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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524 호
단기 4341. 11. 2 (음력 10. 05)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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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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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2009 신춘문예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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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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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은 연애와 같은 것이어서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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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글터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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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
언어예절
나무라거나 훈계·요청하는 말 앞뒤에서 흔히 ‘당부한다’고 한다. 그런데 ‘당부하는’ 쪽은 실제로 주문하고 당부하느라 ‘당부’란 말을 쓸 겨를이 없다. 관찰자나 제삼자가 써야 자연스러운데, 현실은 좀 다르다. 언론 쪽 논설에서는 ‘당부한다’를, 위정자나 선량들은 연설이나 조사·감사 자리에서 ‘당부드린다’를 즐겨 쓴다.
본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주의를 주거나 잊지 않도록 거듭 강조하는 걸 일컬어 ‘당부한다’고 한다. ‘당부드린다’는 ‘당부한다’가 좀 불손하게 느껴져 쓰는 말이지만, 권위와 공손이 어울리지 않아 서로 충돌하고 버성긴다. ‘부탁·상의·공양·인사·말씀+드리다’라면 그나마 어울리는 조합이다.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은 강력한 의지를 보여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억울하게 배제되는 그런 비정규직이 없도록 확실하게 관심을 보여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서면으로 좀 해 주시도록 당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당부드립니다’는 상투적이고 하나 마나하며 버성기게 들리므로 그냥 ‘보여주십시오’, ‘~주시기 바랍니다’ 정도로 바꾸는 게 낫겠다.
“국방부 차원에서 총체적인 안전점검을 실시할 것을 당부한다/ 우리는 이번 청와대 수석비서들의 일괄사표가 국정쇄신의 출발점이 되길 당부한다/ 다시 한번 당부하건대 ….”
권위적이고 낯익은 논설투다. 그러나 참된 ‘권위’는 이런 훈계조의 말투보다 언론 구실을 제대로 하는 데서 나올 터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참가, 참석, 참여
연말이 되면 사회 각 분야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열립니다. 한 해가 가는 아쉬움을 모임을 통해 달래는 것이지만 다음 해를 새 각오로 출발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함께한다'는 생각을 갖고 다양한 모임에 나가 '활동하게 되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공동체에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모임이나 일에 관여함을 나타내는 용어로 '참석, 참가, 참여' 등의 표현이 있습니다. 다반사로 이것저것 섞어 쓰다 보니 그게 그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①(회의·결혼식 등)에 참석했다. ②(올림픽·전국체전·서예대전·월드컵 대회 등)에 참가했다. ③(현실·경영)에 참여했다.
'참석'은 ①번 문장의 사용례처럼 어떤 모임에 들어가는 것이긴 한데 비교적 작은 규모이며 구체적이고 친밀한 모임에 함께하는 것을 말합니다. '참석'이라는 단어에 '자리 석(席)'자가 있는 걸로 봐 분위기가 정적(靜的)이고 정돈됐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참가'는 ②의 예문에서 보듯이 '참석'보다는 규모도 크고 움직임이 활발한 경연 성격의 모임에 더 잘 어울림을 알 수 있습니다. '참여'는 추상적인 형태의 활동까지 포함한 말입니다. ③의 예문에서처럼 '어떤 일에 끼어들어 적극적으로 관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국회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죠. 활발하게 의정 활동을 하는 사람은 국정의 '참여자'가 될 수 있지만 세비(歲費)는 받되 의미 없는 목소리만 큰 사람은 방관자적 '참석자'일 뿐입니다.
당기다, 댕기다, 땅기다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한다. TV 드라마나 영화가 폭력·섹스·마약 등 자극적인 소재를 많이 다루고, 이런 경향이 우리말에까지 영향을 미쳐 발음과 표기의 '된소리화'로 나타난다. 이로 인해 소주를 '쏘주', 김밥을 '김빱', 세다를 '쎄다'로 발음하는 등 우리말이 오염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돈을 미리 땅(땡)겨 쓴다' '담배에 불을 당(땅)겨라' '팔다리가 땡긴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러나 앞의 말들은 전부 맞춤법에 어긋난다.
'돈을 미리 당겨 쓴다' '담배에 불을 댕겨라' '팔다리가 땅긴다'고 해야 맞다. 이렇듯 '당기다, 댕기다, 땅기다'는 '된소리화'경향과 더불어 모양·발음이 비슷해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세 단어는 각기 쓰임이 다르다.
'당기다'는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 저절로 끌리거나, 입맛이 돋우어지거나, 힘을 주어 물건 따위를 자기 쪽이나 일정한 방향으로 가까이 오게 하거나, 정한 시간·기일을 앞으로 옮기거나 줄일 때' 쓴다. 반면 '댕기다'는 '불이 옮아 붙거나, 불을 옮겨 붙일 때' 쓰고, '땅기다'는 '몹시 켕기어지다(팽팽해지다)'의 뜻이다.
즉, '불'과 관련이 있을 때는 '댕기다'를 쓰고, 사람의 신체 부위 또는 상처가 팽팽한 느낌이 들거나 아플 때는 '땅기다'를 쓰며, 나머지의 경우 전부 '당기다'를 쓰면 된다고 이해하면 쉽겠다. 간혹 '땡기다'란 말을 쓰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표준어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써서는 안 된다.
떼기, 뙈기
사과 박스에 현금이 얼마나 들어가느냐가 논란이더니, 현금 40억원을 실은 승용차가 과연 달릴 수 있는지 현장 검증을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이번엔 아예 차떼기로 돈을 전달받는 기막힌 수법이 알려졌다. '차떼기'는 트럭 한 대분의 상품을 한꺼번에 사들이는 일을 말한다. 장사하려고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산다는 의미의 동사 '떼다'에 명사 구실을 하게 해주는 '-기'가 붙어 '떼기'가 됐고 '차떼기'가 생겨났다. 주로 무·배추나 수박 등 농산물을 거래하는 방식이며, 밭에 나 있는 채로 몽땅 사들이는 '밭떼기'도 있다.
'떼기'와 혼동하기 쉬운 단어가 '뙈기'다. 경계를 지어 놓은 논밭의 구획, 또는 그 구획을 세는 단위가 '뙈기'다. 밭뙈기·논뙈기·땅뙈기 등의 합성명사나 '밭(논) 몇 뙈기를 부쳐 먹고 근근이 살고 있다' 등에서처럼 단위로 쓰인다. '뙈기'는 이불 뙈기·요 뙈기 등 하찮은 쪼가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농민들은 밭뙈기에 채소·과일 등 농작물을 심고 가꾸어 수확할 때가 되면 외지의 상인에게 밭떼기로 팔거나 직접 싣고 나가 차떼기로 넘기기도 한다.
'떼기'가 들어가는 것 중에는 중고품·고물 따위의 잡다한 물건을 쌓아 놓고 사고파는'도떼기시장'이 있다. 질서가 없고 시끌벅적한 비정상적 시장으로 소란스러움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거래돼선 안 되는 물건까지 은밀하게 유통되는 암시장(블랙마켓)의 기능까지 한다. 정치판 뒷골목에도 검은 돈이 차떼기로 거래되는 거대한 암시장으로서의 도떼기시장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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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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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 이외수
그리운 이름 하나있어 어둠의 끝자락 부여잡고 약속하지 않은 기다림에 가슴은 진다홍 핏빛으로 물들어 갑니다.
마음으로 부를수 있는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움입니다.
눈을 감고 그릴수 있는 얼굴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리움이 깊어 가면 사랑이 시작되고 사랑이 깊어 가면 이별이 시작 되려니...
그대에게 편지를 쓰는것 만으로도 하루가 행복하고 그대의 편지를 받는 것 만으로도 이틀이 행복한데...
때론 가슴이 아프도록 공허해 오는건 그대에 대한 내 그리움이 너무 짙은 까닭일까요?
부질없는 망상이라고 내 스스로 채찍질 해보지만 해바라기처럼 그대에게로 향하는 내마음 묶어 둘수가 없습니다.
술 한잔에 많이 취해버린 내사랑,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차가운 바람을 안고서 싸늘히 식어간 거리를 홀로 서있는 전화박스앞에서 차마 그대에게 전화하지 못하고 한참동안 서성이다가 되돌아 서는 길... 차가운 바람 때문일까, 아님 창백한 달빛 때문일까, 두눈이 젖어 오는 까닭이...
기약 없는 먼 해후를 위해 늘 당신의 자리를 내 가슴에 비워 두렵니다.
설령 기다림만 쌓이고 쌓여 그대의 기억 아련히 멀어진다 해도 처음과 같은 설레임으로 기다리지요.
때로는 내가슴의 빈자리가 너무 외롭고 공허해
다른 무언가로 채우고도 싶었지만 그 무엇으로도 대신 할수 없고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대... 삶이 힘들고 지칠때 그 멍에를 잠시 내려놓고 내 가슴의 빈자리에서 편안하게 쉬었다 가세요.
그대가 잠시 머물다간 그 자리는 언제나 그댈 위한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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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현대시조 |
빈 잔 - 홍진기
언제나 내 곁에는 빈 잔이 놓여 있다 가진 것 모두 담아도 차지 않는 이 잔을 단 숨에 그대로 들면 은회색 허공이 된다.
언젠가 달빛 한 줄기 이 잔을 다녀갔고 아내의 한 숨 소리도 가끔은 드나들지만 시대의 증언을 풀면 전쟁 같은 물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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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고시조/한시 |
흰구름 푸른 내는 - 김천택
흰구름 푸른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추풍에 물든 단풍 봄꽃도곤 더 좋왜라 천공이 나를 위하여 뫼빛을 꾸며내도다
푸른 내 : 내는 연기이니, 저녁 나절에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 하고 흐릿한 산기운 -이내[靑嵐]-을 말한 것. 골골이 : 골짜기마다. 봄꽃도곤 : 봄꽃보다. 도곤은 '두곤'이라고도 하여 '~보다'의 옛말. 좋왜라 : 좋도다! 좋구나~ '~왜라'는 '~우에라(웨라)'의 모음조화에 의한 변화로, 감탄형 종결어미. 천공(天公) : 하늘을 의인화하여 존칭을 붙인 것. 하느님. 조물주. 뫼빛 : 산빛. 산의 경치.
아름다움의 대명사격으로 불리는 봄꽃보다도 가을 단풍이 더 아름답고 좋다는 것이다. 푸른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떠있고, 산골짜기에는 골짝마다 푸르스름한 이내가 산의 정기처럼 끼어 있는데, 가을 바람에 노랗게, 빨갛게, 혹은 주황으로, 혹은 자줏빛으로 ...... 갖가지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어 있는 단풍이 봄꽃보다도 더욱 아름답고 눈부시구나! 이것은 조물주가 모처럼 이곳을 찾아온 나를 위하여 이렇게도 아름답게 꾸며 놓은 것이 분명하구나!
하느님의 혜택, 조물주의 은공을 새삼스럽게 의식할 정도로 단풍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있는 그 사람은 과연 자연을 알고 조물주와 대화할 수 있는 철인(哲人)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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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지혜/처세 |
유태인의 100가지 지혜 - A. 갤리언
제1장 삶은 달걀에서 나온 병아리
솔로몬과 황금의 성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 세상 만물의 지배자가 된 솔로몬, 그가 다스리는 영토는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넓었다. 솔로몬은 그 드넓은 영토를 녹색 비단과 순금 장식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거대한 융단을 타고 마음껏 날아다녔다. 그의 곁에는 항상 옆에서 시중을 드는 자들이 있었는데 한 명은 인간으로서 '아사후'라고 이름했고, 또 하나의 정령으로 '레미라트'라고 불렀다. 또 다른 신하로는 백수의 왕 '사자'와 새들 중의 왕인 '오질로와시'가 있었다. 솔로몬 일행은 융단을 타고 밤낮으로 꼬박 열흘을 동서남북, 하늘과 땅을 구별하지 않고 날아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솔로몬은 하늘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멋진 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한 번도 이렇게 기막힌 성을 본 적이 없도다."
그 성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솔로몬 왕은 성 앞에서 융단을 착륙시키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시중꾼들을 데리고 그 성으로 다가갔다. 그 성은 마치 에덴 동산에 온 것처럼 멋지고 아름답기 이를 데 없었다. 대왕은 주의를 한 바퀴 돈 후, 성안으로 들어가지 위해 입구를 찾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성의 입구가 통 보이지 않았다.
"입구가 어디인지 도대체 모르겠군. 누가 좀 찾아보시오."
정령의 왕 레미라트는 부하들을 불러 성의 곳곳을 살피도록 시켰다. 지붕 꼭대기까지 올라가 살피던 부하들은 잠시 후 레미라트에게 보고했다. 솔로몬은 오질로와시에게 명령하여 지붕에 살고 있다는 독수리를 잡아오라고 시켰다. 솔로몬 앞에 대령한 독수리는 대왕께 인사를 드렸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에라나드라고 합니다." "지금 몇 살이나 됐는가?" "7백 살이옵니다." "그렇다면 묻겠는데, 혹시 그대는 이성의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가?" "성의 입구에 대해선 제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아, 제겐 형님이 있는데 그분이 혹시 아실는지 모르겠군요. 형님은 9백년이나 사셨으니까 혹시 대왕님의 물음에 답할 말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솔로몬 왕은 오질로와시에게 다시 명령하여 독수리 에라나드가 말한 그 9백살 된 독수리를 데려오도록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9백살 된 알레옵이라는 독수리가 오질로와시와 함께 나타났다. 그러나 그 독수리 역시 성의 입구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장 높은 곳에 사는 저의 큰 형님께 물어보면 혹시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가장 나이 많은 독수리가 왕 앞에 불려오게 되었다. 큰형 독수리는 알타먼이라고 불리우며 1천 3백 살이라고 대답했다. 그 독수리는 솔로몬으로부터 성에 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처음 이성을 보았을 때에도 역시 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 아버지의 이야기에 의하면, 성의 서쪽에 입구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서 흙과 먼지로 입구가 매몰된 모양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성주변의 흙과 먼지를 날려버리면 문이 보이게 될까?"
솔로몬은 즉시 바람에게 명하여, 성주변으로 세찬 바람을 불러 일으키도록 했다. 얼마 후 흙먼지는 모두 날아가고 드디어 수천 년 동안 가려져 있던 녹슬은 청동빛 철문이 육중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솔로몬은 감탄을 발하며 그 문 곁으로 다가갔다. 커다란 자물쇠가 달려 있는 문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인간들이여, 기억할지어다. 이 호화로운 서에서 우리는 오랜 세월을 즐겁게 살아왔도다. 그러나 어느 해부턴가 흉년이 들면서 우리는 불행을 겪기 시작하였다. 그때는 아무리 많은 보물도 쓸모가 없었도다. 밀 대신 진주를 가루로 빻았지만 그걸 먹을 수는 없는 일.... 우리는 결국 이 성을 독수리들에게 넘겨주기로 했도다!'
자물쇠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이 성에 들어가려면 문의 오른쪽에 있는 흙무더기를 파보아라. 그러면 유리상자가 나타날 것이다. 그 안에 든 열쇠로 자물쇠를 열라.'
솔로몬이 시키는 대로하자,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금으로 만들어진 두 번째 문이 또 나타났다. 그 문을 열자 루비, 에메랄드, 진주, 사파이어 등 온갖 보석들로 가득찬 광장이 왕을 맞아 주었다. 광장 옆으로는 작은 방들이 연이어서 여러 개 있었는데 방마다 보물이 가득차 그 휘황찬란함으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솔로몬은 그 중 한 방에서 은으로 만든 전갈이 조각된 문을 발견하였다. 그 문을 밀어보니 쉽게 열리며 지하로 통하는 길이 왕 앞에 나타났다. 이 지하통로의 끝에는 아름답게 치장한 문이 또 하나 버티고 있었다. 솔로몬이 다가가 살펴보니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 성에 살고 있던 사람은 일찍이 강대한 권세를 자랑하며 호화롭게 살아왔다. 온갖 기쁨을 누리며 지냈지만 언젠가는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 마침내 죽음이 그를 찾아왔고 그의 생명도 다하였다 나그네여, 문을 열고 나아가 보라. 기적을 경험할 것이다.'
솔로몬은 문을 열었다. 그러자 보물의 산이 나타났고 그 끝에 또 하나의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문 역시 문구가 써 있었다.
'이 성에 살던 사람들이 누리던 부와 명예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었도다. 천 년 만 년 살 것 같았던 이 성의 사람들이 모두 무덤속에 잠든 지금, 그들의 자취는 간 곳 없고 재물과 보화만이 후세에 전하고 있도다.'
솔로몬은 자물쇠를 열고 휘황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보석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벽에는 또 이런 글이 쓰여져 있었다.
'이 성을 다스리고 있는 나는 온갖 권세를 두 손에 쥐고, 이 세상의 책이란 책은 모두 읽고,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맛보며, 가장 아름다운 옷만 입으면서 살아왔다. 모두들 나를 두려워 하지만.... 그러나 나에게도 두려운 것이 있다.'
솔로몬은 다시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세 개의 출구가 있었는데 문마다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 있었다.
'그대가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시간은 그대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대도 언젠가는 노쇠하여 그대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 주어야만 하고, 결국엔 무덤 속에 그대의 몸을 뉘어야 한다.' '시간이 흐른다고, 세월이 변한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세월은 흐르기 마련이고 변하기 마련이므로....'
솔로몬은 세 번째 있는 문의 문지방을 넘어 방으로 들어섰다. 그 방에는 한 가운데에 커다란 죄상이 하나 자리잡고 있었고 그 좌상의 좌우로 여러 개의 동상들이 서 있었다. 그 동상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생동감이 있어 보였다. 솔로몬이 커다란 좌상에 다가서자, 좌상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쳐대기 시작했다.
"동상들아, 깨어나라. 솔로몬이 왔다. 그가 우리들을 해치려고 여기 왔다. 얼른 그를 막아라."
좌상의 고함소리가 끝나자마자 좌우에 기립해 있던 우상들의 코로부터 불과 연기가 뿜어 나오며 악마들이 일제히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솔로몬은 아주 큰 소리로 그들을 꾸짖었다.
"너희들이 감히 나를 협박하느냐? 이 세상 만물의 지배자인 내게 감히 누가 덤빈단 말이냐! 나에게 거역하는 놈은 가차없이 벌하고 말리라."
이렇게 호통치며 하나님을 부르자 동상들이 모두 힘없이 쓰러져 버렸고 악마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우상과 악마들을 순식간에 처치해 버린 솔로몬은 다시 좌상에 접근하여 그 입에 손을 집어넣었다. 거기엔 은으로 만든 쟁반 하나가 있었는데 그 위에 섬세하게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영리한 솔로몬조차도 난생 처음 대하는 문자여서 도저히 무슨 의미가 담긴 말인지 읽을 수가 없었다.
"고생 고생 하여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막상 여기 새겨진 글뜻을 알 수가 없으니 말 할 수 없이 허무하구나."
그때 솔로몬 왕이 있는 곳으로 한 젊은이가 들어왔다. 그 청년은 왕 앞에 나와 정중히 절을 한 후에 말했다.
"하나님께서 대왕님을 도와드리라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솔로몬은 주님의 은총에 감사한 뒤, 은쟁반을 젊은이에게 보여 주었다. 젊은이는 그 글자를 살피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에 의미를 파악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문자는 헬라어입니다. 은쟁반에 쓰인 글의 내용은 이런 뜻입니다.
'짐은 에어드의 아들인 서다드 왕이다. 주변의 모든 나라를 지배하는 권세와 온 나라를 꽉 채울 만큼의 부를 가진 나였지만, 그러나 죽음의 사자가 가까이 오니 짐도 무력할 수밖에 없구나. 바라건대 이 글을 읽는 자는 금은 보석 같은 허망한 재화에 집착하여 번뇌에 빠지지 말고 인생의 종착역은 결국 죽음임을 명심하여 좋은 덕을 쌓는데 힘쓰도록 하라. 죽은 후에 남는 것은 자기 이름 몇 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
진짜 어머니
솔로몬 왕은 매우 현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어느 날 두 여자가 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며, 솔로몬 왕에게 재판을 청해 왔다. 솔로몬 왕은 여러 가지 사실을 조사해 보았지만 자기도 어느 쪽의 아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유태인의 경우 소유물이 어느 쪽에 속하는가 알 수 없을 때에는, 공평하게 두로 나누는 것이 통상의 관례였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이 아기를 칼로 두 토막으로 자르도록 명했다. 그러자 한쪽 어머니는 갑자기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그렇게 하려거든 차라리 그 아이를 저쪽 여자에게 넘겨주라고 외쳤다. 그 광경을 보고 솔로몬은 "너야말로 진짜 어머니다."라고 말하며 아이를 넘겨주었다.
어린이는 부모가 이야기하는 모양을 흉내낸다. 성격은 그 이야기하는 모습으로 알 수 있다. -탈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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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굴비맛 보셨습니까 - 박삼중
2.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세상에서 가장 값진 요금
“스님, 아직도 교도소의 재소자들을 만나십니까?”
몇 년 전부터 강연으로 바쁘게 이곳저곳을 다니다보니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은 욕심으로 강연에 분주하다보니 언제 교도소에 가고, 언제 소년, 소녀 가장을 돕는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도 그 질문 속에는 담겨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교도소 재소자를 돕는 것은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입니다.” 라고 잘라서 말하곤 한다.
사실 나는 1년 3백 6십5일이 모자라는 사람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 강연을 다니다보니 이렇듯 본의 아닌 오해도 받게 된다. 어찌하든 많은 대중들에게 강연을 하는 것도 그들에게 일깨움을 주는 것이요, 또한 부처님의 뜻을 널리 알리는 일이기에 나는 항상 기쁜 마음으로 강연요청에 응하고 있다. 그리고 강연을 통해 얻게 되는 돈은 크든 작든 불우한 이들과 재소자들을 돕고 또한 그들의 가족을 돌보는 일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그날도 대구 동화사에 있는 삼성 계열사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아 급히 서둘러 가던 길이었다. 대구역 앞에서 어는 회사택시가 내 앞에 멈춰섰다. 여느때처럼,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하며 동화사까지 가주실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가시가 나를 알아보고는, “삼중 스님 아니십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스님께서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것을 보아왔습니다!”하고 반기는 것이다. 간혹 길에서 나를 이처럼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 또한 즐거운 마음이 된다.
차에 올라 앉아 있으려니 그 기사는 요금 미터기를 꺾지 않은 채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미터기를 꺾지 않고 달리는 것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했지만 몸이 너무 피곤한 상태여서 물어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스님, 다 왔습니다.”
어느덧 동화사 앞이었다. 주섬주섬 걸망을 집어들고 내릴 채비를 하면서,
“기사님, 요금은 얼마지요?”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젊은 기사는, “이렇게 스님을 뵙게 된 것만 해도 저로선 기쁩니다. 요금은 1만 7천 원이지만 돈은 그냥 두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사 양반, 이 차는 회사택시인 게 분명한데 돈을 받지 않겠다니, 다신 한 달 월급이 얼마나 되길래...” “스님, 저는 한 달에 1백3십만 원이나 벌고 있습니다. 제가 열심히 일해서 세 식구가 그럭저럭 먹고 살지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요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 나로선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또 그 기사의 많지 않은 월급을 내가 축내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기사 양반, 내가 받는 강의료는 5십만 원이니 한 달로 치자면 당신보다 많이 벌지 않소? 부자도 아니면서 요금을 안 받겠다니 이건 말도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도 만만히 물러설 것 같지 않았다. “삼중 스님, 저는 스님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저도 스님에게 좋은 일을 했다는 기억을 마음 속에 간직하게 해주시지요.”
나는 더 이상 기사의 성의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결국 돈을 다시 지갑에 넣으며 택시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땀 흘리며 노동하는 어려운 처지임에도, 요금을 받지 않겠다고 굳이 거절한 그 기사의 마음이 나는 고마웠다. 그래서 그 돈을 따로 작은 지갑에 잘 보관해 두기로 했다. 그리고 이따금 내 자신이 일에 힘들고 사람에 지칠 때마다 지갑을 열어 잘 보관된 그 돈을 펼쳐서 바라본다. 내게는 기사의 아름다운 마음이 천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 무엇보다 소중한 보석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이렇게 믿어주고 지켜봐 주는 그 마음이 있는 한 내가 어떠한 힘겨운 상황이라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되곤 한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론, ‘나는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 그에게 이런 고마운 보시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마음이 된다.
한번은 부산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기 위해 택시를 탔다. 이런저런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목적지에 이르자 이 기사는, “스님, 스님께는 제가 특별히 3천원만 할인해 드리겠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좋은 일에 보태 쓰십시오.라고 말했다. 영업용 회사택시를 모는 성실해 보이는 젊은 기사였다. 내가 사양하자 그는 자기도 생활이 어려우니 요금을 전혀 안 받을 수는 없고, 이렇게라도 해야 자신의 마음이 편하다며 굳이 요금을 깎아 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할인해 주겠다는 그 기사의 말이 무척 신선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택시를 자주 이용하다 보니, 요금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기사분들을 만날 때가 가끔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참으로 난처해진다. 하루를 고되게 땀 흘리며 고생하는 택시 기사들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호의가 무척 고마우면서도 뿌리칠 수 없을 때 사실 내 마음은 편치 않다. 그런데 이 기사는 요금을 조금 깎아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경제적이고 솔직한 마음인가! 나는 빙긋이 웃으며, “고맙습니다. 기사님.”라고 말하며 진심으로 기쁜 마음으로 할인된 요금을 건네고 택시에서 내렸다.
남에게 베푸는 것을 불교 용어로는 ‘보시’라 한다. 이 두 기사는 나에게 보시를 베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시란 지혜로운 삶을 사는 여섯 가지 방법, 즉 육바라밀 가운데 첫번째로 꼽혀지는 덕목으로 남에게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베푸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베푼다는 것이 다만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물질이 없는 사람도 베풀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불교에서는 ‘무채칠시’라 하여 일곱 가지 방법을 마하고 있다.
첫째는 ‘사신지’로 자신의 몸을 버리고 죽을지라도 남을 위하고 돕는 친절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심치지’로 남이 슬프거나 기쁜 일이 있으면 마치 자신의 일처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이다. 셋째는 ‘화안시'로 남에게 항상 부드럽고 웃는 낯으로 대하여 기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기분이 불쾌하고 짜증이 난다고 부모나 남편이나 친구에게 함부로 성내지 않는 것. 항상 남에게 기분좋은 얼굴로 대하라는 말이다. 쉬운 일 같지만 실제로 행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넷째는 ‘자안시’로 어려운 처지에 있거나 불행한 사람을 함부로 업신여기지 않고 부드러운 자비의 눈빛으로 대하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는 ‘수어시’로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부드러운 말을 하여 상대편의 마음을 즐겁고 편안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남에게 아첨하고자 억지로 꾸미는 간교한 말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담긴 말을 의미한다. 여섯째는 ‘방어시’로 남이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여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것을 말한다. 학식이 많거나 명예가 있다고 해서 남을 불편하게 한다면 이는 진정 지혜있는 자가 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배려하는 것이 또한 남에게 베푸는 보시인 것이다. 일곱째는 ‘상좌시’로 남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즉 버스나 전철 안에서 노인이나 어린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마음이다. 이처럼 보시라는 것은 결코 물질이 아니더라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며,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음씀이 곧 보시라고 할 수 있다.
어쩌다 만날 때마다 내 마음을 푸근하고 즐겁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재치 있게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요, 외모가 뛰어난 이도 아니다. 그렇다고 생활이 넉넉한 편이라 남들에게 물질로 많이 베푸는 사람도 아니건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만나면 다들 즐거워한다. 그것은 그가 남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저 평범한 얼굴이지만 늘 온화한 얼굴로 한번도 성내는 일 없이 남들을 대하기에 그를 보는 이의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은 곧 나의 삶을 아름답게 하고 풍요롭게 한다. 또 베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며 이는 곧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다. 남들에게 많이 베풀고 많이 주도록 노력하자. 부처님의 자비는 결코 먼곳에 있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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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수필 |
꽃삽 - 이해인
첫째 묶음 : 고독을 위한 의자
고마움 새롭히기
작은 일에도 항상 고마워하는 이들을 만나면 내 마음도 밝고, 따스하고, 흐뭇해진다. 그러나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고마움보다는 불평과 비난의 말이 습관적으로 먼저 튀어나오는 사람들을 대하면 내 마음도 답답하고 우울해진다. 감사할 줄 아는 이들의 표정은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감사할 줄 모르는 이들의 표정은 오만하고 차갑고 뻣뻣하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의 생활 안에서 무심히 잊고 지냈거나 극히 당연하다고만 생각되던 부분들에 대해 새롭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배우고 익혀간다면 우리의 삶은 좀더 활기차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 모두 '고마움 새롭히기' 운동을 기꺼이 실천하는 일원이 되어,
1. 내게 고맙게 한 사람들과 상황들을 더 자주 새롭게 생각하기 2. 나의 이웃에겐 늘 고마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힘쓰기 3.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기
등등 이런 것들을 꾸준히 실천하다 보면 어느새 불평과 원망도 줄어들고 우리는 고마움만 가득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바쁘고 힘든 일상 안에서도 고마움을 새롭혀가는 일이야말로 기쁨의 꽃씨 하나를 가슴에 묻는 일이요, 행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새로 돋는 풀잎처럼 내 마음에도 늘상 고마움이 자리하길 마라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일본의 의사 이무라 가즈키오가 <종이학>이란 책에 남긴 시 한 편을 다시 읽어본다.
'왜 모두 기뻐하지 않을까 당연하다는 사실들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 가고 싶은 곳을 자기 발로 가고 손을 뻗어 무엇이든 잡을 수 있다.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나온다 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아무도 당연한 사실들을 기뻐하지 않아 '당연한 걸' 하며 웃어버린다 세끼를 먹는다 밤이 되면 편히 잠들 수 있고 그래서 아침이 오고 바람을 실컷 들이마실수 있고 웃다가 울다가 고함치다가 뛰어다니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두가 당연한 일 그렇게 멋진 걸 아무도 기뻐할 줄 모른다 고마움을 아는 이는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들뿐 왜 그렇지 당연한 일'
<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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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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