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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504 호
단기 4341. 9. 30 (음력 9. 2)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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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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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마해송문학상’ 공모
(주)문학과지성사는 우리 창작 동화의 첫 길을 연 고 마해송 선생(1905~1966)의 업적을 기리고 국내 아동문학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마해송문학상’을 제정하였습니다. 이 상이 역량 있는 동화 작가들을 발굴하고 격려하여 우리 아동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모집 부문 장편 동화 및 단편집(미발표 창작물)
원고 분량 단행본 1권 분량의 완성된 원고 (같은 원고를 타사 공모에 중복 투고하였을 경우 심사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응모 자격 기성 및 신인 작가
시상 내용 당선작 1편. 상패 및 상금 1천만원 (상금은 선인세로 지급하며, 당선작은 당선 발표 연도에 출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응모 마감 및 발표 *제4회부터 응모 마감이 앞당겨졌으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응모 마감: 매해 9월 30일(9월 30일 우체국 소인분까지 유효합니다.) 수상자 발표: 2008년 12월, (주)문학과지성사 홈페이지 및 『문학과사회』2009년 봄호
응모 방법 원고는 우편으로만 받으며 겉봉에 ‘마해송문학상 응모작’임을 명기 (이름,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기입해 주세요.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보낼곳 [121-840]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95-2 (주)문학과지성사 마해송문학상 담당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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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나의 농촌이야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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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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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가장 낮은 곳 부터 시작하라.(푸블릴리우스 시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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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글터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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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방에 봉고
외래어
우리가 흔히 쓰는 말 가운데서 특히 외래어는 상품 이름에서 온 것이 많다. 조미료를 나타내는 ‘미원’처럼 외래어 아닌 것도 있으나 그 수는 서양외래어보다 훨씬 적다. 외래어 가운데는 일상용어가 있는가 하면, 특정 분야 전문가들만이 쓰는 전문용어도 있다. 예를 들어 ‘스트로보’는 미국 스트로보 리서치라는 회사의 상품 이름이었는데 사진 전문가 집단에서 카메라의 ‘플래시’ 대신 쓴다.
이렇게 상품명에서 일반명사가 되는 일은 쉽게 이루어졌다가 그만큼 쉽게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승합차를 뜻하는 ‘봉고’는 상품이 성공을 거두자마자 승합차의 대명사를 넘어서서 일반명사가 되었고, ‘라이방’은 색안경 제조업체 이름이어서 ‘색안경’이라는 뜻으로 사용됐는데,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고 대개 ‘선글라스’라고 하는 것 같다. 또 바퀴가 한 줄로 되어 있는 롤러스케이트를 특정 제조사 이름인 ‘롤러 블레이드’라고 일컫던 때가 있었으나 지금은 ‘인라인 스케이트’로 바뀌었다. 이를 처름 소개한 어떤 분과 동호인들의 노력에 따른 결과라고 한다.
설마 이런 것도 상품명이었나 싶은 것도 많은데, 특히 ‘본드’, ‘무스’, ‘스카치테이프’, ‘보톡스’, ‘포클레인’이 아마 많은 이들에게 그렇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포클레인은 생김새로 보아 음식을 찍어 먹는 데 쓰는 ‘포크’(fork)와 관련이 있나 싶지만(그래서 ‘포크레인’으로 잘못 쓰기도 한다), 실은 프랑스의 포클랭(Poclain)사의 상품 이름에서 왔다.
김선철/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반증, 방증
'(학교에서)문장을 쓰는 훈련을 받지 않고 졸업해서,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 다시 맞춤법을 배운다. 이런 현상은 모두 학교 커리큘럼이 단순한 타성에 의해 짜여 있다는 반증이다.'(노구치 유키오의 『超학습법』에서)
여기서의 '반증(反證)'은 잘못 쓰였다. 방증(傍證)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방증'은 '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되진 않지만, 주변의 상황을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 증명에 도움을 주는 증거'(supporting evidence)를 의미한다. 반면에 '반증'은 '어떤 사실이나 주장이 옳지 아니함을 그에 반대되는 근거를 들어 증명함(disprove). 또는 그런 증거(counterevidence)'라는 뜻이다.
① '기적을 입증하는 경험적 자료보다는 그것을 반증하는 경험적 자료가 항상 압도적으로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② '그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그것을 반증할 만한 증거가 없었다.'
①과 ②의 '반증'은 바르게 쓰였다. ①에서는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②에서는 자신이 혐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반증'과 '방증'을 쉽게 구별하기 위해선 '반증' 대신 '부정적[반대되는] 증거'를, '방증' 대신 '간접적[뒷받침하는] 증거'를 대입해 보면 된다. 글머리의 인용 문장에 이를 적용하면 '…짜여 있다는 '반대되는 증거'이다'는 말이 안 된다.
뭔가 의심을 받을 경우 아무 말도 못하도록 반증하라. 그럴 수 없다면 방증 자료라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라.
동사, 형용사
지금까지 '우리말 바루기'를 보면 어떤 말의 쓰임새를 동사와 형용사로 나눠 설명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어떻게 식별하는지 모르겠다는 분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동사와 형용사 가리는 방법을 몇 가지 얘기하려고 합니다.
우선 기본형에 현재의 일을 나타낼 때 쓰는 '-는-/-ㄴ-'을 넣어 '-는다/-ㄴ다'꼴로 만들어 봅니다. 가능하면 동사, 아니면 형용사입니다.
·밥을 '먹는다'. (가능함, 동사) ·이 꽃은 '예쁜다'. (어색함, 형용사) ·단풍이 '곱는다'. (어색함, 형용사)
또 한 가지 방법은 기본형에 현재를 나타내는 '-는'이나 '-ㄴ/-은'을 붙여 뒤에 오는 단어를 꾸미는 말로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이때 '-는'이 오는 것은 동사, '-ㄴ/-은'이 오는 것은 형용사입니다. 단 현재시제일 때만 적용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길을 '가는' 나그네.(-는, 동사) ·'찬/묽은' 서리가 내렸다.(-ㄴ/은, 형용사)
과거시제에서는 '그 길을 간 나그네' '먹이를 잡은 어미새'처럼 동사에도 '-ㄴ/-은'이 붙을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어라'를 붙여 명령형을 만들어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때 가능하면 동사이고, 불가능하면 형용사입니다.
·그 토끼를 잡아라.(가능함, 동사) ·너 슬퍼라.(어색함, 형용사)
이 규칙들은 완벽하진 않지만 유용한 도구로 쓸 수 있으므로 기억해 두면 좋습니다.
숫컷, 숫소?
인터넷 세상이다. e-메일·전자상거래·정보검색 등 우리 생활은 인터넷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인터넷을 이용해 숙제를 한다. 일반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숫소' '숫놈'을 인터넷 검색창에 쳐 보았다. 신문 기사·잡지·서적뿐 아니라 여러 부문에서 이들 단어가 수없이 올라 있다. 인터넷이 '맞춤법'에 끼치는 해악을 보는 순간이었다.
암수 구별에서 수컷을 이르는 접두사 '수-'와 '숫-' 중 '숫'을 쓰는 것은 '숫양, 숫염소, 숫쥐'세 개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수-'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수소, 수놈, 수산양, 수들쥐, 수사자, 수벌' 등이 그러한 예다.
수컷을 이르는 접두사 '수-'는 원래는 '-'이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그 자취가 남아 수탉, 수캐 등에서처럼 '수-' 다음에 오는 말이 거센소리로 발음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표준어 규정에는 '수-' 다음에 거센소리를 쓰는 단어들을 정해 놓았다. '수캉아지, 수캐, 수컷, 수키와, 수탉, 수탕나귀, 수톨쩌귀, 수퇘지, 수평아리'다. 이 경우엔 접두사 '암-'이 결합(암캉아지, 암캐, 암컷, 암키와, 암탉, 암탕나귀, 암톨쩌귀, 암퇘지, 암평아리)돼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예외는 없다.
참고로 '숫-'은 일부 명사 앞에 붙어 '더럽혀지지 않아 깨끗한'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사로도 쓰인다. 숫눈, 숫백성, 숫사람, 숫처녀, 숫총각 등이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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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우리말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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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종교와 죽음 - 베르나르 포르
사자들
아시아에서는 육체와 영혼에 대한 개념이 문하마다 극단적으로 다를 뿐 아니라 , 심지어 같은 문화권 안에서도 다양하다. 불교의 가르침은 나의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죽음 이후에 '죽음과 환생의 중간 상태에 있는 존재(간다르바)'를 인정한다. 간다르바는 한 존재와 그 다음에 오는 존재사이를 연결해 주는 정신적 실체이다. 이 개념에 따를 것 같으면, 인간은 죽음 이후에 떠도는 의식체로 존재하며 다음 생을 기다리다가, 정사를 나누는 남녀에 어쩔 수 없이 이끌린다. 만일 그가 느끼는 이끌림이 여성 쪽에서 오면 간다르바는 남자아이의 육체를 입어 태어나며, 반대로 남성쪽에서 오면 여자아이로 태어난다. 이런 착상('잉태'라는 뜻을 갖기도 함)은 분명히 '나'라는 환영을 지속시키는 결과를 낳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도들은 이런 착상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것의 이미 그들의 형이상학적, 도덕적 체계의 지배적인 부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사후 세계에 대한 여러 개념들이 존재하였다. 서로 경쟁적이면서 때로 상호보완적이기도 한 이 개념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영혼을 혼에 속한 부분과 백에 속한 부분으로 분리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를 둔다. 이 혼과 백은 무덤 속에 존재하며, 동시에 집에서 모시는 제단 위의 위패 속에서도 존재한다. 이때 무덤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무덤이 나쁜 방향이나 나쁜 위치에 자리잡았을 겨우 자손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인간의 행위와 주변 환경에 의해 신비롭게도 운이 결정된다'는 풍수지리설의 중요성의 부각된다.
조상숭배
중국에서 죽은 자들이 차지하는 위치는 모호하다. 그들은 무덤 속과 위채 안에 존재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지옥의 심판관들 앞에서 심판을 받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굶주린 아귀'가 되어 세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을 수도 있으며, 혹은 벌을 받지 안은 지하세계에서 지낼 수도 있다. 어쩌면 윤회의 여섯길 중 하나를 통하여 환생할 수도 있다. 또 아주 운이 좋을 경우엔 정토에 다시 태어나는 수도 있다.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것은 죽은 자가 낙원에 이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장례식에 의해 유지되던 가족의 범주에서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환생이 우주적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여긴다.
조상에 대한 제사는 세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장례식이고 또, 하나는 삼년상,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 이후에 집안에 있는 사당, 그리고 묘지나 절 등에서 행해지는 제사들이다. 조상들은 매월 1일과 15일에 향과 차, 그리고 과자류의 공양을 받으며, 명절 때면, 육식이 놓인 제상을 받는다. 프랑스인들이 만성절 축일에 그러하듯이, 거의 모든 중국인들 은 해마다 정해진 시기, 즉 춘분, 추분, 하지 때에 가족의 무덤을 방문한다. 그러나 이들의 방문은 프랑스의 만성절 때 느끼는 우울한 분위기보다는 오히려 소풍 가는 분위기에서 이루어진다. 이날은 무엇보다도 고인을 비롯한 온 집안 식구들이 모이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집 안에 모신 사당은 조상숭배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장소로서, 사당의 규모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가늠할 수 있다. 최근에 와서는 이 분야에 관한 사업이 더욱 번창하는 추세여서, 서당을 꾸미는 데 필요한 값비싼 가구와 소품들이 날개돋힌 듯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제단에는 불상과 불화, 그리고 고인의 초상화, 취해 등 제사에 필요한 여러 물건이 놓인다. 시대 풍조에 따라 요즈음에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도록 만든 비디오 제단을 비롯하여 전기촛대, 자동개폐식 사당 문, 자동 향기구와 불교 음악을 담은 카세트 등을 볼 수 있다.
사당 다음으로 중요시되는 곳은 가족 묘지이다. 가족 묘지는 대개 사원 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곳에는 고인과 친지들의 유골이 묻혀 있다. 도시화가 신속하게 이루어짐에 따라 일본에서는 극심한 토지 인플레로 인하여 '매장지 부족'이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도시외곽으로 묘지를 이장하는 사례들이 많아졌다. 이 묘지 관리는 이제 더 이상 성직자들만이 주도할 수 없게 되었으며, 경영과 기획면에서 모든 현대적 기술을 동원한 자본주의 기업가들이 이익을 노리고 벌이는 사업장이 되고 말았다. 장례식의 현대화는 때때로 기이한 경향마저 보이고있는 실정이다. 자기 회사에서 만든 자동차를 몰다가 줄은 영혼들의 안식을 위해서 도요타 회사가 세운 사원도 그 한 예이다.
망자들의 축일
중국에서는 망자들의 영혼이 산자들을 방문하러 온다는 음력 7월에 있는 중원절 축제 때에 가족간의 응집력이 각별히 두드러진다. 불교에서 비롯된 이 축일은 중국에 건너오자마자 기존의 개념들에 접목되었다. 도교와 불교의 제관들에 의해 올려지는 제사 중에는 많은 야의 종이돈을 불태우면서, 불교의 가르침과는 달리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 포함되어있다. 서양인으로서 그 장면을 목격했던 폴 클로델은 이 의식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 종이돈은 망자를 위한 돈이다, 우선 얇은 종이로 사람과 집, 동물들의 허상을 오려낸다. 가벼운 이 종이 모형들은 그들의 '주인'인 망자를 뒤따르도록 되어 있으며, 불태워져 고인이 가는 곳으로 함께 간다. 피리 소리가 영혼을 안내하고, 징 소리가 마치 벌떼를 모으듯 그들을 모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반짝이는 불꽃이 그들을 위로하고 흡족하게 해준다."
일본에서 오봉이라 불리는 이 축일은 고대의 왕도였던 교토에서 특히 볼 만한 광경이다. 이 기간 중에는 각 가정마다 특별한 제단을 세우고 승려를 초청해서 염불을 외게 한다. 사원들은 온통 연등으로 장식하고, 등마다 등을 건 사람의 가족 이름이 적혀 있다. 모든 사람들이 모여 함께 춤을 추는 것은, 망자뿐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도 함께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애석하게도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법이어서, 이 축제가 끝남과 동시에 가족들은 다시 한 번 망자를 떠나보내지 않을 수 없다. 종이로 상징적인 작은 배를 만들어 그 안에 촛불을 밝힌 뒤, 이 종이배가 길 떠나는 망자의 뒤를 따라 '황천'으로 흘러가게 한다. 망자와의 이별의 순간에는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감춰두었던 슬픔이 농도 짙게 연극적으로 표현된다.
떠도는 망령들
망자들을 잇나 축원의 차분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지옥과 귀신에 대한 공포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상상의 세계를 떠나지 않고 괴롭힌다. 산스크리트어인 프레타preta를 번역한 '굶주린 혼'이라는 용오는 인도 어원을 가졌지만, 그 개념은 불교 도입 이전부터 중국에 있었던 것 같다. 중국 역사를 아무리 멀리 거슬러 올라가 봐도, 망자들의 안녕은 산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에 달려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이유로 제사를 받지 못한 망령들은 굶주린 마귀, 떠도는 영혼(중국인들이 '좋은 형제들'이라 에 둘러 부르는)이 된다. 그들을 지하세계의 감옥으로 돌려보내려면, 중국 사회와 같은 관료적인 체제하에서는 '계율'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 같다. 중국에서는 이른바 '무덤의 문을 닫기 위한 문서'들이 수없이 발견되었는데, 이 문서들은 명부에 망자의 도착을 알리며 그 영혼을 지하세계에 받아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그리고 망자들이 살아있는 자들을 괴롭히러 올 경우, 가장 고통스러운 보복을 받을 것이라는 위협의 내용도 담겨 있다.
유령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냈다. 특히 한 젊은이가 무덤 속에서 나온 젊은 여인에게서 유혹 당하는 이야기들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이야기 속에서 젊은이는 때로 승려의 주문이나 충고에 의해 마지막 순간에 간신히 목숨을 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유령에게 흡혈을 당하고 만다. 일본에서도 간간이 보며, 중국에서 오늘날까지도 행해지고 있는 이상한 관습은 다름 아닌 영혼 결혼식이다. 죽은 처녀가 가족들의 꿈에 나타나 남편을 구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때 결혼에 동의하며 나서는 남자는 신부 쪽 집안한테 막대한 지참금을 받게 된다. 결혼식에서는 처녀의 위패가 신부를 대신한다. 새신랑이 이행해야 할 유일한 의무는 죽은 여인에게 제사를 드려주는 일이다. 그러나 신혼 첫날밤은 신랑이 탈진하게 될 정도로 완전히 치러진다고 한다. 다행히도 자신에게 제사를 드려줄 자손이 생긴다는 희망과 부부로의 결합에 위로를 받은 처녀의 넋은, 이후로는 꿈에 나타나 가족을 괴롭히는 일이 없게 된다.
일본에서 최근 10년 사이에 사산아나 혹은 낙태아를 위한 장례식이 중요한 행사로 여겨지게 된 이유도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망자와 아이들의 수호신인 지장보살에게 드려지는 이 제사가 최근들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 것은, 낙태가 용이해짐에 따라 피임약을 사용하지 않게 된 일본의 피임 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렇다고 아이를 낙태시킨 어머니의 슬픔과 죄책감이 이 제사를 드리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행여나 죽은 아이의 넋이 호에 태어날 동생들을 해치지나 않을 까 하는 두려움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복수를 염려하리 만큼 참혹하게 죽은 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대중적인 제사가 있다. 죽은 후에 그 에너지가 가공할 만한 저주의 힘으로 변할 수 있을 정도로 살아 생전에 갖고 있던 에너지가 유달리 강했던 사람일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영혼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신격화하여, 신전에 모셔들이는 방법이다. 특히 중국에서 대부분의 신들은 이처럼 참혹한 죽음을 당했던 영웅적인 희생자들이다. 배신을 당하는 바람에 3세기경에 처형당한 유명한 관우 장군 역시 8세기에 이으러 전쟁의 신으로 격상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예는 유명한 문인이었던 미지찬의 경우이다. 그는 10세기 초에 중상모략을 받은 규슈 지방에 있는 남쪽 섬으로 귀양을 가 그곳에서 사망했는데, 죽은지 5세기 훙에야 신의 대열에 올랐던 관우 장군과는 달리 곧 신으로 추앙되었다. 미치잔이 죽은 지 얼마 된지 않아 일본의 수도에 극심한 재난이 덮쳤을 때, 모두 그의 노여움 때문이라 믿었으며, 그리하여 천황은 그를 문예의 신으로 높여줌으로써 용서를 빌고자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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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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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게 - 이승하
너의 속내에 자리한 아픔이 자라나 내가 겪고 있는 아픔보다 더 깊어진다면 나는 지금 자리 정리하고 일어나 네 곁으로 달려가야 하리라 비록 일상의 모든 끈끈한 것들로부터 달아나고 싶다는 느낌뿐일지라도
작은 것을 아끼는 부드러운 마음과 작은 것은 버리는 단단한 마음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너는 나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가 나누어 짐지면 살림살이의 무게는 얼마만큼 더 가벼워지는지 너는 나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가
내 속내에 자리한 아픔이 자라나 네가 겪고 있는 아픔보다 깊어진다 해도 너는 지금 자리 정리하고 일어나 내 곁으로 달려오지 않아도 좋다 비록 일상의 모든 끈끈한 것들로부터 달아나고 싶다는 생각뿐일지라도
그러나 그것이 잘못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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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한국사 |
우리 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 이이화
제1부 인류의 진화
1. 걷고, 쥐고, 불을 사용하면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되기까지
인류가 탄생된 과정을 알아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인류의 생성 유지는 지구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털이 있는 포유류는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어서 공룡이 멸종된 당시의 혹독한 기후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신생대의 빙하기 기후에도 적응해 지구 위에 번성하게 되었다. 이 포유류의 한 줄기인 영장류가 진화를 거듭하여 인류로 탈바꿈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인류학자, 고고학자, 생물학자들은 화석을 수집해 추정한 결과를 통해 인류의 탄생지를 아프리카 일대라고 단정하고 있다. 처음에 아프리카 일대는 숲이 우거지고 나무 열매가 풍족히 열려서 영장류가 살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춘 지역이었다. 이곳에서 1,200만 년 전쯤에 인류의 먼 조상인 어느 영장류 무리도 역시 나무에서 먹이를 구하고 나무 위에서 자고 나무를 따라 이동하는 수상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기후의 격심한 변동을 겪는 동안 원시인류의 새로운 종이 가지를 뻗었으며, 적응하지 못한 종들은 사라졌다고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주장하고 있다. 곧, 300만 년에 걸쳐 아프리카에 큰 기후 변화가 있었으며, 이에 따라 따뜻하고 습한 기후가 끝나고 아주 차고 건조한 기간이 계속됐는데 이때 진화 계통이 흔들렸다는 것이다. 기후 격변에 적응하지 못한 종들은 대부분 멸종했으며 따뜻한 곳을 찾아 이동한 종도 있었다.
인류의 조상은 엄청나게 변한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이들은 울창한 숲이 사라진 드넓은 평원에서 불안에 떨며 서성댔다. 나무 위에 살면서 채집생활에 익숙해 있던 인류는 땅 위에서 자라는 식물만으로는 배고픔을 면할 수 없었다. 인류는 이제 불안하게나마 서서 달리는 법을 익혔고, 움직이는 짐승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수상 채집생활에서 협동 수렵생활로의 변화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생겨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기후 변화의 구체적인 원인은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빙하 덩어리가 주기적으로 확산되어 대서양을 차갑게 만들었고 이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아프리카 대륙으로 불어간 데에 있었다. 컬럼비아 대학 연구팀은 아프리카 연안 바다 밑에 쌓인 퇴적물을 분석하여 이 지역의 연속적인 기후 변화의 세부적인 모습을 알아냈다. 800만 년 이상 걸려 만들어진 이 퇴적물에는 땅에서 바다로 날아온 흙과 풀조각들이 들어 있었는데, 이로부터 알아낸 기후 변화와 인류의 계보를 시기별로 연결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 퇴적물은 280만 년 전쯤 차갑고 건조한 기후 때문에 울창한 수림이 파괴되고 풀밭이 이를 대신했음을 증명한다. 이 기후에 적응하지 못한 원시인류 종은 멸망하고 나머지는 살아남았다. 둘째, 가장 초기의 원시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루시)인데, 이들은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 이 인류가 더욱 진화하면서 파란트로푸스와 호모라는 두 가지 다른 계통으로 나뉘었다. 셋째, 차갑고 건조한 기후가 170만 년 전쯤에 닥쳤는데, 이때 호모 하빌리스가 사라졌고, 보다 큰 두뇌를 가진 직립원인 호모 에렉투스가 뒤를 이었다. 넷째, 큰 기후 변화기인 100만 년 전쯤에는 파란트로푸스계통이 완전히 없어지고 직립원인만 살아남아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 이 인류가 바로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 이 인류가 바로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아버지인 셈이다. 에렉투스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기간은 50만 년,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진화한 기간은 5만 년 전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직립원인, 곧 곧선사람의 등장을 360만 년 전쯤으로 추정하는 학설도 있는데, 1994년에 케냐 국립박물관에서 원인 유골을 분석한 결과 정강이뼈의 구조로 보아 이보다 50만 년쯤 앞당겨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새로운 주장과 학설이 나올 것이다. 아프리카 발생설에 대해 아시아 발생설도 있으며, 북한에서는 한민족의 독자적 기원설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초기 아프리카의 곧선사람들은 서기전 180만 년에서 30만 년 사이에 중국, 인도네시아, 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 등 다른 대륙으로 퍼졌다. 그런데 자바인이나 북경인 등과 같이 각 대륙에서 함께 진화해서 피부와 생김새가 다른 현대 인류로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고, 20만 년 전쯤 현생 인류의 공통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10만 년 전쯤 중동지방에 진출해 다른 대륙으로 퍼졌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뒤의 주장이 새로운 학설이다.
손의 혁명
큰 기후 변화가 있기 전에 아프리카는 울창한 밀림으로 덮여 있었다. 땅 위에는 엄청난 종류의 동물과 파충류들이 들끓었다. 인간을 포함한 몸집이 작은 유인원들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새로운 진화의 기회가 다가왔다. 원인들은 그동안 입으로 먹이를 죽이고 적을 공격했다. 입을 이렇게 사용하면 의사를 나타내는 말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또 앞발을 걷는 데 사용하면 물건을 운반하거나 도구를 사용할 수 없다. 원인들은 처음 앞발을 손으로 쓰기 시작했다. 앞발로 상대를 공격하고 물건을 운반하고 열매를 따서 입에 넣는 동작을 개발했다.
앞발을 손처럼 쓰는 동물로는 원숭이를 꼽을 수 있다. 보기를 들면 긴팔원숭이는 앞발을 이용해 순식간에 나뭇가지 사이를 잽싸게 이동하여 공중 곡예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물건을 만지거나 조작하는 데에는 익숙지 못한 손(앞발)을 가지고 있어 더 이상 진화하지 못했다. 오랑우탄이나 고릴라도 앞발을 손처럼 쓰지만 몸집이 크고 둔해서 진화가 멈추었다. 이처럼 원숭이 종류의 유인원들은 손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다. 인간은 점차 손으로 쥐고 만지고 만드는 기능을 익혔다. 인간의 손가락은 다섯 개다. 원숭이 종류나 오랑우탄 같은 영장류의 동물도 마찬가지로 다섯 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있다. 인간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소는 앞발이 두 쪽으로 갈라져 있으며, 개는 네 개의 발가락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동물들의 앞발은 손으로 진화할 수 없었다. 손가락 다섯 개는 도구를 만든는 데 아주 편리하고, 숫자를 세는 데도 안성맞춤이었다.
이 지구 위에서 도구를 만들 줄 알고 숫자를 셀 줄 아는 인간이 모든 동물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가장 뛰어나 고등동물이 되었다. 인간의 앞발은 손으로 바뀌어서 걷는 동작을 거부했다. 나무를 탈 때는 손발을 같이 사용했지만 땅에 내려와서는 뒷다리로 걸어다녔다. 뒤에 붙은 두 다리와 앞에 붙은 두다리는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곧선사람이 탄생했다. 이제 손으로는 물건을 쥘 수도 있고 도구를 사용할 수도 있고 적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발로는 걷기도 하고 차기도 하고 좁은 공간에서 몸을 세워 편리하게 움직였다. 손의 사용과 곧선 보행을 오직 인류만이 완전하게 해냈다. 이것은 인류 진화의 핵심이었으며 최고의 영장류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또 인간은 낮에 활동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멀고 가까운 거리의 사물을 볼 수 있고 넓은 범위의 색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이 발달되었다. 모든 동물의 눈은 두 개이지만 시각정보를 종합적으로 수용하고 처리하는 데는 인간의 눈이 으뜸이다. 이렇게 정교한 손과 눈을 사용하면서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뇌가 고도로 발달하였다. 이는 인간이 다른 어느 동물보다 복잡한 언어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수렵활동은 수상 채집활동보다 구성원들의 협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속한 의사 전달의 필요성이 절실해졌고, 이에 따라 인간은 언어를 구성하고 발달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신체 기관과 뇌의 발달, 언어의 발달은 특별한 인과적 순서를 따랐다기보다는 서로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보아야 한다. 인류는 지헤의 성숙을 거치면서 불의 발견이라는 획기적인 계기를 만나게 된다.
불은 자연의 산물이지만 잠재해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 우레가 치고 번개가 번쩍이면 인간은 하늘을 외경하면서 자연의 조화에 몸을 떤다. 때때로 우레와 번개가 메마른 숲을 내리치면 불이 붙는다. 숲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시뻘건 불이 붙은 모습을 인간들은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인간이나 동물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불을 가까이 하였을 때 인간은 불이 따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당시 인간들은 대부분 바위 아래나 동굴에서 살았는데 자연 지형물이 어느 정도 비바람을 가려주었을지라도 습기와 한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밤이 되면 한기가 더욱 거세졌다. 이렇게 지내오다가 불을 지피면 곧 따뜻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생활의 변화를 가져왔겠는가? 불탄 숲에는 미처 피하지 못한 동물들이 죽어 나뒹굴었다. 배가 고픈 어떤 사람이 이 고기를 뜯어먹다가 날고기보다 연하고 맛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부터 인간들은 숲이 타고 나면 불탄 짐승을 찾아나서기 시작햇다. 이 일이 사냥 다음의 생업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불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자연적으로 발화된 불을 붙여 두었다가 필요할 때 쓰기도 했고 마찰을 일으켜 열을 가하면 불이 일어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때부터 물은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아니라 가장 가까이하는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나아가 불을 이용해 짐승을 잡기도 했고 물건을 만드는 데에도 사용했다.
불을 최초로 사용한 인간 집단은 북경원인이다. 북경원인은 60만 년 전부터 살았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데, 이들이 불을 사용한 것은 50만 년 전부터이다. 그후 불은 다른 인류집단으로 널리 펴져나갔다. 원시인들이 불을 발견하고 사용한 이래 불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었다. 그러나 불은 또한 재앙의 원인으로, 다양한 형태의 살상용 무기로 사용되어 숱한 목숨과 재산을 앗아갔다. 문명이란 삶을 보다 풍족하게 해주지만 동시에 그것이 잘못 쓰일 때에는 불행을 가져다준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경우가 바로 불의 발견이다.
2. 무리사회를 이루어
인간은 어떻게 혈통을 유지했을까
인류는 긴 세월 동안 수렵 채집생활을 했다. 도구를 사용하기 전에는 입으로 열매를 따먹었고 이어 손으로 열매와 풀뿌리를 따거나 캐서 먹었다. 그러다가 사냥을 함으로써 단백질이 풍부한 고기를 먹거리로 확보하게 되었다. 이 단계를 수렵 채취시대라고 한다. 수렵 채취시대에는 대개 가족이나 몇십명 또는 100여 명 단위로 모여 사는 무리생활을 했다. 이 시대에 인간들은 어떻게 성욕을 충족시키고 혈통을 유지 했을까? 어떻게 가족과 무리사회를 보존하고 인구를 증가시켰을까?
원시인류는 일부일처를 유지하지 않고 혼음 상태로 본능적인 욕구를 채웠을 것이다. 인간이 혼거 상태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의 어머니만 알 수 있을 뿐 아버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이것은 모계사회를 만드는 하나의 조건이 된다. 한자는 표의를 기본으로 한 문자인데 사람의 혈통을 나타내는 '성'은 "여자가 낳았다"는 글자로 합성되어 있다. 남성 위주의 성이 여성의 임신을 단초로 하고 있으니 일견 모순처럼 보인다. 인간들은 성욕 또는 남녀의 문제를 동물적, 생물학적 본능에서 차츰 사회적, 도덕적 관점으로 옮겨갔다. 사실 생물학적으로는 남자가 우월하다. 남녀가 성교접을 할 때, 전통적으로 여성이 아래에 남성이 위에 위치하여 남성이 주동적으로 이끄는 것도 이의 한 표현이다. 남성은 호르몬을 분비하는 것으로 생식 기능을 다한다. 여성은 신체적으로 상당히 불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임신을 위해 일정한 주기로 월경을 하고, 임신을 하면 배가 불러오고 유방이 커진다. 이것은 일상생활을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일단 아이를 낳으면 여성은 젖을 먹여야 한다. 젖을 먹이는 기간에는 임신이 억제된다. 이것은 여성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한 조물주의 섭리이다. 사람의 아이는 동물과는 달리 적어도 1년 이상 젖을 먹어야 하며, 혼자의 힘으로 먹거리를 구하면서 살아가려면 10년 이상을 자라야 한다. 아이를 기르는 것은 여자의 몫이다. 이렇게 여성이 아이를 기를 동안 남자들은 사냥을 하거나 물고기를 잡으러 나간다. 사냥은 맨손으로 하건 도구로 하건, 혼자 하든지 무리를 이루어 하든지 남자들의 몫이었다. 남자는 여자보다 체구가 크고 근육질이다. 여자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적당하지만 사냥에는 불리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다. 체구와 근육질도 남자에게 뒤지지만 젖가슴이 크고 골반이 길며 엉덩이가 커서 달리고 뛰는 데 지장이 있고 잔혹성도 떨어진다. 언어 능력과 감성적 반응이 탁월한 데 비해 공간 지각력과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냥에 불리한 조건이다.
여자들은 좀더 손쉬운 열매따기에 나서거나 사냥해온 먹이를 조리하는 일을 맡았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에도 여러 부족 사회에서 볼 수 있다.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은 남자는 사냥 여자는 채집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으며, 에스키모인들은 남자는 고래나 물개 사냥, 여자는 가죽 가공하는 일에 종사한다. 부시맨들도 남자는 멀리 나가 사냥을 해오고 여자는 덫에 걸린 작은 지승을 잡아오기도 하나 아이 키우기나 음식 만드는 일을 주로 한다. 사냥하러 나가지 않을 때 남자들은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것처럼 보인다. 또 남자들은 다른 집단과 싸움이 벌어지면 여자들을 집에 남겨두고 싸우러 나간다. 싸움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을 가지고 온다. 사냥한 물건과 전리품을 분배하는 권리는 남자들이 가지고 있다. 분배권은 잔연히 권력 속성을 지닌다. 이 권리는 가부장의 권위를 만들어냈다. 지금 아프리카 남단에 사는 줄루족은 남자들이 사냥이나 싸움에 나가 많이 죽은 탓으로 남서의 권위가 특히 강해 철저한 가부장제도가 확립되어 있다고 한다.
간단히 생식과 남녀의 차이점을 짚어보았는데, 여기에서 배놓을 수 없는 문제가 또 있다. 인간의 성행위 상대에 대한 의문이다. 우리는 흔히 동물들이 마구잡이로 근친상간을 한다고 알고 있지만 동물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새끼가 일단 성장하면 성이 같은 집단에 합류해 암컷과 수컷은 따로 떨어져 살게 된다. 근친상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사회집단을 이루고 있는 얼룩말과 원숭이들은 수컷 우두머리가 자신이 거느리는 암컷을 계속 감시하여 근친상간의 기회를 효과적으로 방지한다. 붉은 사슴은 대부분 암수가 떨어져 살아 거의 근친상간의 기회가 없다. 또 개나 고양이들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컷 새끼가 어미에게 달려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수컷이 자신보다 하위에 있는 짝과 흘레를 붙는 일반적 규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제와 자매는 어릴 적부터 친숙한 사이여서 손쉽게 흘레를 붙지 않는다. 예외가 있다면 바로 아비와 딸의 관계이다. 이 관계는 서로 구분할 수가 없어서 비교적 근친상간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 관계도 암수가 서로 떨어져 살기 떄문에 드문 경우에 해당된다.
인류가 혼거생활을 할 때는 자식의 소유권 문제가 심각했을 것이다. 원시시대에는 자식이 소중한 재산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분쟁거리였다. 이로 인해 차츰 여자는 한 남자의 소유가 되었고, 그 자식들도 어머니와 함께 가정을 이루었다. 이와 같은 환경과 조건에서 인간은 근친상간이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또 앞에서 말한 동물들의 우열관계나 친숙관계에서처럼 모자나 형제자매 사이에는 상간이 이루어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동물관계에서처럼 인간에게도 부녀와 남매관게는 다른 경우보다 조금 복잡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 민담에 이런 것이 있다.
비오는 어느 날, 남매가 호젓한 길을 걷고 있었다. 비에 젖은 누이는 옷이 살에 달라붙어 몸매가 드러나 있었다. 뒤따라가다 그 모습을 본 동생은 불현 듯 성욕을 느꼈다. 동생은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성기를 바위에 올려놓고 돌멩이로 짓이겨버렸다. 이를 안 누이는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하며 안타까워했다. 이것이 바로 달래바위 전설이다. 어느 홀아비가 딸 하나를 기르며 살았다. 어느 날 딸과 함께 산을 오르던 아버지는 성욕을 이기지 못해 딸에게 은근히 교접을 요구했다. 번민하던 딸은 산 위에 올라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이 전설들은 교훈적으로 들린다. 이 두 민담에는 모두 남성이 공격적으로 등장하는데, 인간된 도리를 강조하고 사람은 짐승과 다르다는 내용으로 결말을 맺고 있다. 이것은 뒷날 도덕 인륜 따위 인문정신이 발달한 뒤에 생물학적 본능과 인륜이 충돌하는 경우를 그린 것이다. 근친상간은 원시시대부터 금기로 여겼다.
인간들은 성욕 해결과 혼인을 구별하게 되었다. 이는 사회 문화적 관점의 성숙에 따른 것이다. 혼인은 하나의 독점 약속이고 그 약속을 확실히 하는 의례였다. 혼인은 근친상간의 금기에 토대를 두고 성립되었다. 그러므로 원시시대부터 부모 또는 형제자매 사이에는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혼인은 족내혼과 족외혼 두 가지로 성립되었다. 족내혼은 4촌 이상의 같은 혈통과 부부가 되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서양 중세의 귀족들과 신라 왕실에서 이런 경우를 본다. 원시시대에도 족내혼이 성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무리와 무리 사이에 혼인을 맺는 것이 족내혼보다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인을 통해 집단과 집단이 일정한 유대를 맺고 불필요한 갈등이나 싸움을 방지할 수도 있고 서로 돈독한 유대를 맺을 수도 있었다. 족외혼이 이루어짐으로써 근친간의 혼인은 차츰 없어졌고, 관습과 제도로 굳어졌다. 무리사회나 부족사회의 잔재인 정략혼인은 후대에 와서 왕실이나 귀족들 사이에 성행했다.
우생학적으로 볼 때도 족외혼이 많은 이점이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다. 근친 교배는 후손들에게 유전적 위험을 안겨준다. 다른 계통의 교배로 태어난 개체군에서는 넓게 퍼져 잘 나타나지 않는 열성인자가 근친 교배에서는 잘 나타난다. 열성인자는 생식력 감소, 수명 단축, 질병 감염률 증가, 신체의 왜소 따위 여러 가지 결함을 유발한다. 이같은 사실은 동물실험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족외혼의 관습을 지님으로써 인류는 빠른 진화를 할 수 있었다.
지배욕은 본능이다
남녀관계에서 본 대로 남성은 공격적인 신체 조건으로 여자에게 군림하는 지배권력을 확보해왔다. 인간의 지배욕은 먹고 자는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마음속에서 꿈틀댄다. 지배욕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발견된다. 지배욕도 하나의 본능이다. 가족단위에서 무리사회를 이루어나가면서 집단의 질서와 효과적인 사냥을 위해 지도자가 필요했다. 지배는 단순한 지도와는 구분된다. 다시 동물의 경우에서 이 문제를 풀어보기로 하자. 수사슴이나 수누는 피나는 투쟁을 벌인 끝에 우두머리가 된다. 일단 우두머리가 되면 암컷을 독차지하고 특권을 누린다. 그런데 우두머리 수컷은 특권만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무리를 이끌고 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한다. 양의 일종인 누는 풀을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한다. 우두머리는 앞장서서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고 언덕을 넘어 목적지에 도달한다. 이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다.
사자나 호랑이는 일정한 지역에 배설물을 군데군데 싸놓고 결코 다른 동물이 침입하지 못하게 한다. 만약 영역을 침범하면 공격을 가한다. 힘이 센 수사자는 무리들이 잡은 먹이를 혼자 실컷 먹는다. 다른 사자들은 남은 먹이를 먹는다. 사자무리의 영역은 100평방킬로미터가 되는 곳도 있는데 암컷은 우두머리가 죽으면 새 우두머리를 맞이한다. 새 우두머리는 새끼를 죽이고 자신의 새끼를 잉태케 한다. 표범은 13개월간 새끼를 기르고 나서 다른 영역으로 내보내 독립시킨다. 만약 아비 어미의 영역을 침범하면 퇴거 명령을 내리고, 듣지 않으면 상처를 입힐 정도로 공격을 간한다. 얼룩말의 우두머리는 다른 얼룩말이 자신의 배설물 위에 배설을 하면 도전으로 받아들여 일대 결전을 시도한다. 이때 암컷들은 두 패로 갈라져 승리자를 기다린다. 일본원숭이는 우두머리가 짝짓기 권리를 가지며, 남미의 늑대는 우두머리가 먼저 먹이를 먹는다. 새와 개미들도 일정한 영역을 확보하고 다른 무리가 침입하면 공격을 가한다. 동물들이 영역 표시를 하는 것은 먹이자원 확보, 보금자리마련, 생식 장소의 독점 때문이다. 새와 개미의 경우에는 알을 보존하려는 본능에서 영역을 표시한다. 여기에는 지배권 독점과 먹이 우선권과 소유욕이 어우러져 있다. 그러면서 동물들의 생존 질서가 정연하게 깔려 있다.
인간들의 지배권력 확보도 초기 단게에는 이와 다를 바가 없엇다. 무리사회에서 질서를 잡고 먹거리 확보의 전략을 세우고 공격을 댠행할 때 지도자 또는 지배자가 필요했을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배권 획득에는 반드시 투쟁이 따른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단순한 추대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힘이 가장 필요할 때에는 힘센 자가 지배자로 추대되었고, 도구를 쓸 때에는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자가 뽑혔다. 이와 반대의 경우 곧 경쟁으로 뽑을 때에도 우열을 가리는 방법이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지배자는 권위나 위엄을 지녀야 헀다. 그래서 다른 구성원과 구별하기 위해 얼굴에 색칠을 하거나 머리에 새의 깃털을 꽂았다. 몸에 걸치는 장신구도 더 고급스러운 것으로 만들었고 가죽옷도 가장 좋은 것을 차지했다. 이는 사냥한 짐승이나 전리품의 분배 권리와도 관련이 깊다. 지배자는 언어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원래 언어는 개인의사를 나타내면서 발달해왔다. 이는 발굴된 화석이나 동굴의 그림으로도 증명이 된다. 처음 무서운 비바람이나 뇌성벽력을 알리기 위해 소리를 치고 자신의 슬픔이나 기쁜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지껄이는 소리들이 말로 변해갔다. 또한 치밀한 협동과 즉각적인 의사 전달이 필요한 사냥을 위해서도 언어가 필요했다. 특히 지배자는 지시나 공격을 알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도 언어의 위의를 차려야 했다. 지배는 바로 권력으로 이어졌다. 원시시대의 지배자는 부족장이나 군장으로 계승되었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지배욕이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고 보면,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 하는 문제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이 문제를 놓고 볼 때 인간의 본성이 공격적. 호전적이냐, 아니면 협동적. 공동체적이냐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이문제를 풀기 위해 구체적인 인간 행위를 알아보자. 북경원인들이 살았던 동굴에서 인공으로 부러뜨린 것으로 보이는 팔과 다리, 구멍 뚫린 두 개골이 발견되었다. 사람을 구운 듯한 흔적도 있었다. 다른 지방의 화석에서도 비슷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인류학자들은 이것이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은 흔적이라고 주장했다. 인성학의 대가인 로렌츠는 "인류의 조상들은 날을 세운 돌멩이를 발명해 무기로 사용하면서 짐승 사냥만이 아니라 같은 무리를 죽이는 데에도 거리낌없이 휘둘렸다는 증거가 있다. 북경원인들은 불을 사용해 자기 형제를 구워 먹었다"고 신랄하게 주장했다. 그는 인간은 공격성과 영토 소유 본능을 피할 수 없는 유산으로 지니고 있다고도 했다. 근래에도 일부 학자들은 몇몇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식인 풍습과 결부시켜 인간의 잔혹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북경동굴의 경우 부러뜨린 팔과 다리는 동물의 뼈였다고 하며, 최근에야 두 개골의 구멍이 표범의 이빨자국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북경원인이 식인설을 부정하게 되었다. 한편 식인 풍습은 족내식인과 족외식인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족내식인은 같은 부족의 구성원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먹거리로서가 아니라 의례로 행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뉴기니의 식인들은 다른 부족을 습격하기로 결정하면 상징적인 장식을 하고 몇 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친 뒤 공격에 나선다. 다른 부족을 공격하여 적을 사로잡으면 살점을 떼어 맛을 본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족외식인으로, 자기 부족의 단결을 과시하고 다른 부족을 통합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한 부족은 잡아온 적의 팔다리 근육부터 뜯어먹고 이어 살갗과 살점을 잘라 먹는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경멸과 조롱의 말을 늘어놓는다. 인디언의 한 부족은 죽은 친척의 시체를 먹는데 이들은 화장 풍습을 야만적인 장례로 생각하고 있다. 또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부족은 부족 내부에서 죽은 자가 나오면 팔, 다리, 얼굴, 배에서 지방을 골라 잘라 먹는다. 지방을 잘라내는 일은 죽은 자의 친척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른이 담당한다. 이들은 지방에 힘이 들어 있어서 이 지방을 먹으면 힘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또 존경의 표시로 죽은 시체의 살점을 조금 씹는 경우도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제후들이 회맹할 때 입에 피를 바르고 적장의 살점을 베어 씹는 의식이 있었다. 이 의식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이것은 동맹의 굳은 의지를 나타내고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 중국과 한국 사람들은 부모가 병들었을 때 살점을 떼어 먹이거나 손가락의 피를 입에 흘려 넣으면 영험이 있다고 맏었다.
이와 같이 식인 풍습은 잔인성을 띠기는 하나 먹거리를 위한 것이 아닌 하나의 의례 또는 풍습이었다. 비록 족외식인이 라도 적대행위의 원인이 아니라 거기에 부수된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옛 화석이나 유물에서 나타나는 식인의 흔적도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인간들은 무리사회를 형성하면서 끊임없이 다른 부족이나 침입자와 싸윘다. 그 원인은 모자라는 먹거리를 약탈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영역을 늘리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적어도 수렵 채취시대를 지나 부족 형태로 집단생활을 하면서 공격성과 영토욕이 인간집단을 자극했다. 공격은 또 다른 공격을 낳으며 반복되었다. 예전 우리 사회예서도 아버지가 어느 사람에게 맞아 죽으면 그 아들이 같은 방법으로 아버지를 살해한 자를 죽였다. 그러면 죽은 자의 아들이 다시 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한다. 이런 복수를 효도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겠는가. 결코 아니다. 그저 잘못된 관습일 뿐이다. 개인 차원의 복수가 확대되면 그에 따르는 희생도 컸다. 이것이 집단 간의 분쟁을 넘어 전쟁으로 번졌고, 청동기시대 이후 무기가 발달하면서 점차 대량학살로 이어졌다. 공격은 자기 생존을 위한 방법이었다. 충분한 식량이 있을때에는 공격을 늦추고 일정한 삶의 터전이 확보되면 도발을 줄인다. 이와 반대로 극도의 굶주림과 열악한 생존 조건에 놓여 있으면 새로운 영토를 찾아나설 수밖에 없다. 평야지대에서 부유하게 살던 부여가 망하고 산악지대에서 험하게 살던 고구려가 대제국을 건설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동양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성선설과 성악설이 맞서왔다. 인간은 본래 착하게 태어났다는 주장과 악하게 태어났다는 주장이 맞서 논쟁을 멀여왔다. 그런데 이 논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후천적 교육이나 도덕심의 함양을 양쪽 모두 중요시했다는 점이다. 갈등과 통합, 또는 인간의 잔혹성과 협동성도 이런 관점에서 해결지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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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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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어당 에세이선
인간의 존엄성
인간성과 인간 존엄성의 완전한 고찰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무엇인가 빠진 것이 있다. 그렇다. 인간의 존엄성 바로 이 말이다. 여기에 관해서 강조할 필요성이 있다. 존엄을 조성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논점이 혼란되고 알 수 없게 되어서 인간의 존엄성 그 자체를 잃어 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에. 왜냐하면 20세기, 특히 현재에 다가올 몇십 년 동안에 인간의 그 존엄성을 상실해버릴 명백한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동물이라고 당신이 주장한다면, 당신은 인간이 동물 중에서 가장 놀랄 만한 동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나는 전적으로 이 물음에 동감한다. 인류만이 독자적으로 문명을 일으켰으며, 그리고 이것은 경솔히 처리되어 버릴 문제가 아니다. 훌륭한 신체적 구조를 지닌 동물들이 얼마든지 있다. -말처럼 생김새도 인간보다 훌륭하고 고상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있고, 또 사자처럼 훌륭한 근육을 가지고 있는 것, 개처럼 후각과 양순함과 충성 정신이 뛰어난 것,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시력을 가지고 있는 것, 비둘기처럼 방향감각이 예민한 것, 개미처럼 근면하고 훈련이 잘 돼 있고 능률적으로 일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사슴처럼 기질이 온순한 것, 소처럼 강한 인내력과 만족감을 가지고 있는 것, 종달새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것, 마지막으로 앵무새와 공작처럼 몸치장이 화려한 것도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동물들보다 원숭이가 내 마음에 든다. 원숭이에게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원숭이로 있기보다는 인간으로 있는 편이 나로서는 더 좋다. 그것은 인간 속에 있는 원숭이의 호기심과 지혜 때문이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개미는 인간보다 이성적이며 인간보다 훈련된 동물이라고 하는 점을 시인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스페인 정부보다도 안정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시인한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런 박물관이나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개미나 코끼리가 거대한 망원경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변광성을 발견하거나 일식을 예언하거나 할 수 있다면, 또는 물개가 미적분학을 발견하거나, 수달피가 파나마 운하를 뚫을 수가 있다면, 나는 그들을 세계의 지배자 또는 창조주로 모시고 그들에게 우승자의 권리를 넘겨줄 용의가 있다. 그렇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자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랑해도 좋도록 해 준 것은 무엇이며, 인간 존엄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미 이 책의 서두에서 암시한 바와 같이 이 인간 존엄성이라는 것은 중국 문학의 찬미의 대상인 자유인의 네 가지 특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네 가지는 즉, 유희적 호기심, 꿈꾸는 능력, 그 꿈을 바로 고치는 유우머감, 마지막으로 행위의 무제한성과 변덕성 이것들이다. 이 네 가지를 합치면 소위 미국식 개인주의의 중국판이 된다. 중국 문학에서 자유인을 그려 낸 이상으로 개인주의자의 생생한 묘사를 그려 내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미국 개인주의의 위대한 문학적 옹호자인 월트 휘트먼 자신이 '위대한 한인'이라고 불린 것은 확실히 우연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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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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