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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502 호
단기 4341. 9. 27 (음력 8. 28)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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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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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우리詩 신인 작품 공모
월간 『우리詩』가 신인 작품을 다음과 같이 공모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시의 발전과 시낭송을 이끌어온 사단법인『우리시진흥회』는 감동 있는 시작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시문학의 미래를 열어갈 역량 있는 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랍니다.
■ 부문 : 시 10편 이상 ■ 마감 : 매년 5월 30일 / 10월 30일(년 2회) ■ 발표 : 8월호 / 1월호 ■ 기타 : (1) 연 2회 공모에 의해서만 신인 등단의 문을 엽니다. (2) 원고는 전자우편으로만 접수를 받습니다. (아래 주소 참조) (3) 응모원고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4) 심사위원은 본지에서 위촉하고 당선자와 함께 발표합니다. (5) 당선된 시인에게는 상패와 소정의 고료를 지급하고 작품 활동을 적극 지원합니다. ■ 전자우편 : urisi21@naver.com/ hongpoet@hanmail.net ■ 홈페이지 참조: http://cafe.daum.net/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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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암)검진 체험수기 공모 요강
국민의 평생 건강파수꾼인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건강(암)검진을 통해 조기발견, 조기치료」한 사례를 발굴하여 건강검진의 필요성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여러분의 감동적인 건강검진 체험수기를 공모합니다.
▷수기 내용 공단 건강(암)검진을 통하여 질병 및 암을 조기발견, 조기치료 함으로써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귀중한 체험이야기 ▷ 자격 : 전 국민(건강보험 가입자(피부양자)인 외국인, 재외국민 응모 가능) ▷원고 분량 : 원고지 20매 내외(A4용지 3~4매) ▷ 마감 : 2008년 9월 30일 오후 6시 ▷ 당선작 발표 : 2008년 10월 20일 공단 홈페이지(www.nhic.or.kr) ▷ 원고 제출 : 우편, 방문 또는 전자우편 접수 - 제출처 : 서울 마포구 염리동 168-9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관리실 건강검진 체험수기 담당자 앞 (우편번호 121-749) - 제출 전자우편주소 : sun369@nhic.or.kr , songsong@nhic.or.kr - 문의처 : (02) 3270-9208, 9876 체험수기 담당자
▷시상 내용
구 분 |
대상자 |
상금 |
최우수상 |
1명 |
100만원 |
우수상 |
4명 |
각 50만원 |
장려상 |
15명 |
각 20만원 |
○ 모든 응모 작품은 순수 개인체험담이어야 하며 수상작이 체험담이 아닌 창작된 허구의 수기로 밝혀질 경우 수상을 무효 처리합니다. ○ 원고 첫 장에 제목, 주소, 본명, 나이, 연락처(자택전화, 이동전화)를 기재해야 합니다. ○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원고를 제출할 경우 글자 크기를 14포인트로 하여 주십시오. ○ 우편으로 원고를 제출할 경우 봉투에 '체험수기 공모작품'이라고 표기해 주시고, 마감 당일 우편 소인이 찍힌 응모작까지 유효합니다. ○ 모든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으며, 수상 작품의 사용권한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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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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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의 자유를 죽이는 것은 진리를 죽이는 것이다.(밀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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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글터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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돟습니다레!
고장말
‘-레’는 말끝에 붙여 쓰는 평안도말이다. “날이 저물어서 그러니 하룻나주 자구 갑시다레.”(<한국구전설화> 평북편, 임석재) “날래 집이 가서 밥을 먹읍시다레.”(위 책) 표준어의 ‘-그려’와 대응되는 말로, 소설·영화·드라마 등에서 북녘 사람 말투를 표현할 때 쓰는 전형적인 표지다. “내레 피양에서 왔수다레.” “님제 참 용쑤다레, 참 잘 맡헸수다” “여보 님제레 용헌 점배치라문 뭐던지 다 잘 알갔수다레.”
“됐수다레, 그까짓 술 한 사발 가지고 내 목을 축이겠수. …”(<홍경래>, 문관식)처럼 ‘-레’는 말할이가 들을이에게 단호한 뜻을 드러내기도 하며, “그저 고맙수다레, 대장동무. 내레 기래서 우리 대장 동무가 최고야요.”(<돼지들>, 이정규) “아줌니, 고맙수다레. 내레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다.”(<계수나무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박명애)와 같이 반갑거나 고마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레’는 들을이에게 말할이의 느낌을 드러내거나, 말하는 내용을 강조하고 싶을 때 쓰는 전형적인 평안도말이다.
‘-레’의 또다른 형태는 ‘-게레’다. 다만, ‘-레’가 아주높임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이는 반면, ‘-게레’는 예사낮춤 말 뒤에 쓰인다는 점이 다르다. “돟습메게레”(<평북방언사전>, 김이협) “내레 잠이 안 와 죽갔네게레” “그만 못하웨게레(그만 못하네그려)”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어떡해, 어떻게, 어떻해
'어떡해' '어떻게' '어떻해' 가운데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릴까? '어떡해'와 '어떻게'는 맞는 말이고, '어떻해'는 틀린 말이다. '어떡해'와 '어떻게'는 발음이 비슷해 혼동하기 십상이다. '어떡해'는 '어떻게 해'가 줄어든 말이고, '어떻게'는 '어떻다'의 활용형으로, 부사적으로 쓰인다. 이 두 단어는 다른 말이므로 상황에 맞게 써야 한다.
'지갑을 잃어 버렸어. 나 어떡해.' '지갑을 잃어 버렸어. 집에 어떻게 가지?'
'어떻게'는 부사적으로 쓰이므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지?'처럼 동사를 수식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해'는 하나의 구(句·부사어+동사)이고, 이 구가 줄어든 '어떡해'도 동사이므로 서술어로 쓰일 수는 있지만 다른 동사를 수식할 수는 없다. '이제 난 어떡해'는 말이 되지만 '이 일을 어떡해 처리하지?'처럼 쓸 수는 없다는 얘기다.
'어떡해'와 '어떻게'를 쉽게 구별하려면 '어떡하다'(원말:어떻게 하다)는 동사고, '어떻다'(원말:어떠하다)는 형용사라는 점을 기억하면 된다. '어떡하다'는 '어떡하든지' '어떡할까' '어떡해' 등으로, '어떻다'는 '어떻든' '어떨까' '어때' 등으로 활용한다.
'일을 이렇게 망쳐놓고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냐.' '종구는 대처에서 어떡하든 살아 보려고 바동거렸다.' '그곳 날씨는 어떻습니까?' '그 소설은 어떻더냐?'
작니?, 작으니?
지난번에 '먹냐?' '있냐?' '없냐?' '계시냐?'는 각각 '먹느냐?' '있느냐?' '없느냐' '계시느냐?'가 바르다고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동사와 '있다' '없다' '계시다'다음에는 '-냐'가 아니라 '-느냐'가 쓰이기 때문입니다. <8월 27일자 122회 참조> 그런데 문제는 친구끼리 직접 대화할 때 '지금 어디 있냐?'를 바르게 고쳐서 '지금 어디 있느냐?'로 쓰면 아무래도 어색하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말로 바꿔 쓰면 되지요. 의문을 나타내는 '-니/-으니'도 대안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느냐'와 달리 친밀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니'와 '-으니'는 그 앞에 오는 말에 따라 어떤 것을 쓸지가 결정됩니다. 우선 동사 어간 다음에는 '-니'가 쓰입니다. '너 지금 어디 가니?' '추석에는 뭘 먹니?' '고구마 굽니?' 등이 그 예입니다.
형용사 어간에 연결될 때는 받침 유무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받침이 없을 때는 '-니'가 옵니다. 예를 들면 '그 약 맛이 쓰니?' '많이 아프니?'와 같은 경우입니다. 받침이 있을 때(ㄹ 받침 제외)는 '-니'와 '-으니' 두 가지 형태가 다 가능합니다. 즉 '친구가 그립니/그리우니?' '어느 옷이 더 좋니/좋으니?' '그 운동화 작니/작으니?'는 모두 맞습니다.
ㄹ받침일 때는 'ㄹ'이 탈락하고 '-니'가 붙습니다. '이 수박 달으니?'가 아니라 '이 수박 다니?'가 되는 것이지요.
밤을 지새다, 지새우다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렵게 출제될 것이라는 예상에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밤을 새면서 공부하는 자식들이 안타까워 '밤을 새지 마라. 몸 상할라'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우리의 교육 현실을 다시 생각해 본다.
위 문장에서 쓰인 '새면서' '새지'는 맞지 않다. 이들의 기본형인 '새다'는 목적어를 취하지 않는 자동사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목적어가 있으므로 '밤을 새우다'로 하는 게 옳다. '밤을 새우다'는 왜 흔히 '밤을 새다'로 잘못 쓰는 것일까. 아마 '새다'를 '새우다'의 준말로 생각하기 때문일 듯싶다. 그러나 '새다'는 '날이 밝아 오다'란 뜻(그날 밤이 새도록 그는 자기의 과거를 다 이야기했습니다)인 반면 '새우다'는 주로 밤을 목적어로 하여 '한숨도 자지 아니하고 밤을 지내다'란 뜻(그 이야기를 들은 날 밤을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했다)이다. 이처럼 뜻이 완전히 다른 말이므로 '새다'가 '새우다'의 준말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밤이 새다'와 '밤을 새우다'는 구별해 써야 한다.
앞에 '지-'가 붙는 '지새다' '지새우다'도 같은 경우다. '지새다'는 '달빛이 사라지면서 밤이 새다'는 뜻(그는 밤이 지새도록 술잔만 기울였다)이며, '지새우다'는 밤 따위와 함께 쓰여 '고스란히 새운다'는 뜻(아내는 긴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남편 오기만을 기다렸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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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우리말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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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종교와 죽음 - 베르나르 포르
머리말
종교와 죽음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제 죽음도 서구인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잃어버렸다. 죽음은 시인 말라르메가 표현한대로 '비방의 대상이긴 해도 전혀 깊지 않은 강'이 된 것이다. 현대인들이 사후세계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내던져 버린 이후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지옥과 낙원을 믿지 않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방송매체를 통해 너무나 일상화되어 버렸거나 병원의 한쪽 구석에서 슬며시 진행되고 있는 죽음 역시 그 절박성을 잃어버렸다. 그런 마당에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비서구인들의 신앙이 서구인들과 무슨 관계가 있으랴? 식민지 전성시대만큼이나 자만감으로 가득 차 있는 현대의 서구문명 한가운데서 절대타자(죽음)에 대한 저편 세상 사람들(이 경우에 아시아인)의 견해가 서구인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말이다. 서양이라는 용어 자체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이 말은 서양이 아닌 동양이라는, 그릇 정의된 하나의 다른 실체를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고정된 시각에 따라 단일체로 생각돼 온 그 동양은 이방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서구인들의 상상력 안에서만 존재했을 따름이다. 실제의 동양은 아시아만 두고 보더라도 말할 수 없이 다양한 곳이며,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극히 동양적인 정신'이라는 표현에 국한될 수 없는 곳이다.
우리의 먼 이웃들이 죽음을 어떻게(그들에게 죽음은 이상할 정도로 친숙하고,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상한 모습으로 다가온다)생각하고 있는지를 다룬 이 작은 책이 끝날 즈음이면, 서구인들은 자민족중심주의의 오만한 착각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알 수 없는 것 앞에서 느끼게 되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시아의 문화들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더욱이 그 문화들이 제기하는 제반 문제와 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아마도 서구인 자신에 대해서도 깨닫게 해줄 무엇인가를 갖고 있을지 모른다.
서양에서 본 죽음
보편적 생물학적 현상인 죽음은 매우 다양한 문화적 의미를 갖고 있다. 우선 생물학적 죽음과, 정신적 죽음, 그리고 사회적 죽음간의 차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신병자나 신비가, 심지어 일정한 주거지 없이 떠도는 이들도 육체적으로 죽기 이전에 이미 세상에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면 육체적 죽음은 어떠한가? 이 역시 문제를 제기한다. 생과 사가 단절되는 순간은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한 것이라고 믿어왔는데 이제 그 순간은 매우 모호하게 되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마지막 숨을 쉴 때 죽는다고 하는 걸까? 아니면 뇌의 기능이 멈춰버렸을 때? 그것도 아니라면 신진대사가 끝난 순간이 죽음의 순간일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죽음을 갑작스런 사건으로 여기던 사고방식은 이제 그것을 점진적인 과정으로 이해하는 소위 아시아적 사고방식의 우월성을 인정하게끔 된다. '흉조'라는 뜻의 라틴어 obscenus에서 온 죽음이라는 용어는 어원상의 의미가 암시하듯이 늘 불길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레 손질되어 무대에 올려지곤 했다. 그러나 반대로, 현대에 들어와서는 죽음에 깃든 불길함이 매우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옛날에는 인간의 마지막 순간을 극단적일 정도로 사회화된 통과의식으로 받아들였지만, 오늘날의 죽음은 고독감과 무책임 속에서 무심히 진행된다. 머지않아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당사자에게 감추어, 죽어가는 이는 이런 효성스런 거짓말과 정맥주사로 목숨을 이어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시신을 추리하는 방법이 쓰레기 처리 방법과 거의 다를 바 없다는 사시도 간과할 수 없다. 이미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폭로한 바 있지만, 미국에서는 화장터에서 나온 재가 경건하게 매장되지 못하고 공중 쓰레기장에 버려지는 일이 가끔씩 일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이러한 현상은 죽음을 진부한 것으로 여기게 된 데 주요한 원인이 있으며, 그리하여 죽음의 의미와 장례식이 갖는 상징성도 이제는 차츰 사라져가고 있다. 죽은이에게 몸치장을 하는 것도 더 이상 정결의식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단지 죽은자의 모습을 살아 있는 사람처럼 만들어서 시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공포에 질리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있을 뿐이다.
시신을 불태우는 화장 역시 불에 의한 정화라는 상징적 가치를 잃어버렸다.하남디로,죽음에 관한 학문인 사망학(thanathologie)은 점점 인기 있는 분야가 되고 있는데 비해,죽음 그 자체는 학문적 관심에서 밀려나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으며,죽은 자를 조상으로 받드는 경향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죽음에 관한 아시아인들의 신앙을 잠시 훑어보면, 조상숭배 같은 신앙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신앙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내려왔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좀더 심도 있게 연구해 들어가면, 이런 신앙이 겉으로 보기에는 일관성을 지닌 채 지속되어 온 듯하지만, 실상은 그 이면에 수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형식이 동일하다고 해서 그 내용도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한 종교의 외양이 확고부동한 듯 보여도, 사회 문화적 배경이 어떻게 작용하였느냐에 따라 그 교리에 부여되었던 이전의 의미들이 완전히 딴판으로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연옥이라는 개념이 출현함으로써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이 상당히 많이 변했다. 낙원과 지옥 사이에 중간 장소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때대로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의미를 갖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카톨릭으로 개종한 말레이시아인 들에게 연옥은, '뼈가 마를 때까지만 영혼이 머물러 있는 장소'가 되었다. 물론 이런 해석은 기독교보다는 원주민들의 토착신앙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시아나 혹은 다른 지역에서 보편화된 대부분의 개념들을 지탱해 주는 것은, 죽음이 존재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죽음 이후에도 다른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아시아에서 치러지는 여러 가지 장례의식에서는, 서구인들처럼 죽음을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으로 보지 않고,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불유쾌한 과정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의식은 통과의례인 동시에 대변환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속에서 고인은 우선 사회적인 인물로서 존재하며, 장례식은 고인뿐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과도 관련을 맺는다. 장례식은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의 사건을, 사회구조 안에서 생기는 하나의 사고처럼 보지 않고 관습을 만들어내는 동기 가운데 하나로 본다. 다시말해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초상이라는, 느리지만 매끄럽게 진행되는 과정 속에 통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의 종교들
다양하기 그지없는 아시아의 철학, 문화, 예배, 종교들 가운데서, 필자는 인도, 중국, 일본의 문화권과 힌두교, 불교, 도교, 유교, 신도라는 주요 종교에만 관심을 국한시키고자 한다.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포함하는 아시아 전 지역권과, 이슬람교, 기독교, 구리고 이보다는 덜 알려진 자이나교jainisme, 티베트 본교Bon, 마니교manicheisme, 혹은 조로아스터교 등 다양한 다른 종교들을 모두 다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불교에 많은 몫을 할애했지만, 테라바다교theravada나 탄트라교tantrisme처럼 관심을 끌만한 종파에 대해서는 아주 간략하게 넘어가야 했다. 앞서 언급한 종교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일괄하여 그저 '힌두교', '도교', 혹은 '불교'라 부르는 것은 용어를 남용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긴 하지만, 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인도화와 중국화의 두 경향은 사상사적 관점에서 볼 때 많은 유사점을 지닐 뿐 아니라 서로간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불교가 이루어 놓은 연관성에 힘입는다. 인도가 인도유럽 공간에 속한다는 점과, 또 한편으로 일본을 비롯한 극동아시아의 용이라 불리는 국가들(한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사이에서 최근 서구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중국과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전통적인 사상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도의 사상이다. 도는 여성적 요소인 음과 남성적 요소인 양이 리듬감 있게 교체함으로써 우주의 균형을 이룬다는 원리는 만난다.. 또한 불교자체는 형이상학적인 경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과 일본인은 지각되는 세계를 언제나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들 국가에 들어온 이후에 철저히 수정되었다. 흔히 많은 아이들 틈에 끼여 불룩한 배에 유쾌한 모습을 한, 중국의 '웃는 붓다'인 붓다이Budai는 수척한 고행자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인도의 붓다와 대조를 이룬다. 한 종교가 얼마만큼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이 경우만큼 뚜렷이 드러내 주는 예는 없을 것이다.
중국에서 그렇듯이 인도에서도 구원에 이르기 위한 대립된 두 길이 있다. 그 하나는 사회적 질서에 끼여드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과 하나로 어우러지기 위해 그 질서를 던져버리는 방법이다. 힌두교 사상에서 브라만braman들의 종교 행위는 카스트라는 사회종교적 계급제도의 일부가 되어 있는 반면, 흰두교나 불교에서 속세를 포기한 자는 사회와 세상 밖에서 구원을 찾는다. 이와 유사한 대조를 중국의 유교와 도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자(BC.552 ~ BC.479)의 가르침을 토대로 하고 있는 전통적 유교사상은 조상숭배와 효를 중심으로 하는 윤리적이고 제례적인 생활방식을 설파하는데 이는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반대로 '철학적인' 도교는 자연으로의 복귀, 즉 도라고 표현되는 우주질서에 대한 복종을 통해 사회문화적 질서를 넘어서고자 한다. 끝으로 이런 공인된 종교 밖의 민중신앙은, 보이지 않는 힘들에서 마술적인 보호를 확보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고자 한다.
불교
후에 붓다, 혹은 '깨달은 자' 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혹은 석가모니)에 위해 기원전 6세기에 인도에서 형성된 불교는 토착신앙에 반대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희생제사에 근거하지 않고, 감각적인 세계의 부재와 존재의 공허라는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자유에 이른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붓다가 죽은 지 몇세기 후에는 두 커다란 종파로 분열되었는데,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그것이다. 소승불교는 '선인들의 길'이라는 뜻의 테라바다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승불교는 특히 중국, 한국, 일본과 같은 극동아시아 쪽으로 퍼졌고, 소승불교는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라오스, 캄보디아와 같은 동남아시아 쪽에 전파되었다. 좀 더 늦게 나온 세 번째 종파는 밀교의 경향은 띤 금강불교(혹은 탄트라교)로서, 티베트와 일본에서 발달했다. 불교는 한 사회 안에 뿌리를 내리면서, 본래의 지역의 종교(인도의 힌두교, 중국의 도교와 유교, 일본의 신도)나 다양한 숭배사상, 그리고 소위 민중신앙과 적지 않은 경쟁의식과 갈등을 겪으면서 그들과 연합하거나 상호 보완하는 관계를 이룩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런 현상은 특히 일본에서 두드려져 일본의 격언 중에는, "신도 신자로 태어나서, 불교 신자로 죽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게다가 지금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교회에서 결혼하는 경향이 점점 더 늘고 있다.) 신들의 길이라는 의미를 갖는 신도가 다산과 풍작의 기원에 중점을 두고 있는 데 반해, 일본의 불교는 상당 부분에 있어서 장례의식을 주관하는 기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각성 이르기 위한 외로운 길, 즉 불교 경전이 제시하는 개인 해방의 교리가 아닌, 기정을 중심으로 매우 사회적인 종교가 된 것이다. 일본에 있는 대부분의 불교 사원들은 '깨달음을 위한 사원'이지만, 오늘날 그 깨달음이란 명상하는 승려들의 각성이 아니라, 평신도들이 사후에 도달하는 깨달음을 말한다.
이러한 사원이 맡는 주요 기능은 사원에 가입된 가족들의 위해 장례의식을 치러주는 일이다. 심지어 선종에서도 오로지 명상 수련에만 헌신하는 사원은 거의 없다. 불교 사원을 방문하는 일본인들은 주로 관광객들이거나, 아니면 가족 중 한 사람을 저 세상으로 보낸 사람들이다. 이제는 명상을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그러나 불교는 조상숭배를 통해 가족간의 일체감과 가문의 계승의식을 북돋움으로써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고, 또 계속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인들의 4분의 3이 불교신자로 자처하더라도 놀랄 필요는 없다. 이런 현실은 그들이 정통 불교의 교리 속에서 특수화된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지 않고, 단순히 장례식 때 불교 승려들의 도움을 받았거나, 혹은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반영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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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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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지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 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알 한 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 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지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지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일 것이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 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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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사회/문화/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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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2 - 주강현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무당과 신내림 (2/2)
작두 위에서 춤출 수 있다?
무당과 관련하여 늘 풀리지 않는 또 다른 의문점의 하나가 작두타기다. 시퍼렇게 갈아놓은 작둣날, 무당은 버선을 벗고 맨발로 작둣날 위에 오른다. 설령 신발을 신고 올라선다고 하더라도 작둣날에 잘리지 않을까. 큰무당들에게 물어보지만 "신령님 덕분이다"라는 대답뿐이다. 그러나 그 답변 가지고야 시원한 설명이 되겠는가. 멍석 깔린 마당에 작두탑을 쌓는다. 장군탑, 장군단, 칠성단이라고도 부르는 작두탑은 무당이 작두를 탈 대를 말한다. 드럼통을 세우고 그 위에 떡을 치는 안반을 놓고 밥상, 물동이, 송판, 양푼 순으로 올린다. 드럼통이 없던 예전에는 절구통을 세웠고, 양푼에 쌀을 넣는 대신에 둥근 모말[대두]을 올렸다. 물동이 안에는 조기를 한 마리 넣어두기도 한다. 작두탑 양옆에는 승전기(혹은 장안기)를 세워서, 나중에 무당이 붙들고 중심을 잡게 한다. 굿에서 작두는 신성한 영물이다. 시퍼렇게 날이 서게 갈아 붉은 치마로 감싸서 부엌의 조왕에 모셔둔다. 조왕은 전통적으로 가정신이 자리잡은 곳이다. 무당은 조왕에게 제를 지낸 다음 작두를 둘러메고 나온다. 이때부터 '작두 어르기'가 시작된다. 치마를 걷고, 시퍼런 작둣날을 허벅지에 가져간다. 푸른 핏줄이 팽팽히 돋아난 살갗에 작두를 심하다 싶을 정도로 들이밀어도 살은 베이지 않는다. 팔은 물론이고 뺨과 혓바닥에도 날을 대본다. 두 개의 작둣날을 작두탑 위에 올려놓고 천으로 움직이지 않게끔 고정시킨다. 운이 나빠서 액땜을 하고 싶은 이들이 작둣날을 붙잡고 있으면 액이 사라진다고 하니, 누구에게나 작두의 영험은 강하게 작용하는 셈이다. 굿이 무르익어 장단이 거칠어져갈 무렵, 무당은 신명이 올라 춤을 추다가 순식간에 작두로 오른다. 작두 위에서 삼현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둘러싼 사람들에게 차례차례 공수를 내린다. 무당이 인간이 아닌 신의 매개자가 되는 순간이다. 이때의 무당은 장군신으로 변신했으니 인간의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두타기에서 가장 높게 드러나고 기세등등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열두 굿거리의 클라이맥스라고나 할까.
실험을 해 보았다. 작둣날로 신문지를 베어보니 면도칼 이상으로 썩썩 베어진다. 놀라운 일이다. 오히려 날을 날카롭게 세워야 발을 베지 않는다? 무당들은 작두를 타는 순간에 발바닥이 뜨거워진다고 한다. 오히려 작둣날이 제대로 서지 않아 고르지 못하면 발을 벨 수도 있다. 여기서 하나의 단서가 잡힌다. 사람의 몸이 내리쏟는 무게중심은 발바닥으로 몰린다. 두 개의 작둣날과 발바닥은 일직선을 중심으로 만난다. 이때 작둣날은 반듯하고 날카롭게 그어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날 위에 선 사람의 무게를 분산시킬 수 있다. 다음으로 몸이 최대한 가벼워져야 한다. 작둣날이 살을 벨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져야 한다. 신명이 실리면 무당은 몸이 가벼워진다. 춤꾼이 신명나게 춤을 추면 몸이 가벼워져 날 듯이 춤판을 누비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신명이 중요하다. 하지만 몸무게가 내리누르는 중력을 아예 없앨 수는 없다. 그래서 중력을 일직선의 칼날이 받을 정도로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작두를 타기 전에 '작두 어르기'를 통하여 무당은 다리와 팔, 뺨과 혓바닥에까지 작두를 들이민다. 이때 살은 팽팽하게 긴장하여 칼날을 물리친다. 신명이 실린 무당이 작두에 올랐을 때, 팽팽한 긴장이 발바닥과 칼날을 물리친다. 양자의 균형은 아주 팽팽하여, 만약 한치의 오차라도 있으면 실패로 돌아간다. 어느 무당들이나 작두타기를 앞두면 긴장하게 마련이고 굿판의 주위 사람들도 모두 긴장감에 빠져든다. 굿판의 공동체적 긴장감이 작두탑에 쏠릴 때, 명실공히 굿판의 주역이 된 무당은 신명의 신바람에 팽팽한 긴장감을 실어 작두로 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설명으로는 아무래도 불충분하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유리겔라가 어떻게 눈빛만으로 숟가락으로 숟가락을 구부리며, 차력사의 배 위로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는가를 결부시켜 볼 수 있다. 이 문제는 아무래도 기로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무당의 신명은 신기라고도 하거니와, 신기는 기의 신명적 표출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기는 과학적으로 해명이 가능할까. 내 생각에는 이렇다. 오늘날까지 우리가 받아들인 과학적 명제들은 데카르트와 뉴턴 이래의 근대 자연과학의 분석적, 기계적 환원주의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들 과학적 사실은 부분에서는 전적으로 옳지만 전체적으로는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생체 에너지의 문제에서는 그런 경향이 강하다. 기는 서구에서 말하는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중력의 법칙에 따르면 작둣날에 가해지는 인체의 힘으로 당연히 발을 베게끔 되어 있다. 그러나 작두타기에서 무당의 발은 전혀 탈이 나지 않는다. 결국 기의 규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간의 의식과 생명과 물질을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총체적인 방식이 아니고서는 이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오늘날 신과학운동이 말하는 인간의 초능력과 생체 에너지에 대한 규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작두타기는 어디까지나 우리 나라에만 있는 접신 현상이다. 따라서 '작두타기'라는 특수한 무당문화를 형성하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농경문화와 굿거리의 발전과정에서 나온 신과 기의 결합현상이라고 본다. 작두는 원래 소 같은 가축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사용하던 도구이다. 이런 작두가 무당의 굿거리 마당에 쓰이면서 무당의 권위를 높이는 도구로 변용된 셈이다. 섬뜩한 작둣날 위에서 춤을 춘다고 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감탄할 것이고 그에 따라 무당의 권위도 올라갈 게 아닌가.
무당신으로 모셔진 예수님
무당을 이야기하다 보면, "그건 미신이 아닌가요" 하는 질문도 꼭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듯 단정적으로 묻는 그들에게 앞에서 설명한 시베리아 샤머니즘이 어떻고, 시로코고로프의 명저 <퉁구스의 기원>을 읽어 보라든지, 신내림은 비단 북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 널리 퍼진 현상으로, 조금만 공부해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는 따위의 설명은 해줄 겨를도 없다. '굿은 미신'이라는 질문에는 보다 세밀하게 '굿 - 무당 - 샤머니즘 - 미신 - 미신타파'라는 일련의 연상이 내포되어 있다. 즉 '굿 - 미신타파'로 귀결된다. 굿은 부정적 양상이 많았고 역사진보에 역기능을 초래한 면이 많았기 때문에 철저히 박멸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당은 늘 미신을 퍼뜨리는 주범으로 조준사격을 받아왔다. 고려시대 이규보(1168-1241년)는 장시 노무편에서 기꺼이 '무당 저격병'의 선두로 나섰다.
내가 사는 가까운 동린에 노무가 있어 날마다 사녀가 모이고 음가괴설이 귀에 들려와 심히 언짢았다. 국가가 칙을 내려 무당들을 멀리 이사시키고 개경에는 오지 못하게 하였다. 내가 비단 동쪽의 음탕함이 씻은 듯 적연해짐을 기뻐함만 아니라, 다시는 서울 안에 다시 음사가 없이 세상 백성이 질박 순후하여 장차 태고의 풍이 복구될 것을 축하하여 시를 짓는 것이다. ......
나라에 무풍이 사라지지 않아 여자는 무당, 남자는 박수가 되네 자칭 몸에 신이 내렸다고 하지만 내가 들을 땐 우습고 서글플 뿐이네 굴 속에 든 천 년 묵은 쥐가 아니라면 틀림없이 숲 속의 꼬리가 아홉 되는 여우일레
여기서 '태고의 풍'은 '공자님 말씀'을 말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후대로 내려와서 민중 신앙에 대한 지배집단의 비판적 입장을 가장 강하게 보여준 하나의 사례로, 제주도의 신당을 파괴하여 변방지역 제주에 유교적 봉건체제를 확립하려 하였던 조선 시대 이형상 제주목사가 있었다. 숙종 28년(1702년)에 제주목사로 부임한 그는 삼읍(제주, 정의, 대정)의 음사와 불사 130여 개소를 파괴하고, 무격 4백여 명을 귀농시켰다고 한다. 무당은 예나 지금이나 정당한 평가에서 제외되었다. 조선 사회에서는 팔천의 무리로 하대 받았고, 음사를 일삼는다고 공격 받았다. 장희빈이 왕비 민씨를 저주하기 위해 화상을 그려놓고 화살을 쏘는 식의 흑주술도 무당의 부정적 측면을 더욱 부각시키게 만든 요인이었다. 근대로 들어와서는 기독교 신앙의 대척점인 '미신'으로 치부되면서 늘 음지에서만 존재하였다. 고대사회에서도 미신으로 공격 받았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청동기 출토품에 팔주령 같은 방울 모양의 제의 도구가 보이거니와 제정일치 시대의 흔적을 알려준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적자인 남해차차웅에 대해 김대문이 이르길, "방언으로 무당이라 불렀다. 세상 사람들이 무당으로써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지냈다"고 <삼국사기>에 기술하고 있다. 중세사회로 접어들면서 무당의 지위는 하락한다. 유교적 세계관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구한말의 선교사 헐버트는 1903년 <코리아 리뷰>라는 영문판 잡지에, 무당의 무란 '속이기 위함'이고, 당이란 '무리'를 뜻한다고 썼다. 무당이 과연 속이는 사람일까. 종교적 편견이나 잘못된 개화주의, 서구중심적 사고방식이 오늘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무당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많은 장애를 초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당과 기독교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서양인 선교사가 평안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당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무당을 만나자마자 성경을 꺼내들고 예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가를 잔뜩 설교하였다. 그러자 무당 왈, "그렇게 좋은 분이라면 오늘부터 당장 신단에 모시겠다"고 하였다. 그날로 예수님 사진을 받아서 굿당에 걸었음은 물론이고 아침 저녁으로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말하자면 예수굿을 해준 셈이다. 그 무당에게는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관우장군, 백마장군, 칠성신장, 도당할아버지 모두가 만신의 대열이었을 뿐이다. 우리의 전통적 신관은 다신교적인 만신을 섬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당을 만신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1996년 여름, 세계적인 신학자 하비 콕스가 모처럼 우리나라에 왔다. 나 역시 <세속도시>, <바보제> 같이 널리 알려진 그의 책을 두어 권 읽은 터라 그의 방한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신문을 들추어보니, 그는 "한국 기독교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배경에 샤머니즘이 깔려 있다"고 단언했다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가 샤머니즘적이란 주장은 처음 나온 것이 아니지만 교계에서는 공식적으로 접수하기를 꺼리는 것 같다. 내 생각으로는 신도들이 트랜스 상황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 하나님과 대화한다고 믿는 방언, 신도들의 영혼이 천상계로 올라간다고 믿는 입신따위가 북아시아 샤마니즘의 트랜스 형식과 흡사하다. 평양의 무당이 예루살렘의 예수님을 '만신'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나, 한국 기독교에서 샤머니즘의 기복족 요소를 도입한 것이나 그 맥락은 같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다. 이 주장에 대해 반론이 있을 법하지만, 그 반론에 대한 답을 미리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일찍이 민중신학자 서남동 선생은 중국인인 송천성의 신학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한국 사람의 '한'을 모르고 어찌 한국 사람에게 복음을 전달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송천성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중국과 아시아에 있어서 초대 그리스도교 신도들의 신은 대체로 우상과 잡귀를 몰아내는 푸닥거리의 신이었다. 선교사들은 중국사람들에게서 그 잡귀 잡신을 몰아내주려고 중국에 온 것이다. 중국 초대 교인들은 새 신앙의 힘으로 악귀만이 아니라 중국문화까지 몰아내는, 말하자면 푸닥거리의 사역을 위해 임직된 셈이었다...... 아시아에서 그 토착문화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공포증은 용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와 토착문화의 관계에 있어서 유럽에서는 그렇지 아니했다. 그 한 예로 크리스마스 축제행사를 보라. 그것은 시리아, 로마의 태양신 숭배제의에서 유래한 그리스도 탄생축제가 아닌가. 위 중국의 경우는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말하자면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기독교는 민족문화를 몰아내는 푸닥거리 역할을 충분히 해낸 셈이 아닐까. 무당이 단순한 미신으로 내몰리게 되기까지 근 백년의 역사는 바로 이 '푸닥거리'의 역사였던 탓이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 자신이 '예루살렘의 큰무당'이었다고 나는 늘 믿고 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문제는 무당 자신에게도 있다. 진정한 무당이 되려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 강신무이거나 세습무이거나, 무업에 들어선 사람은 누구나 큰무당을 만나서 굿을 배워야 한다. 무가를 외우고, 제물차림을 배우고, 굿거리마다 옷을 차려 입을 줄 알고, 춤을 배우고 온갖 의례를 격식에 맞게 배우고, 단골을 조직 관리하는 방법을 알고...... 적게는 몇 년, 많게는 평생 배워도 부족하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배움을 제대로 한 무당다운 무당이 얼마나 있을까. 일제 시대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큰무당 이야기가 황해도 무당들 사이에서 전설같이 전해온다. 그이는 큰 굿이 끝나면 항상 수많은 제물을 배고픈 이웃들에게 돌렸고 늘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독립운동 뒷자금도 대었다. 굿은 곧 '나눔의 잔치'임을 몸으로 실천한 이다.
전라도 단골을 생각해 보자. 단골들은 평소에는 호미를 쥐고 논밭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가 집안에 궂은 일이 생긴 사람이 있으면 호미를 집어던지고 땀 흘린 베적삼을 입은 채 굿을 행하였다. 그들은 굿판에서 직접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년에 한두 번 쌀과 보리로 '연봉' 비슷한 것을 받았을 뿐이다. 그들 자신이 민중임과 동시에 종교적인 사제였다. 시베리아 샤먼들도 결코 제의를 행하고 돈을 받지 않았으며, 가난한 사람의 굿을 더욱 중시하였다는 보고서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무당을 보고서 이 같은 민중의 무당을 어찌 생각이나 할 수 있으리오!
강증산도 자신을 '큰무당'이라고 했다. 강증산은 "후천개벽을 하는 데 무당을 따라가야 한다", "광대와 무당이 바로 큰 개벽장이다"라고 하였다. 김지하 시인의 해석으로는, 이때의 무당은 '만신'을 뜻하는 무당이자 동시에 '없을 무'자, '무리 당'자 무당, 즉 어떤 당파에도 가담하지 않은 '무당파'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김 시인은 그의 이야기 모음집 <밥>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기도 하다. 그의 이른바 친지공사, 즉 후천개벽을 실질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집행하는 그의 천지공사는 모두 이와 같이 우리 나라 농민들의 농업노동의 가락과 장단 및 전통적인 굿의 형태로서 진행되었으며, 스스로 천지 생명을 낳고 키우고 살피는 '한울님'일 뿐만 아니라, '무당'이요 '천지농사꾼'이라고 자기 자신을 비유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이제까지 이야기해 온 후천개벽과 '몸에 대한 틈'의 선포로서의 큰굿, 대동굿, 일과 춤, 두레와 대동놀이, 노동과 문화 사이의 통일적인 상관관계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입니다. 증산 자신이 실제로 후천개벽 공사를, 그의 천지공사를 바로 '천하굿'이라고 불렀고 바로 '무당공사'라고도 불렀습니다.
이쯤 되면, 강증산같이 근세의 풍운아가 생각하던 무당과 굿의 개념은 상당히 폭넓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큰무당은 사라지고 선무당만 설치는 격은 아닐까. 그들에게만 이 모든 책임을 물을 수야 없지만, 오늘의 무당들에게는 타산지석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무당의 긍, 부정을 떠나서 오늘날도 여전히 무당이 속출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무당들의 조직인 경신회에서 추정한 바에 따르면 '신의 자식'들이 무려 10여만 명에 육박한단다. 더구나 요즈음은 저학력자에서 고학력자로 옮겨가는 추세이며, 대학을 나온 무당도 만만치 않은 숫자라고 한다. 그렇다고 하여, 이들 양산되는 무당들을 사회적 문제로 진지하게 대처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무당들의 복지', '무당들의 사회교육' 따위를 주장한다면 제도종교만을 주무르는 종교문화 정책입안자들 중에서 웃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일찍이 유럽이나 러시아, 미국 등지에서 근 2백여 년이나 연구해온 샤머니즘의 내용에 수준 높은 우리의 무속은 거의 배제되어 있다. 또 이능화의 <조선무속고>(1927년)가 출간된 이래로 이미 70여 년이 흘렀다. 그러나 이후의 성과는 미미하기만 하다. 얼마 전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출간한 <대륙을 넘어서>란 책을 보니, 몽골리언들의 베링 해협을 건너서 북미로 이동해 간 파란만장한 역사와 그들의 샤머니즘이 너무나 쉽고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도대체 우리는 귀중한 자료를 쌓아두고도 왜 이런 성과물조차 없는 것인가. 우리 무당의 온전한 연구는 전 세계적 차원의 샤머니즘 연구, 종교현상연구 그리고 우리 민족의 종족기원을 밝히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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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어당 에세이선
사색의 십자가
꿈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은, 불만이란 신성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쨌든 불만은 인간의 고유한 것이라는 점만은 나도 시인한다. 동물사 중에서 원숭이는 최초의 불평가이었다.실로 침팬지이 이외의 동물에서 슬픈 얼굴을 나는 일찌기 본 일이 없다. 나는 이러한 동물이야말로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슬픔과 심려와는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표정을 보고 있으면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소는 생각이 적어도 철학적 사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러냐하면 소는 항상 퍽 만족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코끼리도 무서운 분노쯤은 마음속에 가지고 있겠지만 끊임없이 그의 큰 코를 흔들고 있는 모습은 사색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보이고 잠겨 있는 모든 불평을 털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오직 원숭이만이 완전히 삶에 시달린 얼굴을 하고 있다. 원숭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아마도 철학은 결국 이 권태감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인간의 특성은 어떤 이상에 대하여 슬퍼하고 걷잡을 수 없이 그리워하며 동경을 품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아직도 다른 세계에 대한 꿈을 꾸는 능력과 경향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인간과 원숭이와 다른 점은, 원숭이는 단지 권태감을 느끼고 있을 뿐인데 반하여 인간은 권태감 이외에 상상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누구나가 다 구습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다 더 이상의 무엇이 되어 보기를 기대하며 모두가 꿈을 꾸고 있다. 일등병은 하사의 꿈을 꾸고, 하사는 대위의 꿈을 꾸고, 대위는 소령이나 대령의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대령이 될 만한 기지가 있는 인물이라면 자기가 대령으로 있는 것을 별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좀더 품격 있는 말투로 자기의 현직을 자기의 동료들에게 봉사할 기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런 정도밖에 안 된다. 존 크로포오드는 세상에서 생각하고 있는 만큼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으며, 자넷 게이너는 세상이 생각하고 있는 만큼 자신의 일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위대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참 훌륭하군요." 하고, 만약 그들이 정말로 위대하다고 시인하면 언제나, "훌륭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이렇게 묻는다. 그러니까 세상이란 것은 일류 요릿집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옆 테이블에서 주문한 요리 쪽이 훨씬 양이 많아 보이고 맛도 더 있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현대 중국의 어느 교수는 인간의 이 부러움이라는 문제에 대하여 이러한 명언을 말한 적이 있다.
"아내는 남의 아내가 더 나아 보이고 저술은 자기의 저술이 더 나아 보인다."
그러므로 이런 의미에 있어서 완전히 만족하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사람들은 그 남이라는 것이 자기 자신이 아닌 한 모두가 자기 아닌 남이 되고 싶어한다. 이러한 인간의 특색은 확실히 상상력과 꿈꾸는 능력에서 이루어진다. 상상력이 크면 클수록 언제나 불만족한 생활뿐이다. 언제나 다른 아이보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를 다루기가 더 곤란한 것은 이 까닭이다. 인간은 소처럼 즐겁고 만족하고 있는 것보다 원숭이같이 슬프고 우울한 때가 더 많다. 역시 이혼이라는 것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 다시 말해서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보다 이상주의자-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사이에 더 많이 있는 일이다. 이상적인 인생의 반려를 바라는 환상은, 상상력이 부족하고 이상주의적 생각이 적은 사람에게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인류는 대체로 이상주의의 덕택으로 향상도 하고 사도로 비뚤게 가기도 하지만, 상상력이 없이 인류가 진보할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인간에게는 포부가 있다고 말들 한다. 포부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고귀한 것으로 간주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소유한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개인으로나 국민으로나 우리들은 모두 꿈을 가지고 있으며, 많든지 적든지 그 꿈에 따라서 행동한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그 꿈의 심도가 깊다. 그것은 어느 가정에나 꿈이 많은 아이와 꿈이 적은 아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실은 남몰래 비밀로 꿈꾸는 아이를 좋아 한다. 꿈을 꾸는 사람은 꿈을 꾸지 않는 사람보다는 대체로 슬픔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다. 슬픔이 많으면 많을수록 보다 더 큰 기쁨과 감동을 느낄 수 있고 높은 황홀경에 드나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라디오 세트가 공기 중에서 음악을 감수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처럼 인간의 사상에 대한 수신기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세트는 다른 세트가 할 수 없는 예민한 단파를 감수한다. 더욱더 먼 곳에서 오는 예리한 음악은 매우 감수가 힘든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음악이 아니라는 까닭은 조금도 없다. 유년기의 꿈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같이 그렇게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 꿈은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만약 세계의 어느 한 작가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이 되고 싶다. 인어가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거나, 좀더 나이가 들면 자기는 물위로 떠올라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인어의 이야기를 쓰거나 자기들 자신이 인어가 되어 본다고 하는 것은 흔히 인간에게 가능한 가장 예민하고 가장 아름다운 기쁨의 하나를 감각한 것이 되는 것이다. 골목길에서나 지붕 밑 다락방에서나 헛간에서나 또는 물가를 따라 딩굴면서 아이들은 언제나 꿈을 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그대로 실현되는 것이다. 토머스 에디슨도 그렇게 꿈을 꾸었다. 월터 스콧 경도 그렇게 꿈을 꾸었다. 세 사람이 모두 다 유년시대에 꿈을 꾼 것이다. 그러한 마술적인 꿈 속에서 인간이 일찌기 본 적이 없는 가장 우아하고 가장 아름다운 피륙이 짜여져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아이들도 역시 이러한 꿈을 꾼다. 그들의 꿈의 환상과 내용은 다르더라도 그들이 얻는 기쁨의 크기에는 다름이 없다. 모든 아이들에게는 누구나 다 동경심이라는 것이 있다. 그 동경심을 가슴에 안고 잠을 자러 간다. 내일 아침에 잠이 깨어 일어났을 때 그의 꿈이 정말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잠을 자는 것이다. 그는 그 꿈의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꿈은 자기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마음 한구석에서 자라나는 자아의 한 부분인 것이다. 이런 아이들의 꿈 가운데에는 다른 꿈보다도 뚜렷하고 실현력이 강한 것도 있다. 또 한편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리 뚜렷하지 못한 꿈은 잊혀지고 만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어린 시절의 그 꿈 이야기를 남에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다가 결국은 이야기할 말도 채 하기 전에 죽어가는 수도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이고 역시 그러하다. 어느 국민도 모두 그들의 꿈을 가지고 있다. 그 꿈의 기억은 수세대와 수세기까지도 계속된다. 그중에는 고귀한 꿈도 있고 사악한 또는 비천한 꿈도 있다. 정복의 꿈이나 모든 다른 국가보다 강대해지려는 꿈은 악한 꿈이어서 그러한 국가는 보다 더 평화스러운 꿈을 가지고 있는 국가보다도 언제나 많은 고통을 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한 꿈과는 아주 다른, 보다 더 좋은 꿈이 있다. 보다 더 훌륭한 세계에로의 꿈, 여러 국민이 서로 평화스럽게 살기를 원하는 꿈, 잔인과 부정과 빈곤과 고통을 적게 하고자 하는 꿈들이 그것이다. 사악한 꿈은 인류의 선한 꿈을 파괴하기 쉬운 것이므로 이 선한 꿈과 악한 꿈 사이에는 불화와 다툼이 있다. 사람들은 그들의 지상의 소유물 때문에 싸우는 것과 같이 그 꿈을 위해서도 싸운다. 그러면 꿈은 유휴의 환영 세계로부터 내려와서는 현실 세계로 들어가 인생의 현실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그 꿈이 모호한 것이라 할지라도 꿈은 그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방법을 알고 있으므로 현실로 바꾸어지기 전에는 인간에게 아무런 평화를 주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땅 밑의 씨앗이 반드시 햇빛을 찾아서 새싹을 트게 하는 것과 흡사하다. 꿈이란 것은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혼란된 꿈 또는 현실과 부합되지 않는 꿈을 꾸면 위험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왜냐하면 꿈은 또한 도피이기도 하므로, 몽상가는 가끔 현실의 세계에서 지향없이 도피하는 꿈을 꾸기 때문이다. 파랑새는 언제나 로맨티스트의 공상을 이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다 현재의 자기와는 다르게 되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변화만 제공해 주는 것이라면 보통 사람들의 심리에 무서운 매력을 준다. 전쟁이란 것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그 까닭은 전쟁을 하면 시청의 서기에게도 군복을 입고 가죽 각반을 두르고 무전 여행을 할 기회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참호전이 3, 4년 계속되면 언제나 휴전이나 평화가 그리워진다. 왜냐하면 휴전이라는 것은 출정 군인에게 집에 돌아와서 민간의 평복을 입고 빨간 넥타이를 맬 기회를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이렇게 그 어떤 자극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러므로 전쟁을 피하고 싶다면 모든 정부들은 20세부터 40세까지 국민을 징병제도하에 징집하여 매 10년에 한 번씩 유럽여행을 시켜서 박람회나 그 밖의 것을 구경시켜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국 정부는 현재 재군비 계획에 50억 파운드를 소비하고 있는 중인데, 그 50억 파운드란 액수는 전 영국 국민을 리비아에라도 여행시키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그러나 물론 전쟁 경비는 필요한 것이나 여행은 사치라고 하는 반대론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여행이 필요한 것이고 전쟁은 사치가 아닐까? 이 밖에도 꿈은 또 있다. 유우토피아의 꿈, 불로불사의 꿈 등. 불로불사의 꿈은 매우 인간적인 맛이 있다-이 꿈은 매우 보편적이라는 데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로불사의 꿈도 유토피아의 꿈처럼 막연한 것이어서, 그것이 그들의 손안에 걸려들어도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불로불사의 욕망은 그것과 정반대인 자살의 심리와 흡사한 점이 매우 많다. 양쪽 모두 현실세계는 인간에게 있어 충분히 좋은 것이 되지는 못한다고 추정되고 있다. 왜 이 현실세계가 우리 인간에게 좋지 않다는 것일까? 춘광이 넘실거리는 봄날에 전원으로 산책을 나가면 그러한 대답에 대하여보다도 그 물음 자체에 더욱 의외로 놀라고 말 것이다.
유토피아의 꿈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이상주의란 어느 다른 세계의 질서를 신봉하는 정신상태에 불과한 것이다. 그 질서가 어떠한 종류의 질서라 할지라도 현실의 그것과 다르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상주의적인 자유주의자는 자기 자신의 나라가 가장 최악의 국가라고 생각하며, 또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가 가장 최악의 사회 형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아직도 일류 요릿집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주문한 음식이 자기 자신의 것보다 훌륭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뉴우요오크 타임즈의 토픽란에서 필자가 말한 것으로서, 이러한 자유주의자의 눈에는 러시아의 드녜프르 댐만이 정말 댐이고 민주주의 국가는 아직 댐이라고는 건설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소련만이 오직 지하철도를 만들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파시스트 신문은 자기 나라에서만 인민은 지각 있고 올바르며 유능한 정치형태를 발견하였다고 그 국민에게 고하고 있다. 바로 그 속에서 유토피아의 자유주의자이건 파시스트의 선전부 간부이건 모두 다 그 위험에 놓여 있는 것이다. 반드시 필요한 교정제로서는 유우머의 감각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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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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