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라는
언어예절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 남말 하듯 하는 말투가 있다. 제말이든 남말이든 따서 말할 수 있으나, 말에서는 따옴표를 쓰지 못해 직접인용이 쉽지 않고, 웬만해선 보람을 거두기도 어렵다. 이로써 여러 회의·토론·대화 자리에서 듣는이도 말할이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말투가 두드러진다.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라고 봅니다만/ 정확한 숫자로 얘기를 하지 않았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해 주는 게 좋다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이것에 대한 문제가 저는 심각하다라고 생각하는데/ 학부모들이 속을 수 있다라는 말씀 아닙니까?/ 치료감호를 또 한다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
한 회의록에서 따온 말인데, 일상에서도 가끔 듣는 말투다. ‘라고·라는’은 조사·어미 등 쓰임이 여럿이다. 여기서는 직접인용 표지로 쓰였다.
“~ 아니다라고, ~ 않았다라고, ~ 좋다라고, ~ 심각하다라고, ~ 있다라는, ~ 한다라는”은 “~ 아니라고, ~ 않았다고, ~ 좋다고, ~ 심각하다고, ~ 있다는, ~ 한다는”으로 써야 걸맞다. ‘라’는 맺음씨끝이기도 해 ‘다’와 겹쳐 쓰기에는 거북살스럽다. 대체로 ‘이다·아니다’에서는 ‘다’를, 다른 데서는 ‘라’를 줄인다.
사람들이 말하고 듣기보다 읽고 쓰기를 많이 하는 까닭인가? 말·글이 ‘하나’되는 건 좋지만 말투와 글투에 어울리는 게 따로 있다. 그 경계를 분별없이 무너뜨리는 한 보기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깍둑이, 부스럭이
뻐꾸기, 꾀꼬리, 개구리와 같은 이름은 그 동물의 소리 '뻐꾹, 꾀꼴, 개굴'과 관련이 있다. 또 '제트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 '쌕쌕이'나 욕심이 많은 사람을 돼지에 비유해 이르는 말인 '꿀꿀이'도 그 물체나 동물이 내는 소리인 '쌕쌕' '꿀꿀'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왜 어떤 것은 그것이 내는 소리에 '이'를 붙여 명사를 만들고 어떤 것은 그러지 않을까? 모두 소리와 관련된 비슷한 형태인데 왜 달리 적을까? 그것은 어근 뒤에 '-하다'나 '-거리다'가 붙을 수 있는가에 따라 명사를 만드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글맞춤법에 따르면 '-하다'나 '-거리다'가 붙는 어근에 '-이'가 붙어서 명사가 된 것은 그 원형을 밝혀 적게 돼 있다. 즉 '꿀꿀' '오뚝' '쌕쌕' 등의 원래 형태를 살려주는 것이다(꿀꿀거리다→꿀꿀이, 눈 깜짝하다→눈깜짝이, 삐죽하다→삐죽이, 살살거리다→살살이, 쌕쌕거리다→쌕쌕이, 오뚝하다→오뚝이, 푸석하다→푸석이, 홀쭉하다→홀쭉이 등).
그러나 '-하다' '-거리다'가 붙을 수 없는 어근에 '-이'나 다른 모음으로 시작되는 접미사가 붙어 명사가 된 것은 그 원형을 밝혀 적지 않는다(개구리, 귀뚜라미, 기러기, 깍두기, 꽹과리, 날라리, 누더기, 두드러기, 딱따구리, 매미, 부스러기, 뻐꾸기, 얼루기 등). 위의 예 가운데 '깍두기''부스러기' 등은 '깍둑하다'나 '부스럭거리다'가 될 수 있지만 뜻으로 볼 때 꼭 여기에서 온 말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깍둑이' '부스럭이'로 적지 않는다.
과태료, 벌금, 보상, 배상
한국과 미국의 2개 대학 연구팀이 행정서비스 및 시민 참여, 정보 보호, 이용 편의 등 5개 부문 94개 항목에 걸쳐 평가한 세계 주요 도시 전자정부 시스템 비교에서 서울시 전자정부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뉴욕 등은 과태료와 벌금도 온라인으로 낼 수 있으나 서울은 세금만 납부가 가능한 등 미비점도 있었다.
위 글에 나오는 '과태료'와 '벌금'의 차이는 뭘까. 과태료는 의무 이행을 태만히 한 사람에게 벌로 물게 하는 돈을 말하며, 벌금과는 달리 형벌의 성격이 아니다. '어제 주차 위반으로 과태료를 물었다'처럼 쓴다. 벌금은 범죄에 대한 처벌로 부과하는 돈이며, 재산형(財産刑)의 하나다. 이를 내지 못했을 때는 노역으로 대신한다. '정보를 공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등으로 쓴다. 과태료는 형벌이 아니고, 벌금은 형벌이란 점을 알아두면 구분하기가 쉽다.
이와 비슷하게 '배상(賠償)'과 '보상(補償)'도 의미에서 차이가 있다. 배상은 남의 권리를 침해한 사람이 그 손해를 물어주는 것을 말한다. 이와 달리 보상은 남에게 끼친 손해를 갚거나, 적법한 행위를 했지만 그로 인해 국민이나 주민에게 재산상의 손실이 생겼을 때 국가 또는 단체가 이를 갚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배상은 불법 행위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갚는 것이고, 보상은 적법 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실을 메워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어식 표현
우리말은 원래 시제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고 한다. 굳이 구분하자면 과거·현재·미래, 그리고 각각의 진행형이 있으며, 드물게 '-었었-' 형태를 쓴다. '가다'를 예로 들면 '갔다-간다-가겠다' '가고 있었다-가고 있다-가고 있겠다'가 주된 표현 방식이다. 그러나 영어식 과거완료나 진행형이 우리말에 파고들어 남용되면서 어색한 문장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한때는 가출도 했었지만 점차 마음을 잡았고 지금은 성실하게 살고 있다'에서 '했었지만'은 영어식 과거완료형으로 우리말의 표현 방식이 아니다.
'한때는 가출도 했지만 점차 마음을 잡고 지금은 성실하게 살고 있다'로 해야 우리말 어법에 맞고, 깔끔하다.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회사에 출근하고 있던 중에 동창을 만났다'에서의 '~하고 있는 중' '~하고 있던 중'도 영어식 표현이다. 우리말에서는 이 같은 진행형이 별 의미가 없다.
'도로 공사를 하고 있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회사에 출근하다 동창을 만났다'로 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섞여 '그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중이며, 1년 전에도 같은 혐의로 구속됐었다'처럼 완전한 영어식 문장이 흔하다. 현재 조사받고 있고, 이전에도 구속된 적이 있기 때문에 언뜻 표현이 구체적인 것으로 보이나 이 또한 '그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받고 있으며, 1년 전에도 같은 혐의로 구속된 바[적이] 있다'가 정상적인 우리말 어법이며, 내용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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