다' 또는 '나즈막하다' 등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바른 표기가 아니다. 소리나는 대로 적은 '야트막하다' '나지막하다'가 표준어다. 특히 '나지막하다'는 전설모음화('ㅅ, ㅈ, ㅊ' 등 혀의 앞쪽에서 발음되는 전설자음엔 같은 자리의 전설모음 'ㅣ'가 오는 게 발음하기 편해 나타나는 현상)의 영향으로 '나즈막하다'가 변한 형태다.
'나지막하다'는 '높이나 소리의 크기 따위가 조금 낮다'라는 의미로 두루 쓰이고, '야트막하다'는 길이.깊이 등과 관련된 말과 잘 어울린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행의 추억담을 들려줬다" "야트막한 산을 넘으면 마을이 나타난다" 등처럼 사용한다.
'시간이나 기한이 매우 늦다'라는 뜻의 '느지막하다'도 같은 형태다. '늦다'와 관련지어 '늦으막하다'라고 많이 알고 있으나 전설모음화해 굳어진 '느지막하다(←느즈막하다)'가 표준어다. "느지막한 시간에 우도에 들어가 민박집에서 묵었다"처럼 쓰인다.
얕으막하다→야트막하다 낮으막하다, 나즈막하다→나지막하다
임대와 임차
친구끼리는 될 수 있으면 돈 거래를 하지 말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잘못하면 금전도 잃고, 우정도 잃는다는 것이다. 사실 친한 사람끼리 거래를 하다 보면 절차를 소홀히 하기 쉽고, 그것이 빌미가 돼 사이가 소원해지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므로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영수증·차용증 등을 제대로 갖춰 거래하는 것이 좋다. 서류 작성 때 용어를 정확하게 쓰지 않으면 후에 분쟁이 생길 수 있다.
거래와 관련해 우리가 흔히 잘못 사용하는 것이 '임대'라는 단어다. 임대(賃貸)는 '돈을 받고 자기의 물건을 남에게 빌려 주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그와는 정반대 상황에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다음 예를 보자.
'도예가 부부인 박씨와 황씨가 비엔날레 재단으로부터 임대해 운영하고 있는 카페 '빈'은 클럽전의 출품작들을 실내장식 소품으로 활용했다.' '대한체육회 등은 그동안 조정과 카누 경기를 치르기 위해 한강 미사리경기장이나 부산 낙동강경기장을 임대해 사용할 것을 검토했다.' '이 회사는 영업활동 정지 등은 사실이 아니며 원가 절감 차원에서 오릭스로부터 임대했던 계측기를 반납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예문은 문맥을 볼 때 모두 건물·경기장·기계 등을 자신이 '빌린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다'는 뜻인 '임대'를 사용하면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세 예문 모두 '임차(賃借)'로 써야 한다. '임차'는 '돈을 내고 남의 물건을 빌려 쓰는 것'이다.
~되겠, ~되세
'구름 조금 끼는 맑은 날씨가 되겠고, 비 올 확률은 10%가 되겠습니다. 낮 최고 기온은 25도가 되겠으며,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날씨가 되겠습니다'에서처럼 '~되다(되겠다, 되세요)' 형태를 마구 쓰는 경향이 있다. '구름 조금 끼는 맑은 날씨를 보이겠고, 비 올 확률은 10%입니다. 낮 최고 기온은 25도이며,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겠습니다'가 적절한 표현이다. '정답은 3번이 되겠습니다' '총 사업비는 4억원이 되겠습니다' '추석과 한가위는 같은 뜻이 되겠습니다'에서는 '~이다'가 어울리는 자리에 '~되겠다'를 쓴 경우다. '3번입니다' '4억원입니다' 등으로 표현해야 한다.
'술·담배를 줄여야 되고, 기름진 음식을 피해야 된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긴장됐다'에서는 '~하다'가 어울리는 자리에 '~되다'를 쓴 경우로, '줄여야 하고' '피해야 한다' '해야 할지' '긴장했다'가 자연스럽다. '좋은 여행 되세요' '좋은 식사 되세요'는 누가 봐도 영어식 표현이다. '부자 되세요'는 나보고 부자가 되라는 소리(나=부자)이므로 말이 되지만, 이들은 뜻이 통하지 않는다. '여행 잘 다녀오세요' '맛있게 드세요'가 적당하다. 한가위가 다가왔다. '가난한 집 제삿날 돌아오듯'이라는 속담처럼 올해는 어쩐지 마냥 즐겁지마는 않지만, 그래도 그 의미가 변할 수는 없다. '즐거운 추석[명절] 되세요' '즐거운 고향길 되세요' 등의 문구가 곧 등장할 것이다.
우리의 명절날 이왕이면 우리식 표현대로 '추석[명절] 잘(즐겁게) 보내세요' '고향길 잘 다녀오세요'로 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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