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최고로 살아가는 23인의 지혜 - 자유문학사
생명의 완성 - 안병욱(숭실대 명예 교수)
1920 년 평남 용강 출생. 일본 와세다대학 철학과 졸업. '사상계' 주간 및 편집위원, 숭실대 철학과 교수 역임. 저서에 '삶에 길목에서', '젊은이여 희망의 등불을 켜라', '처음을 위하여 마지막을 위하여', '현대사상', '실존주의 철학', '파스칼 사상', '사색노트', '마음의 창문을 열고', '아름다운 창조', '사람답게 하는 길', '논어 인생론' 외 다수가 있음.
생의 의미는 최고의 자아 완성에 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명의 목적이 무엇이냐. 자기 실현이요 자아 완성이다. 생명에 대한 우리의 의무와 책임은 내가 나의 생명을 최고도로 실현하고 완성하는 것이다. 최고의 자아 완성을 하여라. 최대의 자기 실현을 하여라. 이것이 생의 목적이요 의미다. 존재한다는 것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인생은 창조적 자기 표현이다. 장미는 빨간 장미꽃을 피움으로써 자기 표현을 한다. 뻐꾸기는 구슬픈 노래를 부름으로써 자기를 표현한다. 사과나무는 빨간 사과를 결실케 하는 것이 생의 목적이다. 시인은 아름다운 시를 쓰고, 화가는 훌륭한 그림을 그리고, 웅변가는 힘찬 말씀을 하고, 기업가는 새로운 기업을 일으키고, 발명가는 기계를 만들고, 정치인은 새로운 사회를 설계한다. 모두가 자기 표현의 행동이요, 자아 실현과 자아 완성의 행동이다. "하느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여라." 그리스도는 이렇게 외쳤다. 하느님은 완전한 존재다. 인간은 결코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인간은 영원한 미완성의 존재다. 그러나 완전과 완성을 향하여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요, 인간다운 자세다.
나의 가장 존귀한 것, 나의 가장 아름다운 것, 나의 가장 참된 것, 나의 가장 착한 것, 나의 가장 깊은 것을 우리는 표현하고 개발하고 실현해야 한다. 신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고, 건강을 주었고, 재능을 주었고, 시간을 주었고, 인격을 주었고, 활동력을 주었고, 정열을 주었다.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무엇인가 보람있는 것을 만들어야 하고, 가치 있는 것을 창조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이루어 놓은 것이다. 신은 나에게 6, 70 년의 시간과 많은 기회와 여러 재능과 훌륭한 인격과 왕성한 활동력을 주었는데 아무것도 이루어 좋지 못한다면 생명에 대해서 부끄러운 일이다. 세계는 창조의 무대요, 인간은 생명의 예술가다. 인생은 예술이요, 생활은 작품이다.
우리가 죽을 때에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엄숙한 질문이 있다. "당신은 민족 앞에 무엇을 남겨 놓고 갑니까?" 우리는 6, 70 년의 인생을 살다 가면서 무엇인가 보람있는 것을 남겨 놓고 가야 한다. 올 때에는 빈손으로 왔지만 갈 때에는 훌륭한 것을 남겨놓고 가는 것이 인생이다. 아무것도 남겨 놓지 못한다면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어떤 이는 위대한 작품을 남기고, 어떤 이는 훌륭한 인격을 남기고, 어떤 이는 보람있는 사업을 남기고, 어떤 이는 본받을 만한 생애를 남기고, 어떤 이는 뛰어난 자녀를 남기고, 어떤 이는 탁월한 사상을 남긴다.
최대의 비극을 최고의 승리로
최악의 운명을 가지고 최고의 유산을 남긴 사람, 최대의 비극에서 최고의 승리를 거둔 인간은 성녀 헬렌 켈러다. 헬렌 켈러는 열병으로 생후 19개월 만에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비참한 인간이 되었다. 그 여자는 완전한 암흑과 침묵의 구렁으로 전락했다. 그녀는 맹인과 벙어리와 귀머거리의 삼중고의 십자가를 짊어졌다. 말하는 자유도 듣는 자유도 모두 박탈된 그녀의 생활은 지옥이요, 저주요, 절망이었다. 그녀는 낙망 끝에 자포자기하여 반항하고 파괴하고 절규했다. 이 지상에 태어났던 생명 중에서 가장 비참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여덟 살 났을 때 광명과 사랑의 위대한 사자, 설리반 선생이 그녀 앞에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설리반은 20 대의 젊은 처녀 선생이었다. 설리반은 헬렌 켈러를 위하여 헌신적 봉사를 하였다. 헬렌 켈러는 설리반 선생에게서 말하는 것을 배웠다. 책읽는 것을 배웠고, 글씨 쓰는 것을 배웠다. 헬렌 켈러는 하버드 대학을 마치고 여러 권의 책을 썼고, 전세계를 순회하면서 맹인과 농아들을 위하여 많은 강연을 했다. 1936 년에 우리 나라에도 왔었다. 그녀는 빛을 찾았고 사랑을 찾았고 행복을 찾았고 승리를 찾았다. 그것은 20세기의 기적이었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위대한 승리요, 인간 교육의 놀라운 성공이요, 인간 사랑의 최고의 교훈이다. 설리반 여사가 헬렌 켈러를 위하여 바친 수십 년의 헌신적 정성과 사랑은 위대한 감동의 드라마다.
나는 헬렌 켈러가 쓴 여러 권의 저서를 읽으면서 인생에 이런 기적이 있을 수 있을까, 세상에 이런 감격과 신비가 있을 수 있을까 하고 놀라움과 감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헬렌 켈러는 최대의 비극을 최고의 승리와 영광으로 바꾸었다. 그녀는 생명의 최고 완성의 위대한 본보기다. 그녀는 최고의 자아 실현의 뛰어난 증인이다. 인생에 절망은 없다. 인생에 패배는 없다. 산다는 것은 위대한 것에 도전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자아를 실현하려는 꾸준한 노력이다. 산다는 것은 희망을 갖는 것이요, 신념을 갖는 것이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생명의 자아 실현, 자기 완성을 위하여 나는 세 가지 원리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는 극기요, 둘째는 수기요, 셋째는 성기다. 극기란 무엇이냐, 내가 나를 이기는 것이다. 남을 이기기는 쉽지만 자신을 이기기는 어렵다.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 최대의 승리는 내가 나를 이기는 것이다." 나의 마음속에서 두 개의 자기가 항상 싸우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두 자아의 싸움터다. 게으른 자기와 부지런한 자기, 선한 자기와 악한 자기, 커다란 자기의 조그만 자기가 나의 마음속에서 항상 내적 투쟁을 한다. 인간의 마음은 소아와 대아의 싸움터요, 가아와 진아의 전쟁터다. 어느 자기가 이기느냐에 따라서 위대한 가지가 되느냐, 비열한 자기로 전락하느냐가 결정된다. 우리는 거짓된 자기, 게으른 자가, 무책임한 자기, 불성실한 자기, 조그만 자기한테 패배하지 않아야 한다. 남을 이기기는 쉽다. 그러나 내가 나를 이기기는 어렵다. 그래서 노자는 '도덕경' 33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승인자유력 자승자강(남한테 이기는 사람은 그 사람보다 다소 힘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진정한 강자요 참된 용사다.)"
극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갈파한 명언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극기인 이었다. 나를 이기는 마음을 극기심이라고 하고, 나를 이기는 힘을 극기력이라고 하고, 나를 이기기 위한 훈련을 극기 훈련이라고 한다. 우리는 진지한 극기 훈련으로 자기의 정신력을 강화해야 한다.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극기인이 될 수 있고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산중의 도둑은 물리치기 쉽지만 마음속의 도둑은 물리치기 어렵다."라고 중국의 사상가 왕양명은 갈파했다. 산속의 도둑은 격파하기 쉽지만 내 마음속의 도둑은 격파하기 어렵다. 극기의 어려움을 지적한 금언이다. 우리는 먼저 극기인이 되어야 한다.
둘째는 수기다. 내가 나를 갈고 닦아야 한다. 우리는 부단히 자기 수양을 하고 정신 연마를 하고 인격 도야를 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탐진치의 삼독에 빠지기 쉽다. 탐은 탐욕이다. 자기 분수를 망각하고 지나친 욕심의 노예가 되기 쉽다. 진은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이다. 치는 어리석은 것이다. 무명의 어둠 속에 빠져 공정한 사리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탐진치의 삼독을 제거하면 우리는 명경지수와 같은 심경에 도달한다. 마음의 더러운 때와 티를 없애면 우리의 정신은 밝은 거울처럼 맑아지고 조용한 물처럼 평정해진다. 이것이 명경지수다. 명경지수의 마음이 되어야만 진리를 볼 수 있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지혜와 진리를 보는 눈을 법안이라고 하고 또 혜안이라고 한다. 우리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공자는 사무사를 역설했다. 우리의 마음속에 악한 생각이 없어야 하고 사심이 없어야 하고 사리사욕이 없어야 한다. 청천백일처럼 광명정대해야 한다. 푸른 하늘의 찬란한 태양처럼 마음이 빛나고 밝고 곧고 커야 한다. 그래야만 공정한 사리판단을 할 수 있다. "마음이 맑은 사람이 하느님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외쳤다. 아무나 하느님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청정심의 소유자만이 하느님을 볼 수 있다. 불교의 명경지수, 공자의 사무사, 그리스도의 청정심.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는 비슷하다. 이런 경지에 도달하려면 부단히 마음을 갈고 닦는 수심 공부를 해야 한다.
셋째는 성기다. 성기는 내가 나를 완성하는 것이다. 내가 나다운 내가 되고 참되고 건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요, 본래적 자기가 되고 본연의 자아를 실천하는 것이다.
인생을 최고로 사는 자세
우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하고 자기를 정화하고 자기를 순화하고 자기를 심화하고 자기를 성화해야 한다. 그것이 자아 완성의 길이다. 일찍이 장자는 청무성의 철리를 외쳤다. 무성을 들으라고 했다. 우리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뒤에 들리는 유성의 소리는 누구나 들을 줄 안다. 무성을 들으려면 마음의 귀, 영혼의 귀가 필요하다. 양심의 소리, 영혼의 소리, 진리의 소리, 하느님의 소리, 이성의 소리, 역사의 소리, 하늘의 소리, 우주의 소리는 모두 무성의 소리다. 그것은 소리 없는 소리다. 소리 없는 소리는 깊은 소리요, 참된 소리다. 우리는 무성을 들어야 한다. 우리는 양심의 소리, 진실의 소리, 영혼의 소리, 내부의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따라야 한다. 극기와 수기의 성기, 이것이 자아 실현의 과정이다. 극기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수기에는 정성이 필요하고, 성기에는 정열이 필요하다.
생명은 아름답다. 생명은 신비롭다. 생명은 존귀하다. 우리는 생명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생명을 확대해야 한다. 우리는 생명을 완성해야 한다. 우리는 고귀한 생명을 정성과 정열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것이 생명에 대한 우리의 의무요, 책임이요, 사명이다. 인생은 오늘의 연속이요, 현재의 연속이다. 어제는 이미 지나가 버린 날이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날이다. 내가 소유하는 유일한 날은 오늘뿐이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랑하고, 오늘 내가 하는 일에 온 정성을 다 바쳐야 한다. 이 세상에 가장 소중한 시간은 현재뿐이다. 과거는 내 기억 속에 있을 뿐이요, 미래는 나의 기대 속에 존재할 뿐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얽매이고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미래는 장차 오겠지만 아직 오지 않았다. 공연히 염려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현재, 내가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현재를 사랑하고, 현재를 아끼고,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야 한다.
오늘처럼 중요한 날이 없다. 현재처럼 중요한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오늘 이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지금 이 시간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온 정열을 기울이고 온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이것이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근본이요, 내 생명을 최고로 완성하는 길이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친절과 정성을 베풀어라. 하나밖에 없는 생명,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을 우리는 소중히 여기고 순간순간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내가 남의 인생을 살아줄 수 없고 남이 나의 인생을 살아줄 수 없다. 내 인생은 내가 산다. 생명의 열애자가 되어라. 네 생명의 최고의 정열과 정성을 가지고 살아라. 이것이 인생을 최고로 하는 기본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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