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주현(1921~1980)
소설가, 경기도 여주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전문부 수학. 한때 국방부 편수관 역임. 인간, 역사, 현실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입체적인 구성력으로 다채로운 소재를 소화해 낸 작가이다. 초기에는 단편 소설을 주로 썼으며 1964년 장편 소설 "조선 총독부"를 발표하면서부터는 대하적 기록 문학을 통하여 독특한 역사관을 보여 주었다. 100여 편의 단편과 20여 편의 장편을 발표한 다작 경향의 작가였다.
탈고 안 될 전설
벌써 여러 해 전의 이야기다. 도회 생활에 심신이 피로하여 여름 한 달을 향리에 가서 지낸 일이 있다. 나는 그 때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를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마 나의 생애를 두고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며, 필시 그들은 내 메말라 가는 서정에다 활력의 물을 주는 역할을 내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해 줄 줄로 안다.
향리 노원에는 내 형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서울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데도 물이 맑고 산이 높아, 여름 한철에는 찾아오는 대처 사람들이 선경에 비길 만큼, 그 풍수가 아름다운 고장이다. 나는 그 여름 한 달을 형의 원두막에서 살았다. 마침 형이 참외와 수박을 많이 심고, 밭둑에는 높직한 원두막을 지어 놓았던 것이다. 그 원두막에서 낮이나 밤이나 외로이 뒹굴며 시장하면 참외를 따먹고, 졸리면 잠을 자고, 무료하면 공상을 하고, 그것도 시들해지면 원고지에 가벼운 낙서를 하고, 그래도 권태를 느끼면 풀 베는 마을 아이들을 불러 익은 참외 고르기 내기를 해서, 잘 익은 놈을 고른 녀석에게는 잘 익은 놈을, 안 익은 놈을 고른 녀석에게는 씨도 안 여문 참외를 한두 개씩 상으로 안겨 주며 희희낙락, 그런대로 즐거운 시간을 흘렸다.
어느 날인가, 장대비가 몹시 쏟아지는데 뽀얀 우연이 하늘 땅 사이에 꽉 찼다. 줄기차게 퍼붓는 빗발은 열 발자국 앞의 시야를 흐리게 하며 땅을 두드리는 소리는 태초의 음향처럼 사뭇 장엄한 어느 오후였었다. 나는 원두막에 누워서 비몽사몽간을 소요하다가, 빗소리가 너무도 장엄하여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하늘과 땅과 공간이 혼연 일체가 된 들판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흐릿한 시야에 들어오는 어떤 물체를 발견하고 나는 눈을 부릅떴다. 원두막에서 멀지 않은 밭 언저리로 사람 하나가 걸어가고 있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아 가며, 서두르지 않고 유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여자 한 사람 등에는 분명 바랑을 지고 있었다. 회색 승복이 비에 젖고 있는 작달막한 키의 여승이었다.
나는 흥미에 앞서 경이의 눈으로, 장엄한 자연 앞에 외로이 서 있는 하나의 점을 봤다. 그렇게 태연할 수가 없었다. 한 발 두 발 옮기는 걸음이 그대로 태산 같은 안정이고 초연이었다. 잠시 후, 여승은 발길을 돌려 내가 있는 원두막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잘 생긴 코끝에서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유난히 흰 얼굴과 원만한 턱을 가졌다. 여승은 분명코 원두막 위에서 사람이, 그것도 안경을 쓴 도회풍의 젊은 녀석이 내려다보고 있는 줄을 눈치챘으련만, 전연 도외시한 채 서서히 다가와 낙숫물 듣는 처마밑으로 들어서서 비를 긋는 것이다. 관음보살처럼 보였다. 다소곳하게 머리를 숙인 채, 사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그의 그윽한 눈매와 표정은, 인간세의 백팔번뇌가 한두 방울 빗물로 용해되고 있는, 해탈의 경지 그대로였다. 그렇게 느꼈다.
"좀 올라와 쉬시죠. 비가 몹시 쏟아집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래를 보고 말을 걸었다. 여승은 대답도 없이, 고개도 움직이지 않고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정한 듯, 빗물 떨어지는 웃옷을 후르르 떨고 사다리에 한 발을 걸쳤다. 나는 원두막 위에서 몸을 구부리고는 한 손을 내려 보냈다. 여승은 주저하지 않았다. 내려온 손을 잡고 몸을 원두막 위로 올린, 손과 손끝의 접촉은 비정적일 만큼 싸늘한 촉감을 여운처럼 남겼다. 초면의 남녀가 말없이 앉았기란 지극히 부자연스러워 말을 걸어 보았다.
"어느 절에 계신가요?" "불암사에 있습니다."
불암사란, 원두막에서 10리 쯤 떨어진 산 속에 위치한 조그만 절이지만, 내력은 오래 됐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비가 몹시 쏟아집니다. 이런 비를 맞으시고 어딜..." "그저 거닐었습니다. 하도 장하게 오시는 비이기에..."
스물 몇쯤이나 될까, 갸름한 얼굴에는 교양미가 깃들여 있고, 흠뻑 젖은 승복은 세련된 여체를 감싸고 있었다.
"불암사에 오신 지는 오래 되셨나요?" "1년 가량 됩니다." "서울서 오셨군요?" "...참외가 많이 열렸습니다."
극성스럽게 쏟아지는 빗발이 무성한 덩굴을 마구 헤쳐 놓는 바람에 희끗희끗 조랑참외가 유난히 드러나 보였다. 나는 여승이 시장기를 느끼고 있음을 눈치채고, 참외를 한 아름 따다가 깎아 주었다. 여승은 담백하고 솔직한 여자였다.
"좀 시장했어요, 아주 달군요."
첫입을 베어 불며 배시시 웃는데, 이가 고르게 희었다. 잠시 후에 여승은 가 보아야겠다고 일어나더니, 원두막을 내려가 표연히 쏟아지는 빗발 속으로 나섰다.
"절에 한번 놀러 가겠습니다." "구경 오시지요."
이 대화가 그 여승과 나와의 다시는 기약할 수 없는 작별 인사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우연히도 역시 소낙비가 퍼붓는 저녁 나절, 내가 있는 그 원두막을 찾아든 젊은 나그네 하나가 있었다. 서울서 왔다는, 삼십 전후의, 얼굴이 해사한 청년인데, 아깝게도 왼쪽 팔이 하나 없었다.
"이 근처에 혹 절이 없습니까?" "어느 절을 찾으시는데요?" "글쎄요, 어느 절이라기보다 여승이 있을 만한 절이 혹 없을는지요?"
나는 문득, 며칠 전에 만난 그 여승의 영상이 머리에 떠올라, 그 젊은이를 유심히 살펴봤다.
"전장에 갔다 오셨군요?"
조심스런 내 물음에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4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딴전을 보는 그의 표정이 퍽은 쓸쓸했다.
"절을 찾으시나요, 아니면 여승을 찾으시나요?" "둘 다 찾습니다. 여승이 있는 절이 있으면, 필요한 자료나 하나 얻으려고요."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더 자세히 물어 보았자 생면 부지인 나에게 그가 어떤 간절한 이야기를 해 줄 리도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 며칠 동안 그 여승의 신비롭고도 성스러운 환상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 사나이가 그 환상을 깨뜨려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따라서, 막상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여인에 대한 나의 존경의 염과 연연한 마음이 여지 없이 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더할 수 없이 신비스럽고 깨끗하며, 꿈을 먹고 믿음 속에서 사는 여인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요망한 여자가 악의 구렁에서 헤매던 끝에 문득 깨달은 체하는 가면으로 승복을 빌려 입어, 구렁이 같은 육신을 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던 까닭이다. 청년은 참외를 하나 달래서 달게 먹더니, 대가를 치르려고 했다. 그 얼굴을 보니 괴로움을 질겅질겅 씹는 표정이었다. 나는 돈 받기를 가볍게 거절하면서, 그 사나이에게 불암사를 가르쳐 주어야 옳을 것인가 아닌가를 곰곰 생각했다. 나는 그의 괴로움을 보며 적의를 느끼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요 뒷산에 불암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거기 젊은 여승 한 분이 계시더군요."
젊은이의 얼굴은 꽃구름처럼 밝아지며 생기가 넘쳐 흘렸다. 그는 더 이상 묻는 말 없이 가 버렸다. 잠시 후에 비는 개고 햇빛이 찬란하게 빛났다. 그러나, 벌써 서녘 하늘에는 저녁놀이 타고 있었다.
이튿날, 황금빛 아침 햇살이 부챗살처럼 펴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참외밭머리에 사람들이 나타난 것을 보고, 나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제 본 젊은이가, 며칠 전에 만난 여승과 참외밭머리에서 헤어지고 있었다. 승복 차림의 여인은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석상이 되어 있었다. 별리, 나는 그들의 별리가 어떤 쓰라림을 지닌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것은 진실과 사랑과 참회의 성스러운 자태로 보였다. 나는 그네들이 앞으로 다시 만날는지 안 만날는지는 생가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늘날까지 그들 남녀의 서글픈 전설을 뇌리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끝내 구상되지 않을 이 전설을 영원히 탈고하지 않을 작정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신의 눈초리 - 문학의 필요성과 그 사명
문학자는 시대의 증인이고 그 작품은 시대의 중언이기를 소망한다. 한 시대의 특성을, 그 시대를 사는 개성 있는 인간을 잘 묘출해 내서 현재를 관조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문학자의 사명이고 문학의 본질적인 권능이다. 인간상이거나 시대 사조거나 그 고유한 특성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작품이면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하여 오랜 생명을 갖게 마련인데, 그런 경우 작품에서 창조된 사회상이나 인간사는 우리가 혐오하는 양상일 수도 있다. 또는 가장 일상적인 권태로운 소시민의 외면적인 조소에서 시작하여, 차원 높은 내면 세계로의 심화를 상징시키는 설득력 있는 꿈의 조형으로 승화되는 예도 있다.
그 어떤 경우거나 문학은 현실적인 토양에서 싹이 돋아난다. 한 시대, 그 인간들에 의하여 창조되고 가꾸어지고 수확이 된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남겨진다. 한 시대의 증인으로 남겨진다. 문학이야말로 작가나 독자가 책임있게 사명감을 가지고 함께 가꾸어 놓아야 할 그 시대의 꽃이고, 다음 세대에 뿌려질 꽃씨다.
현대처럼 인간 자체가 인간들에 의해서 매몰되고 소외된 적도 없다. 인간들의 비명이 기계 소리에 함몰되어 스러져 버린다. 인권과 자유를 가장 숭상하는 체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짓밟는다. 더욱 비명을 지르며 실망한다. 자신들에 의해서 얻어지는 결과에 실망을 한다. 그런 시민 사회의 정신적인 불안은 어떤 외부적인 처방이나 힘에 의해서 해결될 수 없다. 인간 개개인의 각성이 병들어 가는 자신의 지각 신경을 꼬집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재창조하는 길밖에 없다. 새삼 문학의 역능이 기대된다.
문학은 문학자 개인의 소산이지만 그가 처해 있는 풍토적인 바탕에서 움트고 자라난다. 풍토는 우리 모두가 딛고 서 있는 지층이며 개성이다. 그리고 정신의 바탕이다. 작가의 고발이 과장되더라도, 이념 추구가 비록 공전되고 있더라고 그 특질이 인간의 고뇌이며 인간힘이라면, 그리고 인간성의 재발견에 있다면, 작가나 작품에 대한 사회적인 오해는 정신적인 인색에서 오는 것임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죄를 짓고 노하고 고민할 때일수록 마음 속에서 신의 눈초리를 발견한다. 신은 하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 속에 숨어 있다. 불세출의 영웅이 섬약한 소녀의 가슴을 유린할 때도 반드시 그는 신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부딪친다. 사람들이 그 신의 눈초리를 의식할 수 있는 동안에는 우리에게 문학이 필요하다.
문학은 그런 신의 눈초리로서 사람들 가슴 속에 살아 있어야 한다. 그 눈초리를 대할 때 의식이 필요 없어야 한다. 의식이 필요 없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신과 친숙해진다. 그것은 공감을 뜻한다.
문학은 작가와 작품과 독자의 공감이 일체화됨으로써 비로소 그 준엄한 사명을 다 한다. 그러한 작가. 작품. 독자의 풍요로운 합창으로 이 땅에 문학이 활짝 꽃 핀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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