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소리 - 무라카미 하루키
로마
로마는 이번 장기 여행의 입구임과 동시에 해외 체재중의 나의 기본적인 주소지였다. 우리가 베이스 캠프를 칠 땅으로서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로마를 선택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첫째로 기후가 온화하다는 것. 모처럼 한가로이 남유럽에서 살아보기로 정했으니 겨울을 춥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로마는 일단 이상적인 도시이다. 로마를 선택한 또 한 가지 이유는 거기에 옛 친구가 한 명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에서건 비교적 뻔뻔스럽게 잘 적응하여 사는 편이지만 삼 년이란 긴 세월을 지내야 한다면 한 사람 정도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연으로 로마가 우리의 본거지가 되었다. 그때까지 로마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지만, 뭐 그렇게 살기 힘든 곳은 아니겠지, 하고 우리는 생각했던 것이다. 영화에서 본 바로는 꽤나 멋진 도시이지 않은가, 하고 그러나 이 점에 관해서는 나중에 여러 가지로 후회하게 된다.
우리는 이사라도 하는 기분으로 일본을 뒤로하였다. 몇 년이나 장기적으로 일본을 떠나 살아야 하므로 그때까지 살고 있던 집도 아는 사람에게 빌려주었다. 외국 생활에 필요한 것을 하나에서 열까지 슈트케이스에 꽉꽉 채워 넣었다. 짐을 꾸리는 일은 상당히 힘든 작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이나 남유럽에서 살아야 하는데 뭐가 어느 정도 필요한지 알 법이나 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든 필요할 것 같았고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필요없을 것 같았다. 진행중이던 일은 일괄하여 정리하고 연재도 그럭저럭 매듭을 지었다. 어떤 잡지를 위해서는 -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 여섯 달치분 에세이를 한꺼번에 써서 건네주었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 작별 인사를 하였다. 우리가 일본을 비우고 있을 사이 잡무를 맡아 처리해 줄 사람도 구했다.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아 아무리 해도해도 끝이 없었다. 마지막에는 자신이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인지 뒤로 후퇴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을 정도이다. 슈트케이스에 뭐가 들어 있는가, 대체 슈트 케이스는 몇 개나 들고 왔는가, 그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여행길에 올라 우리가 맨 처음으로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 내려섰을 때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지칠 대로 지쳐 있기만 했다. 입도 제대로 열지 못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온몸의 틈새란 틈새에 치과 의사가 충치용으로 사용하는 시멘트가 꽉 들어차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두 다리는 딱딱하게 굳어 있고 머리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완벽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어디까지가 육체적 피로이고 어디까지가 시차탓이고 어디까지가 정신적 소모인가, 나는 도무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부엌 바닥에 몇 종류의 조미료를 한꺼번에 쏟아부은 것처럼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되어 구제할 길 없이 피폐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들 여행의 출발점이었다. 피폐, 망연자실, 소모.
우리는 열흘간 이 도시에 체재하였다. 그 동안 태세를 다시 갖추어, 우리는 아테네로 떠났다. 로마 체재중에 쓴 문장을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 무렵 자신이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가 눈앞에 삼삼하도록 느껴진다. 그 엄청난 피로는 내 일기에 의하면 두 주간에 걸쳐 지속되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소멸했다. 소리도 없이. 휑하니.
조르조와 카를로 1986년 10월 4일
이 글은 그 시기에 내가 빠져 있었던 피폐를 조금이나마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을 테마로 하여 쓴 것이다. 여행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러니까 타인의 피폐에는 별 흥미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안읽으셔도 상관없다. 아직도 내 머리 속에서는 두 마리 벌이 붕붕 날아다니고 있다. 나는 호텔 침대에 드러누워 이미 완전하게 싫증이 난 성 베드로 사원의 둥그런 지붕을 바라보면서-창문으로 성 베드로 사원이 잘 내다보인다는 것이 이 호텔의 거의 유일한 자랑거리이다-이렇게 된 바에 아예 이 두 마리 벌에게 이름을 붙여 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싸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침대에 누워 벌써 십오분 동안이나 그 이름을 생각하고 있는데도 전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무엇 하난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것도 다 벌 탓이다. 두 마리 벌이 내 머리 속을 쉴 새 없이 붕붕 날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 호네트의 테마처럼. 그 짜증스런 소리 덕분에 뭘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뭐 됐어, 아무러면 어때. 벌의 이름은 '조르조'와 '카를로'라고 하지, 라고 나는 결심한다. 두 마리 벌 조르조와 카를로, 의미 따위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 이름에서는 이탈리아의 내음 같은 것이 느껴진다. 잔에 담긴 적포도주를 홀짝 들이켜고 넉 잔째 술을 따른다. 쌈박한 향의 토스카나 와인. 호텔 근처에 있는 술가게에서 사온 그리 비싸지 않은 포도주인데 맛이 나쁘지는 않다. 라벨에는 새 그림이 그려져 있는 반 정도 줄어든 그 포도주 병을 손에 들고는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병의 모양이며 라벨 그림이며를 오래도록 쳐다본다. 병 꼭지를 손에 쥐고, 병 바닥을 배에 올려놓고는 딱히 이렇다 할 감정을 품는 일도 없이 그것을 지그시 응시한다. 푹 데친 시금치처럼 지치면 나는 그런 식으로 뭔가를 줄곧 쳐다보곤 한다. 무엇이든 상관없다. 아무튼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빤히 보는 것이다. 나는 지금 포도주 병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꽤 오래도록 보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아무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다.
감정? 음, 감정이라면 조금 있지. 나는 팍 늙어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모든 것이 완만하고 멀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조르조와 카를로는 변함없이 머리 속을 날아다니고 있다. 붕붕붕붕 하고, 나의 피폐야말로 그들의 양분인 것이다. 붕붕붕붕 조르조와 카를로는 도쿄에서 나의 뇌수를 찔러, 그것을 퉁퉁 불어터지게 만들어 놓았다(물론 그때에 그들은, 아직 둘로 분화되지 않았다). 그러고는 그 퉁퉁 불어터진 뇌수의 주변을 쉴 새 없이 날아다녔다. 나는 몹시 지쳐 있다. 그리하여 나는 일본을 떠나기로 한다. 우리(라 함은 나와 내 아내를 말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는 짐을 꾸리고, 두 마리 고양이는 아는 사람에게 맡기고, 집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고, 로마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어디에 살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뭐 어떻게든 될 것이다. 적어도 도쿄에서 저 벌의 날개 소리를 듣고 있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그러나 로마에 도착해서도 벌은 여전히 내 머리 속에 있었고 날개 소리가 없어지기는커녕 조르조와 카를로로 분화하기까지 하여 그전보다 훨씬 더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어느 틈엔가 로마의 소리와 일체화하여버렸다. 로마를 로마답게 하는 저 소리 말이다. 저 끔찍하고, 이상 야릇하고, 벌받을 도시의 소음과! 어이휴, 내 내면적인 피폐는 한 도시의 외적인 특질로 이렇듯 커다란 전환을 꾀한 것이다. 가까이에 세계 지도가 있다면 유럽이 있는 페이지를 펼쳐 로마 시를 찾아봐 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즉 나의 피폐이다. 벌 조르조이며, 벌 카를로이며, 아무 색다를 것도 없는 적포도주 병이며, 양파 모양을 한 성 베드로 사원의 둥그런 지붕이다. 조르조와 카를로가 붕붕거리며 둔중하게 날개를 비비면 마치 인디언 봉기처럼 로마 시의 고음이 그에 호응한다.
그런저런 일들로 나는 갑자기 나이를 먹어버린 듯한 기분에 젖는다. 어제는 아내의 생일이었다. 우리는 그녀의 생일날 일본을 떠난 것이다. 시차 관계고, 그녀는 아주 긴 생일을 보낼 수 있었다. 아주아주 긴 서른여덟번째 생일.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난 것은, 우리가 둘 다 열여덟 살이었을 때다. 열여덟 살이었고 술을 마시면 어김없이 코가 삐뚤어지도록 취하던 시절. 그로부터 이십 년. 그러나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느끼는 것은 그 이십 년이란 세월 탓이 아니다. 그것은 조르조와 카를로 탓이다. 참 죽겠군, 내 사고는 아까부터 같은 곳을 빙글빙글 제자리 걸음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옛날에 갖고 있었던 비치 보이스의 싱글판(굿 바이브레이션)처럼 한가운데쯤에서 언제나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여 바늘을 안쪽으로 옮겨다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어째서 이런 글을 쓰고 말았는가? 무슨 목적으로, 누구를 향하여? 이 세계에 나의 피폐에 대해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끼는 독자가 존재할 것인가? 그리고 만약 존재한다면 대체 어떤 타입의 사람일까? 물론 나는 그런 것은 알 수 없다. 독자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머리는 혼란스러워지고 만다. 나는 나의 소설을 읽은(그리고 읽었다고 주장하는)몇십, 몇백 명이나 되는 사람을 만났지만 결국은 독자란 것이 무엇인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그들 중의 몇 명이 나의 피폐에 관심을 가질지 나는 전혀 알 수 없다. 뭐 아무러면 어때, 나는 자신을 위하여 이 글을 쓰고 있다. 애당초부터 그럴 심산이었다. 무언가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뿐이다. 그저 책상 앞에 앉아, 펜을 쥐고 무언가를 쓰고 싶을 뿐이다. 여러 가지 말과, 여러 가지 표현과, 여러 가지 비유를 검증하고 싶을뿐이다. 무엇에 관해 쓸 것인가는 별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나는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신다. 창밖으로 재잘대는 아이들 소리가 들려온다. 호텔 건너편이 유치원인 것이다. 조붓한 뜰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수녀들이 돌보고 있다. 나는 또 한 모금 포도주를 마신다. 안개가 자욱이 낀 것처럼 뿌연 로마의 하늘. 나는 자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푹 잠들고 싶다. 하지만 제대로 날 수가 없다. 벌이 붕붕 시끄럽고 가끔은 바늘을 안쪽으로 밀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가끔은 바늘도.
어이 자네들 조르조와 카를로, 언제까지 내 머리 속을 붕붕거리고 날아다닐 작정이지? 내 머리 속을 날아다녀 봐야 그다지 좋은 일도 없잖아. 나는 이제 곧 재기할 것이고, 그렇게 괴면 자네들이 있을 자리는 없다구. 뭐 좋아, 날고 싶으면 날아 보라구 마음껏. 붕붕붕붕붕붕붕붕. 그런데 그건 그렇다 치고 이 방은 어쩌면 이리도 멋대가리가 없단 말인가.
벌은 날다 1985년 10월 6일 일요일,오후,쾌청.
죄송하지만 이 글 역시 피폐를 다룬 글의 연속 편이다. 이인조 벌, 조르조와 카를로가 계속하여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애당초 어떻게 생성되었는가가, 일요일 오후의 보르게제 공원 묘사와 겹쳐 기술된다. 작가 자신에 관한 미미한 고찰도 있다. 조르조와 카를로는 아직도 내 머리 속을 날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생각은 가능하면 안 하기로 한다. 다른 일을 생각하기로 노력하자. 가능한 한. 무엇보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날씨도 아주 멋지다. 나는 보르게제 공원 잔디 위에 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다. 야외 매점에서 오렌지 주스를 사서 마시며 혼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기도 한다. 이미 10월인데 마치 여름이 다시 돌아온 듯한 더위이다. 사람들은 선글라스를 쓰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벤치에 서로를 기대고 앉아 있는 커플이 있다. 셔츠를 벗어 상반신을 알알이 드러낸 채로 벌렁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청년도 있다. 목걸이를 풀어 개를 자유롭게 뛰놀게 하고 자기는 나무 그늘에서 혼자 쉬고 있는 노인도 있다. 수녀 두 명이 분수 앞에 앉아 꽤 오래도록 얘기를 나누고 있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전투복 같은 제복을 입은 경찰인지 헌병인지가 소매를 걷어올린 팔로 사뭇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자동 장총을 어깨에다 받치고 내 곁을 지나간다. 19세기 인상파 화가가 제재로 선택함직한 평화롭고 친밀하고 이노센트한 일요일의 광경이다.
열넷이나 열다섯 살, 그쯤으로 보이는 빨간 승마 모자를 쓴 예쁘장한 소녀가 말을 끌고 마장으로 향하고 있다. 그녀의 걸음걸이가 나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시간이란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세상에는 가끔 저런 식으로 걷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마치 시간 그 자체인 것처럼 걷는다. 지금 시각 열한시 삼십오분 사십초를 알려드립니다. 삐-지금 시각 열한시 삼십오분 오십초를-그들은 그런 식으로 걷는다. 턱을 바싹 안쪽으로 잡아당기고 등줄기를 곧바로 세우고 걷는 일에 의식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결코 몸이 굳어 있는 법은 없다. 그녀는 아주 기분좋게 시간 그 자체인 것처럼 매끈하게 공원 내의 길을 걸어 마장으로 향하고 있다. 광장에서는 일군의 사람들이 열기구를 띄워 올리려 하고 있는데, 무슨 이유에선가 뜻대로 올라가지 않는 모양이다. 한 세 명쯤은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면서 기계를 조종하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따분한 표정이다. 이렇게 가까이서 열기구를 보기는 처음이다. 딱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물건은 아니다. 적어도 지상에 머물러 있는 한에 있어서는 무미건조하다. 기구는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좀체로 부풀지 않는다. 잠이 와 죽겠는데 억지로 불려 일어나 옷을 꿰 입는 뚱뚱보 중년 여인 처럼, 그것은 매우 기분이 언짢다는 듯, 출 널브러져 있다. 이따금 성가시다는 듯 방정스럽게 몸을 뒤틀기도 한다. 그 옆으로 큰 개가 지나간다. 개는 멈춰 서서 기구를 잠시 바라본다. 이건 또 뭐지, 싶은 자못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개는 잠시 기구를 바라보다가 아무도 그게 뭐라는 걸 가르쳐 주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진전도 없고 하여 그대로 사라지고 만다.
내가 앉아 있는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젊은 남녀가 끌어안고 입맞춤을 하고 있다. 아주 길고 아주 진지한 입맞춤이다. 그런 입맞춤을 눈 안에 들어오는 대로 보고 있자니 내 자신이 입맞춤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질식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될 만큼 긴 입맞춤이다. 다양한 각도로, 다양한 격정으로, 다양한 자세로, 그들은 입맞춤을 되풀이한다. 솜씨좋게 편집된 학술적 기록 영화처럼 그들은 여분이 없는 동작으로 자세를 바꿔가며 다양한 입맞춤의 바리에이션을 의욕적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들은 행복할까, 하고 나는 불쑥 생각한다. 만약 행복하다면, 저 정도의 입맞춤을 사람에게 요구하는 행복이란 대체 어떤 형상과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너무 지쳐 있다는 것이다. 참 내, 어쩌다 이렇게 지쳐버렸지? 그러나 아무튼 나는 지쳐 있다. 적어도 소설을 쓰기에는 너무 지쳐 있다. 그것이 내가 껴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두 편의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 생각하고 있다기보다는 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확실하다. 하지만 나는 그 일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확실하다. 하지만 나는 그 일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쓰면 좋은가, 어떻게 쓰면 되는가, 그런 것도 대충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쓸 수가 없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대로 영원히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기분조차 든다. 그리고 머리 안으로는 벌이 붕붕 날아다니고 있다. 너무 시끄러워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내 머리 속에서는 아직도 전화 벨 소리가 울리고 있다. 그것도 벌이 내는 소리의 일부이다. 전화다. 전화 벨이 울리고 있다. 따르릉따르릉따르릉따르릉. 그들은 내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워드 프로세서인지 뭔지의 광고에 나가라고 한다. 어느 여자 대학에서 강연을 하라고 한다. 잡지 그래비어를 위해 요리 솜씨 자랑을 하라고 한다. 누구누구랑 대담을 하라고 한다. 성 차별이니, 환경 오염이니, 죽은 음악가니, 미니 스커트의 부활이니, 담배 끊는 법이니, 에 대해 코멘트를 해달라고 한다. 무슨무슨 콩쿠르에 심사 위원이 되라고 한다. 내달 이십일까지 '도시 소설'을 삼십 장 쓰라고 한다(그런데 '도시 소설'이 대체 뭐지?).
그렇다고 내가 뭐 화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화를 내고 있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이미 결정된 사항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거기에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주가 나쁜 것도 아니고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상황에 가담하고 있는 인간 중의 하나이다. 그 과정을 얘기하자면 상당히 복잡한 애로를 거쳐가야 하는데, 그래도 역시 나는 거기에 가담해 있다. 그러니까 나는 그런 상황에 대해 화를 낼 만한 권리가 없다.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전화를 걸고 있는 것은 차라리 내 자신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이중성이 나를 짜증스럽게 한다. 그리고 무력감을 품게 한다. 무력감-필경 거기에서 피폐가 솟아오르는 것이리라. 거기에서는 출구가 입구이며, 입구가 출구이다. 아무도 거기서 나갈 수가 없다. 그곳은 싸늘한 어둠에 싸여 있다. 밤치고는 너무 밝고 낮치고는 너무 어둡다. 그 기묘한 어둠에 감싸일 때, 나는 정상적인 시간과 방향을 잃어 버리고 만다. 나는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그리고 여전히 전화 벨이 울린다. 따르릉따르릉따르릉따르릉. 이윽고 한 마리 벌이 내 머리 안으로 날아들어오다. 벌들은 그 어떤 달콤한 꿀보다 피폐의 냄새를 좋아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피폐가 어디에 있는 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킁킁, 여기 달짝지근하게 피로에 젖어 있는 피폐가 있잖아, 하고 말이다. 그러고는 바늘로 콕 찔러 흐물흐물 불어 터지게 하고 만다. 그래서 나는 일본을 떠나 온 것인데(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 나는 새삼 확인하다), 이 로마에서도 나의 그 피폐는 호전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여덟 시간의 시차와 북극권을 넘어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벌은 둘로 분열하여 조르조와 카를로가 되었다. 피폐는 기름땀처럼 찐득하게 피부에 떠 있다. 어디에 가나 마찬가지야, 라고 그들은 내게 속삭이고 있다. 아무리 먼데로 간들 마찬가지라구. 붕붕붕붕붕. 어디까지 가든지 우리는 반드시 따라갈 테니까, 그러니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너는 아무것도 못하고 마흔이 되는 거라구. 그런 식으로 나이를 먹어 가는 거야. 아무도 너를 좋아하지 않고, 앞으로는 더욱 싫어하게 될걸. 아니야 달라, 라고 나는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제대로 소설을 쓸거야. 사라지는 것은 자네들 쪽이라구.
설령 그렇더라도, 라고 조르조와 카를로가 말한다. 우리는 언젠가 또다시 돌아올거야, 너한테로,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역할이니까. 서두를 것 없어, 천천히 긴 안목으로 할거야, 아무도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구. 모두들 너를 증오하게 될거야. 소설 따위 써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어. 붕붕붕붕붕붕붕붕. 붕붕붕붕붕붕붕붕.
로마. 여름처럼 찬란한 햇살을 받고 있는 늦은 오후의 로마. 나는 잔디 위에 벌렁 드러누워 말과 사람과 구름의 완만한 움직임을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문득 지금부터 이천 년 후에 지금의 로마가 폼페이처럼 완전한 유적으로 남아 있다면 멋지겠지, 하고 생각한다. 여러분 저것이 토르사르디의 유저, 이쪽은 발렌티노의 유적, 그쪽 쇼케이스 안에 있는 것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골드 카드입니다, 라는 둥 말이다. 여자 아이는 아직도 말을 끌며 걸어가고 있다. 그녀는 그대로 시간의 안개 속에 녹아들 것처럼 보인다. 아까 지나간 사람들과는 다른 제복을 입은 경찰 두 명이 아이스 크림을 먹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가 지나간다. 그들은 열기구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분수대의 물이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그 정상께에서 구슬처럼 예쁜 물방울을 이루며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다. 열기구는 아직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까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세 사람은 여전히 무슨 나사를 조절하기도 하고, 미터기를 점검하기도 하면서 왔다갔다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보고 있어도 그것이 떠오르리란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인데 말이다. 오후 한시 사십오분. 해가 지기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시간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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